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과비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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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머리에

 

안철수 현상과 2013년체제

 

재스민 혁명으로 시작되어 후꾸시마 원전사태를 지나 ‘월가 점령’으로 가을을 맞았던 2011년이 저물고 있다. 구조적 위기와 정치운동의 출현이라는 이중의 세계사적 흐름은 우리 사회에서도 나름의 형태로 드러나고 있다. 분단체제를 해체해온 87년체제 또한 크게 흔들리며 갈수록 그 동요의 진폭이 커지고 있는 한국사회는 새로운 체제로의 이행이라는 내적 압력에 직면해 있다. 그런 상황에서 희망버스나 서울시장 보궐선거를 통해 드러난 20~40대의 세대·계급 동맹은 구조적 위기를 극복할 자원이 대중의 측면에서 무르익고 있음을 보여준다.

하지만 그것이 결실을 맺으려면 연합정치로 대변되어온 정치적 대안과 2013년체제론이라는 새로운 체제 비전과 결합되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대안과 비전을 마련하는 작업이 늘 대중의 욕구를 깊이 경청하려는 자세 속에서 수행되어야 함을 유념해야 한다. 이런 점에서 우리가 함께 깊이 생각해보아야 할 것 가운데 하나가 ‘안철수 현상’이다. 안철수 교수의 이력이 널리 알려져왔고 그가 우리 사회 젊은이들을 위로하고 돕는 일에 힘씀으로써 쌓은 신뢰의 자산이 크다 해도, 우리 정치사에서 이토록 강력하고 빠른 속도로 한 인물이 유력한 대통령 후보로 부상했던 일은 없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이미 이런저런 분석들이 안철수라는 인물을 탐구하고 그를 향해 응집된 사회적 욕구를 탐색하기도 했다. 안철수 현상의 온전한 의미는 이 두 방향의 분석이 종합될 때 분명해지겠지만, 안교수의 정치 투신이 불투명한 시점에서 우선 필요한 것은 그가 보여준 몇가지 특질에 투사된 사회적 열망에 주목하는 일이다. 이 사회적 열망은 향후 정국에서도 중요하게 작용할 것이기 때문이다.

안철수 현상은 무엇보다 ‘반한나라 비민주’라는 그의 입지점에서 비롯하는 것 같다. 이명박 대통령과 한나라당이 집권 후에 보인 편협한 계급이익 추구, 낡은 성장모델에 입각한 경제정책 그리고 권위주의적 통치와 남북관계의 악화에 대중은 깊은 반감을 가져왔다. 그간 야권이 각종 선거에서 승리할 수 있었던 것은 대중의 반MB정서와 그것에 부응하려는 야권의 연합정치가 조우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야권의 연합정치는 지속적으로 발전해왔고 이번 서울시장에서 진일보한 모습을 보였음에도 대중의 감동을 이끌어낼 만큼 시원시원하고 흔쾌한 것은 못되었다. 대중의 눈에 야권의 여러 정당들은 자기들끼리의 내부협상 능력이 충분치 못할뿐더러 대의를 위해 묵은 감정적 앙금을 털어낼 대범함도 없는 집단으로 비쳤다.

안철수는 혐오스러운 한나라당과 지리멸렬한 야권이라는 양자택일적 정치구도 밖에 위치한 대안이었다고 할 수 있는데, 그에 대한 열광적 지지는 대중이 이런 지겨운 구도에서 얼마나 벗어나고 싶었는지를 말해준다. 그러므로 안철수 현상은 야권에 중대한 경고를 보내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연합정치의 당사자들이 지금까지보다 더 담대한 모습을 보이지 못한다면 더 큰 위기가 야권을 엄습할 수 있다는 것이다.

안철수 교수에 대한 세간의 평가 가운데는 그 또한 성공한 CEO임을 지적하며 우리 사회에 CEO에 대한 환상이 여전하다는 비판적 시선도 있다. 하지만 성공한 CEO 안철수에 대한 지지의 밑바탕에는 마땅히 존중되어야 할 대중의 소망이 어려 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안철수 교수의 성공과 부는 적극적으로 공공의 이익을 추구하며 가치있는 생산물을 창조함으로써 얻어진 것이다. 그를 지지하는 대중은 그처럼 공적 대의와 사적 성공 및 행복이 연결되는 삶을 원하고 있는 것이다. 2013년에 새로운 체제를 이룩하려는 노력도 사적 행복과 공적 대의의 결속을 중요한 과제로 삼을 필요가 있다.

