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과비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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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김유나 金裕娜

1992년 출생. 2020년 창비신인소설상을 받으며 작품활동 시작.

kgn0212@naver.com

 

 

 

랫풀다운

 

 

열. 석용은 양쪽 견갑을 모으며 바를 끌어당겼다. 두번째 세트의 열번째 움직임이었다. 앉은 자세에서 바를 쇄골 쪽으로 끌어당기는 랫풀다운 머신은 광배근을 강화하기에 가장 좋은 운동이다. 일상생활에서는 몸의 후면 근육을 거의 쓰지 않기 때문에 의식적으로 잡아주는 운동이 중요해요. 석용은 회원들에게 그렇게 가르쳐왔고, 가르친 대로 허리를 꼿꼿이 세우고 묵직한 광배근을 느끼려고 노력했지만 실패했다. 잡생각이 끼어들어 손목과 어깨에 힘이 들어갔다. 석용은 세번째 세트의 첫번째 동작을 멈추고 호흡을 골랐다. 하지만 오래 쉬면 더 힘들어지니까,라고 생각하며 다시 하나. 며칠 전까지만 해도 식단을 공유하고 운동기록을 올리는 게 목적이었던 회원들과의 카톡방은 ‘제이 피트니스 먹튀 대책회의’방이 되었다. 둘. 헬스장 대표는 회원 120명의 선납 이용료를 들고 잠적했다. 석용을 포함한 강사들의 월급은 삼개월째 밀린 상황이었다. 셋. 헬스장이 문을 닫는 넷째주 일요일에 모든 헬스장 기구들을 팔아넘긴 걸로 보아 우발적인 잠적은 아니었던 것으로 예상됐다. 삼면에 유리만 남은 웨이트 존의 살풍경. 직장을 잃은 다섯명의 오전 출근자들은 말을 잃은 채 서 있다가 이면지를 찾아 양해문구를, 그것도 몇번이나 고쳐 쓰고, 경찰서에 전화를 걸고, 퍼스널 트레이닝을 맡고 있던 회원들에게 연락을 돌렸다. 넷. 그저께, 관리인 하나 없는 아파트 지하의 헬스장에서 오전운동을 마친 석용은 조홍화 회원과 통화를 나눴고, 그날 이후 회원들의 연락을 피하고 있다. 헬스장 바로 옆 건물 일층에서 떡집을 운영하는 홍화 회원은 말했다.

“선생님 차원에서 해주실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어요? 다른 사람은 몰라도 나는 선생님 믿고 운동 시작한 건데.”

삼개월 치를 미리 끊었는데. 돈이 백오십인데. 석용은 ‘저도 피해자입니다’라는 말을 하려다가 관뒀다. 그 대신 정말 죄송하다고, 저희 사촌조카가 곧 돌인데 언제 한번 꼭 가서 돌떡이라도 맞추겠다고 말했다.

“돌떡이요?”

조홍화 회원은 허탈하게 웃고는 한참 동안 말이 없었다. 침묵을 견디던 석용은 핸드폰을 붙잡고 고개를 숙여가며 죄송하다고 말했다.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알몸이었다. 아무도 보는 사람이 없건만 부끄러워져 석용은 왼손으로 겨드랑이 털을 만지작거렸다. 전화를 끊고 샤워를 하면서, 석용은 대표인 승우형을 이해해보려고 노력했다. 역도 실업팀 시절 승우형은 석용의 바벨 메이트였다. 석용아, 복근에 힘주고 집중해 집중. 석용아, 중량 좀만 올려보자. 석용아, 그냥 놔버리지 그랬어. 그냥 놓고 무릎을 살렸어야지. 형은 석용에게 물리치료사, 수영지도사 자격증 공부를 권한 사람이었다. 물에는 물로, 불에는 불로, 부상에는 운동으로. 상황이 이 지경이 되기 몇개월 전, 강사들 사이에서 승우형이 회원과 바람이 났다는 소문이 돌았을 때도, 센터를 마련해줬다는 그의 장모가 찾아와 집어 던질 만한 것을 찾다가 주변엔 전부 무거운 것뿐이라 대여용 운동복을 헬스장 이곳저곳에 집어 던졌을 때도, 석용은 그를 믿었다. 가까운 사람일수록 궁금한 일에 말을 아끼고 묵묵히 곁을 지켜야 한다고 생각했고 그런 자신이 뿌듯하기까지 했다. 그러나 관리실장 겸 코어밸런스 GX트레이닝을 맡고 있던 허인승 선생이 카톡방에 공유한 문자메시지 캡처본을 본 뒤, 석용은 자기 자신에게 기이한 수치심을 느껴야만 했다. “인승아, 너한텐 진짜 미안하다.” 석용은 그날 어머니의 말마따나 자신이 ‘작정한 놈 눈에 띈 물렁한 놈’이었음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하루아침에 사년 동안 다니던 직장을 잃고 석용이 할 수 있는 일은 근육을 유지하고 하루 네끼 단백질 식단을 챙겨 먹는 것밖엔 없었다. 하지만 그건 이전에도 해왔던 일이었다. 트레이너 선생님들과 함께하는 대책모임에도 이젠 나가고 싶지 않았다. 경찰서에 신고를 하고 내용증명을 보낸 뒤로는 모여서 할 일도 없었다. 이주 만에 세 사람이 근처 헬스장에 스페어 강사로 재취업했다. 세 사람 모두 아이가 있었다. 더이상 기다릴 희망도 돈도 없다는 나은 선생님의 말을 들으니 그게 맞는 수순인 것 같았다. 두 눈을 가리는 삽살개 같은 헤어스타일을 고집하는 형욱씨만이 ‘돈을 못 받으면 집에 찾아가서 두드려 패기라도 해야 한다’는 식의 의지를 가졌을 뿐이었다. 어쨌거나 석용은 그런 형욱씨를 달래는 것에도 지쳤다. 실업자 다섯명이 동네에서 안주가 제일 싼 술집 단체석에 모여 앉아 웃거나 화내가며 대책 없는 대책회의를 지속하는 건 무의미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람도, 일도. 아무런 쓸모가, 없어. 아무런. 쓸모가. 스물. 기어이 다섯번째 세트의 스무번째 동작까지 마친 석용은 거울을 보았다. 들썩이는 흉근. 성인 남자 머리통만 한 허벅지와 다물어지지 않는 이두박근. 오랜 시간 공들여온 98킬로그램의 몸뚱이.

