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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단

 

‘보편적 기본소득’이라는 새롭고 좋은 아이디어

 

 

존 란체스터 John Lanchester

소설가, 『런던 리뷰 오브 북스』(London Review of Books) 객원편집자. 소설 『아주 특별한 요리 이야기』(The Debt to Pleasure), 『캐피탈』(Capital) 등이 있음.

 

 

* 이 글은 London Review of Books, Vol.41 No.14 (2019.7.18)에 수록된 “Good New Idea: John Lanchester makes the case for Universal Basic Income”을 번역한 것으로, 원문은 www.lrb.co.uk에서 볼 수 있다. ⓒ John Lanchester 2019. Reprinted with permission from John Lanchester/한국어판 ⓒ (주)창비 2019

 

 

 

21세기 역사, 적어도 첫 20년의 전체 윤곽이 점차 분명해지고 있다. 신용에 기반한 팽창과 고삐 풀린 금융화의 시기가 갑작스러운 붕괴, 그리고 사상 초유의 은행 긴급구제로 막을 내렸다. 일반 사람들이 은행가들의 손해를 떠맡았지만 그들에게 보상으로 주어진 것은 긴축정책이었고, 이 정책은 경기회복을 심각하게 저해해 끝없는 대침체(Great Recession)가 이어지고 있다. 동시에 자동화와 세계화가 빠르게 진행되고 인터넷이 부상하면서 제1세계의 임금이 정체되고 보통 사람들은 더욱더 불안정한 삶을 살게 되었다. 엘리트층은 괜찮았고, 개도국, 특히 아시아에서는 경제성장이 이뤄지기도 했지만, 전세계의 중산층, 그중에서도 선진국의 중산층은 점점 더 불안을 느끼고, 자신이 무시당한다 싶어 억울하고 분한 마음이 들게 되었다. 이런 경향은 지난 몇십년간 노조의 세력이 약해지면서 더욱 악화되었다. 영국에서 평화시에 이만큼 지속적으로 소득이 줄어든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1 이런 상황에 대해 우파 정치세력은 역사적으로 가장 효과적인 전술—이민자들을 탓하는 전술—로 대응했고, 그 전술은 브렉시트부터 트럼프, 오르반(Orbán, 헝가리 총리), 보우소나루(Bolsonaro, 브라질 대통령), 살비니(Salvini, 이딸리아 부총리), 독일대안당(AfD)에 이르기까지 속속 성공을 거두고 있다. 우파 정치세력의 부상이 얼마나 일상적이 되었는가는 ‘중도파’의 성공으로 일컬어진 프랑스 대통령 선거에서 준(準)파시즘 정당이 34%를 득표한 것만 보아도 알 수 있다.

솔직히 말해 좌파는 21세기 들어 꽤 심각한 실패를 맛보았다. 적어도 지금까지는. 이 점은 부분적으로 미국부터 영국, 프랑스, 독일, 이딸리아, 브라질 등에 이르기까지 선거 패배의 문제이지만, 무엇보다도 좌파가 새로운 지형에 알맞은 새로운 이념틀을 제시하는 데 실패한 결과이기도 하다. 지금 겪고 있는 많은 문제는 이대로 가면 더욱 악화될 것으로 보인다. 1980년에는 미국 전체 인구 중 하위 50%가 총수입의 20%를 가져갔다. 2014년이 되면 그 비율은 12%로 줄어든다. 한편 상위 1%의 수입은 총수입의 12%에서 20%로 늘어났다. 많은 나라에서 비슷한 현상이 일어났다. 과거의 중도좌파는 이러한 경제권력 배분에 책임이 있고, 따라서 좀더 배려심 있고 좀더 점잖은 자유시장 자본주의라는 중도좌파의 이전 모델은 낡고 부족하게 느껴진다. 지금 직면한 소득정체와 불평등 문제가 현재 진행 중인 자동화와 세계화의 흐름 때문에 더욱 악화되리라는 것은 틀림없어 보인다. 인공지능 때문에 곧 일자리 대재앙이 닥치리라 믿지는 않더라도, 기계가 더 많은 일을 하고, 인간의 일은 줄어들며, 인간이 하는 일의 성격이 점점 흥미가 떨어지고 있다는 사실은 분명하다. 그리고 이런 흐름들은 서로 겹치고 합쳐지면서 증폭되는 중이다. 필리프 판 파레이스(Philippe Van Parijs)와 야니크 판데르보흐트(Yannick Vanderborght)는 『기본소득: 자유로운 사회와 건전한 경제를 위한 근본적인 제안』(Basic Income: A Radical Proposal for a Free Society and a Sane Economy)에서 이렇게 말했다.

 

우리는 새로운 세계에 살고 있으며, 세계를 이렇게 다시 만들어낸 세력은 여럿이다. 즉 컴퓨터와 인터넷으로 초래된 파괴적인 기술혁명; 무역, 이주, 커뮤니케이션의 전지구화; 세계적으로 급격히 늘어난 수요가 천연자원의 축소와 대기오염의 포화로 한계에 봉착한 상황; 가정부터 노동조합, 국가독점체와 복지국가에 이르기까지 모든 전통적인 보호제도에 일어난 혼란; 그리고 이런 다양한 흐름의 폭발적인 상호작용.

 

위험은 분명히 있다고 저자들은 주장한다. 우리는 자칫 “첨예한 갈등에 불을 붙이고, 새로운 형태의 노예제를 낳을 수 있다”고.

문제는 그런 현상에 어떻게 대처하느냐다. 좌파는 우파가 내세우는 낡고 나쁜 아이디어들—민족주의 강화, 국경 단속, 이민자 탓하기, 문화전쟁, 무역전쟁, 그리고 진짜 전쟁까지—에 대항할 수 있는 새롭고 좋은 아이디어를 내놓아야 한다. 그리고 바로 이 지점에 보편적 기본소득의 역할이 있다. 보편적 기본소득제는 경제와 정치 문제 전반의 사고틀을 바꾸는 획기적 해결책이 될 잠재력이 있기 때문이다. 이 제도의 기본 아이디어는 간단하며, 애니 로우리(Annie Lowrey)가 쓴 탁월한 개론서 『사람들에게 돈을 줘라』(Give People Money)의 제목에 잘 요약되어 있다. 즉 모든 시민에게 조건 없이, 평생 규칙적인 현금 지급을 보장하는 것이다. 액수는 심리적·실제적 안정을 제공하고 궁핍을 방지하기엔 충분하지만, 아예 일을 안 하고 싶어질 정도로 많지는 않아야 한다. 그 돈에만 의지해 산다면 안전하긴 해도 편안하지는 않을 정도의 액수인 것이다. (이것은 내 방식의 표현이며, 이제 살펴보겠지만, 정확한 액수에 대해서는 합의가 이루어져 있지 않다.)

