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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김민정 金敃廷
1976년 인천 출생. 1999년 문예중앙 신인문학상으로 등단. 시집 『날으는 고슴도치 아가씨』 『그녀가 처음, 느끼기 시작했다』 『아름답고 쓸모없기를』 등이 있음. blackinana@hanmail.net
냄새가 오셨네 그분은 가셨네
정류장에 서 있던 남자는
방글라데시에서 왔다고 했습니다.
안 물어봤는데 말해주니까
외로운가보았는데,
더웠습니다.
방글라데시는 오늘 29도래요.
휴대폰으로 검색해본 다카의 날씨.
휴대폰으로 검색해본 파주의 날씨,
현재 기온 33도.
남자가 웃었는데
앞니 하나가 없었습니다.
순간 나는 남자에게서 그 냄새를 맡았습니다.
뜨거운 바람이 불었고
그 바람 뒤로 맥금동 종점행 078번 마을버스에
내가 먼저 올라탔습니다.
빈자리는 맨 앞자리 하나.
내가 앉고 나니 빈자리 하나 없는 버스.
방글라데시에서 온 남자 혼자 섰습니다.
방글라데시에서 온 남자 혼자만 서서 갔습니다.
서서 가자니 두 팔 들어 손잡이를 잡는 게 맞고,
에어컨이 풀가동이니 창문은 꼭꼭 닫는 게 맞고,
찬바람이 부는데
그 바람은 도통 오갈 데가 없으니까
나는 남자에게서 그 냄새를 맡았습니다.
버스는 직진하고 버스는 좌회전하고 버스는 우회전하고,
버스는 속도 내고 버스는 속도 줄이고 버스는 멈춰 서고,
우르르 내려봤자 쪼르르 또 올라들 타니까
방글라데시에서 온 남자의 몸이 자꾸만 내 쪽으로 쏠렸습니다.
예민한 코의 소유자라면 냉큼 자리부터 내줬을 텐데
모두들 그냥들 갔습니다.
내 자리는 레이디 퍼스트라며 한사코 사양을 하니까
나도 그냥 갔습니다.
집까지 삼삼은 구 아홉 정거장
창 너머의 남자가 버스에서 내린 나를 향해
손을 흔들었습니다.
두 팔을 크게 휘저어가면서까지, 굳이
그럴 필요까지야 있겠는가 싶었는데
외로운가보았습니다.
정류장 앞 하나약국에 불이 환했습니다.
생리통은 아니고 진통제는 상비약이니까요.
힘든 건 아니고 머리가 좀 아팠다는 얘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