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과비평

창작과비평
문학평론

 

‘우리 것다운’ 문학을 향한 사랑과 헌신

『역사 앞에 선 한국문학』을 읽고

 

 

유희석 柳熙錫

문학평론가, 전남대 영어교육과 교수. 저서 『근대 극복의 이정표들』 『한국문학의 최전선과 세계문학』, 역서 『비평의 기능』 『지식의 불확실성』 『근대화의 신기루』(공역) 『한 여인의 초상』(공역), 공편서 『세계문학론』 등이 있음

yoohuisok@yahoo.com

 

 

 

1

 

염무웅 선생이 비평 60년의 ‘결산’이라고 말해도 좋을 『역사 앞에 선 한국문학』(창비 2024)을 펴냈다. 독자들이 그의 방대한 비평세계에 조금이라도 쉽게 다가갈 수 있도록 소개하는 뒷일도 챙겨야만 하는 시점이다. 다음과 같은 선생의 문장으로 시작해본다.

“한 예술가의 작품세계를 전체적으로 이해하려면 그 뿌리에 해당하는 출발기의 모습을 잘 살펴볼 필요가 있다.”(『역사 앞에 선 한국문학』 45면, 이하 이 책에서 인용 시 면수만 표기) 이 말은 저자 자신에게도 고스란히 적용되지 싶다. 선생의 초창기 비평 풍경은 최인훈론에서 시작한다. 1964년 경향신문 신춘문예 당선작인 「에고의 자기점화」는 저자의 네번째 평론집 『모래 위의 시간』(작가 2002)의 첫머리에 올라 있다. 저자의 사실상 첫 저서인 『한국문학의 반성』(민음사 1976)에는 또다른 최인훈론인 「관념의 모험」(1969)이 실려 있다. 1967년 신구문화사에서 낸 『현대한국문학전집』 제16권 최인훈 편에도 해설 「상황과 자아: 최인훈론」이 있다. 그런가 하면 김병익·김현이 책임편집을 맡은 ‘우리시대의 작가연구총서’ 『최인훈』(은애 1979)에도 제목은 같지만 거의 새로 쓴 듯한 「상황과 자아」가 변주된다.

이게 다가 아니다. 최인훈의 『회색인』을 집중적으로 다룬 「망명자의 초상화」(1964.9)도 『모래 위의 시간』에 엮였다. 최인훈에 대한 그의 마지막 문장은 작가의 작고(2018) 후에 나온 경향신문 칼럼 「최인훈 문학과의 만남을 위해」(2018.12.3)이다. 이처럼 조사(弔詞)를 겸한 칼럼까지 넣어서 글의 목록을 늘어놓은 것은 염무웅이 오늘까지 견지하는 비평의 기본자세와 비평가로서의 성숙의 맹아가 1960년대의 최인훈론에 분명히 엿보이기 때문이다. 「에고의 자기점화」의 맺음말에서 표명한 최인훈 문학에 거는 기대—“자아와 상황의 참된 대화는 이제부터 시작이니까. 최인훈, 그는 미래 작가이니까”—는 어떤 면에서는 앞으로 펼쳐질 그 자신의 비평에 대한 예고편으로 읽히기도 한다. 스스로 자신의 글을 비판적으로 돌아보면서 한국문학의 험로를 헤쳐나가는 비평의 자세가 초창기에도 잘 드러나 있는 것이다.

그러한 자세의 비평적 발현은 쉼없는 읽기와 작품의 이면을 뒤집어보는 숙고, 자기비판적 성찰, 개고를 통한 판단과 평가의 수정 및 확립 과정으로 요약된다. 그는 그러한 자신의 자강불식(自强不息)을 이렇게 술회한 바 있다. “그것은 아주 독특한 경험이었는데, 왜냐하면 한편으로 그것은 글을 쓸 때의 시점으로 돌아가 그때의 자신의 생각을 복원시켜 보는 작업인 동시에 다른 한편 현재의 관점에서 자신의 과거를 비판적으로 읽는 일이기도 했기 때문이다.”(『모래 위의 시간』 7면)

 

 

2

 

염무웅은 철저한 자기복기와 성찰에 근거한 엄밀한 읽기 및 평가를 이행하면서 문학사론, 작가론, 작품론을—그때그때의 국내 정세와 시대를 통찰하는 적지 않은 분량의 산문을 더해—써냈다. 지난 60년간 활자화된 그의 비평을 일별하면 대다수 비평이 최인훈론처럼 한국문학사에 중요한 족적을 남긴 개별 작가들을 거듭해서 살피고, 구멍 난 곳을 깁고 부실한 부분은 보완하고 덧대는 방식으로 이뤄지고 있음을 실감할 수 있다. 그렇다고 그가 높은 봉우리만 쳐다본 것은 물론 아니다. 하지만 산정(山頂) 등반을 단 한번으로 끝내는 주요 작가도 거의 없다. 그는 산세(山勢) 전체를 시야에 두고 한용운 홍명희 윤동주 염상섭 임화를 비롯해 김수영 고은 김지하 김남주 신경림 등을 끊임없이 호출하면서 식민지근대-국권상실-광복-전쟁-분단-유신·군사독재를 통과한 이들의 창조적 성취와 한계를 어떻게 읽어내야 할지 고민해온 것이다. 그로써 염무웅판 한국문학사가 60여년에 걸쳐 단단하게 구축되었다.

