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과비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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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단

 

한반도정세의 새 국면과 분단체제

 

 

백낙청 白樂晴

『창작과비평』 명예편집인, 서울대 명예교수. 저서 『서양의 개벽사상가 D. H. 로런스』 『근대의 이중과제와 한반도식 나라만들기』 『백낙청 회화록』 1~8권, 좌담집 『개벽사상과 종교공부』 등이 있음.

paiknc@snu.ac.kr

 

 

본고의 바탕이 된 한평아카데미 강연은 2024년 5월 9일 노무현시민센터에서 진행되었고 뒤이어 녹화동영상이 유튜브 ‘백낙청 TV’에 올랐다. 『창작과비평』 2024년 여름호 문장렬·이승환·정욱식 세분의 대화 「위기의 남북관계, 지속가능한 평화를 찾아서」는 그보다 앞서 4월 24일에 이뤄졌지만 간행은 5월 하순이었다. 따라서 두 논의가 서로 참조하며 생산적인 대화를 나눌 기회가 없었다. 세분의 좌담에서 배운 바를 내 강연에 참조할 수 있었으면 좋았을 것이고, 다른 한편 강연 내용에 대해 그분들의 검토와 논평을 받을 수 있었다면 큰 보람이었을 것이다. 남북관계의 위기를 염려하면서 지속가능한 평화를 찾으려는 뜻을 지닌 사람들 간의 대화와 토론이 절실히 필요하다고 믿기에, 강연 녹취록을 일부 축약하여 수록하면서 중간중간에 좌담 내용을 소개하고 더러 논평하고자 한다. 강연은 원래대로 구어체로, 추가된 각주와 고딕체로 시작되는 논평은 문어체로 정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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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평화포럼 측에서 지어준 강연 제목이 ‘분단체제극복과 한반도식 나라만들기’입니다. 그동안의 제 작업에서 중요한 키워드 두개를 뽑아주셔서 감사드립니다. ‘한반도식 나라만들기’라는 말은 제가 2021년에 출간한 책 『근대의 이중과제와 한반도식 나라만들기』(창비, 이하 ‘졸저’)의 제목의 일부이기도 합니다. 또 그 책을 내기 전부터 저 나름으로 천착해온 주제입니다. 하지만 오늘 강연에서는 한반도식 나라만들기의 경과라든가 현행 과제에 대해서는 길게 얘기하지 않고 이 개념에 대해 한두가지만 설명하고 넘어가겠습니다.1

‘한반도식’이라고 말한 것은 분단된 한국이나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그쪽에서 대한민국이라고 불러준다니까 우리도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줄여서 조선이라고 부르기로 하겠습니다—만의 나라만들기가 아니고, 우리 민족이 3·1운동 또 상해임시정부 세울 때부터 목표로 내세웠던 한반도 전역에 걸친 자주독립국가 만들기를 여전히 우리의 목표라 생각한다는 뜻입니다. 목표를 그렇게 정하고 보면 이 과제는 아직도 완수되지 못했지요. 지금도 미완의 과제이고 진행 중인 과제입니다.

3·1운동 때는 ‘대한독립’ 또는 ‘조선이 독립국’이라고 표현했지 ‘민주공화국’이라는 용어를 쓰진 않았어요. 하지만 목표가 민주공화국으로 암묵리에 정해져 있었고 상해임시정부에서 임시헌장을 만들면서 그걸 아주 명토박아버렸지요.2

또 하나의 키워드가 ‘분단체제’인데요. 사실 이 분단체제라는 용어는 제가 30년이 넘게 떠들어오다보니 상당히 유통이 되었어요. 그래서 이 말을 쓰는 사람은 많아졌는데 과연 얼마나 그 개념에 동의해서 쓰는지는 좀 의문입니다.

주변에서 그 단어를 사용하는 사례들을 보면 분단체제가 남한에만 있는 것으로, 남한의 반공냉전체제에 국한해서 쓰는 분들이 있고요. 반면에 남북에 걸친 분단체제를 생각하기는 하되 한반도의 남과 북만으로 완결된 체제라고 보는 분들도 있어요. 그런데 제가 늘 강조해온 것은 분단체제가 한반도 전체를 아우르고 있으면서 세계체제의 하나의 하위체제라는 점입니다. 즉 세계체제가 한반도를 중심으로 작동하는 국지적인 현상에 해당한다고 주장해온 것이지요. 또 어떤 분은 그저 분단을 얘기하는 데 체제라는 말이 들어가면 더 멋있게 들리니까 그렇게 쓰는 분들도 있는 것 같아요. 솔직히 말씀드리면 우리 한반도평화포럼에 훌륭한 학자와 연구자, 논객들이 많은데, 그분들 중 상당수는 분단‘체제’라는 개념에 별로 관심이 없으신 것 같아요.

그렇다고 그분들에게 왜 분단체제라는 말을 안 쓰느냐고, 제가 포럼의 공동 명예이사장이라고 해서 그렇게 얘기할 수 있는 건 아니잖아요(웃음). 학자들에게 나의 개념을 따라오라고 강요할 수도 없고요. 그러던 중 올해 초에 오랜만에 한반도평화포럼 월례토론회에 나갔는데, 새해 첫 토론회에 인사말을 해달라기에 처음으로 동료들을 상대로 이 문제를 제기했어요.

그동안 한반도평화포럼에서는 ‘통일은 과정이다’라는 명제를 강조해왔습니다. 통일이라는 게 어느날 갑자기 일회성으로 일어나는 사건이 아니라 오랫동안 점진적인 과정을 거치는 일인데 그 과정 자체가 사실상의 통일에 해당한다는 것을 임동원 장관님을 비롯해서 여러 선배·동학들이 강조했고 지금은 그런 인식이 우리 사회에 어느정도 자리를 잡았다고 봅니다. 그건 우리 한평포럼의 공적이라고 할 수 있죠.

