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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단과 현장
4대강, 길이 있다
김석철 金錫澈
건축가, 도시설계가. 아키반건축도시연구원 대표, 명지대 석좌교수. 저서로 『희망의 한반도 프로젝트』 『여의도에서 새만금으로』 『지방정부의 세계화정책』 등이 있음. archiban@archiban.co.kr
머리말
돌이켜보건대 내 건축과 도시설계의 삶 40년 중 절반 이상은 한반도 하드웨어에 대한 것이었다. 1969년에 한강과 여의도 마스터플랜을 담당한 이후 지금까지 국가 하드웨어 개조가 있을 때마다 참여했다. 어떤 때는 주역으로 어떤 때는 반대 제안자로 또 어떤 때는 비판자로 개입했다. 관악산 서울대학교 마스터플랜을 할 때는 과천까지 이어지는 산업화 대학도시를 주장하다가 물러났지만, 최초의 국가관광단지인 보문단지는 내가 입안한 안이 성사되었고 쿠웨이트 신도시 국제현상에 당선하여 도시수출을 처음 시작했다. 예술의전당도 나의 계획과 설계를 세계와 경쟁하여 이룬 것이며, 베네찌아대학에 있을 때는 새만금 국제회의를 통해 지금의 정부가 조금씩 받아들이기 시작한 바다도시 안을 제시했다. 신행정수도가 정부 안으로 나왔을 때는 있을 수도 없고 될 수도 없는 일을 하는 것이라 하여 금강·새만금·행정도시 연합안을 제시했다. 영종도 공항이 시작될 때인 1999년에는 공항만이 아닌 동북아 게이트웨이가 될 국제화 도시를 만들기 위해 베네찌아·뻬이징·밀라노 등 국내외에서 세차례 국제회의와 전시회를 한 끝에 밀라노디자인씨티를 제안했고, 부산신항 건설 때는 부산비전플랜을 만들고 대구와 부산신항을 잇는 낙동강운하를 제안했다.
40년 전 한강 마스터플랜 이후 한반도의 강을 생각지 않은 적이 없다. 올해 4월 4대강과 새만금에 대한 그동안의 연구와 생각을 한승수 당시 총리에게 설명할 기회가 있었는데, 혼자 듣기 아깝다 하여 관계 장·차관과 관련자들을 모아 국무총리실에서 설명했다. 한총리가 대통령에게 함께 보고하자 했지만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정국에 밀려 흐지부지됐다.
40년 전에 한강 마스터플랜을 했고 낙동강에서 20년 가까이 자랐으며 영산강, 섬진강과 다도해를 사랑하는 사람으로서 4대강에 대해서 무언가 기록해두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정작 최근에는 밀라노디자인씨티에 깊이 관여하고 남예멘 수도의 아단 신도시와 아제르바이잔의 바꾸 신도시 등을 하느라고 4대강에 대해서는 결과적으로는 침묵한 셈이 되었다. 「꿈꾸는 한강」 「금강·새만금 신백제」 「영산강·다도해·섬진강 바다도시」 「낙동강 운하도시」 등 네 글을 정리하는 일에 착수했다가 건강이 악화되어 제대로 진행하지 못했다. 잡지에 이렇게라도 정리해서 마음의 빚을 갚아야겠다는 것이 이 글을 집필하게 된 동기이다.
4대강에 대한 내 생각을 정리하는 데는 지난 7년 넘게 한반도의 하드웨어에 관해 인문학자 백낙청(白樂晴) 교수와 이야기한 것이 큰 도움이 되었고 집필과정에서도 조언을 구했다. 이 글의 「1. 한강 마스터플랜 1969·2009」는 중국 도시계획학회장이며 칭화대 교수인 우 량륭(吳良鏞) 교수의 도움을 받았고 「2. 낙동강과 서낙동강 운하도시 연합」은 한국토지공사장과 서울특별시 균형발전본부장을 지낸 이종상 사장이 많은 연구원을 파견하여 근 반년에 걸쳐 타당성을 조사해주었다. 「3. 금강·새만금·세종시」에 관해서는 리니오 브루또메쏘(RinioBruttomesso) 교수와 브루노 돌체따(BrunoDolcetta) 교수 등 베네찌아대학 교수들의 도움이 컸다. 그들이 현장을 두번에 걸쳐 방문하고 국제회의도 함께했다. 「4. 영산강·다도해·섬진강 바다도시」는 낙동강 하구언(河口堰)과 영산강 하구언 및 댐을 설계하고 개성공단과 케도(KEDO) 단장을 지낸 심재원 사장으로부터 많은 도움을 얻었다. 그리고 추가령구조곡과 서울을 잇는 남북관통운하에 대해서는 원산에서 서울로 시집와 경원선과 추가령구조곡 육로와 임진강을 넘어다닌 필자 모친으로부터 들은 곳곳의 지리와 역사 이야기가 크게 도움이 되었다.
4대강사업을 제대로 진행하는 데는 적어도 다음 세가지 전제조건이 필요하다. 첫째는 일관된 한반도 공간전략의 틀 속에서 남한의 4대강을 보아야 하며, 둘째는 강과 운하를 혼동하지 말아야 하고, 셋째는 한반도의 강은 모두 다른 강이므로 4대강을 하나의 해법으로 풀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지금 진행되는‘4대강 살리기’에는 한반도 하드웨어에 대한 일관된 비전이 없다. 한반도 하드웨어의 핵심은 강인데, 한반도의 강과 운하를 말하려면 먼저 지난 100년 동안 한반도 하드웨어가 어떻게 변화해왔는지를 알아야 한다.
선진국에서는 근대화를 이룰 때 먼저 강을 정비하고 운하를 건설한 다음 국도와 철도와 고속도로를 놓고 그뒤에 고속철도를 건설하는 것이 상례였다. 그러나 한반도는 외국세력 주도로 식민지시대에 근대화가 이루어지다보니 철도와 신작로가 먼저 만들어졌고, 그후 우리 정부가 국도와 고속도로를 닦고 고속철도를 놓을 때까지 강과 운하를 제대로 생각하지 못했다. 지금까지의 4대강사업은 하구언을 만들어 홍수를 제어하고 상류에 댐을 건설해서 수자원을 확보한 정도이다. 강은 한반도 인프라의 변방이 되었다.
