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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단과 현장

 

상생의 프로젝트, 새만금—금강유역

 

 

김석철 金錫澈

건축가, 도시설계가. 아키반건축도시연구원 대표. 명지대 건축대학장. 저서로 『희망의 한반도 프로젝트』 『김석철의 세계건축기행』 등이 있음. archiban@archiban.co.kr

 

 

1. 발상의 전환을 위하여

 

새만금사업과 행정중심복합도시는 정치권이 벌여놓았으나 국민이 수습해야 하는 문제의 프로젝트이다. 두 프로젝트는 서로 아무 상관없이 진행되고 있으나 성공하려면 하나의 사업이 되어야 한다. 우선 하나씩 들여다보자.

새만금은 철학이 다른 네 정부가 계속 이어온 이상한 사업이다. 10년에 걸쳐 세계 최대 규모의 안바다를 만들어놓고 10년을 더 일해서 이 안바다와 갯벌을 황무지로 만드는 작업을 하려 하고 있다. 제대로 된 검증이나 미래에 대한 비전 없이 대중야합 프로젝트가 진행되어온 것이다. 새만금사업은 환경운동가들이 헌신적으로 반대운동을 벌인 끝에 1심 법원에서 공사중지 판결을 받았으나 지난 연말 고등법원에서는 판결이 뒤집혀 공사를 재개할 수 있게 되었다. 현재 새만금사업은 방조제가 거의 완공되고 바다와 차단된 안바다와 갯벌만 남아 있는 상황이며 해수가 유통되고 있는 두 구간 2.7km마저 곧 막혀버릴 운명에 놓여 있다. 그러나 아직 새만금은 바다이자 갯벌이며 33km의 방조제로 둘러싸인 안바다이기도 하다.

행정중심복합도시는 관점에 따라서는 더 크고 어려운 문제다. 충청권으로 수도를 이전하겠다는 노무현 후보측의 공약에서 시작되어 이후 대선의 당락을 좌우한 요인이 되었다. 2003년 신행정수도 특별법을 만드는 와중에 부지선정에 들어가 부지를 확정하고 국회에서 특별법을 통과시켰으나 헌재에서 위헌판결이 나자 대안으로 제시된 것이 행정중심복합도시이다. 그 주요 골자는 사법부, 입법부와 대통령을 제외한 행정부처만 내려가는 것으로, 현재 과천에 있는 행정부처가 옮겨가고 총리가 따라가는 과천정부청사의 이전 수준이 된 것이다. 게다가 수도이전을 목적으로 정한 부지에 신수도와는 차원이 다른 행정중심복합도시를 건설하기 위해 진행중인 토지수용은 목적외 수용이기 때문에 위법의 소지마저 있다.

수도이전이라 함은 단순히 입법·사법·행정부의 이전만을 뜻하지는 않는다. 그것은 수도의 국제기능과 중추기능 상당부분이 함께 이전하는 것을 뜻하며 그럴 때 수도권 과밀해소라는 명분도 그나마 성립되는 것이다. 지금처럼 과천의 행정부처를 옮기는 일은 이미 이전한 것을 다시 이전하는 셈으로 아무 의미가 없다.

그동안 이러한 국가 하드웨어의 기본틀에 변화를 가져오는 사업이 전문가들의 반대의견과 학술논의를 무시하고 일부 여론과 정치권에 의해 주도되어온 것은 민주주의에 역행하는 일이라 할 것이다. 새만금사업이 시작되었을 때와 신행정수도와 행정중심복합도시 특별법 등이 진행되고 있을 때 충분한 논의가 있어야 했지만 그런 공론의 중요한 시간은 다 흘러가고 여기까지 왔다. 이 싯점에서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새만금사업과 행정중심복합도시는 낙후지역을 개발하려는 목적에서 시작된 사업이다. 하지만 새만금과 금강유역은 낙후된 문제지역이 아니라 한반도의 미래를 이끌 중요지역으로 봐야 한다. 새만금과 금강유역을 ‘균형발전’차원에서 접근하려는 입장과 이 일대를 한반도를 크게 일으킬 수 있는 희망의 땅으로 보는 입장은 다르다. 대단위 과학영농단지와 공단을 만들고 행정복합도시를 건설하는 등 현재 추진중인 사업은 전자의 입장에서 시작된 프로젝트이다. 그러나 새만금의 공단은 수도권과의 경쟁에서 이기기 어렵고 영농단지는 중국에 이미 덜미를 잡혀 있는 상황이라 현실성있는 방안으로 보기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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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만금 바다도시 조감도 (수정안)

