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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손흥규

손홍규 孫洪奎

1975년 전북 정읍 출생. 2001년 『작가세계』 신인상으로 등단. 소설집 『봉섭이 가라사대』 『사람의 신화』, 장편소설 『귀신의 시대』 등이 있음. munhac@empas.com

 

 

 

투명인간

 

 

그가 내게 물었다. 여기에 우리 말고 다른 누군가 있는 것 같지 않아?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나직한 목소리로 물었다. 아버지, 여기 오셨어요? 내 목소리는 허공에 풀려들어가 허공의 일부가 되었다.

 

우리는 지난해에 어떤 방식으로 아버지의 생일을 치렀는지 기억하지 못했다. 여느해처럼 그냥 슬쩍 넘어갔을 수도 있고 조촐한 파티를 벌였을 수도 있다. 패밀리 레스또랑에서 외식을 했을 수도 있고 영화를 관람했을 수도 있다. 하지만 딱히 지난해의 오늘이 어땠는지를 기억할 수는 없었다. 아버지를 투명인간으로 만들자는 건 농담이었을 뿐인데 어머니와 동생은 진지하게 받아들였다.

어머니는 아버지의 생일을 기념하는 특별한 선물이 될 거라고 했다. 동생은 이 세상을 단조롭고 따분한 곳으로 여겼기에 여태 해보지 못한 일을 한다는 데 흥분했을 뿐이다. 우리는 효과적으로 아버지를 없는 사람처럼 취급할 수 있는 방법을 숙고했다. 절대 눈을 마주치면 안돼! 몸이 부딪혀도 모른 척해야 돼! 이런 의견들이 나왔다. 이름을 불러도 반응하면 안된다고 동생은 강조했다. 습관적으로 대답할 수도 있으니까. 동생과 나는 어린시절에도 대답은 잘하는 아이들이었다. 나는 어머니가 걱정스럽지는 않았다. 내가 기억하기로 어머니는 한번도 감정을 노골적으로 표현해본 적이 없다. 배우가 되었다면 일류는 아니더라도 평생 직업으로 삼을 정도는 되었을 거다. 어머니는 실수를 하지 않을 게 분명했다.

동생은 좀 걱정스러웠다. 웃음이 헤프다 싶을 정도였으니까. 나는 몇번이나 다짐을 받았다. 아버지를 투명인간으로 만들 수 있느냐 없느냐는 우리가 어떻게 하느냐에 달렸다. 나는 동생에게 웃음이 나거나 짜증이 날 때 마음을 다스리는 심리요법을 가르쳐주었다. 간단하다. 웃고 싶으면 슬픈 일을 떠올리고 짜증이 나면 기쁜 일을 떠올려라. 어차피 동생은 웃거나 짜증내거나 둘 가운데 하나였으니까. 동생은 고개를 주억거렸다. 오빠나 실수하지 마셔. 동생은 내게 혀를 내밀었다. 알아듣는다는 믿음이 생기지 않았다.

 

정작 연극이 시작되었을 때 나를 놀라게 한 사람은 동생이었다. 어머니는 아버지가 눈치채지 못하게 나를 보며 눈웃음을 치거나 손가락질을 했지만 동생은 시종일관 최후의 전투를 치르는 군인처럼 무덤덤했다. 물론 동생의 엄숙함은 과장된 게 분명했다. 우리 식구가 아니더라도 동생의 얼굴이 부자연스럽게 뻣뻣하다는 걸 단번에 알리라. 얼굴 근육도 쓰는 대로 발달하기 마련이다. 동생은 그처럼 근엄한 표정을 여태 지어본 적이 없기에 당연히 누가 보더라도 꾸민 표정이라는 걸 알 수 있었다. 하지만 어머니는 재치있게 동생의 과장된 표정과 행동을 자연스러운 것으로 윤색해주었다. 동생은 방금 남자친구가 바람둥이라는 걸 확인했다. 어머니는 동생이 통화할 때 옆에 있었고 아버지가 돌아오기 직전까지 남자들이 어떤 존재인지를 훈계했다. 이런 식으로 슬쩍 사연을 만들었기에 동생이 평소와 달리 과묵하더라도 충분히 이해할 만한 일이 된 셈이다. 아마도 가장 당황한 사람은 나였을 테다. 나는 목구멍이 근질거려 미칠 것만 같았다. 심장이 딸꾹질을 하는 듯했고 입가에 미세한 경련만 일어도 온몸이 구겨졌다 펴지는 것처럼 강렬하게 느꼈다. 그래본 적이 없는데 맞은편에 아버지가 앉은 뒤로 아니 어쩌면 이 계획을 꺼낸 뒤로 다리를 떨었다. 다리를 떤다는 사실을 깨달을 때마다 멈추긴 했지만 조금 뒤 다시 다리를 떠는 걸 알게 되는 식이었다. 마약 같은 시간이었다. 우리 네 식구는 초조하고 몽롱한 상태로 금요일 밤 생일잔치를 치렀다.

 

식탁 가운데 놓인 둥그런 케이크는 동생과 내가 돈을 모아 샀다. 초콜릿 시럽으로 그린 하트 문양 둘레로 딸기와 키위 조각을 얹은 생크림 케이크였다. 과일과 포도주는 어머니가 준비했다. 초를 꽂을 때 잠깐 다퉜다. 우리는 몇개를 꽂아야 할지 몰라 어머니를 바라보았다. 어머니는 그것도 모르느냐며 우리를 힐난하더니 집게손가락으로 관자놀이를 누르고 슬며시 안방에 들어갔다 나왔다. 그리고 마흔여덟이라고 말했다. 동생은 쿡쿡 웃었다.

“엄마, 아빠는 엄마 서방이지 제 서방이 아니잖아요.”

나도 덩달아 웃었다. 아버지에게 똑같은 말을 해주고 싶었다. 아버지, 어머니는 아버지 마누라지 제 마누라가 아니잖아요. 어머니도 내킨다면 이렇게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쟤는 네 동생이지 내 동생은 아니잖니.

“서둘러라. 곧 오실 거다.”

