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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이수명
1965년 서울 출생. 1994년 『작가세계』로 등단. 시집 『새로운 오독이 거리를 메웠다』 『왜가리는 왜가리 놀이를 한다』 『붉은 담장의 커브』 『고양이 비디오를 보는 고양이』 『언제나 너무 많은 비들』 『마치』 등이 있음.
물류창고
창고를 보았을 때 바로 힐링캠프가 열리는 곳임을 알았다
그것은 중앙 광장에 보란 듯이 세워져 있어서
그냥 지나칠 수는 없었다
며칠 전에 특별 행사로 한 것 같은 시즌오프 세일 현수막이
그대로 걸려 있었고 오늘이 마지막입니다
오늘이 다예요 창고 완전 개방입니다
외치는 소리 시끄러웠을 일주일은 아마 지나갔고
지금은 캠프를 신청한 사람들이 군데군데 모여 있었다
명상을 신청한 사람들은 명상을 하고 그 옆에
요가를 하는 사람들이 벌써 몸을 둥글게 말고 있었다
우리는 무얼 할지 몰라 둘러보다가 공예보다는
연극이 쉬울 것 같아서 즉석에서
연극을 신청했는데
한 팀밖에 구성할 수 없다 하여 경훈과 성미가
다른 그룹의 처음 보는 사람들과 함께하기로 했다
경훈이 먼저 무대에 올라
늦어서 미안하다고 했다 캠프 시작에 늦지 않으려 했는데 오는
길이 막혔고 그런데 자신은 여기에 왜 오는지 모르며 그냥
이끌려 왔는데 뭘 또 하라고 하니 우선 늦어서 미안하다는 거였다 날이 더워서
더러운 날이라고도 했다 그때 다른 그룹의 사람 둘이 나와서
자신들은 이 지역 주민이라 할인된 가격으로 캠프에 참가했고
진정한 나를 찾는 힐링을 열심히 하겠다면서 작정한 듯 소리 지르고
바닥에 넘어졌다가
나중에는 포옹하는 장면을 보여주었다 경훈은 두사람이
힐링을 잘하도록 비켜주었는데 두사람이
힐링을 너무 오래 해서 성미는 두사람을
결국 이해하고 힐링을 이해하고
힐링 주변을 계속 빙빙 돌았다 그러다가 성미가 감동의 눈물을
터뜨렸을 때 두사람 중 좀 뚱뚱한 사람이
덕분에 자신도 힐링되었다며 성미의 손을 잡고
무대를 한바퀴 돌았다 하는 수 없이 경훈은 그 나머지 사람에게
다가가 오늘은 몹시 더운 날이라 했다 더러운 날이라 했다
그리고 또 늦어서 미안하다 했다 한번 더 미안하다고 했다
헐렁한
옷을 입은 경훈은 말을 마치고 객석에 앉은 나를 잠시 바라보았는데
내가 부채질을 하는 것을 보고 다시 더운 날이라 했다
창고에는 중간 크기의 붉은 소화기가 한대
구석에 놓여 있는 게 전부였다
안전핀을 뽑아서 노즐을 어떻게 끌고 가라는
안내문이 붙어 있었다 거기 더러운 먼지가 잔뜩
내려앉아 있었다 네사람이 가까이 멀리 그 소화기를 지나치곤 했다 무대 위에 있어서
그들은 아주
커다랗게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