 

새만금과 행정도시 사업이 강행되는 동안 필자는 대안을 찾기 위해 나름의 노력을 해왔다. 세계 각국의 사례를 조사하고 사계의 전문가·학자들과 함께 갯벌보존을 위한 해수유통과 최소한의 도시화 가능성을 검토한 끝에 새만금의 돌파구가 바다도시화에 있다는 의견을 정리했고, 이것이 『창작과비평』 2002년 겨울호에 발표한 ‘새만금 바다도시’제안이다.1 대선 때 이를 공론에 부치고자 했으나 충청권으로의 행정수도 이전이라는 더 큰 쟁점에 묻혔고 새만금은 친환경적 순차개발이라는 이름에 가린 채 뒤로 밀렸다. 새만금에 관해서는 다시 컬럼비아대학 대학원 설계주제로 다루고 두 차례의 국제회의를 거듭하여 그 결과를 책으로 정리했다. 행정수도 이전에 대해서는 공론을 바로 세우기 위해 네 차례에 걸쳐 공개강연을 하고 여러 글을 쓰고 학술회의를 열어 대안을 토론했다.

 

금강도시연합

금강도시연합

 

그러는 과정에 새만금과 행정복합도시, 새만금과 금강유역이 하나의 권역이 되어야 한다는 데 생각을 모으게 되었다. 새만금과 호남평야를 함께 생각하던 단계에서 나아가, 금강과 새만금을 하나로 결합시켜 백두대간과 서해안 사이에 강과 바다를 잇는 세계적 수변도시군(水邊都市群)을 이루는 새만금—금강유역 대안을 마련했고, 그 일단을 단행본 『희망의 한반도 프로젝트』(창비 2005)에 발표했다.

이번 글은 그다음 단계로 가는 실증적 연구의 서장이다. 새만금과 행정복합도시 두 권역의 지리와 인문이 지닌 잠재력과 가능성에 대한 새로운 시각에서 문제를 접근한다면 이 지역은 한반도의 가능성과 잠재력을 한단계 높이는 새로운 희망의 땅이 될 수 있다.

 

 

2. 농어촌 도시회랑

 

전라북도가 낙후지역으로 전락한 이유는 농촌과 도시가 연대한 발전적 도시화를 이루지 못했기 때문인데, 농어촌과 도시를 묶는 새로운 어반 인프라(urban infra)가 개입하지 않으면 지금의 정체상태를 면하기 어렵다.

농어촌 도시회랑(都市回廊)은 해안과 내륙, 농촌과 어촌과 도시를 잇는 도시구역으로 수로와 육로가 중심이 된다. 독일의 라인강이 좋은 사례이다. 라인강변의 도시와 농촌이 불가결한 관계로 이어져 도시연합을 이루게 된 것도 이러한 회랑도시를 이루었기 때문이다.

 

도시회랑 사례: 보스턴루트128

도시회랑 사례: 라인루르 지역

 

전라북도가 낙후된 또다른 이유는 그 지역의 대표도시인 군산, 익산, 전주가 배타적으로 발전한 데 있다. 전주는 삼국시대부터 이어져온 역사도시로 후삼국시대에는 후백제의 수도였다. 익산은 호남선의 중요 기착지이자 중부지방의 교통 요충도시이고, 군산항은 개항 이후 부산, 인천, 원산에 버금가는 주요 항만이다. 그러나 전주가 내륙 깊이, 익산이 가운데, 그리고 군산이 바깥 해변에 있다보니 세 도시가 서로 멀어져 각각 자립도시가 되기도 어렵고, 세 도시를 합해도 도시 역할이 상호보완적이지 않아 별 효과가 없는 형국이다.

