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과비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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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손원평 孫元平

1979년 서울 출생. 2017년 『아몬드』로 창비청소년문학상을 받으며 등단. 장편소설 『서른의 반격』 등이 있음. mussaurus@nate.com

 

 

 

4월의 눈

 

 

눈이 쏟아질 것 같은 수상한 날씨였다. 우리는 까페에 앉아 있었다. 그건 아내가 “집에서 얘기하면 미쳐버릴 것 같으니까”라고 말했기 때문이다. 나는 아내와 여행하기 위해서 휴가를 낸 상태였지만 결국 우린 아무 데도 가지 못했고 휴가는 여전히 며칠이나 남아 있었다.

종업원들이 우리를 이따금씩 훔쳐보곤 자기들끼리 속닥였다. 우리 사이에 많은 이야기가 오가지는 않았다. 집에서처럼 밖에서도 변함없는 사실이었다. 마침내 내가 “그렇게 하자”라고 말하자 아내는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해서 우리는 5년 4개월의 결혼생활을 끝내자는 결론에 다다랐다. 시간은 생각보다 많이 흘러 있었고 비가 눈으로 바뀌어 내리기 시작했다. 서둘러 집으로 향한 우리는 현관 앞에 앉아 우리를 기다리고 있던 마리를 발견했다. 마리는 사진으로 본 것보다 덩치가 크고 나이가 들어 보였다. “아녕하쎄여.” 어색한 발음으로 인사하며 활짝 웃는 얼굴 위로 깊고 굵은 주름이 고랑처럼 파여 그 안으로 빗물인지 땀인지 모를 것들이 순간적으로 고였다.

 

여행자를 위한 홈스테이 교환 사이트에 글을 올린 건 수개월 전의 일이었다. 잠깐이었지만 세계 각지의 사람들과 친구가 되고, 그들에게 우리 집에 머물도록 한 후 우리도 그들의 집에 가서 여행하는 것처럼 살아도 좋겠다고 생각하던 때가 있었다. 아내는 이렇게 말했었다.

“우리는 앉은자리에서 세계여행을 할 수 있는 거야!”

그래서 우리는 집 안팎의 사진을 몇장 찍어 사이트와 어플에 올렸다.

 

서울 중심부. 전철역에서 7분 거리의 깔끔한 아파트.

날마다 깨끗한 수건과 정갈한 한국식 아침식사를 제공해드리며,

서울 여행을 적극적으로 도와드립니다.

한국에 오신 것을 진심으로 환영합니다.

 

반응은 의외로 뜨거웠다. 말 그대로 세계 각지의 사람들이 메일을 보내왔는데, 일본과 중국에서 온 문의가 가장 많았고 동남아나 유럽, 라틴아메리카와 중동, 심지어 아프리카에서도 우리 집에 머물고 싶다는 연락이 왔다. 어떤 의미에서 참으로 현실감 없는 일이었다. 아내는 매일같이 메일을 확인하며 각국 여행자들의 프로필을 라디오 디제이가 된 듯 읽어주었다. 그 일은 그녀에게 머릿속의 다른 생각들을 잊게 했던 것 같다. 그때 우리는 잠깐 사이가 좋았었고 새로운 미래를 꿈꿔보기도 했었다.

 

마리 크라우제.

53세, 여성, 핀란드 로바니에미 거주.

한국에 관심이 많습니다.

즐거운 여행을 할 기회를 가지고 싶습니다.

 

마리의 자기소개는 평범했다. 사진으로 본 마리는 빛바랜 금발머리에 푸른 눈을 가진 전형적인 북유럽 여성이었다. 아내는 마리가 핀란드, 그것도 로바니에미에 살고 있다는 게 흥미로운 모양이었다.

“핀란드 같은 곳에서 한국에 오려고 한다는 게 신기해. 게다가 로바니에미라면 산타마을로 유명한 곳이잖아. 그런 곳에 살다가 서울에 오면 시시하지 않을까?”

“그곳 사람들은 거기가 더 시시하게 느껴질지도 모르지.”

나는 몇년 전에 텔레비전 토크쇼의 패널로 출연해 한국에 대해 해박한 지식을 뽐냈던 핀란드 여자를 언급하며, 핀란드에도 한국에 관심 있는 사람이 더러 있을 거라고 했다. 아내는 마리가 혼자 여행하려 한다는 걸 알고는 이렇게 말했다.

“나도 50대가 됐을 때 혼자 여행할 수 있는 용기가 있었으면 좋겠다. 산타마을 같은 곳으로 말이야.”

“이 마리라는 여자네 집에 가면 되겠네. 그때쯤이면 이 여자는 일흔이 넘었겠지만.”

우리는 마리에게 답장을 보냈다. 마리는 1월 중순에 서울에 일주일가량 머물러도 좋겠느냐고 물었고 우리는 그렇게 하라고 했다. 그녀의 방문을 앞두고 아내와 나는 마리와 나눌 화제의 목록을 꼽아봤다. 그래봤자 우리가 핀란드에 대해서 알고 있는 건 자일리톨 껌이나 피니시 사우나 따위가 전부였다.

하지만 우리는 1월에 마리를 만나지 못했다. 오기로 예정된 당일, 그녀는 개인적인 이유로 돌연 여행을 취소하게 됐다며 미안하다는 짤막한 이메일을 보내왔다. 전날 우리는 대청소를 하고 장을 잔뜩 봐둔 상태였고 이메일을 확인했을 때 아내는 마리에게 대접할 첫번째 한국음식인 김치볶음밥을 하기 위해 김치를 썰던 중이었다. 우리는 언짢아졌고 아내는 하던 칼질을 멈췄다. 그날 저녁 우리는 김치볶음밥이 될 뻔했던 김치찌개를 먹었다. 필요 이상으로 많이 잘린 김치와 맵기만 한 국물은 별로 맛이 없었다.

