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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배창환 裵昌煥
경북 성주 출생. 1981년 『세계의문학』으로 작품활동 시작.
시집 『잠든 그대』 『다시 사랑하는 제자에게』 『백두산 놀러 가자』 『흔들림에 대한 작은 생각』 『겨울 가야산』 『별들의 고향을 다녀오다』 등이 있음.
poetbch@hanmail.net
사는 힘
시멘트 금 간 마당 틈새
비치파라솔 그늘, 잠시 쉬는 내 허리까지
쑥, 올라온 씀바귀 꽃대
해를 따라왔는지 피해 왔는지
우주의 중심에서 폭발하는 별처럼
사방팔방 달아나는 꽃맹아리들
빠당빠당하고 깐깐하고 눈부시다
이렇게 쬐그만 꽃잎 언저리에도
아침 일벌들은 아이구 좋아라, 덤벼든다
사는 것이 다들 최선이다
햇살 달아오르는 마당 질러
나도 텃밭 가려고 벌떡 일어서는데
뒷집 아이 울어 짱짱하게 담장을 넘는다
저 아이도 고픈 것이 있나보다
눈 감고 숨 멈추고 귀를 세우니
아니다 길냥이 소리다
고픈 것이 힘이다
살아 있는 것들은 그 힘으로 울고
울지 못하는 것들은
더는 삶이 고프지 않은 것이다
어느 오랜, 먼 날
살풋 든 꿈에 보았다
아홉살 무렵, 감나무 가지 새로 활짝 웃는 사진 속 네 모습
그리고 낯익은 시골 마을, 북적대는 상가였을 게다
문상객들 틈에서 마당 구석으로 내 소매 이끌어
나란히 쭈그려 앉았는데 네가 귓속말로
살짝, 말했다
—아빠, 돈 좀, 주까?
그러고는 누런, 오천원짜리, 구겨진 지폐 한장
내 눈앞에 내밀었다
도랑을 건너오는 습한 빛살처럼
네 두 눈이, 쓸쓸히 웃고 있었다
깜짝 놀라 잠에서 뛰쳐나오니
뿌리를 알 수 없는 눈물이 멈추질 않았다
얼른 아버지 가실 때처럼 금강경 틀어놓고
끊어진 필름을 애써 이어보았지만
누구였을까, 사람들이 흐느끼며 바라보고 있던
마루 끝 영정 속 그 얼굴
어디서 많이 본 얼굴이었는데
도무지 기억해낼 수가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