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단 | 대전환의 한국사회, 무엇을 어떻게 변화시킬 것인가
사회생태 전환은 어떻게 일어나는가
조효제 趙孝濟
성공회대 사회학 교수. 저서 『침묵의범죄 에코사이드』 『탄소 사회의 종말』 『인권의 지평』 『인권 오디세이』, 역서 『거대한 역설』 『잔인한 국가 외면하는 대중』 『세계인권사상사』 등이 있음.
hyojecho7@gmail.com
천장이 아주 낮고, 옆으로 펑퍼짐한 비닐하우스를 상상해보라. 그 안에 연못, 개울, 둔덕이 있고 사람, 동식물, 미생물이 산다. 그런데 내부 공기가 오염되고 온도가 오르면서 생명들이 병들고 죽어 나간다. 출구가 없는 구조여서 도망갈 데도 없다. 현재 생물권의 상태다.
‘생물권’(biosphere)이란 무엇인가. 생명현상을 지탱하는 생물·지질·화학적 사이클이 일어나는 강, 호수, 바다, 산과 들과 토양, 대기권의 영역이다. 지구 지름의 0.15%에 불과한 비좁은 공간으로, ‘지구의 피부점막’이라는 별명의 이 얇은 틈새가 우리에게 주어진 유일한 생명의 보금자리다.
기상청의 「2022년 이상기후 보고서」(2023.3.30)는 한반도가 기후위기에 진입했다고 단언한다. 2023년 봄, 전국 산불이 전년 대비 184% 이상 늘었고 수도의 한복판에서 화염이 솟구쳤다. 역사상 최대 폭우와 최악의 가뭄이 동시에 오고, 겨울에는 이상고온과 극한 추위가 번갈아 나타났다. 2022년 전세계 10대 기상재난만 따져도 피해액이 212조원에 달했다. 인류의 99.999%가 기준을 초과하는 초미세먼지를 마시고 산다. 세기말까지 목표였던 섭씨 1.5도 방어선이 10년 내로 무너질 공산이 커졌다. 이대로 가면 지구의 평균 기온이 최소 2.1~2.9도 이상 오를 것이라 한다.
지상에 남은 야생 포유류의 전체 몸무게가 인류 전체 몸무게의 1할도 되지 않는다. 행성의 생명유지 장치에 해당하는 생태한계 아홉개 중 이미 다섯개가 초과되었다. 그런가 하면 2020년 이래 전세계 최고 갑부 1%가 벌어들인 재산이 나머지 99%가 모은 것보다 2배나 많았다. 한국은 소득불평등 증가 속도가 OECD 국가 중 둘째다.
문제는 두가지로 압축된다. 오작동 추세가 확연한 (경제)사회계, 그리고 가쁜 숨을 몰아쉬고 있는 생태계가 그것이다. 현재의 사회생태계를 환골탈태하지 않으면 우리가 알고 있는 세상이 아닌 세상이 올지도 모를 지경이 되었다. 사회생태 전환은 에너지 전환, 정의로운 전환, 탈성장을 포함하여 그것이 지향해야 할 근본적이고 장기 지속적인 미래상에 관한 서사다. 이 글에서는 전환의 관점, 이행 과정, 그리고 그것이 진보에 주는 의미를 간략히 스케치할 것이다.
전환을 어떻게 볼 것인가
기후위기를 흔히 실존적 위기라고 한다. 그렇다면 모든 사람이 만사 제쳐놓고 이 문제에만 전념해야 이치에 맞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급한 일이 터지면 일단 그것부터 막아야 한다. 전쟁 중인 우끄라이나 국민에게 기후-생태 위기가 머릿속에 들어오겠는가. 설령 기후재난을 당한 사람이라 해도 피해복구와 당장 먹고살 문제를 걱정하지 에너지 전환을 신경 쓸 겨를은 없을 것이다.
현실을 감당해야 위기를 극복할 힘도 나온다. 성차별, 노동, 농업, 교육, 복지, 저출생, 초고령화, 인구감소, 연금, 지역격차, 불평등, 부동산, 돌봄, 높은 대외 의존도와 글로벌 공급망 문제에 대처하면서, 그것과 함께 전환의 길을 찾아야 한다.1 경제사회 현안 해결, 기후재난 대응, 온실가스의 획기적 감축, 장기적 사회생태 전환은 개념적으로 구분되지만 현실적으로, 특히 이행기에는, 다 같이 추진할 수밖에 없는 과제들이다.