“그때 준 생선 너무 짜던데.”

석용은 아까부터 줄곧 음식 이야기를 하던 그들을 거울을 통해 쳐다보았다. 비단 오늘만의 일은 아니었다. 석용과 마주칠 때마다 그들은 음식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바닷고기가 짜지 싱거워? 물에 담가서 짠 기를 빼고 찌든가 굽든가 해야지.”

저 불량배 같은 인간들. 석용은 기구 사용을 방해하고 운동공간에서 취식을 하는 그들이 탐탁지 않았다. 그 아주머니들은 매번 근육을 풀어주는 ‘덜덜이’를 잠깐 하다가 벤치프레스를 벤치 삼아 앉아서는 가운데에 간식 비닐봉지를 펼쳐놓고 먹으며 담소를 나눴다. 그들은 이 아파트 헬스장을 오래전부터 그런 식으로 이용해온 모양인지 운동을 하는 석용을 신기한 듯 바라보곤 했다. 지난주에는 고구마를 들고선 어머나, 이게 뭐랑 똑 닮았다 말하며 배를 잡고 웃다가 백 익스텐션을 하는 석용을 보고는 아예 주저앉아 웃었고, 그 이후 석용은 더욱이 그들을 경계하고 있었다.

“아니야. 소금도 그거보단 싱거워. 자연산 옥돔 맞어?”

“참나, 안 먹으려면 도로 줘.”

석용은 헬스장이 그리웠다. 옥돔 실랑이나 비닐봉지 소리가 끼어들 수 없는 온전한 집중과 단련의 공간이. 근육을 위한 독서실이. 석용은 제이 피트니스를 자신의 공간이라 여겼다. 지난겨울 승우형이 석용을 따로 불러 말한 뒤로는 더 그랬다. 형은 스피닝룸을 정리하고 프라이빗 PT룸을 만들 예정인데, 거기서 나오는 수익의 60퍼센트를 이자 대신 떼어주겠다고 했다. 단 시설 철거와 초기 비용에 드는 육천만원을 투자 개념으로 빌려줘야 한다고. 너 인마, 놀고 있을 때도 돈 들어올 곳을 만들어놔야 노년이 편해진다. 석용은 태연한 승우형의 목소리가 떠올라 씩씩거리며 콧김을 뿜었다. 예선과 헤어지게 된 것도 따지고 보면 승우형 때문이었다. 네가 진짜 트레이너라면 피트니스 대회에 나가서 꾸준히 자신을 갱신하는 걸로 회원들에게 본을 보여야 돼. 석용은 그 조언을 깊이 새겨 4월부터 8월까지 풀타임으로 일하는 중에도 쪽잠을 자며 운동을 해 대회에 나갔다. 그러느라 예선에겐 뭐든 미루자고 말했다. 식은 미루자. 상견례는 미루자. 그게 뭐든 잠깐만 미루자. 석용은 승우형의 멱살을 잡아다 무릎을 꿇리고 싶었다. 책임지게 하고 싶었다. 그러나 어디에 가서, 어떻게 잡아야 할지 알 수 없어 애꿎은 무릎만 잡았다.

“자연산이라니까! 그리고 옥돔은 제주도에서만 나, 이 양반아!”

석용은 ‘제주도’라는 단어에서 퍼뜩 무언가가 떠올라 고개를 돌려 아주머니들 쪽을 쳐다보았다. 흠칫 놀란 그들이 되레 석용을 노려보았고, 자리에서 일어난 석용은 땀에 젖은 두건을 풀어내며 집으로 향했다. 그게 아직 집에 있을지도 몰랐다. 그거라면 승우형의 거처를 알 수 있을지도 몰랐다.

 

*

 

집에 도착하자 석용의 어머니가 거실에서 엄청난 양의 시금치를 다듬고 있었다. 어머니는 석용이 신발을 벗기가 무섭게 마침 잘 왔다고, 포항에 사는 이모가 시금치를 좀 보낸다고 하더니 빌어먹을 고문하는 것도 아니고 두 사람 사는 집에 시금치를 10킬로나 보내서 하루 종일 다듬어도 줄지를 않는다며 투덜거렸다. 석용은 당장 베란다로 뛰어가 지난 설에 받은 박스가 있는지 확인하고 싶었으나, 그랬다간 어머니에게 집요하게 추궁을 당하다 돈을 빌려준 것까지 실토할 것 같아 눈치를 살피며 부엌으로 가 과도를 집었다. 그리고 커다란 스테인리스 대야 앞에 앉아 박스에 든 시금치를 하나씩 꺼내 다듬었다. 뿌리를 잘라내고, 밑동을 열십자로 가르고, 시든 이파리를 쥐어뜯듯 떼어냈다.

