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화
위기의 남북관계, 지속가능한 평화를 찾아서
문장렬 文章烈
(사)외교광장 이사, 전 국방대 교수. 공저서 『북한 핵·미사일 위협과 대응』 『문답으로 알아보는 군사과학기술』 등이 있음.
이승환 李承煥
원광대 초빙교수, 시민평화포럼 공동대표. 민족화해협력범국민협의회 집행위원장, 6·15공동선언실천 남측위원회 집행위원장 등 역임. 공저서 『변혁적 중도론』 『포스트 통일, 민족적 연대를 꿈꾸다』 등이 있음.
정욱식 鄭旭湜
평화네트워크 대표, 한겨레 평화연구소 소장. 저서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새로운 북한이 온다』 『한반도평화, 새로운 시작을 위한 조건』 『핵과 인간』 등, 공저서 『미중 경쟁과 대만해협 위기』 『한국사회논쟁』 『우리가 살고 싶은 나라』 등이 있음.
이승환(사회) 안녕하세요, 모두의 안녕을 빌게 되는 요즘입니다. 지난 연말 개최된 북한의 제9차 전원회의(2023.12.26~30. 조선노동당 중앙위원회 제8기 제9차 전원회의)의 충격이 아직도 가라앉고 있지 않은 상황인데요. 오늘은 이를 배경으로 남북관계의 여러 측면을 짚어보려고 합니다. 한반도의 군사적 대립이 심화된 원인, 북한의 대남정책 전환에 대한 이해와 평가, 그에 따른 남북관계 향방과 통일담론 변경 가능성, 그리고 앞으로의 남북관계 대응방향 등에 대해 논의하고자 합니다. 향후 전망이나 개선전략을 논하면서는 총선 이후 우리 사회의 상황을 염두에 두면 한층 시의적일 듯합니다. 오늘 뜻깊고 내용있는 좌담을 기대합니다. 먼저 두분 간단히 소개를 부탁드립니다.
문장렬 문장렬입니다. 국방대학교에서 20년 정도 가르치다가 2019년에 퇴임을 했고요. 지금은 사단법인 외교광장 이사로 있습니다. 문재인정부 때 대통령 직속 정책기획위원회 외교안보통일 분과위원으로 활동했고, 노무현정부 때 2년 정도 청와대 NSC(국가안전보장회의) 전략기획실에서 일했습니다. 그전에는 국방부 군비통제관실에서 근무했고요. 물리학을 전공했지만 군생활을 40년 이상 하다보니 남북관계나 외교안보 분야에 관심을 두지 않을 수가 없었어요.
정욱식 정욱식이라고 합니다. 1999년에 평화네트워크라는 시민단체를 만들어서 25년째 평화운동을 쭉 해오고 있고, 4년 전부터는 한겨레 평화연구소 소장도 겸하고 있습니다. 최근에는 무너진 남북관계, 위태로운 한반도평화를 어떻게 재건할 수 있을까 하는 고민들을 동료 활동가나 연구자들과 나누고 있고요. 전세계적으로 군비경쟁이 극심해지고 기후위기가 인간을 포함한 지구 생명체 전체의 위협으로 성큼 다가오는 상황에서 이 둘을 어떻게 연결시켜 글로벌 캠페인을 벌일 수 있을까 하는 고민도 아울러 하고 있습니다.
이승환 오늘 진행을 맡은 이승환입니다. 저는 통일·평화운동 관련한 시민단체 활동을 주로 해왔지만 민간과 정부, 이론과 현장 여러 분야를 두루 다녔습니다. 오늘 이 분야의 전문가인 두분을 모시게 되어 영광스럽고 고맙게 생각합니다.
윤석열정부의 외교안보 실정과
총선 이후 남은 과제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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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환 이번 총선은 기본적으로 정권심판이 이루어진 선거였는데요, 그 냉혹한 민심의 저류에는 윤석열정부의 각종 실정들이 자리 잡고 있습니다. ‘대파사건’으로 상징되는 민생 분야의 무능함이나 ‘이종섭 호주대사 사건’으로 드러난 검찰정권의 무도함이 심판의 직접적인 도화선이지만, 그 바닥에는 남북관계나 외교안보 분야를 비롯한 각종 실정의 누적이 있고요. 윤석열정부 2년 동안 남북관계와 대외 분야의 문제점들을 지적한다면 무엇이 있을까요.