세 도시를 하나로 묶기에는 각 도시 내부의 세력이 강하고 외곽의 도시력이 약해 연결 자체가 무의미하다. 혁신도시를 도시회랑화하고 새만금을 바다도시화하여 군산, 익산, 전주가 도시회랑으로 이어지게 해야 한다. 새만금이 농토가 되거나 공단이 되어버리면 군산과 익산과 전주는 별도의 세 도시로 남을 수밖에 없다. 새만금을 도시화하고 해안링크를 집합할 때 이 세 도시가 농어촌을 도시회랑으로 결합한 도농복합체가 실현될 수 있다.

회랑도시는 대도시와 중소도시, 도시와 농어촌을 잇는 화합의 도시이다. 이제까지 한국의 도시화는 대도시와 공단 중심이 되어 중소도시와 농촌이 소외되고 도시간 연대가 차단되어 수도권과 지방, 대도시와 지방도시의 불균형이 야기되었다. 새만금—군산—익산—전주 도시회랑은 대도시와 소도시, 도시와 농어촌이 하나가 되고 제조업과 써비스산업과 농업을 창조적 산업으로 합치는 방식으로 집합되어야 한다.

 

도시회랑 사례: 보스턴루트128

도시회랑 사례: 보스턴루트128

 

뜻하지 않은 일이지만 새만금 방조제는 바다로부터 창출한 도시화 가능성을 바탕으로 세 도시중심을 외곽으로 끌어내어 도시회랑을 구체화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가 되었다. 새만금이 바다도시—바다농촌이 될 때 전북의 면모를 일신하는 비약을 기대할 수 있을 것이다.

새만금사업을 시작한 목적이 무엇인가. 전북을 다시 일으켜세우자는 것이 아니었는가. 그러기 위해서는 새만금사업의 파급력이 새로운 도시회랑의 창출로까지 이어져야 한다. 군산과 익산과 전주를 잇는 육로와 수로가 겸해진 도시회랑이 소도시와 농어촌 들을 하나로 연결하는 백만 인구의 도시권역을 이루게 해야 한다. 새만금사업이 고군산군도의 허브항만에서 시작해서 고군산군도와 안바다와 군산을 잇는 방조제도시를 이루고, 익산에서 남북의 흐름과 합류하고, 내륙으로 확대하는 역할을 전주가 담당함으로써 도시회랑을 형성하게 될 때 새만금이 전북의 희망이 될 수 있다. 뒤에 부연하겠지만 이러한 프로젝트는 금강유역의 새로운 개발과 연계될 때 엄청난 씨너지 효과를 발휘하게 될 것이다.

 

 

3. 허브항만과 방조제도시

 

세계의 무역장벽이 무너지면서 무역의 양은 갈수록 커지고 화물도 대형화되었다. 선박도 과거의 5천〜1만톤 정도에서 10만톤 이상으로 커졌다. 특히 석유, LNG, 곡물, 석탄 등 원자재들은 10만톤 이상 규모가 되어야 경제우위를 점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러다보니 대형항만 위주의 항로가 만들어지고 대형선박이 다시 소형선박으로 나누어지는 씨스템이 현대 항만의 정형이 되었다. 허브항만이 출현한 것이다. 허브항만의 출현으로 환적화물이 확대된 것은 물론이고, 물류보다 부가가치가 더 큰 2단계, 3단계의 제조 및 시장산업이 생기기 시작했다. 대륙간 무역은 허브항만끼리 이루어지고 특정지역 안에서 물류의 흐름은 허브항만으로부터의 피더선(중소형 컨테이너 선박)과 군소항만의 직접 연결로 이루어지고 있다.

 

세계 최고 항만 로테르담과 동일한 축척으로 비교한 고군산군도 외항과 안바다 해상공단, 금만수로, 금강유역공단

세계 최고 항만 로테르담과 동일한 축척으로 비교한 고군산군도 외항과 안바다 해상공단, 금만수로, 금강유역공단

 

