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과비평

창작과비평

정기구독 회원 전용 콘텐츠

『창작과비평』을 정기구독하시면 모든 글의 전문을 읽으실 수 있습니다.
구독 중이신 회원은 로그인 후 이용 가능합니다.

현장

 

민주주의는 진전되고 있는가

신고리5·6호기 공론화위원회 활동 평가

 

 

하승수 河昇秀

비례민주주의연대 공동대표. 저서 『착한 전기는 가능하다』 『삶을 위한 정치혁명』 『껍데기 민주주의』(공저) 등이 있음. haha9601@naver.com

 

 

1. 글을 시작하며

 

“시민참여단이 희망인 이유가 거기에 있었습니다. 마침내 2박 3일의 종합토론회까지 모두 마친 471분의 시민참여단이 드디어 위원회에 지혜롭고 현명한 답을 주셨습니다. (…) 누구보다도 ‘작은 대한민국’으로 불러도 좋을 시민대표이자 우리 시대의 현자 471분 시민참여단 분들은 감동 그 자체였습니다.”

—신고리5·6호기 공론화위원회 발표문 중에서

 

“국가 중요 정책을 시민들의 숙의 과정인 공론화를 통해 결정한다는 진일보한 참여민주주의 과정임에도 불구하고 편파적인 언론환경과 진영논리, 정부 출연기관과 공기업의 건설재개 측 참여, 기계적인 중립과 무능함을 보인 공론화위원회, 당사자인 부산·울산·경남 지역의 부족한 의견 청취, 미래세대 배제, 불충분한 자료 검증, 상호토론 부족과 숙의 과정 부족 등 여러가지 문제점으로 인해 애초의 취지를 충분히 살리지 못한 한계를 보여준 결과라고 평가한다.”

—환경운동연합 「신고리5·6호기 공론화위원회 권고안에 대한 입장」 중에서

 

지난 5월 9일 치러진 대통령선거에 앞서 문재인 후보는 신고리5·6호기의 공사 중단을 공약했다. 그러나 당선 이후 문재인 대통령은 6월 19일 고리1호기 영구정지 기념행사에 참석해서 신고리5·6호기 건설중단 문제에 대해서는 사회적 합의를 이끌어내 그 결정에 따르겠다고 밝혔다. 울산과 부산의 경계선에서 가까운 울주군 서생면에 건설 중인 신고리5·6호기는 올해 5월 말 기준으로 종합공정률이 28.8%인 상황이었다.

그리고 문재인 대통령은 6월 27일 국무회의를 통해 신고리5·6호기 공론화위원회(이하 공론화위)를 구성해서 공론조사 방식의 공론화를 추진하겠다고 발표했다. 그후 7월 24일 공론화위가 정식 출범했고, 3개월여의 공론화 과정을 거쳐 10월 20일 최종 발표가 있었다. 그 결과는 471명의 시민참여단 중 59.5%가 건설재개를 선택했다는 것이었고, 정부는 이 결과를 받아들여 신고리5·6호기 건설공사를 재개했다.

그러나 신고리5·6호기 공론화 결과가 발표된 이후에 다양한 평가들이 나오고 있다. 앞에서 인용한 두 견해도 그중 일부다. 이처럼 민감하고 중요한 국가적 사안에 대해 본격적인 심의(숙의)민주주의 방식을 적용한 사례는 처음이었던 만큼, 신고리5·6호기 공론화에 대해서는 앞으로 심도있는 평가가 필요할 것이다. 평가는 아마도 탈핵(탈원전) 및 에너지정책이라는 측면과 심의민주주의라는 측면 양쪽에서 이뤄지게 될 것이다. 신고리5·6호기 공론화 과정 자체가 양측에서 주목을 받았기 때문이다.

탈핵(탈원전)과 관련해서는 이번 공론조사 결과에 상호모순되는 측면이 있어 앞으로 상당기간 논란이 계속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시민참여단은 신고리5·6호기 공사재개 여부와 관련해서는 59.5%가 찬성 쪽을 최종 선택했지만, 원전정책의 향후 방향과 관련해서는 ‘원전축소’를 선택한 비율이 53.2%에 달했다. 반면에 원전을 유지하자는 비율은 35.5%, 원전을 확대하자는 비율은 9.7%였다.