문장렬 이번 총선에서 통일외교안보 문제는 주요 쟁점이 되지 못했지요. 기후변화나 불평등 문제 등 그에 못지않게 시급한 것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외교안보 분야의 쟁점이라고 한다면 채상병 사건 수사에 관한 것 정도인데, 그것도 사실 엄밀히 말하자면 외교안보 문제는 아니죠. 기후변화나 불평등, 외교안보 등의 문제가 쟁점이 되기에는 당면한 민생이나 검찰독재 문제가 너무 두드러진 상황 때문 아닌가 생각합니다. 야당이 총선에서 이기긴 했지만 국민의 45% 정도는 여전히 국민의힘을 지지하는 상황에서 통일외교안보 문제는 미해결로 남아 있습니다. 특히 총선 이후 인적 개편 과정에서 외교안보실을 전혀 고려하지 않고 정책도 바뀌지 않는 걸 보니 앞으로 관련한 문제들이 더욱 심화되지 않을까 우려됩니다.
정욱식 저 역시 두분 말씀에 공감합니다. 가장 큰 실정이라면 이전 정부의 9·19 군사합의를 사실상 백지화한 것이죠. 이 합의는 남북의 우발적 충돌 방지에 큰 기여를 했던 것인데요. 그런데 주목할 만한 현상은, 이번 총선을 앞두고 정부여당은 민주당이 승리하면 친북과 종북이 나라를 말아먹을 거다 하는 식의 얘기들을 많이 했는데 그런 색깔론이 전혀 통하지 않았다는 부분 아닌가 싶습니다. 어쨌든 남북관계와 외교안보가 불안하고 전망도 해법도 잘 보이지 않는 상황인데 남북관계 회복과 발전, 또 초유의 불확실성에 휩싸인 외교영역에서 어떠한 대안과 해법을 내놓을 것인가가 민주개혁진영의 큰 숙제인 듯합니다.
이승환 민주당을 비롯한 야당에서 현 정부가 평화를 망가뜨렸음을 지적해왔고 이런 사실이 정권심판이라는 흐름 아래 작동하고 있었다고 생각해요. 예컨대 북한의 인공위성 발사를 명분으로 9·19 군사합의를 파기하고, 북한을 주적으로 부르고, 현 정부에 반대하는 사람들을 공산전체주의자라고 부르면서 사회 전반을 퇴행적 분위기로 몰아간 것, 그리고 남북한의 위기관리 기제를 완전히 없애버린 부분 등이 국민들에게는 평화에 대한 위협으로 곧바로 다가왔습니다. 게다가 우리 전통 외교 문법에 어긋나는 극단적인 냉전주의적 국제질서에 편승한 것 등이 모두 퇴행이지요. 부산엑스포 유치 실패도 이런 진영외교 ‘몰빵’이 부른 참사죠. 국민심판의 이면에는 이런 여러 퇴행의 문제가 누적되어 있는 것 아닐까요? 선거가 끝나고 반성과 그에 따른 개편, 쇄신 논의가 나왔는데 안보실은 제외되는 것도 이해할 수 없고요. 남북관계를 개선하기보다는 훨씬 악화시킬 것으로 애초부터 예상됐고 또 정확히 그러한 결과를 만들어버린 인물들이 있는 안보실을 그대로 둔 채 다른 영역만 개편한다는 건 총선 결과를 비추어볼 때 전혀 맞지 않는 얘기라고 봅니다.
