촌평
개번 매코맥‧노리마쯔 사또꼬 『저항하는 섬, 오끼나와』, 창비 2014
‘평화의 섬’을 향한 투쟁의 기록
김백영 金白永
광운대 교양학부 교수 rangzang@naver.com
『종속국가 일본』(창비 2008)의 저자로 국내에도 잘 알려진 호주 출신의 일본학 연구자 개번 매코맥(Gavan McCormack)이 일본의 평화활동가 노리마쯔 사또꼬(乘松聰子)와 함께 오끼나와의 기지문제와 평화운동에 대해 소개한 다년간의 역작이 번역되어 나왔다(정영신 옮김). ‘미국과 일본에 맞선 70년간의 기록’을 부제로 한 이 책에는 오끼나와에 대한 저자들의 깊은 관심과 애정, 기만적인 미국과 일본의 지배체제에 대한 적나라한 비판, 그리고 동아시아 평화체제에 대한 강렬한 의지와 염원이 곳곳에 서려 있다. ‘무기도 없고 전쟁도 모르던 전설의 왕국’, ‘생명이야말로 보물’이라는 도덕적 가치에 따라 살아온 ‘평화의 섬’에 어떻게 외세의 압제와 차별, 식민주의와 군사주의가 군림하게 되었으며, 그 시련의 운명에 맞서 ‘죽음·전쟁·총보다 생명·평화·산신(三線, 오끼나와의 전통악기)’이라는 이상을 지키기 위해 오끼나와 사람들은 어떻게 투쟁해왔는가(26~27면).
아름다운 ‘관광 낙토’ 이미지의 이면에 ‘전쟁과 기지의 섬’이라는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는 오끼나와의 모순적 현실에 대해서는 국내 연구자들도 이미 십여년 전부터 관심을 기울여왔다. 태평양전쟁기 최악의 지상전장이 되어 참혹하게 희생된 무수한 원혼이 잠들어 있는 섬, 여전히 전체 면적의 약 20%가 군사기지로 미군에 의해 ‘강점’되어 있는 섬, 그리하여 양식있는 한국인 방문자라면, 이태원이나 동두천을 연상시키는 기지촌 문화의 유사성이나, 한국전쟁기 부산 국제시장 또는 깡통시장의 기억, 그리고 ‘외로운 섬’ 제주도가 겪었던 4·3의 상흔을 동병상련으로 떠올리게 만드는 섬이 바로 오끼나와다. 때문에 일찍이 창비 그룹에서 동아시아 지역을 바라보는 하나의 창으로서 주목한 바 있고(백영서 『핵심현장에서 동아시아를 다시 묻다』, 창비 2013 등), 국내 연구진에 의한 대규모 공동작업의 성과물도 출간되었으며(정근식 외 『기지의 섬, 오키나와』 『경계의 섬, 오키나와』, 논형 2008 등), 몇년 전부터는 ‘오키나와학회’가 결성되어 국제적 학술교류활동을 전개하고 있기도 하다.
이 책이 지닌 가장 큰 의의는 전후 일본을 ‘미국의 속국’으로 규정하는 저자의 지론에 입각하여, 지난 16년 동안 전개되어온 후뗀마(普天間)기지 이전 문제를 둘러싼 미·일 양국 정부의 기만적 술책과 이에 맞선 오끼나와인들의 저항 과정을 구체적으로 분석한다는 점일 것이다. 그렇다면 전후 미국에 의한 오끼나와의 군사식민지화는 어떻게 이루어졌는가. 전후 미·일 양국의 반공·보수세력 간에 구축된 공모관계를 바탕으로 재벌 부활과 재군비라는 ‘역코스’가 추진(446~47면)된 결과, 속칭 ‘배려예산’이라 불리는 일본정부의 주일미군 주둔경비 부담은 2001년 약 46억 달러로, 2위 독일(약 8억 6천만 달러)과 3위 한국(약 8억 달러)을 압도함은 물론이거니와 NATO동맹국 총액(약 15억 6천만 달러)의 약 세배에 해당한다(341~42면).
따라서 2009년 민주당이 불평등한 미일관계 개선을 공약으로 내걸고 출범하자, 후뗀마기지의 현외 이전 문제는 양국간 갈등의 핵심 축으로 대두되었다. 그러나 매카서(D. MacArthur) 이래로 일본을 “열두살짜리 애” 취급해온 미국의 고압적 태도에다가, 일본의 정계·관계·언론계에 뿌리내린 친미세력의 포위망에 둘러싸여 고립된 하또야마 유끼오(鳩山由紀夫)와 그 뒤를 이은 칸 나오또(菅直人) 총리는 거의 힘을 쓰지 못했다. 미국의 ‘협박외교’에 순종하는 정권의 무능력을 비판하는 정론지는 오끼나와 지역신문들뿐(228면)인 상황에서, 2011년 3·11대지진 이후 국민의 관심은 오끼나와로부터 멀어져갔고, 60%가 넘던 칸 정권의 지지율이 불과 일년여 만에 15%까지 급락하면서(331면) 결국 정권은 다시 자민당으로 넘어가게 된다.
