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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단과 현장

 

카라따니 코오진과 맑스

 

 

유재건 柳在建

부산대 사학과 교수. 역서로 『고대에서 봉건제로의 이행』 『근대 세계체제』 『영국 노동계급의 형성』 등이 있음. jkyoo@pusan.ac.kr

 

 

1. 머리말

 

거대담론에 대한 불신이 만연한 요즘 같은 시절에 전체 세계사를 ‘교환양식’의 변화과정으로 해명하겠다는 시도는 얼핏 진부해 보인다. 생산양식 운운하는 것도 식상한 터에 또 무슨 교환양식인가 하는 반응이 나올 법도 하다. 하지만 최근 카라따니 코오진(柄谷行人)이 모색하는 교환양식론은 그 발상이 참신하고 창의적일 뿐 아니라, 실천적 문제의식 또한 선명하다. 2001년 출간된 『트랜스크리틱』으로부터 시작하여 『세계공화국으로』와 『세계사의 구조』에서 전개되는 그의 역사이론은 역사학·경제학·철학·인류학·종교사회학·정신분석학 등 다양한 학문 분야와 대화하면서 독자적인 지평을 열어가고 있고, 논리전개도 만만치 않다.1)

카라따니의 이론적 모색에는 1989년 국가사회주의의 몰락 이후 자본주의를 역사 속에서 어떻게 인식하고 극복할 수 있을까 하는 문제의식이 깔려 있다. 그는 기승을 부리는 신자유주의 앞에 국가사회주의가 대안이 못되는 현실에서 미래사회에 대한 대안적 상상력과 이념이 절실히 요청된다고 역설한다. 요즘도 자본주의 세상 너머를 생각하는 사람들은 적지 않지만, 개략적이나마 그 미래의 상()을 떠올리기가 쉽지 않다. 여전히 과거와 같은 국가적 통제의 발상에 머무르거나 혹은 사민주의적인 복지국가를 상상하는 경우도 많은데, 카라따니는 그런 방식으로는 자본주의가 결코 극복될 수 없다고 단언한다. 오늘의 세계는 자본주의와 네이션(nation), 그리고 국가라는 세가지 교환양식이 상호보완적인 삼위일체로 결합되어 있기 때문에 생산수단의 국유화나 공동체적 통제에 의해서(즉 국가나 네이션에 의해서) 자본주의를 넘어서는 일은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카라따니의 입론에서 독창적인 것은 이러한 자본제〓네이션〓국가의 삼위일체를 넘어서기 위해서는 그 안팎에서 제4의 교환양식을 실현해가야 한다는 주장이다. 이 제4의 교환양식을 그는 자유가 보장되는 시장경제의 성격을 가지면서도 끝없는 자본축적은 지양되는 ‘어소시에이션’(association)의 교환양식으로 상정한다. 이 교환양식은 맑스(K. Marx)가 『공산당선언』에서 제창한 자유로운 개인들의 어소시에이션 계보에 속하지만, 자본제〓네이션〓국가를 넘어선 세계체제 차원의 것이기에 카라따니는 칸트(I. Kant)의 ‘세계공화국’ 이념의 계승을 표방한다. 그것은 전지구 차원에서 새로운 대안적 체제를 실현하고자 하는 ‘자유지향의’(libertarian) 사회주의적 구상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카라따니는 교환양식을 축으로 한 역사이론을 바탕으로 새롭게 자본주의 극복방안을 모색하는데, 그 모색이 줄곧 맑스 사상과의 꾸준한 대화를 통해 이루어지고 있다는 점 또한 특징적이다. 교환양식론은 맑스의 생산양식론에 대한 비판적 대안이라 할 수 있지만, 양자간 관계가 그리 간단치는 않다. 카라따니 스스로가 맑스 읽기, 『자본』 읽기를 평생의 화두로 삼고 있다고 말할 정도로 그의 사상에서 맑스와의 대화는 결정적인 것이다. 그는 서슴없이 다음과 같이 말하기도 한다. “내가 하고 싶었던 것은 맑스를 읽는 것, 그것도 『자본』을 읽는 것이었습니다. 그것이 문학비평이라고 생각했습니다.”2) 실제 맑스 사상에 대한 그의 과감한 재해석과 비판은 찬반 여부를 떠나 독창성과 더불어 상당한 통찰을 보여준다. 이 글은 카라따니의 교환양식론의 기본 골자를 맑스 사상과 관련지어봄으로써 그 이론적 위치와 실천적 함축을 살펴보고자 하는 것이다.

 

 

2. 인간과 자연의 교환

 

역사를 ‘생산양식’이 아닌 ‘교환양식’의 관점에서 조망한다는 것은 무엇보다 맑스의 역사관에 대한 비판적 대안으로 보이지만, 꼭 그렇지는 않다는 것이 카라따니의 주장이다. 맑스가 ‘생산’ 개념을 쓸 때 언제나 인간을 자연과의 상호관계에서 보는 관점에 근거했기 때문에, ‘생산’을 ‘신진대사’(Stoffwechsel: 혹은 물질교환)로, 즉 광의의 ‘교환’(Wechsel)으로 이해했다는 것이다.

 

내가 ‘생산양식’이 아니라 ‘교환양식’이라는 관점에서 역사를 다시 본다고 했을 때, 그것이 맑스주의의 통념과 다르다는 것은 명확하다. 하지만 반드시 맑스와 다른 것은 아니다. 나는 ‘교환’을 넓은 의미에서 생각하고 있다. (…) 맑스가 ‘생산’이라는 개념을 고집한 것은 젊은 시기부터 일관되게 인간을 근본적으로 자연과의 관계 속에서 보는 시점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그것을 헤스(M. Hess)에게서 배우고 ‘신진대사’로서, 바꿔 말해 ‘교환’으로서 보았다.3)

 

카라따니의 전체 생각 밑에 깔린 흥미로운 논점은 우리가 맑스주의라고 알고 있는 것이 오히려 맑스 자신이 비판했던 사유체계에 머물러 있다는 점이다. 이는 ‘맑스주의’가 맑스 자신이 일관되게 비판했던 헤겔(G. W. F. Hegel) 철학 및 고전경제학 체계와 유사한 일종의 근대주의적 관점에 서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카라따니는 맑스주의가 인간과 자연의 관계에서 인간의 노동을 특권화하는 산업자본주의의 발상을 고스란히 이어받았다고 본다. 그런 사고방식에서는 ‘생산’이 자연과의 ‘교환’으로 이해되지 못하고 오직 인간 노동의 창조성이란 면에서 높이 평가된다는 것이다. 자신의 주장을 뒷받침하기 위해 카라따니가 주목하는 것은 맑스의 『고타강령비판』 첫 대목이다. 1875년 라쌀레주의자들과 일부 맑스주의자들이 독일노동자당의 강령으로 채택한 「고타강령」의 첫 조항은 “노동은 모든 부와 모든 문화의 원천이다”라는 문구로 시작하는데, 맑스는 이에 대해 다음과 같이 반박한 바 있다.

