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 50주년 특별기획: 창비에 바란다
창작으로 이어지는 담론이 되었으면
김종엽 金鍾曄
한신대 사회학과 교수, 본지 편집위원. 저서 『웃음의 해석학』 『연대와 열광』 『에밀 뒤르켐을 위하여』 『좌충우돌』, 편서 『87년체제론』 등이 있음. jykim@hs.ac.kr
1월 28일, 콧날이 시큰해지는 겨울 추위가 조금 누그러진 날이었다. 약속시간에 딱 맞추어 안경알 너머 맑은 눈빛의 조효제(趙孝濟) 성공회대 사회과학부 교수가 까페 창비에 들어섰다. 사진기자가 셔터를 누르는 중에 시작해서 대략 한시간 남짓 세상과 『창비』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조효제 교수의 말투는 은근해 듣기 편안하지만, 담긴 뜻은 늘 두겹 이상이라 경각심을 가지고 새겨들어야 하는 편이다. 그래서 그와의 대화는 ‘즐겁다’기보다 ‘재미’있다. 『창비』를 읽어온 많은 분들 가운데 조효제 교수를 인터뷰하기로 한 데는 나름 이유가 있다. 그가 10년 전쯤 창간 40주년을 맞아 지면혁신을 위해 만든 위원회에서 독자위원으로 활동했기 때문이다. 그러고 보면 10년이 훌쩍 지난 셈인데, 이번엔 50주년을 맞아 지난 10년을 돌아보며 창비가 그간 어떠했는지 또 다가올 10년을 향해 어떠해야 할지 듣고 싶었다.
사실 제가 창비의 오랜 독자이고, 그렇게 열심히 했다고 자평은 못하겠지만 줄곧 세교연구소 회원이기도 했으니 창비를 관찰하기 좋은 적당한 거리에 서 있었던 셈이지요. 하지만 서 있는 자리가 그랬다는 것이지 그동안 성실하게 관찰해왔다는 말은 아닙니다. 그런 점을 감안하고 들어주신다면, 몇가지 말씀은 드릴 수 있겠네요. 이번에 50주년에 즈음한 신임 주간의 기자회견 보도를 보니 새로운 『창비』 표지가 소개되어 있더군요. 타이포도 꽤 멋지게 바꾼 것 같고요. 하지만 관련해서 10년 전에 김교수가 한 이야기가 생각납니다. 그때 이렇게 말하셨죠. 문예지와 정론지를 겸하는 계간지로서 『창비』는 책의 형식으로서는 완성된 것이고 진화가 끝난 매체인 것 같다, 이미 40주년 이전에 그랬던 것 같다. 동의하는 바입니다. 『창비』에서 변화와 혁신의 일환으로 타이포와 표지를 바꿀 수 있고 그런 시도를 해야겠지요, 하지만 그것이 중요한 변화는 아니고 결국 혁신은 계간지 『창비』의 정체성 그리고 계간지와 출판기업 창비의 관계, 계간지와 사회의 관계에 있는 것 같습니다.
자신이 한 말을 오래 뒤에 다시 마주치는 체험은 당황스러울 때가 많다. “진화가 끝났다,” 내가 그렇게까지 단정적으로 말했던 것 같진 않은데, 하며 약간 어찔할 때, 조효제 교수는 이미 중심 문제로 성큼 들어가버렸다.
계간지 정체성과 관련해서 떠오르는 질문은 이렇습니다. 문예지이면서 동시에 정론지랄까 그런 이원적 지향이 ‘창비다움’인데, 이 둘이 지난 10년간 또는 더 길게는 지난 50년 동안 얼마나 유기적으로 통합되어왔는가 하는 것입니다. 『창비』 편집진은 분과학문의 좁은 테두리에 갇히고 싶지 않은 인문사회과학 전공자와 문학비평가가 결합한 집단으로 보입니다. 이 둘의 결합이 지난 세월 얼마나 유기적인가도 물어봐야겠지만, 더 나아가 창비가 이중적 지향을 가지고 펼쳐온 논의가 창작자들의 작품 속에 녹아들어가는 과정이 요즘도 제대로 이루어지고 있는지 살펴야 할 듯합니다. 제 관찰이 아무래도 피상적인 수준에 지나지 않겠지만, 창작자들과 『창비』 편집진의 결합이 충분히 긴밀하다는 느낌이 잘 오는 건 아닙니다.