케이크에 모두 열두개의 초를 꽂았다. 기다란 초는 십년을 뜻했다. 동생이 부주의하게 깊숙이 꽂는 바람에 짧은 초와 높이가 같았다. 내가 주의를 주자 동생은 우리 아빠가 열두살이네, 하며 손뼉을 쳤다. 나는 깊게 꽂힌 기다란 초를 뽑아 조심스럽게 다시 꽂았다. 하나에 십년씩 사십년을 꽂았다. 세월의 무게 따위는 전혀 느낄 수 없었다. 어머니는 벽시계를 올려본 뒤 다시 재촉했다. 승강기 운행 소리가 들렸다. 초에 불을 붙인 뒤 거실 전등을 껐다. 어둠이 벌떡 일어나다가 식탁 주위에서 고꾸라졌다. 촛불에 비친 동생의 얼굴은 고혹적이었다. 나는 현관문을 열어놓은 뒤 동생 옆에 앉았다. 제법 긴장이 되었다. 이윽고 아버지가 복도의 쎈서등을 뒤로 받은 채 씰루엣으로 섰다. 어머니는 고개조차 돌리지 않았다. 대단한 어머니였다. 이제 정말 시작인 거였다. 나는 실눈을 뜨고 아버지를 지켜보았다. 아버지의 검은 팔이 전등 스위치 쪽으로 향하다 멈췄다. 식탁에 둘러앉은 우리를 의식한 게 분명했다. 아버지도 생일잔치에 동참할 준비가 되었다.

 

아버지는 식탁에 다가와 손을 번쩍 들었다. 반갑다는 뜻이었다. 때로는 다른 의미일 수도 있었지만. 하마터면 나도 손을 마주 들 뻔했다. 동생 덕분에 그런 실수를 피할 수 있었다.

“아빠는 대체 언제 오는 거야? 오빠, 가서 문 닫아버려.”

동생은 흥분했는지 목소리 끝이 떨렸다. 아버지를 앞에 두고 노골적으로 그런 적이 없었으니까. 나는 아버지를 스쳐 지나갔다. 내 오른팔이 아버지의 오른팔을 스쳤을 때 왠지 모르게 짜릿했다. 어쩌면 나는 이런 식의 상황을 오랫동안 꿈꿨는지도 모른다. 아버지를 없는 사람으로 취급하고 싶었던 욕망이 무의식 속에 잠복했다가 이제야 본색을 드러내며 활개를 치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런 생각이 들자 부끄러웠다. 나는 아버지를 미워하지 않았다.

아버지는 모종의 연극이 실연중임을 눈치 챈 듯했다. 아마도 그는 유쾌한 가족극을 연상했으리라. 그는 어머니 옆자리에 앉았다. 문을 닫고 돌아온 나는 아버지 맞은편, 동생 옆에 다시 앉았다. 아버지는 싱글벙글 웃었다. 그는 식구들이 무슨 일을 꾸몄는지 다 알지만 기꺼이 속아 넘어가줄 용의가 있노라고 말하고 싶어하는 듯했다. 나는 허공을 보는 것처럼 아버지를 보았다. 아버지의 양복 윗도리는 하루의 노동을 증명하듯 후줄근했다. 어깨선이 구겨졌고 넥타이가 비뚤었다. 팔뚝에 잡힌 주름의 골은 촛불 탓에 더욱 깊고 어두웠다. 아버지와 눈이 마주쳤을 때 나는 그를 보는 게 아니라 딴 곳을 본다는 인상을 심어주기 위해 애썼다. 그러니까 조금은 어색하게 웃었다. 나는 하마터면 다 아시잖아요. 권태로운 식구에겐 이런 시간이 가끔 필요하다는 걸, 이렇게 말해버릴 뻔했다. 다들 나를 모른 체하기로 작정이라도 했니? 멋진 케이크구나. 생일축하 노래는 어떤 걸로 불러줄 거니? 내가 언제 촛불을 끄면 되는 거지?

아버지는 주연으로 발탁된 무명배우처럼 쑥스러워했다. 나는 지루한 척을 하느라 엉덩이를 의자 끝에 걸치고 거만하게 여겨질 수도 있는 자세로 고쳐 앉았고 아버지와 눈길을 마주치지 않기 위해 이리저리 고개를 돌렸다. 덕분에 그의 특별한 주의를 끌지는 않았다. 하지만 그 즈음에는 아버지도 동생이 지나치게 뻣뻣한 얼굴이라는 걸 알았다. 어머니가 동생을 달랬다. 남자란 다 그렇다, 세상에 남자는 많다, 그 녀석보다 좋은 녀석을 만나게 될 거다, 이런 말들이었다. 나는 가느다란 초가 간신히 어둠을 희석시킨 이러한 공간에서 듣는 식구들의 목소리가 사뭇 별스럽고 매력적이라는 걸 깨달았다. 아버지는 유쾌하게 억울한 표정을 지었다. 그게 이 연극에 동참하는 방식이라 믿는 듯했다. 아버지는 어머니의 말에 귀를 기울였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진지하고 다정한 아버지로 여겨지길 바라겠지만 내게는 우스꽝스러울 뿐이었다. 처음으로 아버지가 귀엽다는 생각이 들었다. 케이크에 꽂힌 초는 가늘어서 금세 줄었다. 여보, 나 좀 봐주구려. 나 왔잖아. 이제 시작해도 돼. 어머니는 화들짝 놀라며 우리에게 말했다.

“얘들아, 여기 뭐가 있는 것 같지 않니? 무슨 소리가 난 것 같구나. 그런데 언제 이렇게 의자가 밖으로 나왔지?”

존경스런 어머니였다. 그 말을 동생이 두꺼비가 혀를 내밀어 파리를 낚듯 날름 받았다.

“그거 내가 발로 밀었어.”

