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과비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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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 신예시인특선

 

양안다

1992년 충남 천안 출생. 2014년 『현대문학』 신인추천으로 등단. uanda114@naver.com

 

 

 

우연오차

 

 

그때 덤프트럭에 치인 게 내가 아니라 왜 고양이였을까

그는 그저 죽은 고양이 옆에 동전 몇개를 두고 왔을 뿐이고

 

두 갈래 길에서 어느 쪽으로 가야 할지 생각하는 동안 그는 왜 세 갈래가 아니라 두 갈래냐며 억울해했다

 

가끔은 그런 걸 고민할 때가 있다 그의 왼편과 오른편 중 어디에 서서 걸어야 할지

그에게 물어봤다면 그게 고민할 만한 거냐고 되물었겠지만

 

식당에 가면 어디에 앉을지 망설였다 그래서 내가 앉은 곳은 항상 그의 건너편이었다

 

나는 참지 못할 때마다 나를 벗어나는 것 같다고 말했을 때 그는 세상엔 용서 가능한 일이 너무 많다고 말했는데

 

쥐인지 참새인지 모를 납작한 사체 옆에서 침을 뱉고 그 자리에서 나이만큼 뛰던 날도 있었다 어제였거나 유년이었거나 십년 뒤의 일이었고

 

다른 나라에서 어떤 맹인이 귀를 잘랐다는 소식을 들을 수 있었다 맹인은 칼 대신 동전을 쥐고 있었을까

 

같이 죽어버리자고 만났으면서 왜 이런 얘기나 하고 있는 걸까 둘 말고 아무도 없는 방이었고 밤이었는데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는데

옆을 더듬어 그를 찾았다 그러자 그가 존재하기 시작했다

비로소 서로가 존재하고 있었다

 

 

 

평행진입

 

 

죽은 적 있지?

네가 의자를 만지며 말해서 의자를 죽은 나무로 여기는구나, 생각했다

 

이 방은 서향의 창문

저녁의 햇빛으로 떠도는 먼지가 보이기도 하고 눈이 부실 땐 눈 안의 세포가 공중을 날아다니기도 하지

그것이 너에게 이 방을 사랑하게 만들고

 

함께 고개를 꾸벅거리며 나는 네 말에 동의를 표하고

너는 졸음을 견디고

 

바닥을 어지럽혀서 바닥이 보이지 않게 되면

서로가 서로의 더럽고 지저분한 과거를 알아야 할 인과가 사라지고. 그래도 너만은 내 과거가 더럽다고 말해줬으면 좋겠다 나의 한때가 너에게 질척거리는 시간이었으면

 

새가 날아다녀

 

이틀이나 잠들지 못해서 눈앞이 조금씩 번진다고, 네가 그렇게 말해서 나는 네가 잘못 봤을 거라고 혹은 잠깐 조는 사이에 꿈을 꾼 거라고 생각했다

 

한번도 최면에 빠져본 적이 없는데 나는 언젠가 꼭 너였던 적이 있었던 것 같아 그리고 나는 너의 어머니가, 나는 네 미래의 배우자가 그리고 너도 내가

되어본 적이 있었다는 듯이

네가 이해되기도 하고

이 말을 듣는 너의 기분을 이해하고

이 말을 하는 나의 기분을 너도 이해할 수 있을 거고

너의 이해와 나의 이해가 겹치면

나는 네가, 너도 내가, 그런 게 가능할 것만도 같은데

유년의 너도 먼지 위의 세계와 세계를 비행하는 새를 보고

울 때마다 조금씩 번지는 눈가로 눈의 세포가 아니라 공기 입자를 봤을 건데, 그렇지?

나는 고개를 끄덕거리며 너의 생각을 견디고

 

무슨 생각해?

 

네가 물으면 별생각을 하지 않아도 별생각이라도 한 것처럼 대답할 것이다

너처럼 졸기도 하겠지만

너의 눈 속에서 대답하는 나를 바라보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