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과비평

창작과비평
책머리에

 

바람 잘 날 없는 우리의 정치현실에서

 

 

여름호를 내고 지난 석달 동안 참으로 많은 일이 벌어졌다. 5월 23일에 노무현 전 대통령이 서거했다. 하루도 바람 잘 날 없는 우리의 정치현실에서는 벌써 아득해진 느낌마저 들지만 전직 대통령의 신분으로 스스로 세상을 버린 것은 대한민국 60년 헌정사상 초유의‘사건’이었다. 사실상 사법적 살인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그의 기세(棄世)를 당하여 밀려든 500만 추산의 애도 물결도 전대미문의 현상이었다. 이 급작스런 비보가 일으킨 엄청난 파장에 대해 지식인들은 다양한 해석을 내놓은바, 그중에서도 특히 “역사의 발전과 민주주의의 수호에 자신의 죽음이 소신공양(燒身供養)으로 바쳐질 것을 그의 무의식은 소망했”으리라는 대목을 곱씹어본 사람도 적지는 않을 것이다(염무웅 「노무현의 삶이 이룬 것과 그의 죽음이 남긴 것」, 창비주간논평 2009.5.29).

하지만 그런 소신공양을 통해 역사적 책무를 새로이 인식한 지식인들의 각성 못지않게 중요한 것은, “누구도 원망하지 마라”는 유언의 참뜻을 자기 가슴을 치는 심정으로 되새긴 이들이 다름아닌 평범한 시민이라는 사실이다. 2004년 탄핵정국에서‘촛불’로 되살린 노무현정부가 실정을 거듭하는 데 실망해 급기야 2007년의 대선을 맞아‘잃어버린 10년’이라는 교묘한 거짓말과‘747’이라는 달콤한 공약을 한번 믿어보기로 작심했던 사람들 말이다. 자기 손으로 잘못된 권력을 만들어낸 대과(大過)를 이듬해인 2008년에 다시 한번 촛불을 밝혀 씻고자 했던 우리 대한민국 시민들은 노무현정부의 무수한 시행착오와 정치적 한계를 아주 잊지는 않으면서‘바보 노무현’이 지향한 가치를 지극한 애도로써 인정해준 것이다.

그러나‘죽은 공명이 산 중달을 쫓는다’는 말이 나돌기도 했던 조문정국의 열기에도 불구하고 달라진 것은 아무것도 없는 듯하다. 나라 안팎으로 어느것 하나 속 시원한 맛은 없고 시민들의 일상도 더 고달파졌다. 공교롭게도 노무현 서거 바로 이틀 후인 25일에 북측이 제2차 핵실험을 전격 감행하는 바람에 남북관계가 더 틀어지고 덩달아 국내의 냉전세력도 기세가 등등해진 느낌이다. 그로부터 두달이 넘은 지금 그동안 6·15 남북공동선언과 10·4 정상선언에 대해 모르쇠로 일관하며 어깃장을 놓던 이명박정부가 클린턴 전 대통령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만남으로 한반도문제 논의에서 소외될 위험을 어떻게 넘길지 지켜볼 일이다.

그런데 이처럼 국내정세보다 남북관계를 먼저 거론하게 되는 것은, 북녘을 괄호치고는 궁극적으로 남녘의 평화도 요원할뿐더러 분단 60년사에서 남북관계의 실상을 잘 살피면 국내정치의 문제도 저절로 드러나는 면이 있기 때문이다. 예컨대 현재 남북간 대화의 단절만 해도 국내의 일방통행적 통치행태를 그대로 되비춰주는 거울이지 않은가.

대한민국이 이만큼이나마 발전한 데는 진보든 보수든 극단을 경계하고 상식을 중시한 사람들의 공로가 적지 않지만 MB정권은 상식에 대한 존중이 너무도 부족하다. 자국민에 대한 통치방식도 가히 천격(賤格)이라 하지 않을 수 없는데 그런 통치가 야기한 문제는 한둘이 아니다. 지난 7월 22일에 강행처리된, 그 잠재적 해악성에 관한 한 MB악법의‘꽃’이라 할 미디어법 파동도 단적인 예다.

