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과비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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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머리에

 

패권 이후의 미국과 한반도적 실천

 

 

미국발 금융위기로 전세계가 심각한 고통을 겪고 있다. 아이슬란드에 이어 우크라이나, 헝가리, 벨로루시, 파키스탄이 IMF에 구제금융을 요청했다. 그밖에도 남아메리카와 동유럽의 몇몇 나라가 금융 고위험국으로 논의되고 있으며, 이런 위험국가의 목록에 연일 주가와 환율이 롤러코스터를 타고 있는 우리나라도 들어가 있는 상태이다. 그리고 이런 금융위기가 이제는 실물위기로 이어지고 있다. 워렌 버핏의 말처럼 미국의 금융산업은 아프가니스탄이나 이라크에 미국이 퍼부었던 폭탄에 진배없는 금융대량살상무기였던 셈이다.

위기가 닥치자 “다른 대안은 없다”(TINA)던 신자유주의적 지구화의 열렬한 주창자들은 갑자기 말이 없어져버렸다. 오히려 지구화의 표준인 양 주장되어온 미국모델의 위상이 국제정치적으로나 경제적으로 실추했다는 이야기가 늘어나고 있다. 하지만 사태는 미국이 지금까지 주장해온 모델의 위기보다 더 심층적인 것일지도 모른다. 우리가 지금 목도하고 있는 것은 세계 자본주의체제가 ‘패권 이후’의 시대로 접어든 장면일 수 있기 때문이다.

세계 자본주의체제의 역사가 패권 경쟁과 교체의 역사였던 점에 비추어볼 때, 경쟁도 교체도 아닌 패권 이후의 시대는 확실히 전례없는 현상이다. 그것은 어떤 새로운 질서를 함축하고 있는 것일까? 현재로서는 미국이 국제정치에서 다자간 협상으로 돌아오리라는 것, 순항할지 확실치는 않지만 G20회의의 소집에서 보듯이 국제적 금융질서가 과두적 집단지도체제로 이행할 가능성이 크다는 정도 이상의 구체적 예상이 쉽지 않다. 아니 지금은 예측보다 새로운 질서를 더 민주적이고 평등한 것으로 만들기 위한 실천적 개입이 요청되는 시대라고 해야 할 것이다.

위기 속에서 미국은 버락 오바마를 새 대통령으로 선택했다. 흑인 혼혈 대통령의 탄생이 지니는 문화적 의미는 작지 않다. 뿐만 아니라 그에 대한 기대가 미국을 넘어 세계인들 사이에서 형성되고 있다. 그가 미국 내부문제를 소폭 개선하는 데 그칠지 아니면 미국을 새롭게 혁신한 프랭클린 로우즈벨트 대통령 수준 혹은 그 이상의 변화를 이끌어낼지 알 수 없다. 국제적인 차원에서도, 내리막길에서 가속페달을 밟는 것이나 다름없던 부시식의 국제정치나 파산한 워싱턴 컨쎈서스로부터 급진적으로 탈피할 수 있을지 확언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아마도 그가 자신에게 주어진 과제를 제대로 해결하고자 한다면, 자신이 생각해온 방향대로 가더라도 스스로 생각한 것보다 더 멀리까지 나아가야 할 것이다.

세계체제 내에서의 미국의 역할 조정이라는 면에서도 오바마의 선택은 중요하지만, 이미 가시화된 그의 한반도정책이 우리 사회에게 미칠 영향은 적지 않을 것이다. 물론 지난 10월 북한에 대한 테러지원국 해제에서 보듯이, 북핵문제 해결과 북미관계 개선의 방향에 관한 한 워싱턴에는 이미 합의가 형성되어 있다. 하지만 그 합의된 방향으로 마지못해 끌려가느냐 아니면 적극적으로 나아가느냐는 사뭇 다른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 오바마의 전향적인 자세는 한반도에 새로운 시운(時運)으로 다가올 것이다.

혹자는 보수적인 남한 정권과 진보적인 미국 정권 사이의 어긋남으로 인해 김영삼-클린턴 시기의 모습이 반복되지 않을까 우려한다. 하지만 이미 미국 민주당 정부와 북한 정권에 그런 시기에 대한 학습이 축적되어 있기 때문에, 북미간 교섭이 급물살을 탈 가능성은 있을망정 한국 정부에 발목을 잡힐 가능성은 낮아 보인다. 오히려 지금 요청되는 것은 이명박정부가 스스로 주장해온 실용에 부합하는 모습을 보이며 현재의 상황을 빨리 학습하는 것이다.

