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기구독 회원 전용 콘텐츠
『창작과비평』을 정기구독하시면 모든 글의 전문을 읽으실 수 있습니다.
구독 중이신 회원은 로그인 후 이용 가능합니다.
소설
김윤영 金倫永
1971년 서울 출생. 1998년 「비밀의 화원」으로 제1회 창비신인소설상 입선. 작품으로 「그때 그곳에선 무슨 일이 일어났나」 등이 있음. yoon2828@hitel.net
루이뷔똥
1. 마드무아젤 송
뉴욕 세계무역쎈터 건물이 무너지고 있던 바로 그 시간, 지구 반대편에 있는 빠리에선 세미가 사기를 당했다. 정확히 표현하자면 사기를 당했다는 것을 그때 막 깨닫는 중이었다.
세미가 앉아 있던 곳은 샹젤리제 거리 맞은편에 있는 까페 뒤마쎄였다. 늦은 점심을 기다리며 멍하니 앉아 있는 그녀에게 까페오레와 크루아쌍을 갖다준 웨이터 뽈이 지나가듯 한마디를 했다.
“들었어? 뉴욕이 불바다가 됐대.”
그 말은 자동차 클랙슨 소리에 묻혀 잘 들리지 않았고 세미는 어차피 큰 관심도 없었다. 식은 커피를 꿀꺽 삼키면서 문득 이런 생각을 하긴 했다. 뉴욕이라…… 나도 4년 전에 거기 있었는데…… 그러고 보니 그동안 참 많이도 돌아다녀봤구나, 그런 감회가 새삼 들었다. 뉴욕, 런던, 로마, 쮜리히, 프랑크푸르트, 뮌헨, 빠리 그리고 서울. 그 대도시들의 인상은 거의 비슷했다. 차선이 바뀌고 택시 모양이 바뀌고 경찰 복장이 바뀌고 브렉퍼스트의 메뉴가 조금씩 바뀔 뿐, 구하고자 하는 건 어디서든 다 구할 수 있었다. 돈만 있으면 말이다.
물론, 그렇지 않은 것도 있긴 했다. 어느 나라, 어느 도시도 빠리에서만큼 루이뷔똥이 흘러넘치진 않는다.
여느때 이 시간이었다면 세미는 점심을 이미 먹고 개선문 앞이나 라데팡스, 오페라, 쌩 미셸 거리 등에서 이스트팩이나 쟌스포츠, 가짜 프라다 가방을 멘 누런 얼굴들을 열심히 물색하고 있었을 것이다. 거기서 별 재미를 못 보면 할 수 없이 이 샹젤리제 거리로 돌아오겠지만 요즘은 너무 많은 경쟁자들과 경찰들과 추적반이 뒤섞여 있어 가급적 이 거리는 피하고 있다. 내키면 아침 일찍 샤를르 드골 공항이나 리옹역이나 오스떼를리츠역으로 원정을 나가기도 했다. 처음 프랑스 땅에 발을 디딘 배낭여행객들은 세미가 한국말을 한다는 사실만으로도 쉽게 경계심을 풀었다. 단지 가까운 메트로의 위치를 가르쳐주거나 열 장 묶음 까르네를 대신 사주거나 흔하디흔한 메트로 맵을 한장 쥐여주기만 해도 그들 대부분은 오후에 샹젤리제 거리의 맥도널드 앞으로 나오곤 했다. 그들이 꼭 신의있는 젊은이라서만은 아니었다. 말로만 듣던 루이뷔똥 알바가 어떤 건지 궁금하기도 한 한편, 잘하면 몇시간 만에 7〜8백 프랑이라는 거금을 벌 수도 있다는 말에 귀가 솔깃해서일 것이다.
세미가 처음 이 일을 시작한 일년 전만 하더라도, 사람들은 대단한 불법이라도 되는 듯 쉬쉬했고 마지못해 따라온 여행객들도 큰 모험이라도 하는 듯 비장해했지만 지금 그런 모습은 거의 보이지 않는다. 자기도 하고 싶다며 자원해서 따라오는 학생들이 있는가 하면, 사례비를 받기도 전에 어디다 쓸까부터 고민하는 학생들도 꽤 있었다. 심지어 자기가 가진 골드카드를 쓰겠다는 대담한 족속도 있었다. 루이뷔똥은 한 매장에서 한 사람당 두 개씩밖에 팔지 않고 그것도 여권 조회를 하기 때문에 손님이 애걸해야 겨우 물건을 내주는 도도한 영업방침으로 유명했다. 그 덕에 루이뷔똥을 대신 사다주는 이 특이한 아르바이트가 성행하게 된 것이다.
교포들의 눈은 좀더 미묘했다. 빠리대사관 영사과나 외환은행 광고판에는 점잖게 나라 이미지를 걱정하는 글들이 즐비했고 한때 대사관에선 루이뷔똥 아르바이트를 금하는 통지문을 민박집에 죄다 보냈다고 한다. 유학생들은 여름을 기다려 민박을 쳤고 사철 민박업을 하는 교포들은 상당수 루이뷔똥업자들과 관련이 있었다. 제 발로 찾아오는 학생들은 그런 민박집에서 유인한 아이들이었다. 빠리에 있는 한인민박 백여 군데 중 알바를 안 시키는 집이 오히려 얼마 안될 거라고들 했다. 거부감을 느끼는 교포들도 많지만 커미션이 만만치 않다는 것은 이 바닥에서 누구나 알고 있는 사실이다.
판수는 세미가 아는 한국 사람 중 가장 과격한 반대론자였다.
“길 가는 사람에게 호객행위를 하다니 창녀와 다를 게 없잖아?” 하며 삐갈 거리 창녀랑 비교까지 해가며 야비하게 이죽거렸다. 그런 그가 보기 싫어 세미는 불어로 욕을 했다. 판수는 그걸 못 알아들었다. 한국을 떠난 지 육년이 넘었다지만 그는 불어가 유창하지 못했다. 가이아나나 코소보 등지에 나가 있었기 때문이라고 하지만 세미는 정말로 그가 외인부대 출신인지 가끔 의심스러웠다. 남자들의 무용담이라는 게 다 비슷비슷하게 들려서이기도 하지만, 그는 군대가 아닌 감옥에 있다 나온 사람처럼 보였던 것이다.
그의 전우였다는 아랍계 장정 둘이 세미와 판수가 사는 집에 놀러 왔을 때, 판수를 까뽀랄 므슈 리라고 반갑게 부르는 걸 보고서야 세미는 비로소 그런가보다 했다. 한명은 희디흰 께삐블랑에 각종 훈장을 주렁주렁 달고 집채만한 더플백을 메고 있었고 두 사람 다 걸음걸이가 판수와 비슷했다. 그들과 함께 판수는 잘하지도 못하는 영어·불어와 다른 외국어를 섞어가며 밤새도록 싸구려 와인을 마시면서 떠들어대곤 했다. 가끔은 호기롭게 리도쇼를 보러 간다며 밤에 나서기도 했다. 그들의 국적은 기억나지 않지만 늘상 ‘퍽 큐 아메리카’를 입에 달고 다녔고 덩달아 판수도 미국을 욕하곤 했다.