거대 언론매체에 의한 방송장악과 정보의 편향적 유통이 뻔히 예견되는 이들 법안은 처음부터 국민 대다수가 반대한 사안이었다. 바로 그런 법안이 모든 민주적 절차들을 짓밟는 재투표 및 대리·부정투표를 통해 강행처리되었다. 그 과정을 생중계로 시청한 시민들의 심경은 더 말할 필요조차 없다. 헌법재판소 재판관들이 법관으로서 최소한의 양식을 지키는 법리적인 판단을 해주리라 기대하지만, 원내야당마저 나서서 미디어법 원천무효 장외투쟁을 벌이고 있는 마당에 우리도 마냥 손놓고 있을 수만은 없겠다. 거대 언론권력과 야합하려는 정부와 집권당의 실체가 워낙 후안무치하기 때문이다. 서민들의 시장에 나가 입으로는‘민생정치’를 광고하며 열심히들 살라고 떠들어대지만 뒤로는 복지프로그램을 대폭 축소하고 대한민국의 시계를 박정희시대에 맞추기 위해 헌법재판소에 제출하는 회의록마저 왜곡하는 등 수단방법을 안 가리는 정치집단이 바로 그들이 아니던가.

극도로 파당적인 세력, 그것도 임기가 없는 언론권력에 의한 여론 독과점이라는 문제에 한국 민주주의의 사활이 걸려 있음은 두말할 나위 없다. 또한 이런 상황일수록 당파와 이념을 넘어서서 정치연합의 통합적 기술을 발휘해야 하는 사람들의 책무가 막중하다는 점도 더이상 설명이 필요 없을 것이다. 강고한 분단체제의 규정력을 망각하고 여전히 ‘나만의 선진화’라는 망념에 빠져 있는 인사들이 정부나 집권당뿐 아니라 심지어 학계와 시민사회에도 상당수 포진한 정치현실이기에 그같은 기술은 더욱 절실하다.

그 기술은 결국 가파른 것은 좀더 둥글게 다듬고 두루뭉술한 것은 좀더 뾰쪽하게 하는 중도(中道)의 다른 이름인바, 성찰적 진보와 합리적 보수가 바로 그런 길에 함께 들어설 때 언론악법을 동원해 87년 6월항쟁 이전으로 시간을 되돌리려는 이명박정부를 제대로 제어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다가오는 10월의 재보선에서도 민심의 일단은 드러나겠고 어쩌면 내년의 지방선거를 즈음하여 천심이 폭발할지도 모른다. 그러나‘민심과 천심’만 바라보기보다는 우선은 우리 시민사회도 각성한 민주시민들의 생활 속에서 움트는 기운을 지혜롭게 모아들이는 일에 더 열심을 내야 할 일이다. 바로 그런 시민사회가 반MB전선을 단호하게 그을 줄 아는 현실정치세력과 좀더 폭넓고 원만한 정치연합을 만들어나갈 때 비로소‘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라는 상식을 회복하고 무색해진 6·15 남북공동선언의 의의도 되살릴 수 있으리라 믿는다.

 

제목이 시사하듯이 비판을 넘어서는 해법의 모색을 다각도로 추구하는 이번 특집‘한국사회, 대안은 있다’도 바로 그런 믿음에 근거한다. 아시다시피 창비는 한국의 현실을 한반도적 맥락과 연동하여 파악하면서 이를 다시 동아시아라는 매개를 거쳐 세계체제의 현황과 연결하는 작업을 꾸준히 해왔다. 단계가 올라갈 때마다 추상도가 높아질 수밖에 없는 이런‘고차방정식’은 역시 우리가 발 딛고 있는 땅에서부터 풀어갈 수밖에 없겠는데, 특집 앞머리의 좌담은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 이후 더욱 절실해진‘진보개혁진영’의 자기성찰을 화두로 삼으며 시작한다. 각자의 무대에서 활발하게 활동중인 김대호·백승헌·주대환·김종엽 네분이 펼치는 대화는 한국의 정치적 담론지형에서 약진하고 있는 사민주의와 진보적 자유주의의 문제의식에 진지하게 귀 기울이는 한편, 이제는 창비의‘브랜드 담론’으로 자리잡은 분단체제론과 변혁적 중도주의의 현재성도 새로이 점검한다.

