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 동아시아 지역문학은 가능한가
동아시아문학의 현재/미래
최원식 崔元植
문학평론가. 인하대 인문학부 교수. 저서로 『민족문학의 논리』 『한국근대소설사론』 『생산적 대화를 위하여』 『문학의 귀환』 『제국 이후의 동아시아』 등이 있음. ps919@hanmail.net
1. ‘동아시아’와 ‘문학’ 사이
“아시아는 현재에 있지 않고 미래에 있다.”(亞洲者 不在現在 在未來也) 일본을 앞세운 서세동점(西勢東漸)의 도도한 바람 아래 중국을 비롯한 아시아 전체가 굴종하던 시기에도 량 치차오(梁啓超, 1873~1929)는 미래 아시아에 희망을 가탁했다. 목하(目下) 아시아는 현재인가, 미래인가? 동아시아로 좁히면 아시아는 살아 있는 현재 또는 가까운 미래다. 그렇다고 다른 지역들을 흘러간 과거 또는 까마득한 미래로 치부하자는 것은 결코 아니다. 아직도 그런 인종주의적/계급적 편견과 제휴한 위계적 사유가 곳곳에 복재(伏在)하고 있긴 하지만, 그래도 이제 세상은 그만큼은 번해진 듯싶다. 만약 기왕의 패권주의를 복제한 짝퉁이라면 나는 그런 (동)아시아론에 천번이라도 반대할 것이다. 예컨대 ‘중국의 평화’(Pax Sinica) 또는 ‘일본의 평화’(Pax Japonica) 또는 ‘아시아의 평화’(Pax Asiana)로 표현될 법한 새로운 중심주의는 참된 (동)아시아론이 아니거니와, 모든 지역/나라, 모든 국민/종족은 하나하나 그 자체로 불멸의 현재요 불사(不死)의 미래이기 때문이다.
동아시아가 살아 있는 현재라고 해서 순풍일로(順風一路)라는 것은 물론 아니다. 6·25전쟁과 베트남전쟁 이후 상대적 안정기를 누린 동아시아는 탈냉전시대의 진전 속에서 불안정성도 속종으로 증대하고 있는 실정이다. 비록 냉전에 의해 지지될망정 이 지역 부흥의 바탕으로 된 역내의 평화가 한반도 분단선의 조정 가능성에 따라 흔들리고 있기 때문이다. 분단체제의 요동이라는 조건이 미국의 일극지배를 먹어가는 중국의 부상(浮上)1)과 엇물리면서 동북아시아가 급속히 내연(內燃)한다. 미국의 서퇴동진(西退東進)과 중국의 동세서점(東勢西漸)이 교차하는 전환기적 쟁투 속에서 대국들이 겯고 트는 동북아시아는 예측불허의 도가니다. 미국과 중국이라는 주 동선에, 질주의 끝에서 주춤하고 있지만 상기도 강력한 일본, ‘유럽과 아시아의 다리’를 자처하며 동아시아로 복귀하는 러시아2)까지 중첩한 동북아시아는 과연 세계사적 뇌관이다. 대륙으로 진입하는 교두보요 대양으로 진출하는 나루라 할 한반도, 4강(强)이 집주(集注)하는 이 결절점이 과연 어떤 역할을 할 것인지, 낙관과 비관이 비등한다.
동북아시아는 다시 20세기를 반복할 것인가? 비관을 억제하는 낙관의 징후들 또한 뚜렷하다. 무엇보다 동아시아가 서로를, 아니, 스스로를 보기 시작했다. 부정적이든 긍정적이든 미국만 바라보는 시선이 아직도 강력하지만, 경제적 상호의존의 심화에 기초한 생활세계의 상호침투, 스밈과 번짐이 그 이전으로 되돌릴 수 없을 만큼 진전된 형편인지라 이제 동아시아는 ‘하나의 텍스트’에 가까워졌다고 보아도 좋다. 혐한류(嫌韓流)의 대두야말로 동아시아 시민의 교제가 정상상태로 들어섰다는 움직일 수 없는 방증이다. 접촉과 교류가 깊어지면 다툼이 일어나는 것은 자연스런 일이기 때문이다. 알다시피 임진왜란 이후 동아시아는 거의 쇄국상태였기에 국민들 사이의 교류가 거의 없었다. 근대 이전에는 중국문명의 우월성에서 우러난, 근대 이후에는 일본의 아시아 침략과 동반한 문화적 일방통행만 횡행했다. 이 점에서 최근 동아시아에 두드러진 문화적 쌍방향성 바람의 의의는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침이 없다.
이에 비하면 동아시아문학은 현재가 아니다. ‘동아시아’와 ‘문학’ 사이에는 이제 겨우 디딤돌이 놓인 형편이니, 단적으로 최초의 다자간 교류라 할 ‘동아시아문학포럼’이 얼추 2회를 넘긴 형편이다.3) 한·중·일 세 나라 문인들 사이의 쌍무적 접촉이 3자관계로 진화한 동아시아문학포럼의 출범은 획기적이지만, 여백은 넓다. 동남아시아의 제외는 차치하고라도 당장 동북아시아에서도 북조선이 배제된 것은 문제다. 그렇다고 당장 포럼의 문호를 개방한다고 해결될 일은 아니다. 우선은 3자관계를 더욱 우애적으로 진전시키는 데 주력하면서 차츰차츰 결합의 범위와 정도를 상응적으로 높여나가는 절충을 택할 수밖에 없는 형편이다.
경제협력의 증대에도 불구하고 정치적 갈등은 날카로운 최근 한중관계를 중국언론에서는 정냉경열(政冷經熱)로 요약하거니와, 이는 동북아시아에 두루 사용해도 무방하겠다. 그런데 문학도 정치 못지않다. 이를테면 문냉(文冷)이다. 갈등 속에서도 접촉이 빈번한 역내정치에 비할 때, 상호 무지에 대한 알아차림조차 은폐된 지역문학 쪽이 더 냉랭한지도 모른다. 아니, 문학과 이웃인 문화, 특히 대중문화의 열은 두고라도, 역내 지식인들 사이의 식견교류(識見交流)4)도 점차 넓고 깊게 이루어지는 추세에 들어선 점을 감안하면 지역문학의 냉기는 유별나다고 아니할 수 없다.
이는 말을 다루는 문인들 사이의 월경(越境)적 교류와 협력이 지닌 까다로움을 상기시킨다. ‘종족의 방언’을 경계로 삼는 각 국민문학의 의식적·무의식적 도구인 문인들은 모국어 최후의 수호자다. 아무리 단독자적 경향이 온몸에 전 작가라도 그 ‘방언’을 자신의 문학어로 선택하는 순간 그는 그 사명으로부터 탈주할 수 없다. 물론 문학은 경계를 넘어서려는 충동 또한 지니고 있다. 특히 근대 이후 독서시장의 팽창 속에서 통역, 번역, 번안, 그리고 문학상 등의 형태로 문학은 방언의 경계를 이월한다. 그런데 이 월경은 어느 방언의 확장이지 다른 방언과의 진정한 접촉이라고 하기 어렵다. 뜻밖에 문학은 정치만큼 영토적이다. 각 국민문학의 영토성을 탈영토화하기 위해서는 다른 동아시아의 도래를 꿈꾸는 정치적 상상력이 요구될 터인데, 그것은 동아시아를 각 방언의 경계 바깥 또는 그 경계들 위에 설정할 담대한 사유와 긴밀히 물리는 것이다. 어떤 점에서 ‘정냉’과 ‘문냉’은 동전의 양면일지도 모른다. ‘정냉’이 풀려야 ‘문냉’이 풀리고, ‘문냉’이 풀려야 ‘정냉’도 풀린다. 아마도 동아시아문학의 출현은 그 최후의 단계 또는 최고의 단계를 가리킬 것이매, 기왕의 쌍무적 관계들은 그것대로 진전시키면서 새로이 출범한 다자간 교류 또한 때맞춰 잘 살려내는 작업이 무엇보다 절실하다.