따라서 한반도 인프라를 완성하기 위해 강을 제대로 살리는 일이 남았다는 주장 자체는 틀린 말이 아니다. 특히 한반도의 강은 운하를 갖지 못하여 강의 현대화를 이루지 못했다. 영국, 프랑스, 독일 모두 강을 효율적으로 도시공간화하기 위해서 운하를 개입시켰다. 운하는 강과 강, 강과 바다를 연결한다. 강이 닿지 않는 곳으로 강을 확장시키기도 한다. 그러나 강과 운하를 혼동해서는 안된다. 강은 강이고 운하는 운하다.
이명박 대통령이 한반도대운하를 주창한 것은 그 규모와 의욕에서는 박정희 대통령의 새마을사업과 중화학공단 건설에 버금갈 만한 것이었으나 치밀한 내용이 따르지 못했다. 더구나 한강과 낙동강에 5천톤 화물선을 띄우고 역사·지리적으로 아무 연관 없는 두 강을 연결한다는 억지가 국민의 공감을 얻지 못한 것이다. 한반도에서 가능한 조운(漕運)은 바다에서부터 하구를 통해 내륙의 도시로 들어오는 소규모의 것이다. 강과 강이 연결되는 조운은 있을 수도 없고 의미도 없다. 삼면이 바다로 둘러싸인 나라에서 낙동강이 문경새재를 넘어 한강으로 가게 하려는 것은 섬나라 영국에서 템즈강을 맨체스터나 스코틀랜드로 끌고 가려는 것과 같은 망상일 따름이다.
다행히 정부는 경부대운하 포기를 선언했고 이제‘4대강 살리기’를 대신 추진하고 있다. 그러나 대운하 때와 마찬가지로 이번에도 관료와 관변학자들이 방향을 잡지 못하고 있다. 한반도대운하건 4대강사업이건 그 취지는 한반도 인프라의 축을 강으로 되돌리려고 하는 것이다. 이 원대한 꿈은 확실하고 포괄적인 안목과 공익에 대한 헌신으로 실행되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한 것이 문제다.
정부의‘4대강 살리기’사업은 홍수방지와 수자원 확보, 수변공간 확보를 통해 고용창출을 이루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하천준설은 중장비로 하는 일이지 고용을 창출하는 일도 아닐뿐더러 하천준설이 수자원 확보와 수질개선의 방법이 되리라는 것도 잘못된 판단이다. 더구나 홍수방지를 위해 건설된 영산강, 금강, 낙동강의 하구언은 주운(舟運)을 막을 뿐 아니라 홍수방지에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 한강은 하구가 이북과 마주하고 있기 때문에 손을 대지 않았으나 한강에서보다 다른 3대강에 홍수가 더 많은 이유를 알아야 한다. 템즈강에는 밀물 때는 막혔다가 썰물 때는 열 수 있는 템즈 배리어(Thames Barrier)가 있는데, 이런 식으로 주운과 효과적인 수위조절을 겸할 수 있는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
그러나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4대강 살리기’가 근본적으로 한반도의 어떤 공간전략을 목표로 하는 사업인지를 분명히하는 것이다.
한반도 남녘의 강은 모두 서남해안으로 흘러간다. 수천 샛강의 물이 모여서 바다로 흐르는 큰 흐름이 4대강이다. 4대강에 운하가 건설되지 않은 이유는 물줄기가 바다로 쉽게 흘러들어가고 그 하구가 거대한 생명과 수자원의 보고였기 때문이다. 따라서 운하의 필요성을 크게 느끼지 않았고, 한반도의 강은 주운·조운의 역할을 했으나 육로와 느슨한 보완관계에 있었다.
근대화·산업화되면서는 물류의 대종이 철도로 바뀌었다. 대한제국과 일제하에 서울과 부산, 인천, 원산, 신의주를 잇는 네개의 철도가 생겼고 철도와 철도역을 중심으로 신작로를 만들었다. 한반도 인프라의 근간이 강이 아닌 철도가 된 것이다. 그러면서 철도 역사(驛舍)를 중심으로 도시화가 이루어졌다. 고려-조선조 때까지 강을 중심으로 했던 한반도의 인프라가 대한제국과 일제강점기를 지나면서 철도역과 신작로 중심으로 옮겨졌고, 고속도로 건설 이후에는 고속도로 나들목 중심으로 도시가 확대되었다. 예로부터 한반도의 주요도시들은 강변에 있었으나 현대 한국 도시는 철도역·고속도로·고속철이 중심이 되어 한반도 삶의 근원인 강과 차단된 것이다. 류우익(柳佑益) 교수의 한반도대운하 구상은 그런 뜻에서 큰 비전이 있었다.
4대강사업의 핵심은 수자원과 도시화토지 확보 그리고 바다와 강이 만나는 하구 유역의 창출이 핵심이 되어야 한다. 녹색성장은 강 없이는 말할 수 없다. 4대강 주변은 놀이공간이 아니라 21세기 한반도의 도시공간이 되어야 한다. 서울이 인구 천만의 도시가 될 수 있었던 것은 한강 주변을 도시화했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 4대강을 수자원으로 사용하여 식수뿐 아니라 산업용수, 공업용수, 농업용수, 도심의 생활용수 등을 적절히 관리할 수 있어야 하고, 더 중요한 것은 하구언으로 막혀 호수화된 강을 바다와 연결시켜 바다와 강의 중간지대를 회복하는 일이다.
몰락하고 있는 농촌의 도시화가 강변에서 이루어지도록 하는 것도 4대강을 살리는 길이다. 바다와 강에 조운이 가능한 수변공간을 만들면 바다와 강 사이에 농촌·도시회랑인 중간지대가 만들어진다.
