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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이대흠 李戴欠
1967년 전남 장흥 출생. 1994년 『창작과비평』으로 등단.
시집 『눈물 속에는 고래가 산다』 『상처가 나를 살린다』 『물 속의 불』 『귀가 서럽다』 『당신은 북천에서 온 사람』 등이 있음.
e-siin@hanmail.net
어떤 예방
예방접종을 맞으러 왔다가 91세 할머니 두분이 만났습니다
자네를 여그서 봉께 차말로 반갑네
보고 잪어서 한번 갈라고 맘묵어도 그것이 안 되드란 말이시
징하게 좋게 지냈는디 여그서 보네 소식은 들었네만 봉께는 눈물이 나네
서로의 이승을 조심스럽게 찾아온 예방(禮訪)은
미리 허리가 구부러져 있습니다
손이 왜 이라고 차당가
수술한 디는 인자 괜찮항가
할머니들의 대화에서는 화자와 청자가 지워졌습니다
서로의 가슴속에 든 말이 같아서 입을 연 사람이나 귀를 연 사람의 구분이 없습니다 귀로 말하고 입으로 듣는지도 모릅니다
한 마을에서 70년을 이웃하고 살았답니다 이 집 밥그릇이 저 집으로 넘어가 저 집 새끼를 이 집에서 키웠으니 이 집과 저 집 사이의 담장은 퍽이나 낮았겠습니다 그중 한분이 자식들 따라 읍내로 이사하는 바람에 못 보고 지낸 지가 삼년이 되었습니다 읍내까지의 십리는 지팡이가 다니기에는 너무 먼 거리입니다
울컥 솟는 눈물이 무엇 때문인지는 몰라도 두 사람의 눈시울이 붉어졌습니다
이라다 볼때기가 딸기 되겄네이 자네가 딸기를 참 좋아하긴 했는디……
나 몬야 갈라네 또 언제 볼랑가 몰르제만 건강하니 잘 지내소
인자 저승에서나 만날랑가 몰겄네이잉
먼저 일어나 걸음을 옮기지만
몸도 마음도 묶인 듯 동무를 향해 있습니다
아주 오래된 우정이 마른 나뭇가지 같은 서로를 위로합니다
흐느낌이 소멸로 가고 있어서 다행입니다
흐느낌이 소멸로 가는 길에 놓여 있지 않았다면 공포였을 것입니다 그것은 떨어진 빗방울이 처마 밑을 궁금해하다가 미끄러질 때의 아쉬움 같은 것
그 골목의 특산품은 빙판이었습니다
휘어진 길모퉁이 녹슬고 있는 철문처럼 그녀는
소리를 내었습니다 그 여자는 날마다 울었을지 모르지만
나는 그날 밤에 그 흐느낌을 발견했습니다
그건 마치 오래된 대밭을 뒤집었을 때 나오는
치약 껍질 병조각 기왓장 때 묻고 찢어진 비닐 조각
지금은 생산되지 않는 과자봉지 들 사이에 낀
화장품 병 같은 것이었습니다
흐느낌이 물질이란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가난해지기 위해 자기의 과거에
어쩔 수 없었다를 갖다 붙이는 사람의 미래처럼
캄캄한 창 앞에 무릎을 꿇지 않으려 안간힘을 쓰는
터지기 직전의 폭탄처럼 차가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