이처럼 ‘당근과 채찍’ 정책을 통해 계속되어온 미·일 양 정부의 억압과 차별에 맞서 오끼나와 사람들은 끈질긴 저항을 지속해왔다. 1972년 본토 복귀 이래 초기에는 낙후된 지역개발을 기치로 내건 니시메(西銘順治) 현정에 의해 ‘토건국가’가 주도하는 관광업 진흥책이 12년간 추진되었으나, 1990년 등장한 오오따 마사히데(大田昌秀)의 ‘평화행정’을 계기로 “밟히고 걷어차여도” 마치 “개미가 코끼리에 도전”하듯 오끼나와인들은 온갖 방법을 동원하여 지치지 않는 시민불복종운동을 전개해왔다(437~38면). 그 결과 코이즈미(小泉純一郞) 총리 시대(2001~2006)에 헤노꼬(邊野古)기지 건설을 중단시켰고, 2010년에는 하또야마(鳩山由紀夫) 총리를 사임시킴으로써, 이제 헤노꼬에 신기지를 만드는 것은 1950년대 미군이 시도했던 ‘총검과 불도저’ 없이는 불가능한 상황이 되었다. 이 경이로운 저항운동에 대한 생생한 증언은 킨조오 미노루(金城實), 오오따 마사히데(大田昌秀) 등 그동안 운동을 이끌어온 여덟명의 평범하면서도 특별한 인물들이 스스로의 삶에 대해 소개한 12장에서 확인할 수 있다.
이 책이 주장하는 또 하나의 중요한 논점은, 일본열도를 둘러싸고 ‘쐐기/불씨’처럼 분포하고 있는 영토문제가 미국의 전략적 의도의 결과물이라는 점이다. 각각 러시아(소련), 한반도, 중국과의 영토분쟁 대상이 되고 있는 북방영토, 독도, 센까꾸/댜오위제도는 모두 “냉전의 지리적 전초”(448면)로서, 인접한 (공산권)국가와의 지속적 마찰을 발생시킴으로써 ‘전후 일본을 미국의 속국 자리에 가두는 열쇠’(365면)로 활용되었다. 오끼나와 현대사는 우리에게 이러한 접경지대를 더이상 국민국가 간 갈등·분쟁지역이 아니라 동아시아 각국이 ‘공존·공생하는 생활권’(380면)으로 탈바꿈시켜야 한다는 교훈을 일깨워준다. 특히 후뗀마와 카데나(嘉手納) 등 기지의 반환과 그 평화적 이용을 핵심으로 하여 1996년초에 마련된 ‘기지반환 행동계획’은 시사하는 바가 매우 크다. 그것은 류우뀨우(琉球)왕국 시대 이래의 전통을 살려 오끼나와 지역을 경제·문화·학술 등 국제교류의 거점, 홍콩과 같은 ‘1국가 2체제’의 국제도시로 만들자는 구상(251면)으로, 오끼나와를 평화 구축의 중심이자 중일간 가교로서, 동북아시아 국가협력기관의 유치 장소(38면)로 재위치시킨다.
이처럼 강력한 비판과 신선한 제언에도 불구하고, 이 책을 읽으면서 느낀 아쉬움을 하나만 지적하자면 ‘반기지운동의 정치학’으로 결코 환원할 수 없는 다채로움과 복합성을 지닌 오끼나와의 문화적 정체성 문제를 거의 다루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동아시아 해양교통의 허브로서 오끼나와 지역이 오랫동안 축적해온 다문화적 역사의 중요성은, 불가사의할 정도로 끈질긴 저항적 힘의 잠재적 원천으로서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이다. 그 점에서 최근 국내 연구자들에 의해 출간된 『오키나와로 가는 길』(이지원 외, 소화 2014) 같은 책은 그 궁금증을 해소할 수 있는 좋은 안내서가 되리라 생각한다.
오끼나와는 우리에게 강대국의 관점이나 국민국가와 중앙정부의 통념적 시각이 아닌, 변방의 관점, 마을과 만(灣)의 입장에서 동아시아를 바라보는 새로운 시각을 제기한다. 그 문제제기는 적어도 다음과 같은 삼중의 발본적 질문을 담고 있다. ‘개미가 코끼리를 물러서게 만드는’ 기적은 실현될 수 있을 것인가. 일본이 온전한 의미에서의 평화국가와 시민민주주의국가가 될 수 있을 것인가. 그리하여, 과연 G2시대 동아시아에 평화체제가 구축될 수 있을 것인가. ‘동아시아 평화학의 성소(聖所)’로서, 오끼나와는 이처럼 의미심장하고 보편적인 메시지를 전세계로 발신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