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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김진완 金鎭完
1967년 경남 진주 출생. 1993년 『창작과비평』으로 등단. 시집 『기찬 딸』 『모른다』 등이 있음. tldls100@hanmail.net
쫌
꼴보수에 고집불통 홀아비를 모시고 사는 아우는 보살보다 윗급이라
무능력하고 미천한 형에게도 자주 안부전화를 넣는데,
—형, 아버지 갈비 드시다 앉은자리에서 똥 쌌어 지금 빤쓰하고 추리닝 가지러 집에 가는 중이야
—으잉? 또?
—손님들 다 도망갔다고 주인은 입이 댓발이나 나와 씩씩대지 노인네가 혼자 뒤처리하겠다고 고집을 부리더니 휴지 한통을 다 써서 변기까지 막아놨네 아 놔 진짜
—참 나, 그 양반 요즘 왜 그런다냐
—형이랑 나랑 박근혜 찍지 말라고 쫌, 아 쫌- 하면서 얼마나 말렸어? 결국 닭 그거 빵에 가는 꼴 보시더니 ‘내가 찍은 것들은 모조리 콩밥을 처묵는구나 내는 눈 뜬 장님이다 내사 고마 맥이 탁 풀린다’ 하드만 그후로 툭하면 변을 놓치는 거라
—그 썩을 것들 때문에 애꿎은 최고 유리기술자가 똥벼락을 맞는구마
—잡것들 똥구녁에 실리콘을 쏴버려야 돼 화해? 용서? 조지나 좆껍데기로 쌈 싸 드시지 일렬횡대 세워놓고 아부지 설사 한바가지씩 끼얹어야 성이 풀리고 나라꼴도 쫌 제대로 돌아가지 싶어 힛히— 생각만 해도 똥꼬가 근질근질 꼬들꼬들 기분 좋으네 근데 변기 뚫는 게 어디 갔지? 잉? 진짜 없네 씨바, 이게 어디 숨었어! 니미럴 손으로 건져내라고? 아흐 내가 미쳐요 흐큭크크흐흐—
(생불님 웃으신다 쪼다 형이 억지웃음 등신처럼 히끅흐꾹 따라 웃는다)
—참, 형은 모르는 척 암 말 마 괜히 노친네 맘 상할라
전화를 끊고 가슴을 목탁 삼아 후려친다
휘유우— 관세음보살
숨 쉬는 것도 정치라면 중생 괄약근 쫀쫀 쪼여지게 하는 것도 정치고 적폐청산이다 그러니,
우리 아우부처님 설 하신 대로
쫌—
아 쫌!
그리운 큼큼 희미해지는 흠흠
날짜가 가까워지면서 쿰쿰한 냄새 짙어진다 곧 기름을 뒤집어쓸 것들이 구덕구덕 마르면서 풍기는 냄새가 계집 하나 불러낸다
왕십리 솜틀집서 솜먼지 뒤집어쓴 채 뺨을 부비던 새댁의 달큰한 침내
전농동 단칸방 부엌에서 곤로 심지를 올리며 엑—엑— 구역질하던 만삭 며느리 겨드랑이에선 석유 냄새 재봉틀기름 냄새
제기동 세탁소 다락방 문턱에서 햇덩이처럼 솟아오르던 시뻘건 비빔국수 타래
금이 간 다라이를 머리에 이고 사다리 두 계단 밟아 올려주던 키 작은 아줌씨
“우리 새끼들 배 터지이 묵고 더 무라”
아, 배꼽에서 찌르르— 올라오던 맵고 쓰리고 하닥거리던 청양고추향 어매
일년에 여덟번 챙기던 기일 큰 고기를 사야 큰 인물이 난다는 시집살이 주술에 걸려 도마를 덮고도 남던 도미 아가미에 뿌리던 돌소금
에이, 짜고 지린 예편네야
홍동백서 조율이시 나란나란 줄 선 제사상
꿈에서나 엎치고 메쳤겠지
‘조상 음덕이 있으모 장손이 이따우로 살아? 항!’
속으로만 악을 쓰다 목이 멨겠지 경상도 촌닭은
치잇치이잇— 생선들이 튀겨지며 연기 피어올라 눈이 매워도 우는 이 없네 눅눅한 기억은 사는 일에 들볶일수록 바작바작 들떠 가벼워지던 거 아무도 그녀가 살아낸 세월 틈서리에 낀 그슬음 따위 떠올릴 리 없지
군둥내, 기름내, 향불내, 졸아드는 탕국 냄새에 휘감겨 뵈지 않던
생선살 발라 나물밥 뜬 수저마다 얹어주던 손 주름투성이 손으로만 떠다니던
참 이상한 여자 하나 재작년 오늘 날짜로 죽다
죽어서야 계집, 새댁, 며느리, 아낙, 어매, 여편네, 촌닭이 뿔뿔이 흩어지고
기어이 몸 벗어 여자까지 훨훨 날리더니
큼큼—
그리운 냄새로 오셨다가
흠흠—
희미해지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