세계물류의 흐름으로 볼 때 부산항과 샹하이항, 싱가포르, 홍콩 등이 강력한 허브항만의 위치를 점하고 있다. 현재 한반도 전체 물동량의 80%를 차지하는 부산항은 물동량 기준 세계 5위, 환적화물 기준 세계 3위의 항만이다. 세계 기간항로상에 위치한 까닭에 부산항을 거쳐 미대륙으로 가는 편이 아시아의 다른 어느 항만을 경유하는 것보다 유리하며, 수심이 15m에 이르는 부산항은 토사가 많이 쌓여 수심확보가 어려운 샹하이항보다 경쟁력이 높다. 그러나 샹하이가 최근 루챠오(蘆潮)에서 33km떨어진 양샨(洋山)항을 만들면서 부산을 앞서가고 있다. 부산항은 수출입화물과 환적화물이 균형을 이루기 때문에 환적화물의 비중이 큰 싱가포르나 타이완의 까오슝(高雄)에 비해 훨씬 안정적이라 할 수 있으나 확장된 샹하이항에 비해서는 경쟁력이 떨어진다. 부산항의 문제는 배후공간이 적어 상대적으로 화물량에 따른 수입구조가 취약한 데 있다. 부산항이 연간 34억달러를 버는 데 비해 그보다 화물이 적은 로테르담항이 연간 240억달러를 벌어들이는 것은 로테르담이 배후공간을 활용한 종합물류기능을 훌륭히 수행하고 있기 때문이다.

세계물류 흐름에서 앞으로 예상되는 큰 변화는 인도의 등장이다. 중국이 유발했던 것과 같은 규모의 물류증가가 인도의 지속적인 경제성장에 동반해 일어나고 있다. 유럽·중동·인도와 중국 창장(長江) 이북·한국·일본 간의 물류를 선점하기 위해서는 샹하이보다 유리한 한반도의 어느 지역을 황해 일원의 허브항만으로 키울 필요가 있다.

 

황해 허브항만인 양샨 심해항, 루챠오 수상도시와 동일한 축척으로 비교한 고군산군도 외항과 방조제도시와 금강유역도시

황해 허브항만인 양샨 심해항, 루챠오 수상도시와 동일한 축척으로 비교한 고군산군도 외항과 방조제도시와 금강유역도시

 

그곳이 바로 새만금의 고군산군도이다. 고군산군도 일대는 20m전후의 수심을 확보할 수 있고 상대적으로 태풍권에 비껴 있기 때문에 허브항 구축이 가능한 곳이다. 더구나 고군산군도 일대는 이미 군산 및 변산반도와 방조제로 이어져 있어 방조제 안에 방수제를 쌓아 해상공단을 만들어 군산항과 금강을 이어나갈 수 있다.

샹하이의 양샨항과 루챠오 신도시는 새만금 허브항만의 필연성을 암시하는 흥미로운 사례이다. 샹하이는 토사가 계속 쌓이는 탓에 깊은 수심을 유지할 수 없어 먼바다에 양샨 심해항만을 만들 수밖에 없었다. 샹하이 남단에서 34km떨어진 두 섬(大洋山島·小洋山島) 사이에 대규모 항만을 구축하고 이를 인공의 바다도시 루챠오 신도시로 연결하는 계획의 1단계를 완성하고 현재는 2단계 공사를 진행중이다. 양샨항과 루챠오 신도시는 황해 일원의 허브항만이 되어가고 있다. 그런데 수심조건, 바람, 내륙과의 연계 모든 면에서 양샨항보다 우수한 조건을 갖춘 고군산군도는 이미 33km의 방조제가 양날개처럼 군산항과 변산반도에 닿아 있어, 중국정부가 만리장성과 싼샤(三峽)댐 이후 최대의 사업으로 심혈을 기울여 만든 양샨항과 루챠오 신도시만한 인프라를 이미 마련해놓은 형국인 것이다. 게다가 해수가 유통되는 새만금은 루챠오항의 인공바다보다 훨씬 큰 안바다가 있어 로테르담처럼 끊임없이 부가가치를 산출하는 공단형 고부가가치 항만이 될 수 있는 잇점이 있다. 당초 대규모 영농단지를 만들어 한반도의 영토를 넓힌다는 명분으로 진행된 사업이었지만, 방향을 제대로 잡는다면 이제 한반도의 국가경쟁력을 제고할 수 있는 최고의 자산으로 등장하게 될 것이다.