나는 마리의 예의 없는 행동을 비난하고 우리가 겪은 고충을 설명하기 위해 노력했지만 타국의 언어로는 화를 내기가 쉽지 않았다. 고생 끝에 완성한 메일에 쓰인 건, 마리가 방문하지 못해 유감이며 다음번에 한국에 오게 되거든 언제든지 우리 집으로 찾아와도 좋다는 내용이었다. 몇번을 고쳐봐도 호의로 가득 찬 뉘앙스는 달라지지 않았고 결국 나는 아무래도 상관없다고 생각하며 진심과는 거리가 먼 메일을 전송했다.

그후로도 우리 집에 머물고 싶다는 세계 각지로부터의 팬레터는 계속해서 도착했다. 그러나 우리 부부의 사이는 또다시 급격하게 나빠지고 있었고 얼마 후 아내는 사이트에 올린 글을 지웠다.

 

다시 마리로부터 연락을 받은 건 그녀가 도착하기 이틀 전의 일이었다. 사이트의 글을 지운 지도 오래됐고 그뒤로 마리와는 전혀 교류가 없었기 때문에 몹시 뜻밖이었다. 마리는 내일모레인 월요일에 한국에 도착하며, 공항에 마중 나올 필요는 없고 알아서 집으로 찾아오겠다는 내용의 이메일을, 스마일 이모티콘을 곁들여 보내왔다. 거듭 반복된 마리의 일방적 통보에 나와 아내는 어안이 벙벙해졌다. 하지만 내가 보낸 메일을 다시 확인한 결과 우리는, 정말 눈치가 없는 사람이라면 ‘언제든지 우리 집으로 찾아와도 좋다’라는 말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일 수도 있겠다는 데에 간신히 동의했다. 그건 마치 “궁금한 게 있으시면 언제든지 연락 주십시오”라는 은행 직원의 말에, 새벽 세시에 그의 집 앞으로 찾아가 미결제 타점권이 무슨 뜻이냐며 문을 두드려대는 것과 비슷한 경우였지만 말이다. 어쨌든 내뱉은 말에는 책임을 져야 했고 마리의 도착 예정시간은 밤이었다. 아내와 나는 마리를 딱 하룻밤만 머물게 할 생각이었다. 미안하게 됐습니다만 연락도 너무 갑작스러웠던데다 저희에게도 이런저런 사정이 있으니 다른 숙소를 찾는 편이 좋겠습니다,라고 말하면 그만인 것이다. 그렇지만 우리는 마지막 순간까지도 그녀가 ‘진짜로’ 나타날 거라곤 생각하지 않았었다.

 

아내가 마리를 방으로 인도하는 동안 나는 계획된 말을 꺼낼 시점을 노렸다. 그러나 밤은 깊었고, 우리는 마리가 밖에서 두시간이나 기다렸다는 사실에 조금 미안해졌다. 그리고 불과 삼십분 전에 까페에서 내린 결론으로 인해 무척 피곤하기도 했다.

“내일 아침밥을 먹으면서 말하면 돼. 한국식 아침식사를 제공한다고 했으니까 한끼는 차려주지 뭐.”

“이 여자 때문에 음식을 새로 만들겠다고?”

“해놓은 카레가 있어, 한국식은 아니지만. 대신 내일 나가달라는 얘기는 당신이 해.”

마리에게 집의 구조와 화장실의 위치를 영어로 설명하고 수건을 내주면서 우리는 전혀 다른 얘기인 것처럼 이런 대화를 태연히 주고받았다.

우리가 각방을 쓴 지는 오래된 일이다. 하지만 그날밤만큼은 같은 침대에서 자기로 했다. 고작 하룻밤을 묵고 떠날 여행자에게 굳이 따로 자는 부부의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궁금증 어린 시선을 감내하는 게 더 귀찮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오랜만에 마주 댄 등의 온기를 느끼며 우리는 각자 어둠 속의 다른 지점을 바라봤다. 아내는 계속해서 깊고 고른 숨을 뱉어내고 있었지만 나는 그녀가 쉽게 잠들지 못하리라는 걸 알았다. 그리고 언제나처럼, 나는 먼저 눈을 감았다.

 

다음날 나는 닫힌 문틈으로 새어 들어오는 카레 냄새에 눈을 떴다. 두 여자가 나누는 대화의 일부가 언뜻언뜻 들려왔다.

“한국 카레는 정말 맛있군요.”

“한국 카레여서 맛있는 게 아니랍니다. 제가 해서 맛있는 거지요.”

이어서 아내는 헤헤, 하고 웃었다. 오래간만에 듣는 웃음소리라고 생각하며 나는 방문을 열었다.

“이제 일어나셨군요. 어서 와서 함께 드세요.”

눈이 마주치자 마리는 자기 집에 온 손님을 맞이하듯 나를 반겼다. 나는 아내의 얼굴을 쳐다봤고 아내는 쭈뼛거리며 마지못해 마리를 거들었다.

“그래, 당신도 같이 먹자.”

아침식사 도중 나는 지난 1월의 일을 가볍게 비난하면서 그걸 빌미로 마리에게 다른 숙소를 찾으라는 얘기를 당당히 꺼낼 작정이었다. 그러나 “아무리 그래도 그렇게 갑작스럽게 취소하는 법이 어디 있습니까?”라고 ‘따지듯’ 얘기하려던 의도와는 달리, 혀끝을 맴돌다 나온 짧은 영어는 “1월에 당신은 오지 않았습니다”라는 짤막한 평서문으로 바뀌어 있었다. 그리고 마리는 그 말을 “기다렸는데 대체 왜 오지 않았던 거예요?”로 제멋대로 해석한 듯했다.

“그땐 그냥, 조금 바빴답니다. 미안해요.”

간략한 사과를 마치자마자 마리는 다시 한번 카레가 맛있다며 아내의 음식 솜씨를 치켜세웠다. 차려진 거라곤 달랑 오이소박이 몇조각과 이틀이나 묵은 카레뿐이었지만 아내는 얼굴을 붉히면서도 칭찬이 싫지 않은 기색이었다. 나는 나대로 마리의 소탈하고 꾸밈없는 태도에, 조금 전 빗나간 의도를 수정할 기회를 좀처럼 찾지 못하고 있었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3박 4일은 좀 짧지 않습니까? 원래는 일주일간 여행할 예정이었잖아요.”