그런데 제가 지난 1월 포럼에서 한 이야기는, 통일이 과정이라면 그게 오래 걸릴 뿐 아니라 그 과정이 분단을 극복해가는 과정이다, 그리고 그걸 제대로 해내려면 한반도의 분단이 보통 분단이 아니고 70년 넘게 정전체제가 지속되면서 분단이 일종의 체제로 변했다, 그래서 ‘통일은 과정이다’에 곁들여서 ‘분단은 체제다’라는 명제도 앞으로 보급해보십시다, 그렇게 제안을 했는데 몇달 안 돼서 그런지 괄목할 성과가 있는 것 같지는 않아요.

 

좌담 「위기의 남북관계, 지속가능한 평화를 찾아서」에서도 ‘분단체제’가 등장한 것은 윤석열정부에 의한 ‘분단체제 재공고화’ 시도를 비판하는 이남주를 언급한 이승환 시민평화포럼 대표의 발언이 유일했던 것으로 기억한다.3 참석자 모두가 이 개념에 냉담하다고 단정할 일은 아니지만, 분단체제론에 굳건히 바탕하지 않은 정세분석이나 대안제시는 미흡하게 마련이라는 것이 나의 지론이다. 이하 적절한 대목에 가서 조금 더 상세히 논할 생각이다.

 

 

분단은 체제다

 

제가 한평아카데미에서 강의를 한 것이 2018년이었습니다. 6년 전입니다만 지금 돌이켜보면 참 금석지감이 있지요. 흔한 말로 호시절이었습니다. 제가 강연한 때가 7월이었는데, 2018년에 평창올림픽으로부터 시작해서 남북간에 여러가지 뜻깊은 화해와 관계발전이 이루어졌지요. 그 정점을 찍은 것은 강의 이후 9월에 문재인 대통령이 평양을 방문해서 김정은 위원장과 정상회담을 또 하고, 백두산에 함께 오르고, 9·19군사합의라는 것도 만들어낸 일이었지요. 4월에는 판문점에서 제1차 남북정상회담을 해서 ‘4·27판문점선언’이 이미 나왔고 6월에 싱가포르에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김정은 조선민주주의 국무위원장이 북미간 역사상 최초의 정상회담을 했습니다. ‘싱가포르선언’이라는 매우 훌륭한 문서를 생산했지요. 그러고서 조금 곡절이 있긴 했습니다만 하여간 9월에 평양 방문까지 있었는데, 지금과는 너무나 다른 세월이었지요. 그 와중인 7월에 제가 했던 제5기 한평아카데미 강연의 제목이 ‘시민참여형 통일운동과 한반도 평화’였고 아까 말씀드린 졸저 11장으로 실려 있습니다.

그 2018년과 2024년 사이에, 너무나 딴 세상처럼 보이게 된 사이에 어떤 변화가 왜 일어났는지 우리가 규명하고 나아가야겠죠. 특히 규명을 할 때 남 탓만 하지 말고, 나 자신은 어떤 잘못을 했는지 살펴보고 또 잘한 점은 잘했다고 설명하는 그런 작업이 꼭 필요하다고 봅니다. 오늘 기회가 생긴 김에 그런 얘기를 좀 해보려고 합니다.

제가 2018년 7월 현재로 남북관계 개선이 ‘거의 불가역적인’ 과정에 들어섰다, 이렇게 큰소리를 쳤더랬습니다. 물론 ‘가설’이라는 단서를 달았고 또 ‘거의’라고 도망갈 구멍을 하나 만들어놓긴 했습니다만 지금 생각하면 상당히 경솔한 발언이었고 지나친 낙관이었습니다. 물론 저뿐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이듬해 하노이에서 트럼프 대통령과 김정은 위원장이 다시 만났을 때 회담이 결렬되는 참사가 일어날 줄은 몰랐습니다. 미국 측에서는 회담을 참사로 몰고 가려는 세력이 꽤 있었기 때문에 그 사람들은 어느정도 예견하고 또 소망했겠지요. 그러나 김정은 위원장은 예상을 못했던 것 같고, 또 미국을 잘 아는 게 남한이라면서 이런저런 정보도 주고 하던 문재인정부도 하노이에서 그렇게 결렬될 줄은 몰랐던 걸로 압니다.

따라서 2019년에 이런 반전이 일어날 걸 몰랐던 게 저만의 잘못은 아닙니다만, 저는 반성해야 할 특별한 이유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앞서 남들이 분단체제의 개념을 별로 이해하고 공감해주지들 않는다고 불만을 토로했는데, 정작 분단체제론을 제기한 나 자신부터 분단체제라는 게 얼마나 해소하기 어려운 체제이고 해소가 안 되는 한은 언제든지 반전의 가능성이 있음을 충분히 감안하지 못하고 섣부른 낙관론을 펼쳤던 거죠. 저로서는 반성하지 않을 수 없는 일입니다.

이 세상에는 분단된 국가의 수가 많지도 않고 그 분단이 한반도에서처럼 체제로까지 굳어진 사례는 없다고 봅니다. 그런데 분단체제뿐 아니라 어느 사회체제든 그게 한번 체제로 굳어지면 쉽게 해소되지 않고 자기재생산 능력을 가집니다. 그러니까 체제지요. 또 하나의 특징은, 그냥 ‘분단현실’이면 우리가 분단 자체만 들여다보고도 대충 어떤 현실인지 알 수가 있는데 이게 체제가 되면 사회 전체의 온갖 요소들과 온갖 방식으로 결합하게 됩니다. 그래서 그 체제를 해소하려고 할 때 전선(戰線)이 꼭 남북관계만이 아니라 여기저기에 걸쳐 있어요. 그래서 그것을 종합적으로 보고 체계적으로 분석하지 않으면 제대로 된 대응책도 안 나오게 마련입니다.

또 하나 말씀드린다면 체제가 아무리 나쁜 체제라도 좋은 면이 전혀 없으면 유지가 안 됩니다. 자기재생산력을 가졌다는 건 일정한 생명력을 갖는다는 얘기고, 그 생명력이란 그 체제 나름으로 주민들에게 뭔가 이득을 주기도 하기 때문에 그렇게 되는 거지요. 물론 우리는 분단 때문에 고통받아왔고 원래 우리 국민이 가졌던 통일에 대한 염원을 배신한 그런 현실이지만, 이게 체제로 굳어진 계기는 한국전쟁이라고 봐요. 그래서 저는 ‘분단시대’하고 ‘분단체제의 시대’를 구별합니다.

