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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평
2009 대한민국 취업박람회 들여다보기
젊어서 고생은 사서라도 할래요
강영규
창비 계간지팀 편집기자
“일이 하고 싶어, 가득가득 일이 하고 싶어, 가득가득 웃어 보고 싶어…” 환한 가을 햇살 아래 유리문으로 들어오는 젊은이들을 보며 문득 어느 영화 속 노래가 떠오른다. 영화는 일본 프리타(フリ-タ-, free와 Arbeiter의 합성어) 젊은이의 막막한 일상을 다룬 다큐멘터리지만 애절하면서도 풋풋한 노랫말이 귀에 남아 있다. 삼삼오오 무리지은 젊은이들이‘2009 대한민국 취업박람회’라고 쓴 커다란 펼침막 아래를 막 통과한 참이다. 앳된 인상에 새로 사 입은 듯한 정장차림이 어색하다. 스스로도 그런 듯 겸연쩍은 웃음도 터진다. 20여년 만의 최악의 취업난이라지만, 또래들과 어울리니 역시 청춘 특유의 생기는 감출 수 없나 보다. 그들의 뒤를 따라 전시관으로 들어선다.
신입취업관, 취업정보관, 경력취업관으로 나뉜 실내는 현장면접장과 구직지원소들로 빼곡하다. 그룹규모의 대기업부터 생소한 중소기업까지 170여개의 기업부스들 중 몇몇 곳은 대기자들로 인산인해다. 취업의 1차 관문이라 할 이력서와 자기소개서 교육관, 직무적성 검사관 등에도 찾는 사람들이 많다. 반면 서울시나 여성부 등지의 구직지원 및 직업훈련 상담소에는 발길이 뜸하다. 대개의 참가자들이 대학졸업을 앞둔 구직 초년생이라 일단 선호기업의 문을 두드리는 경향도 있지만 정부의 각종 지원제도가 피부에 와닿지 못하다는 점도 큰 이유일 듯하다.
취업박람회의 열기만큼이나 외환위기 이후 만성적인 현상이 되다시피 한 청년실업은 올해 하반기 들어 유난히 경고음을 울려대고 있다. 지난 8월 20~30대 취업자수는 전년에 비해 27만 6000명이 감소했고, 20대 실업률은 8.1%까지 올라 전체 실업률 3.7%의 2배를 넘었다. 확 줄어든 일자리의 양도 그렇지만 그 질도 문제다. 4년제 대졸자의 경우 정규직 취업률은 작년보다 4.8%포인트 떨어진 39.6%인 반면, 비정규직 취업률은 7.4%포인트 증가한 26.2%를 기록했다. 여기에다 취업 걱정으로 졸업을 미룬 대학·대학원생이 열에 서넛이라고 한다. 공식통계에 잡히지 않는 비경제활동인구의 상황이 더 큰 문제라는 지적도 있다. 일례로 청년층에서 취업도 안하고 교육 또는 직업훈련도 받지 않는 니트(NEET, Not in Education, Employment or Training)족의 수가 113만명에 육박한다는 보고가 나왔다.
이런 현실에서 정부가 내놓은 종합대책이 15개 부처가 총동원되어 만든‘2009 청년취업 프로그램’이다. 행정인턴제, 해외취업연수, 농업청년리더 양성, 청년 사회적기업가 육성, 여대생 커리어개발쎈터 지원 등 각양각색의 제도들은 그럴듯해 보인다. 하지만 현장에서 만난 젊은이들의 반응은 시큰둥하다. 대개 인턴 명목의 교육훈련으로 미취업 상태를 연장할 뿐 아니냐는 것이다. 실제로 올해말 행정인턴을 마친 2만 3000여명 중 10% 정도만 정규직으로 채용되고 나머지는 대책없이 다시 고용시장으로 쏟아져나올 것으로 예상된다. 노동부는 이들을 대상으로 또다른 취업교육을 제공한다고 한다. 임시변통만 이어지는 셈이다. 더욱 걱정스러운 것은 “젊은이들이 눈높이를 낮춰야” 한다는 국정 책임자의 인식이다. 눈높이를 낮추어 불안정한 노동조건과 불평등한 임금을 감수하라는 뜻인가? 한가로운 덕담이 아니라면, 도대체 특정 세대에 이런 희생을 강요하는 발상은 어디서 나왔을까? 젊은이들의 높은 눈높이보다는 정부의 저열한 눈높이에 문제가 있는 것 아닌가 싶다.