 

노동은 모든 부의 원천이 아니다. 자연도 노동과 마찬가지로 사용가치의 원천이다(그리고 물질적 부는 바로 이 사용가치로 이루어진다!). 노동 그 자체는 자연력의 하나인 인간 노동력의 발현에 지나지 않는다. (…) 부르주아지가 노동에 초자연적인 창조력을 부여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다.4)(강조는 맑스)

 

맑스의 이런 생각은 저작 곳곳에서 거듭 강조되는 것이라 새삼스러운 것은 아니다. 다만, 맑스 자신의 사상과 이런저런 맑스주의가 혼동되어 뿌리깊은 오해가 만연한 터라, 카라따니의 주장은 맑스 사상의 핵심적 면모에 주의를 환기시키는 의미가 있다. 역사를 자연에 대한 정복과정으로 간주하면서 자연에 대한 인간 노동의 창조성을 강조하는 ‘프로메테우스’적 인간관은 노동을 “자연력의 하나인 인간 노동력의 발현에 지나지 않는다”라고 보는 맑스에게는 전혀 맞지 않는다. 『자본』에서 맑스는 인간의 노동을 “사용가치의 조형자(Bildner)”로 표현하기도 했다. 노동은 “인간과 자연 사이의 신진대사를 매개하고 그리하여 인간의 생활을 매개하기 위한 영구적인 자연필연성”이지만 “생산과정에서 인간이 할 수 있는 것은 단지 자연 그 자체의 방식에 따르는 것뿐, 다시 말해 인간은 단지 소재의 형태를 바꿀 수 있을 뿐”이라는 것이다.5) 맑스가 이런 관점 여부를 중대한 문제로 여긴 것은 분명한데, 그는 자연을 인간을 위한 대상, 인간 욕구에 종속시키는 대상으로 간주해 그 자체 힘으로 인정하지 않는 것을 근대 특유의 부르주아적 자기망각으로 보았기 때문이다.

1844년의 『경제학·철학 초고』에서부터 맑스가 철학과 경제학을 비판하면서 강조한 것이 바로 이런 자연사적 관점이었지만, 이상할 정도로 이 점은 자주 간과되는 것이 현실이다. 심지어 헤겔이 대변하는 인간주의 철학을 극복하기 위한 유물론적 고투로 점철된 『경제학·철학 초고』를 두고서도 유물론과 대립되는 의미의 ‘인간주의 철학’의 저술이라고 오해해 상찬하거나 비판하는 일이 일반화되어 있기도 하다. 맑스는 거기서도 인간이 자연의 일부이기 때문에 “인간의 육체적, 정신적 생활이 자연과 연계되어 있다는 것은 자연이 자기 자신과 연계되어 있다는 것일 뿐”이라 주장하면서 “자연주의(Naturalismus)만이 세계사의 행위(Akt der Weltgeschichte)를 파악할 수 있다”6)라고 말하기도 했다. 그렇다면 맑스의 생산 개념을 광의의 교환으로 받아들이는 카라따니의 생각에 무리스러울 것은 없어 보인다. 아마도 그는 주고받음, 소통, 교통 혹은 교류의 관계를 경제학적인 언어로 표현하는 ‘교환’ 개념이야말로 인간과 자연의 관계에서 상호의존성을, 인간과 자연이 동참한다는 뜻을 잘 나타내기에 맑스의 유물론에 더 적합하다고 생각하는 듯하다.

인간 노동이 부의 유일한 원천이 아니고 자연 역시 그 원천이란 주장에서 카라따니는 무엇보다 맑스의 생태주의적 관점을 주목한다. 자본주의적 생산양식은 자연과 노동자 모두를 착취하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다. 무언가를 생산하는 것은 자연소재를 변형하는 것이지만, 그것은 동시에 불필요한 폐기물을 생산하는 것이다. 카라따니에 의하면, ‘생산’을 ‘교환’으로 이해한 맑스의 관점에선 이같은 폐기물이 재처리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한 반면 맑스주의자들은 그런 발상에 전혀 다가가지 못한다. 맑스는 자본주의 생산양식이 인간과 토지 사이의 신진대사를 교란해 영구적인 자연조건을 파괴하는 현실을 심각하게 받아들였다. 자연착취에 의해 ‘자연력’의 고갈을 불러온다는 것이다. 그는 『자본』에서 자본주의적인 사회적 관계에서 발생한 환경파괴가 다시 인간과 자연 간의 원활한 신진대사를 파괴하는 것을 누차 경고하면서 신진대사를 합리적으로 규제해 폐기물을 자연의 순환으로 되돌리는 과제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그래서 카라따니는 맑스가 역사를 인간과 자연의 교환, 즉 환경의 관점에서 보는 시점을 견지함으로써 근대주의적 사고틀을 넘어서고자 했다고 본다.7)

카라따니가 교환양식론을 제시한 것은 2000년을 전후한 시점이지만,8) 그가 1970년대말 출간한 『마르크스 그 가능성의 중심』에서부터 그 이론적 단서가 싹트고 있었음은 분명해 보인다. 거기서 그가 맑스의 『독일 이데올로기』에서 쓰인 ‘교류’ 혹은 ‘교통’(Verkehr, 카라따니는 ‘교통’으로 번역한다) 개념이 갖는 중요성에 주목한 것은 남다른 데가 있다. 훗날 ‘생산관계’로 칭하게 되는 것이 1840년대 『독일 이데올로기』에서는 ‘교통형태’(Verkehrsform)로 표현되지만, 가령 공산주의는 “세계교통을 전제로 한다”라는 표현에서 보듯이 한층 포괄적인 뜻으로 쓰이고 있다. 그런데 카라따니는 맑스가 세계사를 언제나 존재한 것이 아니라 16세기 이래 세계교통의 결과로 비롯된 역사적 산물로 파악한 것을 두고 “역사에서 이념이나 목적을 배제할 때 ‘교통’이란 개념을 활용했다”9)라고 해석한다. 세계사는 세계가 ‘교통’의 그물망으로 짜여 있을 때 성립하며, ‘교통’ 그 자체에 필연성이 있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9)