결국 시민참여단의 의견은 ‘원전은 앞으로 축소해나가되, 신고리5·6호기는 이미 공사를 시작했으니까 여기까지는 짓자’는 것으로 요약할 수 있다. 그러나 이렇게 할 경우에 폐쇄 중인 고리1호기를 포함해 25기인 대한민국 원전 개수는 일단 30기까지 늘어나게 된다. 현재 건설공정이 많이 진척된 신고리4호기, 신울진1·2호기에 이어 신고리5·6호기까지 건설되기 때문이다. 이를 두고 단기적으로는 불가피하다는 의견도 있지만, ‘탈원전을 표방하는 문재인 대통령의 임기 중에 원전이 늘어나는 것은 모순’이라는 의견도 있다. 이런 쟁점들에 대해서는 앞으로 추가적인 논쟁이 불가피할 것이다. 그러나 이 글에서는 탈핵(탈원전) 자체에 대한 논의보다는 처음 시도한 본격적인 심의민주주의라는 측면에 대해 나름의 평가를 해보고자 한다.

 

 

2. 신고리5·6호기로 본 대의민주주의와 심의민주주의

 

전세계적으로 대의민주주의의 한계가 노출되면서 직접민주주의와 심의민주주의에 대한 기대가 크다. 국회와 정치에 대한 불신이 큰 대한민국에서도 촛불 이후에 국민소환, 국민발안, 국민투표 같은 직접민주주의 제도에 대한 기대가 커지고 있다. 국회에서 논의 중인 개헌 문제에서도 직접민주주의 제도의 도입은 주요 쟁점 중 하나다. 직접민주주의는 대의민주주의를 보완하는 장치로 이번 개헌에서 반드시 도입될 필요가 있다. 자유롭고 동등한 시민들의 심사숙고를 거쳐서 정치적 결정을 하는 심의민주주의(deliberative democracy)도 주목을 끌고 있다. 합의회의(consensus conference), 시민배심제(citizen’s jury), 공론조사(deliberative polling), 시민의회(citizen’s assembly) 등이 심의민주주의 제도로 논의되고 있고, 실제로 많은 국가에서 다양하게 시도되고 있다.

그러나 직접민주주의나 심의민주주의가 대의민주주의를 대체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여전히 민주주의 국가라면 어떤 방식으로든 선거를 실시하고 있다. 그리고 선출된 대표자가 중요한 의사결정 대부분을 최종적으로 내리도록 각국의 헌법이 규정하고 있다.

직접민주주의는 아직까지 대의민주주의를 보완하는 역할이다. 국민들이 직접 국민투표를 할 때도 그 결과가 정부를 구속하는 효력을 갖는 경우도 있지만, 자문적 효력 정도에 그치는 경우도 있다. 후자의 경우에는 국민투표에도 불구하고 최종적인 의사결정은 선출된 대표자들의 몫이다. 심의민주주의 역시 기존의 대의민주주의를 대체할 수는 없다. 많은 국가에서 시행 중인 합의회의, 시민배심제, 공론조사, 시민의회는 결국 대의민주주의 시스템을 거쳐야만 의사결정으로 최종 확정된다.

여기에서 한가지 짚고 넘어가야 할 점은, 신고리5·6호기 공론조사의 경우 자문적 효력을 가질 수밖에 없었음에도, 사실상 구속력을 갖는 것으로 정해졌다는 점이다. 대통령을 비롯한 정부가 시민참여단의 판단에 따르겠다고 여러차례 공언했기 때문이다. 법적으로는 대통령이 국무회의를 거쳐 최종 결정하는 절차를 밟았지만, 내용적으로는 시민참여단의 판단이 정치적 구속력을 갖게 된 것이다.

이 구속력의 긍정적인 측면은 시민참여단에 분명한 권한이 주어짐으로써 참여의 동기를 끌어올릴 수 있었다는 점이다. 시민참여단의 높은 참여율(500명 중 471명이 끝까지 참여)은 이런 측면에서 바라볼 필요가 있다. 부정적인 측면은 선거를 통해 선출된 대통령이 자신의 공약을 이행할 책임을 회피한 것으로 볼 수도 있다는 점이다. 선거 이후 긴 시간이 지난 것도 아니었는데 공론조사에 맡겼기 때문이다.