로우리는 벨기에의 정치사상가 판 파레이스를 “현대 기본소득 운동의 대부”라고 부른다. 판 파레이스와 벨기에의 정치학자 판데르보흐트는 기본소득의 핵심은 자유를 제공하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걱정으로부터의 자유, 현재의 복지국가에서 자산조사 결과에 따라 복지수당을 지급하기 때문에 지원자들이 종종 겪어야 하는 굴욕적이고 혼란스러운 과정으로부터의 자유, 모욕적이거나 지나치게 힘들거나 극도로 불안정한 일을 해야 할 필요성으로부터의 자유 말이다. 이것은 최근에 다양한 사상가들이 집중적으로 관심을 기울이고 있는 견해다. 그 사상가들에는 『미래의 발명』(Inventing the Future)의 공저자 닉 스르니첵(Nick Srnicek)과 알렉스 윌리엄즈(Alex Williams), 『말도 안 되는 직업들』(Bullshit Jobs)의 저자 데이비드 그레이버(David Graeber), 『포스트자본주의의 새로운 시작』(Post-Capitalism, 한국어판 더퀘스트 2017)의 저자 폴 메이슨(Paul Mason), 『현실주의자를 위한 유토피아』(Utopia for Realists)의 저자 루트거 브레만(Rutger Breman), 그리고 『우리의 당연한 권리, 시민배당』(With Liberty and Dividends for All, 한국어판 갈마바람 2016)의 저자 피터 반스(Peter Barnes) 등이 포함된다. 보편적 기본소득이 뜨고 있는 것만은 틀림없다.

가이 스탠딩(Guy Standing)은 1986년 루뱅에서 창립된 이래 꾸준히 보편적 기본소득을 연구하고 주창해온 주요 단체 비엔(BIEN), 즉 기본소득지구네트워크의 오랜 멤버이다. 스탠딩의 『기본소득: 일과 삶의 새로운 패러다임』(Basic Income: And How We Can Make It Happen, 한국어판 창비 2018)은 기본소득의 개념을 이론적·실천적 관점에서 철저하고 차분하게 설명하는 책이다. 그의 논의는 세금, 즉 부유한 사람은 빈곤한 사람보다 더 많은 세금을 내야 한다는 원칙에서 출발한다. 그러나 자산조사 결과에 따라 수당을 지급하는 대부분의 복지국가에서는 복지수당을 받다가 임금 일자리로 옮겨가려는 사람들에게 잔인하고 자기파괴적이라 할 정도로 높은 세율을 적용한다. 예를 들어 영국과 독일에서 실업에서 벗어나 임금노동자가 됨으로써 복지수당을 잃는 사람들에게 적용되는 한계세율—특정한 소득대에 징수하는 세금—은 최대 80%에 이른다. 그것은 소득세에 적용되는 최고세율보다도 훨씬 더 높다. 사회가 가장 일을 시키고 싶은 집단에게 가장 일을 기피할 동기를 부여한다면 이는 부조리하다. 현재대로라면 노동의 댓가 1파운드당 겨우 20페니만을 자기 몫으로 가질 수 있다. 영국에서 최저임금을 받는 사람이라면, 한시간 노동으로 1.64파운드(약 2,460원)를 버는 셈이다. (25살 미만의 노동자라면 액수는 더 적다.) 당신이라면 한시간에 1.64파운드를 받고 일을 하겠는가? 그래야만 하는 걸까? 최근 몇십년 사이, 로우리가 썼듯 “노동자 세력의 파멸적 손실”이 벌어졌다. 조직노동에 대해 체계적 공격이 가해지면서 그 결과 조직 노동자들의 급여와 안정과 노동조건이 악화되었다. 보편적 기본소득은, 단순히 말해 노동자들이 그런 상황을 쉽게 거부할 수 있도록 해줄 수 있다.

자유, 안정, 사회정의—그리고 또 있다. 현재의 경제제도는 여성이 주로 담당하는 무보수 노동의 중요성을 평가절하한다. 스탠딩은 여성과 일에 대한 경제학자 피구(A. C. Pigou)의 사고(思考) 실험을 원용해 말한다. “만일 그가 가정부를 고용한다면 국민소득은 올라가고 경제는 성장하며 고용률도 상승하고 실업률은 하락할 것이다. 그후 그가 그 가정부와 결혼하고 그녀는 정확히 똑같은 일을 계속한다면, 국민소득과 성장은 내려가고 고용률도 하락하며 실업률은 상승한다. 이건 터무니없다(그리고 성차별적이다).” 여성이 하는 무보수 노동의 중요성은 1975년 10월 24일 아이슬란드에서 벌어진 여성휴업(Women’s Day Off)에서 극적으로 부각되었다. 그 경험은 아이슬란드 사회 전체의 의식을 고양시킨 듯하다. 미혼모 국가수반의 유일한 사례인 비그디스 핀보가도티르(Vigdís Finnbogadóttir) 아이슬란드 대통령은 자신이 그 사건을 계기로 정치에 입문하게 되었다는 말로 여성휴업의 급진화 효과를 증언한다. “그 파업으로 나라 전체가 마비되었고, 많은 남성들의 눈이 뜨였지요.” 더욱이 여성이 유급노동에 종사하더라도 여성의 일은 남성의 일에 비해 보수가 적다. 단지 여성이 한다는 이유만으로 그렇다. 남성 다수에서 여성 다수로 바뀐 직업들에 대한 이스라엘의 연구에서 그 증거를 볼 수 있다. 보편적 기본소득이 이 문제를 해결하지는 않겠지만 완화하는 데는 도움이 될 것이다.