 

맑스의 교통이란 개념은 우연적인 것, 근거지어지지 않은 것, 가로지르는 것, 성적(性的)인 것, 폭력적인 것을 수용하면서 더 많은 뉘앙스를 지니는 반면에, 엥겔스의 ‘생산관계’라는 개념은 일종의 닫힌 관계체계를 나타낼 뿐이다.10)

 

카라따니는 맑스가 젊은 시절 ‘교통’ 개념을 통해 개방적이고 비목적론적인 교환양식론의 밑그림을 그려낼 수도 있었지만 결국 사회구성체 변화의 동력을 물질적 삶의 생산양식에서 찾은 것을 아쉽게 생각한다. 생산양식과 생산관계라는 협소한 개념에 의지함으로써 사회구조의 경제적 토대에서 다양한 교통형태의 존재를 배제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카라따니의 교환양식론은 역사에서 경제적 생산관계라고 말하기 어려운 다른 교통형태 혹은 교환양식의 독자성을 인정하는 것으로부터 출발하고자 한다.

 

 

3. 자본주의적 교환양식

 

카라따니의 교환양식론은 역사적으로 어떤 사회구성체든 세가지 기초적 교환양식이 서로 보완하면서 공존한다는 데서 출발한다. 이런 견해는 폴라니(K. Polanyi)의 경제적 조직형태(호혜성·재분배·시장교환)론을 비판적으로 수용한 것이기도 하지만, 다른 한편 프랑스대혁명 3대 이념(자유·평등·우애)의 현실적 토대에 대한 성찰에서 나온 것이기도 하다. 그 골자는 어느 사회구성체든 증여/답례의 호혜(일본어로는 ‘互酬’)적 교환양식 A, 약탈(수탈)과 재분배의 교환양식 B, 상품교환양식 C가 상호보완적으로 결합되어 있다는 것, 그 가운데 지배적인 교환양식이 어떤 것인가에 따라 그 사회구성체의 성격이 달라진다는 것이다. 씨족적 사회구성체(미니 세계 시스템)는 교환양식 A가, 세계제국은 교환양식 B가, 그리고 근대 세계 시스템은 교환양식 C가 지배적인데, 다시 근대세계에서는 자본제가 교환양식 C를, 국가가 약탈-재분배의 교환양식 B를, 네이션이 호혜적 교환양식 A를 나타낸다.11)

카라따니에 의하면 이렇듯 근대세계를 자본제〓네이션〓국가의 삼위일체로 이론화해 파악한 사람은 바로 헤겔이다. 그는 헤겔이 프랑스대혁명의 이념에서 이를 포착했다고 본다. 프랑스대혁명의 이념인 자유·평등·우애는 각기 시장경제의 상품교환, 국가의 재분배, 공동체적 호혜관계의 이념적 지향을 표현하는 것이지만, 현실에서는 자본제〓국가〓네이션으로 실현되었다.12)3자를 이념적으로 통합하고자 했던 헤겔의 변증법 체계는 자본주의 경제를 뜻하는 시민사회가 국가와 네이션에 의해 순차적으로 통합되어가는 순서로 되어 있다. 헤겔은 ‘욕망의 체계’로서 시민사회의 자유를 긍정하면서 그것이 초래하는 부의 불평등을 시정하는 것이 국가라고 생각했고, 여기서 발생하는 자유와 평등의 모순을 초월하는 우애를 네이션에서 찾았던 것이다.13) 카라따니는 헤겔이 비록 관념론적이고, 네이션을 최상위에 두어 삼위일체의 극복 가능성을 배제한 닫힌 체계를 구성했지만 적어도 3자간 상호의존적 관계만큼은 적확하게 파악하고 있었다고 평가한다.

그런데 1840년대 맑스는 헤겔의 법철학 비판을 통해 자본주의적 경제를 토대로 네이션과 국가를 상부구조라고 규정해, 토대인 자본제 경제를 폐기하면 네이션과 국가도 폐기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카라따니가 보기에 이는 네이션과 국가가 상품교환과 다른 교환양식에 뿌리를 두고 있음을 간과한 것이고, 그렇기 때문에 헤겔 법철학에 다시 다가가 초기 맑스와는 다른 방식으로 유물론적으로 비판하는 일이 필요하리라는 것이다. 하지만 이런 비판작업의 단서가 맑스 자신에 의해 이미 『자본』에서 제시되고 있다는 것이 카라따니의 중요한 논점이다. 여기서 맑스가 자본-임노동관계의 생산양식이 아니라 상품교환양식에서 출발한 것이 사실상 다른 교환양식을 일단 괄호에 넣는다는 문제의식을 갖고 있었음을 시사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1840년대 맑스가 확립한 유물론적 역사관은 『자본』에서 제시된 새로운 인식을 근거로 수정될 여지가 생기는 것이고, 카라따니 자신이 그 수정을 감당한다고 말할 수 있는 셈이다.

카라따니는 『자본』이 상품에서 시작되는 것을 두고 맑스가 자본주의를 교환양식에서 본 것으로 이해한다. 요컨대 맑스에게 자본은 근본적으로 상인자본이라는 것이다. 이 점에서 카라따니의 논지는 간명한 편이다. 맑스는 근대 자본주의의 일반적 본성을 상인자본으로 보고 그 안에서 산업자본주의 및 노동력상품(임노동)의 독특성을 자리매김하고자 했다는 것이다. 카라따니는 “맑스주의자들 가운데는 (…) 잉여가치를 생산과정의 ‘착취’에서만 찾아내는 사고가 지배적”이지만 이것은 산업자본을 특권화하는 고전경제학자들의 입장일 뿐이라고 비판한다.14) 맑스의 이론에서 산업자본은 인간 노동력이라는 특수한 상품을 발견한 점에서 상인자본과 다르지만 교환 차액에서 이익을 얻는다는 점에서 같기 때문에 결국 잉여가치는 광의의 유통과정에서만 존재하는 것이다.15) 산업자본에서도 잉여가치가 진짜 실현되는 것은 그 생산물이 팔릴 때이기 때문이다. 상인자본이 공간적인 체계의 차이에서 잉여가치를 얻는 반면 산업자본은 기술혁신에 의해 끊임없이 시간적으로 다른 가치체계를 만들어냄으로써 잉여가치를 얻지만, 자본의 본성으로는 같다는 것이다. 그리하여 카라따니는 “맑스의 독창성은 가치 또는 잉여가치의 문제를 생산과정뿐 아니라 새삼스럽게 유통과정에서도 보려고 한 데 있다”16)라고 강조한다.