좌담을 잇는 것은 그간 분단체제 이행기의 한반도경제라는 문제를 천착해온 이일영의 글이다. 그 특유의‘세발자전거론’(지역·국가·경제조직)에 좀더 튼실한 내용을 부여한 이번 글은 미국 주도의 신자유주의 세계경제가 위기에 봉착한 상황에 대한 간명한 분석을 곁들이면서 한결 구체성과 설득력이 더해졌다. 각각‘생활정치’와‘사회적경제’라는 발상을 새롭게 벼리는 김현미와 노대명의 논의에도 주목해주시기 바란다. 이명박정부가 파괴하는 공공성(公共性)의 생활세계를 복원하기 위해 구체적으로 어떤 실천적인 노력이 필요한가를 조목조목 짚고 있다. 상이한 주제를 다룬 두 논자가 한 목소리를 내는 순간이 특히 흥미로운데, 신자유주의의 이름으로 정당화되는 삶의 식민화를 극복하고‘살림과 공생’이라는 가치를 생활현장에서 구현해야 한다고 설득하는 이들의 노작에 공감하는 독자가 적지 않으리라 생각한다.

한국사회의 당면 문제에 실천적으로 개입하는 특집 외에 이번호에서 특히 자랑하고 싶은 것은 논쟁성이 짙은 글들이다.‘논쟁’이야말로 공부로써 세상에 참여하는 지름길이다. 지난호 황정아의 평문에 대한 꼼꼼한 반론인 서동욱의 평론을 비롯해‘논단과 현장’에 실린 세편의 묵직한 논문 모두가 우리의 학문풍토에 경종을 울리는 바 있다. 신라통일 담론이 일제 식민주의 역사학의 발명품임을 주장한 논자들의 맹점을 실증적으로 논파함으로써 탈민족주의 역사학의 편향을 바로잡은 김흥규의 평문, 한국의 탈민족담론에서 전가의 보도처럼 쓰이는 베너딕트 앤더슨의 『상상의 공동체』에 대한 정밀하고도 근본적인 비판을 담은 라디카 데싸이의 서평논문은 깊은 통찰을 선사할 것이다. 황진태의‘남북한 대운하 구상’비판도 독자들에게 열띤 토론거리를 제공한다.

공지영의 최근 화제작 『도가니』가 우리시대의 모든 억압적 현실에 대한 부정과 분노의 절박한 소설적 구현임을 설득력있게 드러내는 정혜경, 작고 10주기를 맞은 조태일 시세계의 현재성을 시인이 살아간 시대와는 사뭇 달라진 2000년대의 상황에 놓고 공감적으로 증언하는 김수이, 시적인 것과 정치적인 것을 삶을 매개로 잇고 그 관계의 의미를 끈질기게 묻고 있는 강동호 등의 문학비평도 일독을 권한다. 이 세 평문과 더불어 창비시선 300호 기념시집 『걸었던 자리마다 별이 빛나다』에 부친 박수연과 신형철의 대조적인 논평을 포함한 문학초점의 다섯 꼭지는 한국문학의 현황에 대한 집약적인 보고서라고 자부한다.

이번호의 또다른 보람은 풍성한 창작란이다. 저마다 다양한 시세계를 개척하고 있는 고형렬, 김기택 등 열한분 시인들의 작품이 어우러진 시란은 전통을 갱신함으로써 창신(創新)을 모색하는 창비의 문학정신과도 상통한다. 또한 젊은 세대에게 이젠‘역사’가 되어버린 6·25전쟁 이야기를 구수하게 들려주는 이호철을 비롯해 연재가 이어질수록 역사소설로서의 품격과 흥미를 더하는 김연수의 장편, 배수아와 윤고은의 단편도 시란과 더불어 독자들이 천고마비의 계절을 함께하기에 모자람이 없는 작품이다. 그밖에 단순한 책 소개 이상의 촌철살인을 담은 비평 또는 문화평을 보내주신 일곱분의 촌평란 필자들께도 감사드린다.

올해 만해문학상 수상자 공선옥씨와 신동엽창작상 수상자 김애란씨는 수확의 계절을 맞아 그간 정진해온 창작의 결실을‘상복’으로 맺었다. 두분께 축하의 인사를 드린다. 끝으로 이번호부터 편집위원진에 김항, 백지운 교수가 새로이 합류했고 연구년을 마친 이필렬 교수가 복귀했음을 알린다. 특히 젊은 두분의 참여는 세대간의 조화 속에 활력을 불러일으킬 것으로 기대한다.

여전히 어지러운 시국이고 또 혼란스런 한반도의 상황이지만 본지와 더불어 이 난국을 지혜롭게 헤쳐나가는 독자가 더 많아지기를 바란다. 앞으로 독자 여러분들께 더 깊은 통찰과 신바람을 선사하기 위해 노력하는 창비가 될 것을 약속드린다.

柳熙錫

유희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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