분단시대라 하면, 1945년에 우리가 일제로부터 해방됨과 동시에 38선이 그어지고 국토가 분단되었잖아요. 그때부터가 분단시대인 거죠. 이게 분단체제로 굳어지는 것은 전쟁을 겪고 나서, 어느 한쪽의 완전한 승리로 끝나지 않고 평화체제로 가지도 못한 채 정전상태로 굳어져서 70년이 넘게 흐르다보니까 하나의 체제가 돼버린 거예요. 이것이 남북을 막론하고 우리 민중에게 막대한 고통을 안겨주고 양쪽에서 다 민주주의를 제약하고 또 자주성을 제한하고 있어요. 이런 폐단이 있지만 전쟁을 겪은 민중의 입장에서 보면 그래도 전쟁을 또 치르는 것보다는 이렇게 분단되어 사는 게 낫다는 실감을 하게 된 겁니다. 실제로 그사이에 크고 작은 충돌이 있었지만 한국전쟁 같은 전쟁은 다시 없었죠. 그런 점에서는 분단체제가 전쟁재발보다는 훌륭한 겁니다. 그러니까 그 정도의 민중적 지지랄까 공감이 토대가 돼서 그걸 기반으로 온갖 폐단들이 뿌리내리게 됐던 거죠.

그래서 저는 2018년의 시점에서 분단체제가 거의 돌이킬 수 없는 해소 과정에 들어섰다고 공언한 점, 분단체제론을 제기해놓고 그것에 충실하지 못했다는 점은 반성하지만, 분단체제론 자체는 여전히 중요하고 더 탐구할 필요가 있다고 봅니다.

분단체제를 해소하기 위해 이제까지 한국에서 취해온 정책을 ‘포용정책 1.0’이라고 한다면—그때는 우리 정부가 남북관계에 대해서 ‘포용정책’이라는 말을 썼습니다—앞으로는 ‘포용정책 2.0’으로 가야 한다는 주장을 「‘포용정책 2.0’을 향하여」라는 글에서 했습니다. 그게 2012년이었고, 『2013년체제 만들기』(창비)라는 제 책에 수록돼 있습니다. ‘포용정책’이라는 말은 지금은 당연히 폐기될 수밖에 없어요. 북에서는 처음부터 그 말을 아주 불쾌하게 생각했어요. 너희가 뭔데 우리를 포용하고 말고 하느냐. 지금은 포용을 거부하는 정도가 아니라 자기들이 남한을 포옹하려고—저기선 ‘포옹’이라는 말을 씁니다—그동안 온갖 노력을 했지만 ‘대한민국것들’하고는 도저히 더는 안 되겠다며 국가와 국가의 관계로 바꾸고 국가간 관계도 적대적인 국가, 주적(主敵)과의 관계라고 김정은 위원장이 금년 들어서 명시했죠.4

그런데 제가 ‘포용정책 2.0’이 ‘1.0’하고 뭐가 다른지를 말하면서, 하나는 기존의 정책도 일종의 남북간 국가연합으로 가는 길을 추구해왔지만 ‘2.0’이 되려면 분명한 설계와 목적의식을 가지고 남북연합 건설을 추진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포용정책 2.0’은 철저한 시민참여형 통일과정이 돼야 한다, 그 두가지를 주장했는데 지금 생각해도 그 주장 자체는 포기할 필요가 없다고 봅니다. 거듭 밝히지만 ‘포용’정책이라는 말은 이제는 더 쓸 필요가 없고 또 제가 제시한 두가지 모두 현재 심각한 난관에 부닥쳐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만 목표 자체는 정당한 것이다 이렇게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조선의 노선전환과 이후의 남북관계

 

그러면 오늘의 상황과 우리의 대응태세에 대해서 좀더 자세히 말씀드리겠습니다.

오늘의 상황을 일별하면 국내 상황과 한반도정세뿐 아니라 세계정세, 동아시아 지역상황도 크게 달라져 있습니다. 특히 조선은 비핵화를 포함하는 미국과의 화해 노력을 확고히 청산하고 남북관계도 국가 대 국가, 그것도 교전국이자 적대국 관계로 전환을 선언했으며 각종 민족통일 관련 기구를 해산하는 등 구체적 조치들을 취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지금 국가 대 국가 관계라고 저쪽에서 선언하니까 이거 큰일 났구나, 저들이 통일 안 하고 국가 대 국가로 가자고 그러는구나 하고 놀라시는 분들도 있는 것 같아요. 또 통일운동에 별로 적극적이지 않던 분들이 통일이나 분단극복 작업을 하던 이들을 향해 조롱하는 투로 말하지요. 당신들 그렇게 민족통일 좋아하더니 북에서 안 하겠다고 그러지 않느냐, 국가 대 국가로 가겠다고 그러지 않느냐, 이렇게 말하는 분들도 있는데, 국가 대 국가 관계는 국가연합을 만들기 위한 대전제입니다. 국가연합이라는 게 국가와 국가의 연합 아니겠어요?

그리고 이것은 우리 대한민국 정부가 진작 내놓은 통일방안이에요. 1989년 노태우 대통령이 한민족공동체통일방안이라는 걸 발표했죠. 평화공존으로 시작해서 남북간의 국가연합으로 갔다가 그다음에 완전 통일로 간다, 이런 단계적 통일방안이었습니다. 이 자체도 의미있는 사건이긴 했지만 큰 성과를 못 본 이유가, 첫째는 후에 나온 남북기본합의서(1992)와 달리 북하고 만나서 의논해서 내놓은 안이 아닙니다. 또 하나는 그전에 북에서는 연방제를, 즉 ‘고려민주주의연방’ 안을 제시했는데 이걸 안 하겠다는, 북에서 볼 때는 매우 불순한 의도가 포함돼 있었던 거죠. 왜냐하면 평화공존으로 시작하는 거야 누구나 찬성할 만한 일이고, 그게 국가연합의 단계로 갔으면 그다음에는 곧바로 완전 통일이 아니라 연방제를 거쳐서 간다고 해야 하는데, 연방제를 쏙 빼고 완전 통일로 간다고 하니까 현실적인 방안으로도 의심스럽지만 북에서 볼 때는 아, 이건 우리가 고려연방제 하자 그랬더니 그거 안 하겠다는 수작이로구나 이렇게 받아들이게 된 거죠.