“그 속도로 하면 금방 하겠다야.”

어쩌다 보니 티브이도 켜지 않은 채 고요한 거실에서 두 사람은 한참을 말없이 시금치만 다듬었다.

“너 다른 센터는 알아보고 있냐?”

“좀더 지켜보고요.”

“뭘 자꾸 지켜봐. 에어컨 할부랑 집 대출금 나가야 되는데.”

어머니는 과도를 내려놓고 대야 속 시금치 무더기에 양손을 넣어 뒤적거렸다.

“더 더워지기 전에 공진단도 하나 맞춰 먹어야 되는데……”

“저 제주도에 좀 다녀오려고요.”

어머니는 무언가를 읽어내려는 사람처럼 석용의 눈을 빤히 바라보았다.

“누구랑?”

“혼자요.”

“‘그것이 알고 싶다’ 보니까 그런 데 혼자 갔다가 다시는 못 돌아온 사람들이 많던데. 너 같은 몸은 잡아다가 부려먹기 딱 좋아. 그러니까 나랑 같이 가자.”

“무슨 그런 무서운 말을 하세요. 일 때문에 가는 거예요.”

“일? 무슨 일?”

석용은 두툼한 손으로 시든 시금치 이파리를 조물락거렸다. 석용은 거짓말을 못했다. 어머니는 그런 석용을 보며 고개를 절레절레 젓고는 대야 속 다듬어진 시금치를 이리저리 들추며 말을 하려다 관두고, 하려다 또 관뒀다. 어머니가 융단폭격 같은 불만을 쏟아놓기 전 늘 그런 식으로 행동했기에 석용은 자기도 모르게 승모근이 긴장되는 것을 느꼈다.

“나 같으면 쉬는 김에 같이 가서 효도하겠다. 네가 여름에 어머니 고생하셨다고 호캉스를 한번 보내줬냐 좋은 밥을 한끼 사줘봤냐. 주희네는 이번에 미국으로 가족여행 간다던데, 너는 늙은 에미 어디 모시고 갈 생각은 안 하고 그저 돈 생기면 별의별 놈의 요상한 닭고기란 닭고기는 다 사다가 냉동실에 쟁여놓을 줄만 알지. 그러더니 회사 잘리고 혼자 훨훨 여행을 가겠다고. 네가 나를 등한시한 게 예선이 걔 만나고부터야. 걔랑 결혼하겠다고 데려왔을 때부터 나는 마음에 안 들었어. 쥐 상은 배신한다고, 결국에는 배신한다고 내가 너를 얼마나 말렸는데.”

어머니는 대야를 내려놓고 일어나 화장실로 갔다. 그리곤 굳이 문을 활짝 열어놓은 채 오줌을 누며 혼잣말이라기엔 너무 큰 소리로 중얼거렸다.

“남편 복 없는 년 자식 복도 없다더니. 그게 맞는 말이었어.”

석용은 참을 수 없어 “제발 문 좀 닫고 누세요!” 외치고는 벌떡 일어나 베란다로 갔다. 그러곤 창고 문을 열어 지난 설에 승우형에게 받은 말린 나물, 그게 담겨 온 우체국 박스를 찾기 시작했다. 다른 선생님들한테는 비밀이야. 우리 엄마가 한 건데, 너만 주는 거야. 그게 벌써 반년도 더 된 일이었지만 분명 박스는 남아 있을 거였다. 어머니는 한번 집에 들어온 깨끗한 박스를 결코 버리는 법이 없었다. 송장이 붙어 있을 확률도 높았다. 석용은 보자기에 싸인 플라스틱 통과 용도를 알 수 없는 엑기스들을 헤친 뒤 켜켜이 쌓인 박스들을 확인했다. 우체국 3호 박스에는 송장이 붙어 있었다. 서귀포시 안덕면 덕수리 27번지. 석용은 송장 위에 쓰인 옅어진 글씨를 뚫어져라 쳐다본 다음 조심히 뜯어 주머니에 넣었다. 거실로 돌아오니 어머니가 식탁에 앉아 석용을 바라보고 있었다. 석용은 어머니를 지나쳐 단백질 파우더와 엽산, 칼슘, 비타민제, 닭가슴살을 챙긴 뒤 방에서 속옷까지 백팩에 넣어 운동화를 신고 집을 나섰다. 걱정하시지 말라는 말을 할까 말까, 고민하며 닫히는 현관문을 바라보고 있는데 어머니가 외쳤다.

“야! 삼십이라도 보내!”