모든 사람이 인공지능 때문에 직업 대재앙이 다가온다고 믿지는 않지만, 그 문제를 연구한 사람들은 모두 선진국에서 고용이 가장 크게 성장할 부문은 돌봄노동, 특히 노인 돌봄노동의 영역이 되리라고 확신한다. 이건 단순한 산수의 문제다. 인구는 점점 나이가 들고 건강이 악화되고 있으며, 그 속도는 인구학적으로 전례가 없이 빠르다. (개인이 더 빨리 늙을 수는 없지만, 어린이가 충분히 태어나지 않는데 노인은 더 오래 산다면, 인구는 더 빨리 노화하게 된다.) 인류 역사상 처음으로 5살 미만의 인구보다 65살이 넘는 인구가 더 많아졌다. 우리가 늙어감에 따라 누군가는 우리를 돌봐야 한다. 현재는 이 돌봄노동의 아주 많은 부분이 무상으로 이루어지고 있고, 유상이라 하더라도 보수가 아주 형편없다. 무임금과 저임금 노동의 문제점은 보편적 기본소득에 의해 완화될 수 있다. 무급 노동자들, 저임금 여성들, 무보수 돌봄노동자들에게 일정량의 현금을 직접 지급해주기 때문이다.

동시에 보편적 기본소득은 판 파레이스와 판데르보흐트가 말하듯, “유급노동을 세속화하는” 효과를 낳을 것이다. 즉 이 세상에는 유급노동 외에 다른 형태의 노동도 있으며, 노동은 유일한 가치 기반이 아니고, 어떤 직업이든 없는 것보다 낫다는 말은 사실이 아니라는 점을 확실히 해줄 것이다. 보편적 기본소득제가 실시된다면 사람들은 모욕적으로 느껴지는 일을 거절할 수도 있고, 자기 삶을 놓고 창조적 실험을 해볼 수도 있다. 의도적으로 경력단절을 해볼 수도 있고, 본의 아니게 직업을 바꿔야 하는 상황에서도 스트레스를 덜 받을 수 있다. 경력 중간 재훈련과 더불어 이 두가지는 앞으로 닥칠 노동세계의 불가피한 특징이라고 널리 여겨지는데, 보편적 기본소득은 그런 상황을 훨씬 더 견딜 만한 것으로 만들어줄 수 있다. ‘세속화’를 더 밀고 나가 아예 일을 안 하기로 결정할 사람도 있을 수 있다. 『말도 안 되는 직업들』의 그레이버나 『미래의 발명』의 스르니첵과 윌리엄스처럼 유토피아주의적이거나 아나키즘적인 성향의 사상가들이 보기에는 우리 안에 철저히 내면화된, 유급노동의 본래적이고 구원적인 미덕에 대한 믿음과 이렇게 깊은 단절을 이룰 수 있다는 점이야말로 보편적 기본소득제의 가장 긍정적인 면의 하나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자신의 일에서 만족을 못 느끼니까 말이다. 갤럽 조사에 따르면 미국 노동자들 중 오직 3분의 1만이 자기 일에 ‘열의가 있다’고 하는데, 그다지 좋은 결과는 아니지만, 그나마 영국에 비하면 훨씬 낫다. 영국 노동자들의 경우 11%만이 자기 일에 ‘열의가 있다’고 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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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편적 기본소득과 유사한 아이디어를 처음 언급한 책이 토머스 모어(Thomas More)의 1516년 저서 『유토피아』(Utopia)라는 사실은 명백하다. 그 책에서 주요 인물 중 하나가 도둑에 대한 교수형을 중지하자고 제안한다. “그렇게 끔찍한 처벌을 하는 대신, 모든 사람들에게 생계수단을 제공해서 아무도 일단 도둑이 되었다가 다음엔 시체가 되는, 무시무시하고 불가피한 상황에 처하지 않게 하는 편이 훨씬 더 이치에 닿는다.” 그렇다면 보편적 기본소득이란 아나키스트-유토피아주의자인 좌파, 포스트맑스주의적이고 포스트포드주의적인 좌파의 들뜬 꿈에 지나지 않는가? 글쎄, 그렇지는 않다. 신기한 일은 보편적 기본소득에 대한 최근의 관심이 경제적 우파에서 시작되었다는 사실이다. 다른 사람 아닌 바로 프리드리히 하이에크(Friedrich Hayek)가 “모든 사람에게 일정한 최소한의 소득 (…) 생계를 유지하기 어려울 때라도 절대 그 아래로 내려가지 않게끔 하는 최저선”에 대해 주장했다. 밀턴 프리드먼(Milton Friedman)은 역소득세의 형태로 그것을 받아들였는데, 역소득세란 보편적 기본소득의 여러 하위 형태 중 하나다. 정부에서 최소 소득액을 정하고, 그보다 많이 벌면 세금을 걷고, 그 아래면 부족분을 메워주면서 그 액수에 이를 때까지 점점 보조금을 줄여가는 방식이다.2 이 제도는 박봉의 직업에 종사하는 사람을 대상으로 하며, 실상 그들에게 일을 장려하는 방안이다. 그리고 그런 면에서 빈곤계층 사람들을 도움받을 자격이 있는 사람과 없는 사람으로 나누는 구별을 암묵적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진보적인 정책임은 틀림없고, 1968년에는 1,200명의 미국 경제학자들이 제도 도입을 위한 청원에 서명할 정도로 광범위한 지지를 받았다.

당시에는 역소득세 주장에 워낙 가속도가 붙어 닉슨 대통령이 그 제도를 실험적인 형태로 실시하기도 했다. 닉슨 대통령의 경제정책은 사실 현재의 공화당보다는 알렉산드리아 오카시오코르테즈(Alexandria Ocasio-Cortez, ‘민주적 사회주의자’를 자칭하는 민주당 여성의원—옮긴이)의 정책에 더 가깝다. “어린 자녀가 있는 모든 미국 가족의 수입에 최저선을 정합시다.” 닉슨이 말했다. “그리고 현재 사회복지의 수혜자인 어린이들의 삶에 아주 어두운 그림자를 드리우는 모욕, 인간으로서의 존엄성을 짓밟고 영혼을 질식시키는 모욕을 더이상 하지 맙시다.” 이 안은 가족부조계획이라 불렸는데, 기본 발상은 자격을 갖춘 모든 가족에게 일년에 1,600달러를, 오늘날의 돈으로 환산하면 약 11,000달러를 지급하는 것이었다. 자격 요건은 어린이가 있는 가족이어야 하며, 아버지든 어머니든 가장이 저임금 노동에 종사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이것은 대중에게 인기있는 법안이었고, 하원에서는 통과되었으나 1972년 상원에서 주로 민주당의 반대로 상정되지 못했다. 가족에게 지급하는 돈의 액수가 너무 적고, 일을 꼭 해야만 한다는 요건이 부당하다는 우려 때문이었다. 하지만 이 안은 다른 형태로 이어졌다. 1975년 근로소득세액공제제도가 도입되어 오늘날까지 이어지며 2,600만 노동가족에게 700억 달러를 현금으로 분배했는데, 어떤 의미에서는 이 제도야말로 역소득세의 후계자다. 또한 이 제도에 포함된 노동 의무 요건이 1996년 클린턴의 ‘근로복지’(workfare)의 가혹한 원칙, ‘우리가 알고 있던 복지의 종말’의 씨앗이 되었다고도 주장할 수 있을 것이다.