그러다가 1991년 9월에 드디어 남북이 유엔에 동시 가입을 하게 됩니다. 유엔에 동시 가입했다는 것은 서로간에 국가임을 인정하고 국제무대에서 두 국가로 활동하겠다는 뜻 아니겠어요? 다만 남북기본합의서에는 “쌍방사이의 관계가 나라와 나라사이의 관계가 아닌 통일을 지향하는 과정에서 잠정적으로 형성되는 특수관계”라고 규정을 했어요. 그런데 그것이 유엔 가입 이전이 아니라 가입한 이후에 나온 선언이기 때문에, 국가 대 국가 관계가 국제적으로도 인정받고 남북 모두가 그걸 외교정책으로 승인한 다음의 일이에요. 그런 전제 위에서 우리가 그렇다고 영영 남남으로 살겠다는 건 아니고 통일을 지향하는 과정에서 잠정적으로 형성된 특수관계라고 말한 거니까, 그때 이미 국가 대 국가를 전제하고 국가연합 비슷한 것을 추진하는 쪽으로 방향을 잡았던 거지요.

금년 1월에 북에서 최고인민회의가 열렸는데 거기서 김정은 위원장이 시정연설을 했지요. 우리 신문에도 많이 보도됐습니다만 이제부터는 민족통일이고 그런 건 다 없고 대한민국하고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은 국가 대 국가의 관계로 간다라고 말했을 때 국가연합을 추구해온 입장에서는 오히려 환영할 면도 없지가 않습니다. 물론 교전국이다 적대국이다 이렇게 나오는 건 환영할 수 없지만 국가 대 국가 관계로 가겠다는 말은 국가연합으로 가는 대전제를 공식적으로 승인한 셈이거든요. 그런데 그때 많은 사람들이 놀라면서, 진짜 놀랐는지 아니면 속으로는 좋아서 그랬는지, 이제 민족통일은 소용없고 국가 대 국가 관계로 간다더라 하고서 당황한 듯한 발언을 했는데, 뒤집어 생각하면 그것은 그분들이 국가연합 구상에 대해 얼마나 무심하게 지내왔는지를 보여주는 것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좌담 참석자들도 국가 대 국가 관계가 반드시 나쁜 건 아니라는 점에 대체로 동의하고 있는 듯하다.

“우리 통일정책은 김대중정부 이후 남북연합-연방제-통일국가라는 3단계 통일론을 견지하고 있고, 사실 남북연합 단계까지는 두개의 국가를 인정하는 차원이기에 두 국가론으로 인해 우리의 통일정책이 크게 흔들릴 부분은 없다고 보여요.”(문장렬, 279면)

“적대적 관계를 완화하고 전쟁상태가 종식된다면 당연히 평화적 방식의 통일로 가는 것이고, 그런 조건이라면 남과 북 두 국가의 현실을 인정하는 것이 두 주권국가의 연합인 남북연합으로 발전해가는 길을 촉진할 수도 있습니다.”(이승환, 280면)

정욱식 평화네트워크 대표는 그동안 “남북한 특수관계론이 처참하게 실패했다”고 판단하면서, “특수관계론이든 두 국가론이든 핵심은 적대성을 완화하고 해결해가는 것”이라고 주장한다(278면). 이에 대해 이승환은 “두 국가론 수용의 핵심은 그게 분단국가주의로 가느냐 (…) 평화와 공존의 관계로 향하는 것인지”가 중요함을 역설하고, “현재의 정전체제, 최소한 한국전쟁의 종식과 관련해서 명확히 정리하지 않고 두 국가론을 단순 수용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지적한다(279면).

나 자신은 한걸음 더 나아가 분단체제론에 입각해서 제반 문제를 검토할 필요가 있다는 생각인데 이는 뒤에 다시 논하기로 한다.

 

조선의 노선전환과 관련해서 김정은 위원장이 한 연설을 직접 읽어보시는 게 중요할 것 같아요.

 

오늘 최고인민회의에서는 근 80년간의 북남관계사에 종지부를 찍고 조선반도에 병존하는 두개 국가를 인정한 기초우에서 우리 공화국의 대남정책을 새롭게 법화하였습니다.

당중앙위원회 2023년 12월전원회의에서도 엄숙히 천명된바와 같이 우리 당과 정부와 인민은 흘러온 력사의 장구한 기간 언제나 동족,동포라는 관점에서 대범한 포옹력과 꾸준한 인내력,성의있는 노력을 기울이며 대한민국것들과 조국통일의 대의를 허심탄회하게 론하기도 하였습니다.

그러나 쓰라린 북남관계사가 주는 최종결론은 《정권붕괴》와 《흡수통일》을 꿈꾸면서 우리 공화국과의 정면대결을 국책으로 하고있고 나날이 패악해지고 오만무례해지는 대결광증속에 동족의식이 거세된 대한민국족속들과는 민족중흥의 길,통일의 길을 함께 갈 수 없다는것입니다.

