촌평
강만길 자서전 『역사가의 시간』, 창비 2010
역사가가 기억한 ‘자기의 역사’
염복규 廉馥圭
국사편찬위원회 편사연구사 pkyum1@empal.com
강만길(姜萬吉) 선생이 자서전을 집필한다는 이야기를 처음 들었을 때 지레짐작한 바가 있었다. 알다시피 그는 역사학자로서 조선시대 사회경제사, 근현대 민족운동사·사회사 등에서 많은 업적을 냈다. 하지만 민주화운동의 일각에서 실천적 지식인으로 명망을 쌓았을 뿐 아니라 최근까지도 상지대 ‘민주총장’, 남북역사학자협의회 남측위원장,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 위원장 등으로 공직에서 중요한 활동을 계속한 분이기도 하다. 그래서 그의 자서전에는 이런 활동담이 주로 담기지 않을까 짐작했던 것이다.
그러나 막상 700면에 가까운 책을 읽으며 이것이 섣부른 생각이었음을 절실하게 느낄 수 있었다. 이 책은 일제말 ‘황국소년’으로 성장하여 해방, 분단, 6·25 등 숨가쁘게 이어지는 ‘역사적 사건’을 겪으며 한사람의 역사학도가 되기까지의 여정, 국사편찬위원회 연구직과 고려대 교수로 재임하면서 조선시대 사회경제사 연구에서 출발해 점차 근현대사로 학문적 관심을 넓혀간 과정, 이와 시기적으로 어느정도 겹치지만 1970년대 이래 민주화운동·통일운동에 참여하고 훗날 관련 공직을 수행하며 겪은 이야기 등 대략 세 부분으로 나누어볼 수 있다. 그중 연구자로서 그리고 운동가와 공직자로서 겪은 이야기도 물론 흥미로웠지만 평자로서는 거의 알지 못했던 앞부분의 여정을 읽으며 큰 감명을 받았다. 그리고 그가 ‘역사가의 자서전’의 전범을 세우기 위해 오랫동안 많은 준비를 하고 공을 들였음을 느낄 수 있었다.
왜 ‘역사가의 자서전’인가? 역사가는 과거를 서술하고 분석, 평가하는 일을 업으로 삼는다. 그럼에도 ‘자기의 역사’인 자서전을 남긴 예는 적어도 우리 학계에서는 처음이 아닌가 한다. 이렇게 역사가의 자서전이 없었던 이유는 여러가지일 테지만, 엄격하고 객관적이어야 하는 역사가의 규범을 자기를 대상으로 지키는 것이 심리적으로 큰 부담이 되기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그러나 그렇기 때문에라도 그 부담을 이겨낸 역사가의 자서전은 독자들에게 큰 울림을 줄 수 있다. 그 스스로 “역사학 전공자의 자서전은 그가 살아온 시대를 역사적 안목에서 되돌아본다는 의미도 있겠지만, 한편 당대 역사학의 역사를 되돌아보는 또 하나의 의미도 가지게 되지 않을까 한다”(8면)고 밝히기도 했거니와, 이 책은 그의 개인사의 진솔한 반추이면서 동시에 이와 겹치는 격동의 근현대사, 나아가 저자 특유의 사론에 대한 ‘강의’이기도 하다.
서로 씨줄과 날줄처럼 얽혀 있는 두 부분 중 개인사의 서술에서 저자는 철저하게 그 일이 있던 과거의 시점으로 돌아간다. 그리하여 독자는 열두세살 소년의 눈으로 본 8·15 전후의 풍경, 중학교 고학년으로 겪은 6·25의 참상에 몰입할 수 있게 된다. 스스로를 포장하지 않는 서술 역시 돋보인다. 자유당 말기의 혼란한 군생활부터 공무원 신분으로 목격한 4·19와 5·16, 이후 학계 안팎에서 겪은 다양한 사건과 교유한 인물들을 가감없이 기록하고 있다. 특히 인상적인 것 중 하나로 고려대 전임이 되는 과정 같은 경우(180~83면)는 저자 정도의 사회적 위상을 가진 학자가 공적 문헌에서 이렇게 솔직하게 밝힌 전례가 거의 없지 않나 여겨진다. 이러한 서술태도는 “역사적 해석이나 역사교육은 철저히 객관적이어야 하며 공명정대해야 한다”는(219면) 역사관에서 나온 것이리라. 자기의 역사를 서술하면서도 그는 역사가의 규범을 흐트러짐 없이 지킨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 책은 단지 하나의 자서전을 넘어서 우리 근현대사, 특히 현대 사학사 내지 지성사의 중요한 증언이 될 것으로 생각한다.