2. 지역문학의 현재: 방현석, 유재현, 전성태, 김연수
동아시아문학의 미래를 내다보면서 본격적 논의의 바탕을 마련하는 기초적 작업으로 우선 지역문학이 어떻게 서로를 의식하고 있는지 따져보려고 한다. 일본문학, 중국문학, 베트남문학 등등 지역문학에 대한 무식의 소치로 한국문학에 제한할 터인데, 아무래도 동아시아가 의미있는 문학적 장소로 탐구된 작품들이 집중적으로 나타나기 시작한 21세기 초의 한국소설들이 그 대상으로 될 것이다.5)
그 선편을 쥔 게 방현석의 중편집 『랍스터를 먹는 시간』(창비 2003)이다. 방현석은 80년대 노동문학을 결산한 『내일을 여는 집』(창비 1991) 출간 이후 긴 침묵에 빠져들었던지라 이 작품집에 대한 주목은 비상했다. 노동운동을 다룬 「겨우살이」(1996) 「겨울 미포만」(1997)과 베트남에서 취재한 「존재의 형식」(2002) 「랍스터를 먹는 시간」(2003) 등, 확연히 구분되는 두 계열의 중편을 수록한 이 소설집은 노동문학의 출구가 베트남이라는 점을 한눈에 드러낸다. 그렇다고 「겨우살이」와 「겨울 미포만」이 단지 출구 노릇만 했다는 것은 아니다. 복직한 전교조 교사의 눈으로 ‘문민정부’ 시절 한국사회의 속물성을 묘파한 전자나, 안팎의 조건 변화 속에서 하강하는 노동운동을 정면에서 파악한 후자 또한 퇴조기의 문학적 응전으로서 손색이 없다. 그럼에도 후자에는 자기연민과 제휴한 관념론이 안개처럼 스며 있다. 사람도 문학도 대책없이 건강한 방현석마저 시대의 바이러스에 감염되고 말았던 것이다. 「겨울 미포만」의 젊은 노동자의 자조—“구십년대야 원래 뭐가 있나요? 팔십년대에 딸린 별책부록이지”(295면)—가 환기하듯, 이 와중에 노동문학도 슬그머니 ‘별책부록’으로 이동해버렸던 터다.
베트남 계열은 어떤가? 실은 이도 ‘별책부록’ 즉 (베트남전쟁의) 후일담이다. 전쟁 이후 전사(戰士)에서 작가로 전신한 반 레(Van Le)와 노동문학 이후 새 길을 모색하는 방현석의 만남을 축으로 두 나라 후일담이 교직되는 베트남 계열 소설들은 이중의 후일담인 셈이다. 그럼에도 값싼 후일담과는 인연이 멀다. 작가는 말한다. “기웃거린 지 10년이 되어서야 겨우 베트남을 무대로 한 이야기를 쓸 엄두를 냈다. (…) 멀리 우회하는 동안 바래고 찢긴 내 문학의 남루한 깃발이 부끄럽다. 하지만 괜찮다. 비록 더 뜨겁게 사랑하진 못했지만 한때 열렬히 사랑했던 것들을 욕보이지 않고 견뎠다. 비록 우회하였지만 투항하지 않고 버텼다. 비록 미지근하지만 예전에 사랑하지 못했던 것들을 사랑할 수 있게 되었다. 견디는 것이 쉽지만은 않았지만 부질없는 것도 아니었다.”(‘작가의 말’) 황석영(黃晳暎)의 『무기의 그늘』(월간조선 연재 1985~88)로 대표되는 참전세대의 베트남소설과는 다른, 새 세대의 베트남소설이 탄생하는 고통의 과정을 감동적으로 증언하는데, 이는 한국의 민족문학/노동문학이 동아시아로 이월하는 첫 이정표였다.
「랍스터를 먹는 시간」은 「겨울 미포만」과 경향적으로 유사하다. 이 중편의 주인공은 베트남에 진출한 한국 조선소의 과장 최건석이다. 비참전세대로서 베트남통인 건석은 한국인 관리직과 현지직원 내지 당국 사이에 일어나는 갈등의 조정자다. 그의 위치는 중립이다. 여전히 베트남에 대한 편견을 속깊이 지닌 관리직들에게 비판적이지만, 베트남전쟁에서 저지른 한국군의 역할로 말미암아 발생한 나쁜 유산을 젊은 세대의 한국인에게도 무의식적으로 적용하려는 베트남 참전세대의 시선에 대해서도, “내가 하지 않은 일에 대해서 나에게 말하지 마라”(79면)고 응답할 정도로 냉철하기 때문이다. 소설은 김부장과 보 반 러이의 싸움으로 본격 점화된다. 도이머이(Doi Moi, 쇄신)의 물결을 타고 다시 베트남으로 돌아온 한국군 출신 김부장과 불굴의 전사로 이제는 그 회사의 직원으로 생존하는 러이의 대결은 말하자면 신판 베트남전쟁이다. 갈등의 지점들이 생생한 소설의 초반은 팽팽하다. 그런데 최과장이 사직한 러이의 고향 자딘을 찾아가는 작은 여행을 통해 ‘박정희군대’의 학살이라는 참혹한 진실에 눈뜬 이후 오히려 긴장이 풀린다. 한국과 베트남 모두 전쟁의 희생자이니 과거를 털고 미래로 가자고 러이를 설득하는 건석의 발언(150~51면)은 주객이 전도(顚倒)되었다. 화해 또는 용서는 가해자 한국이 아니라 피해자 베트남이 주체다. 직접적 가해자가 아닌 건석에게 책임을 묻는 일이 무조건 허용되어서는 아니되겠지만, 그렇다고 건석이 러이에게 화해를 강제할 수는 없다. 왜 이같은 전도가 일어났을까? 주 동선과 중첩되는 보조 동선, 즉 노동운동 과정에서 죽은 D중공업 노동자 형 건찬이 지닌 이중성에 유의할 필요가 있다. 건석이 그토록 싫어하던 건찬은 참전군인 아버지와 베트남 여성 사이에서 태어난 아들이었으니, 형은 노동운동이자 베트남인민의 환유다. 그 형은 노동운동 과정에서 의문사했다. 건석이 아무리 형의 제삿날을 챙기며 추모의 정을 어쩌지 못해도 형과의 화해는 불가능하다. 죽은 자는 산 자를 용서할 수 없다. 누가 그 용서를 대신할 수도 없다. 형의 죽음으로 영원히 유보된 형과의 화해를 러이와의 화해로 보상하려는 감상(感傷)이 전도의 포인트일 것이다. 타자의 고통을 자기 안으로 들이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고통을 오히려 타자에게 전가하는 교환으로 말미암아 결국 베트남인민과의 화해는 미봉에 그치고 만다. 이 작품의 한계는 한・베수교(1992)의 문제점과도 연관된다. 한일 사이의 그 오랜 길항을 생각할 때 승자의 관용이란 수사로 미화되면서 베트남전쟁에 대한 한국의 책임문제가 제대로 따져지지 않았으니, 이는 한・베관계의 우애적 수립뿐만 아니라 양국 내부의 개혁을 위해서도 마이너스 유산으로 되었던 것이다.
「존재의 형식」은 「랍스터를 먹는 시간」보다 허구성이 적다. 대신 장소성은 두텁다. ‘레 러이 거리’에서 시작되는 점으로 보아 후자의 공간적 배경은 호찌밍시로 짐작되는데, 웬일인지 ‘꽝떠이성’ 또는 ‘꽝떠이’로 설정되었다. 그런데 꽝떠이(성)는 베트남에 없다. 에데족의 산악마을로 제시된 러이의 고향 ‘자딘’도 좀 이상하다. ‘자딘’은 사이공 내지 남베트남을 가리키기 때문이다. 이에 비해 「존재의 형식」은 처음부터 ‘사이공’(10면) 즉 호찌밍시를 노출하는데, 그중에서도 베트남전쟁에서 취재한 한국감독의 씨나리오를 베트남어로 번역하는 3인의 공동작업이 이루어지는 주인공 강재우의 거처를 생생히 접사(接寫)한다. 베트남말을 모르는, 아마도 조감독으로 짐작되는 이희은과 한국말을 모르는 베트남 해방영화사 감독 레지투이 사이에서 두 언어를 매개하는 강재우. 이 흥미로운 트로이카가 씨나리오 속의 한국말들 하나하나를 궁구하며 그에 딱맞는 단 하나의 베트남말을 찾아가는 토론과정 자체가 플로베르(G. Flaubert)의 ‘일물일어설’(mots justes)이 지닌 편집증과는 차원이 다른 문학적 구도(求道)로 되는 설정 자체가 상징적이다. 그 쌍방향의 통역과정은 한국어와 베트남어가 만나는 빛나는 점화인 동시에 한국과 베트남이 서로에 번지고 스미는 상호소통의 재생의식이다. 번역실로 변신한 재우의 사이공 거처는 적으로 대치했던 베트남이라는 낯선 공간을 아시아적 우애의 따듯한 삶의 장소로 다시 창조하는 신비로운 공작실로 떠오르는데, 어떤 영성(靈性)의 보관(寶冠)마저 두른 듯 ‘장소의 혼’(genius loci)이 눈부시게 작동한다.