끈끈하기 짝이 없는 대화였다. 모녀는 죽이 척척 맞았다. 어머니와 동생에게 나는 감탄했다. 아버지는 이 장난이 오래갈 것이라고 여겼는지 어깨를 으쓱하더니 그럼 나 촛불 끈다,라고 말한 뒤 입바람을 훅 불었다. 말릴 새도 없었다. 어머니가 비명을 질렀다. 놀란 아버지는 어머니를 껴안았는데 그럴수록 더 큰 비명이 났다. 다른 상황이었다면 듣는 나로 하여금 분노를 불러일으킬 수도 있을 만큼 예의 없는 비명이었다. 어머니는 치한을 떨어버리듯 몸을 비틀어 아버지 품을 벗어났다. 동생이 재채기를 했노라고 놀라게 해서 미안하다고 위장병을 앓는 판사처럼 말했다. 촛불은 꺼지지 않았다. 조금 후회가 되었다. 반갑게 아버지를 맞고 행복한 얼굴로 축하노래를 부른 뒤 입을 모아 촛불을 끄고 박수를 친 뒤에, 아버지가 사라졌어! 그러면서 아버지를 찾아 온 집안을 헤매는 방식이 더 낫지 않았을까. 어머니는 창백한 얼굴로 동생을 나무란 뒤 무언가 자신을 붙잡는 듯해 소름이 돋았다며 두 팔을 번갈아가며 손으로 쓸어내렸다. 나는 저런 어머니라면 동생이 트럭에 치일 위기에 처할 때 그 앞을 가로막아 괴력을 발휘할 수도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버지는 어머니가 몸부림을 칠 때 양복 윗도리가 벗겨지며 드러난 왼쪽 어깨를 손으로 매만지다 안방으로 들어갔다. 그사이 어머니는 손으로 입을 가린 채 웃었고 나는 옷을 벗는 시늉을 했다. 동생은 막간을 인정하지 않는 엄격한 연출가처럼 굳은 표정을 유지했다. 정말로 아버지는 옷을 갈아입고 나왔다. 추행에 실패한 치한처럼 얼빠진 얼굴로 어머니를 보다가 한숨을 푹 내쉬었다. 그는 인내가 절실했다. 이제 곧 식구들이 웃음을 터뜨리며, 어때요 감쪽같았죠? 하고 고백하기를 기대하는 것 같았다. 아버지는 비틀어지는 얼굴을 바로잡기 위해 손으로 쓱 쓸어내렸다. 그의 주름진 손등이 눈에 들어왔다. 정맥이 두드러진 그의 손등은 이국 도시의 지하철 노선도를 연상시켰다.

 

식탁에 앉은 채로는 아버지를 없는 사람 취급하는 게 생각처럼 쉽지 않았다. 나만 깨달은 게 아닌 듯했다. 어머니가 맨 먼저 일어나 안방으로 들어갔고 동생도 자신의 방으로 들어갔다. 나마저 사라지면 안될 것 같았다. 나는 베란다를 택했다. 베란다에 가자마자 후회했다. 좀더 따뜻한 곳을 선택할걸 싶었다. 그곳에 고였던 냉기가 대바늘처럼 나를 쿡쿡 찔렀다. 어머니가 정성들여 가꾸는 화초들은 아무런 향기가 없었다. 선 채로 식탁을 내려다보는 아버지가 창에 비쳤다. 뒤돌아보지 않고도 아버지가 무얼 하는지 알 수 있었다.

언제부턴가 어머니는 화분 가꾸기에 몰두했다. 온갖 꽃들을 키웠다. 그리고 여인국의 여왕처럼 근엄하고도 자비로운 눈빛으로 꽃들을 바라보았다. 나는 어느날 아버지와 어머니가 나누었던 짧은 대화를 떠올렸다. 아름다운 꽃들이군. 그래도 나는 당신이 더 아름다워. 아뇨, 잘생긴 꽃들이에요. 어머니는 꽃을 여자에 비유하지 않았다. 어머니에게 꽃은 미소년이었다. 그때 비로소 나는 어머니가 미소년들 위에 군림하는 고독한 여왕 같다는 걸 알았다. 아무려면 어떠랴. 어머니가 꽃들과 간통을 하는 것만 아니라면 아버지는 상관없었으리라.

아버지는 여전히 스탠딩 삼진을 당한 타자처럼 식탁 앞에 선 채로 케이크를 바라보았다. 아버지의 내면에는 어떤 움직임이 있을까. 일상이라는 지각 아래 은폐되었던 거대한 분노의 판들이 움직이는 중인지도 모르겠다. 나는 아버지가 화를 낼 것 같아 불안했다. 그러나 그런 불안감보다 걱정이 앞섰다.

우리 네 식구는 안방과 작은방 그리고 거실과 베란다, 이렇게 절묘하게 네 곳에서 하나씩의 꼭짓점이 되어 마름모꼴로 선 셈이었다. 꼭짓점을 잇는 선들은 팽팽할 거였다. 어쩐지 아버지와 내가 선 자리가 예각이고 어머니와 동생이 선 자리가 둔각일 것만 같았다. 그러니까 지금 나와 아버지가 가장 멀리 떨어진 셈이다.

 

어머니가 거실의 불을 켰다. 거실이 환해지자 심장박동이 빨라졌다. 나는 주맹증을 앓는 사람처럼 종작없이 거실을 왔다갔다 했다. 쏘파에 앉는 게 가장 편하다는 걸 깨달은 뒤로는 그 자리에 꼼짝 않고 있었는데 그 꼴이 우스워 보일 듯해 텔레비전을 켰다.

“이러다 초가 다 타고 말겠어.”

진지가 함락되기 직전 지휘관이 내뱉음직한 목소리로 동생이 말했다. 동생은 초를 뽑은 뒤 케이크를 냉장고에 넣었다. 어머니는 불안한 듯 눈동자를 이리저리 굴렸는데 그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느냐고 동생에게 묻는 듯한 눈빛이었다. 나 역시 그런 눈빛이었을 것이다. 나는 어머니도 이제 어설픈 연극의 막을 내려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이라 믿었다. 그런 낌새를 느꼈는지 동생은 단호하게 행동했다. 나는 가끔 동생의 단호함이 기이하게 여겨지곤 했다. 그러기 위해 감내해야 할 공포를 엿보아서만은 아니다. 그럴수록 앞으로 더 단호해져야 한다는 걸 동생이 모를 리가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동생은 딱딱한 얼굴이긴 했지만 거침이 없었다. 생각해보니 동생에겐 이 연극이 그다지 어렵지 않을 듯했다. 평소에도 동생은 아버지가 안중에 없다는 듯 굴었다. 동생은 물기가 뚝뚝 듣는 머리칼을 수건으로 비비며 거실을 돌아다녔는데 그러면서 전화통화까지 했다. 신문을 읽는 아버지에게 물방울이 튀어도 상관하지 않았다. 나는 그럴 때마다 안타까웠다.