판수가 욕하는 나라는 미국만이 아니었다. 오년을 꼬박 몸바쳐서야 겨우 시민권을 얻은 프랑스도 그에겐 고까운 나라였다. 한국을 어떻게 생각하는진 물어본 적 없지만 김대중이 북한을 방문해 김정일과 악수하는 뉴스가 나올 때, 세미는 판수에게 약간 놀랐다. 그는 시금털털하게 웃으면서 이렇게 중얼거렸다. “보기 싫군. 둘 다 콱 망해버려라.”
그가 한국 사람을 꺼린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북한 사람들까지 싫어하는지는 몰랐다. 루이뷔똥을 넘겨줄 때마다 연락해오는 영변댁의 전화에 판수가 질색하긴 했다. 그 아줌마는 북한 사람이 아니라 중국 동포라고 얘기했건만 똑같은 빨갱이 나라에다 한 핏줄이나 마찬가지니 그게 그거라고 그는 우겼다. 판수가 북한 사람들을 무시하는 이유가 하나 더 있었다. 프랑스 외인부대가 받아주지 않는 나라는 제대로 된 나라가 아니라는 것이다. 판수에게 호오(好惡)의 기준은 그렇게 단순했다. 본 적도 없는 영변댁을 그렇게 싫어하는 이유는, 그 여자의 목소리에선 왠지 구린내가 난다는 점 때문이었다. 그러면서 세미에게 영변댁 여권을 꼭 확인해보라고 했다. 분명히 중국에서 한국인 여권을 갈취하거나 위조해 빠리에 왔을 거라며 대사관에 알아보라고까지 했다. 그리고 아무 대꾸도 안하는 세미에게 판수는 이렇게 으르렁거렸다.
“너같이 편하게 산 여자는 진짜 세상이 어떤지 몰라.”
영변댁을 처음 만난 날을 세미는 잊을 수가 없다.
입천장이 까질 정도로 딱딱한 장봉 쌘드위치나 베트남 국수에 질릴 때면 세미는 13구에 있는 차이나타운에 들러 볶음밥을 사먹곤 했다. 하필이면 그날, 늘 보던 맘씨 좋은 주인 대신 무뚝뚝한 한 노인이 가게를 지키고 있었다. 그런데 계산이 뭐가 잘못됐는지 그는 계속 중국어로 툴툴거렸고 불어도 영어도 할 줄 모르는 그이가 답답해 세미가 한숨을 쉬자 노인은 화를 내기 시작했다. 바로 그때, 어디선가 튀어나온 중년여자 한명이 재치있게 통역을 해주었고 단돈 2프랑이 모자라서 화를 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가게를 나와서도 ‘메르씨’를 연발하는 세미에게 그 여인은 이렇게 또박또박 대답했다. “괜찮아요. 거기도 한국 사람 맞죠?”
영변댁의 억양은 강하지 않았지만 차림새는 조선족다웠다. 이년 전까지 중국 심양에서 살았지만 할아버지의 고향이 평안북도 영변(寧邊)이기에 자기를 영변댁이라고 부른다며, 아가씨도 김소월의 시에 나오는 영변을 아느냐고 물었다. 김소월이라니, 너무도 오랜만에 들어보는 그 이름에 세미가 주춤거리는 사이, 영변댁은 한번 놀러 오라며 연락처를 쥐여주었다. 먼 친척 할머니가 빠리 외곽에서 민박집을 운영하는데 영변댁은 거기서 일을 돕고 있다고 했다. 민박집 이름은 ‘통일민박’이었다. 영변댁은 김치찌개라도 새로 끓이면 세미를 불렀고 점차 세미는 영변댁이 해주는 칼칼하고 구수한 육개장이나 청국장 맛에 익숙해졌다. 영변댁은 가끔 세미에게 은행심부름을 부탁했고 뭘 믿고 이런 걸 시키느냐고 세미가 물으면, 자기는 사람 보는 눈이 있다며 호탕하게 웃었다. 영변댁은 민박집 밥을 해주는 틈틈이 가방을 수집했는데, 사실 그것이 영변댁의 주업이었다.
그렇게 해서 일은 시작되었다. 영변댁이 들고 온 현금뭉치와 아멕스 수표뭉치를 처음 받던 날, 너무 떨려서 도저히 못하겠다며 도리질을 치는 세미에게 영변댁이 물었다.
“미스 송은 언제까지 그 짐승 같은 남자랑 살 거야? 빨리 돈 벌어서 꼬르동 블뢰(Cordon Bleu)에서 요리를 배우겠다고 하지 않았어? 이걸로 여름 한철이면 5만 프랑은 벌 텐데 왜 주저하지?”
판수를 짐승 같다고 생각한 적은 없다. 다만 말이 너무 안 통한다고 느낀 적이 많았을 뿐이다. 권위있는 요리학교인 꼬르동 블뢰에 다니고 싶다고 생각한 적은 많았다. 환상적인 몽블랑 케이크나 꾸스꾸스, 훈제연어 따르따르, 푸아그라, 에스까르고 등등을 척척 만들어보고 싶었다. 왜 하필 요리를 배우고 싶냐고 묻는다면 특별한 답은 없다. 그냥 하고 싶을 뿐이다. 유학생들에게 불어교습을 하는 것만으로는 생활이 힘들었고 더이상 샤넬이나 크리스띠앙 디오르 매장에서 일하는 것은 지겨웠다. 서울 집에다 부탁하는 건 더 끔찍했다. 다니던 멀쩡한 직장 때려치우고 빠리로 날아온 세미는 거의 내놓은 자식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하고 싶다가도 누가 강요하면 움츠러드는 것이 세미의 천성이었다. 학교 다닐 때도 그랬다.
세미야 이 수업 끝나고 잠깐 보자, 학회모임이 있으니 꼭 와라, 오늘 서총련 집회 있는 것 알지? 전학대회가 있으니 빠지면 안된다……
세미의 대학생활은 사람들을 피해다니다 끝났다. 학년이 높아지면서 동기들을 피해다녔고 나중에는 목소리 큰 후배들을 피해다녔다. 졸업하고 나선 동창회나 동문회 근처에도 가지 않았다. 그러다 결국 여기까지 오게 된 게 아닌가, 세미는 가끔 그런 생각을 한다. 좌파떨거지들이 없는 곳을 찾으려고 떠난 것은 분명 아니었는데 말이다.
어느날 에펠탑이 보이는 샤이요궁 앞에서 바게뜨를 우물거리며 먹고 있는데, 대학시절의 한 선배와 정면으로 부딪쳤다. 이제는 중년의 틀이 박힌 그 선배는 단체관광팀 속에 끼여 있었고 세미를 알아보자 당황해하는 듯했다. 세미는 선배 이름이 기억 안 나서 당황했다. 선배는 세미에게 어떻게 사느냐, 여긴 왜 왔느냐 그런 것은 일절 묻지 않고 자기는 분당에서 부동산을 하고 있고 일행도 같은 업자들이라며 그들을 일일이 소개해주었다. 그러면서 그는 이런 얘기를 했다. 자세히 보니 그의 얼굴은 낮인데도 약간 불콰해져 있었다.