 

*

 

석용은 제주도에 두번 와본 적이 있지만 여행은 아니었다. 두번 다 실업팀 시절에 방문한 것으로, 한번은 원정경기를 치르러, 한번은 남은 예산을 털기 위해 한겨울에 워크숍차 방문했던 거였다. 워크숍에서 기억에 남은 건 웃음치료사가 웃음기 없는 석용을 무대 위로 불러내 옆구리를 간질였던 일 뿐이었다. 석용은 해외는커녕 국내여행 경험도 거의 없었다. 35년간 자기 발로 어딜 떠나본 기억이 없다는 게, 돌이켜보니 새삼 억울하기도 했다. 그래도 버티는 건 누구보다 자신 있었다. 바벨을 잡은 손아귀에 힘을 주느라 빠진 엄지손톱에 항생제 주사를 맞아야 했을 때도 석용은 앓는 소리 한번 내지 않았다. 다음 해에 무릎 통증을 겪었을 때도 석용은 묵묵히 버텼다. 그맘때 석용은 성큼성큼 뛰어 올라가던 계단 앞에서 잠시 머뭇거렸다. 하지만 뛰어 올라가는 것을 멈추진 않았다. 무릎에서 시작된 통증이 장골을 타고 올라올 때까지도 석용은 멈추지 않았다. 병원에 가면 두려운 일이 생길 거라는 걸 석용은 직감했다. 걸음걸이가 이상하다고 하는 승우형에게 석용은 치질이 심해졌다고 말했다. 경기를 생각하면 석용은 버티기 힘든 것도 버틸 수 있었다. 경기만 치르면 다 내려놓을 수 있어. 경기만 치르면. 재활만 끝나면. 자격증만 따면. 피트니스 대회만 끝나면. 확장공사만 시작하면. 내 PT룸을 갖기만 하면.

석용은 제주공항 벤치에 앉아 차가운 무염 닭가슴살 소시지를 씹으며 이제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했다. 저녁 여섯시였다. 비행기에서 땀을 많이 흘려 옷에서 냄새가 올라왔다. 내일 바로 승우형의 본가에 찾아가 일을 끝낸다 하더라도, 어쨌든 당장 묵을 곳은 필요했다. 지도를 살펴보니 공항에서 서귀포까지는 꽤나 거리가 있었다. 석용은 일어나 택시정류장으로 가 택시를 잡았다.

“기사님, 서귀포 갑니까?”

기사 아저씨는 고개를 끄덕였다.

“서귀포 아무 데나 잘 만한 곳으로 부탁드립니다.”

아저씨는 룸미러로 석용을 뚫어져라 쳐다보다가 말했다. “얼마짜리로?”

“어디고 싼 곳이면 됩니다.”

아저씨는 출발하지 않고 계속해서 석용을 바라보았다. 그 눈빛이 매서워 석용은 말을 흐렸다. “모르시면 그냥 아무 데나 가주세요……”

“괜찮은 곳 알아요. 뒤에 술집 있어서 새벽에 시끄러울 수 있는데 괜찮아요?”

석용이 괜찮다고 하자 그제야 기사 아저씨가 웃었다. 달리는 동안 기사 아저씨는 자신의 아들에 대해 말해주었다. 총각 또래의 아들이 하나 있는데 집에서 놀고 있다고. 그냥 노는 건 아니고 스쿠버다이빙 자격증 강사를 하는데 자격증이 4일 만에 나온다고, 그거 이상한 거 아니냐고, 물에 들어가서 숨 쉬는 법을 가르쳐준답시고 사람들한테 돈을 왕창 받는다며 헐뜯는 듯 칭찬했다. 석용은 ‘저는 운동하면서 숨 쉬는 법을 가르쳐준답시고 돈을 왕창 받아요’라고 말하려다가, 스쿠버다이빙이 쉬운 게 아니라고 말해주었다.

“저도 배워보고 싶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요?” 아저씨는 미소를 띠었다.

서귀포로 가는 동안 아저씨는 지금 어디를 지나고 있는지, 오른쪽에 보이는 오름이 어떤 오름인지 말해주었다. 낮은 돌담으로 둘러진 밭에는 뜬금없이 봉분이 솟아 있기도 했는데, 아름다운 풍광을 보고도 무덤덤해하던 석용도 그건 신기해 물었다.

“무덤이 밭에 있네요. 너무 사랑하는 사람 무덤인가.”

“묻을 데가 없어서 그래요. 아무래도 섬이니까.”

밭이 없는 사람들은 어디에 묻혀야 하나. 석용이 생각했고, 그 생각을 읽기라도 한 듯 아저씨가 말했다.

“꼭 자기 식구 아니라도 잘 아는 집 양반 돌아가시면 자기 밭에 묻으라고 하기도 하고. 근데 요샌 뭐 묻나. 다 뿌리지. 뿌리는 게 최고야. 평생 땅 밟고 살았는데 바람 되면 좋지.”

바람이 된다. 석용은 고개를 끄덕였다. 어둠이 땅에서부터 몰려오듯, 하늘이 까매지는 속도보다 더 빠르게 기암절벽과 우거진 나무들이 새카매지고 있었다. 석용은 내일 승우형의 집에 찾아가서 무슨 말을 할지 생각했다. 돈 되는 건 모조리 가져와야 할지, 자기가 보는 앞에서 당장 승우형에게 전화를 걸라고 해야 할지.

“여행 왔어요?”

잠시 고민하던 석용은 그냥 그렇다고 답했다. 아저씨는 믿지 않는 것 같았다.

“내려요. 저 집이에요.”

택시비는 사만 오천원이나 나왔다. 석용이 주머니에서 오만원권 지폐를 꺼내는 사이 아저씨는 시동을 끄고 사이드브레이크를 올린 뒤, 차에서 내려 스트레칭을 했다. 그러고는 나무로 된 낮은 대문을 열었다. 저렇게 자기가 막 열고 그래도 되나. 석용은 생각하며 택시에서 내려 돈을 건넸다. 돈을 건네받은 아저씨는 반팔 티셔츠 가슴께의 주머니에 돈을 넣었다.