CEO 안철수에 대한 지지에는 좀더 깊은 분별의식도 작용하는 것 같다. 안철수를 지지하는 사람들 가운데는 한진중공업 조남호 회장을 비판할 뿐 아니라 김진숙 지도위원을 지지하기 위해 희망버스에 몸을 싣는 이들도 많다. 이와 유사하게 ‘월가 점령’ 운동의 참여자들도 금융자본은 비판하지만 스티브 잡스의 죽음은 마음 깊이 추모한다. 이런 태도를 두고 자본가는 자본가일 뿐이지 좋은 자본가와 나쁜 자본가로 구별하는 대중의 인식이 모순됐다고 보는 시각은 피상적이다.

오히려 이들은 안철수와 스티브 잡스가 가치있는 생산품으로 우리의 삶을 풍요롭게 했지 착취하는 자들이 아니라는 것, 시장경제와 자본주의가 다르다는 것, 그리고 자본주의는 시장경제 위에 올라타 있는 거대금융과 독점이라는 것을 희미하게라도 파악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실제로 자본주의가 부패나 엘리뜨의 관직 독점으로 국가기구를 장악하고 공공자산을 침탈하며 법체계를 조작하고 언로를 왜곡하거나 여론을 통제해 초과이윤을 취득할 때 우리는 체제로서의 자본주의에 대해 말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자본주의 세계체제가 위기에 빠져든 시기에 새로운 체제를 구상하는 작업은 대중이 이미 직관적으로 이해하고 있는 시장과 자본주의의 준별이라는 브로델적 통찰에 입각해야 하며, 그럴 때 폭넓은 설득력을 가질 것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이번호 특집 ‘동아시아 지역문학은 가능한가’는 지난 봄호의 동아시아담론 논의를 지역문학이라는 틀로 이어간다. 최원식은 동아시아가 세계체제에 대해 가진 관계가 그러하듯이 동아시아 지역문학 또한 내적 연대를 통해 세계문학을 갱신할 분권의 창조적 장소로 호명되고 있음을 역설하며, 그런 가능성의 흐름을 소설가 방현석, 유재현, 전성태, 김연수의 작품을 통해 풀어내고자 한다. 윤지관은 동아시아 지역문학의 위상을 프레드릭 제임슨을 경유하여 대담한 정치적 은유 속에서 규명한다. 국민국가들 간의 심대한 힘의 불균형을 형식적 평등으로 봉합하는 현존 세계체제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국민국가들이 초국가적 지역정치공동체에 참여하고 그 공동체들에 의해 세계정치가 수행되는 모델을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같은 선상에서 세계문학 또한 지역문학들의 교류 속에서 새롭게 구상될 수 있을 것이며, 그럴 때 우리는 정치와 문학 모두에서 패권 없는 세계를 이룩할 수 있을 것이다.

안천과 백지운은 그 가능성을 좀더 개별적인 사례들을 통해서 검토한다. 우선 안천은 일본 문학담론에서 동아시아의 위상을 살핀다. 그에 따르면 2차대전 이전에는 동아시아담론이 존재했지만 제국주의담론에 속박되어 있었다. 그로 인해 패전 후 일본문학에서 동아시아에 대한 문제의식은 오오에 켄자부로오 같은 작가의 예외적 성취에도 불구하고 제대로 발전하지 못했다. 이에 비해 백지운이 검토한 대만 향토문학은 어려운 시절에도 한국과 일본에 전달되고 수용되었으며, 나아가 대만문학에서의 리얼리즘/모더니즘 논쟁 양상은 한국의 민족문학 논쟁과도 일정한 유사성이 있다. 한편 한・중・일 작가 5인의 교류 경험을 담은 산문은 아직은 옅으나 분명 존재하는 동아시아 지역문학의 흐름을 실감하고 미래를 구상해볼 수 있게 한다.