이 문제를 둘러싼 논쟁은 너무도 오랫동안 지속되어왔지만, 어떤 점에서는 과거 월러스틴(I. Wallerstein)과 맑스주의자들 간의 논쟁을 연상시키기도 한다. 실제로 카라따니의 견해는 “맑스는 오늘날 대부분의 사람들보다 훨씬 더 유통주의자였다”17)라고 항변했던 월러스틴의 그것과 비슷한데, 양자 모두 맑스가 자본주의를 세계시장의 맥락에서 인식했다고 믿기 때문이다. 카라따니는 맑스가 염두에 둔 것은 언제나 세계자본주의였으며, “16세기에 세계상업과 세계시장이 자본의 근대적 생활사를 열었다”라든가 “자본주의적 생산은 일반적으로 해외무역 없이는 있을 수 없다”라든가 하는 맑스의 거듭된 강조로 볼 때 이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고 주장한다.18) 다만 『자본』이 영국경제를 모델로 했다는 견해가 널리 퍼져 있지만, 그는 그 연구대상도 세계자본주의이며, 세계경제가 영국 안에 내면화되어 파악된 것으로 본다.19) 예컨대 영국의 산업혁명도 국내 시장 때문이 아니라 중상주의적 경쟁에서 국제적 패권을 장악하는 맥락에서 가능했기 때문이다. 심지어 카라따니는 『자본』의 부제가 ‘국민〔political〕경제학비판’인 이유 중 하나는 자본주의를 세계에서 보려고 한 관점에 있다고까지 주장한다.20)

그러나 자본주의의 상인자본적 일반성 안에서 산업자본주의가 갖는 독특성은 그 자체가 중요한 것이다. 카라따니는 산업자본주의에서 자본제·국가·네이션의 긴밀한 삼위일체성이 한층 강화되었음을 지적한다. 인간의 노동력이란 상품은 산업자본보다 오히려 근대국가에 의해 형성되는 측면이 더 크기 때문이다. 징병제와 의무교육을 통해 내셔널리즘을 육성하는 것 또한 노동력상품을 육성하는 것과 분리될 수 없다.21) 다른 한편, 카라따니는 산업자본주의가 노동력상품에 근거한다는 것 자체가 자본주의의 무한한 팽창에 모종의 한계를 짓는다고 본다. 산업자본은 기술혁신의 끝없는 압박을 받는데다가 주변부의 값싼 노동력 및 새로운 소비자가 충원되어야 하고 무진장한 자연이 계속 확보되어야 하는 어려움을 안게 된다. 따라서 자본제 경제가 아무리 자율적인 힘으로 전체 생산을 장악하려 해도 스스로 만들 수 없는 것, 즉 임의로 처리할 수 없는 것이 있으니, 자연환경과 노동력상품 담당자인 인간의 ‘재생산’에서 네이션〓국가의 개입이 없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이렇듯 국가나 네이션의 능동적인 역할을 볼 때 이들을 자본주의적 토대에 의해 규정되는 상부구조로 보는 상하부구조론은 한마디로 오류라는 것이 카라따니의 주요 논점이다. 생산양식〓경제적 토대가 상부구조를 규정한다는 상하부구조론은 인식론상으로나 실천적인 차원에서 여러모로 부정적인 결과를 가져왔다는 것이다. 그가 인식론상의 결함으로 지목하는 것은 대체로 우리가 익히 들어오던 것들이다. 예컨대 그런 역사관 자체가 근대 자본주의 사회의 익숙한 발상에 근거한 비역사적인 것으로서 전() 자본주의 시대에 적용하기는 어렵다는 식의 비판이다. 카라따니가 한층 심각하게 받아들이는 것은 근대세계에서도 국가와 네이션이 갖는 능동적 역할이 간과되어 “그것이 이후 사회주의에 치명적인 결과를 가져오게 되었다”22)는 점이다.

 

현재의 자본제사회에 관해서도 국가나 네이션을 그저 단순히 상부구조로서 보는 사고는 난관에 봉착했다. 국가나 네이션은 오히려 능동적인 주체로 작동하기 때문이었다. 맑스주의자는 상부구조인 국가나 네이션은 자본주의적 경제가 폐기되면 자동적으로 소멸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실제로는 그렇게 되지 않았다. 그래서 국가와 네이션이라는 문제에 걸려 넘어졌던 것이다.23)

 

그러나 과거에 자본주의적 경제가 폐기되었음에도 국가와 네이션이 소멸하지 않았다는 카라따니의 주장에는 심각한 논리적 모순이 있다. 다른 데서도 그는 “자본주의적 생산양식이 해소”되었어도 국가와 네이션이 소멸되지 않은 예로 소련과 함께 독일과 일본의 파시즘 승리를 들고 있다.24) 이것은 자본주의를 일국적으로 폐지할 수 있다고 믿은 소련의 시도와 네이션의 회복을 통해 자본과 국가를 넘어서는 목표를 표방한 나치 운동을 자본제적 생산양식의 폐기로 이해하는 셈이 된다. 하지만 카라따니는 소련의 사회주의가 자본주의의 폐기가 아님을 강조하기도 한다. 노동자를 국가의 임금노동자로 만드는 것에 지나지 않았고 “국유화와 자본주의는 배반되는 것이 아니”25)라는 것이다. 더욱이 “자본주의의 문제를 일국 단위가 아니라 항상 세계경제에서 보지 않으면 안된다”26)라는 카라따니의 주장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인다면 소련, 독일, 일본에서의 자본주의적 생산양식의 해소를 말하기는 더더욱 어려울 것이다.