「존재의 형식」도 「랍스터를 먹는 시간」처럼 베트남과 운동에 대한 이중의 화해를 추구한다. 베트남과의 화해가 주 동선이라면 한국의 혁명운동 문제는 보조 동선인데, 이 작품에서도 보조 동선이 말썽이다. 강재우는 후일담을 앓는다. 물론 레지투이도 더러더러 겪긴 하지만, 운동의 현장에서 이탈한 재우가 겪는 고통에는 비할 바가 없다. 과거로부터 간헐적으로 불어오는 바람의 근원에 지금은 갈라선 벗들—변호사로 변신한 문태, 여전히 현장을 지키는 창은, 그리고 베트남통으로 전신한 재우—이 존재한다. 이 운동의 트로이카 가운데 문태가 사이공에 출현하면서 숨은 상처가 노출되거니와, 창은에 대한 죄의식과 문태에 대한 노여움 사이에서 분열된 재우의 정신적 치유가 구성의 초점이다. 그 담당의사가 레지투이 곧 반 레6)다. 그는 작품 후반부를 지배한다. “친구가 친구를 이해해주지 않으면 누구와 더불어 세상을 살아갈 수 있겠나.”(66면) 전장에서 단련된 작은 지혜의 말씀에 쪼이면서 재우는 골프 치러 간 일행과 헤어져 홀로 구찌땅굴을 찾은 문태와 화해하고, 창은에 대한 속죄의식으로부터 놓여난다. 반 레 덕분에 번역의 트로이카는 물론이고 운동의 트로이카 역시 화해에 도달하는 이 작품의 마무리는 교양소설을 상기시킨다. 패배와 승리의 이분법을 여의고 ‘지금, 여기’라는 조건에 즉응한 새로운 마음가짐을 챙기는 이 작품, 아니 이 작품집 전체가 뒤늦은 성장서사임을 깨닫게 된다. 그런데 이 지점에서 문제가 발생한다. 반 레를 멘토로 삼는 일종의 컬트가 오히려 베트남에 대한 소설적 접근을 제한할 수 있다는 점이다. “내가 알고 싶었던 것은 처음부터 베트남이 아니고 여기, 지금의 우리였다”(330면)는 작가의 말처럼, 자기에 골몰하는 바람에 정작 주 동선인 베트남이 후경으로 물러선 것이다.7) 긍정과 부정의 양변을 여의는 비평적 태도야말로 베트남과 한국의 우애를 건설하기 위한 호혜적 태도의 핵이라는 점을 다시금 새기고 싶다.
『랍스터를 먹는 시간』에 이어서 유재현(劉在炫)의 연작소설집 『시하눅빌 스토리』(창비 2004)가 출간되었다. 작가의 경력이 흥미롭다. 운동권 출신으로 92년에 등단했지만 소련의 해체로 말미암은 방황으로 IT 일에 종사하다가 90년대 말 훌쩍 동남아시아로 떠나 인도차이나를 떠돈 끝에 99년 다시 작품을 쓸 요량으로 캄보디아를 찾았으니,8) 이번에는 캄보디아가 노동문학의 출구 역할을 맡은 셈이다. ‘베트남을 이해하려는 젊은 작가들의 모임’(1994)을 중심으로 뜸들이며 준비한 방현석과 달리 유재현은 외로운 유격대다. 방법도 사뭇 다르다. 방현석이 베트남을 둥지로 삼아 자기 문제의 해결을 궁리했다면, 유재현은 자기를 괄호친 채 캄보디아를 탐색한다. “노동소설에 자신이 없었지만 그렇다고 시간이 정지한 ‘후일담소설’에 갇히기는 더 싫었다”9)는 진술에서 짐작되듯이, 노동문학의 곤경 속에서 한국인이 한명도 등장하지 않는 기이한 소설집이 탄생한 것이다. 이런 소설을 한국문학으로 볼 수 있을지 의문이 제기된 것은 어쩌면 당연하다. 그러나 한국인이 한국어로 썼는데 한국인이 나오지 않는다고 한국소설이 아니라고 할 수는 없다. 그뿐만이 아니다. 시하눅빌이라는 창(窓)으로 내전 이후의 캄보디아를 골똘히 들여다보는 작가의 포즈를 상상하노라면, 이 소설집도 이중의 후일http://magazine.changbi.com/wp-admin/profile.php담임을 깨닫게 된다. 후일담을 앓는 한국작가가 역시 후일담을 앓는 캄보디아를 관찰하고 있기 때문이다.
앞의 세 연작 「솜산과 뚜이안」 「대마는 자란다」 「그래도 대마는 자란다」는 내전을 수습하고 가까스로 출범한 캄보디아왕국(1993)이 직면한 시장개방의 혼란에 함몰된 “시하눅빌의 비루한 일상”10)을 생생하게 묘파한다. 그 장소로 선택된 시하눅빌도 맞춤이다. 1964년 캄보디아 유일의 심항(deep-water port)으로 건설되어, 관광휴양지로 다시 개발되고 있는 캄보디아 제3의 도시, 시하눅빌은 매춘과 마약과 부패와 배신의 잔혹극, 아니 크메르루주 혁명군과 마약상의 호환(互換)마저 자유로운 포스트모던 잔혹극이 일상화한 지옥이다. 이 암흑소설을 읽어나가면서 나는 지옥이 혹 작가의 마음속에 있지 않은가 의심했다. 그런데 이 연작에 한국 상품들이 등장하는 점이 각별했다. “‘山頂娛樂城’이라는 붉은 글자를 새긴 한국산 승합차”(49면)와 “한국산 대림오토바이”(98면)가 작품 속을 달린다. 한국은 엄연히 존재한다, 사람이 아니라 상품으로. 사람보다 먼저 도착한 한국자본이 이 오지(?)를 질주한다는 점이 이 연작이 지닌 독창성의 징표라는 반어가 왠지 가엽다.
넷째 연작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에서 온 사나이」는 설정 자체가 재미있다. 북녘동포와 해후해서만은 아니다. 기층의 아귀다툼만 보다가 프놈펜의 정치가 개입하자 캄보디아가 좀더 환하게 보이기 때문이다. 전체적 시야가 결여된 미시서사는 답답하다. 프놈펜과 각별한 우의를 나눈 평양의 시각으로 시하눅빌을 바라보는 지점이 절묘한데, 그 축이 시하눅빌에서 ‘통일도장’을 운영하는 주인공 이욱조 상위(上尉)다. ‘조국통일전쟁’ 즉 6·25전쟁중 전사한 인민군‘영웅’의 손자로 공화국에 대한 충성이 남다른 그가 어찌하여 이곳에서 태권도 사범으로 소일하고 있는가? 원래 그는 “김일성 수령이 생전에 시하누크 왕의 안전을 위해 친히 보낸”(151면) 왕실 특수경호대 소속이다. “평화협정의 성사로 총선을 앞둔”(160면) 1993년, 프놈펜에 도착한 그는 수상의 경호원 팔목을 꺾는 사고로 견책성 휴가를 얻어 고향 함흥 비슷한 이 해안도시에 와서 어슬렁거리던 것이다. 더구나 왕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수상이 추진한 한국과의 수교(1996)는 개방 이후 캄보디아의 향방을 극명히 드러내거니와, 사실 이욱조의 묘한 휴가도 친사회주의적 시하누크 왕의 카리스마 쇠퇴를 반영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 근사한 구도에 비해 이후는 지지부진이다. 도장의 하나밖에 없는 캄보디아인 제자를 시범공연중 실수로 죽이고 익사를 암시하는 것으로 마감하는 서사의 진행은 허술하고 허망하다. 북조선이라는 온실에서 갑자기 꺼내져 독한 외기를 쏘이고 고사해가는 이욱조란 인물을 이렇게 낭비하다니, 너무나 아깝다.