“이거는 숙박비에서 까줄게요.”

석용은 어머니의 어깃장을 떠올리며 정말 ‘그것이 알고 싶다’에 나오는 상황이 오려는 걸까, 주춤거리며 마당으로 들어섰다. 머리칼이 젖은 젊은 남자가 마당에 스쿠버복을 말리고 있는 것이 보였다. 석용은 그제야 여기가 어딘지 알아차렸다. 아저씨는 주머니에서 땅콩 같은 걸 꺼내 까먹으며, 마당에 선 남자에게 손님을 받으라고 말하곤 외따로 떨어진 조그마한 별채로 사라졌다.

집은 평소에 게스트하우스로 운영되는 곳이긴 한 건지 거실에 만국기가 두줄 걸려 있었고, 신발장 옆엔 스쿠버복을 입은 사람들이 배 위에서 찍은 폴라로이드 사진이 붙어 있었다. 거실 한쪽엔 공기통과 오리발이 놓여 있었고, 가림막을 쳐놓은 주방 앞에는 ‘밤 10시 이후 취식 금지’라는 문구가 쓰여 있었다. 석용은 그의 아들이 건넨 숙박일지에 인적사항을 적고 요구하는 대로 주민등록증을 건넸다. 남자는 넉살 좋게 자신의 이름을 ‘백석’이라고 소개하고는, 석용을 어제나 그제도 봐왔다는 듯 자연스럽게 인사를 건네고 능숙하게 복사기를 다뤘다. 석용은 그가 시키는 대로 슬리퍼로 갈아 신고 그를 따라 부엌을 구경했다. 집에는 방이 네개 있었는데, 현관에서 가장 가까운 방이 자기 방이니 필요하면 두드리라고 했다.

“부모님은 뒤뜰 독채에 사세요. 수건 백장과 함께.”

석용은 자기가 말하고 자기가 웃는 백석을 굳은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그는 문을 열고 석용에게 열쇠를 건네주었다.

“유일한 일인실이에요. 제일 좋은 방. 욕실이 방 안에 있기도 하고, 또 이렇게……”

그는 과장된 포즈로 침대 맞은편의 커튼을 걷었다. 그러자 지대가 높은 게스트하우스의 낮은 돌담 너머로 까만 바다와 그 위에 밝은 등을 켠 채 떠다니는 어선들이 보였다. 석용이 아무런 감흥 없이 그것을 보고 있자 남자는 멋쩍게 웃었다.

“낮에 보면 멋져서 놀라실 거예요.”

그는 백팩을 벗지 않고 서성이는 석용에게 자신이 세살 어리니 편하게 불러도 괜찮으며, 머무는 동안 필요한 게 있으면 말해달라고 했다. 그가 방을 나서려는 찰나, 틈을 노리던 석용이 마침내 입을 열었다.

“여기는 하루에 얼맙니까?”

“칠만원에 쓰세요. 괜찮죠?”

석용은 머뭇거리다가 입을 열었다.

“식사 안 할 테니 더 싸게는 안 될까요.”

백석은 석용의 눈을 한동안 들여다보고는 웃었다.

“그러세요 그럼. 육만원에 하세요.”

문이 닫혔고, 석용은 혼자가 됐다. 남자가 열어놓고 간 커튼 너머 풍경을 바라보자 석용은 가슴이 휑뎅그렁하니 황량해지는 것 같았다. 핸드폰을 열자 박갑수 회원에게 부재중 전화가 열여섯통이나 와 있었다. 석용이 재활운동 전문 퍼스널 트레이너로 모은 중년 회원들 중 한명이었다. 석용은 균형이 맞지 않아 기울고 회전된 골격근을 어느 정도 정렬한 다음 운동에 들어갔다. 회원들은 매번 교정 스트레칭을 해준 다음 사진을 찍어 변화를 눈으로 확인시켜주고 스포츠 마사지로 근육을 풀어주는 석용을 좋아했다. 그랬던 회원들에게 이젠 밤낮없이 원망스러운 전화가 걸려 오고 있었다. 회전근개 파열로 운동치료를 등록했던 박갑수 회원은 돈을 못 돌려주겠거든 집에 와서 마사지라도 해달라고 말했다. 메시지 창을 열자 그의 아들이라는 사람이 어떻게 찾았는지 석용의 피트니스 대회 사진을 보내왔다. 한때 석용의 자부심이던 사진이었다. 아들은 돈을 돌려주거나 적절한 조치를 취해주지 않으면 페이스북에 석용의 신상과 사진을 퍼트릴 거라는 내용의 문자를 함께 보냈다. 사진 속 석용은 대회용 속옷만 입은 채 온몸에 힘을 주고 있었다. 언제 봐도 조금 아쉬웠던 내측광근 대신 석용은 자신의 얼굴이 눈에 들어왔다. 홀쭉해진 볼과 목에서 쇄골을 잇는 불룩 솟은 힘줄, 갖은 용을 쓰느라 살짝 열린 하관. 석용은 박갑수 회원의 아들에게 답장을 보냈다. “그래서 마음이 좀 편해지신다면 그렇게라도 하세요.” 엄포를 놓는 게 아니라 진심이었다. 예선이 결혼을 없던 걸로 하자고 했을 때, 석용은 혼란스러웠지만 평정심을 잃지 않으려 했다. “그게 진짜로 네가 원하는 거라면 그렇게 해.” 그건 진심이 아니라 엄포를 놓은 거였다. 피트니스 대회만 끝나면 멋진 모습으로 프러포즈를 할 생각이었다. 너 진짜 바위 같은 새끼구나. 끝까지 그렇게 버티겠다 이거지. 헤어질 때 예선은 그렇게 말했다. 석용은 예선이 돌아올 거라고 생각했다. 예선의 번호가 바뀌고 벨을 누른 예선의 자취집에서 웬 초등학생이 나왔을 때도 석용은 미련하게 기다리는 것 말고는 무엇도 하지 못했다. 아끼던 손편지, 예선이 ‘ YS♡SY’라고 수놓아준 손목 스트랩과 반스 커스텀 운동화도 버리지 않았다. 정말 그게 끝인 걸 알았더라면 바짓가랑이라도 붙잡아야 했다. 돈을 덜 벌더라도 회원을 줄였어야 했다. 식단을 조절하는 대신 예선이 좋아하던 트리플초코빙수를 함께 먹었어야 했다. 예선이 원하는 건 그런 거였을 거라고, 열심히 버티는 거 말고 한걸음 옮겨 예선과 함께하는 것. 하지만 떠난 사람의 마음은 알 수 없는 것이었다. 석용은 자꾸만 마음이 물러졌다. 널 보면 가슴속에 커다란 고래가 하나 얹힌 것 같다는 예선의 말을, 석용은 이제야 알 것 같았다. 그 고래가 자신의 가슴속으로 건너와버렸으니까. 용을 쓰는 자신을 기다리며 외롭고 무겁고 서글펐을 예선을 생각하던 석용은 자신의 이름을 혼내듯 소리 내 불렀다.