정부의 4대강사업이 문제가 많다고 해서 한반도의 새로운 하드웨어를 고민하지 않는 것도 책임있는 자세가 아니다. 거듭 강조하지만 강과 운하를 혼동하지 말아야 하며,‘4대강’으로 묶어서 부르는 강들이 각기 전혀 다른 강이라는 점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그런 시각에서 4대강에 대한 내 나름의 구상을 써보도록 하겠다. 4대강에 대한 원론적 담론은 그만하고 이제 실사구시의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1. 한강 마스터플랜 1969·2009
한강은 내가 마스터플랜에 깊이 참가한 강이다. 낙동강, 금강, 영산강과 달리 한강은 전체적으로 봐서 세계 어느 강 못지않게 잘 개발된 곳이다. 상수원을 강력하게 확보하고 본류의 도시화에 성공했다. 인구 500만의 도시가 마주하고 있는 한강 하구는 (휴전선 덕분인지는 모르지만) 살아 있다. 다만 아쉬운 점은 한강 본류를 도시화할 때 강변도로를 만들면서 수변공간을 확보하지 못한 것이다. 강변도로가 안쪽으로 들어가 수변공간을 확보했어야 한다. 앞으로 한강의 문제는 지천(支川)이며 다음으로는 휴전선으로 막혀 있는 임진강과의 연계를 회복하는 것이다. 21세기 한강의 숙원은 한강을 바다로 나가게 하는 수변도시를 만드는 일이다. 어쨌든 한강은 이제 와서 새삼‘살리기’를 시도할 대상이 아니다. 지난 40년 동안 해온 한강 프로젝트를 짧게 정리해본다.
1-1. 한강 마스터플랜, 1969
1969년에 서울특별시 용역으로 만든 여의도계획과 한강 마스터플랜은 지난 40년 동안 거의 계획대로 이루어졌다. 한강 마스터플랜은 수자원을 확보하고 강변토지를 창출한 것이다. 한강 주변과 강남 일대의 도시화토지를 공급하여 서울의 중산층이 월급으로 땅을 갖게 됨으로써 오늘 수도권의 중산층이 만들어졌다.
1-2. 꿈꾸는 한강, 1995
한강 마스터플랜을 만든 후 30년이 지나고 보니 한강 일대를 주거단지로 만든 셈이 되었다. 그래서 1995년 1월 1일부터 다섯번에 걸쳐 조선일보에 「꿈꾸는 한강」을 연재했다. 한강을 중심으로 500만의 인구가 마주하고 있는 서울의 핵심기능을 한강으로 끌고 와 재조직하자는 안이었다.
1-3. 한강중심 서울 21C, 2000
한강중심 도시화를 위해서는 한강이 바다에 닿는 운하계획이 필요하다. 세계 도시들이 21세기 도시의 미래를 선보이는 안을 2000년 베네찌아 비엔날레에서 경쟁적으로 낼 때, 필자는 한강을 중심으로 한 서울 재조직과 경인운하도시를 제안했다. 1969년 한강 마스터플랜 때 제안한 경인운하를 단순한 운하가 아니라‘운하도시화’하자는 구상이었다.
1-4. 수도권 도시회랑, 2008
2008년 김문수 경기지사의 부탁으로‘수도권 도시회랑’과‘탄천·수원·평택 운하도시’설계를 했다.
서울의 토지부족은 심각하다. 이대로는 세계에서 땅값이 가장 비싼 도시가 될 수밖에 없다. 수요와 공급의 괴리를 계속 내버려둘 수는 없다. 한강과 서해바다를 잇는‘제3의 길’이 필요하다. 개성-서울-수원-인천을 아우르는 새로운 어반링크(urban link)를 구상한 것은 수도권 도시화토지의 부족을 해결하고자 하는 그랜드디자인이다.
한강을‘살린다’는 말은 결국 지천을 어떻게 바다와 연결시키는가의 문제다. 평택 미군기지 자리는 바다로 통할 수 있는 수도권 제2의 길이다. 미군기지가 가진 지리를 공유하는 안이‘탄천·수원·평택 운하도시’다. 한마디 덧붙인다면 탄천은 가뭄 때 바닥이 드러나는 건천(乾川)이므로 이것을 운하화하는 것은 멀쩡한 한강을 운하로 만들겠다는 발상과는 다르다.
1-5. 한반도관통운하, 2008
한강의 문제는 수계의 상당부분이 이북에 걸려 있다는 점이다. 북한은 금강산댐을 건설하고 그 물이 평화의댐 쪽으로 흐르게 하는 것이 아니라 원산 쪽으로 역류시키게 했다. 이에 따라 백두대간 평화의댐 이북의 물은 북쪽으로 흐르게 되었다.
10년 안에 수도권에는 수자원 부족이 발생할 확률이 높다. 그 대책으로 백두대간에서 추가령구조곡을 통해서 수도권으로 물을 공급하는 안을 만들 수 있다. 추가령구조곡 일대는 청정지역이기 때문에 프랑스 생수 에비앙 수준의 물을 수도권 시민이 공급받을 수 있고 원산에서부터 추가령구조곡을 통해 러시아에서 들여오는 천연가스를 반값에 공급할 수 있다. 이는 추가령구조곡에 있는 곡강(曲江)들을 이용한다는 것이 아니라 추가령구조곡의 지형을 이용하여 미디(Midi)운하 같은 여러 단계의 운하를 만들겠다는 것이다. 미디운하의 높낮이가 800미터이고 추가령구조곡의 높낮이가 500미터이기 때문에 충분히 가능하다. 지난 『창비』 가을호에 실린 황진태씨의 원고를 보고 사회과학자의 진정성은 크게 받아들였지만 지리, 공학, 도시설계는 인문·사회과학과는 다른 세계다. 내가 제안하는 추가령구조곡 운하는 정부가 주로 이야기하고 지금 우리들 다수도 그렇게 상상하는 하천을 운하화한 그런 운하가 아니다.