다섯째 연작 「시하눅빌 러브 어페어」는 이 소설집을 대표하는 수작이다. 이 단편의 주인공은 7년 전 지뢰로 남편을 잃고 작은 과일가게로 생애하는 과부 찬나와 앙코르 주조공장 여공으로 뽑힌 딸 셍라이다. 구성의 초점은 박색이지만 똑똑한 셍라이와 미남이지만 단순한 모또택시 운전사 라차니가 결연(結緣)에 성공할 것인가다. 찬나가 이 결혼에 데릴사위라는 조건을 걸었기 때문이다. 혼사 장애는 오토바이 보관소 주인 다마라에 의해 해결된다. 천상의 처녀가 지상에 내려오는 모하상끄란의 날 아침, 다마라가 찬나에게 재혼을 권한 것이다. “험한 세월이 언제 끝날지 알 수 없는 일”이지만 “남은 사람들끼리 서로 기대고 어려운 세상 헤쳐나”(229면)가자는 농부 마카라의 나직한 청혼에 찬나도 부처님의 뜻으로 수긍하니, 모녀가 한날한시에 결혼식을 올리는 희한한 일이 “시하눅빌 사람들 모두의 잔치인 양”(231면) 치러지던 것이다. 장모가 깐뗑(캄보디아 전통 나무집) 하나 장만해주지 않는다고 입이 부은 라차니가 술에 취해 떨어지고 “웬수도 이런 웬수가 없었다”(232면)고 여기며 셍라이가 긴 첫날밤을 꼬박 새우는 마무리의 작은 소란이 더 이쁘다. 이 따듯한 단편은 비천 속에서도 고귀한 시하눅빌의 민중에게 바치는 최고의 헌사이거니와, 한국과 캄보디아 사이에 건축된 최초의 문학적 교량으로 손색이 없다.
전성태(全成太)의 『늑대』(창비 2009)는 총 10편 가운데 6편이 몽골에서 취재한 몽골단편집이다. “2005년 가을부터 이듬해 봄까지 반년을 몽골에서 지낸 인연”에서 태어난 이 작품집은 “사회주의에서 시장경제로 이행한 몽골사회”를 “우리 사회를 되비춰주는 거울”(‘작가의 말’)로 의식하는 점에서 (문학)운동의 곤경으로부터 인도차이나를 사유한 방현석·유재현과 유사하다. 등단(1994) 이후 줄곧 농민문학/농촌문학을 천착해온 토착파가 멀리 몽골로 이동한 것을 보면 “상복을 못 벗은 상주처럼”11) 서성였던 그때 작가의 모습이 얼핏 감지된다. 농민문학의 출구로 몽골을 집중적으로 사유한 『늑대』 이전, 예비적 시도들이 있었다. 「국경을 넘는 일」(2004, 국경을 넘는 일)은 첫 실험이다. 캄보디아에서 태국으로 넘어가는 여행에 동행한 박이 일본여성 나오꼬와 벌이는 짧은 정사를 중심으로 분단에 동정하는 동독 출신 일본유학생 얀과 한일관계에 관심을 가진 일본 대학생 구로다 등과의 지루한 대화를 짜깁기한 이 단편은 관념을 다루는 데 미숙해서 준비적 의의만 두드러진 편이다. 『늑대』에 실린 「강을 건너는 사람들」(2005)은 그 후속으로 탈북의 순간을 파착(把捉)했다. 이 단편의 문제는 “중국교포”(184면)라는 말에 집약된다. ‘교(僑)’는 임시거처다. 타향/타국에 사는 뜨내기를 가리키는 ‘교포’란 말을 이제는 자제해야 하는데, 엄연히 중국인인 조선족에게는 특히 그렇다. ‘교포 사내’란 말이 무수히 나오는 이 단편은 바로 이 때문에 추상으로 멀어진다. 월경을 과잉 의식한 탓이다. 뜻이 세지면 소리가 죽는다는 판소리의 금언은 역시 명언이다.
이에 비해 몽골 계열은 환골탈태다. 무엇보다 “남과 북의 점이지대(漸移地帶)로서 몽골을 포착”12)한 점이 돋보인다. 그 중요한 장소가 「목란식당」과 「남방식물」의 배경인 울란바토르의 ‘목란식당’이다. “평양에서 젊은 부부가 직접 나와 관리”(75면)하는 이 식당은 “이년전에 개업”(18면)했다. 소련에 이어 두번째로 그 지원에 힘입어 사회주의국가가 된 몽골인민공화국(1924)은 일찍이 북조선과 수교(1948)했다. 그런데 1990년 구 공산권 국가 중 제일 먼저 한국과 수교하더니 2년 뒤 시장경제체제로 전환했다. 북이 빠져나간 자리에 남이 밀고 들어왔다. ‘목란식당’은 철수했던 북의 복귀이지만 그것은 승리적이 아니라 후퇴적이다. 한국 여행객과 교민이 주 고객인 이 식당에서 발생하는 크고작은 분란을 생생하게 그려낸 「목란식당」과 「남방식물」은 상시적 남북접촉의 실험실로서 점이지대에 주목한 첫 성과다. 다만 식당 이야기를 싸고도는 겉이야기가 좀 장황하고 때로 부자연스럽다. 가령 10여년 전 민간특사로 북에 다녀온 뒤 자신의 실수로 북의 관계자들이 징계를 받은 데 충격을 받아 화업(畵業)도 그만둔 채 울란바토르에서 살아가는 「목란식당」의 삼촌은 대표적인데, 식당을 “분단장사”(18면, 76면)라고 거듭 강조하는 것도 ‘목란식당’의 복합적 생태와 썩 어울리지 않는 것이다.
「두번째 왈츠」 또한 점이지대 몽골의 특성을 잘 보여준다. 이 단편의 배경은 울란바토르가 아니라 소련군이 개발한 북부도시 볼강이다. “그들이 떠난 1980년대 중후반의 시간 속에 머물러 있는” 듯한 “작고 낡은 잿빛 도시”(142면) 볼강에서 한국 소설가 ‘나’가 방송국의 부탁으로 ‘북한 할머니’를 찾아가는 과정에서 조・몽관계의 숨은 보석이 드러난다. 1952년 북의 전쟁고아 197명을 돌봐준 몽골정부의 호의로 울란바토르에서 자란 그녀는 1959년 귀국했다. 1985년 40대의 미망인 약사로 다시 몽골을 찾은 그녀는 북부 탄광도시 에르데네트에 배속되어 북의 광산노동자들을 돌본다. 1992년 몽골의 체제변화로 북의 인력이 철수했지만,(132~33면) 그녀는 초원의 목자와 사랑에 빠져 몽골에 잔류한다. 이 삽화와 함께 드러난 몽골문학의 상황도 흥미롭다. 민족을 부정한 친소 인민문학이 지배하던 사회주의독재 시절, 사막의 유형지에서 자유와 조국을 노래한 저항시인의 존재를 알린 삽화도 흥미롭거니와,(136면) “들려주는 시가 아니라 읽히는 시”(135면)를 주장하는 ‘Blue Sky’야말로 새 세대를 대표한다. 몽골에도 드디어 모더니즘이 상륙한 것이다. ‘나’는 어떤가? “나는 조국이라는 말에 일종의 후진성을 느꼈고, 그것을 훼손해보고 싶은 욕망에서 자유롭지 못했다.”(140면) 이 어정쩡한 포즈 속에서 당대 몽골뿐만 아니라 점이지대 몽골의 고갱이가 정채(精彩)있게 파악되지 못한 게 아깝다.
