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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 신예시인특선
안미옥 安美玉
1984년 경기 안성 출생. 2012년 동아일보 신춘문예로 등단. myugi3@empas.com
한 사람이 있는 정오
어항 속 물고기에게도 숨을 곳이 필요하다
우리에겐 낡은 소파가 필요하다
길고 긴 골목 끝에 사람들이 앉아 있었다
작고 빛나는 흰 돌을 잃어버린 것 같았다
나는 지나가려고 했다
자신이 하는 말이 어떤 말인지도 모르는 사람이
진짜 같은 얼굴을 하고 있었다
반복이 우리를 자라게 할 수 있을까
진심을 들킬까봐 겁을 내면서
겁을 내는 것이 진심일까 걱정하면서
구름은 구부러지고 나무는 흘러간다
구하지 않아서 받지 못하는 것이라고
나는 구할 수도 없고 원할 수도 없었다
맨손이면 부드러워질 수 있을까
나는 더 어두워졌다
어리석은 촛대와 어리석은 고독
너와 동일한 마음을 갖게 해달라고 오래 기도했지만
나는 영영 나의 마음일 수밖에 없겠지
찌르는 것
휘어감기는 것
자기 뼈를 깎는 사람의 얼굴이 밝아 보였다
나는 지나가지 못했다
무릎이 깨지더라도 다시 넘어지는 무릎
진짜 마음을 갖게 될 때까지
비정
처음도 없고 끝도 없다
멀어지는 것에서 멀어지고 있다
너는 작고 분명한 나사를 찾고 있다
나는 크고 뭉툭한 해머를 들고 있다
울고 있는 사람을 똑바로 쳐다보는 눈
그것은 빛나고
그것은 무서운 눈
울음 안에 있는 것을 보지 않는다
네가 먼저 잠들고, 내가 잠들지 못할 때
불 꺼진 자리에 내가 앉아 있어야 할 때
나는 어둠 속에서
감은 눈을 보고 있다
태어난 이후 어느 누구도
알려주지 않았다
너의 물건으로 둘러싸여 있는 너는
나의 물건으로 둘러싸여 있는 나는
계속해서 반대쪽을 향해 말하고
우리는 점점 더 다른 사람이 되겠지
안에서 잠가도 잠기지 않는 말
마음을 정하는 것과 상관없이
어떤 문장은 남는다
네가 울더라도 나는 네 옆에서 잘 수 있어
네가 하는 말이 간혹 들릴 때
나는 여러가지 방법으로 감의 꼭지를 자른다
하얀 접시 위에
잘 잘린 감을 내어놓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