동시다발로 엉겨 나타나는 문제들을 어떤 틀로 해석하고, 어디에 정책의 초점을 맞춰야 할지도 쉽지 않다. 예를 들어 기후위기로 전세계에서 수억 내지 수십억명의 인구이동이 예상된다. 한국에도 이런 사람들이 많이 도착하겠지만 ‘기후 난민’이라는 간판을 달고 올 가능성은 낮다. 이런 상황은 한국의 인구문제, 이민청 설립 등과 맞물리면서 (기후 관련) 이주민들과 국내 원주민들이 같은 공동체의 우애로운 구성원이 될 수 있을지에 관해 여러 차원의 문제를 제기한다. 기후, 인구, 이주, 통합의 문제가 복합적으로 나타나게 되는 것처럼, 앞으로는 모든 이슈가 이런 식으로 중첩되어 등장할 것이다.
‘2050 탄소중립’처럼 시점을 정해놓고 목표를 제시하는 방식으로 인해 사회생태 전환을 마치 시한부 행동처럼 오해하게 된 측면이 있다. 그러나 전환은 방향성이 분명하지만 종착점을 특정할 수 없는 기나긴 여정이며, 그것의 전모는 역사적 조망 속에서 드러날 뿐이다.
위기에 대처하기 위해 현세대와 미래세대의 욕구를 구체적으로 분별해야 한다. 정신의학에서는 고통(pain)과 괴로움(suffering)을 구분한다. ‘고통’이 주로 신체적이고 직접적인 감각에 관한 것이라면, ‘괴로움’은 좀더 주관적인 경험을 지칭한다. 위기가 심해진 상태에서 태어날 미래세대는 현세대보다 더 많은 ‘고통’을 겪을 것이다. 미래세대를 위해 현 세대가 취할 수 있는 최선의 방책은 사회-생태 전환을 위한 신속한 행동이다. 반면 위기가 오기 전에 성장해서 위기를 맞은 현재의 이행기 세대는 고통도 겪지만 위기 이전에 사회화되었던 삶의 기대치와 준거점이 위기 시대에 허물어지면서 주관적인 ‘괴로움’을 겪을 가능성이 크다.2 이행기 세대에게는 사회화된 기대치와 현실 사이의 격차를 줄일 대대적인—개개인에 초점을 두는 전사회의 돌봄 연대를 포함한—사회정책이 필요하다.
환경 ‘실천’이 전환에서 차지하는 역할도 짚어야 한다. 생태환경을 염려하는 사람일수록 구체적인 실천의 효과에 관심을 갖는다. 하지만 개인의 실천은 실제 효과만큼이나 표출적·상징적 의미가 크다. 예컨대 텀블러 사용은 일회용품을 쓰지 않음으로써 얻게 될 환경상의 효용보다, 자신이 어떤 인간인가를 드러내면서 그렇게 살아가겠다는 다짐이 표상되는 행위라는 점에서 중요하다.
전환은 어떤 가치를 전제하는 일이다. 한국의 민주화운동을 포함한 모든 역사적 전환은 특정한 억압의 족쇄를 풀기 위한 것만이 아니라, 새로운 세상에 대한 비전을 담은 변혁이었다. 사회생태 전환도 단순히 탄소감축이나 재생에너지만의 문제가 아니다. 생물권 전체의 안녕, 어려움을 겪는 모든 사람과의 연대, 비인간 존재와의 평화협정, 성평등과 사회정의에 대한 비타협적 자세, 다양성과 공존, 덜 불평등한 사회, 지속 불가능성의 해체 등 인류세(人類世)에 요구되는 가치관을 바탕에 두고 있다.
전환을 놓고 세가지 입장이 경합한다.3 첫째, 신자유주의적 정치경제학은 시장 때문에 발생한 문제를 시장식 해법으로 대응하며, 경제성장을 절대시한다. 둘째, 생태적 현대화론은 위기를 인정하지만 기술혁신, 저탄소 경제, 녹색성장을 더 신봉한다. 시장을 통한 혁신의 논리로써 정치적 논의를 생략하려 들고, 생태적 현대화만이 상식적 대안이라는 논리로써 발본적 논의를 생략하려 든다. 이중의 탈정치화 논리다. 마지막으로, 사회생태 전환론은 지구의 생태한계를 강조한다. 위기를 불러온 산업화된 물질대사 방식과 단절하여 새로운 사회적 물질대사 레짐을 창출해야 한다고 본다. 에너지 생산과 소비 패턴을 바꾸어 인간과 자연에 정의를 실현하자고 주장한다. 기술의 공헌을 인정하지만 그것이 만병통치가 아니며 정치적으로 중립도 아니라고 비판한다. 덜 빠르고 덜 휘황찬란하더라도 더 다양하고 더 공정한 세상이 인간과 비인간 모두에게 바람직하다고 믿는다.
