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과비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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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경림 申庚林

1935년 충북 충주 출생. 1956년 『문학예술』로 작품활동 시작. 시집 『농무』 『새재』 『달 넘세』 『가난한 사랑노래』 『길』 『뿔』 『낙타』 『사진관집 이층』, 장시집 『남한강』 등이 있음. skyungrim@hanmail.net

 

 

 

새떼

 

 

오랜 세월 내 몸에 들어와 둥지를 틀었던 것들이

둥지를 박차고 뛰쳐나갔다.

쏜살같이 하늘로 달려 올라간다.

새떼다.

 

나도 그것들을 좇아 내 몸에서 빠져나간다.

끼룩끼룩 꾸르르

새떼를 좇아 하늘로 날아오른다.

마을이 멀고 산이 까마득하다.

강도 바다도 먼 세상 꿈속 그림 같다.

 

머지않아 천둥 번개를 만날 것이다.

천길 낭떠러지로 곤두박질칠 것이다.

부리가 찢기고 날개가 부러져

어두운 골짜기 흙 속에 처박힐 것이다.

하지만 그중 몇은

 

훨훨 하늘로 날아오른다. 다시

새떼가 되어서.

수백수천마리 새떼가 되어서.

한때 제 거처였던 나를 까맣게 잊어버리고.

이제는 한점 이슬로 굴참나무 잎에 매달린 나를 멀리 바라보면서.

 

다 잊어서

아무것도 생각나는 것이 없어

찬란한 아침 햇살에 날개들이 더 빛난다.

 

 

 

살아 있는 것은 다 아름답다

 

 

살아 있는 것은 아름답다

하늘을 훨훨 나는 솔개가 아름답고

꾸불텅꾸불텅 땅을 기는 굼벵이가 아름답다

날렵하게 초원을 달리는 사슴이 아름답고

손수레에 매달려 힘겹게 비탈길을 올라가는

늙은이가 아름답다

 

돋는 해를 향해 활짝 옷을 벗는 나팔꽃이 아름답고

햇빛이 싫어 굴속에 숨죽이는 박쥐가 아름답다

 

붉은 노을 동무해 지는 해가 아름답다

아직 살아 있어, 오직 살아 있어 아름답다

머지않아 가마득히 사라질 것이어서 더 아름답다

살아 있는 것은 다 아름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