새만금이 군산·익산·전주를 잇는 도시회랑의 기점이 되어 전북 일원의 경제를 일으키려면 거대한 신산업의 등장이 필요한데, 허브항만과 안바다 공단도시가 바로 그 가능성을 제공한다. 고군산군도에 허브항만이 생기고 방조제 안쪽의 해상공단이 군산항과 이어지고 금강·만경강 수로로 연결되어 익산과 전주를 포괄할 때 황해 일원의 물류를 선점하는 허브항뿐 아니라 방조제 일원이 세계에서 손꼽히는 해상공단, 해상도시가 될 수 있는 것이다.

새만금 바다도시와 호남평야 도시연합 자체에 대해서는 『희망의 한반도 프로젝트』 제3부 3장에 비교적 상세히 서술해놓았으므로 여기서는 반복설명을 생략한다. 물론 그것은 얼마든지 수정 보완할 여지가 있는 안으로, 금강유역과 연계된 발전을 전제로 할 때 더욱 정밀하고 구체적인 검토가 필요할 것이다.

특히 현행 토지조성 계획대로 실행할 경우 담수호의 수질오염이 불가피하다는 것은 환경부에서도 예측하고 1심 재판부가 인정한 바이지만, 『희망의 한반도 프로젝트』에서도 지적했듯이 “전북의 실질적인 수요라는 면에서 그나마 유일하게 타당성을 지니는 대목이 담수호 조성”(236면)이다. 해수가 유통되는 안바다로 강물이 계속 흐를 경우 이 담수호 문제 또한 해결의 길이 열리는 것이다.

고군산군도에 항만을 만든다고 할 때, 고군산군도의 물리적 조건이 아무리 좋다고 해도 배후에 텅 빈 공단이나 경제성 없는 농지가 수천만 평 가로놓인 상황에서는 동북아 허브항만은커녕 항만으로서의 성공 가능성 자체가 크게 제약된다. 이러한 모든 사정을 감안할 때, 33km의 방조제를 그대로 둔 채 새로운 가능성을 찾는 일이야말로 건설적인 반론이자 최선의 대안이 될 수 있다.

 

 

4. 금강개혁과 도시연합

 

금강은 문명의 강이다. 백제문명이 금강유역에서 꽃피었으며 한반도가 다시 삼국으로 분할되었을 때 후백제의 근거지가 되기도 했다. 그러나 후백제가 멸망한 뒤로 금강 일대는 고려·조선조를 거치면서 서울과 호남을 잇는 중간 기착지의 역할에 국한되었다. 서해를 통해 중국과 교류하고 해안링크의 힘을 내륙으로 이끌어왔던 금강은 역사적 진화를 하지 못함으로써 한때 담당했던 어반 인프라의 역할을 멈추고 이제 고대에 수행했던 역할조차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다.

유럽과 미국의 템즈강, 쎈느강, 허드슨강은 모두 많은 공사가 가해진 인공의 강이다. 인공의 강이라야 수량을 조절하고 주변 일대의 도시화를 이룰 수 있기 때문이다. 동부이촌동, 반포, 여의도, 압구정, 잠실 등 한강 일대 역시 40년 전만 해도 대부분 금강과 같은 강변 늪지였다.

서울이 해방 당시 백만 인구에서 현재 천만 인구까지 급격하게 늘어날 수 있었던 것은 한강을 개발하여 거대한 토지를 창출했기 때문이다. 한강을 개발함으로써 강남이 생기고, 강동과 강서가 생겼다. 금강은 아직까지 백제·후백제시대의 자연하천 그대로이다. 일년에 한번 닥치는 홍수의 배수로 역할을 하는 드넓은 강변이 자연의 하천습지로 그대로 남아 있다.

 

동일한 축척으로 비교한 한강과 금강의 과거, 현재, 미래

동일한 축척으로 비교한 한강과 금강의 과거, 현재, 미래

 

그렇다고 금강 전체를 인공의 강으로 만드는 것은 천혜의 자연을 파괴하는 일이 될 것이다. 하지만 대부분의 하천은 자연상태로 두면서 특정구간을 인공하천화하고 사이에 중간지대를 두어 이를 조화시킨다면 문명과 자연이 함께 어우러지게 할 수 있다. 자연을 버려진 채로 내버려두는 것보다 도시나 마을과 조화를 이룰 수 있게 만드는 것이 자연의 생명을 살리고 지속가능한 발전의 길을 여는 방안이다.