전환은 어떻게 일어나는가
생물권 내의 경제사회계와 생태계가 전체 ‘사회생태계’를 구성한다. 사회계와 생태계는 각각의 내부에서, 그리고 서로 간에 밀접하게 상호작용-상호의존하면서 변화에 적응하고, 회복력을 유지하고, 함께 진화(共進化)한다. 사회계와 생태계는 하나의 꾸러미로 작동한다. 환경이 악화되면 사회적으로 문제가 생긴다. 폭우가 오면 반지하에 사는 취약계층의 생명이 위협받고, 동네에 공해시설이 있거나 녹지가 적을수록 주민의 건강이 나빠진다. 역으로 사회불평등이 심해지면 환경이 나빠진다.
예를 들어보자. 최상층에 부가 집중될수록 불평등을 상쇄하기 위해 대다수 사람들이 경제성장을 더 원하게 되고 그것은 다시 환경에 압박을 가한다. 불평등이 심해질수록 부유층은 환경에 대한 책임을 회피할 가능성이 크다. 환경비용이나 폐기물을 지방이나 외국으로 외부화하기 쉬워지기 때문이다. 불평등이 심하면 건강이나 수명에 악영향을 끼치고 사회자본을 떨어뜨려 재난 후 사회생태계의 회복이 어렵게 된다. 불평등이 심할수록 정치적 양극화와 민주주의의 후퇴가 오고, 그 틈을 타 막개발, 공항 증설, 케이블카 설치와 같은 반환경적 조치가 나오기 쉽다. 불평등이 악화된 사회일수록 취약계층의 환경 감수성이 낮은 경향도 있다. 요컨대 사회계의 문제는 생태계를 나쁘게 하고, 그것은 다시 사회생태계 전체에 부정적인 영향을 준다.
사회생태계가 복잡적응계라는 점을 특별히 기억해야 한다. A 원인에서 B 결과가 도출되고, A를 바꾸면 그에 상응하여 B도 바뀔 것이라 예측하는 근대의 기계론적·선형적 인과론과는 전혀 다른 시스템이 복잡적응계다. 복잡적응계에서는 구성요소들 간의 관계를 통해 시스템 전체 차원에서 완전히 새로운 현상이 ‘창발’(創發, emergence)하게 된다. 찌르레기 한마리는 옆의 새와 거리와 속도를 맞추고 무리의 중심 방향으로 날아오르는 단순규칙만을 반복하지만, 그 결과 새떼의 장엄한 군무(群舞)가 출현한다.
사회생태계는 원리상 비선형적이고 불규칙한 인과관계를 전제하므로 그런 특성에 적합한 방식으로 전환에 나서야 한다. 목표를 정해놓고 캠페인하듯이 추진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사회생태계를 복잡적응형으로 파악하는 것은 “인간과 지구를 위해 더욱 정의롭고 지속 가능한 미래로 나아가는 과업”4에 필수적이다. 그러나 위에서 말했듯 이행기에는 상황의 특수성 때문에 (주로 ‘위로부터의’) 선형적 목표 달성, 그리고 (주로 ‘아래로부터의’) 비선형적 전환 노력을 적절히 배합해야 한다.
전자의 ‘위로부터의 선형적 목표 달성’에서는 기후재난 대처, 탄소감축과 재생 에너지, 정의로운 전환, 생물다양성 보전이 제일 시급하다. 생태경제의 개혁 아이디어도 제안되어 있다.5 사용할 수 있는 연간 에너지와 물질의 총량 제한, 성장제일주의를 탈피하여 생태적으로 안전하고 사회적으로 정의로운 웰빙 경제, ‘커먼즈’에 기반한 대안적 생산체제, 노동시간 줄이기, 생태적 분배개혁과 조세개혁, 금융의 무한정한 팽창 억제 등이 그것이다. 그것에 더해 이행기에 적합한 시그니처 정책을 추진해봄직하다. 이행기 세대가 겪을 괴로움을 줄일 수 있는 녹색 기본소득제, 무상 대중교통, 기후생태보험이 포함된 전국민 5대보험 같은 정책도 고려할 수 있겠다.