“이런 데서 널 보다니 정말 실감이 안 난다. 하긴 사는 게 다 그렇지. 나도 내가 이렇게 살게 될 줄은 몰랐으니까. 옛날엔 집장사라고 하면 천박한 자본주의 운운하면서 꺼렸겠지. 우린 그때 참 대단했어. 넌 늘 지쳐 보였는데…… 지금은 안 그런 것 같구나.”
그때서야 그와 함께 과방 한구석에서 밤을 새며 대자보를 쓰던 기억이 떠올랐다. 그와 친한 사이는 아니었지만 그는 이해심이 많은 선배에 속했다. 씨스템에 저항하고 개인에게 엄격했던 선배들은 항상 세미를 다그쳤다. 세미는 늘 한 박자가 느렸다. 남들이 다 맞다고 하는 얘기도 뼛속 깊이 이해하기 전에는 믿지 않았다. 세미가 그 씨스템에 뒤늦게 의문을 품기 시작했을 때 그들은 흩어지고 있었다. 십년 만에 만난 선배와 세미는 어색하게 몇마디를 나누다가 곧 헤어졌다.
며칠 후 세미는 영변댁의 강한 후원 아래 루이뷔똥 수집상의 길로 들어섰다. 그리고 지금은 그 믿었던 영변댁에게 가진 돈 전부를 사기당했다.
며칠 전부터 영변댁은 핸드폰이 깨졌다며 연락처를 가르쳐주지 않았고 그 많은 사람들 중 누구도 영변댁이 있는 곳을 알지 못했다. 찾아간 ‘통일민박’은 문을 닫은 지 오래됐다고 했다. 원래 이 계통이 점조직이라곤 해도 영변댁의 자취는 묘연하기만 했다. 자초지종을 들은 사람들은 영변댁이 이미 빠리를 떴을 거라며 세미에게 포기하라고 했다. 사실 세미가 한 일이라곤 이틀 동안 샹젤리제 거리 길목에 지키고 앉아 “아이쿠 미안해, 오래 기다렸지?” 하며 그녀가 나타나주길 기다린 것뿐이었다. 그러나 그녀는 나타나지 않았다.
세미가 문득 정신을 차린 것은 어디선가 불자동차 소리가 시끄럽게 울려서였다. 옆 테이블의 혼혈인지 아랍계인지 확실치 않은 청년들이 미국은 당해도 싸다는 듯 유쾌하게 떠들며 맥주잔을 들어 건배하고 있었다. 어떻게 그런 무지막지한 작전을 짰을까, 그들은 감탄하고 있었고 세미는 그들의 대화를 통해서 펜타곤도 박살났다는 걸 알게 되었다. 타락한 자본주의의 상징, 갑자기 이 말이 머릿속에서 맴돌았고 한국에 있는 좌파떨거지들은 어떻게 생각할까, 문득 궁금해졌다. 최소한 그들은 뉴욕이 불바다가 됐다고 건배를 하고 있지는 않을 것이다.
세미는 50프랑짜리 지폐 하나를 테이블 위에 올려놓고 까페를 나와 천천히 걷기 시작했다. 어디로 가야 할지 막막했다.
다시 판수를 찾아갈 수도 있지만, 그건 너무 뻔뻔한 일이었다. 어디 사는지도 정확히 알지 못했다. 처음부터 그가 옳았는지도 모른다. 영변댁의 신분을 제대로 알아놓기만 했다면 이렇게 막막하진 않을 텐데…… 판수가 이런 나를 보면 과연 뭐라고 할까 생각하며, 그가 지금 어디서 뭘하고 있는지 문득 궁금해졌다.
불자동차 소리가 조금씩 멀어져갔다.
세미는 소리가 나는 방향으로 자신도 모르게 걷고 있었다.
2. 까뽀랄 므슈 리
판수가 낮잠을 깬 것은 TV 소리 때문이었다. 한낮에 웬 TV를 켜놨나 싶어 거실로 나가보니 고층건물 두 채가 폭삭 주저앉는 광경이 나오고 있었다. 하숙생 한명이 인터넷을 하다가 우연히 알고 TV를 보게 되었다며 어리둥절해하는 판수에게 자리를 내주었다. 출장온 회사원, 어학연수생, 하릴없는 백수 등 장기체류자들은 이 ‘서울민박’에서 함께 하숙하는 처지였다. 지금 이들은 다 함께 액션영화를 보는 듯했다.
“역시 팔레스타인은 대단해.” “에이, 걔네라는 증거가 아직 없잖아요.” “그럼, 미국에 한 맺힌 놈들이 한둘이겠어?” “그런데 저기 깔린 사람들은 대체 몇명이야?” “돈 잘 버는 미국놈들이 저렇게 당하는 날도 다 있군.” “무슨 소리, 무슨 죄를 지었다고 사람들을 저렇게 죽여? 천벌받을 일이지.”
판수는 처음에 좀 놀라긴 했지만 오죽했으면 저렇게 자살테러까지 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프랑스 외인부대가 아무리 대단하다 해도 미국이 자행하는 것들에 비하면 어림도 없다는 것쯤은 판수도 알고 있었다. 이라크인지 시리아에서 온 부대 동료들은 상상도 못할 놈들이 양키놈들이라며 치를 떨곤 했다. 어차피 돈 많은 나라들은 다 똑같다고 그는 생각했다. 한국도 더 잘살게 되면 그들보다 더하면 더했지 못할 리 없는 것이다.
밥하는 아줌마는 판수를 보더니, 점심을 차려주겠다며 부엌으로 들어갔고 판수는 혼자만 상을 차리게 해 미안했지만 식사하러 들어갔다.
“이씨는 저기 뉴욕에 뭐 아는 사람 없수? 수천명인지 수만명이 깔려 죽었다는구만.”
“뭘요, 저 같은 놈이 그런 데 아는 사람이 있겠습니까.”
들어온 지 얼마 안된 밥하는 아줌마는 인심 좋고 음식도 잘하는데다 조선족치고는 눈썰미가 좋았다. 언뜻 보기엔 서울 사람 같을 정도로 말투가 사근사근했고 조선족 특유의 억양은 아주 가끔 튀어나오는 정도였다. 하숙집 주인 부부와는 한달 전쯤 길에서 우연히 알게 된 사이라는데 먼저 있던 민박집이 문을 닫는 바람에 졸지에 여기로 왔다고 했다. 그러나 여긴 잠시 있을 뿐이고 친척들 사는 남쪽 나라로 곧 떠날 것이라고 했다. 그렇게 수다스러우면서도 자기 얘기는 통 하질 않는 이상한 아줌마였다. 아줌만 손이 왜 이렇게 커요, 밥 좀 살살 퍼요 하고 주인여자가 퉁을 놓으면, 아이구 이게 뭐 많이 주는 거라고, 내가 전에 있던 ‘통일민박’에선 이 정돈 아무것도 아녔어, 이래가지고 무슨 장사를 한다고, 하며 혼자서 중얼거리는 정도였다.