무엇보다 강은 하나의 흐름이므로 강 전체의 관리가 한 조직으로 통합되어야 한다. 지금처럼 강의 관리체계가 지방자치단체에 분할되어서는 자연하천·인공하천·중간하천이 모여 특유의 질서를 가진 하나의 실체로 만들기 어렵다. 고속도로나 고속철도가 각 지방자치단체의 관할이 된다고 생각해보라. 지역과 지역을 관통하면서 서로 다른 지역을 연결하는 강의 도시화 기능을 제대로 살리는 통합관리가 필요하다. 금강계획은 군산항에서 대청댐까지를 한 구역으로 할 때 그 잠재력을 최대한으로 발휘할 수 있다. 미국의 뉴욕주와 뉴저지주의 강과 바다와 육지를 총괄하는 항만공사(Port Authority) 체제를 금강에도 들여와야 한다. 금강 서측 해안과 금강유역과 대청댐까지를 하나의 유기적 조직체로 통합할 때 이 일대를 유력한 도시화지역으로 만드는 일이 가능하다. 특히 부여에서 공주 일대는 강변도시화를 이룰 수 있는 천혜의 장소이다.

행정복합도시 건설을 위해 공주·연기 주변의 땅 천만 평을 수용하기보다 부여·공주·연기를 가로지르는 금강 일대를 쎈느강, 템즈강, 허드슨강처럼 수변도시화하고 중심부를 운하도시로 만드는 것이 금강을 살리고 지속발전가능한 경쟁력을 가진 새로운 도시를 세우는 일이다. 강변도시화구역은 중간지대와 운하로 연결되고 중간지대와 농촌은 자연하천으로 다시 이어지므로 도시와 농촌의 산업연계가 자연스럽게 형성될 것이다. 금강 일대에 무엇을 이루려면 가장 먼저 금강을 살려 금강유역을 새로운 네트워크의 세계로 만들어 해안링크와 수도권과 영호남을 잇는 발전축과 연계시키는 작업이 필요하다. 행정도시든 교육과학도시든 금강이 살아서 제 역할을 할 수 있어야 경쟁력있고 지속가능한 도시발전이 시작될 수 있는 것이다.

신행정수도가 행정복합도시로 바뀌었듯이 행정복합도시가 지방분권 행정중심도시가 될 수도 있다. 그러자면 금강유역을 가능성의 땅으로 만드는 일이 우선되어야 한다. 남북통일이 되어 행정수도 논의가 전혀 다른 방향으로 가게 되더라도 금강유역이 살아나면 새만금—금강 일대는 한반도의 희망의 땅이 될 수 있다.

 

 

5. 금강 어반클러스터

 

서울은 600년 동안 한반도의 중심이었다. 또 서울 구도심과 60km떨어진 개성은 400여년 동안 한반도의 수도였다. 다시 말해 신라가 불완전한 삼국통일을 이룬 상태에서는 경주가 수도였지만 한반도가 지금의 형태로 통일된 후로는 천년 넘게 서울·개성이 한반도의 중심이었던 것이다. 두 도시가 쌓아온 역사·지리·인문적 의미와 가치는 흔들릴 수 없는 것이다.

신행정수도든 행정복합도시든 목적하는 바는 수도권 과밀해소와 중부권 일대의 발전이다. 그러나 수도권 과밀해소 차원에서 보면 지금 같은 행정복합도시는 대안이 아니다. 결국 핵심은 충청권 일원에 수도권과 겨룰 만한 경제권역을 형성하는 일인데, 그런 목적이라면 이삼십년이 걸리는 행정복합도시보다 지방분권 중심도시를 건설하는 것이 옳은 길이다.