 

여러분이 좀더 연구하실 생각이면 전문을 구해 읽어보시길 바랍니다. 원자료를 자기 눈으로 보는 게 굉장히 중요해요. 우선 80년이라는 건 상당히 긴 기간인데 해방 이후 이제까지와는 전혀 다른 길로 들어가겠다고 했으니까 이 말에 놀라는 분들이 많으셨던 것도 무리는 아닙니다. 반면에 또 한가지 확인할 점은, 남북관계에 관한 대목이 전체 분량의 3분의 1도 안 됩니다. 주로 조선의 경제문제, 민생문제, 또 북으로서는 비교적 새롭게 제기하는 문제 같은데요, 지방과 도시의 격차 얘기가 많이 나옵니다. 그러다가 남북관계 대목에 가서 과격하다면 과격한 언사가 나오는데, 전체 맥락에서 이것이 차지하는 비중도 살펴보시고 이 대목을 허심탄회하게 분석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김정은 위원장의 관점에 문제가 없는 건 아니에요. “대한민국것들” “대한민국족속들” 이렇게 도매금으로 욕을 하고 있는데 우리 한반도평화포럼의 많은 분들은, 사실 그동안 정부나 소위 보수진영에서 흡수통일 이야기 나올 때마다 열심히 비판을 해왔지요. 그런 분들이 보면 억울하고 섭섭하기 짝이 없는 표현인데, 이것은 북의 사고방식하고 직결돼 있다고 봅니다. 북은 당과 인민 사이가 완전히 일치한다고 주장하죠. 현실이 꼭 그렇다고 장담은 못하겠습니다만 그것이 북측의 이념이에요. 그러나 대한민국은 현실이 안 그럴 뿐 아니라 정부와 국민이 완전히 일치한다고 말하면 다들 우습게 보겠죠. 요즘은 특히 그렇습니다. 그래서 이 정권이 하는 온갖, 김위원장 표현에 의하면 “패악”질, “오만무례”한 짓거리들은 우리 시민과는 관계없다고 생각하는데 북측은 일부러 그러는지 몰라서 그러는지, “대한민국족속들” “대한민국것들” 이렇게 뭉뚱그려서 말하고 있습니다.

“대결광증속에 동족의식이 거세된” 같은 표현을 우리 쪽 정권이나 당국자들에게 국한한다면 말이 안 되는 소리라고 하기는 어려워요. 또 “적대국이자 교전국”이라고 했는데, “교전국”이라는 말은 아직 휴전협정이 평화협정으로 바뀌지 않았으니까 엄밀한 의미에서 남과 북은 교전상태, 교전 중에 휴전을 하고 있는 상태죠. 또 적대관계라는 건, 사실 우리가 먼저 말했어요. 문재인정부 때는 없었는데 이 정권 들어와서 주적 규정을 국방백서에 넣었습니다. 2022년 국방백서에 “북한 정권과 북한군은 우리의 적임을” 명시했지요. 이쪽에서 먼저 그래놓고 저쪽에서 주적이라 했다고 해서 우리가 길길이 뛸 이유는 없을 것 같습니다.

동시에 우리가 생각해볼 점은, 우리가 흡수통일론을 비판해왔지만 그럼 흡수통일 아닌 어떤 통일을 어떻게 할 것인지 구체적인 경륜이나 설계를 가지고 남북관계 개선을 추구해왔느냐? 아까도 말씀드렸지만 국가연합이 단계적 통합의 중요한 과정이고 우선적으로 거쳐야 할 당면 과제인데, 여기에 별 관심 없는 사람들이 너무 많았어요. 그러니 당신들은 속도만 늦추자는 것이지 결국 흡수통일을 하자는 거 아니냐 이렇게 되묻는다면 답변이 궁색해질 수도 있지요.

그리고 또 하나는, 그동안 남북관계 개선을 추진하는 분들 가운데, 미국과 관계가 나아지고 남북관계도 좋아지면 결국은 북이 중국식 또는 베트남식 개혁개방으로 갈 것이다, 이런 전제를 하는 분들이 많았습니다. 그런데 저는 옛날부터 그건 안 될 거라는 말을 해왔어요. 『근대의 이중과제와 한반도식 나라만들기』 12장이 「어떤 남북연합을 만들 것인가」인데, 거기 332~33면에 북은 중국식이나 베트남식 개방으로 갈 수가 없다고 썼어요.

중국이나 베트남은 통일전쟁에서 승리하고 나서 개혁개방을 한 겁니다. 그런데 남한이 떡 버티고 있는 상황에서 북이 베트남식이든 중국식이든 그런 길로 간다? 저는 이건 처음부터 실현성이 없는 얘기라고 봤는데, 관심있는 분들은 앞서 말한 졸저 12장이나 그전에 나온 『어디가 중도며 어째서 변혁인가』(창비 2009)에 노무현 대통령이 김정일 위원장을 만나고 온 직후에 쓴 「2007 남북정상회담 이후의 시민참여형 통일」을 참고해주시면 고맙겠습니다.

그런데 국가 대 국가 관계가 적대적인 성격을 벗어나려면, 기본합의서의 상대방 체제 인정에서 새로 출발하고, 상대방의 국호도 불러줘야 하며, 특히 상대가 스스로 자랑스럽게 여기는 국가적 성취에 대한 이해 내지는 인정이 필요합니다. 서로 좋은 관계가 되려면 저쪽에서 자기가 뭐를 잘했다 하고 잘났다고 생각하는지를 알고, 거기에 100% 동조해줄 필요는 없지만 적어도 그런 자랑거리를 현실로서 인정은 해야지요.

대한민국이 자랑스럽게 여기는 거라면 여러가지가 있겠습니다만, 하나는 우리가 4·19 이래로 시민들이 들고 일어나서 막대한 희생을 치르면서 민주화를 진행해왔다는 겁니다. 또 하나는 흔히 말하는 경제발전인데요, 이것도 민중의 많은 희생이 있었고 훌륭한 기업인과 여러 사람들의 노력이 합쳐져 지금 경제적으로는 대한민국의 위상이 세계에서 굉장히 올라가 있지 않습니까? 북에서도 이걸 인정하는 게 필요하다고 봐요. 반면에 우리의 최대 약점이라면 군사주권이 없다는 거죠. 그렇다고 군사주권도 없이 미국의 식민지 노릇 하는 자들이 경제발전 좀 했다는 게 무슨 대수며 민주주의라는 것도 다 빈껍데기다, 이렇게 나오면 대화가 안 되지요.

