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과비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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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온윤 曺溫潤

1993년 광주 출생. 2019년 문화일보 신춘문예로 등단.

onewnx@naver.com

 

 

 

유리 행성

 

 

안경을 쓰면 더 멀리 상상하고

더 멀리 슬퍼하고

멀어지는 사람은 얼마나 멀리까지 뒷모습을 보여주는지

 

오랫동안

우리는 길고 긴 복도 같은 일인칭을 걷고 있었다

눈이 어두운 우리는 불빛만을 향해 걸어서

옆에 누군가 나란히 걷고 있으리라고는 상상하지 못했었는데

 

눈이 어두워서

밤과 낮을 구분할 줄 모르는 심해어처럼

우리는 꿈과 꿈 아닌 것을 구분할 줄을 몰랐다

시선을 꺾는 순간 풍경이 되어 멀어지던 너는 마른 목초지였던가

폭설같이 빛이 내린 설원이었던가

 

눈을 자주 잃어버리던 네가

몸을 잃어버리고 안경이 되었을 때

나는 슬픔을 똑바로 보기 위해 안경을 썼다

그때부터 세상은 밤의 목초지, 오래된 설경, 꿈과 꿈 아닌 곳

너무 빠르게 회전하는 행성 같아서

 

이렇게 어지럽고 비좁은 곳으로 너는 발을 딛고 걸어갔구나

이 유리알 같은 행성 속에 네가 들어 있구나

 

우리는 안경 너머 바라보는 유리의 인칭을 사랑했다

더듬더듬 서로의 피부 위로 뿌연 지문을 남기고

창틀 같은 시야 위로 자욱한 입김이 번지고

 

네가 눈 속에 들어온 것처럼 가까워졌다가

저 멀리 지평선처럼 멀어졌다가

아득히 사라지는 뒷모습으로

나란한 옆모습으로

 

우리는 언제나 같은 문을 열고 같은 너머를 열고

같은 빛을 향해 걸어갔다

 

 

 

오존주의보

 

 

높은 하늘 어딘가에

볼 수도 만질 수도 없는

너희가 살고 있다는 걸 알았을 때

우리는 겁에 질린 개미처럼 파다하게 흩어졌지

 

공중을 향해 돌멩이를 던지는 사람

돌멩이를 줍는 사람 돌멩이를 파는 사람

발을 딛지 못하게끔

온 땅에다 불을 지르려는 사람도

 

쨍한 하늘을 올려다보면 언제나

눈썹을 찡그리고 마는 우리를 위해

너희는 투명한 손차양을 만들어주지만

 

오직 햇빛만을 통과시키는 비닐하우스처럼

너무 쉽게 찢어지고

흩어지는 몸을 지니고 있지

사람들은 투명한 컵에 담긴

투명한 물을 두고도

마실 수 있는 걸까 의심을 하지

 

그러니 공중을 떠다니는 것들아 내려오지 마

혹여 지상에 발을 딛게 되거든

우릴 찾아오지 마

 

우리는 결코 너희의 가벼움을

이해하지 못할 거야

만져지지 않고서는 마음이 존재함을

인정 않는 우리에게

너희의 투명함은 사랑받지 못할 거야

 

그을린 발바닥처럼 뜨거운 먹구름이

사람들의 정수리를 밟으며 지나가네

우리가 놓쳐버린 풍선들을 거두는 고도에서

공기보다 가벼운 몸을 쥐고 둥둥 떠 있네

 

투명한 빛을 볼 때면 언제나

마음과 상관없이

찡그린 표정이 되어버리는 우리지만

 

사라지지 마 사람들이 쏘아올린 미움은 다시

사람들의 머리 위로 떨어질 테니

돌멩이를 쥔 손은 가벼워지지 못할 거야

끝내 닿지 못할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