보편적 기본소득의 한 형태를 처음으로 진지하게 시도한 세력이 정치적 우파라는 사실이 의외라고 여겨질지도 모른다. 그러나 우파는 보편적 기본소득을 무척 좋아한다. 아니, 그 제도의 특정 형태를 무척 좋아한다. 기본적인 아이디어는 다양하고 복잡한 형태의 모든 현존하는 복지, 즉 연금과 세액공제, 실업보조금과 육아수당 등을 다 없애고 그 대신 상황과 무관하게 모든 사람에게 단일한 액수의 현금을 지급하자는 것이다. 『벨 커브』(The Bell Curve)의 공저자인 찰스 머리(Charles Murray)의 솔직한 표현을 들어보자. “내가 원하는 것은 좌우 대타협이다. 우파인 우리는 ‘돈을 많이 쓰는 것으로 당신들에게 거대 정부를 줄 테니, 당신들은 정부가 국민의 삶에 간섭할 권한을 줄이는 것으로 우리에게 작은 정부를 주면 된다’라고 말하겠다.” 기본 아이디어는 복지국가를 통째로 없애고 그 대신 모든 성인에게 1만 달러짜리 수표를 주겠다는 것이다.

수학적으로 이것이 불가능하다고 여겨질 법하다. 그러나 로우리가 지적하듯, 미국정부는 “사회보장, 메디케어, 메디케이드, 실업보험, 참전용사 수당 등을 포함한 사회보험에 총 2.7조 달러를 지출한다.” 미국의 성인 인구가 2억 1천만이니 사회적 지출을 모조리 없애면, 놀랍게도 그들 모두에게 줄 현금이 나오고도 남는다. 몇초만 생각해봐도 이것이 디스토피아적이고, 심지어는 악몽 같은 국가 비전임을 알 수 있다. 많은 핵심적인 국가기능을 후퇴시키고 시민의 필요에 대해서는 철저하게 나 몰라라 하는 자세를 취하기 때문이다. 머리 같은 사람이 이런 방안을 매력적이라고 생각하는 이유는 부분적으로, 수중에 한푼도 없어 절망적인 사람이라도, “더이상 자신을 아무런 대처도 할 수 없는 무력한 희생자라고 주장할 수 없다”는 점 때문이다. 이것은 무척 보복적인 비전이다. 영화 「매드 맥스」에서 흥미진진한 추격 장면을 뺀 세계라 할 만하다. 좌파는 이런 전망에 대한 혐오감, 그리고 보편적 기본소득을 공공연하게 지지하는 부류의 사람들—마크 저커버그, 일론 머스크, 빌 게이츠, 에릭 슈미트, 힐러리 클린턴—에 대한 의심이 결합돼 회의론으로 기울었다. 기본소득지구네트워크는 무한경쟁의 자유지상주의적 판본의 기본소득론에 대한 깊은 우려 때문에, 반복지국가적 기본소득안의 거부 결의안을 채택하기까지 했다.

현존 복지국가를 내포한 튼실한 보편적 기본소득안을 살펴보기에 앞서 두 입장의 중간지대도 있다는 사실을 지적하고자 한다. 크리스 휴즈(Chris Hughes)는 3만 3천 피트(약 10킬로미터)의 고도에서 폭발한 비행기에서 추락하고도 살아남은 세르비아의 항공기 승무원 베스나 불로비치(Vesna Vulović)의 인터넷 등가물이라고 할 만하다. 불로비치만큼 운이 좋았다고는 할 수 없겠지만, 마크 저커버그와 하버드 룸메이트였던 덕분에 5억 달러나 되는 돈을 벌게 되었으니 말이다. 그는 이 경험으로 인해 운(運)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됐고, 그 결과가 저서 『공정한 기회: 불평등과 돈 버는 방법에 대해 다시 생각한다』(Fair Shot: Rethinking Inequality and How We Earn)로 나타났다. 휴즈는 운이 중요하다는 것, 그리고 운을 좀더 잘 관리할 수 있는 방법의 하나가 역소득세의 한 형태를 부활시키는 것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의 제안은 다음과 같다. “공적 경제영역에서 일하거나 집에서 돌봄노동을 하거나 학교에 재학 중이면서 연간 소득이 5만 달러 이하인 모든 미국인 가계에 일인당 한달에 500달러의 수입을 보장한다.” 그 재원은 자본 이익에 대한 조세법의 허점을 메우고, 세금공제 한도를 28%로 정하고, 연간 수입이 25만 달러 이상인 사람들의 소득세를 올림으로써 조달할 것이다. 이런 조치들로 2,900억 달러가 조성되고, 현존 복지수당을 전혀 삭감하지 않고도 새 안의 재원 조달이 가능해진다.

