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초점
서태지와 함께 달의 저편으로, ‘컴백홈’
황시운 장편소설 『컴백홈』
서영인 徐榮裀
문학평론가. 평론집으로 『충돌하는 차이들의 심층』 『타인을 읽는 슬픔』이 있음. sinpodo12@hanmail.net
130킬로그램의 몸무게로 행복해지기란 쉽지 않다. 더구나 그가 어려서부터 쭉 비만이었고 현재 여고생이라면. 엄마는 외할머니와의 불화 때문에 누구라도 좋다는 심정으로 아빠와 결혼했고, 무능하고 우유부단한 아빠는 늘 생활로부터 도피할 궁리만 했다. 어린 딸은 그런 부모 사이에서 무너진 자존감을 끊임없이 먹는 것으로 달래야 했다. 이제 뚱뚱하기 때문에 왕따가 된 것인지 왕따이기 때문에 뚱뚱해진 것인지도 알 수 없는 지경이 되어버렸다.
제4회 창비장편소설상 수상작 『컴백홈』(창비 2011)의 이야기다. 비만의 왕따소녀 유미는 주체할 수 없는 식욕 때문에 엄마에게 수시로 맞으며 학교에서는 사흘걸이로 ‘학년짱’ 패거리에게 돈을 갖다바쳐야 되고 할당액수를 채우지 못하면 집단구타를 당한다. 구타와 모욕에 시달리면 프링글스 감자칩과 라면과 비엔나 쏘시지를 엄청나게 먹어치우면서 나날이 살이 찌고, 이는 다시 참담한 좌절감을 부른다. 구타와 폭식, 모욕과 좌절의 일상은 무한반복되며 거기로부터 벗어날 길은 보이지 않는다. 어떻게든 이 삶을 견딜 방법이 필요했으니 ‘슈퍼울트라 개량돼지’ 왕따소녀는 언젠가 자신은 저 차갑고 날카로운 달의 저편으로 떠날 것이라며 다른 세상을 꿈꾼다. 그러나 달은 너무 멀리 있고 단숨에 달의 저편으로 날아가기에 그녀는 너무 무겁다.
흡연, 음주는 물론이고 폭력, 강간, 임신, 가출에 이르기까지 왕따소녀 유미와 학년짱 지은을 중심으로 전개되는 여고생들의 일상은 확실히 충격적이다. 그러나 그것을 묘사하는 소설의 어조는 의외로 담담해서 엽기적이거나 선정적으로 치닫기 쉬운 이야기를 차분하게 억누른다. 그래서 그녀들의 일상은 경악스런 폭로의 대상이 아니라, 언제 어디서 시작되었는지 알 수 없지만 겪어나가지 않으면 안되는 매일의 일과가 된다. 헌신적이고 열정적인 선생님도 없으며 외로운 그녀들에게 손을 내미는 친구도 없다. 그러므로 견디고 이겨내면 세상의 따뜻한 미소를 만날 수 있을 것이라든가 하는, 존재할 것 같지 않으므로 더욱 감동적인 결말 따위는 없다. 이 또래의 학교생활이란 어른들도 아이들도 이해할 수 없는, 이미 그렇게 되어버린 불가해한 일상이다.
가혹한 곳은 학교만이 아니다. 세상은 그들에게 언제나 불친절했으니, 가출한 지은을 보호하는 미혼모 보호시설도 예외가 아니다. 그곳에서 임산부들은 양순한 산모가 되어 규칙에 따라 밥을 먹고 산책을 하며, 세상의 친절은 결코 댓가없이 주어지지 않는다는 것을 배운다. 어른들의 윤리란 오갈 데 없는 미혼모를 거두어주지만 그 댓가로 아기를 중개하고 거래하는, 계산바른 친절의 다른 이름일 뿐이다. 어른들의 윤리에 동의할 수 없기 때문에 이 아이들의 가출은 반복된다. 어디에도 이들의 ‘홈’은 없다. 집을 나오고 보호시설을 나오고, 또다시 길 위의 어딘가에 이 아이들은 서 있다.
세상 밖에 다른 세상이 있지 않다는 것, 그리고 불친절한 세계를 함께 견디는 친구를 동지로서 믿는 것. 이 소설의 서늘한 성장은 여기에서 온다. 온갖 비행을 저지르더라도 살인은 할 수 없다며 임신 사실을 알자 돌연 가출을 하는 지은, 벗어날 수 없는 괴롭힘 때문에 다이어트를 결심하는 시점에서도 라면을 끓여먹는 대책없는 유미지만, 그들은 서로가 나름대로 최선을 다해 자신의 삶을 살고 있다고 믿는다. 이들은 서로의 그 어쩔 수 없음을 이해하며, 그래서 어떻게든 살아남기 위해 때로 거칠어지고 때로 바보가 된다는 것을 안다.
사실 90년대의 문화대통령 서태지가 2000년대의 고등학생 유미의 꿈이 되는 이유가 충분한 것은 아니다. 아마도 그것은 유미의 것이라기보다는 서태지와 함께 성장한 작가의 것일 터이다. “반복됐던 기나긴 날 속에 버려진 내 자신을 본 후 나는 없었어 그리고 또 내일조차 없었어 (…) 그래 이젠 그만 됐어 나는 하늘을 날고 싶었어 아직 우린 젊기에 괜찮은 미래가 있기에 자 이제 그 차가운 눈물은 닦고 come back home”(서태지 「come back home」). 돌아오라고 말하는 이와 뛰쳐나올 수밖에 없었던 이는 서로 교차하면서 대화하고 이해하며 그래서 이들은 평등하다. 그러므로 소설 속 어느 누구도 세상은 여전히 따뜻한 곳이라고, 그러므로 돌아와야 한다고, 고통을 견디면 새로운 날이 온다고 함부로 말하지 않는다. 지은이 아기를 낳고 유미가 집으로 돌아가는 결말이 다소 상투적일 수 있지만, 적어도 이들이 불친절한 세상과 화해할 생각이 없다는 것은 분명하다. 세상을 믿지도 않지만 세상을 핑계대지도 않는 자아들. 세상과 다른 꿈을 갖고 있기에 절망뿐인 세상으로 돌아가는 이들의 성장을 ‘컴백홈’식 성장이라 부를 수 있을까. 한줌의 온정도 반전도 허락하지 않는 차갑고 날카로운 성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