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과비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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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 신예시인특선

 

신철규 愼哲圭

1980년 경남 거창 출생. 2011년 조선일보 신춘문예로 등단. 12340158@hanmail.net

 

 

 

식탁의 기도

 

 

세상에서 가장 긴 식탁에 앉아 밥을 먹는다

기도하는 두 손에서 솟아나는 또다른 두 손

 

높은 성에 사는 귀족들은

왜 그렇게 긴 식탁에서 밥을 먹었을까

기도가 끝날 때까지 얼마나 많은 침을 삼켰을까

 

소방차의 싸이렌 소리가 저녁의 공기를 뒤흔들고 지나간다

놀이터에서 뛰어놀던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그치고

시소의 한쪽 끝에 앉아 반대편 의자 위에 걸터앉은 붉은 해를 바라보던 한 아이는 울음을 터뜨린다

 

우리가 밥을 먹으려고 고개를 숙일 때 이 세계의 울음과 단식은 사라진다

내가 고개를 숙일 때 당신은

사막이었다가 사막의 선인장이었다가 사막의 밤을 횡단하는 기구(氣球)였다가 금방이라도 녹아내릴 눈사람이었다가

 

우리는 이 세계의 아름다움에 대해 말한 책을 매일 한권씩 버렸다

마지막으로 텅 빈 책장마저 썩어 무너지면

우리는 꿈속에서 서로의 손가락을 가위로 잘랐다

 

연한 입이 딱딱한 부리가 될 때까지

우리는 씹고 또 씹었다

서로 조금만 뒤로 물러난다면 우리는 등을 맞대고 밥을 먹을지도 모른다

 

밥을 다 먹고 설거지를 하고 배가 꺼지면 우리는 또 식탁에 지도를 펴놓고 이민에 대해 이야기할 것이다

 

우리는 뜨거운 밀랍을 귀에 붓고 딱딱한 기도를 한다

이 세계를 떠나지 못한 이들을 위해

손가락을 뚝뚝 분지르며

 

 

 

눈물의 중력

 

 

십자가는 높은 곳에 있고

밤은 달을 거대한 숟가락으로 파먹는다

 

한 사람이 엎드려서 울고 있다

 

눈물이 땅 속으로 스며드는 것을 막으려고

흐르는 눈물을 두 손으로 받고 있다

 

문득 뒤돌아보는 자의 얼굴이 하얗게 굳어갈 때

바닥 모를 슬픔이 너무 눈부셔서 온몸이 허물어질 때

 

어떤 눈물은 너무 무거워서 엎드려 울 수밖에 없을 때가 있다

 

눈을 감으면 물에 불은 나무토막 하나가 눈 속을 떠다닌다

 

신이 그의 등에 걸터앉아 있기라도 하듯

그의 허리는 펴지지 않는다

 

못 박힐 손과 발을 몸 안으로 말아 넣고

그는 돌처럼 단단한 눈물방울이 되어간다

 

밤은 달이 뿔이 될 때까지 숟가락질을 멈추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