판수가 이 하숙집에 들어온 것은 겨우 한달 전이었다. 세미가 갑자기 이젠 더이상 같이 살고 싶지 않다고, 자기가 방을 얻어 나가겠다고 말했다. 차라리 내가 나가겠다고 하며 판수가 짐을 싸서 찾아온 곳이 바로 여기다. 술집 보디가드를 할 때 알던 친구가 하숙밥이 싸고 먹을 만하다며 알려준 곳이었다. 하숙을 주로 했지만 여름 한철엔 민박이 더 많았다. 여름이 다 끝나가고 있어서 이제 학생들은 그리 많지 않았지만 판수는 그들을 볼 때마다 늘 마음이 불편했다. 세미보고 세상물정 모른다고 혀를 찼지만, 여기 들락거리는 아이들을 보고 있으면 기가 찼다. 저 어린 나이에 유럽여행을 오다니, 도대체 뭐하는 집 자식들인지 궁금했다. 개중에는 착실히 적금 부어 왔다는 여학생이나 막노동해 번 돈으로 왔다는 나이든 복학생도 있어 참 기특하구나 싶었지만, 대부분은 아니올시다였다. 사람들이 줄서서 기다리는 데도 아랑곳없이 한 시간씩 욕실을 쓰는 계집애들, 엄마 준다고 테팔 프라이팬에 은식기까지 바리바리 싸들고 출국하는 애들, 다음 여행코스를 쮜리히로 잡느니 바르셀로나로 잡느니 하며 밤새 떠드는 철딱서니없는 사내자식들 등 가지가지였다. 물론 판수는 아무 내색도 하지 않았다.
“고국 애들 등쳐서 가방이나 빼돌리다니…… 걔네들 여권번호 다 찍혀서 블랙리스트에 오른다면서? 너는 양심도 없냐?” 하고 세미에게 면박을 줬던 게 바로 얼마 전 일이다. “블랙리스트? 그 수십만명이 다 블랙리스트에 오른다고? 이 세상이 당신 생각처럼 그렇게 다 음모적인 줄 알아? 쟤네들은 그 비싼 루이뷔똥 매장 구경하는 것만으로도 희희낙락하는 애들이야. 자기 것 산다고 몇천 프랑씩 척척 쓰는 애들도 있어. 구질구질하게 굴지 좀 마.” 세미는 그렇게 말하면서도 설마 프랑스 경찰이나 루이뷔똥 본사에서 무슨 해코지를 하진 않겠지, 하는 걱정스런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판수는 한국으로 돌아가는 게 낫지 않겠느냐고도 설득했지만 세미는 말없이 도리질만 쳤다. 한국 사람들보다 조선족들이 더 편하다고 했다. 판수는 어림도 없는 소리라고 윽박질렀다. 아닌 사람도 있지만 대부분 배 타고 몰래 밀입국한 그들은 못할 짓이 없었다. 중국 마피아에게 사채로 여권을 사서 다달이 그 이자를 갚느라 등골이 휜다는 조선족들 얘기는 심심찮게 들었다. 절박한 사람들의 심정을 세미가 알 리 없었다. 그리고 세미는 모질지도 못했다. 그건 세미가 할 만한 일이 아니었다.
판수는 이런 말까지 했었다. “내가 돈을 빌려줄게, 그걸로 꼬르동인지 우동인지 하는 학교에 다녀. 그렇게 벌어서 맘이 편할 것 같애?” 꼿꼿하게 도리질만 하는 세미의 마음을 판수도 알고는 있었다. 무식한 판수를 경멸하기는 해도 총대메고 피땀흘려 번 돈을 쓸 수는 없다고 생각하는 듯했다. 세미는 그런 여자였다. 남을 등치고 살거나 얼렁뚱땅 넘어가지 못했다.
일년 전 술집에서 처음 만난 날도 그랬다. 판수는 자작하고 있었고 그 옆에서 세미 일행이 술을 마시고 있었다. 그날 판수의 계산서에는 엄청난 액수가 적혀 있었다. 판수가 놀라고 있는 그때 세미가 다가와 조심스럽게 자기 쪽 계산서를 내밀었다. 알고 보니 계산서가 바뀌었던 것이다. 다른 사람이라면 그대로 모르는 척 지나갔을지 모르지만 세미는 그러지 않았다.
자기 집에 들어와 살라고 말한 것은 판수였다. 만난 지 석달이나 지난 후였고 방세도 꼬박꼬박 내라는 조건이었지만 세미는 부담스러워했다. 세미는 그때 화장실을 공동으로 쓰는 백년 된 아파트에 살고 있었다. 난방이나 방음이 하나도 안되고 배관시설도 모두 엉망이라 밤에 화장실 물을 내리면 집주인이 뛰어올라오곤 했다. 변비에 시달리던 세미는 판수의 집을 보고는 너무나 부러워했다. 판수의 집은 코소보 내전에서 함께 근무했던 전우가 싸게 넘겨준 것이었다. 외인부대의 의리는 한국 해병대의 의리보다도 윗길이었다. 그만한 아파트를 판수 같은 이방인이 얻기란 거의 불가능했다. 그런 조건이 흔치 않다는 걸 알면서도 세미는 주저했다. 세미가 자신의 눈길을 부담스러워한다는 걸 판수도 모르지 않았다.
가이아나에서 근무할 때 여자들을 사귀긴 했지만 그건 그저 여자의 몸이 필요해서일 뿐이었다. 아마존의 끈적끈적한 장신의 여자들은 외인부대원을 다 봉으로 생각했다. 그 여자들에 비하면 세미는 판수에게 과분했다.
눈만 감으면 생각나는 남미의 가이아나, 아리앙로켓 발사기지를 지키던 외인부대 13연대, 영화 빠삐용의 무대였다는 그 악명높은 정글의 기억은, 세미에게 말하는 것조차 끔찍스러웠다. 코소보에서 정찰을 하던 얘기쯤이야 얼마든지 할 수 있지만 가이아나에 관한 이야기는 뭘 어떻게 말해야 될지 몰랐다. 세미 같은 여자는 상상하려 해도 상상이 안될 것이 뻔했다. 그러고 나니 세미에게 별로 할 얘기가 없었다.
한국에서 판수는 선반공이었다. 부모 덕이 있나 배운 게 있나, 늘 입에 달았던 푸념처럼 그렇고 그런 인생이었다. 여상을 중퇴한 철모르는 날라리 계집애 하나 꿰차고 살림을 차린 적도 있다. 이게 알콩달콩 사는 거구나 싶을 때 계집애가 도망가버렸고 술 먹고 싸우다 공장에서도 짤렸다. 세상 사는 게 다 좆같다고 생각하던 어느날, 판수는 무작정 빠리행 비행기를 탔다. 특별히 빠리행을 택한 이유는 없었다. 정말로 무작정이었다. 그래도 굳이 이유를 단다면, 미국비자 얻기가 너무 힘들었기 때문이다. 빠리에 도착한 초기엔 노동허가증이라도 얻으려고 별별 잡일을 다 했다. 특히 시내 개똥 청소부 일을 제일 많이 했다. 내가 개새끼 똥이나 치우려고 여기까지 왔나 하고 이를 갈던 어느날, 자신은 결국 수많은 흑인, 아랍인, 베트남인, 러시아인 들처럼 영영 불법체류자로 살아갈 수밖에 없다는 걸 깨달았다. 서울이나 빠리나 다를 게 없구나 싶었다. 그때 누군가가 외인부대 얘기를 해주었다. 죽으란 법은 없구나 싶어 바로 외인부대에 지원했다. 그것도 쉽지 않았다. 불어를 잘 못하는데다 수십가지의 신체검사를 받으면서 판수는 안될 것 같다고 생각했다. 말레이시아에서 온 청년은 한번 골절된 전력 때문에 떨어졌다고 했고 콜롬비아 청년은 마약조직에 연루된 적이 없는지 면접관이 하도 집요하게 묻는 통에 안될 것 같다고 했다. 그런데 판수는 한번에 붙었다. 훈련이 너무 힘들어 관둘까도 생각했지만 결국 이를 악물고 버티기로 했다. 그후 뚝딱 오년이 지났다. 근무연장을 해서 중사까지 해보라는 소리를 듣기도 했지만 판수는 하사에 만족했다. 빨리 바깥세상으로 나가고 싶었던 것이다. 떳떳하게 시민권을 가지고서 경찰을 피해다니지 않아도 되는 그런 세상에서 살고 싶었다. 그러던 차에 세미를 만났다. 그는 새로운 생활이 시작되리란 기대 때문에 사춘기 소년처럼 가슴이 울렁거리기까지 했다.