마리가 며칠밖에 머물지 않는다는 얘기를 듣고 내가 물었다.

“남은 휴가가 그뿐이에요. 예정된 휴가를 전부 써버렸거든요. 다른 곳에다가요.”

마리는 ‘다른 곳’이라고 말한 후 얕게 숨을 토해내곤 조용히 덧붙였다.

“그래도 꼭 오고 싶었답니다.”

아내가 과일을 깎는 동안 마리는 서울 지도를 펼쳐놓고 동선을 손가락으로 그리며 여행 계획을 설명했다.

“먼저 오늘은 북촌 한옥마을에 갈 거예요. 그러고 나서 그 유명하다는 명동 거리를 구경한 후 남대문시장엘 가서 떡볶이를 먹어보고 싶어요. 한복을 빌려 입고 경복궁과 창덕궁도 둘러볼 거고요. 서울 한복판에 오래된 궁전들이 모여 있다고 해서 신기하기도 하고 기대도 되더군요. 저녁엔 대학로에서 공연을 한편 보려고 해요. 가로수길이나 강남도 유명하다고 들었지만 내 취향과는 맞지 않아 굳이 들를 필요는 없을 것 같아요. 내일은 덕수궁부터 시작할까 해요. 시청광장을 지나 쭉 걸어서 종로를 통과해 인사동에 가서 기념품도 좀 살 거예요. 그러고는 다시 종로로 올라가 청계천을 쭉 따라 내려오는 거죠. 바쁜 하루겠지만 이 모든 코스가 걸어서 갈 수 있는 거리라는 점이 마음에 들어요. 그러고 나서 저녁에는 홍대에 가서 막걸리를 한잔할 생각이고요. 그리고 마지막 날인 모레엔, 디미누엔도의 공연을 볼 거랍니다.”

“디미누엔도요?”

아내가 아연실색해 물었지만 마리의 얼굴에는 기쁨이 피어났다.

“난 디미누엔도의 공연을 보기 위해 한국에 온 거랍니다. 한국말은 전혀 할 줄 모르지만 노래 가사는 몇개 외워두었죠.”

디미누엔도는 다섯명의 남자 아이돌로 구성된 보이그룹이다. 그들이 미국과 유럽에서 인기를 끌고 있다는 얘기는 익히 들어서 알고 있었지만, 핀란드의 50대 여성까지 한국으로 불러들일 정도인 줄은 몰랐다. 마리가 그룹의 리더인 휴의 팬이라며 짧게 그들의 율동을 따라 하는 동안 아내가 과일을 가져와 내 옆에 앉았다.

“어쩌지? 말할 타이밍을 놓치고 있어.”

나는 웃으며 태연한 표정으로 말했다.

“글쎄, 얘기 나누다보니 나쁜 사람 같지는 않은데.”

아내는 사과 한쪽을 포크에 찍어 마리에게 내밀었다. 우리의 이야기를 알아듣지 못한 마리는 “캄사합니다!”라고 말하며 사과를 받아들었다. 그녀가 아는 한국어라곤 ‘안녕하세요’와 ‘감사합니다’뿐인 것 같았다.

“여기서 지내게 하자는 거야?”

“고작 삼일이라는데, 크게 문제가 될까? 벌써 하루 지났으니 겨우 이틀 밤 남았잖아. 게다가 그녀는 아주 먼 곳에서 왔고 말이야.”

나는 마치 그 말이 딸기를 권해보라는 것인 양, 마리 쪽으로 예의 바르게 딸기 접시를 내밀었다.

 

마리가 집을 나선 뒤 집 안은 다시 조용해졌다. 어제 아내와 나눴던 말들이 떠올랐고 그러자 짧든 길든 간에 마리가 집에 머문다는 사실이 부담스러워지기 시작했다. 부부가 헤어지기 위해 필요한 현실적인 절차들을 그려봤다. 서류를 꾸미고 가족들에게 알리고 집과 가구를 나누고 처분하고…… 하지만 그런 일들을 거쳐 모든 게 다 마무리된다고 하더라도 내 마음은 전혀 가벼워질 것 같지 않았다. 복잡한 심경의 나와는 달리 아내는 어딘가 들뜬 표정으로 부산하게 옷을 입고 있었다.

“어디 가?”

“장보러 가야지. 집에 먹을 게 하나도 없잖아.”

당연한 걸 묻는다는 듯 핀잔 실린 답이 돌아왔다. 아내는 보통 인터넷으로 장을 봤고 가끔 마트에 들러 뭔가를 사오는 건 내 쪽의 일이었다. 하지만 웬일인지 아내는 나가고 싶어했다. 나는 괜찮다고 하는 아내의 거듭된 만류에도 동행을 자처했다. 마트에서 맞닥뜨릴지도 모를 풍경 때문에 아내가 위험한 상황에 처하는 것을 원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어제부터 내리기 시작한 눈은 천천히 쌓여가고 있었다. 조금만 지나면 발밑으로 뽀드득 소리가 들릴 것 같았다. 우리는 아무런 감상도 말하지 않은 채 묵묵히 걸었다. 4월에 눈이 내리는 게 이례적인 현상임엔 분명했지만 최근 몇년간 봄눈이 여러번 왔기 때문에 그다지 놀랄 일도 아니었다.

마트 안은 한산했고 염려했던 일은 벌어지지 않았다.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연인처럼 묘한 긴장감 속에서 우리는 서로에게 예의를 차리기 위해 애썼다. 나는 슬며시 아내가 밀고 있던 카트를 내 쪽으로 끌어 그녀가 자유롭게 걸을 수 있도록 했다. 아내는 어떤 요리를 해야 할지 고민했고 나는 미역국, 된장찌개, 고등어구이를 차례로 후보로 내세웠으나 아내가 카트 위로 던져 넣은 건 생닭이 든 팩이었다.

