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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시평
수능, EBS 교재 연계 아닌 교과서 연계로
성기선 成基善
경기도율곡교육연수원장, 가톨릭대 교수 sungkisun@goe.go.kr
수능 출제 오류를 둘러싼 혼란이 계속되면서 ‘수능-EBS 교재 연계율 70%’가 갖는 문제점이 새삼 주목받고 있다. 교육방송 교재를 수능시험과 연계시켰던 처음의 의도는 ‘사교육비 절감’이고 ‘공교육 정상화’였다. 물론 계층간 사교육비 격차가 학업성적 격차로 이어지는 불평등 구조를 해결하기 위한 시도라는 점은 인정할 수 있다. 그러나 이로 인해 나타나고 있는 예상치 못했던 문제점은 이제 그 정도를 넘어섰다. 몇가지만 지적해보고자 한다.
첫째, EBS 교재와 수능시험의 연계율을 70%로 정해놓다보니, 수험생들은 교과서를 공부하지 않고 EBS 교재를 그냥 외우는 방식으로 시험공부를 하고 있다. 특히 영어의 경우 영어원문 대신 번역본을 반복 학습함으로써 영어가 아니라 암기력 시험처럼 변질되었다. 창의성과 문제해결 능력을 기대하기 어려운 교육이 지배적이다. 난이도 역시 너무 낮아져서 공부한 만큼의 결과를 얻지 못한다는 불만이 높아진 지 오래다.
둘째, EBS 수능교재 자체에 많은 오류가 발생하고 있다. 교과서를 제작하는 데서는 수많은 검정단계가 있는 반면 EBS 교재는 그러한 엄격한 절차를 거치지 않는다. 따라서 매우 심각한 오류들이 거름장치 없이 고스란히 교재에 담기게 되고, 이를 70% 반영해야 하는 수능시험에서도 그대로 답습해 출제하고 있다. 출제자들이 짧은 시간 동안 합숙해서 출제해야 하는 상황에서는 잘못을 찾아 수정할 만한 여력이 없게 마련이다. 이러한 구조적 문제 탓에 수능 출제 오류가 연거푸 발생하는 것이다.
셋째, 공교육의 학교현장에서도 교과서를 교재로 활용하지 않고 모두 EBS 수능 교과서를 사용하고 있다. 아울러 교육과정에 대한 교사의 자율권과 전문성은 EBS 강사들의 강의에 밀려 철저히 무시된다. 공교육 정상화라는 취지가 오히려 공교육을 파탄, 획일화시키고 교사를 무기력하게 만드는 결과를 초래했다. EBS 교재와 수능을 연계하는 정책이 모든 것을 빨아들여서 공교육의 정상적인 교육과정 운영이 불가능하다는 불만이 교사들로부터도 광범위하게 나온다. 교사가 다양한 교재와 수업자료를 활용해 학생들과 갑론을박을 벌이면서 학습을 해야 하는데, 현실은 교사가 수업에 들어가서 EBS 방송강의를 틀고 EBS 교재로 문제풀이를 하면서 질의응답도 없는 침묵의 문화가 이어질 뿐이다. 21세기에 필요한 교육의 방향과는 너무나 괴리가 큰 현실이다. 정책 취지인 공교육 정상화와도 거리가 먼 참으로 한심한 상황이다.
그렇다면 근본적으로 EBS 강의가 공교육인가라는 질문이 제기될 수 있다. 공교육의 특징은 공적 자금으로, 공공성을 추구하며, 공적인 가치를 보편적으로 구현하는 교육이라고 볼 수 있는데, 이러한 준거로 볼 때 EBS 강의가 공교육의 특성을 지니고 있는가? 한편으로는 그러한 특성을 공유하고 있지만 다른 한편으로 보면 분명 공교육과는 다른 측면을 갖고 있다. 이를테면 교육방송은 공사(公社)로 운영되지만 자체 수익을 추구한다. 그리고 부분적이지만 사교육기관에 근거를 두고 있는 다양한 강사들이 많이 참여하고 있다. 공교육 정상화를 위해 EBS가 보조적 역할을 수행하도록 하는 것은 의미있지만, 그것과 수능을 70% 이상 연계하라는 무리한 정책을 강요하는 일은 공교육을 왜곡하는 주범이라는 비판을 피할 수 없다.
최근 수능개선위원회가 2016학년도 수능 영어영역에서 번역본으로 학습하는 비교육적인 풍토를 막기 위해 EBS 교재 지문을 그대로 출제하는 문항을 줄이겠다고 발표한 바 있다. 아울러 특정 대학 출신 출제위원의 비율을 낮추겠다고 한다. 그러나 이러한 미봉책으로 공교육 정상화를 가져오기는 부족한 듯하다. 수능 출제 오류를 줄이는 데 만족할 것이 아니라 학교교육이 본연의 모습으로 돌아가 유의미한 학습공간이 되도록 해주어야 한다.
매년 반복되는 수능 난이도 조절 실패로 수많은 수험생이 허탈감을 느낀다. 1,2점으로 당락이 결정되는 고부담시험에서 이러한 문제가 반복된다면 교육에 대한 신뢰도가 더욱 추락하게 된다. 차제에 수능을 자격고사로 변화시킬 것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 수능은 대학 입학을 위한 최소 자격으로 두고, 대학에서는 수능 최저기준을 다소 느슨하게 잡아 학생부와 면접 및 논술 시험 등으로 선발하는 방식을 적극 고려해볼 만하다. 다만 본고사 부활은 사교육비 증가, 계층간 교육격차 심화, 공교육의 파행적 운영, 지나친 학습부담 등의 우려가 있기 때문에 철저히 통제해야 한다. 수능의 자격고사화와 함께 지금까지 시행한 수많은 전형 가운데 성공적이라고 판단되는 다양한 방법을 함께 활용한다면 큰 무리 없이 입시제도가 정착될 것이다. 학교수업이 단답형 시험문제 풀이에서 벗어나서 다양하게 전개되도록 하고, 학생들은 수동적인 입시준비가 아닌 능동적으로 자신의 삶을 탐구하고 세상을 탐구할 수 있는 학습을 경험하도록 하는 방향으로 제도를 기획할 필요가 있다.
우리는 21세기 변화되는 삶을 살아갈 아이들이 무엇을 준비해야 하는가를 고민해야 한다. 이제는 변별력이나 객관성이 중시되는 시대에서, 얼마나 가치있는 것을 심도있게 배우는가라는 교육 내용과 방법의 타당성이 중시되는 시대로 변화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사회적 합의기구를 통해 거시적 사회변화와 교육변화를 설계하고 함께 실천해가는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EBS 교재와 수능 출제 오류 등의 문제는 공교육을 어떻게 끌고 가야 하느냐는 고민을 우리에게 던져주고 있다. 이제는 교육방송에 대한 강조에서 벗어나 교과서, 교실 수업을 강조하는 것으로 정책을 조정할 필요가 있다. 그것이 공교육 정상화의 궁극적 방향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