그의 일관된 평문에는 스스로 깨어 있기에 저절로 발휘되는 일깨움의 힘이 살아 있다. 가령 『혼돈의 시대에 구상하는 문학의 논리』(창비 1995) 『살아 있는 과거』(창비 2015) 『역사 앞에 선 한국문학』에 실려 있는 네편의 김남주론은 시인의 삶과 시에 관한 곡진한 읽기가 점점 깊어지는 과정을 생생하게 보여준다. 이번 책 『역사 앞에 선 한국문학』은 베트남 대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짤막한 강연문 「한국 현대문학의 작은 역사」와 백낙청 선생과의 대담을 담은 부록을 포함해서 모두 3부로 구성된다. 1, 2부에는 시인론이 주로 배치되었다. 3부에는 본격 서평 「말에서 글에 이르는 글」, 강연문 「민족문학의 시대는 갔는가」 「한국문학과 세계의 만남」, 에세이 형식의 단상 「소설 『임꺽정』의 언어에 대한 논란」 「남북작가대회의 성사(2005.7)에 즈음하여」 「국립한국문학관에 대하여」 등이 연달아 맥을 잇는다. 문학평론가인 이성혁 유성호 백지연 제씨들과 각각 나눈 세편의 대화가 각부의 끄트머리를 장식한다. 그 자신의 문학관·시국관과 함께 온몸으로 통과한 20세기 한국문단사와 그 이면의 진실을 두루 증언하는 발언들이다.

이 책에서 다룬 작가 중 가장 어린 이가 1950년생인 정호승과 박해석이다. 나머지도 2030 독자들에게는 생소한 이름일지 몰라서 부기한다. 김수영(1921~68) 강민(1933~2019) 고은(1933~ ) 민영(1934~ ) 신경림(1935~2024) 김지하(1941~2022) 이성선(1941~2001) 김남주(1945~94). 소설가로는 송기숙(1935~2021)이 유일하다. 이러한 시인들 중 그가 이전에 다루지 않은 작가는 단 두명, 박해석과 강민이다. 작품론에 관한 한 그는 전적으로 선배나 자신과 연배가 엇비슷한 작가들에 반복해서 초점을 맞춘 셈이다. 이 점이 젊은 독자들에게는 저자가 꽤나 보수적이라는 인상을 줄지도 모르겠다. 게다가 이 이름들 각각은 이제는 세계화의 대세 속에서 속절없이 밀려난 ‘민족문학’의 대명사들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터라 그런 인상은 더 강화될 가능성이 있다. 이에 대해서는 후술하겠지만, 우선 이 책의 거의 모든 글이 고희(古稀)를 훌쩍 넘긴 시점에 쓰였다는 점을 먼저 주목하고 싶다. 1, 2부의 시인론에서 특히 두드러지건대 염무웅의 글쓰기는 인생의 황혼기에 들어서 살갑게 부대낀 선후배 작가들의 삶과 작품에 눈길을 주면서, 속절없는 세월로 더 애틋해진 기억과 더불어 서릿발 같은 기록을 비평으로 선보이고 있다.

그런 기억과 기록은 너무 다양해서 일일이 거론하기 힘들지만 독자의 뇌리에 박힐 만한 문장은 거론하고 싶다. 「오늘 다시 호출된 김남주」의 각주 1에서 스치듯 던지는 그의 일침을 보자(203~204면). 기존 『김남주 평전』(김형수 지음, 다산책방 2022)에서 감지되는 시인의 ‘신화화’에 대한 따끔한 계고이다. 시인에 대한 서로 다른 기억들이 얼마간 과장되거나 만들어진 것은 아닌가 하는 이 물음을 사소한 트집으로 치부한다면, 참다운 문학이라는 것도 말짱 헛말일 것이다. 물론 이는 그가 견결하게 견지한 기록정신을 보여주는 작은 사례에 불과하다. 「신경림 시인과 헤어지는 시간」도 안쓰러운 추억과 정확한 기록, 엄정하고도 따듯한 비평이 어떻게 하나로 어우러지는가를 잘 보여준다.

 

나는 1974년 추석 전날 물어물어 안양 비산동 언덕바지로 그의 집을 찾아간 적이 있다. 전형적인 집장사 집이었다. 분위기도 썰렁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부인은 세 아이를 남겨둔 채 돌아가시고 할머니와 부친은 치매와 중풍으로 작은 방 하나씩을 차지하고 있었으며, 여기에 결혼 전의 두 동생까지 얹혀 있었다. 집안 살림은 오직 어머니 혼자 감당했고 돈벌이는 신경림 전담이었다. 나는 위로의 말을 꺼낼 생각도 못하고 돌아왔다.(186~87면)

 