“모석용!”

남의 이름을 부르는 것 같았다.

“야, 모석용!”

다시 한번 불러보았다. 그런 다음 침대에서 내려와 바닥을 두어번 손바닥으로 두드린 뒤 엎드려 정렬을 맞추고 스파이더 푸시업을 하기 시작했다. 상체를 숙이며 내려가는 동시에 한쪽 무릎을 팔꿈치 쪽으로 당기는 스파이더 푸시업은 옆구리와 가슴의 크고 작은 근육을 효과적으로 찢어놓을 수 있는 맨몸운동이었다. 4세트 즈음부터 석용은 이를 악물었다. 턱 밑으로 땀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석용은 멈추지 않았다. 코어에 힘이 빠지자 이두와 삼두도 오래 버티지 못했다. 배밀이를 하는 아기처럼 자세가 무너졌지만 석용은 계속해서 상체를 끌어올렸다. 열두개씩 6세트를 마친 뒤에야 석용은 침대 위로 올라가 엎드렸다. 승모에서부터 복근, 흉근까지. 천천히 힘이 빠졌다. 석용의 가쁜 숨소리가 천천히 잦아들고 고요해진 방 안엔 미미하게 들리는 파도 소리와, 게스트하우스 뒤편의 야외 술집에서 사람들이 한꺼번에 와하하 웃었다가 파도가 쓸려가듯 잠잠해지는 소리만이 들려왔다. 석용은 양말도 벗지 않은 채 침을 흘리며 깊은 잠에 빠졌다.

 

*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석용은 오랫동안 샤워를 한 뒤 게스트하우스를 나섰다. 마당에서 백석이 사람들을 우르르 세워놓고 장비를 챙기고 있었다.

“형님, 어디 가세요?”

백석 뒤에 선 여섯명의 사람들이 석용을 바라보았다.

“잠깐 어디 좀 들르러요.”

“같이 바다 안 나가실래요?”

“나중에요.”

석용은 고개를 푹 숙인 채 사람들을 지나쳤다. 네이버 지도에 주소를 찍자 도보 23분 거리에 승우형의 부모님 집이 있다고 나왔다. 해안도로의 오르막을 따라 직진을 하다 우회전해 조금만 걸으면 도착지였다. 석용은 옷을 끌어당겨 역겹기도 하고 친숙하기도 한 자신의 땀 냄새를 맡으며 걸었다. 막상 승우형의 부모님을 만나게 되면 어떤 말을 먼저 해야 할지 결심이 서지 않아, 천천히 걸으며 생각하자고 마음먹었음에도 석용은 자기도 모르게 기립근과 무릎에 힘을 주고 경보의 속도로 걷고 있었다. 석용은 의식적으로 승모근에 힘을 풀고 천천히 걷기 시작했다. 걷는 중에도 주머니에서 계속 핸드폰이 울렸다. 어머니에겐 밤사이 전화가 세통 와 있었지만 다시 걸지 않았다. 아침엔 문자도 한통 와 있었다.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 마가복음 10장 45절. 예수님 보혈에 감사함을 아는 내 아들 석용이니 허튼 생각 하지 않을 거라 믿네.” 석용은 답장하지 않았다.