하지만 현재로서는 그런 기대가 참 허망해 보인다. 촛불집회 이후 이명박 대통령이 보인 모습은 국가의 공적 자산을 털어서라도 자기 지지층의 결집도를 높이려는 것이었고, 현재의 금융위기조차 후안무치할 정도로 그들에게 써비스할 기회로 활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세계적인 주택시장 거품의 붕괴 속에서도 거품을 서서히 가라앉히는 정책은커녕 국가를 건설회사로 개조하려는 듯한 최근 정책들을 보면 무능과 학습거부 의지의 결합으로밖에 여겨지지 않는다. 이런 자세라면 한반도의 평화를 진작할 시운에 역행하는 행보를 보일 가능성이 너무 크다.

그렇기 때문에 이명박정부에 대한 기대를 아예 접고 진보개혁세력들이 스스로를 쇄신하고 결집하려는 극진한 노력이 절실한 상황이다. 극진한 노력을 강조하는 데는 늘 해오던 말 이상의 염원과 각오가 담겨 있다. 이명박정부의 위험한 역주행과 공격적 신자유주의를 대중이 촛불을 들어 막고자 나선 일은 우리 사회의 축적된 역량을 스스로 입증한 자랑스러운 일이었다. 하지만 그와 더불어 이명박정부가 휘청이는 모습을 보이자 스스로를 혁신하려는 비상한 의지를 다져야 할 진보개혁세력의 노력이 느슨해진 면이 있었다. 민주당이나 진보정당들로부터 눈에 띄는 참신한 구상과 변화의 기운이 발견되지 않고, 환경운동연합의 불투명한 회계처리에서 보듯이 그간 신뢰받던 시민단체들마저 안일한 관행에 빠져 있음이 드러났다. 게다가 최근 시민사회단체들이 함께 구성한 ‘민생민주국민회의’마저 지지부진한 상태에 머무르고 있다. 대중이 지금 경제위기와 어려운 살림살이 속에서도 희망을 일구지 못한다면, 그것은 이제 더 기대할 것이 없는 이명박정부 때문이 아니라 매몰찬 자기개혁에 입각해 새로운 비전을 마련하지 못하고 있는 진보개혁세력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패권 이후 시대를 더 살 만한 세상으로 개조하기 위해 어떤 구상과 자세로 참여할지, 그것을 한반도적 수준에서 어떤 실천으로 구현할지를 두고 스스로를 채찍질하고 분발해야 할 때다.

 

이번호 특집 주제는 ‘문학이란 무엇인가’이다. 창비가 오래된 질문을 다시 꺼내든 이유는 위기의 시대일수록 참된 문학적 감수성이야말로 사람들의 마음을 위무하고 방향감각을 일깨울 수 있으며, 그런 과제를 감당하기 위해서는 문학인들 스스로 발본적인 문제로 돌아갈 필요가 있다는 판단 때문이다. 네편의 국내필자 글과 한편의 해외논문으로 꾸몄는데, 첫 글에서 백낙청은 촛불집회라는 당대적 경험이 어떻게 익숙한 작품과의 새로운 대면을 유도했는가에 대한 울림 풍부한 소회로부터 출발한다. 이어서 1970년대 이래 자신의 문학관이 보인 궤적이 당대와 어떻게 호흡하고 있는지 밝히고 그 호흡을 최근의 문학적 성과들로 확장해간다. 백낙청이 펼치는 문학론은 브라질의 문학비평가 호베르뚜 슈바르스의 글 「주변성의 돌파」와 내면에서 접맥되고 있다. 슈바르스는 작가 마샤두의 사실주의적 성취를 조명함으로써, 중심부의 문학형식이 혼효된 형태로 동시 수용된 브라질에서 그런 문학형식들이 변형을 거칠 수밖에 없는 한편으로 지역적 반향을 넘어서는 울림을 만들어낼 가능성을 보여준다. 그의 논의는 우리 문학의 자리를 점검하기 위해서는 중심부 문학과의 대조만이 아니라 주변부와 반주변부 문학들과의 비교가 필요함을 일깨우고 있다.