“닭찜으로 결정했어.”

그렇게 말하고 나서 아내는 내 의견을 묵살한 데 대한 미안함의 표시인지 작게 혀를 낼름, 하곤 턱을 치켜들고 앞서 걸어갔다.

계산대 가까이 갔을 때 어디선가 디미누엔도의 신곡이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단조롭고 반복적인 음과 빠르기만 한 템포가 소음처럼 귀를 자극했고 가사는 한마디도 알아들을 수 없었다. 나는 마음대로 가사를 바꿔 부르며 아침에 마리가 식탁 앞에서 선보인 우스꽝스러운 율동을 흉내냈고, 아내는 풋, 하고 웃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아내의 닭찜은 성공적이었다. 마리는 감탄을 연발하며 레시피를 물었고 분위기는 화기애애해졌다. 마리는 그날 하루 동안의 여정이 담긴 사진을 보여줬는데, 눈 쌓인 고궁을 배경으로 찍은 사진들이 멋들어졌다. 중간중간 도대체 왜 찍었는지 모르겠는 사진들도 눈에 띄었다. 커피 자판기나 롯데리아 간판, 아파트 단지 앞에 세워진 촌스러운 구조물 따위의, 정말 별거 아닌 것들 말이다. 어쨌든 사진 속의 풍경은 온통 눈이었고 그래서 전혀 4월로 보이지 않았다.

“핀란드에도 4월에 눈이 오나요?”

아내의 질문에 마리는 고개를 끄덕였다.

“어딜 가나 눈이랍니다. 특히 제가 사는 곳은 일년의 절반 이상이 눈으로 뒤덮여 있죠.”

로바니에미에 관한 이야기가 나오자 아내가 눈을 빛냈다.

“산타마을에도 가보셨겠네요?”

“가보다뇨, 난 그곳에서 일하고 있는걸요.”

“정말요?”

“인구는 4만명이 채 안 되지만 일년 동안 100만명이 넘는 사람들이 다녀간답니다. 그야말로 세계 곳곳에서 관광객들이 쉴 새 없이 찾아오지요. 언제든지 산타클로스를 볼 수 있고, 원한다면 루돌프도 탈 수 있어요. 난 기념품 가게에서 일해요. 그곳에선 크리스마스와 관련된 모든 걸 팔죠. 가끔씩은 산타클로스의 부인 역할도 하곤 해요. 물론 교대 근무라 산타에겐 몇명의 다른 부인이 있지요. 알고 보면 산타는 바람둥이거든요. 하지만 산타에게 편지를 보낸다면, 장담컨대 당신은 백퍼센트 답장을 받을 수 있답니다. 그에겐 열명이 넘는 비서가 있고, 세계 각국에서 도착한 편지들은 소중하게 분류되어 산타에게 전달되니까요.”

“정말 가보고 싶어요!”

아내가 어린아이처럼 외쳤다. 마리는 마치 산타마을의 가이드처럼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아무 때고 오세요. 산타마을은 일년 삼백육십오일 열려 있답니다. 정말이지 일년 내내 크리스마스 같은 곳이지요!”

꽤 즐거운 저녁이었다. 마리는 담백하고 사람을 편안하게 하는 재주가 있어서 대화는 부담 없이 이어졌다. 그녀는 우리에게 개인적인 질문을 던지지 않았고 우리도 그녀에 대해서 굳이 이것저것 따져 묻지 않았다. 예상대로 주제는 한국과 핀란드에 대한 것들, 그러니까 자일리톨, 피니시 사우나, 김치와 개고기 따위를 벗어나지 못했지만 말이다.

잠들기 전 아내는 마리와 나눴던 대화들을 되새기며 조잘댔다. 그러곤 마리의 독특한 억양과 커다란 엉덩이, 턱 밑에 난 수염에 대해서 비밀스럽게 흉을 보며 낄낄댔다. 그러면서도 그런 얘기가 험담이 아니란 걸 강조하기 위해서인지 말끝마다 “좋은 사람인 것 같아”를 후렴처럼 반복했다. 어쨌든 아내가 누군가에 대해서 그렇게 오래 얘기하는 건 그 사람에게 호감을 느낀다는 뜻이었고 아내가 말이 많아진 건 좋은 징조였기 때문에 나는 아내의 말에 열심히 귀를 기울이며 적당히 맞장구를 쳐줬다.

“우리 집에 있으라고 하길 잘한 것 같아.”

마침내 아내가 졸음이 밴 목소리로 결론 내렸다.

“그렇게 생각한다니 다행이네.”

나는 손가락을 뻗어 아내의 손등 위를 몇차례 토닥였다.

아침에 나는 아내와 마리의 두런대는 말소리와 문이 여닫히는 소리에 얼핏 깼다가 다시 잠들었다. 일어났을 때 집에는 아무도 없었고 식탁 위엔 아내가 놓고 간 쪽지가 놓여 있었다. 아내는 가끔 그런 걸 써놓기를 좋아했다.

 

마리한테 서울 안내해줄 겸 같이 나가.

당신도 가자고 할까 하다가 너무 깊이 잠든 것 같아서 안 깨웠어.

저녁엔 홍대에서 술 마실까 하는데,

생각 있으면 오든지.

 

글의 말미에는 크게 스마일 표시가 그려져 있었다. 나는 갈매기를 연상시키는 그 스마일을 한참 동안 들여다봤다. 이 명랑함이 반가우면서도 한편으로 걱정이 앞섰다. 마리가 쓸데없는 것을 묻지는 않을지, 거리의 풍경 중 아내를 자극할 만한 게 있지나 않을지 말이다. 나는 마음을 숨긴 채 아내에게 답을 보냈다.

 

재미있게 놀아. 무슨 일 있으면 연락하고.