대화에서는 최근 진보개혁진영에서 논의되고 있는 2013년체제가 집중 토론된다. 2012년 총선과 대선을 새로운 사회적 비전과 체제의 수립으로 연결하고자 하는 참석자들은 세계자본주의 위기와 한국사회 성원들이 느끼는 불안의 구조적 요인을 민주정부 10년의 성과와 한계 및 이명박정부의 실정과 연계해 분석한다. 또한 재벌개혁과 대안적 성장전략, 남북관계 개선 및 바람직한 복지정책에 대해 논의하고, 이를 실현하기 위한 정치연합과 거버넌스 개편의 방향을 모색한다.

논단과 현장의 글들은 현재 변화의 도상에 있는 한국사회에 여러모로 시사점을 준다. 그간 우리에게 주로 소설가로만 알려져온 D. H. 로런스를 그의 민주주의론을 바탕으로 재조명하는 백낙청의 글이 이목을 끈다. 백낙청은 로런스의 에쎄이 「민주주의」가 근대 민주주의가 해소하지 못한 평등과 대의체제 문제를 정면에서 논의하고 있는 점에 주목하며, 그의 논의를 정치와 치안 양면에서의 새로운 발전과 성숙이라는 한국 민주주의의 ‘이중과제’ 수행을 위한 시사점으로 삼자고 말한다. 이매뉴얼 월러스틴의 글은 『근대세계체제』 출간 이후 37년간 쏟아진 각 진영의 비판을 회고하며 이를 하나씩 되짚어보는, 세계적 석학의 지적 탐험기로 읽힌다. 제1회 사회인문학평론상 수상자 황승현의 글도 흥미롭다. 배우 한예슬의 촬영현장 이탈 소동을 소재로, 우리 사회 우파담론의 핵심 논리를 ‘이중화법’이라는 개념으로 포착하여 비판하는 그의 글은 강남좌파의 반대편에 있는 ‘달동네 우파’에 대한 정치적 계몽을 문화비평적으로 수행하고 있다. 이 수상작을 게재하며 올해 사회인문학 연속기획을 마무리한다. 이외 『신조선(新朝鮮)』 창간호에 실렸던 벽초 홍명희의 역사논설을 발굴・정리한 자료도 반가운 읽을거리다.

은희경의 장편연재는 어느덧 3회를 맞았다. 여전히 긴장감있게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작가의 열정에 응원을 보낸다. 단편란에서는 성석제, 김종광, 백수린이 개성있는 소설세계를 보여주며, 신인소설상 수상작 역시 눈여겨볼 만하다. 시란도 풍성하다. 만해문학상 수상자 천양희부터 신인시인상 수상자에 이르기까지 13명 시인들의 다채로운 작품을 만나볼 수 있다. 작가조명에서는 세련된 서정과 사회현실에 동참하는 활동으로 주목받고 있는 심보선 시인을 초대했다. 문학평론에는 지난 여름호 한기욱의 특집 글에 대한 김영찬의 반론을 싣는다. 그는 단절론적 시대인식이라고 비판받은 자신의 현시기 한국문학에 대한 진단이 2000년대 이후 한국사회의 구조적 변화와 문학주체의 대응에서 나온 것이며, 이를 철저히 인식할 때 2010년대 한국문학의 진로를 모색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13회 백석문학상 수상자로 도종환 시인이 결정되었다. 뜨거운 윤리의식과 순정한 시심(詩心)으로 우리 곁을 지켜온 ‘우직한 리얼리스트’께 축하의 말씀을 전한다. 제5회 창비장편소설상과 2011 창비신인문학상(소설)은 각각 기준영, 이지호, 천정완에게 돌아갔다. 사회인문학평론상 수상자와 더불어 우리 문단과 논단에 신선한 활력이 되어주시길 바란다. 끝으로 일일이 소개하지 못했으나 정성을 다해 깊은 내용을 담아준 문학초점, 촌평, 문화평 필자에게 깊은 감사를 드린다.

金鍾曄

김종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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