하지만 세미는 달랐다. 뭘 생각하는지 통 알 수가 없는 이 조그만 여자는 판수를 그런 상대로 보지 않았다. “사랑이라니, 지겨워 그런 말은” 취한 세미는 그렇게 중얼거렸고 판수를 가여운 듯 쳐다보았다. 그때부터였을 것이다. 판수는 자신이 얼마나 악랄해질 수 있는지 알고 스스로도 놀랐다.
루이뷔똥 수집상의 길로 나선 세미를 그렇게 결사적으로 말린 건 특별한 이유가 있어서가 아니었다. 경찰을 피해다녀야 하는 생활이 안쓰러운 것은 사실이지만 거리의 창녀들이 몸을 팔고 웃음을 팔듯이 세미가 나이 어린 여행객들에게 자기를 파는 것 같아 그냥 견딜 수가 없었고, 그렇게 돈을 벌면 곧 자기를 떠날 것 같은 생각이 막연히 들었던 것이다. 그리고 판수의 직감에 의하면, 그런 일은 쉽게 발을 뺄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었다. 세상은 마약과 같이 서서히 중독되는 일들로 가득 차 있다. 세미를 그런 세상에 살게 하고 싶지 않았다.
판수는 육개장 한그릇을 쓱싹 비우고 얼른 설거지까지 해치웠다. 새로 온 아줌마는 그럴 필요가 없다고 했지만 그냥 나오긴 미안했다. 판수가 거실로 나오니 하숙생들이 한창 뭔가를 떠들고 있었고 그걸 듣고 서 있는 아줌마의 얼굴빛이 어두워 보였다. “글쎄, 이런 일 한번 터지면 여기까지 불똥이 튄다니깐요. 유럽의 중심이 빠리 아닙니까. 이제 조금만 이상하고 꾀죄죄한 아랍애들은 밖에 나가기만 하면 검문을 당할걸요. 작년에 제노반가 제네반가에서 무슨 회담 했을 때도 그랬잖아요. 기차역이랑 공항이랑 쫙 깔려서 오도가도 못하게 하고…… 우리 같은 동양인은 안심 못하죠.”
하긴 몇년 전 시내 로커에서 폭탄이 터진 후 아예 로커를 없앤 나라니 그럴 수도 있을 것이다. 판수가 뭐 도와드릴 일이 없느냐고 아줌마에게 물으니 그녀는 무슨 그런 소리를 하느냐며 정색을 했다. 이씨가 담배를 피워, 방을 어질러, 내 손 갈 일도 거의 없는데 뭘 또 도와주느냐며 손사래를 쳤다. 어서 좋은 여자나 만나 정착해야지, 맨날 하숙밥이나 먹고 살아서 어떡한데…… 하고 짐짓 걱정하는 듯한 표정이었다.
“웬걸요, 저도 얼마 전까지 한국 여자랑 같이 살았어요. 그런데 이제 제가 싫어졌답니다. 그래서 제가 나왔어요.” 판수가 별 생각 없이 흘린 이 말에, 아줌마가 눈시울까지 붉힐 줄은 몰랐다. “아이구 세상에 이렇게 좋은 신랑감을 빠리 어디서 찾는다고……” 손까지 꼭 부여잡는 아줌마를 보니 왠지 판수는 가슴이 찡했다.
슬며시 자리를 피한 판수는 조심조심 현관 밖 계단을 내려왔다. 그리고 바지 뒷주머니에 찔러넣은 담배 한개비를 꺼냈다. 사람들은 모르고 있었지만 판수는 가끔씩 정원 한구석, 반지하 창고 앞 후미진 구석에서 혼자 담배를 피우곤 했다. 숨기려고 해서 숨긴 것은 아니었다. 어쩌다보니 그렇게 된 것뿐이었다. 오늘따라 창고 문이 빠끔히 열려 있는 게 보였다. 판수가 슬쩍 들여다보았지만 커다란 종이박스들 외엔 어두워서 잘 보이지 않았다. 상자마다 칙칙한 색깔의 비닐뭉치 같은 것들이 그득하게 차 있었다. 식품저장실이 따로 있으니 야채나 과일일 리는 없을 테고 저게 다 뭘까, 하고 고개를 갸웃거리는데 문득 세미가 했던 얘기가 떠올랐다. 세미는 루이뷔똥을 저런 평범한 종이박스에 담아 옮긴다고 했다. 그러나 잠시 후, 쓸데없는 상상이란 생각이 들었다. 그럼 여기에 그런 게 왜 있을라고…… 판수는 창고를 나왔다. 그리고 담배에 불을 붙이며 며칠 전부터 쭉 고민해오던 일을 떠올렸다. 판수가 집을 나올 때 세미는 제발 얘기 좀 하자면서 판수를 붙잡았지만 판수는 아무런 말도 없이 문을 박차고 나왔다. 후회하지는 않지만 세미를 다시 보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다. 그렇게 끝내서는 안되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집문제도 해결을 보긴 보아야 했다. 판수가 다시 찾아가면 세미가 어떤 얼굴로 자기를 맞을지, 여전히 자기가 집을 얻어 나가겠다고 고집을 부릴지 알 수 없었다. 그래도 언젠가는 봐야 한다. 판수는 그걸 언제 해치울 것인지 궁리중이었다.
이제는 루이뷔똥을 사모으는 일을 말리지 않을 생각이다. 그래봤자 서로 피곤하기만 할 뿐이고 사실 그 일이 그렇게 위험하거나 흉한 일이 아니란 생각도 슬슬 들기 시작했다. 근거없이 조선족들을 헐뜯고 의심하지도 않을 생각이다. 그들만 순박하길 바란다는 게 말이 안되는 얘기였다. 세미 말대로, 세상엔 좋은 사람들도 많은 법이고 좋은 게 좋은 거지, 하며 살아갈 수도 있는 법이다.
‘그래 오늘 찾아가자 그새 세미 마음도 좀 변했을지 모르지……’ 판수는 피우던 담배를 황급히 끄고 일어났다. 세미는 늘 담뱃불을 제대로 끄지 않는다고 그에게 핀잔을 주었다. 불현듯 그 소리가 못 견디게 듣고 싶어졌다. 세미를 봐야 했다. 판수는 얼른 들어가서 옷을 갈아입고 나왔다. 그새 사람들이 모두 나가고 없었지만 주인이 하숙생들에게 하나씩 준 열쇠로 판수는 문을 잠갔다.