정욱식 이번 비례대표 후보 추천 과정도 주목할 필요가 있는데요. 진보당이나 시민사회 쪽에서 추천한 더불어민주연합 비례대표 후보 중에, 한미연합훈련을 반대했다거나 국가보안법 폐지를 주장했다는 이유로 낙마한 경우가 있었습니다. 민주당에서는 국민정서에 맞지 않는다는 이유를 들었어요. 한미연합훈련을 포함한 군사 문제는 남북관계나 한반도평화와 관련한 중요한 이슈입니다. 상호적대성을 줄여나가기 위해 국가보안법이나 헌법상 영토조항에 대한 생산적인 논의가 필요한데, 총선에서 이러한 활동이나 주장을 했던 사람들이 배제되었어요. 저는 민주당의 이러한 태도에 대해서는 비판적으로 바라봐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승환 민주당의 태도와는 대조적으로 ‘친북’ 등을 내세운 정부여당의 이념공세도 정권심판 앞에 별로 통하지 않았던 게 이번 총선인 것 같습니다. 그런데 윤석열정부의 실정 중에서 특히 남북관계와 대외정책의 퇴행에 대해서는 일종의 ‘의도된 기획’으로 보는 시각도 있습니다. 예컨대 성공회대 이남주 교수는 윤석열정부의 이러한 퇴행을 분단체제를 재공고화하려는 기획된 움직임이라고 주장합니다(이남주 「문명 전환 시대, ‘한국’을 어떻게 사유할 것인가」, 『창작과비평』 2023년 가을호). 실제로 윤석열정부는 한반도 전반을 신냉전으로 규정하고 한미일 가치동맹에 몰두하는 등 과거 냉전시기와 유사한 진영적 적대관계를 강화하는 조치들을 적극적으로 시행하고 있습니다. 분단체제의 적대적인 상호의존관계를 강화하기 위해, 그리고 그것이 현 정부의 기본적인 정권관리에 도움이 된다는 판단하에 의도된 측면이 있는 듯해요.
정욱식 그것이 얼마나 시대착오적인 발상이며 정권이나 정당 차원에서도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지가 이번 총선에서 어느정도 드러났다고 생각합니다. 공산전체주의 세력이니 친북 종북이니 하며 총선 기간 동안 마치 물 떠놓고 기도하듯이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조선)이 총선에 개입하길 바란 모양새인데 그런 것도 거의 없었고요. 참고로 제가 조선이라는 표현을 쓰는데요. 무너진 남북관계를 조금이라도 복원하려면 상호인정이 필요하고 그건 ‘제 이름 부르기’에서 시작할 수 있다는 생각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어쨌든 총선 이후 정부나 여당의 반성과 성찰이 있을 거라는 큰 기대는 안 합니다만 한국 내부 차원의 변화는 있는 거 같아요.
문장렬 윤정부와 보수세력이 성찰을 통해 변화하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제가 볼 때는 이들이 신념화를 넘어 거의 신앙화되어 있다는 게 대외정책과 남북관계 정책에서 여실히 드러나는 것 같습니다. 한미를 거의 동일체로 생각하고 일본까지 끌어들여 동맹을 강화하는 것이 평화와 안보를 위해 할 수 있는 최선의 방책이라고 굳게 믿는 듯해요.
이승환 남북관계와 관련해서 윤석열정부가 지금껏 보여준 태도가 무척 우려스럽고, 한반도 상황이 점점 더 심각해지는 것은 분명해 보입니다. 특히 진영대결을 전제로 하는 외교적 실패와 함께 억제만능에만 치우친 남북관계 ‘위기관리’의 실패가 매우 치명적이고, 그에 따라 외부에서는 한반도에 전쟁위기가 고조되고 있다는 분석마저 나오고 있는 상황입니다. 이에 대해 논의를 이어가볼까 합니다.
한반도 전쟁위기를 둘러싼 논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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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환 올해 1월 미국 국무부 전 북핵특사인 로버트 갈루치(Robert Gallucci)가 동북아 핵전쟁 가능성을 언급하고, 북한연구자 로버트 칼린(Robert Carlin)과 핵무기 전문가 시그프리드 헤커(Siegfried Hecker)는 김정은이 과거 김일성처럼 전면전을 결심했다는 식의 주장을 하면서 미국 내에서 한반도 전쟁 가능성을 둘러싼 논쟁이 불거졌습니다. 미국 내 진보적인 북한전문가들이 북한의 전쟁 결심 가능성을 심각하게 평가하는 반면, 보수 측은 북한이 그럴 가능성도 능력도 없다고 반박하는 상황입니다. 우선 북한이 변화된 자신들의 핵능력을 중심으로 한반도에 새로운 위기를 불러일으키고 있다는 이러한 주장들을 점검해보면 좋겠습니다.