그런 동생이 드라마를 시청하면서는 곧잘 눈물을 흘렸다. 언젠가는 그의 방에서 통곡이 들려오기도 했다. 무척 감명깊은 소설이라기에 나도 읽었는데 나는 동생이 어느 대목에서 통곡과도 같은 울음을 토했는지 짐작조차 할 수 없었다. 하지만 나는 내색하지 않고 여러번 눈물을 흘렸노라고 말해주었다. 동생은 기뻐했다. 그처럼 기뻐하는 동생을 보면서 그의 취향에 좀더 애정을 가지면 좋을 것이라 생각하기도 했다.

아버지의 시선은 케이크를 따라 움직였다. 냉장고 문이 탁 하고 닫힐 때 그의 시선도 잘려나갔다. 아니 부력을 잃은 물체처럼 툭하고 바닥에 떨어졌다. 아버지가 고개를 숙인 건 달리 시선을 둘 곳이 없어서겠지만 나는 아버지가 털썩 무릎을 꿇고 자신도 알지 못하는 죄를 고하는 것처럼 여겨졌다. 누군가를 없는 사람처럼 다루는 일이 권력을 부여받는 것과 비슷하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기에 마음이 불편했다. 그만두고 싶었다. 한 집안의 가장을 투명인간 취급하는 게 썩 즐겁지가 않았다. 가장이 모욕을 받으면 식구들 모두 똑같은 모욕감을 느끼는 것과 비슷하달까.

아버지가 어머니의 팔을 붙잡았을 때, 아버지로서는 도저히 짐작조차 할 수 없는 싸늘한 표정이 어머니의 얼굴에 떠오른 걸 나는 보았다. 당연했다. 어머니는 내 쪽을 향해 섰고 아버지는 어머니 뒤에 섰으니까. 여보, 왜 이래? 아버지는 그렇게 말했다. 어머니는 화를 낼 자격이 없는 상대방이 화를 낼 때나 경험했을 법한 모멸감을 그 순간 느꼈던 게 분명하다. 어머니는 아버지의 팔을 뿌리치고 뒤도 돌아보지 않은 채 동생에게 장난치지 말라고 한 뒤 선언하듯 이렇게 덧붙였다.

“난 네가 그런 짓을 할 때마다 소름끼쳐.”

동생은 눈치가 빨라서 다소곳이 다음부터는 그러지 않겠노라 대답했다. 아버지는 어떤 기분일까. 식구들이 자신을 모른 체하는 게 혹시라도 무시하는 것처럼 여겨지지는 않을까. 화가 나면 어머니는 말을 하지 않았다.

 

집안을 유영하는 점액질의 공기들 사이로 그보다 더 차지고 끈끈한 침묵이 느릿느릿 흘렀다. 이런 장난을 시작하지 않았다면 케이크를 한조각씩 먹고 포도주를 한잔씩 들이켠 뒤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을 만큼의 시간이 흘렀다. 아버지의 생일에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란 그런 게 전부였다.

어머니는 식탁을 치웠고 동생은 리모컨으로 채널을 탐색했다. 나는 다리를 꼬았다가 쥐가 올라 풀었다. 발뒤꿈치를 소리 나지 않게 바닥에 찧었는데 예민한 동생이 나를 흘겨보았다. 나는 다시 다리를 떨었다. 이번에는 다리를 떤다는 걸 분명히 알았지만 그만두고 싶지 않았다. 나는 힐끔 아버지가 서 있는 쪽을 보았는데, 종양이 자라는 모습을 저속촬영한 영상을 관람한 기분이었다. 거실 한구석에 아버지는 말라죽은 고무나무처럼 섰다. 나는 아버지가 손뼉을 치며, 자자, 내가 졌으니까 이제 그만하자. 이만큼 놀렸으면 충분하잖아,라고 말해주길 기다렸다. 조금 과장된 포즈를 취한대도 분노를 터뜨리는 것보다는 나을 테니까.

그쯤에서 신경전이 펼쳐진 듯했다. 그러니까 어느 쪽도 먼저 항복하기 싫어했던 것 같다. 우리는 우리대로 아버지는 아버지대로 상대쪽이 먼저 고개 숙이길 바랐다. 아버지는 당연히 우리가 지금까지 연극을 했을 뿐이었노라 고백하길 바랐을 테고 우리는…… 아버지가 좀더 고분고분하길 바랐던 거다! 그랬다. 아버지는 한번도 고분고분한 적이 없었다. 불을 끈 채 현관문을 열어놓았다면 놀란 척이라도 했어야지, 촛불을 켠 생일케이크를 보았다면 기쁘고 고마워 어쩔 줄 몰라 허둥댔어야지, 아버지는 너무 일찍 연극에 동참한 셈이다. 처음에는 나와 동생 그리고 어머니 가운데 누구도 아버지를 괘씸하다고 여기지 않았겠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점점 그런 불만이 자랐던 게 틀림없다.

여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연극을 금방 끝내고 싶지 않았다. 조금 더 아버지를 내버려두어도 괜찮을 듯했다. 화를 내도 모른 척할 자신이 생겼다. 감정이란 빛처럼 파동이면서 입자인 것 같았다. 이따금 나는 화가 났을 때 노려본 사물이 똑같은 강도의 감정을 되쏘는 걸 느낀 적도 있다. 제풀에 지친다는 말은 그런 의미인지도 모른다.