그럼 조선이 가장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건 뭘까요? 제 추측입니다만 하나는 세계 최강국인 미국과 수십년간 맞장을 뜨면서 굶어 죽지도 무릎 꿇지도 않았다는 것, 그건 그들에게 굉장한 자랑거리예요. 우리도 같은 민족으로서 참 대견하다고 인정해줄 만한 면모인 것 같습니다. 최근에는 또 하나 그쪽에서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게 핵무력이에요. 온갖 제재와 압박을 견뎌내면서 미국도 감히 건드릴 수 없는 핵억지력을 갖게 됐다, 이렇게 자랑하고 있는데 핵이 좋으냐 나쁘냐를 떠나서 사실 쉬운 업적은 아니잖아요. 쉽지 않은 일을 해냈다는 사실만은 인정해줘야지요. 문제는 국제사회에서 북을 핵보유국으로 인정 안 하고 있는데 핵보유뿐 아니라 핵강국이 됐다고 자랑하는 걸 인정해주면 어떻게 되느냐 하는 딜레마가 발생합니다.

그런데 국제사회라는 게 굉장히 위선적이고 교활한 사회라서, ‘핵보유’와 ‘핵보유국’을 구별하는 궤변을 늘어놓고 있어요. 소위 NPT(핵확산금지조약)에 의해서 핵보유국으로 인정받는 나라들이 있고, 그밖에 인도나 파키스탄, 이스라엘에 대해서는 핵개발했다는 걸 다들 인정하면서도 ‘핵보유국’으로는 인정을 안 하는 묘한 입장을 취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도 이 궤변을 이용할 필요가 있어요. 북이 ‘공식적인 핵보유국’은 아니지만 핵무기를 만들었고 상당 수준에 이르렀다는 사실을 인정하면서 그걸 시발점으로 비핵화든 핵무력 감축이든 핵동결이든 추진하는 식으로 나아가자는 거지요. 핵보유했으니까 무조건 나쁜 놈이다 또는 아예 핵보유를 인정 안 하겠다, 이렇게 간다면 앞으로 한반도 비핵화의 꿈은 영영 달성되기 어렵다고 생각합니다.

그다음으로, 아까 분단체제 인식을 얘기했는데 이 분단체제에 대해 조금 더 새롭게 인식할 때가 되지 않았나 하는 것입니다. 한국의 통일운동가 중에는 분단체제라는 용어를 남한에만 적용하는 경향도 없지 않은데, 이 개념은 처음부터 한반도의 남북이 각기 다른 방식으로지만 매우 특이한 범한반도적 체제에 참여하고 있으며, 따라서 평양정권도 분단체제의 일익으로서 체제 내에서의 자기 생존을 추구하고 이를 위협하는 온갖 변화를 경계하는 것이 당연하다는 결론이 나옵니다.

이것은 한편으로는 북이 무조건 나쁘다 악마다 하는 극단적인 입장과, 다른 한편으로 북이 취하는 정책은 미국이 저렇게 압박을 해대니 어쩔 수 없는 것이라고 무조건 옹호하는 입장 사이에 중간쯤 됩니다. 어느 극단도 아니고 단순논리도 아니면서 문제를 실사구시적으로 보는 관점이지요.

6·15공동선언 제2항에서 “남측의 연합제 안과 북측의 낮은 단계의 연방제 안이 서로 공통성이 있다고 인정하고 앞으로 이 방향에서 통일을 지향시켜나가기로 하였다”라고 했지요. 좀 애매하게 표현되긴 했습니다만 남북 수뇌가 만나서 처음으로 통일방안에 합의했다는 것이 큰 의미가 있고, 이런 합의가 있었기 때문에 공동선언 이후로는 남북교류가 무척 활발해졌어요. 그전에 남쪽에서는 ‘가능한 교류부터 하자’, 북측에서는 ‘아니, 근본 문제를 해결 안 해놓고 지엽적인 문제만 가지고 하겠느냐’ 이러고 서로 버텼는데, 공동선언에서 근본 문제에 대해 원칙적인 합의를 보았기 때문에 개성공단과 금강산 관광을 비롯해 여러가지가 가능해졌지요. 그러나 그후로 남측 당국이 제2항을 더 구체화하는 데 큰 성의를 안 보였고 그 점은 북도 마찬가지였다고 봅니다.

공동선언의 제1항이 “우리 민족끼리 서로 힘을 합쳐 자주적으로 해결해 나가기로 하였다”라고 했지만, 이건 통일을 남이 시키는 대로 않겠다는 원칙의 선언이지 통일방안은 아니죠. 그런데 제2항에서 통일방안을 합의해놓고도 북은 계속 ‘우리 민족끼리 힘을 합쳐 자주통일을 하자’는 이야기만 되풀이해왔어요. 이것은 2항에 별로 관심이 없는 태도라고 저는 해석하는데, 한국보다 훨씬 심각한 생존위협에 시달려온 그들의 처지에서는 당연하다면 당연합니다. 그 대신에 북은 공동선언 1항을 강조해왔고, 그러다가 최근에 대미관계·남북관계가 극도로 악화되는 동시에 그에 맞서 생존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커지면서 아예 민족통일이라는 목표 자체를 제거하기로 전환한 형국입니다.