골목길을 하나 돌고 나서야 단추 하나가 떨어져나간 셔츠가 눈에 들어왔다. 내가 왜 이렇게 들떴을까 하는 생각에 괜히 쑥스러웠다. 다시 들어가서 갈아입고 나와, 아님 말어? 잠시 궁리하는 판수 눈에 어딘가에서 가늘게 피어오르는 흰 연기가 보였다. 저기가 우리 하숙집 쪽 아닌가, 0.1초 동안, 아주 잠깐 불길한 생각이 스쳤다. 그러나 판수는 다시 돌아섰다. 옷은 무슨, 관두자. 저건 어디서 바비큐라도 하는 거겠지. 판수는 이제 뛰기 시작했다.
3. 영변댁
영변댁이 나갔다 집에 들어왔을 땐, 아직 비행기가 무역쎈터 건물을 들이박는 TV 화면을 보기 전이었다. 왜 낮부터 하숙생들이 TV를 보고 있을까, 좀 이상하다 생각하면서 영변댁은 하숙생들이 점심 먹고 난 설거지를 하기 시작했다. 일을 끝내고 거실로 막 나왔을 때, 화면에선 건물이 무너지고 있었다. 아이고 세상에, 혀를 차면서도 영변댁은 다른 생각을 했다.
영변댁은 이틀 후면 여기를 떠 로마로 갈 예정이다. 모든 준비가 착착 이루어지고 있다. 그녀는 조선족이 주도권을 쥐고 있는 로마에서 민박집을 크게 열 계획이다. 청소부를 할 때 알고 지내던 부부와 함께 가기로 약속하고 기차표까지 끊어놨건만, 저 바다 건너 먼나라에서 벌어지는 일이 자신과 무슨 연관이 있지 않을까 싶어 공연히 불안해졌다.
하숙생들에게 살짝 물어보니 역시 빠리 경비가 삼엄해질 것이며 특히 아랍계는 운신이 힘들어질 것이라고들 했다. 영변댁과 함께 로마행 기차를 타기로 한 그 부부의 이름은 도미니끄과 까뜨린느였다. 하지만 그들은 누가 봐도 전형적인 아랍인의 얼굴을 하고 있었다. 남편 도미니끄는 전에 회교반군들과 관계가 있었다는 얘기를 얼핏 들은 것도 같다. 조선족들 사이에 아랍인들은 그리 평판이 좋지 않았다. 그들을 ‘낙타’라고 불렀고, 흑인들처럼 무식하고 질이 안 좋다며 무시하곤 했다. 그러나 영변댁은 그런 소문에 개의치 않고 그 부부에게 오랫동안 공을 들여왔다. 로마에 친척이 많은 도미니끄 부부는 영변댁과 동업 형식으로 일을 하기로 약속돼 있었다. 로마에 친한 사람이 없는 영변댁에게 그것은 썩 괜찮은 거래로 보였다. 지금 이 순간까진 말이다. 그런데 하필이면, 아랍 사람들이 표적이 될지 모른다니…… 확실치 않다는 건 아무 도움이 안된다, 뭔가 마음에 걸린다 싶으면 위험한 거다, 다시 한번 생각해보자, 하고 영변댁은 한숨을 내쉬었다.
오늘은 유난히 오전 일진이 좋아 며칠만 더 있다 갈까 행복한 궁리까지 했다. 아침 일찍부터 믿음직한 미끼들을 던진 덕에 단 두 시간 만에 루이뷔똥을 열여덟 개나 사들일 수 있었다. 그중 인기있는 모노그램라인의 사각 숄더백과 거북이백이 여덟 개나 되고 하늘의 별따기 같은 그래피티라인의 통자 숄더백까지 하나 건졌다. 사와봤자 별 소용 없는 비인기품목은 하나도 없는데다 핸드백, 남자 서류가방, 지갑 등도 어쩜 그렇게 귀한 것만 구해왔는지 입이 절로 벌어졌다. 개선문 뒤에서 픽업한 여학생들은 나이가 좀 있는 대학원생이었는데 옷차림도 깔끔하고 썬글라스나 목에 건 카메라나 부티가 나 보였다. 마치 한국 배낭여행객이 아니라 돈 많은 일본 관광객처럼 보였다. 그래서 모두 본점 VIP 매장으로 보냈던 것인데 예상이 적중했다. 두 시간이면 한 매장밖에 돌지 못하건만 그중 몇명은 너무 일찍 사가지고 와 샹젤리제 거리의 또다른 매장이나 갈르리 라파예뜨에 있는 매장까지 원정을 갔고 거기서도 성공을 했다. 머리들까지 좋아서 영변댁이 한번 보여준 카탈로그의 인기품목들을 콕콕 집어왔다. 나중에 들어보니 원래 한국에서도 프라다나 구찌, 쎌린느, 루이뷔똥 가방을 한번쯤 사봤던 터라 식별이 어렵지 않았다고 했다.
영변댁은 그런 한국의 젊은이들을 볼 때마다 신기하기도 하면서 묘한 감정이 들었다. 어쩜 저렇게 표정들이 밝고 행동에 스스럼이 없을까, 어쩜 저렇게 비싼 것들을 척척 알고 잘도 들고 다닐까. 우리 조선족들이나 동남아 애들은 매장에 들어가 눈총만 받다가 주는 대로 받아서 나오곤 했다. 한국 사람들처럼 점원에게 이것저것 보여달라고 해서 고른다는 것은 상상도 못하고 더욱이 VIP 매장 같은 데는 들어갈 엄두도 내지 못했다. 아무리 잘 차려 입어봤자 소용이 없었다. 한국 사람들은 가끔씩 차별을 받았다고 씩씩거리기도 하지만―카탈로그를 보여달라고 했다가 거절당한다거나, 점원이 가방은 안 보여주고 지갑들만 보여준다거나, 멀쩡한 현금은 안되고 신용카드만 된다며 무시를 당한다거나―워낙 한국인 알바가 많기 때문에 점원들이 고자세로 나오는 건 당연했다. 루이뷔똥 본사는 빠리 시내에 돌고 있는 위조지폐나 위조수표의 근거지라는 오명 때문에 골머리를 앓고 있었고 이것 때문에 경찰들도 들락거렸으니 그럴 만도 했다. 또한 영변댁 눈에는 그런 게 대단한 차별로 보이지 않았다. 그랬다면 진작에 한국 사람들 사이에 소문이 쫙 퍼져서 알바가 끊어졌을 것이다. 영변댁이 거느린 새끼수집상들도 그 점을 늘 신기하게 생각했다. “얘네들은 어쩜 이렇게 끊이지도 않고 계속 올까요? 무시받았네, 어쩌네 그렇게 말들이 많으면서도 어쩜 이렇게 시키면 다 잘하죠?” 돈 준다면 화약 지고 불속으로 뛰어드는 사람이 한국 사람들이라는 말은 틀리지 않은 듯했다.