이렇게 할 것이었으면, 대선공약부터 ‘신고리5·6호기는 이미 건설 중이기 때문에 공론화를 통해 결정하겠다’고 공약하고 그것을 지키는 과정으로 공론화를 진행하는 것이 바람직했을 것이다. 선거운동 기간에는 백지화를 공약했다가 대선 직후 공론화를 통해 결정하겠다고 말을 바꾼 것은 선거공약의 의미를 훼손하는 일이다.

앞으로도 이런 일은 발생할 수 있다. 그럴 경우 ‘선거를 통해 선출된 대표자가 선거공약을 이행하지 않고 심의민주주의 제도로 의사결정을 하겠다고 하는 것은 민주적인 태도인가, 아니면 책임 회피인가?’라는 의문이 제기될 것이다. 이런 근본적인 문제 외에도 신고리5·6호기 공론화 과정에서는 구체적으로 짚어볼 부분들이 많이 있다.

 

 

3. 이번 공론화에서 짚을 점들

 

시민들의 심사숙고를 거쳐서 의사결정을 하는 심의민주주의 방식에 공론조사만 있는 것은 아니다. 그중 합의회의나 시민배심제는 비교적 소규모로 이뤄지는 방식이라 아마도 신고리5·6호기 건설재개라는 민감한 이슈를 15~20명의 시민이 참여하는 방식으로 의사결정하기는 어렵다고 판단했을 것이다.

공론조사는 주어진 사안에 대해 일반 여론조사를 통해 질문하고 그 결과를 수집한 다음, 그중에서 성·연령·지역 등을 고려하여 토론참여자를 선정하는 방식이다. 그리고 며칠간의 토의모임에서 찬반토론 등의 공개적 심의를 거친 뒤에 다시 의견을 취합해서 최종 심사숙고된 의견을 수렴한다.1

공론조사가 제대로 되려면 ‘충분한 정보’와 ‘진지한 심의’가 중요하다. 토론에 참여하는 사람들은 타인과 토론하는 상호작용 속에서 스스로 기꺼이 전환할 수 있으며, 그 과정에서 기존 정치과정의 주요 수단인 협상, 거래, 강압, 조작, 기만이 아니라 이성적 설득을 해야 한다.2

이번 신고리5·6호기 공론화 과정에서도 충분한 정보가 제공됐는지, 그리고 진지한 심의가 이뤄졌는지가 중요하다. 여기에 대해서는 충분한 시일을 두고 세부적인 분석·평가가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일단 서울대 사회발전연구소가 독립적인 검증위원회를 구성해서 공론화위의 구성과 운영, 시민참여단 선정을 위한 조사 설계, 숙의 과정 및 대국민 소통 노력에 이르기까지 공론화의 전 과정을 검증할 예정이기도 하다. 검증위의 보고서가 나오면 좀더 세부적인 분석이나 평가가 가능할 것이다.

일단 몇몇 언론에 보도된 시민참여단의 후기와 공론화위 보고서 등에 따르면, 2박 3일의 종합토론 기간 동안에 ‘진지한 심의’는 이뤄진 것으로 보인다. 시민참여단은 본인이 참여한 분임토의의 질문들에 대해서 7점 척도에 평균 6.16점을 매겼다. 질문 내용은 “나는 분임토의에서 열심히 내 의견을 전달했다” “나는 분임토의에서 다른 사람의 의견을 잘 들었다” “내가 속한 분임에서는 의견교환이 잘 이루어졌다” “내가 속한 분임에서는 토론이 공정하게 진행됐다” “내가 속한 분임에서는 상호존중하는 태도로 토론이 진행됐다”이다. 이런 질문에 대해 6.16점의 평점이 나왔다면, 시민참여단 스스로는 분임토의가 잘 이뤄졌다고 평가하고 있는 것이다.