그리고 내가 이야기하는 창조적 소수는 서구 학자들이 이야기하는 창조적 소수가 아니다. 남북한의 젊은이들이 이루는 공동체의 창조적 집단을 뜻한다. 남북 분단이 무너지고 60년 만에 하나가 되었을 때 만남과 깨달음을 통해서 새로운 창조적 집단이 만들어진다. 그 집단은 20대 남북한 젊은이들의 집합을 말한다. 이들이 내가 말하는 창조적 집단이다. 씰리콘밸리의 창조적 소수와는 다르다. 해방 이후 한국의 젊은이들이 대한민국을 이루었듯이 남북이 통일되면 현재의 젊은이들과는 다른 창조적 집단이 생길 것이다. 그들이 어디로 갈 것인가. 서울은 그들의 도시가 아니다. 추가령구조곡에 신도시를 만들어 창조적 집단이 모이게 하자는 것이다. 남북이 통일되어 1300여년 동안 한 나라였다가 60년 넘게 갈라져 있던 젊은이들이 만나는 변화를 기대할 때 그 배경은 이북과 이남의 분계이면서 동해와 서해를 잇는 추가령구조곡이 되어야 한다.
2. 낙동강과 서낙동강 운하도시 연합
나는 낙동강과 낙동강 하구에서 산 사람이다. 낙동강에는 안 가본 곳이 없다. 한강 마스터플랜을 하면서 낙동강과 한강이 너무 다른 강이어서 놀랐다. 한강은 하구와 본류와 상류가 분명한 템즈강 같았는데 낙동강은 로테르담에서 본류가 사방으로 분산되는 라인강 같다. 그때 낙동강은 그대로 두고 그 옆에 운하를 만들어야 한다는 생각을 했다.
한강은 하구를 열어두고 본류를 제방으로 쌓아 도시화하고 상류를 완벽히 보존한다는 계획을 통해 오늘의 서울을 가능케 했지만 상류가 도처인 낙동강은 손을 대면 안되는 강이다.
낙동강은 수원(水源)이 동서로 분산되어 본류와 지류가 독립되기 때문에 강폭의 변화와 굴곡이 심하다. 또 바로 그렇기 때문에 주변 풍경이 더 아름답고 강물의 자연정화에 도움이 된다. 한없이 넓었다가 다시 좁아지는 낙동강을 토목공사로 운하화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삼국시대에 가야와 백제와 신라가 무수히 전투를 치렀지만 낙동강에서 수전(水戰)을 벌였다는 기록은 없다. 배를 타고 들어가서 싸울 수 있는 강이 아니었던 것이다. 낙동강 지류는 강바닥에 암반층이 많아 준설 자체도 문제가 많다.
한강은 상류만을 식수원으로 하고 있지만 낙동강은 도처가 식수원이다. 그런 낙동강 중상류에 세계 굴지 규모의 공단이 자리잡고 계속 증설하고 있다. 박정희 대통령의 경제건설은 위대했지만 낙동강의 공단도시들은 지속가능하지 않은 경제성장과 도시화, 산업화의 표본이다.
녹색성장으로 세계 산업이 전환하면 대구와 구미의 공단들은 모두 강제적으로 문을 닫게 될 수도 있다. 한강 상류에는 호텔과 박물관도 못 짓게 했는데 낙동강 상류에 대규모 공단이 들어선 지금 상황에서 낙동강을 어찌할 것인가.
이명박 대통령이 한반도대운하를 공약했을 때 나는 낙동강대운하를 생각하며 그 방향으로 유도하려 했다. 낙동강 서측에 별개의 운하를 만드는 계획을 구상했다.‘서낙동강운하’는 사람의 흐름과 물의 흐름이 어울리는 정수장치의 운하다. 공단의 가장 큰 문제는 인력과 폐수인데, 인력이 그 운하를 따라서 들어오고 폐수가 운하로 정화되도록 하는 것이다. 이 운하에는 베네찌아에서처럼 사람들이 타고 채소와 과일을 싣는 작은 배만 다니게 한다는 구상이다.
낙동강 서측에 운하를 만들면 낙동강과 운하 사이에 토지가 생긴다. 강변토지이기 때문에 아름답고 풍요로울 수밖에 없다. 그곳에 도농복합체를 만들면 운하와 수로를 따라서 대구, 구미, 창원, 부산에 새 도시회랑이 생기는 것이다. 그 수로를 따라서 컨테이너가 아닌 채소와 과일과 막걸리가 움직이는 것이다. 서낙동강운하는 베네찌아의 운하와 나뽈레옹이 극찬한‘프랑스의 모세’리께(Pierre-Paul Riquet)가 만든 미디운하와 같은 것이다. 폭은 4~5미터 이하이고 깊이도 2미터 이하다. 대구에서 부산신항까지 오는 사이 수운의 정화장치를 완벽히 갖추어 사람과 물류가 다닐 수 있게 한다. 베네찌아나 미디운하에서 움직이는 정도의 사람과 물류가 흐르는 운하를 만드는 것이 낙동강을 신라와 가야의 강으로 보존하면서 영남 일원에 부족한 토지를 공급하는 방안이기도 하다.
내가 제안하는 서낙동강운하의 위치는 낙동강 서남측이다. 실제로 한국토지공사에서 이종상 전 사장이 나서 이 지역 운하의 가능성을 검토하는 작업을 시행한 바 있다. 낙동강운하와 낙동강 사이에는 동측은 강이고 서측은 운하인 사람 사는 수변도시를 만들어 영남을 남북으로 가로지르는 세계적 도농복합단지를 만들 수 있다. 강을 그대로 두고 운하를 파서 운하가 새로운 도시화와 산업화의 기능을 하도록 하여 강변도시 사업을 일으키면서도 낙동강의 자연을 그대로 두는 방안이다. 그간 이룩된 한강 개발과는 정반대의 길이다.