로우리와 마찬가지로, 휴즈도 노동을 중시하는 미국사회의 가치관을 자명한 진리로 받아들인다. 휴즈는 보편적 기본소득에 여러 종류가 있다는 것을 잘 아는 위치에 있다. 기브디렉틀리(GiveDirectly) 네트워크에서 보편적 기본소득에 대해 연구하며 케냐 등에서 파일럿 프로그램을 운영하도록 재정적 도움을 주기도 했는데, 그중 하나는 『사람들에게 돈을 줘라』에서 로우리의 호평을 받은 바도 있다. 일을 중심에 놓고, 빈곤하지만 자격이 되는 사람에게만 자녀양육보조금을 주는 미국적 버전의 기본소득제는 완전한 보편적 기본소득제와 일부 유전자를 공유하지만, 그 유사성 뒤에 일의 역할에 대한 깊은 철학적 차이를 감추고 있다. 그리고 어쩌면 미국이 더 철저한 형태의 복지국가들과 얼마나 다른지도 그 유사성을 통해 부각된다고 할 수 있다. 휴즈의 안 비슷한 것이 진보적인 민주당 정부하의 미국에서 실행 가능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사실, 미국이 아닌 다른 나라들도 더 포괄적인 보편적 기본소득제를 실시하기 전에 이런 형태부터 시작할 수도 있다. 돈이 덜 들고 더 부분적이기 때문에 중간 단계에서 더 가능하기도—적은 가능성이긴 하지만—하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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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편적 기본소득에 대해 처음 듣는 사람들은 이 시점에서 모두 “그렇지만, 그렇지만, 그렇지만……”이라고 말한다. 의문과 반대에는 주로 두가닥이 있는데, 첫번째 가닥은 이것이 과연 제대로 작동할지 알 수 없고, 아니면 의도하지 않은 결과로 인해 무너질 수도 있다는 회의적인 태도다. 그 논리는 다음과 같다. 사람들은 이를 기회 삼아 일을 그만둘 것이고, 그러면 사회 내부에 항구적으로 하층계급이 자리 잡게 될 것이다. 사람들이 돈을 무책임하게 쓰고 낭비해서 늘어난 보장 혜택은 무의미해질 것이다. 사람들은 ‘사적 악’(‘공공선’의 반대말인 이 멋진 표현은 기본적으로 마약과 술을 뜻한다)에 자기 몫의 돈을 모조리 탕진해버릴 것이다. 일을 안 해서 가난한 사람과 일을 해도 가난한 사람을 똑같이 취급하는 것은 기본적으로 부당하다. 너무 많은 돈이 돈을 필요로 하지 않는 사람에게 갈 것이다. (지금도 아주 많은 돈이 필요하지 않은 사람에게 간다는 사실에 주목하자. 양적 완화 기간 동안 영국에서는 자산 구입에 4,350억 파운드를 지출했는데, 그 전액이 부유한 기관과 사람들에게 가서 경기부양 효과는 불분명했다. 그것은 모든 영국인에게 2년 동안 일주일에 50파운드씩 지급할 수 있는 액수다. 제정신이 박힌 경제학자라면 후자의 경기부양 효과가 훨씬 더 클 거라고 생각하지 않기 힘들다.)

다행히 매니토바, 이란, 핀란드, 스톡홀름, 케냐, 체로키 민족, 알래스카, 브라질, 멕시코, 라이베리아, 온두라스, 인도네시아, 그리고 심지어 런던까지 대단히 광범위한 장소들에서 여러가지 파일럿 프로그램과 실험적인 계획들이 실시되었고, 그 덕분에 보편적 기본소득의 효과에 대해 무척 많은 경험적 증거가 존재한다. (런던은 아마 가장 의외의 장소일지 모르겠다. 런던에서는 브로드웨이라는 이름의 자선단체가 노숙자들에게 아무 조건 없이 현금을 나눠주는 파일럿 프로그램이 있었다. 4년 이상 거리를 떠돈, 런던에서 가장 오래된 노숙자 13명을 선정해 “이런 삶을 바꾸려면 얼마가 필요하세요?”라고 물어보고 그들이 말한 액수의 돈을 직접 주었다. 평균 794파운드를 받았는데, 13명 중 11명은 1년 후 더이상 거리에서 살지 않게 되었다. 물론 표본의 크기는 아주 작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과는 꽤 시사적이다.) 파일럿 프로그램 중에는 우연히 실시된 것도 있다. 체로키 민족 파일럿 프로그램은 1993년 듀크 대학의 연구자들이 스노이 산맥(Snowy Mountains) 지역 거주 1,400명의 가난한 어린이를 대상으로 정신건강을 연구하다가 이루어졌다. 1996년 체로키 민족이 카지노 사업을 시작했고, 거기서 나오는 수입의 반을 체로키 민족 구성원들에게 아무 조건 없이, 매년 동등하게 분배하기로 결정했다. 연구 대상 어린이들의 약 4분의 1이 체로키 구성원이었고, 그 결과 듀크 프로젝트는 우연히도 보편적 기본소득의 효과를 10년이라는 장기간에 걸쳐 대규모로 연구하게 된 셈이다. 결론은 “기본소득을 받는 가정의 어린이들은 다른 요인들을 제어한 뒤에도 학교에서의 성취가 향상됐고, 아동범죄에서는 ‘극적인 감소’를 보였다”는 것이다. 부모들의 관계도 향상된 것으로 보이고—돈 때문에 다투는 일이 줄어들면 도움이 될 테니까—특히 가장 궁핍했던 어린이들 가운데서 그 효과가 가장 두드러졌다. 부모들도 술을 덜 마시고 마약도 덜 했다.

모든 파일럿 프로그램의 결과가 비슷하다. 알래스카는 공화당 주지사였던 제이 해먼드(Jay Hammond)가 도입한 정책 덕분에 1976년부터 보편적 기본소득의 한 형태를 실시해왔다. 이것은 알래스카 영구기금(Alaska Permanent Fund)이라 불리는데, 화석연료 채굴에서 들어오는 연간 채굴권 사용료의 4분의 1을 정부 운영기금으로 돌린다. 로우리가 지적하듯, 이 정책으로 인해 알래스카의 화석연료는 “웨스트버지니아의 땅속에서 캐내는 석탄, 노스다코타의 이판암 모래에서 추출하는 진흙, 매사추세츠의 바람으로 생성되는 전기, 혹은 네바다의 태양에서 모으는 전력과는 다르다.” 혹은 우리가 만드는 데이터나 우리 몸 위로 떨어지는 비와도 다르다. 피터 반스가 영향력 있는 저서 『우리의 당연한 권리, 시민배당』에서 설득력 있게 지적하듯, 보편적 기본소득의 재원 마련에 사용될 수 있는 공공자원은 많다. 알래스카의 제도는 공공자산에서 나오는 돈을 더 많이 시민들을 위한 쪽으로 돌리는 경우 가능한 일을 잘 보여주는 강력한 모델이다. 그 기금의 2.5%가 재소자와 유죄판결을 받은 중죄인을 제외한 모든 알래스카의 주민에게 해마다 수표 형태로 지급된다. 액수는 보통 일인당 1천~2천 달러 사이로 평균 1,400달러 정도인데, 4인 가족을 단위로 보면 1년에 6천 달러가량 된다. 아주 많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적은 액수도 아니다. 조건 없이 주어지는 현금이 흔히 그렇듯, 알래스카 주민들도 주로 꼭 필요한 데 그 돈을 쓴다. 휴즈의 보고에 따르면, 그 돈으로 무엇을 하는지 묻는 질문에 그들이 내놓는 가장 일반적인 대답은 “수지 균형을 맞추는 데 도움이 돼요”이다. 알래스카는 미국 50개 주 중 불평등 비율이 가장 낮은 곳 중 하나다. 보편적 기본소득에 대한 반대 논리의 큰 몫은 그것 때문에 일하고자 하는 동기가 줄어든다는 것이지만, 많은 연구에서 내려진 결론에 따르면 기금 배당금이 알래스카의 취업률에 부정적 효과를 가져왔다는 증거는 전혀 없다.3