그런데 북의 현재 입장을 보면, 민족통일을 80년간 추구해왔지만 이제 아예 접었다고는 해도 그렇게 완전히 접었는지, 아니면 이제까지 자기들이 말해온 ‘우리 민족끼리 힘을 합쳐 자주통일을 하자’ 이것이 현실적인 가망이 없다고 판단하고 언젠가 2항에 포함돼 있는 국가연합, 국가 대 국가의 관계를 기본으로 적대관계가 아닌 다른 관계를 추구하는 쪽으로 가게 될지? 저는 그게 불가피하다고 봐요. 왜냐하면 북이 지금 상태로 미국의 침공을 막아낸다든가 굶어 죽지 않고 손들고 나오지 않을 역량은 확보했지만 김정은 위원장이 늘 강조하는 인민이 잘사는 나라라든가 사회주의 강국을 건설하려면 대미관계도 개선해야 되고 남북관계도 언젠가는 개선해야 되기 때문에 이걸 완전히 배제할 수는 없다는 게 제 생각이에요. 어쨌든 지금 국가 대 국가 관계가 적대국가의 관계로 영구히 갈지 아니면 관계의 개선을 또다시 추구하는 시기가 올지는 지켜볼 일이죠. 저는 영구적인 적대관계는 첫째 북으로서도 감당하기가 어렵고, 남쪽의 경우는 그런 적대관계를 오히려 즐기던 정권에 대해 최근 4·10총선에서 국민들의 심판이 있었기 때문에 상황은 매우 가변적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이 대목에서 분단체제론의 시각을 좀더 구체적으로 개진해도 좋겠다. 분단체제는 민족주의적 통일과도 거리가 있지만 본질적으로 한반도 주민들의 생활상 이익에 반하는 반민주적·비자주적 체제이므로 남북을 막론하고 민중의 삶을 획기적으로 개선하기 위해서는 극복해야 하는 현실이다. 동시에 앞서 지적했듯이 그것이 일단 ‘체제’를 이룬 이상 쉽게 극복될 수 없는 현실이며, 어떤 불퇴전의 계기를 통과하기 전에는 해소를 향한 진행이 언제든지 멈추거나 뒷걸음질할 수 있는 현실인 것이다. 좌담에서 그간의 ‘특수관계론’이 ‘두 국가론’으로 전환했다는 주장도 나왔고 그러한 전환이 ‘분단국가주의’ 곧 분단을 전제한 남북 각기의 국가주의로 갈 가능성을 경계하는 발언도 있었다. 먼저 사실관계 차원에서, 남북기본합의서의 ‘특수관계론’은 남북의 유엔 동시 가입으로 국제사회에서 두 국가로 인정받고 양해한 이후에 분단국가주의를 반대하는 차원에서 합의된 특수관계론이었다. 게다가 6·15공동선언 제2항의 합의와 그에 따른 남북관계의 획기적 발전으로 분단국가주의는 양쪽에서 모두 완화되었다.

최근 조선이 발표한 새 입장은 분단국가주의를 채택한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러나 이것도 완전히 새로운 것은 아니다. 실은 ‘우리민족끼리 힘을 합쳐 자주통일’을 외쳐온 북의 노선 자체가 분단국가주의적 성격을 다분히 띠고 있었다. 곧, 오로지 자주통일을 반대하는 미 제국주의와 남조선의 친미사대주의자들 때문에 통일이 안 되고 민중생활의 개선이 가로막혀 있다는 일종의 분단국 통치이데올로기였던 것이다.

지금 남북에 걸쳐 위세를 떨치고 있는 (각기 다른 형태의) 분단국가주의가 장기적인 평화공존을 달성할 수 있으리라는 것은 분단체제론의 시각에서는 수용하기 힘들다. 이미 말기국면의 대혼란기에 접어든 세계체제의 국지적 현실이 한반도 분단체제임을 감안한다면 더욱이나 그렇다. 이제야말로 두 국가론이 오래전에 나온 것이며 낮은 단계의 국가연합조차 ‘1단계 통일’에 해당할 수 있다는 인식을 갖고5 한반도의 ‘점진적이고 단계적이며 창의적인 재통합’ 노력에 골몰할 때가 아닐까.

 

 

시민참여형 통일은 여전히 유효하다

 

이제 시민참여형 통일이라는 개념으로 돌아가보겠습니다. 김정은 위원장이 국가 대 국가 관계를 선언함과 동시에 남북간 온갖 교류 기구와 장치를 폐기한 마당에 시민참여 통일이 무슨 잠꼬대 같은 얘기냐고 반박할 분도 계실 겁니다. 저는 2018년 한평아카데미 강연에서 “시민참여 중에서 최근 역사에서 가장 중요한 행위는 남북관계 발전을 저해하는 정권을 시민들이 들고일어나 쫓아낸 겁니다. 이거야말로 시민참여형 통일운동의 획기적인 사건이었죠”(졸저 284~85면)라고 말했습니다. 한국의 시민들이 최근에 총선을 통해 다시금 그런 움직임에 시동을 걸었다면 그 파급효과를 쉽게 예단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2차대전 이후에 이데올로기적으로 분열됐다가 통일된 경우가 셋인데 베트남, 예멘 그리고 독일입니다. 그중 시민참여가 거의 전무해서 최악의 사례가 된 것이 예멘입니다. 양쪽 당국자들의 야합이랄까 담합으로 한 통일이었던 것이 큰 이유 중 하나라고 봅니다. 베트남의 경우는 광범한 민중참여가 있었지만 우리가 말하는 시민참여는 아니었고 무력통일이고 전쟁이었죠. 그렇게라도 통일해서 개혁·개방을 한 성공적인 사례지만 우리가 모범으로 삼을 수 있는 본보기는 아니지요.

독일의 경우는 우리가 흔히 흡수통일의 예로 보는데, 일회성 통일이 되었지만 거기까지 가는 동안 상당히 긴 과정이 있었고, 서독 주민들은 서독 주민대로, 또 막판에는 동독 주민들이 봉기하는 등 왕성한 시민참여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나마 그 정도의 통일이 가능했는데, 2018년의 강의에서 저는 독일 통일에 대해 이렇게 말했습니다. “현실에서 독일 통일은 그냥 또 하나의 강국을 낳은 것이지 새로운 모범국가가 탄생한 건 아니거든요.”(졸저 286면) 그러니까 시민참여형 통일을 했더라면 독일이 세계적으로 훨씬 모범이 되는 국가가 됐을 텐데 못한 것이 아쉽다는 말인데, 괜히 쓸데없는 욕심을 낸다고 생각했을 분도 계시겠지만 지금 독일을 보세요.