무의미하게 흘려보낸 시간들이 거실 안에 패총처럼 쌓였다. 나는 탁하고 무거운 공기가 점점 견디기 힘들어졌다. 다들 그런 듯했다. 어머니는 더이상 내게 은밀한 눈길을 보내지 않았고 동생은 더욱 노련해져서 그의 눈에는 정말 아버지가 보이지 않는 게 아닐까 싶을 정도였다. 아버지는, 예상과 달리 낙담하지도 분노를 터뜨리지도 않았다. 그는 순진한 사람이었다. 언젠가 내게 서운했던 점을 말하기도 했는데 나는 어이가 없어 그를 어떻게 납득시켜야 할지 알 수 없었다. 내 어린시절의 일이라고 했다. 물론 나는 기억하지 못한다. 어머니를 따라 교회에 처음 예배를 보러 갔다 돌아온 내가 그를 붙잡고 눈물이 그득한 갈쌍갈쌍한 눈으로 올려보더란다. 목사가 그랬다며 아버지는 지옥에 갈 거라고, 그게 못내 서러워서 울더란다. 그때 아버지는 사람이 아니라 악마가 된 기분이었다고 말했다. 그 말을 듣던 순간의 나 역시 그와 연결된 선이 끊어진 기분이었다. 원죄를 깨달은 기분이라고나 할까. 나는 내가 스스로 태어나지 못하고 부모에게서 태어났다는 사실이 원죄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 순간 아버지는 내 죄의 유일한 근원이었다. 이처럼 간단한 대화에서조차 우리는 행성들처럼 멀리 떨어진 존재라는 걸 확인할 수 있을 따름이었다.

 

나는 아버지가 집에 있으나 없으나 별로 다르지 않다는 걸 깨달았다. 시간이 흐를수록 나 역시 어머니와 동생처럼 자연스러워질 수 있었다. 때로는 정말 내가 아버지를 관통한다는 기분이 들기도 했다. 어머니는 아버지의 얼굴이 코앞까지 다가왔는데 눈도 깜빡하지 않았다. 동생은 아버지와 부딪쳤는데 무언가에 발이 걸려 그런 것처럼 자연스럽게 휘청대다 자세를 바로잡았다. 우아하기까지 했다. 나는 아버지의 얼굴에서 동심원을 그리며 번져가는 의혹을 보았다. 그의 가슴에 던져진 돌멩이 하나가 그의 감각뉴런을 활성화시켰다. 나는 그가 말단 감각신경을 곤두세우는 걸 느꼈다. 의혹의 파문은 그의 육체에 갇히지 않았다. 그의 손가락 끝에서 머리칼 끝에서 허공으로 전달되어 그를 둘러싼 공기들에도 파동이 전해졌다. 그가 흥분한 만큼 그의 영토도 흥분했다.

나는 훨씬 대담해졌다. 아버지와 눈길이 마주쳐도 고개를 돌리거나 딴청을 부리지 않았다. 덕분에 나는 그의 얼굴에 접종된 불안, 초조, 공포 따위를 알 수 있었는데, 기묘한 건 그런 감정들에 호기심이 섞였다는 점이다. 그는 어머니 얼굴을 이리저리 뜯어보다가 한걸음 물러서더니 팔짱을 끼고 고개를 갸웃 기울였다. 동생이 다가오면 부딪히지 않기 위해 옆으로 비켜서기도 했다. 그는 비로소 의심을 품게 되었다. 그가 직면한 상황들은 연극에 지나지 않는다는 믿음이 의심의 여지없이 단단한 토대 위에 세워진 견고한 구축물이 아닐 수도 있다는 점을 고려하게 된 것이다. 자명하다고 여겨지는 것을 의심하기 시작한 순간 그의 얼굴이 변했다. 나는 왠지 아버지를 방금 잃어버린 듯한 기분이었다. 그리고 나는 영리한 물고기들을 상대하는 루어낚시꾼처럼 초조했다. 아버지는 현관으로 갔다. 집을 나가려는 것일까. 하지만 그는 그곳에 그냥 한참을 섰다. 그는 신발장 위에 걸린 거울을 본 것 같았다. 그는 잠시 헷갈렸으리라. 우리는 거울을 연극에 동참시키지 않았으므로, 거울이 그의 형상을 비추지 않는다거나 슬그머니 테두리 밖으로 밀어낸다거나 하는 일은 벌어지지 않았을 테니. 조금 뒤 어머니의 손전화기가 경쾌하게 울렸다. 나는 슬그머니 주머니 속에 손을 넣고 익숙한 버튼을 눌러 내 손전화기의 수신벨 모드를 진동으로 바꿨다. 동생도 그렇게 하는 듯했다. 어머니는 손전화기가 울리든 말든 신경쓰지 않고 사과를 깎아 먹기 좋게 잘라 접시에 담아 갖다주었다. 아버지는 손전화기를 든 채 우리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동생이 텔레비전 채널을 돌릴 때 나는 주머니 속에서 은밀한 떨림을 느꼈다. 진동은 오래 계속되었다. 아버지는 동생에게도 전화를 걸었다. 동생은 앉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자신의 방으로 들어갔다. 아마도 동생은 아버지 눈이 닿지 않는 그곳에서 손전화기를 꺼버릴 것이다.

아버지는 가능성을 고민하는 듯했다. 물리적인 접촉이 아닌 다른 방식으로 우리와 교신할 수 있는 수단들을 헤아리는 듯했다. 헛기침을 한 건 목소리를 가다듬기 위한 것일 게다. 아버지는 내 이름과 동생의 이름을 차례로 불렀다. 평소보다 한 옥타브 낮은 목소리였는데 그 탓인지 신경에 거슬렸다.

아무도 대답하지 않았다. 아버지의 목소리는 허공에서 갈팡질팡하다 잘게 부수어지며 선반, 쏘파, 장식장 같은 사물들에 먼지로 내려앉았다. 아버지는 필담을 시도했다. 그는 오래전 신발장 위에 버려지다시피 한 동생의 스케치북에서 도화지 한장을 뜯어내고 거기에 붉은펜으로 메씨지를 적었다. 내가 정말 보이지 않는 거니? 이런 글자였다. 물론 우리는 아버지는커녕 도화지조차 보이지 않는 것처럼 행동했다. 나는 가슴 한쪽이 저렸다. 아버지의 편지를 받은 적이 있다. 군대에 가던 날이었는데, 아버지가 건넨 편지봉투에는 빳빳한 만원짜리 지폐 열장과 편지가 들어 있었다. 훈련소로 가는 기차에서 나는 홀로 그 편지를 읽었다. 상관의 명령에 충실하라, 모든 일에 솔선수범하라. 그때는 웃었던 것 같다. 사랑한다, 건강해라, 이런 말을 아버지는 할 줄 몰랐다.

