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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초점
청춘을 향한 뜨거운 연가
박민규 장편소설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
강지희 姜知希
문학평론가. 주요 평론으로 「환상이 사라진 자리에서 동물성을 가진 ‘식물-되기’」가 있음. iskyyou@hanmail.net
언인스톨? 못과 모아이가 고개를 끄덕이자, 인류는 삭제되었다(『핑퐁』). 그런데 여기 인류가 삭제되고 무(無)로 돌아간 박민규(朴玟奎)의 생태계에서 돌연 아담과 이브가 탄생했다.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예담 2009, 이하 『파반느』)는 80년대 중반 “<좋은 것>이 <옳은 것>을 이기기 시작한 시대”(75면)를 배경으로 정치적으로 윤리적인 아담과 못생긴 이브의 로맨틱한 사랑 이야기를 그린다. 박민규의 인장(印章)이라 할 행갈이는 더이상 비약하는 공상과 유희를 위한 것이 아니라 말로 다 표현되지 않는 감정의 넘침을 드러내며, 분홍(여)과 파랑(남)으로 칠해진 대화는 다소 낯간지럽지만 연인 사이에서 특별해지는 순간들을 포착한다.‘(정말) 박민규입니까?’‘몰라몰라, 연애소설이라니.’세계의 변화 불가능성에 대한 비관이나 냉소가 아닌, 사랑을 통한 구원에 대해 말하는 낭만성은 그의 소설을 읽어온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던 행보이긴 하지만,‘세기를 대표하는 추녀’가 그 관계의 중심에 있다는 점에서 이는 줄곧 소외되고 결핍된 자들을 다뤄온‘과연 박민규’의 것이다.
『파반느』의 무대는‘부끄러움’과‘부러움’을 동력삼아 굴러가는 자본주의와 외모지상주의의 세계다. 따라서 소설 속 인물들의 아르바이트 장소가 자본주의의 총결정체인 백화점‘지하 4층 주차장’이라는 것은 이들이 “거대하고 더러운 벌레의 배 밑에 깔린”(84면), 피라미드 제일 하층에 위치한 피식자임을 드러내는 징표에 다름 아니다. 이 세계에서는 사랑 역시 유용성이 다하면 다른 선택으로 대체됨으로써 소비된다. 미남인 삼류배우였던‘나’의 아버지가 숙주로 삼고 살던 못생긴 어머니를 버리고 미모의 여사업가와 결혼하는 것이나, 백화점 회장의 첩으로 있던 요한의 미인 어머니가 나이가 들자 버림받는 것은 모두 이들의 사랑이 돈과 등가적 교환가치의 관계에 있었음을 드러낸다.
작가는 이런 자본주의의 굴레를 빠져나가는 열쇠로 벨라스께스의 「시녀들」이라는 그림을 제시한다. 작품 서두에 주인공이 이 그림을 보며 공주가 아닌 검푸른 드레스의 키 작은 시녀에게서 눈을 떼지 못하는 모습은 그처럼 못생긴 그녀와의 사랑을 암시하는 동시에, 이 그림이 미적 엠블럼으로 사용되었던 푸꼬(M. Foucault)의 『말과 사물』을 떠올리게 한다. 푸꼬는 벨라스께스의 이 그림을‘고전주의적 재현의 재현’으로 읽으면서, 시대에 따라 사물을 특정한 방식으로 인식하고 질서지우는 조건으로서‘에피스테메’를 설명했다. 이 개념은 『파반느』에서 “현실은 늘 당대의 상상력이었어”(227면)라는 말로 명쾌하게 압축되며, 작가는 신이 준 유일무이한 상상력인‘사랑’을 통해서만 이 세계의 자본주의적 질서와 광기어린 루키즘을 벗어날 수 있음을 설파한다.