후자의 ‘아래로부터의 비선형적 전환’, 즉 대중의 참여를 통한 전환도 필수적이다. 비선형적 접근은 사회생태 전환에 적합하지만 기존의 사고방식을 완전히 바꿔야 하는 어려운 과제다. 사회생태계는 사전에 목표를 정할 수 없고 변화상을 ‘예측’하기 어렵긴 하나, 자기조직화를 통해 주변환경에 회복력 높게 적응할 것이라고 ‘기대’할 수 있는 시스템이다. 앞으로 위기가 심화될수록 삶이 더 팍팍해지겠지만 사회생태계의 특성상 미래는 여전히 열려 있다고 할 수 있다.
첫째, 수많은 사람들이 단순규칙 몇가지를 철저히 실천하면 전환의 거대한 움직임이 창발할 가능성이 생긴다. 기후-생태 위기의 근본원인을 건드리는 단순규칙을 고안하는 운동을 시작해보자. 단순규칙은 2~7개 정도가 적당하다고 한다. 개인의 미시적 실천, 정치적 행동, 거시적 패러다임의 차원별로 시민들이 직접 단순규칙 리스트를 만들어볼 것을 제안한다.6 리스트는 늘어나거나 변경될 수 있다. 각 차원별로 2개씩, 총 6개 행동을 각자가 골라 실천하면 된다.
예를 들어보자. ‘미시적 차원’에서 ①대중교통 이용 ②제로웨이스트 실천, ‘정치적 차원’에서 ③기후행동 참여 ④반환경 정치인 퇴출, ‘패러다임 차원’에서 ⑤탈성장 관련 글 공유 ⑥생명애를 다룬 문학작품 읽기를 들 수 있겠다. 알고 보면 단순하고 평범한 실천 항목들이다.
이미 이런 실천을 하고 있으면서도 그것만으로 세상이 바뀔까 하는 회의와 비관에 빠지는 사람이 많다. 그러나 사회생태계의 특성을 감안할 때 이러한 단순규칙의 끊임없는 반복 실천이야말로 길게 보면 전환을 위해 꼭 필요한 행동이다. 전환의 가치관으로 무장한 시민들이 단순규칙만 지키더라도 그런 녹색 민주시민의 존재 자체가 전환의 원동력이 된다. 사회생태적 정향이 팽팽한 사람이라면 타인과의 관계에서, 삶의 고비마다의 선택에서, 자연을 대하는 태도에서, 어떤 식으로든 ‘표’가 나기 마련이다. 그런 수많은 호흡과 눈빛과 몸짓의 날갯짓이 모일 때 세상은 전환 쪽으로 방향을 틀 수 있다.
둘째, 복잡적응계의 행동 패턴에 영향을 끼치는 연결점들, 지렛대의 힘점, 초기 조건들이 수렴되는 우묵한 ‘끌림의 분지’를 찾으면 시스템 전체의 변화를 가늠할 수 있다. 예를 들어, 한반도 분단체제를 지속시키는 지렛대의 힘점에 개입하면 전환에 필요한 정치적 모멘텀이 생길 가능성이 커진다. 셋째, 비선형적 인과관계의 특성상 예기치 않은 결과가 나오더라도 시스템이 유연하고 창의적으로 적응할 수 있도록 개인적·제도적 역량, 즉 회복력(회복탄력성)을 키워야 한다. 회복력 제고를 위해서 권리의식, 자력화와 행위주체성을 고양하는 교육이 필요하다.7 이 지점에서 인권 감수성은 전환의 유용한 원군이 된다. 마지막으로 전환을 위해 학문, 사상, 담론 중 어떤 ‘바스티유’를 공략할지를 시민들이 스스로 찾아야 한다. 경제학의 녹색화, 과학기술의 민주적 통제, 환경교육의 정치적 맥락화 등을 우선적으로 염두에 두고 실천 가능한 행동을 창안해보면 어떨까 한다.
사회생태 전환과 새로운 진보
한국은 근대화의 기치 아래 권위주의적 돌진형 개발로 선진국 진입이라는 ‘성과’를 냈지만, 인류역사상 최악의 합계출산율, 최고의 자살률과 가족살해라는 끔찍한 결과가 초래되었다. 마치 국민을 외부 작인(作因)에 단순 반응하는 물질처럼 간주하여 반세기 넘게 한 방향으로 압력을 가했더니 상상치도 못한 사회가 찍혀 나온 것이다. 외형상 ‘압축성장’을 달성했지만, ‘압축소멸’의 징후가 출현해버린 극단적 사례다.
