촌평
연세대학교 김대중도서관 기획 『김대중 육성 회고록』, 한길사 2024
‘서생적 문제의식’과 ‘상인적 현실감각’은 어떻게 만났는가
이남주 李南周
성공회대 중국학과 교수 lee87@skhu.ac.kr
『김대중 전집』(연세대학교 김대중도서관 편저, 1부 전10권, 2부 전20권, 연세대학교 대학출판문화원 2015~2019)을 비롯해 김대중의 사상과 실천을 이해하는 데 도움을 주는 서적들은 이미 상당하다. 따라서 최근 연세대학교 김대중도서관 기획으로 출간된 『김대중 육성 회고록: 김대중은 오늘 우리에게 무엇을 말하는가』에서 기존 자료에서 볼 수 없었던 새로운 내용을 발견하리라는 기대는 크지 않았다. 2006년 7월부터 2007년 10월까지 41회에 걸쳐 진행된 구술을 기초로 정리한 이 책을, 알려진 사실을 다시 확인한다는 기분으로 읽기 시작했다. 그런데 인터뷰 방식의 회고 속에서 새로 알게 된 사실도 적지 않았을 뿐 아니라, 이미 알고 있던 지식이 어떤 큰 흐름 속에 새롭게 위치 지워지면서 그의 사유를 더 전면적으로 느껴볼 수 있는 의외의 독서경험이 되었다.
예를 들어 통일문제에 관한 김대중의 대표 브랜드인 햇볕정책이 만들어지기까지 화해, 평화 등에 대한 그 자신의 철학적 사유, 전쟁을 거치며 형성된 적대성에 대한 구조적 인식, 그리고 미국 등 한반도문제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국가들의 역할에 대한 냉정한 판단 등의 상호작용이 생생히 전달된다. 여기에 비추어볼 때 변화하는 현실에 햇볕정책을 옹호하는 것만으로 대응하는 건 지적 게으름의 소산이다. 김대중은 “나는 미·중대립이 격화되기 전에 남북관계가 평화통일의 단계로 진입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716면)고 말했는데, 우리는 이미 미중대립이 격화하는 단계로 진입하고 있다. 그렇다면 단순히 햇볕정책을 옹호하기보다는 남북관계에 대한 김대중의 사유를 전면적으로 파악한 기초 위에서 문제해결의 열쇠를 찾아가는 것이 그의 유산을 제대로 계승하는 길일 터이다.
개인적으로 이 책에서 가장 흥미로운 부분은 정치적 이상과 현실을 조화시킬 방도를 찾는 김대중의 분투이다. 김대중이 정치적 실천에서 ‘서생적 문제의식’과 ‘상인적 현실감각’의 결합을 강조했다는 사실은 널리 알려졌다. 육성 회고록은 중요한 정치적 선택에 이 원칙이 실제로 핵심적인 역할을 한 점을 잘 보여준다. 결론에 해당하는 인터뷰에서는 이를 후배 정치인들에게 전하는 정치인으로서 갖춰야 할 덕목 두가지 중 첫번째로 언급했다. “국민의 반보 앞에서 국민과 함께 나아가야 한”(709면)다는 두번째 덕목도 첫번째 덕목 역시 연장선에서 이해될 수 있다.
1980년대 중후반 학생운동의 복판에 있던 필자에게 김대중은 극복의 대상으로 먼저 인식되었다. 당시 ‘운동권’의 급진주의적 경향에 대해 김대중이 밝힌 ‘비폭력 비반미 비용공’ 등 소위 ‘삼비’ 입장은 운동권의 비판을 받았고 필자도 그에 불편한 감정을 느꼈다. 그런데 꽤 시간이 흐른 이후에는 삼비가 급진적 경향의 가치를 전면적으로 부정한 것은 아니라는 점을 더 주목하게 되었다. 맹목적 친미나 반공과 달리 미국과의 수평적 관계에 대한 요구라든가 사회주의와 관련한 사유가 한국의 현실에 맞게 실현될 수 있는 공간을, 나아가 대화와 설득의 가능성을 열어놓은 접근법이었다. 그리고 급진주의와 김대중은 긴장관계를 유지하면서 한국사회를 변화시키는 동력을 만들어갔다.
육성 회고록에서는 이러한 정치관의 유래를 식민지시기 소학교 일본인 선생의 가르침인 “원칙과 현실은 조화를 이루어야 한다”(81면)까지 거슬러 올라가 찾는다. 다소 일반적으로 보이는 이 원칙이 정치에 적용되기 시작한 사례는 김구, 조봉암에 대한 평가에 잘 나타난다. 김대중은 김구에 대해 “위대한 애국자이지만 정치인으로서는 문제가 있다”(68면)고 평가하는데, 남한의 단독정부 구성을 위한 선거에 참여하지 않은 것을 두고 차선 혹은 차악이라도 선택해야 하는 정치인으로는 적절하지 않은 처사라고 보았기 때문이다. 공산주의에 대해 극우적으로 대응할 것이 아니라 “공정하면서도 차분하게”(116~17면) 비판하라는 자신의 제안에 지지자들의 이탈을 우려하며 소극적으로 반응했던 조봉암의 정치적 한계 역시 언급한다. 그렇다고 높은 이상의 중요성을 낮게 본 것은 아니다. 그는 1963년 국회의원에 당선된 직후 한국내외문제연구소라는 개인이 운영하는 정책연구소를 설립했는데, 그 명칭에 ‘내외’를 포함시킨 이유를 “정치적 비전을 크게 갖고 그에 맞는 정책 수립”(170면)을 하기 위해서라고 설명했다. 혁신계나 진보세력과의 관계도 긴밀하게 유지했다.
서생적 문제의식과 상인적 현실감각의 결합은 이상주의가 소거된 ‘중도’가 아니라, 이상주의나 급진주의의 가능성을 유지하면서도 현실과 유리되지 않고 그 가능성을 실현하는 길을 찾고자 하는 시도라는 점에서 백낙청의 ‘변혁적 중도주의’와도 연결된다. 세계, 한반도, 국내 모든 차원에서 대전환기를 맞이한 현재 더 진지한 공부가 필요한 화두이다.
앞서 언급한 인물뿐 아니라 서재필, 이승만, 장면, 유진오, 유진산, 윤보선, 김재준, 그리고 김일성과 김정일 등에 대한 간략하지만 핵심을 찌르는 평도 육성 회고록의 각별한 장점이다. 김대중이 이 인물들과 맺은 직간접적인 관계를 고려하면, 이 평가들은 한국정치사 연구에 하나의 기준을 제공한다. 연구 목적이라면 육성 회고록 역시 다른 모든 회고록과 마찬가지로 주관적 요소를 걸러내는 분석적 독서가 필요하다. 그렇지만 인터뷰어들이 1차 사료를 기초로 인터뷰를 진행한 덕분에 회고 내용이 높은 수준의 진실성을 확보하고 있어 독자들이 이와 관련한 부담을 크게 느끼지 않고 한국정치사의 흐름을 볼 수 있다는 점도 이 책의 미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