다들 팍팍했던 시절의 사적인 기억 한토막을 시 해석에 버젓이 섞어 넣는 것은 감상(感傷)이라고 뜨악해하는 독자가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시인 서홍관의 페이스북 글(「시인의 노환과 임종」 2024.5.22)을 옮겨 적는 것으로 시작해 자신의 사유를 이어가는 이 글을 찬찬히 읽어보면 생각을 달리할 것이다. 가쁘게 숨을 몰아쉬는 것처럼 이어지는 ‘조사(2024.5.24)’ ‘신경림 시인과 함께 보낸 54년’ ‘49재에 드린 고별사(2024.7.6)’ ‘시집 『농무』의 역사적 위치’ ‘시인을 보내고 나서’를 읽노라면, 시인과 부대낀 세월의 흔적들을 더듬어가는 고별사가 그 자체로 비평의 품격을 서서히 갖추어가는 희귀한 풍경들을 보게 된다. ‘마음의 가난’을 끝까지 고수했기에 더 풍요롭게 민중의 삶 속으로 들어가 작품을 벼려낼 수 있었던 신경림의 ‘소박한’ 시세계에 곡진하게 스며드는 염무웅의 공감 어린 비평의 진수는 거기에 드러나 있다. 신경림의 내면에 깊숙이 박힌 “삶에 대한 깊은 회한” 과 “우주적인 높이의 달관”(187면)이 치열하게 맞부딪치는 「눈」에 대한 논평도 그런 풍경의 일부임은 더 말할 것 없다.

『역사 앞에 선 한국문학』에서 (때로는 극히 사적인 방식으로 드러나는) 저자의 사적 기억과 체험도 기본적으로 역사성을 머금고 있다. 그것은 식민지시대와 민족해방 및 전쟁과 분단, 군부독재, 그리고 민주화로 이어지는 20세기 한국의 역사를 온몸으로 살아낸 사람의 추억이기도 한데, 그런 추억이 그의 작품 읽기와 불가분인 현상은 연구자들도 고구해볼 만한 주제로 남을 것이다. 246~48면에 적힌, 분단의 상흔이 고스란히 남은 저자의 가족사가 그 자체로 20세기 한국현대사의 비극적 축소판인바, 중요한 것은 염무웅이 그의 기억과 기록으로서의 문학을 통해 사(私) 대 공(公)을 넘어서 작가와 작품을 끊임없이 역사화했다는 점이다.

염무웅이 비평의 형식으로 펼쳐놓은 모든 기억과 기록은 결국 시간과 역사의 문제다. 마음에 축적된 독서 체험과 양식을 비평으로 풀어서 후세에 전수하는 일은 어쩌면 장청(壯靑)이 누릴 수 없는 노년만의 특권이랄 수도 있다. 따라서 실증지식을 넘어서는 통찰과 지혜, 거기서 자연스럽게 우러나오는 모종의 권위는 아무나 가질 수 없다. 노년을 예찬하는 언술이 동서양에 드물지는 않은 데는 이유가 있는 것이다. 워낙에 ‘노티’가 없는 그의 삶과 글은 저자 자신과 같은 세대의 작가들을 다루면서 회고할 때조차 한눈을 팔지 않는다. 그의 시선은 늘 오늘의 현실을 향해 있다.

 

 

3

 

그러나 정말 중요한 것은 무엇을 기억하고 그 기억의 기록이 후세에게 어떤 현재성을 갖는가 하는 점일 것이다. 개항 이래 우리 문학에서 참다운 노년의 문학이 드문 것은 유달리 파란과 곡절이 많은 한반도의 식민지근대에 기인한다. 식민지근대의 역사를 직시한 문학적 자산이 한국문학사에 충분히 축적되었다고 자신할 수 없기에 체험과 기록으로 일군 ‘증언’으로서의 비평이 더 소중해지고 후학도 그 의미를 살뜰하게 되살려내야 하는 것이다. 인생의 어느 순간에나 현재의 사태 한복판에 굳게 발을 내딛고 과거의 기억을 엄정하기 복기하면서 미래를 염려하고 희망의 근거를 치열하게 모색하는 염무웅이 우리 비평의 사표(師表)라면 더더욱 그렇다. 그 자신의 말대로 하면 “육신의 질병과 심리적 소외감을 정직하게 견디면서 그것을 강고하게 단련된 정신세계로 승화시킨 참된 의미의”(『살아 있는 과거』 345면) 노년의 비평을 우리는 『역사 앞에 선 한국문학』에서 읽는다.

그의 만년 비평에서 눈여겨봐야 하는 또 하나의 대목은 한국작가회의 이사장(2003~2006), 겨레말큰사전남북공동편찬사업회 이사장(2018~22), 국립한국문학관 초대 관장(비상임, 2019~22) 등의 공무(公務)에 관한 기억·기록이다. 이런 공무는, 좀 거창하게 말해서, 한 나라의 문학에 영속성을 부여하는 제도를 설계하고 세심하게 실행하는 일이다. 문학활동의 기반이 되는 제도나 조직의 중요성을 인지하면서 ‘기초 공사’의 현장에 뛰어든 셈인데, 재야(在野)에서 누구 못지않게 식민지시대와 분단시대의 한국문학을 구석구석 살펴온 경륜이 비로소 온축(蘊蓄)의 시절을 맞은 것이다.

그런데 이 대목에서 온축의 중요성을 염두에 두고 우리가 더 검토해봐야 하는 것은 제도나 조직 자체가 문학의 어떤 ‘본연’은 아님을 염무웅이 거듭 역설하는 문장들이다. 이는 문학의 기본을 사유하는 데서도 자주 망각되는 진실이다. 그는 백지연과의 인터뷰에서 그 점을 이렇게 말했다.