무작정 큰 공사를 해서 잇속을 채우려는 사람들은 구미, 대구에서부터 부산까지 컨테이너가 지날 수 있는 토목사업을 원하지만, 자연과 인간이 함께 가게 하는 소통과 융합을 이루는 것이 중요하다. 주자(朱子)의 실사구시는 실용보다 원칙의 실현으로 이해해야 한다. 서낙동강운하는 낙동강을 살리기 위해 만든, 최소한의 물류와 사람들이 다니는 수로여야 하고 낙동강은 그대로 두어야 한다. 그대로 두되 바다와 낙동강을 통하게 하는 것이 관건이다. 하구의 둑을 헐어서 강이 훨씬 쉽게 정화되고 밀물과 썰물이 만나게 해야 하구가 살 수 있다. 강에서 중요한 것은 강변과 바다와 강이 만나는 하구다. 그것이 얼마나 아름다운지는 살아보지 않고는 알 수 없다. 낙동강은 하구에서 삼국통일을 이루어 오늘의 한반도를 만들어낸 강이다. 낙동강을 훼손하면 역사와 지리가 저주를 내릴 것이다.
3. 금강·새만금·세종시
신행정도시와 새만금 문제는 앞으로 나아갈 수도 뒤로 물러설 수도 없게 된 난제 중 난제다. 그러나 넓은 시각에서 보면 두 난제를 동시에 해결할 수 있는 방안이 없지 않다. 바로 그것이 금강·새만금·세종시 어반클러스터 안이다(「금강·새만금 어반클러스터」, 『희망의 한반도 프로젝트』, 창비 2005, 제3부 1장).
세종시 안은 크게 세가지로 논의되었다. 청와대·사법부·입법부는 서울에 남고 중앙부처를 모두 이전하는 신행정수도, 청와대와 외교·안보부처는 서울에 남고 나머지 행정부처를 연기-공주로 이전하는 행정중심복합도시, 그리고 교육·과학 중심의 수정된 세종시 안이 그것이다. 세계의 정치수도인 워싱턴D.C.에서조차 정부기능이 차지하는 비중은 20% 남짓한데 인구 50만 규모의 신도시를 만든다면서 정작 도시 내용과 경영은 생각도 하지 않고 행정부처 이전 계획의 가부만 논의해온 것이다.
공공기관을 옮기더라도 먼저 지방의 성장동력이 될 인프라를 구축하고 신산업을 일으키며 거기에 맞추어 행정부처와 기관을 옮겨야 하는 것인데 일의 선후가 바뀌어 있다. 충청권 자립을 위한 방안에는 이 지역을 도약시킬 수 있는 획기적인 신산업 창출이 우선되어야 한다. 수도권 과밀해소를 위해서는 수도권 인구를 끌어낼 방안이 있어야 하고, 대도시 중심 발전전략을 대체하는 것이 나와야 한다. 대도시와 산업공단 중심 발전전략과 달리 지방도시와 농촌에 단순한 산업공단이 아닌 도시형 산업클러스터를 시작하려면 대규모 인프라 투자가 필요하기에 여태껏 지방권에서는 감히 엄두도 내지 못해왔다. 그런데 세종시 건설을 계기로 중앙정부가 막대한 예산을 투입하기 시작했으니, 행정도시 건설비용으로 충청권에 서울·수도권보다 나은 도시인프라를 구축하여 구미·울산·포항 못지않게 만든다면 국가균형발전과 수도권 과밀해소를 동시에 이룰 수 있는 것이다.
다만 여기서 명심할 점은 행정도시든 교육·과학 중심도시든 금강유역의 개발만으로는 결코 경쟁력을 가질 수 없다는 사실이다. 새만금 안바다를 활용한 새만금 및 호남평야 일대의 종합적 개발과 연계된‘금강·새만금·세종시’구상이 필수적이다.
백제의 역사는 건국, 천도, 멸망, 해외로의 유랑 등 서글픈 사연으로 점철되어 있다. 고구려 유민들이 한강유역에 나라를 세웠다가 금강유역으로 천도하여 200년 동안 지속했으나 결국 나당연합군에 의해 멸망하고 유민들은 중국과 일본으로 흩어져갔다.
우리 역사에서 가장 아름답고 서정적인 문명을 꽃피웠던 백제의 영역이 부여와 공주 일대이다. 금강은 백제의 강이다. 백제가 망하자 금강도 죽었다. 통일신라 이후 남해안에 근거한 바다교통이 활발해지면서 금강도 서해안도 서서히 한반도에서의 역할을 잃어갔다. 백제 멸망 이후 천년 동안 금강은 변방의 강이었던 것이다. 중국의 개혁·개방 이후 한반도 서해안의 새로운 가능성이 열렸으나 금강의 역할은 아직 없다. 세종시는 백제의 슬픈 역사를 아름다운 미래로 만들 수 있는 방안이어야 한다. 백제의 영역을 다시 살리려면 금강 부활이 전제되어야 하고 금강유역의 군산, 부여, 논산, 공주 등이 주변 일대의 농촌과 함께 새로운 도시권역을 형성하게 해야 한다.
금강과 새만금, 부여, 군산, 전주, 익산, 김제, 정읍이 강력한 도시연합을 이루면 수도권과 경쟁이 가능한 도시가 된다. 새만금에 관한 나의 구상의 핵심은 당시 진행중이던 방조제사업을 환경운동가들의 주장대로 백지화하지는 말되 해수유통이 되는 안바다를 만듦으로써‘환경보호 대 지역개발’이라는 해묵은 논란을 넘어서자는 것이었다(「새만금의 미래를 여는 새로운 시각」, 『창작과비평』 2002년 겨울호). 이 구상은 이듬해 「새만금, 호남평야, 황해도시공동체」(『창작과비평』 2003년 가을호)에서 수정·보완했다가 2년 후 다시 정리해서 『희망의 한반도 프로젝트』 제3부 3장으로 수록했다. 그후 새만금과 중국 횡단철도의 시발점인 롄윈강(連雲港)을 연결하여 열차페리 구상을 현실화하는 방안을 제안했는데(이일영과의 대담 「새로운 한반도 공간전략을 찾아서」, 『창작과비평』 2007년 봄호), 익산에 모인 경부·호남철도를 세계 최대의 중국 횡단철도와 연결하려는 것이었다. 새만금과 전주와 익산, 군산, 정읍, 김제가 안으로 타고 들어와서 부여에 이어지고 변산반도와 고군산군도까지 어우러져 열차페리를 통해 롄윈강을 거쳐 중국의 중심인 중원에 이르고자 하는 마스터플랜이다.