 

새만금도시회랑의 구성개념도

새만금도시회랑의 구성개념도

 

그러기 위해서는 상호연관되는 일군의 중앙행정부처가 지방분권을 전제로 유관기관과 함께 내려와 산업클러스터를 이루는 것이 효율적이다. 서로 성격이 유사하고 업무연관성이 큰 행정부처들과 유관기관이 민간기업과 함께 모여 있을 때 가장 효율적이며, 그럴 때 세계기업의 아시아 지역본부와 유력한 국제기구도 유치할 수 있다. 그야말로 특성화되고 분권화된 지방분권 중심도시를 만들 수 있는 것이다. 충청권은 전통적으로 교육도시이고 이미 대덕과학단지와 오송생명과학단지가 들어와 있으므로, 행정복합도시보다 과학·교육·의료·복지 관련 정부부처 및 유관기관과 국제기능이 집합된 분권행정도시를 하나의 대안으로 고려해볼 수 있다.

 

금강도시연합의 구성개념도

금강도시연합의 구성개념도

 

자유시장화하여 국제경쟁력을 갖게 만들려면 결국 국제자본이 들어와야 하고 해외의 두뇌와 조직이 들어와야 한다. 세계 유수의 대학과 연구소, 다국적기업과 세계기관이 들어와 산업클러스터를 이루어서 금강유역의 중소도시와 농촌을 포괄하면, 도시연합과 산업클러스터를 합한 자립가능한 도시권역인 어반클러스터(urban cluster)를 만들 수 있다. 금강유역은 서해와 지방권 및 수도권에서 가장 접근이 용이한 지역이다. 우선 부여와 공주 간 금강유역을 서울을 동서로 가로지르는 여의도, 반포, 잠실만한 도시화구역으로 만들고, 부여와 공주의 천년 역사구역을 복원하여 금강유역 도시중심과 하나가 되게 해야 한다.

충청권의 발전은 제대로 된 전략 속에서 금강유역을 도시화하는 일에 서 시작되어야 하며 행정복합도시냐 지방분권 중심도시냐는 그후에 논의해도 되는 것이다. 중국 동부해안과 동북3성, 일본 서남해안 일대에서 학생과 기술자, 전문가 들을 오게 하고 대덕과학기술단지와 오송생명과학단지가 연계되면 중부권을 자립적 경제권역으로 만들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이다.

금강유역에 한반도만이 아니라 황해공동체시장과 세계시장을 겨냥한, 도시연합과 산업클러스터를 합한 어반클러스터를 이룬다면 행정복합도시가 의도하는 것보다 더 큰 것을 얻게 될 것이다.

 

 

6. 새만금—금강유역 프로젝트

 

그동안 우리는 새만금은 새만금으로만, 행정도시는 행정도시로만 생각해왔다. 새만금의 새로운 해법으로 우리가 제시한 안은 황해공동체라는 한반도의 새로운 판이 만들어졌을 때 새만금 일원이 특별한 역할을 할 수 있다는 전제하에 만든 바다도시안이었다. 그것은 고군산군도 일대가 황해 일원의 허브항만으로서 샹하이 양샨항 못지않다는 가능성에 근거한 안이다. 부산과 광양은 황해의 허브항으로는 상대적으로 외진 편이라 규모가 더 크고 입지가 적합한 고군산군도를 생각했던 것이다. 고군산군도에 허브항만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배후기지가 있어야 한다. 일부에서는 고군산군도에 허브항만을 짓고 광대한 새만금 일원의 토지가 있으면 얼마나 이상적인가 하지만 이는 허브항만의 속성을 모르고 하는 말이다. 배후에 광대한 육지가 펼쳐져 있다고 허브항만이 되는 것은 아니다. 또한 허브항만이 되기 위해서는 환적만 가능해서는 부족하고 제2공장과 제2시장이 있는 곳이라야 한다. 앞서 말한 대로 유럽의 허브항만 로테르담이 부산보다 적은 물류를 다루면서도 매출은 8배 이상 올리는 것은 거대한 제2공장과 제2시장이 있기 때문이다. 고군산군도가 허브항만이 되기 위해서는 라인강에 필적할 만한 수변공간이 필요한데 그럴 때 새만금 안바다가 역할을 할 수 있다.