 

그러니까 자실(자유실천문인협의회, 1974~87—인용자)이 있었기 때문에 1970년대 이후 문학이 꽃피었다, 이렇게 말하는 것은 오만이고 자기도취일 수 있습니다. 1980년대로 오면 문학과 현실 간의 그런 관계가 잘 나타나요. 1980년대는 문인들의 사회적 발언이 뜨겁고 거센 시대였잖아요. 그런데 그 시대의 작품들은 발언의 강도에 비해 예술적 완성도가 오히려 많이 떨어져 보여요. 왜 그럴까요? 이게 무얼 의미하는 현상일까요? 운동이 문학을 지배하려 했기 때문이에요. 다른 말로 관념이 예술 위에 군림하려 했기 때문이지요. 작품은 자유로워야 제대로 나오는 거라고 봅니다. 완전히 자유로운 정신 속에서 작가들이 자기 마음대로 써야 좋은 작품이 나오는 거지요.(404면)

 

1980년대 문학에 대한 위와 같은 규정에 충분히 동의하지 않을 논자도 분명히 있을 것이다. 뿐만 아니라 우리가 자명하게 받아들이는 자유도 근대(주의)의 추상(抽象)들 가운데 하나이고 너무나 오염된 개념임이 분명하다(그의 산문집 중 하나의 제목이 ‘자유의 역설’이다). 염무웅의 이런 발언이 상투적인 창작의 자유나 ‘문학성’ 예찬과 거리가 먼 것은 그 자신이 평생 혼신을 다해 ‘운동의 현장’을 지켰기 때문만이 아니다. 스스로 인정했듯이 그는 소탈하고 온건한 체질의 소유자지만 일체의 ‘꼰대 기질’과 불화할 수밖에 없는 비평가기도 하다. 그의 개인사에도 영향을 끼친 평론 「서정주와 송욱」(1969.12)이 우리에게 여전히 통쾌함을 선사하는 것도 비평에서 아니라고 판단한 것을 아니라고 말하는—어떤 면에서는 반골을 방불하는—얽매임 없는 자유에 뿌리박은 그의 저항의식이 깊은 울림을 주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그 저항의식도 외곬으로 치닫는 경향과 구분해야만 한다.

그런 구분은 염무웅의 비평적 분별력과 평가의 균형감각 및 섬세함을 가늠하는 작업에서도 필수적이다. 예컨대 부록의 백낙청·염무웅 대담 「추억 속의 김수영, 다시 읽는 김수영」을 배경에 놓고 「김수영은 어떻게 ‘김수영’이 되었나」를 보자. 다들 알다시피 오늘날에도 김수영은 창작자와 비평가들에게 거의 절대적 ‘신화’로 살아 있다. 그런 신화에 대해 적확한 비판과 정당한 평가를 결합하는 비평이 특히 어려우리라는 것은 두말할 나위 없다. 염무웅이 그를 읽는 자세는 숭배와 배격 그 어느 극단으로도 기울지 않는다. 그렇다면 이런 문장은 어떻게 읽어야 할까? “‘과거’의 풍속이나 유물에 대한 김수영의 재발견이 호들갑스러운 경탄이나 경악을 동반하는 것은 그가 ‘민족’과 ‘전통’으로부터 추방되었다가 어느날 갑자기 귀환한 세대라는 걸 말해줍니다. 그런 점에서 나는 시 「거대한 뿌리」에 대한 기존의 과도한 해석에 충분히 동의가 안 돼요.”(266면)

도발적이고 논쟁적인 주장은 더 많다. 김수영에게는 (임화에 비하면) “조선적인 것의 전개과정에 대한 ‘역사적 설계’가 없었다”라든가 “「이 한국문학사」 같은 시는 우리 역사에 대한 그의 통찰을 보여준다기보다 민족의 과거에 대한 그의 학습부족을 드러낸다”(165면)는 거침없는 지적이 그렇다. 그런데 염무웅 자신도 지적했듯이 제아무리 발군이라고 해도 태어나서 24살까지 일제강점기를 산 사람이라면 그런 설계나 학습 부족도 어쩌면 당연하지 않겠나. 사실 그와 같은 비판은 이미 「김수영론」(1976)에도 (훨씬 신랄하고 어떤 면에서는 지나치게 날이 선 채) 제출된 바 있다. 그는 김수영의 우뚝한 시적 성취를 격찬하는 사이사이에 ‘몸’으로 철두철미하게 살지 못하는 데서 나오는 ‘난해성’을 질타했다. 김수영이 “너무나도 모더니즘에 깊숙이 발을 들여놓았던 것을 유감스럽게 생각”한다면서 결론으로 ‘전통’과 정면으로 대면한 김지하를 맞세운 것이다(『민중시대의 문학』 239~40면).

이후 50여년이 흐른 시점에서 나온 「김수영은 어떻게 ‘김수영’이 되었나」를 읽으면 한 비평가의 초지일관과 성숙을 동시에 발견한다. 이 글에 이르러 염무웅은 1976년 당시의 문제의식을 완전히 버리지는 않으면서 김수영에 대해 한결 정확하고 원만한 결론에 도달한 것으로 보인다. 특히 이 평문의 마지막 절 ‘김수영과 모더니즘’이 그렇다. 그는 사조에 얽매임이 없이 “김수영은 때로는 철저한 리얼리스트, 때로는 탁월한 모더니스트지만 결국 양자를 한 몸에 구현한 인물이자 그 모두를 넘어선 존재, 즉 가장 깊은 뜻에서 자기 자신에 도달한 시인”(175면)이라고 평가한다. 오독과 오판이 전혀 없는 비평가는 존재할 수 없다는 전제를 유보없이 받아들인다면 여전히 논쟁의 불씨를 담은 염무웅의 최근 김수영론은 김수영 연구의 ‘기준점’으로 삼아도 좋을 것 같다. 이 경우 그의 김수영 읽기가 사심 없는 비판이란 비평의 본질적 조건이요 진정으로 창조적인 작가를 섬기는 길임을 새롭게 일깨운다는 것도 기꺼이 인정할 수 있다. 김수영과 20세기 한국문학의 전통이라는 화두는 염무웅이 밀고 나간 지점에서조차 더 숙고할 점이 남았기에 우리의 그런 인정도 스스럼이 없다.