문장렬 평화나 안보에 관한 문제는 국민들의 체감과 전문가의 분석 사이에 꽤 차이가 있는 것 같습니다. 갈루치나 헤커, 칼린의 주장이 전혀 의미 없지는 않은데 한국의 대중은 일종의 ‘평화 착시현상’을 경험하고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어요. 북한이 미사일을 쏘고 이에 대응해 한미연합훈련을 하고 핵전략자산들을 전개해도 전쟁은 안 일어났잖아요. 게다가 국지적인 도발도 지난 2년 동안 없었고요. 또한 북한의 핵무기에 대한 대응으로서 한미일 연합훈련을 실시하니 전쟁억제력이 오히려 강화되었고 그래서 평화가 유지되고 있다는 식의 일종의 착시가 일어나고 있습니다. 그런데 전쟁위험성을 논할 때는 그 가능성만 얘기해서는 안 되죠. 실제 전쟁이 일어났을 때 파괴의 정도, 즉 결과도 같이 고려해야 합니다. 예를 들어 규모가 큰 지진은 발생할 가능성이 낮지만 한번 일어나면 엄청난 피해를 초래하죠. 북한이 핵무기를 가짐으로써 전면전 가능성은 줄어들었을 수 있지만 그렇다고 그 가능성이 제로는 아닙니다. 북한에게는 핵무기라는 믿을 구석이 있기 때문에 재래식 군사행동이 담대해졌고 계속해서 핵미사일 능력을 현시하고 있습니다. 결과적으로 재래식 국지분쟁 가능성과 안보불안은 더 커졌다고 봐야죠. 전면전 가능성과 국지도발, 군사적 긴장 등을 총체적으로 고려했을 때 한반도의 안보위기가 심화되고 있습니다. 일반 대중에게는 크게 와닿지 않는다는 점이 문제죠.
정욱식 저는 갈루치나 헤커 같은 이들이 ‘한반도에 주목하자’는 취지로 이런 주장들을 했다고 생각합니다. 한반도의 군비경쟁이 심화되고 무력시위나 긴장이 고조되는데도 미국은 도통 관심이 없었잖아요. 그래서 이러다 큰일 난다는 경고를 날린 정도가 아닐까 합니다. 사실 그들의 주장을 읽어보면 앞뒤가 안 맞는 부분도 있거든요. 예를 들어 2019년을 기점으로 조선이 그 이전 30년 동안 가장 큰 목표로 삼았던 대미관계 정상화를 포기했다는 점을 김정은의 전쟁 결심설의 근거로 들고 있습니다. 2019년 이후 조선의 전략적 목표가 바뀐 건 분명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전쟁을 결심했다고 연결 짓기는 어려워요. 조선은 대미관계 정상화라는 목표를 깨끗하게 접고 안보는 핵으로, 경제는 자력갱생으로, 외교는 중국·러시아 중심으로 가져가겠다며 방향을 선회한 것뿐이지요. 우리가 주목해야 될 것은 오히려 지금 전쟁의 가능성이 줄어든 측면도 있다는 겁니다. 1990년대 초반 이른바 북핵 문제가 불거진 이후로 역대 미국정부는 북핵 문제가 외교적·평화적으로 해결되지 않을 경우 군사적 개입도 불사하겠다는 이야기를 계속해왔는데 2018년 이후 그런 논의가 사실상 사라졌습니다. 전쟁 가능성의 근거로 이야기되던 조선 급변사태, 붕괴론, 자포자기식 전쟁론 역시 현재는 유의미하지 않습니다. 식량 수급이나 경제상황이 나아졌고 건설 붐까지 일어나 인민생활과 경제발전에 힘쓰는 지금의 조선은 과거에 비해 잃을 게 많아졌거든요. 일례로 조선은 올해 들어 ‘지방발전 20×10 정책’이라는 계획에 인민군을 대거 투입하고 있어요. 전쟁위기를 고조시키는 요인들도 분명 있습니다만 다른 한편으로는 조건과 환경의 변화에 따라 그 가능성이 줄어들기도 했다는 거예요.
