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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임성용 任成容
1967년 전남 보성 출생. 1992년 노동자문예 『삶글』에 시와 소설을 발표하며 창작활동 시작. 시집으로 『하늘공장』이 있음.
8616895@hanmail.net
달
공장은 숯막처럼 어두웠다
어깨 너머 퀭한 달이 얼굴을 내밀었다
늦은 밤,
주물 속에서 달을 퍼담았다
한줄기 목숨을 태워보내며
나날이 근력이 소진한 손발이 덜덜 떨리도록
딱정벌레처럼 엎드려 달을 건져올렸다
공장은 인간이 만들어낸 가장 완벽한 감옥
철조망이 가려진 신비하고 음울한 달의 언덕에서
간수들은 늙은 인부가 빨리 쓰러지기를 기다렸는지도 모른다
꺼내자마자 금방 식어버린 달의 물방울들
그는 자신의 몸을 파낸 형틀에 달을 쏟아붓는다
달이 멎는다
달빛 서러운 밤에
그의 식구들은 달의 공장으로 끌려갔다
달의 분화구에 정원을 만들고 도시를 건설했다
하늘에서도 악독한 공장주를 만난 그가 낳은 자식들이
이른 새벽, 달의 미끄럼틀을 타고 주르륵 흘러내렸다.
부리
새의 입을 부리라고 한다
부리는 딱딱하다
너무 딱딱해서 입술이라고 부르지 않는다
새의 혀도 마찬가지다
그가 지닌 부리를 닮아 딱딱하다
사람의 혓바닥처럼 부드럽지 않고
뱀의 혓바닥처럼 차갑지도 않다
자국을 남기는 이빨을 버렸으므로
탐욕도 폭식도 없다
살기도 독기도 없다
다만, 새들은 딱딱한 부리를 움직여 노래한다
부드러운 혀로는 감히 흉내낼 수 없는
천상의 모든 아름다운 노래는
부드러운 입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다
쪼고 또 쪼아 벽돌조각 같은 부리,
닳고 닳아 쇳조각 같은 혀가 저렇게 아름답다
내 단단한 부리 끝에 흐느낌이 물려 있는
저녁 으스름, 쪽창문 나뭇가지에 귀를 걸어두면
누군가 부르다 만 노래 한구절이 이명처럼 울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