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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조용미 曺容美
1962년 경북 고령 출생. 1990년 『한길문학』으로 등단.
시집 『불안은 영혼을 잠식한다』 『일만 마리 물고기가 산을 날아오르다』 『삼베옷을 입은 자화상』 『나의 별서에 핀 앵두나무는』 『기억의 행성』 『나의 다른 이름들』 등이 있음.
treepoem@hanmail.net
붉은 백합
북쪽 그늘로 찾아갈 때마다
향기 같은 독을 내뿜는다
꽃이 피는 방향 따라 마음을 움직인다
옆으로, 아래로
나리의 검은 콩알 같은 살눈이 정면을 바라본다
쏘아보는 영혼이다
방문을 꼭꼭 걸어 잠그고 뇌 속으로 침입하는 백합 향기를 맡으며 잠들고 싶었다
가수면의 밤
오리엔탈 백합, 소르본, 카사블랑카, 블랙아웃, 스위트로지, 메두사, 파타모르가나, 매트릭스……
어지러울 만큼 향이 강한 스킨을 바르고 나타날 때
너는 알 수 없는 사람이 된다
옆으로, 옆으로
그리고 아래쪽으로
조금씩 벌어지다 오므라드는 백가지의 마음
매핵기
목에 매실 씨앗이 들어왔다 아니 생겨났다
목에 무언가 있어 뱉어지지도 삼켜지지도 않고 가슴이 답답하다 칠정이 꽉 막혀 생긴 기담이다
기운이 맺히거나 뭉쳐져 명치와 인후 사이에 걸려 오르내리며 오는 마음의 병
매핵기(梅核氣)는 어디로부터 오는가
매핵기로 인해 나를 이해하게 되는 일이란,
목에 가래가 있는 듯한 느낌이 억눌린 감정을 밖으로 표현하지 못해 생긴 심화와 칠정울결이 그 원인이라니
매실 씨앗으로부터 나를 구해내야 한다
매화와 매실 씨앗의 간극에 대한 생각이 많아진 후부터 나는 다소 용감해졌다 하지만
그로 인한 간기울결이 더 심해졌으니
칠정으로 인한 기는 왜 다른 곳이 아닌 목에 와서 몰리고 맺히는 걸까
목이 메기만 하고 울지는 못하는
매핵이 있으나 없는, 이런 매화의 쓰임새는 기이하다 씨앗은 내 속에서 자신의 꽃나무를 생각하고 있는 걸까
매화의 모든 것에 반응하는 마음과 몸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