금강유역에 새로운 도시권역을 이루려면 금강을 중심으로 신산업을 일으켜야 한다. 금강 부활은 금강을 서해안과 한반도 중부권의 물류와 써비스 중심으로 만들고 창조적 신산업이 가능한 인구기반을 조성하는 데서 시작되어야 한다. 금강 수계는 대부분 군산으로 빠져나가고 만경강과 동진강 수계는 새만금으로 빠진다. 금강 수계는 수량이 풍부하고 만경강, 동진강 수계는 수량이 적다. 때문에 새만금은 오염될 수밖에 없다. 새만금의 오염을 감소시키기 위해 금강의 수계와 만경강의 수계를 연결시켜야 한다. 홍수 때문이라는 핑계로 5공화국이 하구언을 건설한 이후 금강은 죽었다. 바다를 부여까지 끌어올리고 금강과 새만금을 관통하게 하면 새만금의 오염문제도 해결되고 바닷배가 들어오게 할 수 있다. 금강 하구와 만경강 하구를 연결하면 금강유역 도시군이 새만금 바다도시로 이어져 신백제의 대공간을 이룰 수 있고, 한반도는 수도권 못지않은 또 하나의 세계화 도시구역을 갖게 될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옛 백제의 영역을 하나가 되게 할 금강과 새만금을 하나가 되게 해야 한다.
수도권 과밀로 국가 불균형발전이 초래되었다고 해서 수도권이 이룬 것을 지방이 나누어 갖자는 것은 실현될 수 없는 일이다. 국토의 불균형발전을 해결하려면 복수의 도시와 농촌이 한 도시권역을 형성하는 도시연합을 만들고, 산업클러스터와 연대하여 세계경제를 상대할 수 있는 어반클러스터를 형성해야 한다. 그럼으로써 수도권과 겨룰 수 있고 세계적으로도 경쟁력을 갖는 지방의 독립적 경제권역화를 꾀해야 한다. 바로 그 방안이 다수의 중소도시와 농촌이 도시연합을 이루고 산업클러스터를 통합하는 어반클라스터의 형성이며, 이것이 바로 지방권 자립화를 위한 길이다.
이제 경제단위는 국가가 아니라 도시권역이다. 경쟁력, 삶의 질 등 중요한 도시지표는 국가나 지방이 아닌 도시권역 단위로 나타나고 있다. 아직까지 서울·수도권과 영남의 산업클러스터 외에는 도시권역이 제대로 만들어지지 못하고 있으며, 영남권도 산업클러스터일 뿐 대도시와 소도시와 농촌이 상생과 조화를 이루지 못하고 있다. 그 점에서는 서울·수도권도 본질적으로 마찬가지다. 소도시와 농촌들은 대도시에 종속되고 농촌은 비자립적이 되었다. 인천, 대구, 대전, 부산, 울산 등 광역시 중심의 경제구조도 결국 대도시 중심으로 주변도시와 농촌을 아우르지 못한 채 지방권 몰락을 가속화하고 있다.
세종시와 새만금 바다도시를 계기로 대도시와 경쟁할 수 있는 신개념의 도시권역의 모범을 금강·새만금 일대에서 만들어야 한다. 라인강을 중심으로 도시와 농촌이 산업클러스터를 이룬 라인동맹이나, 이리(Erie)운하 유역의 도시와 농촌이 도시연합을 형성하면서 내륙의 산업클러스터와 연결된 뉴욕·시카고의 도농집합체가 그런 어반클러스터이다. 지금까지 한반도 도시정책은 대도시가 주변도시와 농촌을 병합 종속시킨 공단 제조업과 대도시 써비스산업의 두 축을 기본으로 했다. 그러나 세계경제의 축이 공단 제조업에서 창조적 도시 신산업으로 이동하면서 대도시중심 정책의 대전환이 필요하게 되었다. 창조적이고 획기적인 발상의 전환이 필요한 대목이다.
세종시를 세종시의 문제로만 보는 것은 지금보다 문제가 많아질 뿐 나아지는 점이 없다. 워싱턴D.C.의 정부관련 산업은 국회, 대통령, 사법부, 행정부가 다 있는데도 20%밖에 안되는 점을 유의할 필요가 있다. 그러나 세종시로 행정부를 옮기기로 한 것은 국민적 합의이다. 행정부의 상당수가 내려간다는 전제하에 현재 우리 산업의 단계와 능력으로 세계화가 가능한 산업이 무엇일지, 또한 50만 인구를 허용할 수 있는 국제화 도시가 어떤 산업으로 가능할지를 생각해내야 한다. 우리가 제일 처음에 이루었던 산업이 철강과 석유화학이다. 두번째가 조선과 자동차, 세번째가 전자산업이었다. 이제 모두가 세계 최강 산업이 되었다. 그 다음단계로 우리가 비상할 수 있는 것이 해양산업과 항공기 산업이다. 철강은 톤당 가격을 매긴다. 자동차는 무게가 아닌 테크놀로지와 디자인으로 가격이 매겨진다. 해양산업과 항공산업이 결합하면 전자산업과 마찬가지로 최고의 부가가치를 지니게 된다. 철강 부가가치의 10배가 자동차, 그것의 10배가 항공·해양산업이다. 현재의 해양산업과 항공산업은 미국과 유럽이 독점하고 있다. 하지만 아시아 해양시장과 항공시장은 그들과 다르다. 아시아 내에서만 움직이는 해양과 항공 수요가 빠르게 상승하고 있다. 새만금과 금강과 공주 그리고 대덕의 과학단지들과 카이스트가 결합해서 실질적으로 우리의 10년 뒤를 이끌어 갈 산업이 해양산업과 항공산업이다. 새만금은 내가 발표한 지 10년 만에 일부가 모방적으로 채택되고 있는데 세종시에 관해서는 해양산업과 항공산업의 집합공동체에 대한 나의 복안이 언젠가 수용되지 않을 수 없으리라 믿는다. 이를 위해서는 대통령이 결단을 하고 미국과 프랑스 등 세계 지도자들의 동의를 얻어야 한다. 50만 인구를 수용하고 그중에 3분의 1은 외국인력이 들어오게 함으로써 아시아의 해양과 항공의 허브도시가 될 수 있는 중심산업을 만들어야 한다. 특단의 계획이 아니면 어떠한 것도 세종시를 성공시킬 수 없다. 새만금 수상도시의 해양산업과 금강의 역사도시화된 대덕·세종시의 항공산업 집합에 세종시의 길이 있다.