압축성장을 이끌었던 ‘목표-계획-실행-달성’의 선형적 사고방식으로는 압축성장의 참상을 해결할 수 없다. 이행기에는 목표 달성식 조치를 병행해야 하지만, 장기적으로는 선형적 사고방식을 ‘내려놓고’(unlearn), 비선형적 사고방식을 ‘새롭게 익혀야’(relearn) 한다. 적어도 사회생태 전환에서는 그러하다. 이것이 근대의 적응과 극복, 더 나아가 근대적 의미의 진보를 넘어 대안적 의미의 진보로 나아가는 길이다. 새로운 진보의 길은 한국식 ‘성공’의 트라우마를 치유하고, 복잡적응형 사회생태계의 회복력 유지와 사회생태계의 정의실현 쪽으로 방향을 잡고, 모든 차원에 사회생태적 관점을 포함해야 한다. 사회정책이 아니라 사회생태정책, 사회적 돌봄이 아니라 사회생태적 돌봄이 필요하다.
2020년에 출간된 『유엔 인간개발보고서』 30주년 특집호를 보라. “규범과 가치에 의해 형성되는 인간의 행동이 지구시스템의 작동에 변화를 초래하고, 그것은 다시 인간의 규범, 가치, 행동에 피드백을 준다. (…) 〔인간-자연의 상호작용을 강조하는—인용자〕 이런 식의 접근방식은 인간 행동과 환경 간의 동역학이 연계되는 사회생태계를 연구할 때 특히 적합하다.”8 여기서 말하는 “규범과 가치에 의해 형성되는 인간의 행동”이 곧 전환의 열쇳말이다. 사회생태적 가치관에 기반한 행위주체의 확고한 지향성—복잡적응계의 ‘초기조건’—이 곧 사회생태 전환의 성패를 가른다는 말이다.
“지구는 거름으로 빚은 시”9라는 표현이 있다. 이것을 사회생태 전환의 언어로 번역한다면 ‘지구는 인간과 자연이 창발시킨 거름으로 빚은 시’가 될 것이다. 뭇 생명의 공존을 반대하는 세력에 결연히 맞서고, 뭇 생명의 가치를 옹호하는 문학, 문화, 예술, 교육, 사상, 종교, 영성, 미디어의 날갯짓으로 빚어낸 생물권의 장대한 서사시—결말은 알지 못하나 플롯은 간명한—를 상상해보라. 선형적 근대성이 우리에게 강요했던 목표 달성에의 강박에서 풀려난 깊은 해방감, 분명한 지향성으로 최선을 다해 날갯짓을 한 후 의연하게 미래를 맞이하는—‘진인사대천명’하는—차원 높은 변혁의 경지. 이런 모습을 꿈꿀 때 근대의 극복이라는 원대한 과업에도 새로운 조망이 열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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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는 근대의 극복과 적응, 즉 “이중적 단일과제의 일부로서의 적응, 다시 말해 극복하기 위해서도 최소한으로 필요한 적응”과 논리구조가 유사하다. 백낙청 「근대 한국의 이중과제와 녹색담론」, 이남주 엮음 『이중과제론』, 창비 2009, 180면.↩
- Parker Crutchfield, “Societal Collapse and Intergenerational Disparities in Suffering,” Neuroethics Vol. 15 No. 3, 2022.↩
- Halliki Kreinin, Typologies of “Just Transitions”: Towards Social-Ecological Transformation, WU Vienna University of Economics and Business 2020.↩
- Rika Preiser, et al., “Social-Ecological Systems as Complex Adaptive Systems: Organizing Principles for Advancing Research Methods and Approaches,” Ecology and Society Vol. 23 No. 4, 2018, 48면.↩
- 김병권 『기후를 위한 경제학』, 착한책가게 2023, 377~85면 참조.↩
- 세 차원의 설명은 다음을 보라. 졸저 『침묵의 범죄 에코사이드』, 창비 2022, 258~83면.↩
- Joshua E. Cinner and Michele L. Barnes, “Social Dimensions of Resilience in Social-Ecological Systems,” One Earth Vol. 1 No. 1, 2019, 54면.↩
- UNDP, Human Develpment Report 2020: The Next Frontier—The Human Development and the Anthropocene, United Nations Development Programme 55면.↩
- Eric Magrane, “Climate Geopoetics (The Earth Is a Composted Poem),” Dialogues in Human Geography Vol. 11 No. 1, 2021, 8~22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