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과비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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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철문 張喆文

1966년 전북 장수 출생. 1994년 『창작과비평』으로 등단.

시집 『바람의 서쪽』 『산벚나무의 저녁』 『무릎 위의 자작나무』 『비유의 바깥』 등이 있음.

damsan@daum.net

 

 

 

식당 칸은 없다

 

 

맛은 일어나고 사라진다

어머니가 돌아가신 것처럼

맛은 사라진다

김밥이 입으로 들어가서 차곡차곡 사라지는 것처럼

달다는 감각과

달다는 것을 아는 지각은 각기 일어나고 사라진다

지나간 사랑이 다시 오지 않는 것처럼

짜다는 것은 단무지 속에 있지 않다

혀 속에 있지 않다

기차의 첫째 칸과 둘째 칸과 셋째 칸이 서로 같지 않은 것처럼

첫째 맛과 둘째 맛과 셋째 맛이 각기 일어나고 사라져서 다시 오지 않는다

아버지가 가시고 다시 오지 않는 것처럼

맛은 없다

단무지와 혀 사이에서 일어나서 사라졌다

어디서 오지 않았다

어디로 가지 않았다

한번 일어나서 사라진 턱의 악력의 감각은

다시 오지 않는다

형이 다시 오지 않는 것처럼

형의 작년 제사가 올해 다시 돌아오는 것이 아닌 것처럼

비 온 뒤의 섬진강과 비 올 때의 섬진강과 비 오기 전의 섬진강이 다른 것처럼

통로에서 내어 딛는 걸음은 사라지고

다시 태어난다

들었다 놓은 왼발 걸음이 다시 오지 않는 것처럼

들었다 놓은 오른발 걸음이 다시 오지 않는 것처럼

첫 걸음과 다음 걸음과 그다음 걸음이

터널로 들어가는 기차처럼

사라진다

맛은 지나갔다

한번 일어난 맛은 다시 일어나지 않는다

다시 사라지지 않는다

여러 칸을 건너왔다

셋째 칸에서 일어나서 일곱째 칸의 지인을 만나러 왔다

 

KTX는 달리고, 식당 칸은 사라졌다

 

 

 

용이 알을 품을 때

별기(別記)

 

 

용은 똬리를 틀지 않는다. 뱀의 일족이 아닌 까닭이다. 가죽이 두꺼운데다 딱딱하고 빛나는 비늘이 서걱거려 몸을 감을 수 없다.

용이 알을 품을 때는 앞발로 감싸고, 어깨로부터 날개로 덮어서 눈으로는 볼 수 없다. 구름 속에 길게 엎드린 채 가슴에 알을 품느라고 윗몸을 일으키기 때문에 멀리서 보면 신선이 앉아 있는 것 같다.

알과는 체온으로 교감하는데 가슴과 두 발로 안고서 알의 체온을 매순간 알아차리는 것을 잊지 않는다. 그를 통해 자기가 호흡을 일으키고 꺼뜨리는 것과 알의 박동이 함께 일어나고 꺼지는 것을 안다. 가까이서 보면 미소 짓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데, 알의 체온과 어미의 그것이 매순간 함께 가는 것이 얼굴에 그렇게 나타난다.

이때 용은 생각하는 것도 아니고 생각하지 않는 것도 아닌데, 알이 순간 식거나 뜨거울 때 순간 체온을 높이고 순간 낮추기 때문에 생각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알을 품는 동안에는 먹는 일도 없고 짝짓는 일도 없기 때문에 마음이 일어나도 엷은 첫눈이 우물에 일으키는 파동처럼 피었다가는 곧 스러진다.

윗몸은 일으키고 아랫몸은 길게 늘인 채 잠든 듯 깨어서 알의 체온을 타고 들어가 그것의 호흡과 함께 노닌다. 알냇짓1을 할 때는 눈으로 들여다보듯이 빙그레 웃기도 하고, 알 수 없는 상처에 뒤척일 때 그것을 알아차림으로써 쓰다듬어준다. 용은 안다. 귓전에서 터진 천둥에 한쪽 귀를 잃은 제 젊은 날과 몸을 감추고 한 하늘눈2을 처음 날았을 때의 제 짝의 우쭐함이 거기 있으며, 혜성의 꼬리에 옆구리가 먹힌 먼 조상의 마지막 숨이 알 속에서 웅크려 떤다는 것을. 어둡고 주름진 알 속에서 함께 풀리고 환해지고 가벼워지면서 용은 순간의 생과 지나간 생과 다가올 생을, 한 생과 여러 생을 알과 함께 유영하고 뒤척이는 것이다.

삼칠일을 한순간도 거르지 않고 그 일을 계속할 수 있으니 비록 짐승이지만 가히 신출과 귀몰의 용맹과 자애를 함께 갖추었다 할 만하다.

 

 

  1. 포유류가 배냇짓을 하듯이 난생류는 알냇짓을 한다. 단, 배냇짓은 배 밖으로 나온 뒤에 하는 짓이지만, 알냇짓은 포유류의 태동과 같이 알 속에서 하는 짓을 말한다.
  2. 사람이 고개를 들어 하늘을 볼 때 한번에 볼 수 있는 하늘의 넓이, 또는 그 넓이의 이쪽 끝에서 저쪽 끝까지의 거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