여기서 박민규가‘당대의 상상력’을 벗어날 수 있는 해결책으로 제시한‘낭만적 사랑’역시 근대의 발명품에 불과하다는 반박은 큰 의미가 없을 것이다. 사랑은 항상 유일한 체험이며 모든 개인들은 그것을 오로지 자신의 방식으로만 체험할 수 있기에, 모든 연인들은 오직 둘만 허용되는 배타적인 자율적 공간을 창출해낸다는 점이야말로 중요하다. 소설 속에서 그 기이하고 아름다운 공간은 이들 만남의 구심점이라 할 수 있는, 후미진 골목에 자리한 <켄터키 치킨>집이다. <BEER> 대신 <BEAR>가, <HOF> 대신 <HOPE>가 씌어진 이곳의 간판은 기표와 기의를 흐트러뜨리면서‘곰’과‘희망’이 함께하는 동화적 공간을 구성하고, “난데없는 희망이 그토록 우리의 가까이에 있던 시절”(95면)을 만들어낸다. 무엇보다 켄터키와는 일말의 관계도 없을 네덜란드와 아마존의 풍경 패널, 돼지 이발소 그림, 갓과 이소룡이 한데 섞이면서 만들어지는 이 키치적 공간은 진짜 같으면서도 한편으로 능숙한 위조물로 보이게끔 하는‘기호학적 모호성’을 드러낸다. 우리 시대의 소비가 물건자체의 구매가 아니라, 물건이 재현하는‘기호’-분위기, 구별짓기, 감성, 유행 등의 요소들-의 구매행위임을 염두에 둘 때, 키치의 기호학적 모호성은 사물에 깃든 아우라를 적극적으로 붕괴시킨다. 따라서 육체마저 하나의 상품이 된 사회에서 추하다는 이유만으로 교환가치가 전혀 없다고 여겨지는 여자와 그녀를 사랑하는 남자에게 키치적 공간 <켄터키 치킨>은 그들을 소비사회로부터 보호해주는 방공호이며, 세계 안에서 배타적으로 형성해낸 반(反)자본주의적 공간이 된다.
이곳에서 이들은 사랑이라는 매개를 통해 자연스럽게 “아, 예예”의 세계에서 벗어나, “아니, 아니에요”의 세계로 진입한다. 이전에 박민규 소설 속 인물들이 상사가 무슨 말을 하든 “아, 예예” 하며 상명하복의 조직질서에 순응하고 자본주의 속으로 손쉽게 흡수되었다면, 『파반느』에서‘그녀’의 끝없이 망설이고 흔들리는 대답 “아니, 아니에요”는 소설 속에서 반복되면서 양면적으로 작동한다. 카멜레온이 주변 환경에 맞춰 색깔이 변하듯 그녀의 세계에 젖어든 주인공이 자신도 모르게 “아니, 아니에요” 하고 무의식적으로 말하는 순간 그들의 모습은 서로에게 겹쳐지지만, 동시에 그 말은 뒤로 한발 물러나며 서로를 동일화할 수 없는 거리를 만들어내는 것이다. 그리고 이렇게 생겨난 거리에서 우리는 수치화되고 찬양/비난의 대상이 되는 외양의 얼굴 대신, 현현하는‘타인의 얼굴’(레비나스)을 발견한다. “아니, 아니에요”는 타자의 절대적 외부성을 발견하게 하는 동시에, 합일되는 사랑의 근원적 불가능성을 드러내는 것이다. 그래서 이들이 서로를 만나 서로의 영혼에 불을 밝히며 “작은 오렌지 같던 태양”(192면)처럼 사랑하는 동안, “달의 어두운 면”(150면) 같은 상대의 어두운 내면은 놓쳐버리고 만다. 이 둘을 유일하게 이해하고 연인으로 이어준 친구 요한이 어느날 자살을 시도하고, 사랑하는 그녀 역시 한마디 말도 없이 떠나버린 후에야, 주인공은 그들을 사랑했으나 그럼에도 그들에 대해 아무것도 알지 못했다는 슬픈 사실을 뒤늦게 깨닫는다.
이 지점에서 박민규는 독자들에게 자연스럽게 세가지의 결말부를 제시한다. 그리고 그 세가지의 결말은 소설을 둘러싸고 겹겹이 확장되는 구조로 되어 있고, 그중 어떤 결말을 선택해도 해피엔딩으로 이어진다. 이런 형식은 사랑이 연인 사이에 발생하는 모든 비개연성을 필연성으로 만들듯이, 독자가 가진 모든 선택의 가능성을 사랑으로 환원시키고자 하는 작가의 의지를 강하게 드러내는 것처럼 보인다. “인간은 기대를 걸기에는 너무 단순하고 포기를 하기에는 너무나 복잡한 존재”라고 말하면서도 “신의 기대대로 살 순 없다 해도, 그래서 인간은 끝까지 스스로의 기대를 저버릴 수 없는 동물이다. 사랑이 있는 한, 인간이 서로를 사랑하는 한”(328면)이라고 말하는 『파반느』는 스펙터클적으로 인류를 삭제함으로써 손쉽게 문제를 해결했던 전작 『핑퐁』으로부터 아주 멀리 떨어진 소설처럼 보인다. 이제 그는 인류를 사랑해보기로 마음먹은 걸까? 그렇게까지 거창해지지 않더라도 이 소설이‘꿀벅지’를 찬양하는 우리 사회의 미적 균열을 응시하는 소설이자‘달의 어두운 면’을 사랑하려 했던 모든 청춘에 대한 뜨거운 연가임에는 틀림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