문제는 인구다. 현재 새만금 일원의 인구로는 아무것도 이룰 수 없다. 새만금 일원을 군산·김제·익산까지 확대해도 50만명이 되지 않는다. 전북을 다 합쳐도 허브항만의 배후인구로는 부족하다. 이럴 때 금강유역을 새만금과 합하면 새만금 일원이 황해라는 21세기 한반도의 새로운 판에서 샹하이와 경쟁할 수 있는 허브항만이 될 계기가 열리는 것이다. 이것이 새만금만으로는 이룰 수 없었던 일을 금강유역과 함께라면 이룰 수 있다고 본 근거다.

그러나 아직 금강은 죽어 있는 강이고 금강유역은 버려진 습지다. 금강은 바다와 차단된 강이다. 행정복합도시 부지로 선정된 금강상류 공주·연기의 땅은 자그만치 1천만평에 달한다. 지속발전 가능한 도시를 만들기 위해서 그만한 규모가 필요하다고 하나 신수도가 아닌 행정복합도시라면 2백만평으로도 충분하다. 금강유역 일대를 자연상태 그대로 두고 일부만 집중적으로 도시화하는 것이 지속가능한 발전의 길인데도 과다한 토지를 수용하려는 것은 다른 속셈이 있거나 아니면 어리석은 행동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1천만평 토지를 훼손하느니 1천년 넘게 방치된 금강유역을 개발해서 그곳을 도시화하는 것이 바른 길이다. 우선 미래의 강으로 금강을 만들고 그후 금강유역에 지방분권 중심도시를 세워 일군의 행정부와 유관기관이 함께 가는 것이 현명한 선택이다.

 

새만금도시회랑과 금강도시연합

새만금도시회랑과 금강도시연합

 

새만금을 얘기할 때 21세기 동북아시아의 새로운 판인 황해공동체를 얘기했듯이 행정수도를 얘기할 때 남북통일을 염두에 두지 않으면 안된다. 남북이 하나가 되는 역사적 필연 속에서 행정복합도시를 사고한다면 결국 지방분권화를 전제로 한 복수의 분권행정도시를 생각해야 한다. 서울·개성 일대의 천년수도를 중심으로 이북, 이남의 서너 곳에 자립적 경제권역을 만들고, 특화된 경제권역에 따라 행정부처와 유관부처들이 이전해서 국가의 균형발전을 이끌고 가는 것이 한반도의 마스터플랜이 될 수 있다.

 

전국적 관점에서 본 새만금과 금강유역

전국적 관점에서 본 새만금과 금강유역

 

그럴 때 금강유역을 지방분권의 한 중심으로 생각하면, 금강유역과 새만금 일원이 수륙으로 연결된 어반클러스터를 중심으로 해서 전북과 대전과 조치원과 천안을 포함한 5백만 인구에 가까운 영역을 한 도시권역으로 만들 필요가 있다. 이처럼 새만금과 금강유역이 중심이 되어 충청권과 전북을 아우르고 내륙과 해안의 어반네트워크를 따라 서남해안 일대를 접속하여 자립가능한 지방분권의 땅을 만들려면 현재 진행중인 서남해안 개발계획 S프로젝트 역시 지역개발 차원을 넘어 새만금—금강유역 같은 지방분권화 프로젝트로 함께 추진해야 한다.

우리가 내놓았던 새만금 바다도시와 금강유역 지방분권 행정도시 제안은 그 하나하나만으로도 대안(代案)이 될 수는 있으나 진행중인 국가사업을 혁신할 만한 대안(大案)은 아니었다. 그러나 새만금과 금강유역을 지방분권이 가능한 하나의 경제권역으로 보고 새만금을 황해 일원의 허브항만으로, 금강유역을 중부권역을 끌고 갈 수 있는 자립적 경제권역의 중심으로 하면서도 그 둘을 하나로 만드는 새만금—금강유역 안이야말로 현재 진행중인 새만금과 행정복합도시 사업을 진행은 하되 적절한 설계변경을 통해 희망의 한반도 프로젝트로 만들 수 있는 큰 방안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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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김석철 「새만금의 미래를 여는 새로운 시각」, 『창작과비평』 2002년 겨울호. 이후 보완된 내용을 『창작과비평』 2003년 가을호에 「새만금, 호남평야, 황해도시공동체」로 발표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