석용은 가슴에 얹힌 듯 내려앉은 덩어리를 풀어내려 양팔을 넓게 벌려 기지개를 켰다. 멀리, 초원에서 말들이 풀을 뜯고 있는 게 보였다. 해가 좋고 날이 맑아 먼 곳도 훤히 보였다. 조금 더 걷자 외딴곳에 쪼르르 이어진 민가가 나왔다. 슈퍼마켓과 서점을 지나자 진녹색 대문에 작게 지어진, 아주 오래된 집이 나왔다. 그 앞에 ‘함갑철 정인순’이라는 명패가 달려 있었다. 함갑철. 돌아가신 승우형의 아버지 이름이었다. 카리스마 있게 가자, 카리스마 있게. 석용은 카리스마 이미지 트레이닝을 한 뒤 가슴을 크게 벌리고 낮은 담장 안을 들여다보았다. 마당 안에서, 체구가 작고 등이 심하게 굽은 할머니가 느릿느릿 빨랫줄에 젖은 옷을 널고 있었다. 석용은 그것을 한참 동안 바라보았다. 그리고 생각했다. ‘빨랫줄이 너무 높다.’ 쇠기둥 양쪽에 묶인 빨랫줄을 조금만 내려주면 쉬워질 텐데. 그걸 풀었다가 단단히 묶어줄 이가 없는 듯했다. 석용은 맥이 풀렸다. 그리고 또 한번 인정했다. 자긴 한없이 물렁한 놈이고, 승우형은 완전히 작정한 몹쓸 놈이었다. 석용은 명치 언저리에서 고래가 강하게 요동치는 걸 느끼며 대문을 두드렸다.

“열렸시미!”

할머니는 문을 열고 들어선 석용을 보고는 환하게 웃었다. 그러나 그것뿐, 반가움도 의문도 없이 다시금 허리를 숙여 바구니에서 느릿느릿 빨랫감을 들어 털어 널기 시작했다. 석용은 할머니에게 다가가 조심스레 바구니를 빼앗았다. 널어진 빨래를 걷어 바구니에 넣고 빨랫줄을 풀었다. 그러곤 할머니의 키를, 점점 더 굽어갈 허리를 가늠하곤 세뼘 아래에 줄을 단단히 묶었다. 왼쪽, 그리고 오른쪽. 석용은 노끈을 단단히 고정한 뒤 한번 흔들어보았다. 할머니는 평상에 앉아 막걸리 뚜껑을 열고 병나발로 목을 축였다. 그러곤 힘 있게 빨래를 털어 너는 석용의 모습을 보며, 자신에게만 들려오는 노래가 있다는 듯 껍데기만 남은 것 같은 몸을 기우뚱기우뚱 흔들었다.

되돌아오는 길에는 형욱씨에게서 전화가 걸려 왔다. 받지 않으려던 석용은 혹시나 승우형을 잡아다 정말 패기라도 한 걸까 싶어 통화 버튼을 눌렀다. 형욱씨는 상기된 목소리였다.

“석용쌤, 다름 아니라 제가 대박 정보를 알아냈습니다.”

“정보요?”

“함대표 어머니가 제주도에 산다는데, 주소만 알아내면 됩니다. 모르는 일이라고 내빼면 용달 불러서 냉장고라도 가져오게요. 그래야 우리가 분이라도 풀리지 않겠습니까?”

석용은 차 한대 지나가지 않는 뻥 뚫린 해안도로를 바라보았다.

“제가 가봤는데요. 아무것도 없더라고요. 벌써 다 버리고 도망갔더라고요.”

 

*

 

석용은 터덜터덜 숙소로 돌아왔다. 배가 몹시 고팠다. 부엌으로 들어간 석용은 냉장고 문을 열고 떨리는 손으로 계란 다섯개를 품에 담았다. 그리고 가스레인지에 물을 올린 뒤 조심히 계란을 넣었다. 그때 백석이 주방으로 들어왔다.

“달걀값 드릴 거예요.” 석용이 서둘러 말했다.

백석은 고개를 끄덕이고 냉장고 문을 열어 비엔나소시지와 베이컨을 꺼내 굽기 시작했다. 석용은 물이 끓고 얼마 지나지 않아 찬물에 계란을 담가 식히고는 선 채로 껍질을 까 후후 불어 입에 넣었다. 손 아래로 노른자가 흘러내리는 걸 닦지도 않고 석용은 계란을 먹었다. 식탁을 차린 백석이 주걱에 붙은 밥풀을 떼어 먹으며 석용의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다 입을 열었다.

“형님.”

싱크대 앞에 서 있던 석용이 고개를 돌려 백석을 바라보았다.

“앉아서 드세요.”

“괜찮습니다. 서서 먹는 게 편해요.”

“그래도요.”

백석이 가리킨 식탁 맞은편에 석용 몫의 고봉밥과 수저가 놓여 있었다. 석용의 눈에는 그게 마치 환상 같았다.

“앉아서 같이 드세요.”

그 다정한 말투와 자연스러움 또한 그렇게 느껴졌다. 타인과의 식사라는 행위가 난생처음인 듯 낯설어서, 석용은 홀린 듯 걸어가 숟가락을 들었다. 베이컨과 소시지, 차가운 두부지짐과 뜨거운 강된장. 상추와 씀바귀. 짜고 달고 쌉쌀한 것. 가공되고 무쳐지고 졸여진 것. 석용과 백석은 천천히 식사를 했다. 석용은 너무도 오랜만에 아무런 죄의식 없이 식탁에 올라온 음식을, 누가 쫓아오기라도 하는 것처럼 급히, 맛있게 먹었다. 백석이 조심스레 물었다.