루이뷔똥을 사들이는 엄청난 돈은 홍콩에서 흘러나왔지만 상품은 대개는 몇배 비싼 값으로 일본 여자들에게 팔려나갔다. 그렇지만 이들 사이를 연결해주는 한국 학생들이 없다면, 이 이상한 밀수는 성사될 수조차 없을 것이다. 젊은 조선족들은 한국 학생들이 자신을 깔보는 것 같다고 분개하는 경우도 있었지만 영변댁은 그런 데에 신경쓰지 않았다. 돈 있는 나라가 없는 나라를 깔보는 건 세상의 이치였다.
영변댁이 만난 한국 사람들은 모두 비열하거나 아니면 숙맥이었다. 빠리에 온 지 한달 만에 영변댁과 그 일행은 한 한국인 사기꾼에게 속아 알거지가 될 뻔했다. 영변댁은 중국에서 한국인 사업가에게 명의를 빌려준 덕에 급조한 여권이 있어서 그나마 별탈이 없었다. 그러나 밀입국의 혐의를 벗을 수 없는 일행 몇은 경찰서 신세를 지다 본국으로 송환됐다. 이제는 지나간 일이라 웃으면서 얘기할 수 있지만 그때는 분해서 이가 바드득 갈렸다. 지금이야, 여기까지 온 자신을 참 대견하다고 칭찬해주고 싶다. 그저, 그런 식으로 살면 되는 것이다. 계속 한국 사람들에게 악감을 품고 상대를 안했다면, 이 정도 기반은 잡지 못했을 것이다. 세미도 나를 못 만났으면 어디 허름한 식당에서 술이나 나르면서 까뽀랄 리인지 깡패 리인지 하는 남자한테서 생전 헤어나지 못했을 것이다. 그 남자를 본 적은 없지만, 그에게 달라붙어 있어봤자 좋을 리 없을 것 같았다. 사람백정 같은 성미에 외인부대원이었다니, 돈은 좀 모았을 것이다. 대체로 무식하고 완고한 남자들일수록 이 일을 싫어했다. 게다가 세미는 더 나은 남자를 만날 수도 있다. 세미 정도의 미모와 불어실력과 매너를 갖춘 젊은 여자라면 가능한 일이다. 그것은 영변댁의 진심이었다. 영변댁도 인간인 이상, 세미를 떠올리면 찜찜하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이 이틀 동안 사들인 가방값의 반 정도는 세미의 돈주머니에서 나온 것들이었다. 로마로 뜨기 전 크게 한탕하기 위해 영변댁은 긁어모을 수 있는 돈은 다 긁어모았다. 그중 세미의 돈은 큰 밑천이 되었다. 그렇다고 세미에게 많이 미안한 것은 아니다. 어차피 그 돈 있어봤자 세미는 요리학교인가 학원인가에 다 갖다바칠 것이다. 뭣하러 그런 쓸데없는 데에 돈을 쓰려고 하는지 세미를 이해할 수 없었다. 그 비싼 학비도 학비지만, 한국에서 대학을 나와 증권회사까지 다녔다는 여자가 빠리에 와서 과자나 굽겠다니, 어이가 없었다. 그런 돈은 영변댁에게 명백히 눈먼 돈일 뿐이었다. 형편이 어려운 사람의 돈이었다면 양심에 많이 거리꼈겠지만, 세미 같은 경우는 정 안되면 한국으로 돌아가면 되는 것이다. 아마 세미는 자기를 찾아내도 질질 울기나 할 뿐, 경찰서까지 끌고 갈 엄두는 못낼 것이다. 결국 다 자기가 판 무덤이라고 영변댁은 스스로를 확신시켰다.
세미를 처음 차이나타운에서 만났을 때가 생각났다. 젊은 동양여자다 싶어 무작정 뒤를 따라갔다가 마침 시비가 붙기에 얼른 나섰다. 처음에 본 세미의 인상은, 동양 여자임에도 퍽 낯설었다. 화장기 하나 없이 머리만 질끈 묶고 있는데도 백인여자처럼 세련된 분위기가 났고 고운 피부나 섬세한 이목구비, 하얗고 긴 팔다리가 왠지 눈에 걸리적거렸다. 투박하고 거칠거칠한 피부를 가진 고향 처녀애들과 다른 세미를 볼 때마다 괜스레 적대감이 느껴지는 것은, 영변댁도 알 수 없는 감정이었다.
한번은 지하철이 파업을 해 길가에서 영변댁이 발을 동동 구르고 있을 때였다. 영변댁이 화가 나 중국어로 욕을 하고 있는데 듣고만 있던 세미가 이상한 소리를 했다.
“그래도 파업할 자유가 있는 나라가 좋은 것 같아요.”
영변댁은 마침 지나가는 거지 한명을 가리켰다.
“그렇게 좋은 나라에 웬 거지가 이렇게 많아?”
“거지로도 먹고살 만하니깐 많은 거겠죠. 사회보장제도가 잘되어 있으면 거지로도 먹고살 수 있어요.”
영변댁은 아무말도 안했지만 속으론 코웃음을 쳤다. 거지가 되고 싶어 되는 사람이 어디 있다고…… 세미, 너는 아직도 멀었다. 너는 아직도 세상의 쓴맛을 너무 몰라.
영변댁은 하던 걸레질을 멈추고 오늘의 할 일을 다시 떠올려보았다. 지금까지 사들인 루이뷔똥을 종이박스에 꼭꼭 눌러담아 홍콩으로 부치고 바로 그 자리에서 중간업자로부터 돈을 회수해야 했다. 그리고 기차표도 바꾸고 도미니끄 부부에게 연락도 해야 했다. 지금은 이게 더 급한 일이었다. 이미 그들과는 따로 출발해야겠다고 마음을 굳힌 후였다. 할 일이 정해지면 힘이 더 났다. 그게 영변댁의 성격이었다.
마침 늦게 일어난 하숙생 한명이 밥 달란 얘기도 못하고 얼쩡거리고 있기에 넉살좋게 말을 건넸다. “이씨는 저기 뉴욕에 뭐 아는 사람 없수? 수천명인지 수만명이 깔려죽었다는구만.” 들어온 지 한달쯤 됐다는 이 하숙생은 고향 사람 같은 느낌이 있었다. 죽죽 갈라진 잔주름이나 그을린 피부를 보면 고생깨나 했음직해 보였다. 술이 들어가면 약간 주사가 있는 듯했지만 그렇게 취해도 통 자기 얘기는 안하는 이상한 사람이었다. 언젠가 하숙생들이 모여 군대시절 얘기를 한창 하는데 이씨가 들어오자 번데기 앞에서 주름잡고 있었다며, 이씨에게 뭘 묻는 듯했다. 아프리칸지 남민지 어디 얘기를 해달라는 주문이었는데 이씨는 언제나처럼 빙긋이 웃기만 했다. 그럼 그렇지, 군인이었구만. 그게 외인부대인지 뭔지는 정확히 알 수는 없었다. 그래도 혹시 세미와 동거하던 남자를 아는지 물어보려고 하다가 그의 이름을 들어본 적이 없다는 걸 깨달았다. 세미는 늘 ‘그 사람’이라고만 불렀던 것이다. 이름을 알았다손 치더라도 모르는 척하는 게 낫겠다 싶었다. 사실 영변댁은 군인이라면 무조건 신물이 났다. 중국에 있을 때 툭하면 못살게 굴던 걸 생각하면 진저리가 쳐졌다. 아들애가 그렇게 끌려가서 결국 골병이 들지 않았던가. 빨리 기반을 잡고 애를 데려와야만 한다. 돈, 돈만이 그걸 해결할 수 있다.