 

 

4

 

신경림의 시가 어렵지 않듯이 염무웅의 평문도 난해하지 않다. 이 문장을 뒤집어 다시 쓰면 이런 말이 된다. 즉, 시인과 비평가가 자신의 영역에서 참으로 ‘비범한 평범’을 자기만의 문장으로 구현하여 양식있는 독자라면 누구나 즐겁게 읽을 수 있는 ‘작품’을 써냈다. 따라서 어렵지 않다는 것이 마냥 쉽다는 뜻이 아니다. 정성껏 고아낸 곰탕처럼 담백한데, 우리말과 역사에 대한 깊은 관심과 공부에서 우러나오는 문장들의 맛이다. 「소설 『임꺽정』의 언어에 대한 논란」이나 「말에서 글에 이르는 길」을 보면 평생 교수, 편집자, 평론가로서 한국어 구어와 문어의 세세한 차이와 그 면면을 살피면서 언어식민주의에 치열하게 저항해온 사람의 해박한 식견이 은은하게 빛난다. 그런 식견이 문학평론으로 드러나는 양상을 해명하려면 염무웅의 ‘비평 스타일’도 잠시 검토해볼 필요가 있을 것 같다.

그의 평문을 읽다보면, 그 글이 “문학 공부가 대학제도 안에 진입”(8면)하여 제도적 틀에 맞춘 규격품 같은 논문이나 서양학계의 ‘거물’의 언설이나 온갖 종류의 이론을 들이대면서 작품을 ‘요리하는’ 비평문과 얼마나 다른지가 실감된다. 하지만 이 차이를 평론과 연구논문의 장르적 구분 정도로는 설명할 수 없을 듯하다. 이 대목에 관한 한 영문학도인 나는 그야말로 막막해지는 느낌이다. 돌이켜보면 나도 대학에서 싫든 좋든 생존하기 위해서 연구논문을 무던히도 써냈다. 하지만 그와 같은 처지에서 내가 과연 얼마나 치열하고 철저하게 이 땅의 삶과 역사를 직시하는 문학공부에 전념했는가를 자문하면 결코 떳떳한 답을 내놓기 힘들다. 그래서 내 딴엔 ‘영혼’이 살아 있는 글을 쓰기 위해 더 애를 쓰지만 염무웅의 평문을 읽다보면 영혼의 유무보다 더 절박한 쟁점과도 마주한다. 우리 평단에서 염무웅이 써낸 문학비평 같은 것은 이제 거의 멸종 상태가 아닌가 하는 씁쓸한 뒷맛이 남기 때문이다.

그 점의 함의는 무겁기 짝이 없다. 염무웅의 글쓰기는 AI가 즉각적으로‘모범답안’을 뽑아주는 이 시절에 자기성찰과 숙고로서의 비평이라는 것이 어찌하여 문명의 사활이 걸린 문제인가도 환기한다. 그런 맥락에서도 그가 졸업한 또 하나의 ‘대학’이 1960년대의 신구문화사라는 점은 여러가지를 시사한다. 『모래 위의 시간』에 실린 「1960년대의 출판 풍경: 신구문화사 이종익 사장의 추억」은 당시 제도권 대학에서는 결코 가능하지 않았을 식민지시대와 그 자신의 동시대 문학에 관한 그의 공부가 어떤 것인지를 짐작게 해주는 문건이다. 그런 공부는 ‘인쇄된 것의 문학적 진실’을 ‘인쇄된 것 바깥에 있는 삶의 진실들’에 비추어 끊임없이 성찰하면서 궁극적으로 두 종류의 진실을 하나로 통합하는 차원의 비평으로 나타난 것 같다.

물론 『창작과비평』의 주간과 발행인으로 활동한 그의 경력도 빼놓을 수 없다. 신구문화사를 ‘졸업’하고 ‘그 조그만 잡지’의 편집에 관여하기 시작한 것이 ‘상아탑 속의 대학교수’로서는 넘볼 수 없는 비평의 탁마에 결정적인 계기였을 것이기 때문이다. 아무튼 단아하고 적확한 그의 문장은 만년으로 오면서 평가의 엄정함을 유지하면서도 한결 유연해지면서 온기마저 품게 되었다. 그의 비평 스타일은 엄정과 유연, 온기가 하나로 응축되면서 문장으로 표출된 것인데, 앞서 언급한대로 『역사 앞에 선 한국문학』에 실린 시인론은 거의 예외없이 작가와 얽힌 염무웅 자신의 사적 인연과 추억에서 시작한다. 가볍게 회고조로 운을 떼는 글이 중후하고 격조 있는 비평으로 변하는 과정을 독자에게 잘 설명하는 일은 쉽지 않다. 여기서도 백문(百聞)이 불여일독(不如一讀)일 뿐이다.