이 소설집 최고의 단편은 「중국산 폭죽」과 「늑대」다. 개방 이후 도시에 넘쳐나는 부랑아들을 한국인 목사의 눈으로 파악해간 전자는 목사와 부랑아 사이, 그리고 부랑아 내부의 갈등을 다루는 솜씨가 자위가 돌듯 적실한데, 특히 인민궁전 광장에 새까맣게 모여든 아이들이 제야의 종이 울리자 일제히, 죽은 아이들의 영혼을 위무하는 폭죽을 쏘아올리는 결말이 감동적이다. 경찰차들이 달려오자, “아이들은 불꽃이 솟구치는 중심을 향해 더욱 단단하게 모여들었다”(177면)는 마지막 문장은 얼마나 절묘한가. 이 아이들이야말로 몽골의 미래다. 「중국산 폭죽」이 시장의 산문에 저항하는 도시의 시라면, 「늑대」는 초원의 시다. 야생의 자유에 바치는 낭만적 송가가 아니라, 시장의 진군 속에서 파괴되는 자유를 애도하는 조시(弔詩)다. 그 중심에 길들여지지 않은 초원의 악령 검은 늑대가 준동한다. 악령은 악령을 부른다. 이 수컷 늑대에 매혹된 한국인 사업가, “성스런 하늘과 대지와 신들”(39면)에 맞서는 이 늙은 사냥꾼은 자본의 악령이다. 자본의 악령이 초원의 악령을 추적하는 헌팅파티, 그믐밤의 사냥잔치가 이야기의 핵이다. “그믐에 죽음을 당한 영혼은 어둠속을 영원히 헤매”(42면)기 때문에, 그믐 살생은 초원의 금기다. 초원에 유전되는 이 오랜 금기를 파괴하는 자본의 헌팅파티에 사원도, 촌장 하산도, 촌장의 딸 치무게도, 카자흐 목자 카사르도, 운전사 바이락도, 사육사 촐롱도, 그리고 벙어리 처녀 허와도 조력자다. 그리하여 검은 늑대의 저주는 질투에 눈먼 늙은 사냥꾼이 사랑하는 허와를 살해하는 광기로 종결된다. 작가는 악을 악으로 단순화하지 않았다. “초원을 가로지르는 아스팔트 포장길” “그 검은 혓바닥”(38면)을 따라 들어온 자본의 악령에 초원이 이미 매혹되었기 때문이다. 또한 이 저주받은 매혹을 몽골 초원의 시로 들어올린 이 단편의 성과가 새로운 형식실험으로 통해 이루어졌다는 점이야말로 귀중하다. 이 단편은 균일하지 않은 여섯 부분의 1인칭 독백으로 구성된다. 촌장, 사원의 승려, 사냥꾼, 카자흐 목자, 벙어리 애인, 각각의 1인칭 서사들에 이어, 늑대와 치무게와 허와와 사냥꾼의 짧은 1인칭 독백과 상황을 맺는 3인칭 마무리, 이 정교한 배치로 이 눈부신 초원의 시는 완결된다. 복수(複數)의 ‘나’에도 불구하고 문체가 단일한 게 흠이지만, 문학적 월경에 상응하는 형식적 모험으로서 단연 돋보인다. 자기가 과잉한 방현석과 자기가 생략된 유재현과 달리, 자기와 대상 사이에 시적 균형을 취한 전성태의 「늑대」는 최고의 성과다.
김연수(金衍洙) 소설집 『나는 유령작가입니다』(창비 2005)는 가장 큰 월경의 폭을 보여준다. 공간적으로는 영국(「그건 새였을까, 네즈미」)·중국(「뿌넝숴」 「이등박문을, 쏘지 못하다」) 미국/일본(「거짓된 마음의 역사」)·파키스탄(「다시 한달을 가서 설산을 넘으면」), 시간적으로도 조선후기(「남원고사에 관한 세 개의 이야기와 한 개의 주석」)·1888년(「거짓된 마음의 역사」)·일제시대(「연애인 것을 깨닫자마자」)·6·25전쟁기(「이렇게 한낮 속에 서 있다」) 등, 가히 동서고금을 종횡한다. 그럼에도 축이 없는 것이 아니다. 「그건 새였을까, 네즈미」는 런던이 배경이되 작중화자는 일본인이고, 「거짓된 마음의 역사」의 주인공은 조선에 온 미국인이니 초점은 결국 한국을 비롯한 아시아로 모아지는 것이다. 방현석·유재현·전성태가 사실주의 모델에 의거, 베트남과 캄보디아와 몽골을 골독히 사유했다면, 김연수는 가비얍게 미국과 영국, 중국과 일본 등 대국의 세계를 넘나든다. 그런데 김연수의 이국적 공간과 이질적 시간은 실존의 조건이라기보다는 “세계를 재구성하려는”13) 즉 자명한 것들을 낯설게 하는 도구적 장치에 가깝다. 근대문학이 추구하는 합의적 단일성의 진실을 균열하는 복수의 이본(異本) 또는 대체역사들을 상상하는 서사전략은 이 작품집의 키워드 ‘유령작가’에 집약된다. 유령이 된 작가란 근대적 작가의 죽음과 연계될진대, 이 소설집은 리얼리즘으로부터의 자유를 모색하는 김연수의 (포스트)모더니즘 메타소설집으로 되는 것이다.
모더니스트의 (동)아시아는 어떤 모양인지, 아시아인 또는 아시아를 배경으로 한 몇작품을 점검해보자. 런던을 배경으로 어린 일본인 유학생과 동거하는 30대 중반의 한국인 유학생 언니와 남편을 잃고 언니에게 잠간 다니러 온 동생, 이 자매 이야기를 바로 그 일본인 ‘나’의 눈으로 들려주는 「그건 새였을까, 네즈미」는 매우 현학적이다. 한국인과 일본인이 만날 때 발생되곤 하는 역사의 습기가 깨끗이 제거된 이 소설은 작가가 고안한 가상공간 속의 급진적 실험인바, 런던은 국적세탁소다. 이러한 지적 조작은 실제 역사를 다룬 「뿌넝숴(不能說)」에서는 어떻게 나타날까? 이 단편은 옌지(延吉) 인민로 중국은행 앞에서 10년째 점 보는 일로 생애하는 노인 ‘나’가 한국인 소설가에게 무용담을 들려주는 형식을 취하고 있다. 그는 내전이 끝나자 다시 ‘조선전쟁’에 투입된 40군의 전사였다. 지평리전투에서 부상당한 그를 구원한 조선인 여성구호원과의 절망적 연애 뒤 자신만 살아 포로로 잡혔다는 이야기를 장황히 늘어놓으며, “인간의 몸에 기록”(70면)된 역사만이 진실임을 강조한다. 작가는 노전사의 입을 빌어 거대서사를 단칼에 베어내지만, 이 노인의 이야기도 거짓말일 공산이 크매, 거대든 미시든 모든 역사는 농담임을 선언한 셈이다. 그러나 이 단편의 지적 공작은 「그건 새였을까, 네즈미」만큼 성공적이지 못하다. 변형이 과도하기 때문이다. 이 노인의 모델은 옌뼨(延邊) 조선족이어야 아귀가 맞을 터인데, 끝내 한족의 가면을 벗지 않는다. 내전에 동원된 조선족이 다시 ‘조선전쟁’에 투입된 이야기, 특히 그중에서도 귀환포로에 대한 사회적 따돌림 이야기는 옌뼨의 역사 가운데서도 가장 예민한 트라우마의 하나다. 개방 이후 적과 동지가 혼동된 현실 앞에서 노인이 느꼈을 법한 당혹을 빙자하여 이런 식의 농담공정을 수행하는 일은 옌뼨에 대한 예의가 아닐뿐더러 포스트모던에 대해서도 반칙이다. 이에 비하면 보스턴 출신의 탐정 스티븐슨이 남부인 브룩스의 의뢰를 받아 조선으로 사라진 약혼녀 닷지를 찾아나서는 탐색담 「거짓된 마음의 역사」는 19세기 말 태평양 양안의 풍경을 배경으로 날짜변경선의 비밀을 예리하게 포착한 수작이다. 수신인을 브룩스로 하는 총 7통의 편지로 구성한 것도 그렇지만, 여섯번째 편지만 발신인을 바꿔 반전을 준비하는 솜씨도 노련하다. 쌘프란씨스코에서 출발, 요꼬하마·나가사끼·제물포를 거쳐 서울로 오는 스티븐슨의 여정 따라 배치된 편지들은 그대로 동아시아를 바라보는 평균적 미국인의 시각을 생생히 보여준다. “남부를 재건했듯이” 세계의 변방들을 아우르는 “위대한 미합중국의 시대를 만들어갈 것”(87면)을 믿어 의심치 않는 양키 제국주의자 스티븐슨은 당연히 중국을 경멸하고 일본을 깔보고 조선을 모멸한다. 그러나 의뢰인의 약혼녀와 결혼한 후 서울에 눌러앉은, 스티븐슨의 농담 같은 깜짝 전환으로 소설은 끝난다. 작가는 그의 변신담을 통해 “이 세계는 상상하는 대로 구성”(103면)된다는 포스트모던을 다시 확인하거니와, “누구도 온전한 존재로 날짜변경선을 넘어올 수는 없는 게 아닌가”(103면) 하는 여운을 남기던 것이다. 그럼에도 이 묘한 말은 스티븐슨의 서울 정착이 미 제국주의의 무의식적 완성일 수 있다는 반어를 품고 있지는 못한 듯싶다.