취업박람회 프로그램 중 하나인‘취업성공 쎄미나’에 들어가보았다. 강사는 현실감각이 가장 중요하다면서, 지금 채용시장이 어떤 상황인지 단적으로 보여주겠다며 구직싸이트에 접수된 이력서들을 화면에 띄워서 보여준다.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 이력서들이 끝이 없다. 모두 4년제 대졸 구직자 중에서 희망연봉 1000만원을 적어낸 이들이란다. 여기저기서 나직한 한숨이 들린다. 최저임금(2010년 기준 시급 4110원, 일급 3만 2380원)에도 미치지 못하는 이 연봉을 적어낸 이들의 마음은 얼마나 절박한 것이었을까. 물론 모든 젊은이들의 상황이 이런 것은 아니다. 전시관 건너편에서는 대형 증권사의 취업설명회가 열리고 있다. 연봉은 4000만원이 조금 못되지만 각종 성과급이 쏠쏠하고, 명절에는 비행기표까지 나온단다. 역시 대기업이야…… 다들 선망의 눈빛이다. 격차의 현실은 이렇듯 출발선에서부터 엄연하다. 하지만 이들 번듯한 그룹계열사와 공기업, 금융회사의 고용비중은 1997년 이전에 비해 절반 수준이고 현재 총고용의 4%대에 머물 뿐이다.
올해초 발표된 한 조사에 따르면 대졸 신입구직자의 희망연봉 평균은 2100만원 선으로, 지난해 하반기보다 117만원 낮은 수준이다. 중소기업의 경우 1700만원대까지 내려간다. 실제로 박람회장에서 만난 젊은 구직자들에게 취업조건에 대해 물어보면 찬밥 더운밥 가릴 처지냐고 자조적으로 반문한다. 게다가 이들 중 상당수는 국공립대학 등록금 세계 2위, 공교육비 민간부담률 1위(2009 OECD교육지표)의 사회에서 이미 부채를 짊어지고 경제적 여력을 잠식당한 상태이다.
이처럼 사회적 독립의 첫발부터 눈높이의‘꺾기’를 강요당한 세대에게 어떤 앞날이 기다리고 있을까. 아마 나이가 들면서도 그 수준이 쉽게 오르지는 못할 것이다. 열심히 일해도 빈곤을 면치 못하는‘근로빈곤층’, 고용불안에 시달리는 비정규직 노동자로 살아가리라는 예감이 이들을 옥죄고 있다. 박람회장에서 실업자 신용상담을 하는 한 40대 카운슬러는 걱정스레 털어놓는다. “완전고용시대를 살아온 내 연배도 이렇게 허덕이는데, 과연 지금 청년들은 집 사고 자녀 가르치는 것을 꿈이나 꿀 수 있을지 모르겠어요.” 젊은이들 눈높이가 문제라는 왜곡보다는 차라리 이런 걱정이 윗세대로서 솔직한 것이 아닐까.
고성장기의 상대적 과실을 누린 이른바‘박정희세대’나‘386세대’와 그후 등장한‘88만원세대’가 격렬한 세대간 투쟁을 앞두고 있다는 전망이 설득력있게 들리는 때다. 청소년기부터 입시경쟁으로 세대내 투쟁에 익숙해진 이들이 위아래 세대와의‘전면전’에 내몰린다면 그 갈등의 결과는 우리 사회가 감당할 수준을 넘어설 것이다. 또 한가지 문제는 청년세대의 사회진출이 몇몇 선망직종 또는 선호기업에의 취업으로 획일화된다는 점이다. 획일화는 소모적인 경쟁을 부른다. 대학이 취업준비소로 변질했다는 것은 오래전 이야기지만, 최근에는 취업을 목표로 하는 동아리들마저 생겨난다. 이곳에서는 신입생 때부터 선호기업에 입사하기 위한‘스펙’쌓기와 면접 연습 등 한마디로 취직 선행학습을 수행한다. 취업컨설팅업체가 성업하고, 취업수험서들도 갈수록 전문화·세분화되고 있다. 웬만한 대기업이라면 취업전형 유형에 따라 준비하는 요령부터 다르다. 모 그룹의 입사시험은 모의고사와 기출문제집 등 대입수능을 방불케 하는 취업준비시장을 만들어낼 정도다.
전시관을 나오자 주차장에 도열한 관광버스들이 보인다. 차에 오르기를 기다리는 청년에게 말을 걸어본다. 학교측에서 제공한 버스를 타고 왔다는 그는 기업들이 대학에서 취업설명회를 열기도 하지만 국공립대나 대형 사립대가 아니면 잘 오지도 않는단다. 설명을 들을 기회에서부터 차이가 난다는 것이다. 여러모로 답답한 처지인 듯한 그에게 필자의 소속을 밝히며 취업전망에 대해 물어보았다. 그러자 그는 출판편집자가 꿈이라며 오히려 이것저것 필자를 취재하기 시작한다. 보수가 그리 높진 않고 또 사회적인 위상도 그렇고…… 뻘쭘한 필자에게 그는 하고 싶은 일을 한다면 고생할 각오는 되어 있다고 씩씩하게 대답한다.
젊어서 고생은 사서도 한다. 옳은 말이다. 하지만 그 고생할 기회를 얻지 못한 젊은이들이 넘쳐나고 있다. 그들 앞에 널린 것은 턱없이 낮은 임금과 불합리한 처우의 불량 일자리들이다. 일해도 보람 없는‘헛고생’의 길만 활짝 열려 있는 셈이다. 청년세대의 의욕과 패기만한 사회적 자산이 또 있을까. 옛말에 틀린 것이 없다면, 그들에게 고생다운 고생을 허하라! 삽질은 좀 그만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