“이거 먹고 물에 갈 건데 같이 가실래요?”

“다녀오신 거 아니었어요?”

“아직요. 아까 그분들은 장비 빌리러 온 프로들이에요.”

백석이 물을 따르고 잔을 석용 쪽으로 밀었다. 석용은 그걸 받아 꿀떡꿀떡 달게 마신 뒤 속도를 늦춰 밥을 먹었다.

 

백석의 봉고에 올라 다이빙 스팟으로 떠나는 길, 석용은 백석이 개인 사정으로 전역한 해군 부사관 출신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혹시 빚쟁이에게 쫓기고 있냐는 백석의 말에, 석용은 자신이 빚쟁이이자 쫓는 사람이었는데, 이젠 그러지 않을 생각이라고 답했다. 오분 거리 항구에 차를 세운 그들은 옷을 갈아입고 사람들 틈에 섞여 통통배에 올라 아담한 섬으로 들어갔다. 백석이 벨트와 산소통을 점검하는 동안 석용은 차고 맑은 바닷물에 손을 담가보았다. 통통배를 함께 타고 온 사람들은 고프로를 들고 한쪽에 모여 가이드에게 설명을 듣고 있었다. 백석이 석용을 불렀다. 그는 수영을 할 줄 안다는 석용의 말에 이퀄라이징과 프렌젤에 대해 짧게 설명하고는 장비의 대략적인 이름, 용도를 줄줄 읊어주었다. 웨이트 벨트와 호흡조절기, 산소통을 채워줄 때는 화가 난 사람처럼 인상을 쓴 채 집중하기도 했다. 체크를 마친 백석이 석용에게 말했다.

“형님, 드릴 말씀이 있는데, 표정이 곧 죽을 사람 같아서 못하겠어요.”

석용이 제주도에 온 뒤 처음으로 덧니를 드러내고 웃었다.

“말씀하세요.”

죽지 않을 거란 말은 하지 않았다.

“비용은 십오만원이에요.”

“중요한 걸 제일 늦게 알려주시네요.”

백석은 석용에게 하강 후에는 숨을 깊게, 천천히 쉬어야 하며, 상승할 때는 이퀄라이징을 하지 말라고 당부했다.

“혹시라도 어지럽거나 기분이 지나치게 좋아지면 신호 주셔야 돼요.”

“지나치게 좋아지면?”

“깊이 내려가면 술 취한 것처럼 살짝, 기분 좋아질 거예요.”

그러고는 자신이 곁에 있을 테니 큰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된다고 말했다. 물에 들어간 두 사람은 평영을 해 나아갔다. 하강 싸인을 주고받은 뒤 백석이 먼저 입수했고, 석용이 따라서 입수했다. 석용은 다리를 좌우로 찢으며 물살을 갈라 아래로, 아래로 내려갔다. 무의식적으로 몸을 띄우려고 해서, 석용은 하강에 에너지를 많이 쏟았다. 늘 뭔가를 반복해서 들어올리며 골격근을 키우는 운동이나 해봤지, 번쩍 들어올려지는 느낌에 저항해본 건 처음이었다. 석용은 열심히 오리발을 굴렀다. 어느 정도 내려오자 백석이 석용 앞으로 다가와 손을 흔들고는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운 뒤 오른쪽을 가리켰다. 줄돔떼였다. 어떻게 저리도 흐트러짐 없이 떼로 움직일까. 조용하고 아름답게. 그 광경을 지켜보다 흥분한 석용의 입에서 공기방울이 울컥울컥 새어나왔다. 백석은 수생물들을 관찰하라는 듯 손으로 여기저기를 가리켰다. 고글 속 백석의 눈꼬리가 뿌듯하게 휘어져 있었다. 석용은 고개를 끄덕였다. 백석이 왜 숨을 깊이, 천천히 쉬라고 강조했는지 알 것 같았다. 얕은 호흡이 문제가 아니라 자꾸만 숨 쉬는 걸 잊어버리게 되는군. 석용은 지끈거리던 광배근과 이두, 삼두근의 긴장이 풀어지며 관절이 물의 일부가 된 듯 부드럽게 움직이는 것을 느꼈다. 백석이 10미터 아래로 내려왔다고 알려주었고, 석용은 몸을 뒤집어 수면을 바라보았다. 몸이 새털처럼 가벼워진 것 같은 느낌 탓에, 웃음이 나오려는지 눈물이 나오려는지, 배 속에서 무언가가 치밀고 올라오는 게 느껴졌다. 석용 평생에 이렇게 재미있고도 슬픈 경험은 처음이었다. 상승 신호를 보낸 백석의 발목을 붙잡고 천천히 수면 위로 올라오면서, 석용은 무릎이 꺾인 그날 이후부터 실은 한번도 놓지 않았던 무거운 바벨을, 이제야 물속 깊이 내려둔 것 같았다. 가까워지는 해수면을 보며 석용은 서울로 돌아가지 않기로 결심했다. 제주에 머물며 고요한 물속에서 보낼 더 오랜 시간이 필요했다. 배워야 할 것도 많았다. 물속에서 천천히 깊은 호흡을 하는 법, 무른 몸으로도 건강하게 사는 법, 예선의 가슴속에서 너무 늦게 건너온 고래에 대해서도 생각해봐야 했다. 다행히도 석용에겐 돌아가야 할 직장이 없었고, 오늘은 겨우 휴일의 첫번째 날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