 

텔레비전을 틀자 뉴스가 흘러나왔다. 온통 4월의 폭설에 관한 이야기뿐이었다. 아나운서와 리포터들은 피다 말고 얼어버린 벚꽃과 교통 혼잡, 속출하는 빙판길 사고 등, 눈 때문에 빚어진 혼돈과 무질서에 대해 떠들어댔다. 커튼을 젖히자 족히 10센티는 넘게 쌓인 눈으로, 창밖엔 오로지 하얗기만 한 설경이 펼쳐져 있었다. 뉴스에서 들은 호들갑과는 달리 그저 고요하고 평화로웠다. 아내가 휴대폰으로 마리와 함께 찍은 사진을 몇장 보내왔다. 익살스런 표정에 손으로는 브이 자를 그리고 있는 아내는 꼭 마리와 함께 핀란드에서 서울로 놀러 온 여행객 같았다.

나는 바깥으로 나가 혼자 인적 드문 거리를 걸었다. 굵은 눈발 때문에 앞이 잘 보이지 않았다. 눈은 구석구석, 틈새가 난 곳이라면 어디든 내려앉아 익숙한 모든 것들을 전혀 다른 형체로 바꿔놓고 있었고 그래서 모든 게 특별해 보였다. 나는 길가의 공중전화와 그 옆에 세워진 오토바이를 배경으로 사진을 찍었다. 그러자 나도 이국의 어딘가로 홀로 여행 온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계속해서 아무도 걷지 않은 새하얀 길에 발자국을 찍으며 천천히 앞으로 나아갔다. 뒤를 돌아보니 저 멀리 새겨진 내 자취는 벌써 희미해져가고 있었다. 그건 어쩐지 비밀스러웠고 조금쯤 서글펐다.

밤에 우리는 홍대에서 만났다. 전통주점에서는 가야금으로 연주한 캐럴이 흘러나왔고 모두들 크리스마스이브처럼 설렘 가득한 얼굴이었다. 우리는 도토리묵과 파전을 먹으며 이야기를 나눴고 연거푸 술을 들이켰다. 뺨이 발그레해진 마리가 술을 한모금 홀짝이더니 난데없이 질문을 던졌다.

“두 사람은 어떻게 만났나요?”

마리로부터 이런 개인적인 질문은 처음이었다. 우리는 잠깐 망설이며 누가 먼저 말을 꺼낼지를 놓고 서로의 눈치를 살폈다. 결국 먼저 입을 연 건 나였다. 여전히 제대로 된 단어와 표현을 찾는 데 애를 먹고 더듬거렸지만 말하려던 내용은 대강 이런 거였다.

“그땐 장마였어요. 비가 아주 많이 내렸죠. 지하철 안에서 그녀는 내 맞은편에 앉아 있었어요. 머리가 아주 짧았고 하늘색 티셔츠에 하얀 반바지를 입고 끈이 풀린 운동화를 신고 있었죠. 어딘가 소년 같았지만 전 그녀가 아주 예쁘다고 생각했어요. 말을 걸고 싶어서 뚫어지게 쳐다봤지만 몇 정거장이 지나도록 그녀는 내게 시선조차 주지 않더군요. 그리고 잠깐 한눈을 판 사이 그녀는 사라져 있었어요. 그녀가 앉아 있던 자리엔 우산이 하나 놓여 있었죠. 마치 신데렐라의 유리 구두처럼요. 유실물센터에 맡길 수도 있었지만 일부러 그러지 않았죠. 그뒤부터 나는 비가 오는 날이면 그 우산을 들고 지하철을 탔어요. 언젠가 또 마주칠 수도 있을 거라고 기대하면서요.”

아내가 끼어들어 바통을 채갔다.

“그날 나는 비를 쫄딱 맞았어요. 정말이지 비가 억수같이 쏟아졌거든요. 우산을 잃어버린 건 무척 아쉬웠어요. 그건 내가 직접 그림을 그려 만든 첫번째 우산이었고, 세상에서 하나뿐인 물건이었거든요. 어쩔 수 있나요, 그냥 잊으려 노력했죠. 그리고 시간이 흘러서 겨울이 됐고 오늘처럼 눈이 펑펑 쏟아지는 날이었어요. 집 근처 슈퍼에 계란을 사러 갔는데 글쎄, 슈퍼에서 나오던 남자가 제 우산을 쓰고 걸어가는 게 아니겠어요? 분명 우산을 잃어버린 건 지하철 안에서였는데 말이죠.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우린 꽤 가까운 곳에 살고 있었거든요. 난 그 남자를 쫓아가서 소매를 붙잡고 말했죠. ‘이봐요, 이건 내 우산인 것 같은데요.’ 그러자 그가 장난스럽게 웃으면서 대답했어요. ‘그럼 어떻게 하죠? 난 지금 눈을 맞고 싶지 않은데요.’ 난 하는 수 없이 물었죠. ‘그럼 같이 쓰고 갈래요?’라고요. 왠지 그는, 그날 만나기로 약속한 것처럼 익숙했거든요. 그렇게 우리는 함께 우산을 쓰고 눈 위를 걸었고, 바로 그다음 날 연인이 됐답니다.”

“그리고 사년 후 결혼을 했고요.”

내가 덧붙였다.

“그리고, 몇년 후에 이렇게 나를 만난 거로군요.”

그렇게 말한 후 마리는 잠시 우리를 물끄러미 바라보더니 말을 이었다.

“기념품 가게에서 일하면서 매일같이 수많은 연인과 부부들을 보곤 해요. 그런데 비밀을 하나 알려줄까요. 그들은 모두 즐거워 보이지만 나는 알 수 있답니다. 그들이 진짜로 행복한지 아닌지, 사랑하는지 아닌지를요.”

“산타클로스가 착한 아인지 나쁜 아인지 한눈에 아는 것처럼 말인가요.”

내가 물었다.

“맞아요. 그리고 난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답니다. 당신들이 정말 행복한 부부라는 것을요.”

 

우리는 휘청대며 집으로 향했다. 바람은 점점 거세지고 있었고 빠른 속도로 떨어지는 눈은 구간 반복된 영상을 틀어놓은 것처럼 영원히 계속될 것 같았다. 얇은 봄옷 위에 두꺼운 외투를 걸친 젊은이들이 눈싸움을 하며 이 이상한 계절을 만끽하고 있었다.