공론화 전 과정에 대한 시민참여단의 평가도 7점 척도에 6.12점으로 비교적 높았다고 한다. 그리고 최종 결론이 자신의 의견과 다르게 내려질 경우에도 존중하겠다는 대답이 93.2%에 달했다(‘전적으로 존중하겠다’ 32.1%, ‘보통으로 존중하겠다’ 61.1%).

그러나 ‘진지한 심의’의 전제가 되는 충분한 정보제공이 이뤄졌는지에 대해서는 좀더 살펴볼 점들이 있다. 공론화위는 시민참여단에 숙의자료집을 배포하고, 이러닝(e-learning) 방식으로 정보를 제공했다. 그리고 2박 3일의 종합토론 때에는 시민참여단이 찬/반 측의 주장을 듣고 질의·응답하는 시간도 가졌다. 이런 과정을 거치면서 원전에 대한 시민참여단의 지식수준은 올라간 것이 분명하다. 시민참여단의 지식수준을 평가하기 위해 만든 8개 문항에 대해 참여단이 응답한 결과를 보면, 자료집 제공 전인 2차 조사에서는 평균 2.8개를 맞혔지만, 마지막 종합토론회 이후인 4차 조사에서는 평균 6.0개를 맞혔다.

그러나 좀더 세부적으로 들어가면 문제점이 보인다. 마지막 4차 조사에서도 신고리5·6호기의 위치를 맞힌 비율은 71.2%에 불과했다. 신고리 5·6호기 건설재개 여부를 심의하는 것이 주어진 역할인데, 그 위치를 인지하지 못한 비율이 28.8%에 달했다는 것은 시민참여단이 양적으로는 많은 정보를 습득했지만, 정작 중요한 정보는 충분히 제공받지 못한 것 아닐까 하는 의심을 낳는다. 건설재개 쪽의 정답률이 73.4%로 건설중단 쪽 정답률 76.7%보다 떨어지는 이유도 앞으로 분석이 필요할 것이다.

한편 좀더 근본적인 문제제기도 있다. 그것은 공론조사의 의제, 시민참여단 구성 등과 관련된 것이다.

첫째, 신고리5·6호기 건설 같은 문제를 공론조사의 의제로 삼은 것이 적절한가라는 문제다. 공론화위도 최종보고서에서 “공론화를 착수하기 이전의 준비 단계에서 갈등 진단 및 갈등 분석을 통해 해당 의제가 공론화 대상인지의 여부에 대해 사전검토가 이루어져야 한다”3고 지적한 바 있다. 공론장을 마련하는 것 자체는 좋지만, 공론화를 저해할 만한 상황요인이 다수 존재하는 경우에는 공론화가 또다른 사회갈등을 낳을 수 있다는 것이다. 이번 신고리5·6호기 공론화의 경우에도 자칫 공론화 과정이 파행으로 흐를 가능성이 있었다. 원전업계와 관련된 이해관계 집단이 매우 강력하게 신고리 5·6호기 건설재개를 주장하면서 많은 인적·물적 자원을 동원했기 때문이다. 언론에서도 일방적으로 건설재개 쪽을 편드는 보도를 하는 경우가 많았다. 예를 들어 건설중단 쪽의 주장에 따르면, 한국경제신문은 문재인 대통령의 공론화 선언 이후 70여일 동안 100개가 넘는 편파적인 기사를 보도했다.4 이처럼 사회 전반적으로 일방적인 여론몰이가 진행될 경우에는 시민참여단이 그에 영향받게 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일이 이렇게 된 것은, 원전은 이미 수많은 경제적 이해관계자를 가진 산업이기 때문이다. 원전 건설회사, 각종 부품업체, 그리고 원전을 운영하는 한국수력원자력, 원전 관련 연구기관과 연구자, 원전에 의존해서 생계를 해결하는 지역주민 등 수많은 이해관계자가 존재한다. 이들은 결사적으로 건설재개 입장에 설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그리고 이들에게는 많은 인적·물적 자원을 동원할 능력이 있다. 그래서 공론화 중간에 공론화 과정 자체가 ‘기울어진 운동장’이라는 비판이 제기되었던 것이다. 그런 점에서도 신고리5·6호기 건설을 재개할지 말지를 공론화 의제로 삼은 것이 적절했는지에 대해서는 앞으로 많은 논의가 필요할 것이다.