아버지가 이제 할 수 있는 일은 아무도 귀가하지 않은 텅 빈 집에 들어선 사람처럼 구는 것뿐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그는 욕실에 들어가 한참을 나오지 않았다. 그사이 나는 어머니와 동생에게 이 연극을 어떻게 끝내면 좋을지를 의논하고 싶었다. 어머니는 여전히 말이 없었다. 여태 화가 풀리지 않았다는 뜻이다. 동생의 방문은 잠겼다. 나는 멍하니 쏘파에 앉아 이제는 어머니와 동생이 나마저 없는 사람 취급하는 게 아닌가라는 생각을 했다. 그 순간에는 욕실에서 새어나오는 소리가 퍽 위로가 되었다. 어머니는 열이 오른 두 볼을 손바닥으로 두드리다 냉장고에서 오이를 꺼냈다. 나는 부엌칼이 도마에 부딪치는 경쾌하고 규칙적인 소리를 들으며 오늘 이 밤이 다른 날 밤과 어떤 차이가 있는지를 곰곰이 생각했다. 집안에 향긋한 오이냄새가 은은하게 퍼졌다. 아버지가 투명인간이 된 것 말고는 어떤 차이점도 발견하지 못했다. 어머니는 안방으로 들어갔다. 나는 실긋이 열린 문을 통해 어머니가 침대에 누워 얇게 저민 오이 조각을 얼굴에 올려놓는 걸 보았다.

아버지는 한결 말끔해진 얼굴로 욕실에서 나왔다. 그는 안방에 들어갔다가 나왔는데 무언가 깨달은 듯 잠시 머뭇대더니 소리나지 않도록 조심스레 안방문을 사개가 꼭 들어맞게 닫았다. 욕실문이 스스로 열렸다 닫힐 리도 없을뿐더러 샤워기가 홀로 물을 뿜어낼 수도 없을 테지만, 아버지 역시 아직은 투명인간 역할에 익숙하지 않았을 것이므로 나는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 아버지는 내 옆에 앉았다. 그가 앉을 때 쏘파가 부드럽게 출렁였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는 이처럼 어떤 진동이 늘 교환되는데 우리의 감각기관으로 포착하기에는 너무 미세해서 알아채지 못하는 것뿐인지도 모른다. 아버지의 시선은 리모컨을 향했다. 그는 팔을 뻗어 리모컨을 집으려다 말고 오른손 집게손가락을 쭉 펴더니 손끝으로 채널버튼을 눌렀다. 텔레비전 화면이 바뀔 때마다 아버지는 나를 곁눈질했다. 그와 이처럼 거실 쏘파에 앉아 텔레비전을 본 게 얼마 만일까. 드문 일은 아니겠지만, 나는 비로소 아버지를 하나의 무거운 생명체로 인식하게 된 듯했다. 쏘파를 도려내기라도 한 듯 부드럽고 둥근 자국이 그의 엉덩이 밑에 있었다. 아버지 냄새가 났다. 딱히 설명할 말을 찾기 힘든 독특한 냄새였는데, 나는 시간을 초월해서 유년의 어떤 시기로 돌아간 기분이었다. 살아오면서 이런 순간이 많았을진대, 나는 왜 그를 나와 같은 생명체로 인식하지 못했던 것일까. 아버지라는 낱말에 부여된 일차적 의미가 너무 강렬해서였을까. 거북스러웠다. 다리를 떠는 내가, 아버지라는 거대한 존재가 내게 끼치는 영향력이. 나는 철길 건널목을 건너듯 아버지 앞을 후닥닥 지나 내 방에 들어갔다. 아버지는 내가 방에 들어갈 때까지 줄곧 나를 지켜보았다. 문을 닫을 때 문틈으로 미끄러져 들어오던 그의 시선을 보면 그랬다. 이제 우리 식구 넷은 완벽하게 격리된 자신만의 영토에 자리를 잡았다.

 

어머니, 동생 그리고 나, 이렇게 셋이 꾸민 일이었건만, 아버지가 오래전부터 쳐둔 자리그물에 포획된 기분이었다. 만약 그게 진실에 가깝다면 아버지는 인내심이 많은 편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나는 인터넷으로 투명인간을 검색했다. 투명인간이 되고 싶은 사람이 많았다. 여탕에 가고 싶다는 사람이 가장 많았다. 내 눈길을 끈 건 ‘영국 작가 H.G. 웰스의 대표적 SF소설’이라는 항목이었다. 기억이 났다. 나도 오래전 그 소설을 읽었다. 1897년 작품이라니. 오래된 욕망이다. 오빠, 오빠. 동생의 날카로운 목소리였다. 방문이 열렸다. 동생은 성큼성큼 다가왔는데 무언가 나를 엄습한다는 기분이 들었다. 나는 눈살을 찌푸렸을 것이다. 그리고 눈길로 문을 가리켰다. 동생은 신경질적으로 문을 닫았다. 나는 그가 난폭하게 뒷발질로 문을 닫는 걸 처음 보았다. 나는 동생에 대해 모르는 게 많다.

“아빠가 지금 뭐하는 줄 알아? 나 참 기가 막혀서. 혼자서 케이크를 먹어.”

나는 손가락을 입에 댔다. 동생의 목소리가 거실의 아버지에게 들릴까봐 걱정스러웠다. 동생은 당돌한 구석이 있었다. 아버지가 담배를 피우지 않는 것도 동생 덕분이었다. 중학생이었던 동생은 베란다에서 담배를 피우는 아버지에게 실내화주머니를 던지고는, 내가 폐암 걸려 죽는 꼴을 보고 싶은 거야? 담배 살 돈 있으면 바이올린을 사줘! 그런 말을 했다. 그뒤 동생은 바이올린 교습을 받았는데 별로 행복한 것 같지는 않았다. 지금은 바이올린을 켜지 않는다.