이 논리적 모순은 카라따니가 스스로 자본주의를 일국 단위가 아니라 세계경제에서 보아야 한다면서도 정작 상하부구조는 일국 단위의 사회구성체 내부에서 설정하는 데서 비롯된다. 그는 자본주의적 사회구성체는 다른 사회구성체와의 관계, 즉 세계체제에서 보아야 한다고 함으로써 월러스틴의 세계체제론을 선별적으로 활용하지만, 결국 분석단위로는 언제나 일국적 공간을 상정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고타강령비판』에서 “‘오늘날 국민국가라는 틀’은 그 자체가 경제적으로는 세계시장의 ‘틀 안에’, 정치적으로는 열국(列)체제(Staatensystem)의 ‘틀 안에’ 있는 것”27)이라고 주장하는 맑스가 상하부구조를 그렇듯 일국적 공간에서 설정할 리는 없는 것이다. 그렇다면 맑스의 상하부구조론에 대한 카라따니의 비판은 초점을 잘못 맞춘 것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게다가 맑스의 상하부구조론은 애당초 국가의 ‘능동적 주체성’ 여부와는 아무 상관이 없는 것이다. 그것은 경제적 토대가 국가의 특정한 ‘성격’ 내지 ‘형태’를 형성하고 규정한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자본』에서도 맑스는 중세의 가톨릭 종교와 고대의 정치가 “주된 역할을 담당”(die Hauptrolle spielen)했음을 당연시했고, 다만 “왜 그랬는지를 설명해주는 것은 바로 사람들이 그들 생계를 획득한 양식”이라 함으로써 종교 및 정치의 능동적 주체성을 인정했다.28) 그렇다면 자본주의 세계경제의 변화가 국가의 억압적 성격에 변화를 가져오리라는 인식, 맑스의 표현대로 경제적 토대의 변화와 더불어 거대한 전체 상부구조가 조만간에 변혁되리라는 전망이 인식론상으로나 실천적으로 그토록 치명적인 오류가 되는 것인지 잘 납득이 가지 않는다.29)

 

 

4. 어소시에이션의 교환양식

 

맑스의 생산양식론에 대한 비판적 대안으로서의 교환양식론은 역사과정에서 상품교환 외에 호혜관계나 지배/보호관계처럼 윤리적·정치적 차원의 다른 교환형태들을 경제적 토대에서 분리하지 말자는 뜻을 담고 있다. 홉스(T. Hobbes)가 말하는 국가의 보호/복종의 정치적 교환을 비롯해 종교적인 것, 윤리적인 것도 특정한 교환양식에 뿌리를 두고 있다는 것이다. 카라따니에 의하면, 사회주의를 교환양식론의 관점에서 보게 될 때 사회주의의 근거를 경제와 분리된 종교적 사랑이나 윤리가 아니라 넓은 의미의 ‘경제학’에서 찾을 수 있게 된다.30) 세가지 기초적 교환양식 외에 현실적으로는 실현되지 못했으면서도 이념으로 끈질기게 존속해온 또 하나의 교환양식 D가 바로 그런 의미의 윤리적 핵심을 담고 있다는 것이다.

교환양식 D는 아직 현실화되지 않은 이념이라 할 수 있지만, 카라따니는 그 이념이 과거 세계제국 시대에 기독교, 이슬람교, 불교 같은 보편종교에 의해 추구되었다고 본다. “보편종교는 공동체도 국가도 아닌 시장적 공간(도시)에서 출현하고, 또 일찍이 존재하지 않았던 공간 즉 새로운 교환양식을 개시한 것”31)이다. 그에 따르면 보편종교는 교환양식 B가 지배적인 세계제국에서 호혜적 교환양식 A가 상품교환양식 C의 확대로 인해 해체되어갈 때, 이에 대항하는 교환양식으로 출현한 것이다. 세계제국에서 교환양식 BC가 공간적으로 확대되면서 국가가 강대해지고 교역과 시장의 발전이 심화될 때 보편종교는 그들 교환양식의 확장에 대한 비판으로, 교환양식 A를 고차원적으로 회복하려는 방식으로 나타난 것이다.

카라따니의 보편종교 발생에 대한 구조론적 해명은 흥미진진할 뿐 아니라 상당한 설득력이 있다. 보편종교의 신이 부족공동체나 국가를 넘어선 초월적인 존재로 등장하는 것과 때를 같이해 시장교환의 확대로 공동체나 국가로부터 상대적으로 자립한 개인이 나타나게 된다는 것이다. 시장경제가 확대되는 현실에서 그 모순을 넘어서는 동력이 언제나 종교의 형태로 끈질기게 존재해온 것은 그 때문이다. 이는 신의 힘이 공동체의 힘, 국가의 힘, 화폐의 힘을 넘어선 것으로 다가왔음을 의미하며 보편적 존재인 신은 자립적 개인의 존재와 조응한다. 카라따니에 따르면 이것이 현실에서는 국가나 공동체로부터 유리된 개인이 직접 신과 관계한다는 것을 뜻한다기보다 오히려 신을 통해 개인들 상호관계를 새롭게 창출해야 함을 뜻한다. 실제로 보편종교가 사랑이나 자비를 설파하는 가운데서도 궁극적으로 지향하는 바는 상호호혜적인 공동체, 개인들의 어소시에이션을 창출하는 일이라는 것이다.32)

하지만 이런 어소시에이션의 지향이 역사적으로 지속적인 사회원리로 정착되지는 못했는데, 보편종교가 현실적으로 확대 정착하게 되면 다시 국가의 종교, 공동체의 종교가 되고 말았기 때문이다. “이처럼 보편종교는 국가나 공동체에 침투함과 동시에 역으로 그것들에 흡수되어버렸다.”33) 이 과정에서 침투와 흡수는 상호적인 면도 있는데, 보편종교가 세계제국에 흡수되어 세계종교로 굳어진 뒤에는 그 보편종교성을 잃게 되지만 여전히 그 요소 일부가 끈질기게 남는 것도 불가피하기 때문이다. 세가지 교환양식이 결합된 사회구성체도 알게 모르게 보편종교에서 유래하는 관념이나 법을 통해 교환양식 D의 영향을 받아온 것 또한 사실이라는 것이다.