산악원정대에서 취재한 「다시 한달을 가서 설산을 넘으면」은 복잡한 속내를 드러내는 정교한 작품이다.14) ‘88올림픽’과 변혁운동의 길항적 관계를 머나먼 설산에서 80년대 학생운동의 부재자라는 자의식에 지핀 소설가 ‘나’의 시각으로 곰곰이 반추하는 이 단편은 김연수 글쓰기의 원점, 그 포스트모던의 기원을 잘 보여주는데, 그 종점이 하얼삔을 무대로 한 「이등박문을, 쏘지 못하다」다. 41살의 노총각 동생에게 조선족 신부를 얻어주려는 성재의 우울한 북국 기행을 보여주는 이 소설 역시 심란하기 짝이 없다. 안중근의 영웅서사를 우연으로 상대화하려는 그의 충동이란 기실 거대서사에 대한 의문이다. 인민에게 비루한 삶밖에 허락하지 않는 그 빛나는 혁명들은 도대체 다 뭣하는 물건이란 말인가? 중국은 「뿌넝숴」에서처럼 역사와 운동에 대한 이러한 회의를 정당화하는 보편공간으로 차용되었을 뿐이니, 밤하늘을 배경으로 “성재의 등 뒤로 거대한 물음표처럼 성쏘피아교당 둥근 지붕이 서 있었다”(202면)는 마지막 문장은 통렬하다. 그 통렬함은 김연수의 실험이 이제 세계의 변화 가능성에 대한 예정된 절망이라는 막다른 골목에 안착했음을 고지하는 상징이기도 하다. 『나는 유령작가입니다』는 리얼리스트뿐만 아니라 모더니스트에게도 동아시아가 출구였음을 잘 보여준다. 그의 실험은 ‘나’의 구원에 집중한다는 점에서는 방현석과 닮았다. 물론 꼭 부정적인 것만 아니다. 그들의 개척적 실험 덕에 다른 모색을 시도해볼 만한 비빌 언덕이 이만큼 돋워졌기 때문이다.
3. 동아시아문학의 뜻
유중하(柳中夏)에 의하면 ‘동아시아문학’이란 용어가 한국에서 처음 쓰인 예는 『전환기의 동아시아 문학』(임형택・최원식 엮음, 창작과비평사 1985)이다. 한·중·일 3국문학의 근대적 전환과정을 다룬 이 책은 우선 3국문학을 하나로 묶어서 보려고 했다는 점이 눈에 띄는데, 그러자니 자연히 ‘동아시아문학’이란 용어가 발명된 것이다. 최초의 동아시아문학론으로 될 임형택(林熒澤)의 ‘머리말’을 일별하자. 그는 먼저 “역사상 장구히 한자문화를 공유한 하나의 세계”(3면)였던 동아시아가 현재는 “통일적으로 의식되지 않을 뿐 아니라” 낯선 공간으로까지 멀어졌다는 점에 착목한다. 이처럼 중국은 “가장 멀고도 으스스한 곳”으로, 일본은 “민중의 무한한 반감을 일으키는” 나라로 표상되는 동아시아의 부자연스러운 분열을 극복할 길은 어디에 있는가? “한반도의 분계선상에 쳐진 철조망”, 이 매듭을 푸는 것이 관건이다. 이 임무를 제대로 수행하기 위한, “동아시아 세계에 대한 주체적 인식과 유기적 이해”를 위한 수로안내의 일환으로 이 책을 펴냈다는 주지가 선명하다. 1993년 『창작과비평』 봄호 특집(졸고 「탈냉전시대와 동아시아적 시각의 모색」)을 계기로 본격화한 동아시아론의 예고인 셈인데, 동아시아문학론은 동아시아론과 동전의 양면인 것이다. 또하나 이 서문에서 유의할 대목은 “중국문학과 일본문학을 보다 주체적으로 밀도 높게 다루지 못한 점”(4면)에 대한 반성이다. “서구문학의 언저리는 열심히 맴돌면서 조상 대대로 축적해온 지적 전통을 내팽개친” 탓에 수준 높은 우리 중국(문)학의 학적 수준이 근대 이후 줄곧 추락한 사정을 질타하며, 중국뿐 아니라 일본(문)학에 대한 “과학적·체계적 인식”의 제고를 제기한 이 글은 새로운 동아시아의 출현을 위한 동아시아 학지(學知)의 실천적 축적을 촉구한 선구적 문자다.
다음은 졸고 「동아시아문학론의 당면과제」(1994). “각기 따로따로 고찰되어왔던 한·중·일 세 나라의 문학을 함께 묶어서 생각하자는 것”15)이 동아시아문학론의 출발임을 더욱 분명히 한 이 글은 남/북한 문학과 중국/대만 문학을 분별함으로써 “겉으로는 세 나라지만 실제로는 다섯 나라의 문학으로 구성”되는 동아시아 내부의 복합성에 주목하였다. 자본주의와 사회주의라는 체제가 대칭적으로 또는 비대칭적으로 교차하는 한반도와 양안(兩岸)도 그렇지만, 탈아(脫亞)의 길을 걸어온 일본과 그 침략의 대상으로 된 나머지 나라들을 하나로 볼 수 있을까? 이 예상 질문에 대해서 “현존 사회주의”가 “근대의 극복이 아니라, 기실은 사회주의의 이름을 빌린 근대성의 다른 표현”이라는 점에서, 그리고 일본 또한 “메이지유신 이후 일본사회의 비원(悲願)이 일본의 독립”(418면)이라는 점에서, 셋이면서 다섯인 한·중·일 문학을 하나로 묶어서 보는 훈련을 본격적으로 실천하자는 게 주지다. 그럼에도 자칫 “새로운 지역패권주의로 나아갈”지도 모를 동아시아주의는 경계하며, 이 “지역에서 미국과 러시아가 차지하고 있는 엄연한 현실성”을 감안하여 동아시아를 신축적으로 상정하자고 제안한다. 여전히 동남아시아를 간과한 것은 한계다. 방법론도 언급된다. ‘맹목적 근대추종’에 근거한 제국주의적 비교문학론과 ‘낭만적 근대부정’에 대응하는 내재적 발전론을 가로지르는 제3의 선택으로서 동아시아문학론을 위치지우는 태도를 볼진대, 당시 동아시아문학론이 비평적이라기보다는 문학사적 접근에 가까움을 보여준다. 물론 현재로 연접된다. 동아시아문학론이라는 시좌(視座)가 길게는 “이 지역에 근본적 평화”(419면)를 구축하는 데 기여할 것을 숨기지 않거니와, 구경(究竟)에는 서도(西道)의 황혼을 넘어설 문명적 대안으로서 세계사/세계문학에 당당히 참여할 것을 꿈꾸기 때문이다.
