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과비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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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현우 崔賢禹

1989년 서울 출생. 2014년 조선일보로 등단.

시집 『사람은 왜 만질 수 없는 날씨를 살게 되나요』 등이 있음.

chw0832@daum.net

 

 

 

서른

 

 

불타오르는 사람에게 물었다

당신이 어떻게 숲을 지날 수 있었는지

 

발자국마다 새카맣게 길을 들키고

손 닿는 것 전부 망가지지 않았습니까

도망치지 않았습니까

누군가와 자식을 낳고 온화한 레트리버 한마리를 기르며

흔들의자가 놓인 마당과 처마가 높은 목조건물에서

요리를 할 땐 음식이 너무 익어버리지 않았습니까

어떻게 오셨습니까

오면서 다치거나 다치게 만든 사람은 없었습니까

덕분에 견고한 비밀을 감당하지 않았습니까

그마저도 태웠습니까

남은 것은 무엇이고 남지 않은 것은 무엇입니까

 

그는 말없이 창밖의 낙조를 바라보았다

하늘이 태양을 닫고 있었다

다 식은 커피잔을 쥐면 금방 김이 올랐다

 

불이 붙은 채로

사랑할 수 있었습니까

 

그는 자그맣게 숨을 쉬고 있었다

최소한으로 살겠다는 듯이

 

받아들였습니까

바다로 들어가 전부 재가 되어보지 않았습니까

살아도 괜찮은 건지 물어보았습니까

떠나는 사람들에게 악수라도 할 수 있었습니까

당신이 울면

눈물 대신 증기가 피어오릅니까

 

한마디도 하지 않던 그가 자리를 일어나며 말했다

 

누군가와 마주 서야 할 때

바람을 등지고 서지 마세요

모든 풍향으로부터

숨겨달라고 하세요

 

그는 나의 늑골을 열고 사라졌다

 

지켜달라고 하세요

그렇게 하세요

 

먼 숲이 초록을 반복하며

새떼를 쥐었다가 펴고 있었다

 

용서하고 있었다

 

 

백혈구가 필요합니다

 

 

원심분리기 속에서 회전하는 피를 본 적이 있다

 

사람을 흙과 물로 만든 자가 있다

 

몸이 고속으로 두근거린다면

전생의 증오 같은 걸 축출할 수도 있을 것

 

사람은 결단코 투명하지도

얇게 부스러지지도 않지만

약봉지처럼 찢고 털어먹는 선천적인 자여

 

가령 오늘, 이런 말들

 

“어머니를 살려주세요

백혈구가 필요합니다”

 

사람의 머리통을 앗아가서

메밀 베개처럼 수확하는 자에게로 가

모든 피를 뽑아 오고 싶다

 

그의 혈액형은 모두에게 알맞을 테니까

전부 주고 싶다

 

죄인들의 무도회

열두시가 되면 허겁지겁 구두를 벗고

춤이 아닌 곳으로 모두 뛰쳐나가겠지만

 

팔목 깊은 곳까지

빼곡하게 박혀 따라오는

손톱자국

 

풍선으로 만든 천국

 

거기서 태어나지 않은 사람 손바닥에

손금을 적어놓고 싶다

 

시간이 신의 둔기라는 것

 

바늘이 있어도 줄 수 없는 피를 만들었다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