집안 하숙생들이 떠드는 품을 보아하니 한시라도 빨리 기차표를 바꾸는 게 낫지 싶다. 주인 부부가 들어오기 전에 얼른 나갔다 올까, 궁리하는 영변댁에게 이씨가 뜬금없이 뭐 도와드릴 일이 없냐고 물었다. 영변댁은 지레 뜨끔해져서, 별소리를 다 한다며 과장되게 손사래를 쳤다. 그러고는 잔소리를 이것저것 늘어놓으며 이씨도 어서 아가씨 한명 꿰차라고 너스레를 떨었다. 그런데 말없이 웃으며 듣고만 있던 이씨가 불쑥 이렇게 말했다. “웬걸요, 저도 얼마 전까지 한국 여자랑 같이 살았어요. 그런데 이제 제가 싫어졌답니다. 그래서 제가 나왔어요.”
그 풀죽은 표정을 보는 순간, 영변댁은 터져나오려는 웃음을 참느라 눈가에 힘을 꽉 줘야 했다. ‘에라이, 이 머저리 같은 놈, 얼마나 못나게 굴었으면 여자한테 쫓겨나? 너도 별수없는 놈이구나.’ 너무 눈에 힘을 줬더니 눈물이 찔끔 나오고 말았다. 그런데 당황한 건 영변댁이 아니라 이씨 쪽이었다. 어쩔 줄 몰라 하는 이씨를 더 놀려먹고 싶어 영변댁은 한층 더 수선을 떨었다. “아이구 세상에, 이렇게 좋은 신랑감을 빠리 어디서 찾는다고……” 그러면서 이씨의 손까지 부여잡고 다독여주다가, 훌쩍이는 척하며 부엌으로 와버렸다. 빠리에 사는 한국 사람들은 왜 저리도 다 못났을까. 영변댁은 마음 약한 사람이 싫었다. 자기까지 공연히 약해지는 것 같아 싫었다. 언젠가 그런 영변댁을 보며 세미가 이렇게 말했다. “아줌마는 완전히 한국 사람 같아요. 어쩔 땐 한국 사람보다 더해요.” 문득 ‘그 사람’과 헤어졌다며 며칠을 질질 짜던 세미의 얼굴이 떠올랐다. 생각하지 말자, 생각하지 말자 하고 영변댁은 되뇌었다. 이런 일만 아니었더라면 계속 곁에 두고 동생처럼 지낼 수 있는 사이였을 텐데…… 생각보다 세미에게 정이 들었다는 걸 영변댁은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이미 물은 엎질러진 후였다. 누구 처지 봐줄 입장이 아니었다.
영변댁은 반지하 창고 안에 가득한 루이뷔똥의 수를 머릿속으로 헤아려보며 박스가 몇개 더 필요한지를 생각했다. 요번엔 닷새치나 쟁여놨기에 꽤 물량이 많았다. 돈으로 치면 수십만 프랑에 달했다. 저걸 우체국에서 만나기로 한 업자에게 보여주고 돈으로 바꾸면 일은 다 끝난다. 늦기 전에 일 도와주는 동생들을 불러 차에 싣고 가야 하기에 영변댁은 마음이 급해졌다. 다른 때라면 창고에 들어가 문단속을 한번 하고 나가겠지만 방금 전에 물건을 갖다두고 왔으므로 그냥 나가기로 했다.
근처 여행사에 도착한 영변댁은 로마행 기차표를 다음날 것으로 간신히 바꿨다. 그리고 아랍인 부부에게 전화해 하숙집 주인이 붙잡는 통에 하루만 더 있다 가야겠다며 먼저 가서 친척들과 회포나 풀고 있으라고 할 수 있는 불어를 총동원해 사정을 꾸며댔다. 그러고는 다시 만날 약속을 잡느라고 한참 승강이를 벌였다.
집 앞 골목까지 오면서 영변댁은 이런저런 궁리를 하느라 잔뜩 모인 사람이나 불자동차를 보지 못했다. 그런데 어디선가 매캐한 냄새가 나는 듯싶더니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영변댁은 걸음을 멈췄다. 그 순간, 집 앞의 시뻘건 불자동차가 눈에 들어왔고 정신이 번쩍 들었다. 화면이 정지된 것처럼 눈앞이 하얘지더니 자신도 모르게 다리가 후들거렸다.
설마, 설마, 아니야…… 괜히 쓸데없는 생각하지 말자…… 내가 지금 과민한 거야. 그거 갖다만 주면 다 끝나는데…… 한두 번 한 것도 아니고 늘 그래왔는데…… 그럼, 그 집에 사람이 몇인데…… 설마, 불날 일이 있으려고……
불은 거의 꺼진 후였다. 반지하 창고 앞에서 원인 모를 불이 났다고 했다. 사람들은 담뱃불이 아닐까 수군대고 있었다. 하숙집 사람들이 다 나간 후라 발견이 늦었지만 창고와 일층 일부만 탔을 뿐 큰 피해는 없다고 했다.
창고 안으로 뛰어들어가려는 영변댁을 사람들이 붙잡았지만 실신해서 중국말로 울부짖는 그녀는 너무나도 거셌고 아무도 어떻게 해야 될지 몰랐다. 아무도 영변댁의 중국말을 알아듣지 못했다. 집주인은 아직 안 왔느냐며 소방관이 신경질적으로 물어댔지만 아무도 대답하지 않았다. 집주인이 한국 사람인지 중국 사람인지도 다들 잘 모르는 듯했다. 거품을 물고 버르적대는 영변댁을 보다 못해 누군가가 간질 같다며 의사를 부르자고 했고 누군가는 차라리 경찰을 부르자고 했다. 그러자 영변댁이 벌떡 일어나 소리를 질렀다.
“노옹! 장다름므, 농! 장다름므, 농, 농!(경찰은 안돼!)”
영변댁의 서슬 퍼런 기세에 놀라 사람들은 한발짝씩 물러났고 더이상 영변댁에게 다가가지 않았다.
창고 안에서는 그을음이 검게 낀 가방이 수십개 나왔다. 가죽은 쉽게 타지 않는다. 그러나 그을음이 덕지덕지 묻은 루이뷔똥은 더이상 루이뷔똥이 아니었다. 그 순간부터 그것은 명품이 아니었다.
사람들은 차츰 흩어져 집으로 돌아갔고 소방관들만 남았다. 그중 한사람이 영변댁에게 이것저것 물어보았지만 영변댁은 고개만 흔들었다. 그들도 곧 철수하기 시작했다.
왜 늙은 동양 여자가 길바닥에 앉아 울기만 하는지 아무도 이유를 몰랐다. 왜 그 여자가 시커메진 가방들을 끌어안고 넋 나간 얼굴을 하고 있는지, 그 사연 역시 아무도 알지 못했다.
뉴욕의 무역쎈터가 무너진 바로 그날의 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