앞서 신경림론을 잠시 짚었지만 사무치는 조사가 어떻게 본격 비평이 될 수 있는가를 김지하론을 표본 삼아서 거론해봄직하다. 「시인 김지하가 이룩한 문학적 성과와 남긴 유산」은 너무도 썰렁했던 김지하의 마지막 길에 대한 안타까움으로 시작한다. “나보다 1년 먼저인 1959년에 서울대학교 미술대학 미학과에 입학했다가 1961년 미학과가 문리대로 옮기는 바람에 한 캠퍼스에서 어울”(93~94면)려 그와 친구가 된 사연을 풀어놓으면서 김지하가 정치활동에 첫발을 내딛는 과정으로 들어가는 글의 어조는 담담하면서도 뜨겁다. 단적으로 말해서 1970~80년대의 ‘한국적 문화혁명’이라고 할 만한 연행예술의 중심에 김지하가 존재했음을 다각도로 증언하는 대목도 염무웅이 아니면 되살리기 힘든 기록으로서의 비평일 듯하다. 그렇다면 동세대 문학에 대한 그의 애정적인 시선은 ‘보수성’이라기보다 민족의 삶과 문학에서 참으로 보존할 만한 것을 발굴하여 유산으로 남기는 보존자의 자세로 이해해야 온당하리라 본다.

김지하론에서 염무웅이 해낸 비평작업은 ‘실존적 정념’의 인간 김지하가 말년에 보인 그의 정치적 기행(奇行)과 과오에 묻힌 삶과 작품의 진실을 되살리는 것이다. 김지하의 문학이 고단하게 거쳐온 역사적 궤적을 다시 따라가면서 작품의 현재성을 증언하고 평가하는 한편, 시인 개인의 기질과도 아주 무관하지 않은 그 기행과 과오의 개인적·역사적 연원에 대해서도 곡진한 해명을 시도했다. 그는 이렇게 썼다.

 

2010년대에 들어와 김지하는 그야말로 상식에 어긋나는 언행을 선보이곤 했다. 당연히 비판이 따랐다. 하지만 우리는 오랜 병고 끝에 혼돈이 깊어진 노년의 김지하가 타인의 비판 안에 들어 있는 합리적 핵심을 붙잡아 자신의 인간적 성숙과 정치적 교정을 위한 거름으로 삼을 힘을 잃었음을 인정할 수밖에 없다. 이 점 김지하를 사랑했던 동료와 후배 들을 한없이 가슴 아프게 한다.(118면)

 

이런 문장이 김지하를 위한 세간의 변명이나 변호와는 차원이 다른 것은 단순히 그를 무심하게 떠나보내고 남은 ‘한없이 아픈 가슴’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김지하가 생전에 이룩한 문학적 성취를 정확하게 짚으면서(119면), 작품의 구체적인 읽기로써 텍스트 바깥의 묻힌 역사적 진실도 풍요롭게 밝혔기에 독자에게도 김지하의 시세계로 사심없이 들어가는 통로가 마련된 것이다. 내가 특히 인상적으로 읽는 것은 김지하의 시 「황톳길」 「남쪽」 「1974년 1월」 「횔덜린」과 어우러지는 그의 비평이었다. 「남쪽」에서 그는 “일본제국 군대에 짓밟히고 찢겨 학살당하는 동학군의 참상과 동족간 좌우대립으로 죽고 죽이는 피바다의 환상이 젊은 시인의 영혼을 잡고 놓지 않았던”(103면) ‘지옥도’를 읽어냈다. 「횔덜린」의 해석은 어떤가. 초로(初老)에 접어들어 자기 내면에 스며든 절망적 어둠을 횔덜린을 빌려 토로하는 김지하의 “막막한 무력감”(116면)에 염무웅은 ‘아픔’으로 공감한다. 그로써 거듭된 시대와의 불화 속에서 마음의 좌표를 상실한 한 시인의 좌절과 비탄이 독자에게 고스란히 전해진다. 하지만 좌절과 비탄만이 아니다. 김지하 삶의 굽이굽이와 그의 시가 어떤 연관성이 있으며 그가 남긴 탁월한 작품이 어떻게 당대를 넘어서 우리의 지금 현실에 도달하는가도 알 수 있기 때문이다.

염무웅의 시인론을 읽다보면 어떤 면에서 모든 비평은 한 인간에 대한 총체적 이해와 관심에서 출발해야만 하는 것이 아닌가는 생각도 든다. 물론 작가가 남긴 작품에서 최량의 ‘물건’을 뽑아내는 안목이 빛날수록 비평가 자신도 저절로 드러나는 법이다. 하지만 염무웅의 드러냄은 그 물건이 스스로 어디가 잘나고 못났는지를 말할 수 있도록 뒤를 자심하게 돌봐주는 행위처럼 읽힌다.