유중하의 「세계문학, 민족문학 그리고 동아시아문학」(『황해문화』 2000년 여름호)은 동아시아문학이라는 고리를 세계문학/민족문학의 매개항으로서 적극적으로 사유한 글이다. 다시 말하면 분단체제론과 동아시아론의 접합을 시도한바, 출발은 중국과 한국의 문학적 변화다. “리얼리즘 독존론(獨尊論)에 대한 비판”(47면)과 함께 독자적 시대구분을 폐기하고 ‘20세기 중국문학’이란 키워드로 ‘문학사 다시 쓰기’가 실험되는(46면) 개방 이후 중국의 문학계와, “민족문학(론)이 종래 구축해온 진영의 ‘내파’”(49면)를 바탕으로 한 새로운 문학구도를 모색하는 탈냉전시대의 한국문단에서 발현되는 동시성에 주목한 것이다. 체제를 달리하는 한·중 문학을 아울러 볼 논거를 발견한 그는 이어 남북관계의 해빙과 대만 민진당(民進黨)의 승리라는 극적인 변화에 힘입어, 분단체제와 양안체제를 “하나로 꿰어 볼 줄 아는 시좌”(53면)의 확보라는 새로운 접근구도를 제안하기에 이른다. 남/북한 문학과 중국/대만 문학이라는 변별을 한걸음 전진시킨 그의 논의는 두 체제를 연관적으로 파악함으로써 동아시아에 드리운 냉전체제의 종식을 꿈꾼바, 그를 위한 문학적 실천으로서 “세계문학·동아시아문학·민족문학이라는 삼중의 겹으로” 된 “설계도”(55면)의 구축을 요구한다. 백영서(白永瑞)의 「중국에 ‘아시아’가 있는가」(1999, 동아시아의 귀환, 창작과비평사 2000)라는 물음에도 고무된 유중하의 토론은, 한・중에만 집중한 한계에도 불구하고, 한반도를 축으로 한 동아시아문학론이 풀어야 할 양안이라는 새로운 축을 환기한 것만으로도 소중하다.
백낙청(白樂晴)은 「세계화와 문학」(2010)에서 세계문학과 국민/민족문학 담론을 바탕으로 지역문학으로서의 동아시아문학이란 화두를 던진다. “‘문학의 세계공화국’의 불평등구조에 저항하는 데 남다른 위력을 발휘할 수 있기 때문”이라는 판단에 근거하여, “지난날의 유교문명권 내지 한자문명권 유산의 상속자인 중국과 일본, 한반도, 베트남 등의 국민/민족문학들”을 지역문학의 기본구성으로 삼는다.16) 지금으로서는 지극히 현실적이다. 불평등구조 속에서도 한·중·일 문학이 그나마 조금 나은 대접을 받기도 하려니와, 지역문학운동을 지지할 물적 토대를 갖춘 곳이기에, 지역문학이 성숙해갈 상당한 기간 동안 이 기본구성이 축 노릇을 감당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만큼 “동아시아는 유럽 지역문학이나 영어권 지역문학에 비해 훨씬 뒤떨어”졌는데, “북조선의 고립과 궁핍”으로 대표되는 내부의 격차도 심각하다. 따라서 안으로는 “여러 차원에서 동아시아연대를 적극 추진함으로써 격차를 극소화하려는 노력을 진행”(106면)하면서, “유럽중심적인 ‘세계공화국’”을 넘어서 “다극화된 ‘연방공화국’”의 한 축으로서 동아시아 지역문학의 건설에 나서야 한다는 것이 골자다(107면).
고문(古文)을 매개로 한 동아시아 공동 문어문학이 해체된 이후 뿔뿔이 갈라선 동아시아 각국 근현대문학을 하나로 묶어보려는 데서 출발한 동아시아문학론은 이제 지역문학이라는 목표를 뚜렷이 의식하는 단계에 도착했다. 토대는 갖춘 셈이다. 동아시아는 이제 지역의 생활세계 깊숙이 교착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이 목표는 그 당위성과 시급성에 비할 때, 아직은 선언적이다. 무엇이 요구되는가? 문화가 생활이라면 문학은 그를 들어올린 의식이자 운동이다. 생활세계와 운동의 분리 또는 대중과 지식인의 분절을 넘어서는 것이 요체다. 문화와 문학의 의식적 접합이 목숨을 건 도약처럼 요구되는데, 동아시아에 대한 우리의 무딘 감각을 깨우는 일이 선차적이다. 소로우(H. D. Thoreau)가 종요로이 여기는 “무의식적 생활의 아름다움”17)이야말로 모든 상부구조의 내발적 종자(種子)이거니와, 예컨대 한국인이, 중국인이, 그리고 일본인이 나라의 국민인 동시에 동아시아의 시민이라는 공감각을 지니게 될 때, 동아시아문학은 “꾀꼬리 목청이 제철에 트이듯”18) 오롯이 출현할 터이기 때문이다. 이 점에서 마음에 아시아가 부재하는, ‘서구’가 고황(膏肓)에 든 지식인/문인사회의 큰 회향이 무엇보다 먼저 요구된다. 동아시아문학은 ‘세계문학’이란 구체제를 해체하되 아시아의 눈으로 그를 재조정하여 감싸안는 공생의 전략이기 때문이다.
동학(東學)과 서학(西學)의 새로운 만남 위에 구축될 동아시아문학의 도래를 촉진하기 위한 공동작업에서 다자협력을 조정하는 아세안의 역할을 놀아야 할 한국작가들의 책임이 무겁다. 사실 사대교린(事大交隣)의 시대에도 중국과 일본에 대한 조선의 학지(學知)/문학은 만만치 않았다. 예컨대 일본학의 선구인 『해동제국기(海東諸國記)』나, 중국을 사유한 최고의 문자인 『열하일기(熱河日記)』를 상기하라. 국가이성적 접촉의 건조한 기록으로 되기 쉬운 연행록(燕行錄)과 해사록(海槎錄) 형태의 사행(使行)문학, 이 좁은 틈에서 저 대문학이 출현했다는 것 자체가 놀라운 일이다. 그런데 탈중화(脫中華)와 중첩된 일제의 동아시아 침략으로 말미암은 상호부정의 교환 속에서 근대 이후 중국과 일본에 대한 한국의 학지와 감각은 오히려 빈약해졌다. 일본 유학생이 그렇게 많았어도 일본을 제대로 다룬 작품은 드물기 짝이 없고, 중국문화에 익은 지식인들의 그토록 접종(接踵)한 망명에도 불구하고 중국을 배경으로 한 작품조차 영성(零星)하다.19) 남한이 고도(孤島)로 외떨어진 냉전시대를 거치며 더욱 악화된 아시아 망각을 염두에 둘 때, 탈냉전의 물결 속에서 2000년대 한국문학이 이만한 문학적 월경을 성취한 것은 작은 기적이라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
그만큼 민족민중문학으로부터 파생된 문학의 위기가 절박했다는 것이다. 위기는 한국문학의 탈경계화를 촉진했다. 말하자면 동아시아는 한국문학의 비상구였던 것이다. 위기가 기회가 된 셈인데, 이를 바탕으로 새로운 이정표를 의식할 필요가 있다. 우선 중국과 일본을 다룬 작품이 매우 드물다는 점이다. 중・일은 한눈에 꿰기가 어려운 탓이겠지만, 이 세계사적 국가들에 대한 문학적 파악은 관건적이다. 한반도의 21세기를 가를 운명에 연계된 점뿐만 아니라 이 두 나라를 탐색하는 작업 자체가 우리 안의 아시아를 깨우는 기쁜 여행이기 때문이다. 또한 동남아시아는 ‘동아시아’에 걸맞기 위해서도 더 큰 배려가 주어져야 마땅하다. 다자협력의 선생이라는 실용성만이 아니라 동북아시아를 상대화할 다른 원천들을 풍요롭게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인도/유럽과 깊이 연관된 동남아시아는 중국/미국에 치우친 동북아시아와 흥미로운 짝을 이룬다. 동남아시아와 동북아시아를 거울로 세울 때, 양자 사이를 매개하는 대만이나 오끼나와(冲繩) 같은 부분국가 또는 독특한 지방의 의의가 동아시아 전체의 문맥 속에서 한층 선명히 살아나는 잇점도 잊을 수 없다. 끝으로 미학문제에 대한 소홀을 반성하고 싶다. 동아시아를 새로운 문학적 의미로 재창안하기 위해서 그 공감각을 구현할 새로운 형식실험이 종요롭다. 전성태의 「늑대」 같은 시도가 더욱 활성화하여 동아시아 미학으로 구축된다면 금상첨화다.