둘째, 시민참여단 구성에서 만 19세 미만의 어린이·청소년·청년(만 18세~19세는 사회통념상 청년으로 보는 것이 적절하다)을 배제한 것이 옳았냐는 것이다. 심의민주주의 제도에 참여할 수 있는 ‘시민’의 기준을 반드시 선거권 여부로 정할 이유는 없다. 사안의 성격에 따라서는 어린이·청소년을 참여시키는 것이 필요할 수도 있다. 장기간 영향을 미칠 수 있는 환경문제 같은 경우가 그렇다. 앞으로 10년 정도의 여생을 살아갈 사람도 참여의 기회를 갖는데, 앞으로 70년을 살아가야 할 이들이 자기 세대에 중대한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문제를 논하는 데 참여할 권리를 갖지 못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 그래서 “2080년까지 가동될 원전 관련 사안이라면 미래세대의 목소리가 당연히 반영돼야 하는데 위원회는 ‘인구 통계적 대표성’만을 고려했다”5라는 비판도 나온다.

공론화위도 이런 비판이 나올 수 있다는 것을 인식한 듯 보인다. 그래서 ‘미래세대 토론회’를 2017년 9월 30일에 따로 개최하기도 했다. 그러나 토론회를 열기만 했을 뿐, 거기에서 논의된 결과를 시민참여단에 전달하지는 않았다. 미래세대 토론회 결과 11개조 가운데 5개조가 건설중단, 5개조가 기타의견, 1개조가 건설재개로 나왔다고 하는데, 정작 시민참여단에는 이런 토의결과가 전달되지 않은 것이다.6 단지 2박 3일의 종합토론 기간 동안에 미래세대 토론회를 했다고 소개하는 데 그쳤는데, 아쉬운 점이다.

셋째, 공론화 과정에서 정당과 국회의 역할이 적절했냐는 것이다. 가장 바람직한 공론화는 국회 같은 제도정치권에서의 토의와 시민토의가 동시에 진행되는 것이다. 그런데 이번 신고리5·6호기 공론화 과정은 그러지 못했다. 여당인 민주당은 자기 정당 대선후보의 공약이 탈원전과 신고리5·6호기 공사중단이었음에도, 국회 내에서의 논의를 책임있게 이끌지 못했다. 야당들도 원자력업계의 주장을 일방적으로 따라가는 수준에 머물렀다. 스스로 정보를 검증하고 진지한 숙의를 하는 모습은 찾기 어려웠다. 신고리5·6호기 건설재개는 대통령을 중심으로 하는 행정부에서 결정할 문제라 하더라도, 원전을 축소할 것이냐 확대할 것이냐는 국회에서 방향을 잡을 수 있는 문제이다.

 

 

4. 심의민주주의의 미래를 위해

 

어쨌든 신고리5·6호기 공론화 과정은 종료됐다. 이번 공론화는 한국의 에너지정책에도, 그리고 민주주의와 관련해서도 많은 고민을 던져주었다. 신고리5·6호기 건설을 재개하면서도 원전을 축소한다는 것은 분명히 상호모순된 면이 있다. 특히 문재인 대통령 임기 중에 원전이 오히려 늘어나게 된다는 사실은 논란이 될 것이다. 이런 논란을 줄이기 위해서라도 정부는 전력수급기본계획이나 에너지기본계획 수립시에 좀더 분명하게 탈원전과 에너지 전환의 의지를 담아야 할 것이다. 그 과정에서 정당들은 책임있게 토의하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

또한 시민참여단이 건설재개에 대한 보완책으로 제시한, ‘원전의 안전기준을 강화해야 한다’ ‘신재생에너지 비중을 늘리기 위한 투자를 확대해야 한다’ ‘사용후 핵연료 해결방안을 가급적 빨리 마련해야 한다’는 것도 구체적인 방안이 나와야 한다. 이것은 대통령과 행정부의 책임이다.