 

 

5

 

이 글의 제목 중 ‘우리 것다운’이라는 표현은 「책을 내면서」(7면)에서 원용한 것이다. ‘우리 것다운 문학을 향한 사랑과 헌신’이라는 제목으로써 나는 3부에 실린 「민족문학의 시대는 갔는가」의 문제의식에 나름대로 화답하는 동시에 염무웅 비평 60년을 감히 집약하고자 했다. 물론 이 화답과 집약 자체도 염무웅의 저서를 관통하는 핵심의 반영에 불과하다면, 나는 선생이 잡은 선편을 그대로 따랐을 뿐이다. 그 선편은 물론 ‘민족문학’이고 어떤 경우에도 ‘우리 것다운 문학’을 논할 때 민족문학을 빼놓을 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이제 민족문학은 평단이나 작단에서 들어보기 참 어려운 말이 되어버렸다. 어느새 온갖 것의 앞머리에 K를 붙이는 세상으로 변했고 문학도 그렇다. 이때 K는 두말할 것 없이 Korea를 가리킨다. 그런데 어떤 Korea인가?

이 물음은 ‘생각하는 시민’일수록 곤혹스럽게 받아들일 공산이 크다. 적어도 지금은 앞이 캄캄해지는 물음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럴수록 시민적 양식(良識)을 더 바루고 지키는 일이 중요하지 않을까 싶다. 대한민국의 국민으로서 민주주의체제와 헌법을 존중하고 따르는 것은 당연하고 국가에 대한 자긍심도 가져야 마땅하다. 그러나 한 민족, 두개의 나라가 엄존하는 한반도 현실에서 남이냐 북이냐는 식으로 강요하고 심지어 윽박지르는 태도에는 단호히 거리를 둬야 한다. 동시에 하나도 아니고 둘도 아닌 ‘Korea’의 난국(亂局)을 직시하면서 민족의 맥을 잇는 길을 구도적으로 묻는 자세를 견지해야 한다고 본다. 이 경우라면, 적어도 ‘우리 것다운’ 문학에 관한 한, 상생과 공생의 상상력을 최대한 유연하고 창조적으로 발동시키는 것이 관건일 따름이다.

알다시피 K는 대한민국(ROK, Republic of Korea)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DPRK, Democratic People’s Republic of Korea)에 공통으로 들어가 있는 약어이다. 그러나 K문학을 언급할 때 후자는 안중에 없다. 그것은 말 그대로 38선 이남의 문학이다. 사람들은 이런 문학을 K문학이라고 쓰지만 ‘대한(大韓)의 문학’으로 읽는 것 같다. 노벨문학상의 후광까지 가세했으니 이 K문학이라는 것이 앞으로 세계문학의 동의어처럼 쓰일지도 모르겠다. ‘K-’에는 대한민국 경제와 문화의 발전상에 대한 강한 자부심과 자신감뿐이 아니라 외국의 일정한 인정과 찬사마저 담겨 있다. K도 어느 개인이 창안한 것이 아니라 시대의 거대한 흐름 속에서 자연스럽게 만들어진 표현이고, 따라서 싫고 좋고를 따질 계제가 아니라는 뜻이다.

중요한 것은 K문학이라고 할 때 그 지향의 구체적인 내용이 무엇이고 민족문학과 어떤 연속성과 단절이 있는가를 성찰하는 자세이다. 염무웅의 말처럼 “님의 부재는 여전히 지속되고 있고, 민족문학의 시대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297면)면 끝나지 않은 민족문학의 시대에 K문학이 무엇인지 되묻지 않을 수 없다. K문학에 대한 정당한 자부심과 자신감조차 우리가 ‘결손국가’에 살고 있다는 엄중한 사실을 잊게 한다면 이 물음은 우리 문학의 화두가 되어야 마땅하지 않을까? K문학을 은연중에 ‘대한의 문학’으로 상찬하는 경향에는 이제 우리는 북과는 차원이 다른 선진국이고(언필칭 맞는 말이다) 따라서 더이상 결손국가가 아니라는(엄청난 착각이다) 승리의 도취가 배어 있는지도 모른다. 그런 도취가 착각과 착시를 불러온다면 한강의 노벨문학상 수상의 의미도 좀 달리 봐야 한다. 이 경사를 두고 온 평단이 떠들썩하게 K문학의 세계성을 논했지만, 『소년이 온다』만 해도 21세기에 진화한—남과 북의 양식있는 사람들이라면 얼마든지 공유할 수 있는—새로운 민족문학이라 불러도 전혀 어색하지 않다는 것의 더 깊은 함의를 생각해야만 한다. 한강 문학의 세계성도 바로 그런 사실에서 찾아야 한다고 본다. 그 점에서도 염무웅이 구축해온 ‘우리 것다운’ 문학과 그에 관한 비평은 후학이 더 숙고해야 하는 유산으로 남을 것이다. ‘우리 것다운’ 문학이 어떤 의미에서 민족주의적 문학이 아닌 민족문학인가를 해명하는 데도 그의 비평작업을 필수적인 참조점으로 삼아야 하리라는 것이다.

우리가 만약 K문학이라는 표현을 관성적으로 쓰고 있다면, 그리고 한국문학이 한 국가의 문학을 그저 중립적으로 가리키는 표지에 불과하다면 염무웅 비평의 모든 궤적이 한반도 차원의 문학적 가능성을 탐구해온 과정이라는 점도 좀더 진지하게 비평의 향후 과제로 삼아볼 만하겠다. ‘역사 앞에 선 한국문학’이라는 제목 자체가 암중모색의 심경으로 그런 탐구를 강하게 지향하고 있음을 암시하고 있지 않은가. 좀더 구체적으로 가령 ‘한국문학사의 외연 확장이 뜻하는 것’이라는 부제가 붙은 「한국문학과 세계의 만남」을 읽어보자. 이 평문은 기왕의 민족문학 개념을 다시 성찰하는 데도 소중한 자극이다. 민족과 민족어, 민족적 정체성 등도 결코 고정된 것이 아니라는 상식의 역사적 실상은 의외로 잘 알려져 있지 않은데, 바로 그 점을 근대 한반도 디아스포라 작가들의 생애와 작품을 통해 자상하게 짚은 글이다.

