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과비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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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 신예시인특선

 

권민경 權旼暻

1982년 서울 출생. 2011년 동아일보 신춘문예로 등단. nunkiforu@naver.com

 

 

 

꿈은 또 날아가네 절망의 껍질을 깨고*

 

 

*

추모는 살아 있는 사람을 위한 거야

너는 말했다

나는 추모하는 법을 몰라

종종 앓는다

 

쓰이지 않기 위해 필사적으로

외면하는데

곁눈질 곁눈질

 

하늘이 가까운 새벽

눈이 내린다

 

검은 코트를 입고 나가야 할까봐

 

*

우리가 사귄 지 7년 하고도 8일. 그동안 많은 일들 많은 죽음들.

너는 나를 이끌고 종종 추모하러 나섰다. 그건 너 자신을 위한 일이었겠지만

어설픈 흉내 버스와 전철을 몇번씩 갈아타는 품이 드는 일 땡볕에 오래 서 있는 것으로

멍청하게도 잠깐 앓지 않을 수 있었다. 멍청하다는 건 내가 내 몸 안으로 돌아왔다는 것인데

 

메모리얼파크에서 돌아오는 길.

낙지 한마리가 통째로 들어간 짬뽕을 먹었다.

 

*

그렇게 되고 싶어

가까이 웃고 짬뽕을 먹고

죽은 뒤 서로에게 깃들지 않겠다 약속하는 사이

악한들의 동맹처럼 우리는 불안한 평온 속에 살아가겠지만

 

내 영혼이 어딘가 가닿기를

누군가에게 아주 잠시 깃들었다가

버스를 갈아타고 신호를 건너는 사이에 떠나버리거나

 

새끼손가락 끝마디에 매달려 있다

채칼에 쓸려 톡 떨어져 나가거나

무채를 종종 썰고

 

피가 몇방울 떨어지고

떨어지고

눈이 몇번 내리고

검은 코트를 드라이클리닝 맡기며

서서히 떨어져 나가길

내 영혼이 누군가에게 너무 오래 깃들진 않길

 

잠깐 발을 들였다가 빼는 것 정도는

서로 눈감아줍시다

조금만 이해해줍시다

 

*

요새는 나에게 쓰여 있고

모두 가까이 있다

매일 추모하느라 바쁜 당신

살아 있으니까

 

 

-- 

*넥스트 「Dreamer

 

 

 

알리, 초승달

 

 

달아나는 사람을 붙잡는 것

작은 틈새로 빨려갈 수 있다

눈을 반쯤 감고 찍힌 사진처럼

눈을 뜬 채 잠든 여자처럼

틈은 불안해요

틈은 우습고

 

알리는 시작된다. 사람, 남자, 머리카락과 챔피언, 개념들이 흩어져 있다가 틈이 벌어지는 사이 알리를 만들고. 알리의 커튼. 알리의 전등. 알리의 밤. 구름의 알리. 저건 알리야. 저게 알리야라고 인식하는 순간

 

방 안에서

주먹질하는 알리

알리의 주먹을 뻗고

주먹은 상처가 많다

꽉 쥔 손가락과 손가락 사이

빛이 가둬져 있다

 

상처를 따라 내부로 침입할 수 있지

까진 손마디를 파고들어 혈관을 타고 손목을 지나 팔꿈치와 어깨를 거쳐 가슴으로

팔을 앗아갈 수 있지 그러나

삶은 끝나지 않는다

제자리에서 뛴다 잘려나간

프레임

보이지 않는

알리

 

돌아가자

손등을 타고 팔목을 기어

머나먼 어깨까지 돌아서

 

빛이 들어오는 틈

눈을 대고 바라보면

 

알리라고 부르는 상반신

윤기 나는 피부

주먹은 쥐어져 있고

그 안에 빛이

……

손을 펴는 순간

팡 터져버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