심의민주주의 측면에서 보면, 신고리5·6호기 공론화 이후에 어떻게 심의민주주의 시도가 이어지는지가 중요하다. 사실 국내에서도 이번 공론화 이전에 다른 공론화 사례가 없는 것은 아니다. 2005년에 재정경제부가 부동산정책을 둘러싼 공론조사를 실시하는 등 몇몇 사례가 있다. 다만 이번처럼 전사회적인 공론화를 거친 것은 처음이다. 문제는 앞서도 언급한 것처럼, 공론화가 선거를 통해 당선된 대통령의 공약을 결과적으로는 뒤집는 명분이 되었다는 것, 그리고 공론화의 의제 설정, 시민참여단의 구성 등에서 아쉬운 점을 많이 남겼다는 것이다.

그러나 부정적인 면만 있는 것은 아니다. 신고리5·6호기 공론화의 미흡한 점이나 아쉬운 점은 차차 평가해나가더라도, 심의민주주의 방식이 사회적 관심을 끌게 된 것은 분명 의미가 있다. 앞으로 더 적절한 의제를 놓고 무작위 추출된 시민들이 충분한 정보를 제공받고 진지한 숙고를 거치는 과정을 밟다보면, 심의민주주의 방식이 좀더 정착되어나갈 수 있을 것이다.

예를 들면, 현재 국회에서 난항을 겪고 있는 개헌 논의와 관련해서 심의민주주의 방식을 도입하는 것도 검토해볼 수 있다. 지금 국회 내에서 합의가 안 되고 있는 대표적인 쟁점은 권력구조(정부형태)에 관한 것이다. 대통령제를 유지하자는 입장과 의회중심제로 바꿔야 한다는 입장, 그리고 대통령제와 의회중심제의 혼합 형태인 분권형 대통령제(이원집정부제)로 바꿔야 한다는 입장이 혼재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권력구조는 주권자인 국민들이 누구에게 얼마의 권력을 위임할 것인지의 문제이므로, 당연히 주권자인 국민들도 내용을 알고 의견을 낼 수 있어야 한다. 그러나 국민들은 지금 이런 논의에 대해 충분한 정보도 없고 토의도 해본 적 없는 상황이다. 국회나 언론에서 단편적인 여론조사를 하기도 하지만, 충분한 정보가 없는 상황에서 대통령제/분권형대통령제/의원내각제 중 어느 것을 선호하느냐고 묻는 여론조사는 의미가 없다.

그래서 개헌의 핵심 쟁점에 대해 공론조사 같은 심의민주주의 방식을 활용하는 것을 생각해볼 수 있다. 시민사회나 학계에서도 이러한 제안은 계속 있어왔다. 개헌은 신고리5·6호기처럼 경제적 이해관계가 대립되는 문제가 아니므로 오히려 공론화의 의제로 적합할 수 있다.

개헌 외에도 심의민주주의 제도를 활용할 수 있는 방안은 많이 있다. 지역 사안의 경우에도 더욱 다양한 시도가 가능할 것이다. 공론조사 외에 시민배심원제, 시민의회 등 다양한 방식의 심의민주주의적 시도가 확대될 수 있다. 다만, 무늬만 ‘공론화’이고 ‘숙의’인 것으로 흘러가지 않으려면 심의민주주의 자체에 대해서도 더욱 많은 논의가 필요하다.

 

 

--

  1. 주성수 「국가정책결정에 국민여론이 저항하면?: 직접/심의민주주의 참여제도의 탐색」, 『한국 민주주의와 시민참여』, 아르케 2007, 48면 참조.
  2. 오현철 「토의민주주의: 이론 및 과제」, 주성수·정상호 엮음 『민주주의 대 민주주의』, 아르케 2006, 102면 참조.
  3. 신고리5·6호기 공론화위원회 「신고리5·6호기 공론화 ‘시민참여형조사’ 보고서」, 2017.10.20.
  4. 신고리 백지화 시민행동 페이스북, 2017.9.26.
  5. 조한혜정 「신고리 5·6호기 공론화가 남긴 숙제」, 한겨레 2017.11.1.
  6. 윤순진 「신고리 공론화 참여 소회」, 경향신문 2017.10.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