몇해 전 우리가 발리로 여행 갔던 때가 떠올랐다. 그늘진 기억 없이 즐거운 추억만으로 가득한 여행이었다. 우리는 맛있는 음식을 먹고 천천히 거리를 걸었고, 풀빌라 안에서 수영을 하거나 열대과일로 만든 칵테일을 마셨다. 사람들은 우리를 신혼부부로 생각했고 우리는 굳이 부인하지 않았다. 모든 게 처음으로 돌아간 것 같았기 때문이다.

발리의 자연은 아름다웠다. 나무에는 두껍고 커다란 이파리가 열매처럼 주렁주렁 달려 있었고 색색의 아름다운 꽃들이 어디에나, 정말 어느 곳에든지 피어 있었다. 허름한 집 앞에조차 사람들은 신을 위해 아기자기한 제단을 꽃으로 꾸며놓았다. 그들의 나라에선 꽃이 그만큼 흔하다고 했다. 어느 날 나는 가이드에게, 발리에서는 꽃이 지는 때가 언제냐고 물었다. 가이드는 이상한 질문이라는 듯 고개를 갸우뚱했다.

“발리엔 언제나 꽃이 피어 있답니다.”

아내가 신기하다는 듯 정말이냐고 되물었다. 그러자 가이드는 잠시 생각하더니 이렇게 바꾸어 말했다.

“비가 올 때면 꽃이 떨어지기도 해요. 그렇지만 비가 그치면 곧 다시 피어난답니다. 그러니까, 언제나 피어 있는 거나 마찬가지죠.”

나는 우리에게 닥친 일이 잠깐 내린 비라고 생각했었다. 다시 꽃이 피어날 거라고, 발리에서처럼 근심 없는 날들이 올 거라고 말이다. 그리고 지금 아주 오랜만에 나는 다시 모든 게 좋아지는 것 같은 기분을 느끼고 있었다.

침대에 누웠을 때 나는 아내의 귀에 대고 그런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아내는 가만히 “눈 때문인가?”라고 속삭였다. 나는 아내의 머리카락을 쓰다듬었고 그녀는 저항하지 않았다.

눈을 떴을 때 집 안은 기묘하리만치 조용했다. 더이상의 적막은 존재하지 않을 것 같은 기분 나쁜 고요였다. 이상한 예감이 엄습했고 다음 순간 나는 비로소 올 것이 왔다고, 모든 게 끝나버렸다고 생각했다. 아내가 영영 떠났거나 어쩌면 죽어버린 거라고. 그런 상상에조차 나는 크게 동요하지 않았다. 끔찍하면서도 어딘가 후련했다.

나는 문을 열고 나왔다. 그리고 내 예감이 틀렸다는 것을 확인했다. 아내는 거실에 태연히 앉아 커다란 검은 천을 펼쳐놓고 바느질을 하고 있었다.

“마리는 일찍 나갔어. 공연은 일곱시부터지만 한참 전부터 줄을 서야 한대.”

아내가 나를 보지 않은 채 혼잣말을 하듯 중얼거렸다.

나는 대답하지 않고 아내의 곁으로 가서 그녀를 굽어보았다. 색색의 실들이 어지러이 천 위를 달리고 있었다. 엎질러진 물 같기도 했고 의미 없는 낙서 같기도 했다. 아내는 그저 하릴없이 바늘을 천 위로 꽂았다가 빼내고 있었다.

“나갈래?”

내가 아내의 주의를 돌리기 위해 제안했다.

“그럴까, 바람이라도 쐬지 뭐.”

의외로 흔쾌히 그녀가 답했다.

한때 아내는 공방에서 이런저런 소품이나 패브릭을 만들었다. 귀여운 기린이나 사자 같은 것들을 천에 수놓아 가방으로 제작해 팔기도 하고, 커다란 러그 위에 별자리나 세계지도를 정교하게 새겨 넣기도 했다. 인내심과 재주가 없으면 하기 힘든 일이었지만 아내는 아무것도 아닌 천 쪼가리를 늘 멋진 작품으로 완성시키곤 했다. 나는 아내가 입을 꼭 다물고 세심하게 바느질하는 모습을 좋아했다. 그 모습은 평화로웠고 우리가 안전하고 무사하다는 느낌이 들게 했다.

그렇지만 언젠가부터 아내는 이상해졌다. 자주 바늘에 찔렸고 손가락에서는 피가 넘쳐흘렀다. 실은 그려놓은 도안을 넘어 아무 곳에나 불시착했다. 그래도 아내는 멈추지 않았다. 부지런함에는 가속이 붙었고 그녀는 목적도 없이 밤이고 낮이고 저주에 걸린 아라크네처럼 바느질을 해댔다. 그럴수록 천 위에 새겨지는 것들은 점차 형태를 잃어갔다. 아내는 그것들이 모두 의미를 가지고 있다고 했지만 자신이 무엇을 표현하려는 건지는 잘 말하지 못했다. 차츰 아내가 바느질을 하는 게 불편해지기 시작했다. 바느질하는 아내의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질식할 것 같은 두려움이 나를 짓눌렀다.

눈은 더이상 내리지 않았다. 정지된 것 같았던 세상도 다시 조금씩 움직이고 있었다. 어디선가 희미한 꽃향을 실은 바람이 한줄기 불어왔다. 아내가 바람이 불어오는 방향으로 고개를 돌렸다.

“눈 올 때가 예뻤는데.”

우리는 식당에 가서 밥을 먹고 근처의 극장에 가서 유행하는 코미디 영화를 봤다. 영화를 보는 도중 나는 몇번 아내를 곁눈질했다. 그녀는 입을 오물오물하며 계속해서 팝콘을 입으로 가져갔다. 이따금씩 폭소를 터뜨리기도 했다. 나는 아내의 손을 잡았고 우리는 영화가 끝날 때까지 그 손을 놓지 않았다.