염무웅의 논지를 따라가면 민족문학에 변치 않는 본질 같은 것은 없다. 민족이 사라지면 민족문학도 없어지는 법이니 이는 당연하다. 하지만 이 당연의 함의도 간단치는 않다. 염무웅의 논의는 본질 같은 것은 없는 민족문학이 어찌하여 단순한 구성물도 아닌가에 대해—문학으로서의 역사적 싸움과 불가분의 것이라는 점에 대해서도—독자의 성찰을 촉발한다. 일제 치하 재일조선인 문인은 말할 것도 없이 미국, 독일, 러시아, 중국 등으로 산개하여 민족어를 포기하고 그 나라와 지역의 언어로 창작한 작가들의 작품에조차 민족과 민족감정이 본질 대 구성의 이분법을 넘어서 강렬하게 발동할 수 있다는 사실을 실례를 들어 논한 것이다.

한마디로 염무웅이 소개한 디아스포라 작가들은, 2025년 현재 민족문학을 하나의 개념으로 성립시키는 역사적 현실과 모순이 전혀 ‘해소’되지 않았음을 재차 확인해주는 존재들이다. 그렇다면 K문학도 민족문학의 자산과 성취를 섬세하게 살피고 묻는 작업 속에서 그 의미를 새롭게 성찰할 필요가 있다. 만약 그 경우라면 “민족문학의 시대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는 문장도 그만큼 문제적이다. 아직 끝나지 않은 민족문학의 시대에 민족문학이라는 말이 K문학에 휩쓸리는 현상을 어떻게 생각해야 하는가? 어떤 경우든 분단체제의 엄존을 환기하는 이 물음을 손쉽게 해소해서는 안 된다고 본다.

그같은 물음의 길에서 헤매지만 않는다면 이 책의 뒤표지에 적힌 “배타주의와 독선을 배제한 민족문학”에 대해서도 우리는 더 솔직하고 담백하게 성찰할 수 있으리라 믿는다. 싸움의 한복판일수록 주변을 둘러볼 여유와 관심을 갖기 어려운 것이 인지상정이다. 왕년의 민족문학이 유신체제 및 군사독재와 맞서는 과정에서 그러한 여유와 관심이 전혀 없었다고 주장한다면 그것도 과도한 비판일 테다. 하지만 가령 서론에서 거론한 최인훈의 문학만 해도 비평으로서의 진인사(盡人事)를 과연 어디까지 했는지 되물어볼 줄 알아야 한다. 요컨대 남과 북을 아우르는 현대문학사의 구상을 새로운 마음으로 시작하기 위해서라도 (특히 1970년대 이후 전개된) 민족문학과 민족문학론의 실제 성취를 정당하게 평가하면서 그런 성취에조차 배타주의와 독선이 있었다면 구체적으로 그것이 무엇인지도 좀더 진중하게 생각해볼 일이다.

그렇다면 앞서 인용한 ‘예술 위에 군림하는 관념’의 실상에 대해서도 한두마디만 덧붙일 필요가 있겠다. 1980년대 문학에 그런 관념이 승했다는 것을 부정하기 위해서가 아니다. 오히려 『역사 앞에 선 한국문학』을 읽으면서 실감한 염무웅 비평 60년의 진경(眞境)이 20세기 민족문학의 최량의 성취에 대한 치열한 성찰에만 있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첨언이 필요하다는 취지다. 염무웅의 삶과 비평은 이제는 과거지사가 되어버린—그래서 사람들도 무심해져버린—1960~80년대 한국문단사의 빛나는 연대의 순간들도 그 나름으로 더 나은 세상을 향한 ‘문학적 싸움’이었음을 자상하게 밝히고 있다. 어쩌면 그런 싸움이 ‘작품’으로도 지속될 수만 있다면 한국문학, K문학, 민족문학을 두고 오가는 언설들은 모두 부질없어질지도 모른다. 중요한 것은 민족문학이라는 방편을 빌린 작품들이 오늘날에도 생생하게 살아 있다는 사실 자체다.

어스름하게 깔리는 생의 낙조와 마주하면서 염무웅이 혼신을 다해 읽고 써낸 것도 결국 그 ‘살아 있음’이다. 어떤 비평도 그와 같은 읽기와 쓰기가 따르지 않는다면 역사적 실천에 값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렇다면 ‘텍스트 바깥의 진실’을 기억하면서 그 자신의 애틋한 인연과 추억에서 출발한 평문들이 사사로움을 넘어선 비평의 경지에 도달한 것도 역설만은 아니다. 그런 실천으로서의 비평도 결국은 사람의 일이고 진정한 애정과 사심없는 비판이 없이는 그 어떤 문학의 역사(役事)나 평가도 참다워지기 어렵기 때문이다. 이 졸문이 염무웅 선생의 비평세계로 들어갈 수 있는 작은 오솔길이나마 되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유희석

저자의 다른 계간지 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