카라따니는 근대 사회주의의 창의적인 노력은 바로 보편종교의 미완의 과제를 다시 실현하려는 데서 나왔다고 본다. 사회주의는 국가나 공동체에 포섭되어버린 보편종교를 비판하면서 동시에 그 종교의 윤리적 핵심, 즉 어소시에이션의 교환양식을 구출하는 과제를 제기한 것이다. 그 과제를 추구한 근대 최초의 인물로 카라따니가 지목하는 사람은 칸트다.34) 자유의 상호성이라는 윤리적 이념을 제시한 보편종교의 정신이 칸트 철학에 계승되고 있지만, 칸트의 경우 추상적 도덕론에 머무르지 않고 그것을 일종의 어소시에이션 사상과 세계공화국 이념으로 한층 구체화시켰다는 것이다. 카라따니는 칸트의 유명한 정언, “타자를 수단으로서만이 아니라 동시에 목적으로 다루어라”35)라는 말을 비자본주의적이지만 시장경제적인 새로운 윤리적·경제적 비전을 보여주는 것으로 해독한다. “수단으로서만이 아니라 동시에(강조는 인용자)라는 말이 시사하듯이, 이 정언은 타자를 수단으로 사용할 수밖에 없는 시장경제적인 상황을 전제한 위에 정당한 댓가로 보상함으로써 타자를 목적으로 대하는 시장경제적 윤리를 설파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카라따니는 근대 사회주의 사상사에서 자본주의 경제를 국가적 통제에 의해서가 아니라 교환양식 D의 실현으로 극복하려 했던 인물로 프루동(P. J. Proudhon)과 맑스를 든다. 그밖의 사회주의 사상은 어떻게든 국가와 네이션을 통해 시장경제를 통제하는 길을 추구해왔고, 이는 곧 프랑스대혁명 이념인 자유·평등·우애에서 자유를 평등과 우애에 의해 통제하려는 길이었다. 이에 비해 자유를 우선시한다는 점에서 프루동과 맑스는 둘 사이의 사상적 대립에도 불구하고 상당히 유사하다는 것이다. 라쌀레(F. Lassalle)식의 국가사회주의를 철저히 배격한 맑스는 어소시에이션이 국가를 대체해야 한다고 주장한 점에서 프루동파이며 그런 “맑스에게 사회주의란 협동조합적 어소시에이션에 다름 아니었다.”36) 맑스가 국가권력 장악의 필요성을 강조한 것은 국유화를 위해서가 아니라 협동조합화를 통해 자본-임노동의 계급관계를 폐기하기 위해서였으며, 그로써 계급지배에 근거하는 국가가 종국적으로 사멸하리라 전망했다는 것이다. 맑스가 프루동파 아나키스트라면, 자본주의 경제를 국유화해 계획적으로 통제하려 했던 엥겔스와 레닌(V. I. Lenin), 그리고 사회민주주의는 국가주의적이다.37)

37)이러한 카라따니의 주장은 비록 맑스-엥겔스-프루동에 대해 모종의 편견이 작용하고 있긴 하지만38) 아무튼 맑스 사상의 핵심에 대한 통찰을 담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실제 맑스가 평생에 걸쳐 미래사회의 화두로 여긴 것이 언제나 ‘자유’와 ‘개성’이었고, 이는 평등의 구호가 자본주의 시대의 현실을 토대로 한 과제를 표현하기엔 부적합하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다만, 엥겔스가 “계급폐지를 넘어서는 그 어떤 평등에 대한 요구도 필연적으로 불합리에 이르게” 되기에 사회주의 사회를 ‘평등의 왕국’으로 연상하지 말자고 한 것도 자유를 희생시키는 균등화에 대한 경계에서 비롯된 것임을 인정해야 할 것이다.39)

카라따니는 맑스의 어소시에이션 사상을 높이 평가하지만 다른 한편 맑스의 생산양식론에서 비롯된 근원적 한계를 비판하기도 한다. 생산양식론은 누가 생산수단을 소유하는가라는 관점에서 보기 때문에 평등을 중시하고 자유의 문제를 무시하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다.

 

맑스는 생산양식에서 사회구성체의 역사를 생각했다. 생산양식에서 본다는 것은, 바꿔 말해 누가 생산수단을 소유하는가라는 관점에서 보는 것이다. (…) 또 이런 관점은 최초의 단계에 존재하는 평등성을 중시하지만, 그것을 가능하게 하는 것이 유동성(자유)이라는 것을 무시한다. 즉 코뮤니즘을 유동성(자유)이 아니라 부의 평등이라는 점에서만 보는 사고가 되기 쉽다. 교환양식의 관점에서 볼 때, 이상과 같은 결함을 극복하는 것이 가능하다.40)

 

그는 같은 책에서 이렇듯 맑스에 대해 상반되는 주장을 하고 있지만, 이에 대한 적절한 해명을 하지는 않는다. 생산양식론이 “누가 생산수단을 소유하는가라는 관점에서 보는 것”이라는 주장은 얼핏 과도한 단순화 같긴 하지만, 생산수단을 소유한 자본가와 소유하지 않은 임노동자의 계급관계를 염두에 둔다면 단순히 공동 소유냐 사적 소유냐의 문제로 단순화했다고 단정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정작 문제는 다른 데 있다.

맑스의 이론에서 물질적 삶의 생산을 둘러싼 개인들의 사회적 관계는 카라따니의 표현방식을 쓰자면 역사적으로 다양한 교환형태를 띠고 있다. 근대 자본주의 사회는 자본-임노동 관계가 주된 형태일 터인데, 맑스는 이 형태의 특정한 성격을 전 자본주의 시대의 그것과 다른 것으로 분간하고자 했다. 자본주의 시대에는 상품교환의 보편화로 인해 개인들의 관계가 추상적·사물적·비개인적인 관계로 바뀐다는 것이다. 그래서 맑스는 1840년대의 『독일 이데올로기』에서부터 개인들의 개성으로부터 분리 불가능한 신분과 대비된 계급의 추상성을 누차 강조했다. 개별 농노는 개별 영주에게 예속되지만 노동자는 특정 자본가에게 예속되는 것이 아니라 자본가계급에 예속된다는 주장도 그런 뜻일 것이다.

그래서 생산수단 소유의 문제에서도 맑스는 자본주의 시대에 상품교환의 보편화로 추상적·사물적·비개인적인 지배가 관철된 소유를 ‘계급적 소유’로 표현하며 인격적·개인적 성격이 남아 있던 전 자본주의적 소유로부터 달라진 면에 주목했다. 맑스의 소유 개념에서 사회적·집단적 소유와 사적 소유의 대립 외에 계급적 소유와 개인적 소유의 대립이 중첩되는 것은 이 때문이다. 이것을 카라따니식으로 말하면 자본주의적 계급적 소유가 바로 교환양식 C가 지배적인 소유형태이기에 개인적 소유의 소생은 교환양식 D의 실현에 해당한다. 그래서 『공산당선언』에서 맑스는 “부르주아지에게는 계급적 소유의 폐지가 생산 그 자체의 폐지처럼 보인다”라고 하면서 “자본이 공동 소유로 (…) 변한다고 하더라도 개인적 소유가 사회적 소유로 변하는 것은 아니며 (…) 소유는 그 계급적 성격을 상실할 뿐”41)이라 주장한 것이다. 이렇듯 소유의 문제를, 생산을 둘러싼 사회적 관계로 보았던 맑스가 공산주의를 가리켜 개인적 소유의 소생이라 했을 때의 의미는 개인들의 개별성이 관철된 소유의 소생을 뜻하는 것이고, 이는 교환양식 D의 소생이라 할 수 있다. 이런 의미에서 생산양식론을 “누가 생산수단을 소유하는가라는 관점에서 보는 것”이라 말하는 것은 그것을 너무 협소하게 이해하는 일이 된다. 나아가 맑스가 이런 생각을 『독일 이데올로기』에서부터 일관되게 말해왔다는 점에서 카라따니처럼 『자본』의 맑스가 과거의 유물론적 역사관을 본질적으로 수정해야 할 정도의 인식론적 단절을 겪었다고 보는 것은 무리한 일이다.42)