4. 영산강·다도해·섬진강 바다도시
영산강은 일반적인 의미의 강이 아니다. 영산강은 바다가 밀려들어온 강이라 홍수피해가 제일 컸다. 박정희 대통령 때 서둘러 둑을 쌓아 하구언으로 막았다. 그러다보니 강과 바다의 중간지대이던 영산강이 영산호라 불리는 거대한 호수가 되어버렸다.
영산강은 다도해의 흐름이 밀려오는 다도해의 강이다. 영산강을 살리기 위해서는 다도해와 함께 가야 한다. 영산강과 섬진강은 다도해의 일부다. 다도해가 무등산으로 들어온 것이 영산강이고 지리산으로 들어온 것이 섬진강이다. 두 강 사이에 무등산과 지리산이 있어 가깝고도 먼 강이 되었다. 수계가 서로 달라 같은 산의 흐름이 하나는 섬진강이 되고 하나는 서남으로 빠져 영산강이 되어서 서로 다른 영역이 되었으나, 영산강과 섬진강은 역사·지리적으로 하나의 공간이다. 두 강을 연결해야 한다. 프랑스 대서양변의 보르도(Bordeau)를 가론(Garonne)강과 미디운하가 지중해로 연결한 것같이 영산강과 섬진강을 댐으로 오르내리게 하며 지리산에서 연결시켜야 한다. 그리하여 전남 일대를 영산강과 섬진강이 다도해와 함께하는 거대한 섬으로 만들면 이는 세계 어느 곳에도 없는 명승지가 될 것이다. 다도해가 무등산과 지리산 안으로 들어와 서로 연결되면 바다와 육지와 땅과 하늘이 어우러진 곳을 만들 수 있다. 그것이‘영산강 살리기’의 답이다. 현재 4대강사업의 주 목적은 홍수방지, 수자원 확보, 수변공간 개발의 세가지인데 그 모두가 영산강에는 맞지 않다. 영산강과 다도해와 섬진강이 무등산과 지리산을 타고 연결되게만 하면 새로운 세계를 열게 할 수 있다. 그뒤 하구언을 허물면 그리스 에게해 남쪽의 키클라데스(Cyclades) 제도보다 뛰어난 최고의 자연경관을 연출할 수가 있다.
지금 한반도의 반 이상이 공단도시가 되어 있다. 영산강과 섬진강과 다도해가 하나가 되면 천혜의 자연을 가진 창조산업과 관광이 조화될 수 있다. 이것이 영산강, 다도해, 여수 엑스포가 지향해야 하는 방향이다. 여수 엑스포에서 섬진강과 영산강을 연결하는 안을 발표하고 현장에 함께 가보게 하면 세계인의 관심을 모으는 국제행사가 될 수 있다. 지구 어디에도 없는 바다와 산이 함께하는 세상을 보여줄 때 세계가 감동할 것이다.
농촌과 도시가 다 잘사는 나라가 강한 나라, 좋은 나라이다. 참여정부가 시종일관 해온 정책이 국가균형발전인데 꿈과 비전을 이룰 실천전략을 갖추지 못하고 서두르기만 했다. 국가균형발전의 요체는 지방권의 자립과 세계화이며, 이를 위해 적정 규모의 지역권을 설정하고 각각에 맞는 전략을 수립하는 것이 필요하다.
부산과 대구가 집중적인 투자에도 불구하고 변방의 도시로 남은 것은 인재와 정보와 금융과 권력이 서울에 집중되었기 때문이다. 부산과 대구의 하드웨어는 무시 못할 수준이다. 대구와 부산의 자립은 지방분권이 이루어지고 지방정부의 세계화가 성공한다면 가능한 일이지만, 현재 지방자립이 도저히 불가능한 곳이 서남해안이다. 서남해안은 부산과 대구에 비해 거의 투자를 하지 않아 인구도 산업도 없는 사막과 같은 곳이 되었다. 대구, 부산의 정체는 상당부분 자기 탓이지만, 서남해안의 정체는 나라 탓이다. 대구, 부산 일원에 집중된 투자가 서남해안 일대에 이루어져야 한다. 그러나 문제는 영남 일원에 한 만큼의 투자를 한다 해도 기존의 방식으로는 아무것도 이룰 수 없는 상황이 되어버린 것이다.
목포의 대불단지와 광주의 첨단과학단지가 영남 일원의 산업도시나 수도권을 당할 수가 없다. 제조업 대부분이 중국에 덜미를 잡힌 상황에서 제조업으로 성공할 수 있는 것은 없다. 첨단산업을 말하나 현재의 인구구조로 이 지역에 또 하나의 첨단산업 중심지를 마련한다는 것은 억지 춘향이다. 서남해안에 영남과 수도권에 했던 식의 투자를 반복할 것이 아니라 황해가 신경제권역으로 등장하는 새로운 판을 염두에 둔, 이곳만이 할 수 있는 특유의 산업전략을 수립해야 한다. 미국 서부해안이 동부지역의 성공한 산업을 뒤따르지 않고 새로운 산업을 일으켰기 때문에 미국이 세계국가가 될 수 있었다. 19세기까지 변방이던 프랑스 남부해안이 빠리 중심 수도권 못지않게 잘사는 도시권역이 된 예와 같은 차별화 도시전략이 필요하다.
