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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이명윤 李明潤
1968년 경남 통영 출생. 2007년 『시안』으로 등단.
시집 『수화기 속의 여자』 『수제비 먹으러 가자는 말』 등이 있음.
dalsunee@korea.kr
첫눈
간호사가 일러준 대로 빨간 선을 따라갔다
병원에 데려가달라 한 건
처음이었다
천천히 동의서에 서명하는 사람은
위험한 눈빛을 배우는 사람
길을 잃기 쉬운 사람
잊지 말라고 그어준 밑줄처럼
빨간 선을 따라
수속을 마치고 제자리로 왔을 때
무심한 얼굴 사이로
꾸벅꾸벅 졸고 있었다
마치 오래전부터 그곳에 앉아 기다려온 사람처럼
한번도 졸음에 닿아본 적 없었던 사람처럼
편안히 졸음을 맞고 있었다
어디 가시지 말고 여기 꼭 계세요
돌아오는 길,
두 통의 전화를 했고
잠시 화장실에 들렀을 뿐인데
당신은 길고 긴 계절의 표정을
모두 지나, 어느새
황홀하게 졸음에 도착해 있었다
수의
이렇게 함께 누워 있으니
비로소 운명이란 말이 완전해집니다
당신을 향한 모든 절망의 말들이 내게로 와
흰 눈처럼 쌓이는군요
나는 철없는 신부처럼 아름다운
죽음을 얻어 살아 있습니다
가장 적극적인 자세의 천장이
지켜보는 봄날의 오후,
문밖에는 꽃과 새들과 바람이 서성이다
돌아가겠지요
전신 거울을 볼 수 있을까요
공원 호숫길도 궁금한 날
멀뚱멀뚱 나는 두 눈을 뜨고
거룩한 당신이었다가
우스꽝스러운 나입니다
이것은 농담에 가깝습니다
나는 나로부터 멀리멀리 걸어가야 합니다
자꾸만 삶을 향해 흔들리는 나를 잊으려
당신을 따뜻하게 안습니다
그러니까 질문은 받지 않겠습니다
죽음이 슬픔을 우아하게 맞이하도록,
태도는 끝까지 엄숙하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