지금 독일은, 유럽에서는 제일 부강한 나라지만 미국과의 격차가 엄청 벌어지고, 게다가 유럽 전체가 점점 낙후돼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경제적으로도 그렇지만 최근에 이스라엘이 가자지구를 침공해서 대량학살을 벌이고 있잖아요. 영어로는 제노사이드(genocide)인데 그런 이스라엘을 미국은 물론이고 독일, 프랑스 모두 적극 지원, 지지하고 있습니다. 독일은 특히 자기들이 저지른 유대인 학살을 반성하는 나라임을 명분으로 이스라엘이 하는 일은 무조건 옳다는 식으로 지지해요. 유대인이 팔레스타인 땅을 차지했을 뿐 아니라 이제는 거기 주민들을 나치 독일이 유대인을 대량학살했듯이 마구 죽이고 있는데 이 사태를 지지함으로써 독일이 모범국가하고는 너무나 다른 나라가 돼 있음을 스스로 입증했다고 봅니다. 그래서 시민참여형 통일이 안 돼서 무슨 좋은 꼴을 봤느냐고 했던 저의 질문6은 여전히 유효하고, 그나마 그중에서 제일 나은 통일을 했다는 독일도 세월이 갈수록 통일을 그렇게밖에 못한 후과가 드러나고 있습니다.

 

좌담에서 시민참여로 오늘의 난국에 돌파구가 마련될 가능성을 조심스럽게나마 거론한 것은 이승환이다. “결국 변화는 앞으로 3년 후 혹은 더 앞당겨질 수도 있는 새 정부의 과제”(284면)임을 살짝 언급했다가, 마무리 발언에서 “윤정부의 정책전환을 기대하기보다 하루라도 빨리 국정운영체제를 바꾸는 것 역시 중요”(287면)하다고 한걸음 더 나간다. 문장렬 역시 같은 생각을 내비친다. “지금까지 논의된 해법들이 입법부와 시민사회의 행동에 국한될 것을 전제로 했다면, 진보정부가 조기에 들어설 경우 행정부까지 가세하여 평화의 회복과 정착을 가속할 수 있겠죠.”(284면) 정욱식은 (견해가 아주 다르리라 믿지는 않지만), “우리 사회와 정치권에서 유사시 무력통일안 배제를 공론화”(285면)할 것을 강조하고 그럴 경우 “50만 대군을 더이상 유지할 필요가 없어지”고 “병역제도의 변화뿐 아니라 우리 사회의 심각한 문제로 거론되는 불평등, 젠더갈등, 저출생·고령화 문제에 대해서도 생산적인 논의의 계기를 제공할 수 있습니다”(286면)라고 한다. 다만 윤정권 퇴치 전에는 이 모두가 무망한 일이라는 점을 강조하지는 않는다. 분단체제에서는 얼핏 남북관계와 직결되지 않는 것처럼 보이는 우리 사회의 온갖 문제점들이 모두 불가분하게 얽혀 있음을 지목한 중요한 발언이긴 하지만, 바로 그렇기 때문에 “남북관계 발전을 저해하는 정권을 시민들이 들고일어나 쫓아”내는 일이야말로 “시민참여형 통일운동의 획기적인 사건”(졸저 284~85면)이라는 분단체제 극복운동의 또다른 요목을 비껴간 아쉬움이 있다.

그 점이 제대로 부각되지 않은 것은 자기 분야에 되도록 충실하려는 전문가들다운 자세 때문이기도 했을 것이다. 고도의 전문성을 지닌 남북관계 전문가들이 필요한 건 물론이지만, 분단체제극복운동에는 전문가가 따로 없다. 이 운동에서는 모두가 주인이며, 그 다양한 전선에서 각기 요청되는 전문성을 지닌 인사들이 소요될 뿐이다. 전체적 당면 현안은 여전히 ‘국가와 국가의 연합’ 건설이고 추진동력은 결국 시민참여에서 나올 수밖에 없다는 논리를 따른다면, 4·10 총선을 통해 민의의 심판이 내려진 반평화·반민생 정권의 조기 퇴진 문제를 외면하고서는 현실적인 논의가 불가능한 것이다.

강연은 한참 더 이어졌고 질의응답 시간도 있었지만 녹취록의 나머지는 삭제한다. 강연 현장에서도 ‘근대의 이중과제’와 ‘후천개벽운동’ 대목을 잠시 거론만 하고 넘어갔다. 다만 수강자들에게 미리 배포한 자료에서는 이중과제론과 관련해서 졸저 1장 「근대, 적응과 극복의 이중과제」를, 후천개벽운동 관련으로는 서장 「촛불혁명과 개벽세상의 주인노릇을 위해」의 마지막 절 ‘개벽을 말하는 이유’, 그리고 13장 「기후위기와 근대의 이중과제」를 참조할 것을 부탁했는데, 본고의 독자들에게도 그 부탁을 되풀이하는 것으로 마치고자 한다.

 

 

  1. 본고를 작성하는 과정에서 주최 측이 정해준 제목을 바꾸었고 ‘한반도식 나라만들기’에 대한 간략한 소개마저 대폭 삭제되었다. 당일의 전체발언은 유튜브 ‘백낙청 TV’ [초청강연 002]에 올라 있다.
  2. 앞서 말한 대로 이 대목은 많이 축약되었다. 8·15 이후 한반도가 분단됨으로써 통일된 독립국가의 꿈이 좌절되었는데, 결국 분단체제의 성립과 장기간 지속으로 ‘한반도식 나라만들기’가 미완의 과제로 남았지만 그렇다고 분단된 남북 각기에서 벌어진 나라만들기 작업이 무의미한 것은 아니고 미완의 단계적 과제를 수행 중인 면도 있음을 언급하기도 했다.
  3. 『창작과비평』 2024년 여름호, 266면. 앞으로 이 좌담에서의 인용은 발언자와 면수만 본문 중에 밝힌다.
  4. 조선 체제의 성격상 2024년 1월 최고인민회의 이전, 좌담에서 주목한 2023년 12월 조선노동당 중앙위원회 제8기 제9차 전원회의가 더 결정적인 변곡점이었다고 하겠다.
  5. 이에 관해 졸저 『한반도식 통일, 현재진행형』, 창비 2006, 20~21, 35~37면 등 참조.
  6. “그런데 한번 뒤집어서 생각해봅시다. 시민참여 없는 통일운동이 성공한 사례가 얼마나 있으며 그 결과가 어땠는가.”(졸저 11장 「시민참여형 통일운동과 한반도 평화」, 285면)

백낙청白樂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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