창작과비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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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 신예시인특선

 

손유미 孫柔美

1991년 인천 출생. 2014년 창비신인시인상으로 등단. w0thsdbal0w@hanmail.net

 

 

 

수의 같은 안개는 내리고

 

 

신이 멀어

귀신의 손을 잡는다.

 

아름답지 못할 바에는

잡귀가 되는 편이 좋다.

 

벙어리의 사랑을 무시했던

옛날이야기는 다시 씌어져야 한다.

 

말 없음은

기도가 저주임을 너무 일찍 알아버린 탓이었다.

 

탯줄로 자라지 못하고

미움을 먹고 자라 그랬겠다.

 

정오보다 못생겼겠지.

 

귀신은 거울의 뒷면과 더 친하다.

 

다정한 표정을 갖고 싶어

얼굴에 다섯 밤()씩 새겨 넣었다.

 

신은 하나였지만

내 것은 아닌 것 같았다.

 

버림받을 바에야.

 

매일 밤

송곳니를 빼고 아득바득 노는 여자를 안다.

 

미래의 어느날

송곳니가 심장의 모양으로 동그래지면

모나지 않은 사랑노래를 부를 수도 있겠지.

 

수의(壽衣) 같은 안개는 내리고……

 

저 안엔 친구들이 많아

저들의 손을 잡아야 잠에 든다.

 

 

 

우중

 

 

비가 내린다

툭. 툭.

목에 밧줄을 걸고 작은 여자들이 온다

 

먼저 온 여자들은 끼리끼리 손을 잡고

돌아가자며 발을 구른다

 

비 내리고 안개 끼는 창밖이

소란스러워 잠에서 깬다

 

내 얼굴은 벼랑 같아서

아무나 세게 붙잡는다

수많은 일(1)이 적혀 있다

 

시든 꽃다발 같은 일들

 

커튼 같은 먹구름이 내려오면

잠깐 조용해진다

 

외출을 하면 챙이 깊은 검은 모자를 사와야지

 

중얼거리자 작은 여자들이 자기 모자를 건넨다

모자를 바꿔 쓰고 친구 하자고

 

나는 큰 여자인데

 

나보다 먼저 작은 여자들과 친구가 된 이웃이 있다

벼랑에 앉아 밧줄을 모으더니

어느날 언덕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