빈곤국의 경우에도 증거는 비슷하다. 케냐에서는 기브디렉틀리가 무작위통제시험이라는 일반적으로 합의된 모범적인 과학적 방법론을 사용해 설계가 잘된 파일럿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이전 세대가 아프리카나 다른 곳에서 빈곤을 완화하려 할 때 그런 식의 시험을 하지 않은 것은 큰 문제였다. 시험해보지 않았기 때문에 어떤 프로그램의 어떤 면이 어떤 효과를 갖는지 전혀 파악할 길이 없었다. 이에 대해 더 자세히 알고 싶다면 제프리 삭스(Jeffrey Sachs)를 무척 흥미롭게 다룬 니나 멍크(Nina Munk)의 저서 『이상주의자』(The Idealist)를 보라.) 케냐에서 기브디렉틀리가 실시한 파일럿 프로그램에서는 사람들에게 아무 조건 없이 한꺼번에 현금을 지급한 뒤 오랜 기간에 걸쳐 그 효과를 관찰했다. “각 가정에 404달러에서 1,525달러까지 지급했는데, 그 결과 가계자산이 58% 증가했다. 사업소득과 농업소득은 38% 증가했고, 이는 연간 수익률 28%를 의미한다. 어린이들이 하루 종일 굶는 비율도 42% 감소했다. 가정폭력도 감소했다. 돈을 받은 사람들의 몸속에서는 스트레스 호르몬인 코르티졸의 양조차 줄어들었다.” 보편적 기본소득 프로그램의 일종으로 가장 규모가 큰 것은 브라질의 보우사 파밀리아(bolsa família)다. (내가 여기서 ‘일종’이라고 한 것은 그것이 가족에게만, 그리고 자녀가 예방접종을 하고 학교에 다니는 경우에만 주어졌기 때문이다. 그런 조건 때문에 엄밀히 따지면 그것은 보편적 기본소득이 아니라 조건부 현금 이전이다.) 이 프로그램의 결과로 극빈자가 50% 줄었고, 불평등의 비율은 20% 감소했으며, 취학률은 늘어나고 자살률이 줄어드는 등의 효과가 나타났다. 멕시코에서도 유사한 프로그램이 실시되었는데, 그 결과 여성의 수입이 65% 증가했고, 어린이가 학교에서 보내는 총 시간이 1년 3개월 늘어났으며, 아동 발병률은 23% 줄었고 여아의 발육부진은 39% 감소했다.

이런 긍정적 효과 중에서 어떤 것들은 사람들이 재정적 스트레스가 없어지자 더 명확하게 사고할 수 있게 된 덕분에 가능해진 듯하다. 뉴저지(!)의 쇼핑몰에서 실시된 실험이 있는데, 한 무리의 사람들에게 150달러가 드는 일회성 자동차 수리에 대해 질문을 하고, 다른 집단의 사람들에게는 1,500달러의 수선비가 드는 사례에 대해 동일한 질문을 했다. 150달러짜리 수리에 관한 질문에 대해서는 모든 응답자의 응답률이 동일했지만, 1,500달러짜리에 관한 질문에서는 가난한 사람들의 대답이 훨씬 뒤떨어졌다. 재정적 스트레스의 요소—그 상황을 상상하는 일의 정서적 효과—가 그들의 지능지수를 13~14퍼센트 정도 떨어뜨리는 효과를 낳은 것이다. 하루 밤샘의 효과와 동일한 수치다. 휴즈가 말하듯, “재정적으로 불안정한 삶을 사는 사람들은 하루하루를 방금 밤샘한 사람처럼 살고 있다. 피곤에 찌들고, 지적·정서적 안정성이 줄어든 상태로 사는 것이다.” 이 실험을 했던 프린스턴 대학의 심리학자 엘더 샤피어(Eldar Shafir)와 하버드 대학의 경제학자 센딜 멀레이너선(Sendhil Mullainathan)은 빈곤의 효과에 초점을 맞추기 위해 다른 모든 변수를 제어했지만 한가지 요소는 제어가 불가능했으니, 부자와 빈자가 동일 인물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그래서 그들은 같은 실험을 인도의 한 농촌에서 행했다. 그곳은 사탕수수 추수철에 연간 소득의 60%를 한꺼번에 버는 곳, 즉 전형적인 농부라면 일년 동안 부유한 시기와 빈곤한 시기를 모두 살아야 하는 곳이다. 이 실험의 결과에 따르면, 농부들도 빈곤한 시기에는 쇼핑몰에서 실시한 연구에 참여한 빈곤층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인지력이 떨어졌다. 빈곤은 뉴저지에서 빌푸람과 티루반나말라이에 이르기까지 어디서나 사람들에게 긴장을 강요함으로써 그들의 인지력을 떨어뜨린다. 현금이전의 효과가 어찌나 포괄적인지, 거의 마술적이라 할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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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생각엔 보편적 기본소득제에 대한 일차적인 우려, 즉 그것이 실패할 수도 있다거나 의도하지 않은 결과로 인해 질식사할 거라는 우려는 완화될 만한 충분한 증거가 있다. 이차적인 우려는 더 단순하지만 무시하기는 더 어려운 것이다. 즉 그것이 비현실적으로 돈이 많이 드는 제도라는 것이다. 보편적 기본소득에 대해 쓰인 모든 글들이 이 논점에 도달하며, 그것은 종종 마뜩잖다는 느낌과 의문스럽다는 듯 눈알을 굴리는 태도와 함께 제시된다. 비용의 충당이 어떻게 가능할지 논의가 필요한 시점인 것이다. 그 의문에 대한 답은 전적으로 논자가 보편적 기본소득/역소득세/조건부 현금이전이라는 다양한 갈래 중에서 어느 것을 선호하느냐에 달려 있다. 자유지상주의적이고 디스토피아적인, 찰스 머리 식의 ‘가난한 사람은 죽어라’ 버전은 국가의 사회복지 지출을 모두 없앰으로써 대부분 자체 충당이 가능하다. 크리스 휴즈의 ‘분별력 있는 선장’형 역소득세 버전은 자산조사와 부자증세를 통해 비용을 충당할 수 있다. 필리프 판 파레이스는 현재의 복지국가 형태를 모두 유지하고 유럽 전역에서 거두는 부가세로 재원을 마련해 200유로라는 상대적으로 낮은 액수의 지급에서 출발하자고 제안한다. 그 발상은 낮은 액수로 출발해 그 추이를 지켜보자는 태도인데, 타당한 접근법이다. 최근 핀란드에서 실시한 보편적 기본소득 실험에서는 지급액을 한달에 560유로로 정했는데, 핀란드가 너그러운 복지국가임을 고려해볼 때 이 액수는 실은 현재 지급하는 복지수당 수준보다도 낮은 것이다. 만일 핀란드에서 현재의 복지제도 대신 지금 실험 중인 형태의 보편적 기본소득제를 실시한다면 핀란드 정부는 일년에 60억 유로를 절약할 수 있다.

