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과비평

창작과비평

정기구독 회원 전용 콘텐츠

『창작과비평』을 정기구독하시면 모든 글의 전문을 읽으실 수 있습니다.
구독 중이신 회원은 로그인 후 이용 가능합니다.

 

 

이도윤 李燾潤

1957년 광주 출생. 1985년 『시인』으로 등단.

시집 『너는 꽃이다』 『산을 옮기다』 등이 있음.

everpoet@hanmail.net

 

 

 

그물

 

 

나는 오늘도 혁명 중이라

꺼지지 않는 촛불을 들고 너에게로 간다

서울에서 가장 오래 살고 있다는

서초동 향나무 아래 쭈그리고 앉아

사람의 말들을 땅에 내려놓으면

하늘의 그물이 우리의 가슴을 담아 올려 반짝거린다

고려 숙종 때부터 살았다는 너는

새로운 나라의 이름들을 차례로 기억하지

구백살 향나무 아래서도

상식적인 삶은 희망이 되었다. 개혁하라

단순한 외침뿐이지만 진정한 말은 이미 단단해졌다

만물은 애당초 서로의 신

그 이전 어느 어미 시절과 같이

세상은 함성으로 가득하지만

가버린 것과 오지 않는 것의 사이

깃발은 스스로 하늘을 지키는 가시가 된다

점점 빨라지는 세상에 오늘은 찰나라서

늙지 않는 마음이 민망하기도 하지만

만물을 관통하는 윤회의 시간은 모두에게 다르지

나는 무엇과 같이 살고 있는지 알 수 없다

시간은 사랑을 바꾸기도 하는데

사랑은 시간을 바꿀 수 있을까

나는 지금도 울고 있는 당신에게 간다

그물로 연결된 눈물이라서

 

 

 

바다의 액자

 

 

소원들을 벽에 대고 말하기 시작하면서

바다는 탯줄을 자르고 벽에서 나온다

바다의 색깔은 바라보는 마음이 결정하였다

 

평화나 통일 그리고 진심으로 내민

악수와 포옹의 벅찬 희망 말고도

너를 향해 빌어준 하루 생활의 기도

나의 꿈은 이불처럼 뒤척인다

바다를 벽에 걸어두었을 뿐인데

어떤 날은 수직이 휘청거린다

유리창 너머로 너를 기다릴 때

바다는 배를 띄울 것이다

깊어 파래진 노래가 모여 출렁거리고

바다가 낳은 아이는 무인도가 된다

소멸할 때까지 나는 어제 위에 서 있어서

눈을 뜨면 새로운 출발을 하여야만 한다

나는 언제쯤 용궁에 닿을 수 있을 것인가

 

울퉁불퉁하거나 높고 낮은 어느 곳

해가 뜨면 언제 그랬냐는 듯 바다는

단숨에 수평을 만든 채 벽에 걸려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