 

 

5. 맺음말

 

카라따니는 맑스주의의 이론적·실천적 오류 가운데 중요한 한가지를 생산양식 중심의 사고에서 찾고, 교환양식론을 바탕으로 자본주의의 극복방안을 제시하고자 한다. 자본주의적 생산양식의 변혁과 이를 통한 국가의 사멸을 기대했던 맑스의 이론은 더이상 지탱될 수 없다는 인식하에, 그는 칸트적 윤리학과 맑스의 정치경제학 비판의 종합을 통해 새로운 사상적 모색을 시도하는 것으로 보인다. 그의 교환양식론에 따른다면 오늘의 세계는 각기 다른 원리에 뿌리를 두고 있는 자본·네이션·국가라는 교환양식이 삼위일체로 결합되어 있기 때문에 이를 해체하고 극복할 새로운 방안이 요청된 것이다. 그는 이를 위해 “좀더 근본적으로 사회구성체의 역사를 ‘생산양식’이 아닌 ‘교환양식’에서 보는 시점”43)을 취할 것을 강조한다.

그간 생산과정에 대한 과도한 중시와 유통과정의 경시가 자본의 축적과정에 대응한 대항운동을 실패하게 만들었다는 것이다. 카라따니는 우선 자본에 대항하는 운동에서 노동운동보다 소비자-생산자 협동조합이나 보이콧같이 유통과정에서의 저항적 움직임을 새로운 운동으로 주목한다. 노동자계급이 자유로운 주체로 유리한 위치에서 자본에 대항할 수 있는 장은 유통과정이고 여기서 비자본주의적 경제를 스스로 창출해갈 수 있다는 것이다. 그는 자본〓네이션〓국가의 틈새공간에서 비자본주의적 경제가 확산되는 것이 중요하다고 본다. 그렇다고 해서 카라따니의 미래 전망이 밝은 것은 아니다. 그는 오늘의 세계를 전쟁위험과 환경파괴, 심각한 빈부격차라는 절박한 난제에 직면한 시대로 인식한다. 자본의 일반적 이윤율 저하로 자본주의적 경제의 위기가 임박하고 이로부터 세계전쟁 또한 일어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는 자본제〓네이션〓국가의 시스템 역시 붕괴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고 보는데, 미래에 그런 사태가 벌어지면 엄청난 사회적 위기가 발생할 수 있기에 그런 위기의 시공간에 대비하여 비자본주의적 경제가 어느정도 확산되어 있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다른 한편, 카라따니는 자본제〓네이션〓국가의 극복은 개별 국가 내부의 해체로는 충분하지 않고 외부에서 오는 힘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인식하에 칸트의 영구평화론에 기대서 세계공화국의 구상으로 나아간다. 소비자〓생산자협동조합 같은 어소시에이션이 호혜의 교환양식 A 원리의 고차원적 회복이라 한다면 세계공화국은 그것을 국가 간의 관계에서 실현하는 것이다. 그는 세계 각국이 국민국가의 군사주권을 서서히 국제연합(UN)에 증여해 국제연합을 강화·재편성함으로써 세계동시혁명에 버금가는 새로운 세계체제 건설이 가능하다고 본다. 그가 국제연합 같은 국제기구를 얼마나 중시하는지는 “20세기의 러시아혁명과 국제연맹의 성립 중에 더 중요한 사건은 국제연맹의 성립”44)이라는 인식에서도 잘 드러난다.

카라따니는 자신의 세계공화국 구상은 절박한 현실에 맞서는 규제적 이념이라고 말한다. 그것은 한마디로 ‘근본적이면서 점진적인’ 기획인데, 근본적이지 못하고 성급한 전략은 그 의도와 반대로 국가를 강화해 결국 자본주의를 영속시키는 결과를 가져올 뿐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이상(理)을 높이 세우고 그 방향으로 꾸준히 나아가자는 취지의 규제적 이념은 맑스가 평생 가장 경계했던 이상주의와 다를 것이 없어 보인다. 맑스는 1870년대 자신의 사회주의를 사람들이 ‘과학적 사회주의’라고 일컬을 때 스스로는 ‘비판적이고 유물론적인 사회주의’란 이름을 즐겨 썼다.45) 카라따니의 세계공화국 구상에는 아무래도 맑스가 말한 의미의 ‘유물론적인’ 면이 결여된 것으로 보인다. 오늘날 유물론적이라면 ‘근본적이고 점진적인’ 이상주의적 길이 아니라 ‘장기적으로 근본적이면서 중·단기적으로 중도적인’ 길의 모색이 요구되는 것은 아닐까 싶다.46) 한층 현실주의적인 그 길에서는 카라따니가 국가를 강화할까 우려해 백안시하는 복지국가 추구라든가 지역통합 같은 것도 때와 장소에 따라 큰 의미를 가질 수 있고, 지역과 나라마다 유연하면서도 창의적인 노력이 가능하리라 생각할 수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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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본고에서 인용한 카라따니 코오진의 저서는 다음과 같다. 『은유로서의 건축: 언어, 수, 화폐』(김재희 옮김, 한나래 1998), 『마르크스 그 가능성의 중심』(김경원 옮김, 이산 1999), 『트랜스크리틱: 칸트와 맑스 넘어서기』(송태욱 옮김, 한길사 2005), 『세계공화국으로』(조영일 옮김, 도서출판b 2007), 『네이션과 미학』(조영일 옮김, 도서출판b 2009), 『정치를 말하다』(조영일 옮김, 도서출판b 2010), 『세계사의 구조』(조영일 옮김, 도서출판b 2012), 『‘세계사의 구조’를 읽는다』(최혜수 옮김, 도서출판b 2014). 이하에서 위 책들을 인용할 경우 제목과 면수만 밝힌다.

2) 『정치를 말하다』 54면. 그는 자신이 1970년대에 경제학에서 문학비평으로 전환한 이유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회고한다. “『자본』에는 이른바 경제학보다도 더욱 풍부한 통찰이 들어 있고, 경제학자는 도리어 그것을 알 수 없다는 것을 나는 일찍부터 확신했다. 문학비평으로 전환한 후에도 나는 끊임없이 『자본』에 대해 생각했다.” 「한국어판 서문」, 『마르크스 그 가능성의 중심』 8면.

