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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 신예시인특선
임솔아 林率兒
1987년 대전 출생. 2013년 중앙신인문학상으로 등단. sol.a.2772@gmail.com
티브이
그렇게 슬퍼? 광복 70주년 기념 프로그램에서 숭례문이 불타고 있었다.
로션을 바르는 것처럼 그는 콧물을 손바닥으로 문지른다.
우리나라 국보 1호인데 가슴이 미어진다며 운다.
나는 키즈 과학체험을 보며 운다. 소의 배에 구멍을 뚫고 아이들에게
손을 넣게 한다. 소야. 커다란 눈을 껌뻑이는 소야.
아이들이 배에서 꺼낸 곤죽이 된 음식물을 허연 침을 뚝뚝 흘리면서 핥는 소야.
나는 콧물을 풀고 눈물을 닦으며 티브이를 본다.
지금은 긴급속보에서 카트만두가 무너지고 있다.
사망자가 팔백명이라더니 내가 이 시를 쓰는 동안 사천명으로 늘었다.
왜 울지 않아? 우리나라 이야기가 아니라서 그는 눈물은 안 난다고 한다.
티브이에서 본 비극을 모아 나는 지금 시를 방영한다.
뛰어난 인류를 상상한 독재자가 학살을 만든 다큐를 보았고
머리채를 잡힌 여자가 중심가를 질질 끌려가며 죽어갔고
수백의 사람들이 구경만 했다는 뉴스를 감자칩을 먹으며 메모했다.
잔재 아래에서 울음소리가 올라온다. 이름이 뭐예요? 대답하세요. 구조대 올 거예요.
말을 해요. 그래야 살 수 있어요. 나는 티브이에게 말을 시킨다.
깜박깜박 졸음에 빠지는 티브이를 깨운다.
나는 티브이 속으로 들어간다. 차벽 너머의 그를 만난다.
우리는 마주보고 있다. 이곳은 마주보는 것을 대치 중이라 한다.
이 차벽 너머에서 그가 등을 돌렸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등을 돌려야만 같은 티브이를 볼 수 있다. 나는 뒤를 돌아본다.
예보
나는 날씨를 말하는 사람 같다.
봄이 오면 봄이 왔다고 비가 오면 비가 온다고 전한다.
이곳과 그곳의 날씨는 대체로 같고 대체로 다르다. 그래서 날씨를 전한다.
날씨를 전하는 동안에도 날씨는 어디로 가고 있다.
날씨 이야기가 도착하는 동안에도 내게 새로운 날씨가 도착한다.
이곳은 얼마나 많은 날씨들이 살까.
뙤약볕이 떨어지는 운동장과 새까맣게 우거진 삼나무숲과
가장자리부터 얼어가는 저수지와 빈 유모차에 의지해 걷는 노인과
종종 착한 사람 같다는 말을 듣는다.
못된 사람이라는 말과 대체로 같고 대체로 다르다.
나의 선의는 같은 말만 한다. 미래시제로 점철된 예보처럼 되풀이해서 말한다.
선의는 잘 차려입고 기꺼이 걱정하고 기꺼이 경고한다. 미소를 머금고 나를 감금한다.
창문을 연다. 안에 고인 괴괴한 날씨와 착한 사람들을 창밖으로 민다.
오늘 날씨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