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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성다영 成多英
1989년생. 2019년 경향신문 신춘문예로 등단.
pbist1ger@gmail.com
행운은 여기까지
시작하기 전에 이미 시작하는 음을 들어봐
왜 죽음이 순간이라고 생각해?
이 까페에는 계단이 많다 계단에는 난간이 없다
건물이 말한다
상상하지 않는 사람은 알지 못한다
나는 글자에 갇혔다
재미없음이 나를 짓누른다
누가 나를 방해한다
기어코 시인이 되었구나 이제 행복하니?
이곳에서 벌어지는 일은 끔찍하다
나는 견딜 수 없다
나는 새를 파는 시장에 가지 않는다
나는 개를 사지 않는다
박제
동물의 가죽을 벗긴 다음 솜 따위를 넣어 살아 있을 때와 같은 모양으로 만드는 것을 의미한다
새롭지 않은 상상
인터넷 용어로 쓰일 때에는 타인의 실수나 잘못을 스크린샷 저장 등으로 캡처하는 것을 의미한다
카타 콜록의 수화에는 가정법이 없다
볼 수 없어도 추억할 수 있다
발이 없어도 춤출 수 있다
나는 자연과 상관없이 움직인다
여기에 뭔가 있어
누군가가 누군가의 상상 속에 갇힌다
오해하고 싶지 않아
그가 둘러본다
얼굴은 소유를 거부한다*
나는 유기되었다
쓸모있을지도 모르니 아직 버리지 말자
원근법
이미지가 갇혔다
나는 나에 갇혔다
예수는 겸손해서 남자로 태어났다
길에서 오줌을 싸듯 남자가 화를 낸다
나는 분노를 표현하는 법을 배우지 못했다
이것은 예술이 아니다
나는 창문을 찾아내 열고야 만다
예수를 만나면 예수를 죽여라
창문이 없다
창문을 연다
—
* 레비나스.
물주름
우리는 합정동 까페에 마주 앉아 있다
너는 연필을 쥐고 몇개의 선으로 나를 그린다
무언가를 쥐는 방식이 어떻게 운명이 되는지 믿지 않지만 우리가 우리를 놓치거나 잡는다면
물 한방울이 떨어진다
향유고래 영어 이름이 슬퍼 인간이 뭘까, 그런 생각을 해 유자차의 유자를 씹으며 네가 말한다 번져오는 번져오는 유자 향이 좋다는 생각을 하자 건너편의 청소부가 쓰레기를 트럭에서 다른 트럭으로 옮긴다
오래전 인간은 향유고래의 내장을 꺼내 향을 얻었다 머리를 갈라 기름을 얻었다
비가 내릴 것 같다
쓰레기가 보이지 않는 곳으로 사라진다
우리는 우리에게 기대어 걷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