마침, 일찍이 포스트모던의 습격을 겪은 일본문학은 물론이고, 개방의 충격 속에 혼동된 중국문학도 임비곰비로 위기를 앓았던 조건도 동아시아문학에 전화위복으로 되었다. 한·중·일 세 나라 문인들의 만남이 시작되는 것과 문학의 위기가 중첩된 점이 드러내듯, 서구문학 해바라기 속에서 엷은 피로에 싸인 한·중·일 각 국민문학의 상태가 오히려 탈경계의 대화를 촉진하는 기회를 제공한 셈이다. 독자들의 자국문학 편식에 포만한 채 좀체 바깥, 특히 이웃 아시아를 보지 않은 일본도 그렇지만, 이러한 ‘갈라파고스 증후군’에 갇혀 있기로는 중국과 한국도 못지않기에, 동아시아문학이라는 다자협력의 장들이 열린 일 자체가 징후적이다. 쌍무적이 아니라 다자간 관계로 나아간다는 것은 무엇을 가리키는가? 그것은 무엇보다 먼저 동아시아라는 지역을 하나의 문학적 장소로 설정한다는 뜻이다. 갈라파고스 현상을 넘어서 동아시아를 사유한다는 것은 운동한다는 것, 곧 세계사적 대안의 가능성으로서 다른 동아시아의 도래를 위해 따로 또 같이 나아감을 지칭할 터이다.
2011년은 튀니지의 재스민혁명(1월)으로 촉발된 ‘아랍의 봄’으로 열려 후꾸시마(3월)를 거쳐 제국의 심장에서 벌어진 축제 같은 월가 점령시위로 들레는 ‘미국의 가을’로 마감중이다. 청년층의 불안과 분노를 불씨로 한 전지구적 반란의 확산으로 바야흐로 세계는 대전환의 초기단계에 들어선 듯, 후천개벽의 예후가 날카롭다. 동아시아의 책임이 가볍지 않다. 낡은 ‘세계문학’을 갱신할 분권의 창조적 장소로 호명될 동아시아문학 건설의 뜻을 새기자. 뜻을 세우는 것이 지루한 성공으로 가는 지름길이다. 동아시아작가들, 특히 한국작가들의 높은 자각이 그 어느때보다도 절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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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그렇다고 중국에 문제가 없다는 것은 물론 아니다. 정치적 과두제와 사회적 양극화 같은 현안을 보전(補塡)한 경제성장도 경착륙의 위험을 안고 있다는 예측이 중국 안에서도 나오는 실정이기 때문이다.
2) 러시아의 동아시아 복귀를 전통적인 방아론(防俄論)의 입장에서만 볼 필요는 없다. 최근 러시아가 주도하는 가스관과 철도 사업 논의에서 보듯이 남북을 잇는 러시아의 역할은 종요롭다. 애초 소련의 기술과 자본으로 이룩된 북의 중공업시설을 다시 움직일 수 있는 열쇠를 쥐고 있는 점, 미국·중국·일본과 달리 한반도의 통일로 이득을 볼 수 있는 나라라는 점, 그리고 러시아의 중재 없이 북핵문제의 해결 또한 어렵다는 점을 상기시키면서 ‘신북방시대’의 도래에 대비하기 위한 한국의 러시아 공부를 강조한 박종수(쌍뜨뻬쩨르부르그대학)의 충고는 경청에 값하는 것이다. 한겨레 2011.10.12.
3) 한·중·일 세 나라 문인들이 대산문화재단 주도로 서울에서 첫 모임을 가진 게 2008년이다. 2년마다 나라를 달리해 열기로 한 포럼은 2010년 2회 대회가 나라들 사이의 분쟁에도 불구하고 일본의 키따큐우슈우시(北九州市)에서 개최됨으로써 고비를 넘겼고 내년 중국에서 3회를 맞이하면 더욱 안정될 것으로 기대된다.
4) 이 말의 창안자는 고(故) 오다 마꼬또(小田實)다. 그는 이를 슬로건으로 내세운 잡지 『식견교류』(2002. 6)를 낸바, 안타깝게도 창간호가 종간호가 되고 말았다.
5) 탈북자를 비롯한 분단과 관련한 주제를 다룬 소설들, 한국 안의 이주노동자를 다룬 소설들, 한국/조선 디아스포라 문제를 다룬 소설들, 그리고 황석영의 『심청』(문학동네 2003)이나 김인숙의 『소현』(자음과모음 2010) 같은 역사소설들 또한 제외한다. 이 주제들은 하나하나가 독립적이고 종합적인 조명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6) 1949년 북베트남 닌빈성에서 태어난 반 레는 1966년 고등학교 졸업 후 17세의 나이로 자원입대, 1975년 전쟁이 끝날 때까지 전사로 싸웠다. 전후 시인, 소설가, 영화감독으로 활동한 베트남 최고의 작가다. 본명은 레 찌 투이인데, 시인의 꿈을 품고 전사한 동지의 이름 반 레를 필명으로 삼았다. 2003년 방한한 바 있다.
7) 가령 이 작품의 무대인 사이공의 특성이 거의 드러나지 않은 점도 그렇다. 통일 후 호찌밍시로 바뀐 사이공에 어떤 변화가 있었는지 혹 곤경은 없는지 등등, 북베트남에 의한 무력통일이 초래할 수 있는 문제점을 소설적으로 파악한다면, 한반도문제를 해결하는 데 훌륭한 타산지석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8) 서울신문 2004.6.4.
9) 같은 글.
10) 같은 글.
11) 전성태 「연이 생각」(2001), 『국경을 넘는 일』, 창비 2005, 115면.
12) 오창은 「공간의 감수성과 제국의 감각」, 『모욕당한 자들을 위한 자유』, 실천문학사 2011, 99면.
13) 김병익 「말해질 수 없는 삶을 위하여」, 『나는 유령작가입니다』 해설, 252면.
14) 이 작품의 배경 파키스탄을 “동남아시아”(113면)라고 한 것은 실수다. 또한 변사또를 변호하는 이본을 꾸린 단편 「남원고사(南原古詞)에 관한 세개의 이야기와 한개의 주석」에도 재고해야 될 데가 두 대목이다. 첫째는 ‘기둥서방’(165면)인데, 서울 기생은 유부기(有夫妓), 즉 기둥서방을 두지만, 지방 기생은 무부기(無夫妓)이므로, 남원 기생은 기둥서방이 없다. 둘째는 “어미 따라 기생 된다는 말이 있을 수 없다”(168면)고 했는데, 천민은 종모법(從母法)을 따르기 때문에 그럴 수 있다.
15) 최원식 『생산적 대화를 위하여』, 창비 1997, 417면.
16) 백낙청 『문학이 무엇인지 다시 묻는 일』, 창비 2011, 103면.
17) 헨리 데이빗 소로우 『월든』, 강승영 옮김, 은행나무 2011, 77면.
18) 정지용 「시와 발표」, 이숭원 엮음 『꾀꼬리와 국화: 정지용산문집』, 깊은샘 2011, 318면.
19) 물론 그 역도 성립한다. 오오오까 쇼오헤이(大岡昇平)의 『들불(野火)』(1952)은 필리핀 민중의 고통보다는 자기연민의 형이상학에 기울었고, 이노우에 야스시(井上靖)의 역사소설 『둔황(敦煌)』(1959)은 중국을 빌려 전쟁에 동원된 자기변증에 몰두한 감이 없지 않다. 전쟁을 성찰하는 일본 전후문학의 대표작들에 드러난 동아시아 인식의 한계를 생각건대, 1949년 이후 오랜 은둔기를 거쳐 이제 외출이 시작된 중국문학의 사정이 더 나을 듯하지는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