3) 『세계사의 구조』 48, 52면.

4) K. Marx, Kritik des Gothaer Programms, 1875; Marx & Engels, Werke 19, Dietz Verlag 1957, 15면.

5) K. Marx, Das Kapital, 1867; Werke 23, 57~58면. 정본 국역본인 강신준 옮김 『자본』에서는 ‘Bildner’가 ‘사용가치를 낳는 어머니’로 번역되어 있다(『자본』 I-1, 도서출판 길 2008, 97면). 그러나 바로 뒤의 문장에서 맑스가 인용하는 페티(W. Petty)가 자연을 어머니로, 노동을 아버지로 비유하고 있다는 점에서 아버지인 노동은 자연소재의 형태를 변화시키는 ‘조형자’ 정도로 옮기는 것이 낫지 않을까 싶다.

6) K. Marx, Ökonomisch-philosophische Manuskripte; Werke, Ergänzungsbände 1, 516, 577면; 졸고 「맑스의 ‘단일한 과학’과 ‘새로운 유물론’」, 『역사와세계』 42호, 효원사학회 2012, 143~49면.

7) 『트랜스크리틱』 470~71면; 『세계사의 구조』 297~98면.

8) 그는 자신이 자본〓네이션〓국가라는 관점을 갖게 된 이론적 돌파(breakthrough)가 1998년에 이루어졌다고 술회한다. 『정치를 말하다』 80면.

9) 「보론 I: 교통에 대하여」, 『마르크스 그 가능성의 중심』 196~97면.

10) 『은유로서의 건축』 155면. 카라따니는 유물론적 역사인식을 시도했던 『독일 이데올로기』의 ‘교통형태’ 개념이 전체사적인 교환양식론으로 진전되지 못한 데는 엥겔스(F. Engels)의 탓이 크다고 본다. 그러나 ‘생산관계’ 개념을 맑스 아닌 엥겔스가 만들어냈다는 그의 주장은 근거 없는 억지라고 생각된다.

11) 『세계공화국으로』 56면. 다만, 카라따니는 인류가 정주생활을 하기 이전인 수렵채집시대의 유동민 사회에서는 교환은 존재하되 ‘교환양식’으로 시스템화되지는 않았다고 본다. 그리고 이 사회의 존재가 뒤의 인류사에서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는 것이 그의 주요한 논점이기도 하다.

12) 『세계사의 구조』 322~23면.

13) 『트랜스크리틱』 465~67면; 『정치를 말하다』 100~101면; 『세계사의 구조』 322~23면.

14) 『트랜스크리틱』 38면.

15) 『세계사의 구조』 268~69면.

16) 『마르크스 그 가능성의 중심』 12면.

17) “맑스는 오늘날 대부분의 사람들보다 훨씬 더 유통주의자였다. (…) 물론 그는 생산의 장소와 생산의 장소 안의 관계들을 강조했다. 그러나 교환을 위해 생산했던 것이다. 그것이 목적이었던 것이다. 『자본』이 상품에서 시작한다는 것을 잊지 말자. (…) 아무튼 임노동 없는 잉여가치의 존재를 부정하는 최소한의 이론적 이유도 생각해낼 수 없다.” I. Wallerstein, “Hôtel de lAmerique,” Espaces Temps 34/35, 1986, 45면. 또 같은 저자의 『사회과학으로부터의 탈피』, 성백용 옮김, 창작과비평사 1991, 201~209면을 볼 것.

18) 『트랜스크리틱』 426, 432면; 『세계사의 구조』 238면.

19) 『네이션과 미학』 60면; 『트랜스크리틱』 436면; 『세계사의 구조』 382면.

20) 『트랜스크리틱』 441면; 『세계사의 구조』 382면.

21) 『세계사의 구조』 307면.

22) 『세계사의 구조』 262면.

23) 같은 책 5~6면.

24) 『‘세계사의 구조’를 읽는다』 141~42면.

25) 『세계사의 구조』 357면.

26) 같은 책 301면.

27) K. Marx, Kritik des Gothaer Programms; Werke 19, 23~24면.

28) K. Marx, Das Kapital; Werke 23, 96면.

29) 기이하게도 『트랜스크리틱』에서 카라따니는 경제적 토대가 상부구조를 규정한다는 맑스의 견해를 두고 “사후적 또는 장기적으로 보면 옳다”고 말한다. 맑스에 대한 막스 베버(Max Weber)의 비판도 맑스 명제의 “일반론을 부정하는 것일 수는 없다”는 것이다. 『트랜스크리틱』 235~36면.

30) 『세계사의 구조』 330면.

31) 『세계공화국으로』107, 198면; 『세계사의 구조』 216~17면.

32) 『세계사의 구조』 216~17면.

33) 같은 책 222면.

34) 같은 책 331면.

35) 『트랜스크리틱』 16, 366면; 『세계공화국으로』 112, 184~85면; 『세계사의 구조』 331~34면.

36) 『세계사의 구조』 352면.

37) 같은 책 357~58면.

38) 편견이 작용한 한 예로, 맑스의 ‘연합된 생산자들’에 대한 전망을 카라따니가 ‘소생산자연합’으로 오해한 데 대한 비판은 졸고 「맑스의 공산주의 사상과 ‘개성’의 문제」, 『코기토』 69호, 부산대 인문학연구소 2011, 350면. 짤막하게나마 졸고 「근본적이면서 중도적인 근대극복론」, 『창작과비평』 2009년 가을호 447~49면에서도 같은 논지의 비판을 시도했다.

39) 졸고 「맑스의 공산주의 사상과 ‘개성’의 문제」 333~34면.

40) 『세계사의 구조』 104면.

41) K. Marx & F. Engels, Manifest der Kommunistische Partei, 1848; Werke 4, 476면.

42) 카라따니는 자본주의를 교환양식으로 파악한 『자본』의 획기적 전환을 다음과 같이 표현한다. “알뛰쎄르는 『독일 이데올로기』 무렵에 맑스의 인식론적 단절이 있었다고 했다. 그러나 만약 그렇게 말하고 싶다면 『정치경제학 비판 요강』에서 『자본』에 걸쳐 결정적인 ‘단절’이 있다고 해야 하며, 그것이 가치형태론이다.” 『트랜스크리틱』 326~27면.

43) 『세계사의 구조』 413면.

44) 『‘세계사의 구조’를 읽는다』 83~84면.

45) 졸고 「맑스의 과학적 사회주의와 현실적 과학」, 『창작과비평』 1994년 가을호 265면.

46) 이남주 엮음 『이중과제론』, 창비 20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