한반도와 일본, 중국의 교역이 가장 빈번할 때 소통의 중심이었던 것이 서남해안이다. 서남해안은 중국과 일본을 상대해야 한다. 수도권보다 중국 동부해안 도시군 그리고 일본열도의 서남해안 도시군과 교류해야 한다. 중국 동부해안은 미국 동부해안 못지 않은 경제권이며 일본은 세계 제2의 경제대국이다. 그리고 5천만 화교도 있다. 중국 동북해안과 일본, 그리고 동남아의 화교를 상대로 한 산업을 일으켜야 한다. 단순한 관광이 아니라 그들이 투자하고 와서 살게 하는 창조적 도시를 만들어야 한다. 아드리아해의 달마띠아(Dalmatia), 지중해의 꼬뜨다쥐르(Côte d’Azur)는 관광지라기보다 산업과 휴양이 함께하는 복합도시가 되었다. 서남해안에도 황해 일원의 인구를 대상으로 신산업과 함께하는 신천지를 만들어야 한다.
서남해안이 산업화되지 않은 것은 오히려 원대한 기회가 남은 것이다. 다도해는 세계적 자연유산이다. 해상공원으로 둘러싸인 서남해안 같은 바다는 세계에 드물고, 제주도도 그 자체로는 자립 가능하지 않은 규모지만 훌륭한 관광지이다. 다도해와 서남해안을 연결하고 제주도를 합하면 세계에 유례가 없는 해안링크를 만들 수 있다. 서남해안을 아름답고 살기 좋은 곳으로 만들면 중국과 일본 사람들이 오고 세계인이 찾게 되는 것이다.
서남해안 일대에 지금처럼 대규모 관광단지를 따로 짓는 것은 미래의 가능성까지 없애는 일이다. 서남해안 마을 하나씩을 모두 세계문화유산급으로 만들어야 한다. 진도에 서남해안 바다오아시스계획을 세워 세계자본과 인구가 오게 하는 계획을 제시했으나 지방 정치가와 관료들에 의해 흐지부지되었다. 서남해안에 다섯 오아시스를 만들고 바닷길을 열어 다도해와 제주도, 진도와 완도가 1일 생활권이 되게 하고 적절한 위치에 3~5만 인구의 유토피아를 만들 수 있다. 서남해안에서 이루어야 하는 것은 균형발전이 아니라 21세기 동북아시아의 새로운 형국 속에서 서남해안의 가능성과 잠재력을 조직화한 세계화 전략이다.
글을 마치며
1969년 한강 마스터플랜을 할 때 헬기를 타고 하늘에서 한강을 내려다보았다. 한강은 거대한 습지였다. 그래서 한강이 한반도의 중심인데도 한강변에 역사도시가 없었다는 것을 알았다. 런던, 빠리, 뉴욕에 갈 때마다 내가 관심있게 찾아 보는 곳은 템즈강, 쎄느강, 허드슨강이다. 베네찌아대학과 컬럼비아대학에서 가르치고 있을 때도 4대강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금강은 가장 한반도다운 강이기에 내가 살아온 낙동강보다 더 사랑했고 한때 그곳에 살 생각도 했다. 금강은 하늘과 땅이 함께 흐르는 강이고 천년의 기다림과 좌절이 있는 강이다. 낙동강이 가야와 신라 이래 고려와 조선조를 지나 오늘까지 살아 있는 강이라면 금강은 천년 동안 죽어지낸 강이다. 영산강을 처음 가보았을 때 놀랐다. 바다 금강산이 한반도 남단에 있었다. 나는 금강산 입구 석왕사 앞에서 태어난지라 자연에 대한 감수성이 남다르다고 생각했는데 영산강과 다도해를 보고 그만 감격을 감출 수 없었다. 금강을 신백제의 수도로, 영산강을 동아시아의 리비에라로 만드는 일이 4대강사업의 주요한 목표가 되어야 한다.
한반도는 실질적으로는 조선조에 와서 확정된 압록강, 두만강 이남의 반도와 강화도, 거제도, 진도, 제주도 그리고 다도해가 그 영역이다. 한반도는 이딸리아반도와 같은 반도지만 물상적으로는 섬이다. 압록강과 두만강으로 인해 만주대륙과 한반도는 다른 땅이 되어 있다.
한반도는 산의 나라가 아니라 강의 나라다. 한반도의 지리와 역사를 하나가 되게 한 가장 큰 요소가 강이다. 이북에는 압록강, 두만강, 대동강이 한민족 삶의 근원이었고 이남에는 한강, 금강, 영산강, 낙동강이 그러하였다. 이북의 강은 다산(茶山)이 『대동수경(大東水經)』에서 자세히 정리해놓았으나 이남의 강에 대한 연구는 다산이 이룬 것만큼 아직 아무도 못하고 있다. 한국 학계의 비극이다.
국토기획은 인문학, 사회과학, 자연과학이 집합해야 하는 분야이다. 정치권에 발을 내디딘 학자들 말고 여러 분야의 진정한 전문가들이 4대강 논의에 참여하기를 바라며 글을 정리했다. 세상을 잊으면 그뿐이지만 그럴 수 없는 일 아닌가. 4대강은 지금 길을 잃고 있다. 4대강은 남의 일이 아니다. 나보다 더 큰 상상력과 실행력을 가진 우리 젊은이들이 한반도에 대한 사랑을 공유하고 4대강 제대로 살리기에 참여하기를 기대하면서 이 글을 썼다. 나의 글이 이명박 대통령에게도 도움이 되기를 진심으로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