영국 왕립예술협회에서 마련한 안을 보면 성인에게는 주당 71파운드, 연금수령자에게는 143파운드, 그리고 어린이에게는 연령에 따라 다른 액수를 지급하도록 되어 있는데, 이는 비용 전액을 자체 충당하는 보편적 기본소득제다. 이 지급액이 장애인 보조금과 주택수당을 제외한 현재의 수당 대부분을 대신하며, 재원은 개인조세특별조치와 국가보험을 폐기하고, 모두들 전혀 말이 안 된다고 생각하는 현재의 세율을 조정해서 마련될 것이다. 이 제도에는 980억에서 1,640억 파운드가 더 필요한데, 이 액수는 고든 브라운(Gordon Brown)과 조지 오스본(George Osborne)이 수정한 세금제도에서 새로 거둬들이는 액수보다도 적다. 앤디 스턴(Andy Stern)이 제안하는 형태의 보편적 기본소득은 미국의 모든 성인에게 한달에 1천 달러를 지급하는데, 총비용은 2.7조 달러가 든다. 그 비용은 현재의 사회복지 프로그램들을 없애고 세금우대조치(1.2조 달러)를 제거하고 방어비 지출을 줄이고 판매세를 도입해서 마련한다. 선택의 범위는 혼란스러울 정도로 넓은데, 이를 개괄적으로 가장 잘 보여준 사람은 가이 스탠딩이다. 아니면 누구나 『이코노미스트』(The Economist)지의 웹사이트에 가서 기본소득 계산기를 이용해 자기 식의 기본소득제를 고안할 수도 있다! 하지만 전체적인 교훈은 보편적 기본소득제의 여러 형태가 생각보다 감당할 만하다는 사실이다. 주된 반대 이유의 하나—즉 부자들이 그들에겐 불필요한 돈을 받게 된다는 것—는 세금제도로 쉽게 해결할 수 있다는 사실도 기억하자. 특정액 이상의 소득이 있는 사람들에게 보편적 기본소득으로 지급된 돈을 세금으로 환수하는 것은 간단한 일이다.

한가지 큰 반대의견이 남아 있다. 우리는 사람들이 일하고자 하는 동기라는 면에서 보편적 기본소득이 전체 경제에 미칠 영향력에 대해 모른다는 것이다. 보편적 기본소득의 비용을 충당하기 위해 돈을 벌어 제도 속으로 투입하는 것은 민간 영역, 즉 회사들이다. 판 파레이스와 판데르보흐트가 말하듯, “기본소득에 그것이 필요로 하는 과세표준을 제공하는 것은 회사에서의 생산(한 나라의 국내총생산에 기록되는 민간부문과 공공부문의 임금노동)뿐이다.” 이 사실이 민간부문에 어떤 영향을 미칠까? 회사들이 지금과 같은 방식으로 굴러갈 수 있을까? 일할 동기가 회사의 수준과 노동자의 수준에서 어떤 식으로 작동할 것인가? 많은 직업이 너무 매력적이지 않아서 회사가 지급할 수 있는 수준의 보수를 받고 일할 사람이 없어질 수도 있다. (그런데 인간복지라는 면에서 보면 그게 그렇게 나쁜 일만도 아닐지 모른다.) 파일럿 프로그램들은 보편적 기본소득의 개인적 효과에 대해 온갖 종류의 증거를 제공할 수 있지만, 전 경제영역에 걸쳐 보편적 기본소득제를 운영하려면 경제 전체를 대상으로 실험해야 하고, 우리는 아직 당연히 그 모습을 모른다. 이것이 보편적 기본소득을 낮은 수준에서 시작해 그 결과를 살펴보아야 할 좋은 이유다.

사실 보편적 기본소득의 장점이 전반적으로 설득력 있다고 보더라도 여전히 그것이 실시될 것 같지는 않다고 생각할 것이다. 재정제도와 복지국가를 변화시키지 않으려는 타성의 힘은 엄청나다. 사실 그 체계가 현재 형태로 존재하는 유일한 이유가 타성과 그때그때 덧붙여진 결정 때문이며, 많은 결정이 임시변통의 즉흥적인 이유로 내려졌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효화하기란 엄청나게 어렵다. 스코틀랜드 국민당 소속 하원의원인 로니 코원(Ronnie Cowan)이 2016년 의회에서 말했듯이, “만일 우리에게 백지를 주고 복지체계를 기안해보라고 하면 아무도—정말이지, 아무도—우리가 지금 실시하는 이런 체계를 생각해내지는 않을 겁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수천장의 종이가 필요할 테고, 포기된 프로젝트와 형편없이 시행되거나 미온적인 견해들의 마구잡이 혼합물, 그리고 너무나 복잡해서 가장 필요한 사람들을 실망시킬 체계를 생각해내야 할 것입니다.” 영국 왕립예술협회 자료에 근거한, 위의 표에 제시된 2016년의 영국 세율을 보라.