아버지는 케이크를 끼고 앉은 채 텔레비전을 보았다. 그의 발치에 새끼손가락만큼 줄어든 초가 널브러진 걸 보면 초를 다시 꽂아 불을 붙이고 입바람을 불어 끄기까지 했던 모양이다. 그는 손에 얇고 투명한 비닐장갑을 꼈는데 손가락에 묻은 생크림을 빨아먹을 때마다 입에서 부스럭대는 소리가 났다. 그는 식사예절을 까다롭게 따지지는 않았다. 나와 동생은 스스럼없이 씹던 음식물을 식탁 위에 뱉기도 했고 찌개냄비에 숟가락을 푹 꽂아 휘휘 젓기도 했지만 그에게 혼나본 적은 없었다. 하지만 그는 정갈하고 깔끔하게 식사하는 방법을 알았다. 그는 숟가락과 그릇이 부딪칠 때 들을 수 있는 소리를 한번도 내지 않으면서 식사할 수 있는 사람이었다. 그는 이런 일을 그다지 힘겨워하지 않았는데 아마도 어린시절부터 몸에 밴 습관이기에 가능했던 것이리라. 아버지는 내게 그런 사람이었기에 쏘파에 앉아 싸구려 케이크를 게걸스럽게 먹어대는 모습은 괴기스럽기까지 했다. 죽음을 눈앞에 둔 상처입고 피흘리는 괴물이 제 몸에서 떨어져나온 살점을 씹는 것만 같았다. 본래의 상태로 되돌아가고 싶은 열망만이 실낱같은 목숨을 지탱해줄 수 있다는 듯이. 그 순간의 아버지는 안간힘을 다해 결핍을 채우려는 사람이었다.

아버지는 혼자서 케이크를 다 먹었다. 한번쯤은 그래보고 싶었다는 듯 만족한 얼굴로 일어나더니 입가심으로 포도주를 마시고 쏘파에 길게 누웠다. 그의 시선은 천장을 향했는데 아주 먼 곳을 보기라도 하는 것 같았다. 그렇게 케이크를 먹고 포도주를 마시고 다시 쏘파에 눕기까지 아버지는 우리에게 눈길을 주지 않았다. 나는 아버지가 우리를 없는 사람 취급한다는 걸 알았다. 어머니는 안방 문 앞에 선 채 아버지를 노려보았다. 어머니의 얼굴에서 오이 조각이 하나씩 떨어졌다. 우리 셋이 그렇게 선 채 지켜보는데도 아버지는 전혀 주눅 들지 않았다. 나는 헷갈렸다. 아버지가 정말로 투명인간이 되었다고 믿는 건지, 아니면 우리가 그에게 보이지 않게 된 건지.

밤이 깊었다. 아버지는 생일에 다시 태어난 사람 같았다. 그리고 그 시각에 우리는 한번도 존재해본 적이 없는, 유례 없는 인류인 것 같았다.

 

토요일 하루 종일 아버지는 빈둥댔다. 마흔여덟살의 게으름뱅이는 처음 보았다. 마흔여덟해를 빈둥대기라도 한 것만 같았다. 아버지는 발가락으로 리모컨을 다뤘고 쏘파에서 굴러 내려왔다. 포복해서 냉장고 앞까지 갔으며 반쯤은 흘리면서 물을 마셨다. 어머니는 동창모임에 나갔고 동생은 친구들을 만나러 갔으며 나는 구립도서관에 다녀왔다. 몇권의 책을 반납하고 새로 몇권의 책을 빌렸는데 문고판 『투명인간』도 포함해서였다. 어머니와 동생은 집을 나서기 전에 아버지와 대화를 시도했다. 전화를 걸어본 것이다. 손전화기가 울렸지만 그는 받지 않았다. 어머니와 동생은 어쩔 수 없다는 듯 지난밤의 아버지처럼 어깨를 으쓱하고는 가버렸다.

아버지는 중국음식점에 짜장면과 탕수육을 주문했다. 배달원에게 돈을 주고 그릇을 받아든 건 나였다. 그러나 아버지는 마치 짜장면과 탕수육 그릇이 절로 날아와 식탁 위에 얌전히 내려앉은 게 당연한 일이라는 듯 의혹이라고는 전혀 찾아볼 수 없는 심드렁한 얼굴이었다. 그가 포복해서 식탁으로 다가가는 걸 본 나는 다탁을 쏘파 앞에 펴고 음식 그릇을 그 위로 옮겨주었다. 아버지는 날벌레를 눈길로 좇는 고양이처럼 지켜볼 뿐이었는데, 만약 내가 그의 눈에 보이지 않는 게 사실이라면 다탁이 절로 펴지고 그릇이 붕 날아 그 위로 옮겨 앉는 광경은 꽤나 볼 만한 구경거리였을 것이다.

하루 종일 나는 책을 읽었고 아버지는 빈둥댔다. 독서가 게으름 피우기보다 쓸모있다고 할 수 없는 건 아버지가 나보다 더 즐거운 듯해서였다. 아버지는 졸다 깨다를 반복하며 무위의 하루를 보냈다. 나는 그가 깨끗하게 비운 그릇을 복도에 내놓았으며 몇번인가 그에게 전화를 하려다 그만두었다. 황혼이 찾아왔고 아버지는 곤히 잠들었다. 한권의 책을 다 읽은 나는 아버지에게 전화를 걸었다. 받지 않았다. 음성녹음을 알리는 소리 뒤에 한동안 정적이 이어졌다. 나도 가끔 그런 음성메씨지를 받곤 했다. ……아버지, 전 아버지를 볼 수 있어요. 보인다구요.

일상이 부식되어 탁한 녹물로 흘러내리는 집에서 그와 나는 고치 속에 웅크린 유충처럼 안전하게 하루를 소화시켰다. 귀가한 어머니와 동생은 텅 빈 집에 들어온 것처럼 쓸쓸해했다. 어쩌면 그들이 밖에서 묻혀온 신산한 기운들이 비로소 풀려나며 집안을 채운 탓에 그렇게 여긴 것인지도 모른다.