그것이 사회적인 것이든 문예적인 것이든 창비가 실천한 비평 작업이 창작자와의 교류 속에서 새로운 작품을 낳는 데 기여하고 있느냐는 조효제 교수의 질문은 민족문학의 ‘산실’로 불렸던 창비로서는 깊이 새겨봐야 할 것이었다.
창비의 정체성과 관련해서 한가지 더 이야기하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창비』가 문예지와 정론지를 겸하는 것에서 더 나아가 그 두 방면에서 나름의 사상운동을 전개하고자 해왔습니다. 얼마 전 일이라 떠오르는 것인데, 표절과 문학권력 논란 때 창비의 대응은 여느 문예지와 달랐습니다. 다들 쉽게 사과하고 털어버리려 하는 편이었는데 창비는 그러지 않았고 그래서 더 힘든 상황을 겪었습니다. 그런 대응도 창비가 사상운동을 전개해온 집단이라는 데서 연원하는 것 같습니다. 이렇게 자기 정체성을 지키는 힘과 자세를 저는 긍정적으로 평가합니다. 하지만 다른 한편 창비가 담론의 주창자인 면과 더불어 담론들의 마당 역할도 어느정도는 할 필요가 있지 않을까 합니다. 계간지에 창비 입장과 무관하게 자유롭게 발언할 수 있는 코너가 있다면, 그것이 창비의 개방성과 역동성에도 도움이 되고 창비 외부의 지식인들에게도 도움이 될 것이라 생각됩니다.
담론의 주창자이자 담론의 마당이 되는 가장 좋은 길은 『창비』 지면이 논쟁의 장이 되는 것일 듯하다. 우리 사회에서 논쟁의 열기가 식은 것이 창비 탓만은 아니다. 지식인들의 강단화와 전문화 그리고 표준화된 논문중심주의 등 여러 요인이 작동한 전반적 현상이다. 하지만 확실히 이런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서 노력이 이루어져 하며, 창비가 그런 노력에 앞장서야 할 필요가 있다. 우리 지식계 전반의 작풍 쇄신 없이 쉽지 않은 일일 것이다. 하지만 창비로서는 자신의 작풍을 새롭게 하는 작업과 계간지 지면을 조정하고 코너를 만들어 편집에 애쓰는 일을 함께 시도해야 할 것이다. 어려운 문제제기가 더 이어졌다.
저로서는 어림짐작 정도 해보는 것일 것입니다만, 계간지 『창비』와 기업으로서 창비의 관계도 짚어볼 문제인 것 같습니다. 계간지는 지난 세월 창비 전체를 이끄는 플래그십(flagship)이었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계간지가 앞으로도 그런 지도력을 계속해서 행사할 수 있을지요? 출판사 창비의 젊은 직원들 눈에는 계간지가 그 일을 오래 해오신 ‘어르신들’이 언덕 위에서 하고 있는 일로 비춰질 가능성은 없는지요?
연륜에서 얻은 지혜를 지키면서 동시에 활력을 유지하고 내면적 동의를 이끌어내는 지도력을 발휘하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다. 계간지가 플래그십이라고 하지만 뒤를 따르던 선단이 전보다 훨씬 커진 것도 사실이다. 창비 편집위원이라면 누구나 이 질문 앞에서 책임감을 느낄 것이다. 이런 문제제기에 자신있게 준비된 답변을 일부라도 내비칠 만큼 준비가 잘 되어 있었어야 하는데 그렇지 못했기도 하지만, 들으면서 창비 편의 변론을 펼칠 사안이라기보다 50주년을 맞아 창비에 던져지는 묵직한 덕담이라 여겨졌다. 그래도 좀 가벼운 질문을 하고 싶어졌다. 큰 줄기의 이야기가 살짝 마무리되는 틈을 짚어, 그동안의 계간지의 기획이나 꼭지 가운데 마음에 쏙 들었던 것은 없었는지 물어보았다.
‘문학초점’이 잘 읽힙디다. 읽고 있으면 마치 옆에 앉아서 대화를 듣는 것 같은 느낌이고, 해면이 물을 빨아들이듯이 쏙쏙 들어옵니다. 이런 포맷을 정론 영역에서도 정규적으로 진행하면 좋겠다는 생각입니다. 생각난 김에 한마디하면, 신문은 지면별 열독률 조사 같은 것을 해서 지면 개편의 자료로 많이 삼던데, 창비도 꼭지별 열독률을 조사하면 좋을 것 같습니다. 계간지 경우 사서 한달 뒤에 읽는 면과 바로 읽는 면이 다르고, 책상에서 읽는 면과 화장실에서 읽는 면이 다르고, 머리로 읽는 면과 가슴으로 스미는 면이 다를 것입니다. 책상에 앉아서 머리로 열심히 읽는 글도 모아야겠지만, 가슴을 적시는 글이야말로 잡지의 반짝이는 부분일 것 같습니다.