다른 한편 한기욱과 진은영은 2000년대 이래 우리 비평과 소설 그리고 시의 양상을 짚고 있다. 한기욱은 최근 문학비평과 작품들을 논쟁적으로 검토하며 문학에서의 진정한 새로움이 무엇인지 묻고 있으며, 진은영은 랑씨에르의 문학론을 우회로 삼아 시와 정치의 참된 결합을 주장한다. 접근법은 다르지만 둘 다 문학적 자기비판을 통해서 시대와의 연관을 확립하고, 그것을 작품 속에 내면화하기 위해 문학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던지고 있다. 이런 문제의식은 시대진단적 질문을 주역의 대과(大過) 괘에 대한 해석 속에 수행하는 김상환의 글에도 이어지는데, 그는 고현(古賢)을 넘나드는 사상적 우회를 통해 본연의 문제에 대한 망외의 깨달음으로 우리를 인도한다.

이번호에도 우리 사회의 산적한 과제들을 살피고 해결책을 찾기 위해 ‘대화’를 진행하고 ‘논단과 현장’의 글을 모았다. ‘대화’에서는 희망의 싹이 보이지 않는 우리 교육을 진단하려면 현장의 목소리를 듣는 것이 우선이라는 생각에서 기자, 학부모, 사교육 전문가를 모셨다. 교육학자나 교육단체 관계자들의 이야기와는 다른 뉘앙스, 다른 시각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논단’에서는 김기원과 이남주가 세계 금융위기와 이명박정부의 경제정책 그리고 시민참여형 통일운동을 논의했고, ‘현장’에서는 이명박정부의 언론정책에 맞서 끈기있게 싸우고 있는 YTN노조의 투쟁을 노종면 위원장의 육성으로 전한다.

이번호는 특집을 포함하여 여느 때보다 문학관련 읽을거리가 풍부하다. 시란에서는 등단 50주년을 맞이하여 일상과 현실의 무게를 섬세하게 그려온 시인 황동규의 신작시부터 창비신인시인상을 수상한 백상웅의 시까지 열두 시인의 다채로운 작품을 만날 수 있다. 공들여 마련한 소설란에서는 신예 소설가 6인의 작품을 통해 문단의 젊은 작풍을 느낄 수 있으며, 문학초점은 최근 출간된 시, 소설, 평론 중에서 주요 작품 다섯권을 곡진히 살폈다. 그리고 문학평론에는 임화 탄생 100주년을 기념하는 염무웅의 평론과 창비신인평론상 수상자인 이경진의 정이현론을 나란히 실었는데, 글 각각이 주는 의의도 곱씹을 만하지만 두편의 글이 우리 문학의 과거와 오늘을 성큼 짚어내며 이웃하고 있는 모습이 생각할 거리를 준다.

최근 국내외 신간서적 여덟권을 감칠맛 나게 평해주신 촌평 필자들께도 감사의 말씀을 드리며, 백석문학상 수상자 김해자 시인, 창비장편소설상 수상자 한재호씨, 창비신인상 수상자 모두에게 축하의 인사를 건넨다. 그리고 지난호에서 본지에 변화를 일으킬 새 얼굴들을 영입할 계획임을 알려드렸는데, 그 일환으로 김현미 교수와 황정아 교수가 새로이 편집위원진에 합류하게 되었다. 두 여성편집위원의 역할에 기대하는 바 크다.

작년 본지 겨울호 머리말에 대통령선거를 즈음하여 현대사의 분기점이 될 만한 해가 지나가고 있음을 지적한 바 있는데, 2008년은 그 분기점 이후가 어떤 것인지를 실감하는 한 해였다. 한 해를 지날 때쯤이면 다사다난했다는 소감이 들게 마련이지만, 올해는 현대사 속에서 오래 기억될 만한 해인 것 같다. 한반도에 흐르는 냉기가 걷히지 않았고 모든 사람들이 심각한 경제위기의 한가운데 놓여 있지만, 광화문을 수놓았던 촛불의 포근함과 환함을 담아 창비를 빛내주신 여러 필자들과 한결같이 따뜻한 성원을 보내주신 독자 제위께 따뜻한 송년의 술 한잔을 올린다.

金鍾曄

김종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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