한편 책의 곳곳에서 저자는 오랜 시간 온축한 자신의 사론을 전개한다. 기실 그는 사론을 많이 썼고, 그만큼 많이 알려져 있는 편이다. 그러나 이 책에서 그것은 단지 논리가 아니라 본인의 개인사와 맞물려 서술됨으로써 더욱 인상 깊게 다가온다. 그의 사론은 여러가지로 정리할 수 있겠지만, 평자는 그중에서도 “학문이 세간(世間)을 떠나 상아탑에만 들어 있으면, 세간의 사정이 아무리 어려워져도 학문이나 학문하는 사람은 세간을 위해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게 마련이다. 현실을 위해 아무것도 할 수 없는 학문이 무엇을 위해 독야청청할 것인가”(141면)라고 하는 강렬한 ‘현실지향’을 핵심으로 들고 싶다. 이러한 지향이 “오늘날의 역사학이 이제는 아무 위험부담 없이 다룰 수 있게 된 식민사학 극복문제에만 안주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191면) 하는 문제의식을 낳았을 것이며, 그의 학문을 “한 시대의 하나의 문제를 깊이 천착하지 못하고, 여러 시대에 걸쳐서 상공업, 민족해방운동, 민족통일전선운동, 통일문제까지 다루지 않을 수 없게”(304면) 했을 것이다.
그런데 학문적으로도 여러 문제를 다루게 되고 학문외적 활동으로까지 나아가다 보면, 필연적으로 어떤 문제를 깊이 천착하는 데는 소홀할 수밖에 없게 된다. 저자 스스로는 후회하지 않는다지만, 이 책에서는 투철한 현실지향의 결과로서 연구자이자 교육자로 일생을 집중하지 못하고 ‘잡문’을 많이 쓰는 ‘논객’으로 비쳐온 데 대한 일말의 아쉬움을 드러내기도 한다. 그러나 ‘정통’의 학자적 삶에서는 벗어났을지 몰라도 그의 학문적 여정이 얼마만한 의의를 갖는지 잘 보여주는 한 예가 있다. 2009년부터 학술지 『한국사연구』에서는 주로 원로 학자의 연구사적 의의가 큰 대표 업적을 비평하는 글을 연재하고 있다. 지금까지 15명의 저서 16권이 다뤄졌다. 그중 한사람의 저서가 두권 다루어진 예는 강만길이 유일하다. 『조선후기 상업자본의 발달』과 『조선민족혁명당과 통일전선』이 그것이다. 대상 시대와 소재가 전혀 다른 두 책이 같이 포함된 것은 무엇을 뜻할까? 그의 학문이 각각의 시기가 요구하는 문제의식을 가장 선두에서 개척해왔음을 보여주는 뚜렷한 증거가 아닐 수 없다.
이 책에 펼쳐진 그의 사론은 결론적으로 “역사적 평가는 ‘최고 최종적’ 평가이기 마련이다. 우리 근현대사에서는 역사학이 ‘최고 최종적’ 평가자로서의 임무를 때맞춰 다하지 못한 결과 반역사적 정권 및 반역사적 시기에 대한 과도하고도 잘못된 평가가 횡행하게 되었던 것이다”(226면)라는 말로 정리할 수 있을 듯하다. 물론 여기서 ‘최고 최종적 평가’라는 말은 역사적 평가의 엄중함을 뜻하는 것이지, 어떠한 역사적 평가가 우위에 있다는 뜻이거나 한번 내려진 역사적 평가는 수정할 수 없다는 뜻은 아닐 터이다. 그의 생각이 그렇지 않음은 이 책에서도 잘 알 수 있다. 그렇다면 이제 자서전이라는 형태로 역사가로서 삶의 자세와 역사학의 나아갈 바에 대한 생각을 제시한 그에게 후학들이 해야 할 답례는 무엇일까? 그것은 아마도 ‘강만길 역사학’의 핵심—자본주의 맹아론, 분단시대 사학론, 통일=근대사의 종점론 등—을 둘러싼 치열하고 생산적인 ‘대화’가 아닐까 한다. ‘강만길 역사학’이 그만큼 시대에 충실한 것이었다면 현재의 시점에서 그 의미를 다시 논하고 평가하는 것이야말로 그에 대한 ‘예우’가 아닐까 싶다. 조만간 그러한 대화가 시작될 수 있기를 기대해본다.
『역사가의 시간』을 읽으며 오랫동안 잊고 있던 20여년 전 늦겨울을 새삼 떠올렸다. 대학 입학을 앞두고 처음 읽은 책이 그의 『분단시대의 역사인식』이었다. 그러므로 그는 정규의 학연을 떠나 평자에게 첫 스승이 되는 셈이다. 앞으로도 오래도록 많은 가르침을 받을 수 있기를 바라마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