“실종신고라도 할까?”

동생은 아버지를 똑바로 바라보며 이렇게 말했다. 아버지는 아무 대꾸도 하지 않았다. 그는 귀가 멀고 눈이 먼 사람 같았다. 그날 밤 나는 잠결에 누군가 내 방에 있다는 걸 느꼈다. 어둠에 눈이 익숙해지길 기다리면서 나는 이처럼 우리 식구가 서로를 안중에도 없다는 듯 여기며 살아도 썩 불편하지 않다는 게 못내 서럽다고 생각했다. 그런 생각이 불쑥 든 건 아닌 듯 평범했던 꿈조차 서글펐다. 이내 나는 아버지가 내 책상 앞에 앉은 걸 알았다. 조심스레 책장을 넘기는 소리가 들렸다. 아침에 깨어난 나는 웰스의 책이 펼쳐진 채로 놓여 있는 걸 발견했다.

 

동생은 걱정스런 목소리로 내게 당부했다.

“여탕이나 모텔 같은 곳을 기웃거리면 어떡해. 아빠는 자기가 정말 투명인간인 줄 아나 봐. 오빠가 잘 지켜봐. 그런 일이 벌어질지 모른다는 생각만으로도 치욕스럽단 말야.”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아버지는 간편한 캐주얼 차림으로 외출했다. 나는 엘리베이터에서만 아버지와 나란히 있었을 뿐 줄곧 그와 열 걸음쯤 거리를 유지한 채 졸졸 따라다녔다. 아버지는 나무가 뱉은 가래인 듯 누런 은행잎들이 들러붙은 보도를 자박자박 걸었다. 갈 곳을 정하지 않은 듯 서두르지 않았다. 투명인간이 되면 가장 먼저 무얼 하고 싶을까. 온갖 가능성들이 떠올랐지만 끝내는 이 모든 게 부질없다는 생각으로 되돌아왔다. 아버지는 오랫동안 걸었다. 나는 발바닥이 아팠다. 무릎이 시큰거렸고 찬바람을 오래 맞아 두 볼이 얼얼했다.

일요일의 도시는 한가로웠다. 아버지는 미풍에 실린 깃털처럼 가벼워 보였는데 투명인간이 되면 중력의 간섭을 덜 받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지구도 눈에 보이지 않는 사물을 끌어당기지는 못할 테니 말이다. 아버지는 아파트단지 옆 공원으로 들어가더니 태극문양을 이룬 국화들을 바라보았다. 아버지의 눈길을 끈 그곳은 어머니의 화원을 떠올리게 했는데 나로서는 여간 지루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그러나 아버지는 무려 다섯시간 동안 그 자리에서 꼼짝도 않은 채 국화를 노려보았다. 나는 화강암 의자에 앉아 아버지가 움직이길 기다렸다. 그가 손바닥 크기로 보였다. 아버지의 눈길에 놀라서 혹은 지쳐서 꽃잎 몇장쯤은 떨어졌으리라. 투명인간이 되어서 하고 싶었던 일이 과연 그것이었을까. 지루한 일이었다. 아버지는 산책로를 따라 공원으로 꾸며진 야산을 올랐다. 그는 널찍한 공터의 나무의자에 누웠다. 나는 땀이 식으면서 차가워진 이마를 손으로 감쌌다. 그가 관 속에 누운 것만 같았다. 나는 잠든 그를 지켜보다 약수터 표지판을 따라 오십미터쯤 더 올라갔다. 해가 지는지 나무 그늘이 동굴 속처럼 공허하고 막막했다. 대롱 끝에서 조로록조로록 흐르는 물을 오래도록 받아먹었다. 야행성 조류가 홰치는 소리가 들렸다. 아버지가 감기에 걸리지 않을까 걱정스러웠다. 한편으로는 적이 마음이 놓였다. 어머니와 동생에게 아버지는 그런 사람이 아니었노라고, 기껏해야 공원에서 국화를 노려보거나 야산에서 잠을 잤을 뿐이라고 말해줄 수 있어서였다.

아버지가 누웠던 공터로 내려갔다. 아버지는 그곳에 없었다. 약수터를 지나치지 않았으니 아래로 내려간 게 분명했다. 나는 눈으로는 혹시라도 샛길이 있지는 않은지 주위를 톺으면서 올랐던 길을 재빠르게 되짚어 내려갔다. 산책로가 시작되는 곳에 이르러서야 나는 나무의자를 한번 쓸어보기라도 할 것을,이라며 후회했다. 아버지가 정말 투명해져 내 눈에 보이지 않게 된 것일지도 모르니 말이다. 가로등이 켜졌다. 나는 아버지에게 전화를 걸었다. 아버지는 방전된 배터리를 바꿔놓지 않았다. 나는 다시 음성을 남겨야 했다. ……아버지, 어디 계세요. 아버지가 이제는 정말 안 보여요. 나는 다음 말을 잇지 못했다. 아버지는 이 음성을 언제쯤 듣게 될까.

나는 어둠이 내린 거리를 걸어 집으로 돌아갔다. 그곳에서 아버지를 보았다. 아버지는 누군가와 통화를 했는데 이런 내용이었다. 집에 아무도 없어. 식구들이 사라졌어. 난 이제 어떻게 해야 하지? 말끝에 아버지가 울지 않았다면 나는 아버지가 연극을 하는 것이라 믿었으리라. 나는 방에 들어갔다. 투명인간이 되면 가장 먼저 무엇을 할 것인가. 그때 나는 망막 역시 투명하기에 아무런 상도 맺히지 않는다는 걸 그러니 투명인간은 장님과 다르지 않다는 걸 깨달았다. 그러나 눈이 있어도 아무것도 볼 수 없었던 건 내가 아니었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한번도 존재하지 않았던 인류란 매번 존재했으나 매번 멸망했다가 매번 새로 탄생해야 했던 인류와 다르지 않을지도 모른다. 시야가 새하얗게 표백되었다.

그처럼 나는 날마다 아버지를 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