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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강덕환 姜德煥
1961년 제주 출생.
시집 『생말타기』 『그해 겨울은 춥기도 하였네』 등이 있음.
thekwan@hanmail.net
톱니바퀴는 구속되지 않는다
거대한 기계를 돌리는 톱니바퀴가
자기 하나 빠지면 우렁차게 돌던 기계도
멈춘다는 사실을 차마 몰랐을 거다
자기는 그저 부속품에 지나지 않는다고 2차 세계대전에서 유대인 학살에 총칼을 들이대지 않았다고 아우슈비츠 수용소에서 회계원으로 일하며 이송되어오는 수용자들의 물건과 돈을 빼앗았던 게 무슨 대수냐고, 가스실 운영이나 생체실험에 눈을 감아버렸을 뿐이고, “나는 큰 기계의 작은 톱니바퀴에 불과했다”라고 항변하던 아흔살이 넘은 그1에게 70년이 지난 재판에서 징역형이 선고되었다. 증언에 나섰던 생체실험 피해자였던 그녀2는 “선은 절대 분노로부터 오지 않는다. 호의는 언제나 분노를 이긴다”며 그에게 다가가 키스를 한다, 포옹한다, 용서와 화해의 깃발이 펄럭인다, 구속시키기엔 너무 지체했다
톱니바퀴는 여전히 구속되지 않고
녹이 슬었던 거대한 기계 역시
기름칠하면 다시 돌지도 몰라
국립현충원에 4·3의 톱니들이
아직도 훈장을 박탈당하지 않은 채 건재한 것을 보면
소원성취
어머님 젖가슴 같은
오름 둔덕 위로
빨간 해를 그려놓고
충청도에서 한문선생 하는 시인에게
‘허구졍 헌냥 몬딱 되붑서’
새해 엽신 보냈더니
‘좋은 말이쥬? 제줏말은 뭔 말인가 물유’
답신이 왔다
제줏말이 한자보다도
어렵나보다
‘소원성취’하라고 해버렸다면
단박에 알아차렸을걸
미안하진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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