문학초점 같은 꼭지를 하나 더해본다…… 고민해볼 만한 문제인 듯하다. 그리고 꼭 신문과 같은 방식일 필요는 없지만, 일종의 열독률 조사 같은 것을 정례적으로 해볼 생각을 왜 하지 못했나 싶었다. 정기구독자가 꽤 있으니 그렇게 어려운 작업도 아닌데 말이다. 조효제 교수가 아이디어 많은 분임을 몰랐던 것도 아닌데, 지난해 지면혁신 논의가 있을 때 왜 모시고 이야기를 들어보지 않았던가, 아쉽게 느껴졌다. 내친김에 여쭸다, 조효제 교수가 『창비』 편집위원이라면 50주년을 맞아 해보고 싶은 기획 같은 것이 있는지.
창비는 지난 세월 우리 사회 현안에 그때그때 대응하며 역사의 수레바퀴살 가운데 하나로 작동해왔습니다. 저는 이런 역사를 창비의 귀한 자원이자 도약의 지침으로 삼은 것이 좋다고 생각합니다. 50년 전체는 아니더라도 예를 들어 지난 10년 동안 발행된 계간 『창비』 40권에 실린 글 가운데 2016년의 눈으로 보았을 때, 지금도 영감을 주는 글을 한번 모아보는 작업, 단순히 베스트오브베스트가 아니라 지금 시점에서도 현재성을 뿜어내는 글을 뽑고 모아보는 것입니다. 그러면 창비가 어떤 가치를 추구했는지 독자에게 더 분명하게 내보일 수 있을 겁니다. 그리고 이런 작업은 창비 자신의 작풍과 작업 방향을 잡아나가는 데도 도움을 줄 수 있을 듯합니다.
『창비』 편집위원들이 하기보다 창비에 관심 가져준 독자들 가운데 선정위원을 위촉해서 그런 작업을 해본다면, 창비가 스스로를 가다듬고 새롭게 방향을 잡아가는 데 큰 도움이 될 듯했다.
이런 생각도 들더군요. 창비가 우리 사회에서 동아시아론을 주도해왔습니다. 그런데 창비의 동아시아론은 ‘비평가들의 동아시아’라는 인상이 강한 듯합니다. ‘창작자들의 동아시아’를 좀더 추구하면 어떨까요? 비용이 얼마나 들지 모르겠지만, 레지던스 프로그램을 시도해볼 수 있을 것입니다. 중국, 일본 같은 큰 나라보다 베트남, 몽골, 오끼나와의 좋은 작가들을 석달도 좋고 반년도 좋고 초청해보는 것입니다. 올해는 이분을 모신다, 그렇게 내걸고, 그런 작가의 한국 경험도 섞인 글을 『창비』에도 싣고, 한국 작가들 그리고 창비 독자와의 만남도 가지고, 새로 여는 ‘창비학당’에서 강의도 하게 하는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겁니다.
창비는 지금까지 동아시아 작가들의 동향을 모니터하고 소개하는 일을 해왔다. 하지만 그의 제안처럼 더 체계적이고 뚜렷한 프로그램으로 그런 일을 할 필요가 있는 것 같다. 그렇게 해서 동아시아의 여러 작가들이 참여해보고 싶은 소망을 불러일으킬 만한 좋은 프로그램으로까지 발전시킨다면, 작가들의 동아시아를 형성하는 데 적지 않게 기여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런 이야기를 하던 즈음 예정된 인터뷰 시간이 마무리되었다. 정리하고 보니 좀 심심한 인터뷰인 듯하다. 창비에 대한 더 열렬한 애정과 질타 그리고 오해의 위험을 무릅쓰는 강렬한 비유를 담은 이야기들이 있었지만, 오프더레코드를 전제로 한 것이라 옮겨 적지 않아서 심심할 수도 있다. 하지만 우리 사회가 앓고 있는 것 하나는 ‘여과 없는 이야기’의 병통이기도 하다. 그리고 독서의 즐거움은 행간을 더듬어가는 데 있음을 창비 독자들은 잘 알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