밖으로 나왔을 때 이미 날은 어두워져 있었다. 눈은 급속도로 녹고 있었다. 절반 이상 모습을 드러낸 거리는 어딘지 모르게 시시하고 어수선해 보였다.

“마리는 지금쯤 공연을 보고 있겠네.”

내 말을 끝으로 우리는 침묵했다. 길에 세워진 공중전화가 눈에 들어왔다. 깨진 유리창엔 먼지와 뒤섞인 더러운 물이 흘러내려 시커먼 얼룩이 져 있었고 그 앞으로는 낡은 오토바이가 한대 세워져 있었다. 검은 재킷을 입은 남자가 오토바이 발판에 한쪽 다리를 올려놓은 채 담배를 뻐끔댔다. 며칠 전에 내가 사진을 찍은 곳이었다. 그 사실을 깨닫는 데엔 얼마간의 시간이 걸렸고 그러자 무어라 설명할 수 없는 기분이 들었다.

별안간 아내가 걸음을 멈췄다. 그녀의 시선이 우리 앞을 가로지르는 여자에게로 향했다. 남색 원피스에 아이보리빛 카디건을 입은 여자는 한 손을 풍선처럼 부푼 배 위에 얹고, 다른 한 손은 딸인 듯한 여자아이에게 잡힌 채 천천히 걷고 있었다. 서너살쯤 되어 보이는 아이는 핑크색 리본이 달린 구두를 신고 폴짝거리며, 뒤뚱거리는 엄마에게 빨리 오라고 성화를 부렸다.

나는 아내에게 몇마디 말을 걸었다. 무슨 얘기였는지는 잘 기억나지 않는다. 눈에 관한 얘기였는지 오토바이나 공중전화에 관한 거였는지. 사실 뭐라도 상관없었을 것이다. 내가 뭐라고 떠들어대든 간에 어차피 아내는 대꾸하지 않았다.

집에 도착하자 아내는 묵묵히 저녁을 차렸다. 하지만 밥상에 앉자마자 먹지 않겠다고 선언하더니 거실에 천을 펼치고 앉아 다시 소리 없이 바느질을 시작했다. 내가 꺼끌거리는 밥을 씹어 넘기는 소리만이 집 안을 메웠다.

 

아내의 바느질은 밤이 깊어가도록 멈출 줄을 몰랐다. 자정이 가까웠을 때 나는 결국 아내에게 다가가 언짢음을 표시했다.

“언제까지 그렇게 바느질만 할 건데? 밥은 먹어야지.”

“밥?”

아내가 샐쭉거리며 되물었다.

“밥을 왜 먹어야 하지?”

“당신, 점심 이후로 아무것도 먹지 않았어. 계속 그런 식이면 몸이 상한다구.”

“하……”

그녀가 한숨을 쉬었다.

“몸? 그래, 내 몸.”

아내가 바느질을 멈추고 나를 바라봤다. 강한 조소가 깃든 눈빛이었다. 내가 실수했다는 것을 깨달았지만 이미 아내는 그 이야기를 시작하고 있었다.

“당신이 내 몸에 어떤 짓을 저질렀는지 한번 얘기해볼까?”

그만두자는 말이 목 언저리에서 맴돌았지만 입 밖에 내지 않았다. 어차피 그렇게 말해봐야 소용이 없을 것을 알고 있었다.

“나는 계속해서 검사 같은 건 하고 싶지 않다고 말했어.”

아내가 재미난 얘기를 들려주듯 입을 놀렸다.

“아기가 정상인지 아닌지 따위는 내게 중요하지 않았거든. 그런데 당신 생각은 달랐고 결국 나는 당신 뜻을 따라 양수를 채취하는 수밖에 없었지. 의사는 초음파로 아이를 보고 있으니까 염려하지 말라고 했어. 하지만 그 거대한 바늘이 배 속을 뚫고 들어갈 때, 나는 아이가 움찔하는 걸 봤어. 정말이야, 아이는 놀란 것처럼 순간적으로 버둥거렸어.”

명랑하던 표정이 걷히고 아내의 입가에 서늘함이 어렸다. 그녀가 치켜뜬 눈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쏟아지는 이야기에 속도가 붙었다. 손쓸 틈도 없이 순식간에 벌어진 일들, 저녁부터 자신의 몸 밖으로 생명의 정수가 왈칵왈칵 흘러내리던 장면들…… 떠올리기 버거운 기억들이 쉴 새 없이 움직이는 입을 통해 낱낱이 재생됐다.

“그러고 나서 어떻게 됐는지 알아? 나는 아이를 낳았어, 당신과 나의 아이를, 이미 죽어버린 우리 아기를, 아홉시간 동안이나 진통을 해서 말이야.”

아내는 가쁜 숨을 멈추고 몸을 떨었다. 울부짖는 여자들의 소리가 끊임없이 귀를 울렸다. 그러고 나면 조금 후엔 갓 태어난 아기들의 울음소리가 이어지곤 했다. 아내의 젖이 불어나 옷 위로 동그란 자국을 냈다. 그러는 동안에도 피는 멈추지 않았다. 아내가 웃기 시작했다.

“그리고 내가 다시 수술실로 들어간 동안, 당신이 그토록 고집을 부려서 했던 검사의 결과가 나왔지.”

“그만해.”

내가 힘없이 웅얼댔다. 어쩌면 속으로만 되뇌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는지도 모른다. 아내는 복수하듯 미소를 지으며 뇌까렸다.

“그러고, 그러고 나서, 내 몸에 어떤 일이 벌어졌을까? 당신이, 몸이 상하니 밥이나 먹으라고 말하고 있는 내 몸 말이야……”

“난 단지 우리가 행복하길 바랐을 뿐이야.”

내가 조용히 말했다.

행복. 아내가 그 단어를 중얼거렸다.

“난 차라리 우리가 처음부터 불행했길 바라.”