 

<표> 연수입 대비 한계세율

연수입 대비 한계세율

 

아무도 그런 제도에 투표하지 않았다. 아무도 빈곤한 사람들에게 70% 이상의 세율을, 혹은 10만 파운드보다 약간 더 버는 사람에게 63%의 세율을 적용하자고, 그리고 그 이상 버는 사람에게는 훨씬 낮은 세율을 적용하자고 주장하지 않았다. 전혀 말이 되지 않는다. 그러나 이 혼란스럽고 망가진, 관료주의에 찌든 세제는 영국에서 전혀 정치적 이슈가 되지 않는다. 그런 상황을 고려할 때, 이 체계를 근본적으로 개혁할 시기가 무르익은 것일까? 국내총생산 대비 세금의 비율, 즉 정부가 경제적 파이에서 얼마나 큰 몫을 차지하는지는 오랜 기간에 걸쳐 현저한 일관성을 유지하고 있다. 1972년 이래 최저 비율은 1973년의 21%였고, 최고 비율은 2008년의 26.5%였다. 이는 35년이라는 기간 동안 일어난 모든 정치적·경제적 우여곡절을 고려하면 기이할 정도로 안정적인 숫자다. (내가 사용하는 데이터는 세계은행의 것이다. 다른 자료를 봐도 숫자가 약간씩 다르기는 하지만 안정성이라는 면에서는 유사하다.) 타성은 우리 제도의 가장 중요한 특징이다. 보편적 기본소득 같은 정책은 엄청난 외부적 충격이 가해지지 않으면 도입될 가능성이 없다.

변화를 위한 자극이 환경위기라는 형태로 도래할 가능성이 있다. 나는 좌파가 정치적 승리의 일종의 대리물로 기후변화에 의존할 위험성이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진보주의자들에게 섬뜩한 형태의 애착이불이라고나 할까. 그러나 사실 이번 세기말까지 기후가 섭씨 몇도 정도 더 상승하게 되면—기후변화에 관한 정부간 패널(IPCC)에 따르면 이것이 우리가 현재 운항하고 있는 궤도의 종착지가 될 가능성이 가장 높은 버전이다—현재 질서의 많은 부분이 전복될 것이다. 홍수와 가뭄과 폭풍우와 장기간의 혹서와 혹한, 그리고 유례없는 대규모 이주의 현실을 경험하고 있는 세계에서 사람들이 과연 현재 같은 승자독식 방식의 자본주의에 만족할 것인가? 온 세상이 홍수에 잠기고 불에 타고 굶어 죽어가는데, 이 세상이 멸망하는 그날까지 부자들이 계속 전체 소득에서 점점 더 많은 몫을 가져가도 우리는 괜찮단 말인가? 우리는 부자들이 빈자들과 단절하여 벽과 장벽 뒤에 안전하게 피신한 채 빈자들이 모두 죽도록 놔두는, 현재 ‘기후 아파르트헤이트’라 불리는 그 현상에 굴복할 것인가? 지금 추세로 간다면, 앞으로 그런 사태가 일어날 가능성이 없지 않다고 하겠다. 그런 길을 가지 않으려면 지금과는 다른, 더 나은 아이디어가 필요하다. 책임의 공유와 안전의 공유와 번영의 공유에 대한 아이디어가 필요하다. 좌파는 새로운 도구 세트가 필요하다. 좌파는 지적인 준비를 해놓아야 한다. 보편적 기본소득에 대한 이 새로운 제안의 물결이 대표하는 것은 바로 그런 준비다. 밀턴 프리드먼이 한 말이 다 옳지는 않았지만, 그는 지적 환경을 바꾸는 데 필요한 요건에 대해서 현대 정치경제학 분야의 어느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다. 그가 찾아낸 해법은 우선 새로운 아이디어를 사유 가능한 형태로 만들고, 다음 단계에서는 구체적 정책으로 만들어내는 것이다. 그에 따르면 결정적인 조치를 취할 준비는 완료된 상태다.

 

오로지 위기—실제 위기든 위기처럼 느껴지는 것이든—만이 진정한 변화를 가져온다. 그 위기가 발생하면 우리는 주변에 있는 아이디어에 의존해 행동한다. 나는 이 과정에 관여하는 것이 우리의 기본 기능이라고 믿는다. 현재의 정책에 대한 대안을 개발하고, 정치적으로 불가능한 것이 정치적으로 불가피한 것이 될 때까지 그 정책들을 살아 있게 해서 사용 가능하게 만드는 것 말이다.

 

현재 이 묘사에 들어맞는 진보적 대안의 목록에는 내용물이 단 하나뿐이다. 보편적 기본소득 말이다.

번역: 전승희(全丞姬)/보스턴 대학 초빙교수, 비교문학

 

 

  1. 이 주장은 레졸루션 재단의 연구에 근거한 것이며, BBC와 풀팩트(Fullfact, 언론보도의 사실 확인을 위해 설립된 단체옮긴이)의 사실 확인을 거쳤다.
  2. 만일 역소득세가 50%이고 최저선이 3,000파운드라면, 그 결과는 다음과 같을 것이다. 만일 돈을 전혀 벌지 못하면 국가에서 1,500파운드자신의 소득과 3,000파운드 사이 차액의 50%를 지급할 것이다. 만일 일을 해서 500파운드를 벌면 국가에서는 1,250파운드자신의 소득과 3,000파운드 사이 차액의 50%를 지급할 것이다. 그 결과 전체 수입은 1,750파운드가 될 것이다. 1,000파운드를 벌면 1,000파운드를 받아서 총액은 2,000파운드가 될 것이다. 2,000파운드를 벌면 500파운드를 받아서 2,500파운드가 될 것이다. 3,000파운드를 벌면 그것을 다 보유한다. 3,000파운드 이상 벌면 소득세를 내기 시작한다.
  3. 이 기금을 두고 현재 정치적 싸움이 진행 중이다. 2016년에는 빌 워커(Bill Walker) 주지사가 그 기금 수입의 일부를 알래스카 주의 적자를 줄이는 데 전용하기 시작해서, 예컨대, 작년의 배당금은 2,700달러였지만 워커가 지급액을 1,600달러로 삭감했다. 그는 재선에 실패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