 

수도 없이 들은 얘기였다. 토시 하나 빠지지 않고 지난 수년간 똑같이, 때로는 매일매일 반복된 이야기다.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하려고 노력했었다. 우리는 상담을 받았고 함께 병원에 다니고 이사를 했다. 집 근처로 직장을 옮기고 집에서 할 수 있는 일의 양을 늘려보기도 했다. 때때로 아내는 나아지는 것 같았다. 그럴 때면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우리 사이는 더할 나위 없이 좋았다. 하지만 사실은 그런 순간들이 나를 더 두렵게 했다. 금세 모든 것이 원점으로 돌아가고 또다시 아내가 나를 증오하리라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아내는 작은 일에 쉽게 자극을 받았고 불시에 돌변했다. 자신이 아무리 들쑤셔도 표정도 변하지 않는 나를 저주하며 비웃었다. 그러다 지치면 습관처럼 이혼을 요구했다. 그것만은 절대 해줄 수 없다고 말하던 나는 언젠가부터 동의하기 시작했다. 아주 쉽게 “그래, 그렇게 하자”라고 말이다. 그조차 결국은 공허한 말이라는 걸, 어차피 우리는 헤어지지 못하리라는 걸 알아서였다. 우리는 그저 똑같은 악몽을 영원토록 되풀이하고 있을 뿐이었다.

아내가 울기 시작했다. 소리를 지르며 짐승이 울부짖듯 온몸으로 고통을 표현하고 스스로의 몸을 쥐어뜯었다. 나는 그 자리에 말없이 서 있었다. 그녀가 보이지도, 들리지도 않는 것처럼. 마침내 더는 견딜 수 없을 지경이 됐을 때, 나는 현관을 열고 계단으로 뛰어 내려왔다. 그리고 계단참에 얼어붙은 듯 서 있는 마리와 마주쳤다.

“다른 곳에서 잘게요…… 아니, 괜찮다면 제 짐을 지금 가지고 나가도록 할까요? 어느 쪽이 편하겠어요?”

마리가 허둥대며 말했다.

“미안해요, 나는……”

힘겹게 목을 뚫고 나온 목소리가 맥없이 갈라졌다.

“괜찮아요. 나는 하나도 못 알아들었으니까요. 정말이에요. 난 아무것도 알아듣지 못했답니다. 그러니까 괜찮아요.”

마리의 변명에 섞인 게 위로라는 걸 깨닫는 순간 나는 얼굴을 감쌌고, 어쩔 수 없이 흐느끼기 시작했다. 참으려고 했지만 소리는 자꾸만 밖으로 비어져 나왔다. 모두가 우리의 이야기를 알고 있었다. 이곳에 사는 이웃들도, 마트의 점원들도, 까페의 종업원들도.

마리가 능숙하게 나를 바깥으로 인도했다. 나는 마리에게 어린아이처럼 기댄 채 몸을 맡겼다. 우리는 조금 걸었고 아파트 단지 입구의 벤치에 앉았다. 그녀는 내 몸의 떨림이 천천히 사그라질 때까지 묵묵히 기다려주었다.

“공연은 재미있었나요?”

서늘한 공기에 몸의 열기가 식어갈 때쯤 내가 입을 뗐다. 그 말에 마리는 잊고 있던 것을 상기받은 것처럼 눈을 크게 떴다.

“오, 공연이요……”

마리가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난 공연에 가지 않았어요.”

“왜요? 그 공연을 보려고 한국에 온 거였잖아요.”

“……그랬었죠. 보려고 했었어요. 하지만 공연장에 가는 길에 나는 눈이 더이상 내리지 않는다는 걸 알았죠. 눈은 녹고 있었어요. 그러자 눈이 쌓이지 않은 곳을 걸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내가 머무는 내내 눈이 왔었잖아요. 한국이 눈으로만 덮인 곳이라는 기억을 가지고 돌아가는 건 어쩐지 아쉬울 것 같았거든요. 눈은 내가 사는 곳에도 많으니까요. 그래서 난 그냥, 무작정 거리를 걸었답니다.”

마리는 희미하게 웃음을 지었다. 그 웃음은 왠지 쓸쓸해 보였고 내가 그렇게 만든 것 같아 미안해졌다.

“원래 나는 1월에 오기로 했었죠. 그런데 말이죠……”

마리가 잠깐 말을 멈추더니 속삭이듯 말했다.

“……그냥 나는 그때, 올 수가 없었답니다.”

그리고 그녀는 여러차례 짧게 숨을 쉬었고 나는 그녀가 울음을 참고 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마리는 오랫동안 호흡을 가다듬었고 나는 잠자코 기다려주었다.

“이번에 난 당신들에게 온다는 말을 앞서서 하지 않았죠. 떠나기 직전에 메일을 한통 보냈을 뿐이에요. 그랬기 때문에 다른 곳에 머물러야 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죠. 사실, 그럴 가능성이 더 컸어요. 하지만 난 그냥 당신들이 나를 환영해줄 거라고, 그렇게 믿고 싶었어요. 그게 잠깐 동안 만들어진 거라도, 산타클로스의 미소 같은 거라고 하더라도 말이에요……”

한 중년의 사내가 술에 취해 휘청거리며 아파트 단지가 떠나가도록 노래를 불렀다. 그 노래는 마리의 눈물을 멈추게 했고 어느새 우리는 앞뒤가 맞지 않는 노래에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우리 동네에서 보던 풍경과 비슷하군요. 꼭 눈이 그친 밤이면 어디선가 낯선 사람이 나타나 괴상한 노래를 불러대곤 하지요.”

남자의 노랫소리가 멀어질 때쯤 마리가 말했다. 물기에 잠긴 말끝에 작은 웃음소리가 뒤따랐다.

“핀란드에서도 그런 일이 일어나나요?”

내가 물었다.

마리는 고개를 느리게 끄덕였다.

“그럼요, 아주 흔한 일이죠. 사실 그런 건, 어디에서나 일어나는 일이랍니다.”

우리는 눈이 거의 다 사라진 거리를 말없이 바라보았다. 몹시 추웠고 겨울도 봄도 아닌 계절이 뒤숭숭하게 펼쳐져 있었다. 하지만 그 모습도 추하지만은 않다고, 나는 언뜻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