이승환 미국에서 북한발 전쟁위기를 강조하는 건 지적해주신 대로 북한에 대한 미국의 무관심에 촉구하는 부분도 있지만 새롭게 변화된 환경 속에서 한반도 상황이 전개될 가능성에 대한 우려가 여전히 남아 있기 때문이라고 봅니다. 예를 들어 대만 문제와 연계해 동북아 전체가 격동하면서 한반도의 군사적 긴장이 높아질 가능성, 갈루치의 주장처럼 북한이 제한적 국지전을 진행하고 확대된 핵능력으로 미국의 개입을 막으면서 부분적인 현상변경을 시도할 가능성 등 모두가 우려하는 ‘우발적 충돌’ 외에도 한반도위기를 고조시킬 새로운 시나리오들이 확대되고 있습니다. 이런 점은 사실 북한의 이번 전원회의 보고에도 시사되어 있거든요. 북한은 북방한계선(NLL) 불인정과 서해 무력충돌 불사 의지를 강조했는데, 이러한 부분적인 무력 현상변경 시도가 발생한다면 미국이 감히 핵전쟁에 연루될 결심을 하면서까지 그 상황에 개입할 것인가에 대해 칼린이 문제제기하고 있는 거죠. 이렇듯 새로운 상황과 위기 경로의 다양화라는 측면에서 이들의 한반도 전쟁 가능성 주장을 검토할 필요가 있는 듯합니다.
문장렬 사실 미국은 지금 딜레마에 빠져 있습니다. 한국에 핵우산을 제공한다고 해서 북한을 완전히 억제하기는 불가능하고, 또 자칫하면 핵전쟁에 연루될 수도 있죠. 미국은 ‘모든 옵션이 테이블 위에 있다’고 하며 핵무기 사용을 포함한 ‘옵션’을 이야기해왔는데 최근에는 그러한 레토릭조차 사라졌어요. 핵무기 사용을 강조하다보면 북한의 핵사용 의지를 더욱 공고화하고 중국과 러시아와의 관계에도 마찰이 생길 수 있거든요. 심지어 소위 한국의 독자적 핵무장을 주장하는 목소리까지 컨트롤해야 하는 상황입니다. 이 딜레마를 해결하려면 결국 대화나 외교적인 경로를 택하는 길밖에 없는데, 윤석열정부가 이를 전혀 고려하지 않기 때문에 공허한 메아리가 되어버렸죠. 바이든 정부 이후 미국은 북한이 미사일을 발사할 때마다 대화의 문은 열려 있다고 줄기차게 이야기해왔지만 서로를 겨누는 총구를 내리지 않는 상황에서 대화의 문 운운하는 것 역시 덧없게 들립니다. 그러다보니 결국 한반도의 군사대결 상태가 장기화될 수밖에 없죠.
이승환 어쨌든 북한발 전쟁위기론에 대해 여러 논란이 있는 건 사실이고 국내에서도 그 주장을 전적으로 다 받아들이는 분위기는 아닌 듯합니다. 그러나 북한발 위기와 별개로, 윤석열정부가 그동안 취해왔던 남북관계 및 대외 관련 정책들도 한반도위기를 심각히 증폭시키고 있습니다. 최근 국가공무원 인재개발원의 공식 유튜브에서 윤석열 대통령이 북한과 전쟁할 결심을 했으며 윤정부가 주장하는 ‘진짜 평화’의 본질이 마치 전쟁할 결심에서 시작되는 것처럼 설명했는데(「윤대통령, 눈에는 눈 핵에는 핵」, 유튜브 ‘인재교육tv’ 2024.2.10), 이 정부는 계속해서 이런 분위기를 풍겨왔습니다. 윤석열정부가 실제로 위기를 증폭시키고 있는 점과 그 결과에 대해서도 지적이 필요할 것 같아요.
정욱식 저는 거의 모든 역대 정부가 ‘힘에 의한 평화와 안보’를 추구해왔다고 생각하는데요. 전쟁을 막기 위해서는 대북억제력, 전쟁억제력이 필요한 한편 남북관계와 외교 역시 중요합니다. 적절한 군사력과 한미동맹뿐 아니라 한반도위기를 관리할 수 있는 외교적 능력, 이에 더해 남북관계라는 세 축이 제대로 설 때 평화와 안보가 안정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윤석열정부는 힘에 의한 안보가 아니라 힘만에 의한 안보를 추구하고 있죠. 외교나 남북관계의 중요성을 망각한 점이 한반도 전쟁위기를 고조시키는 정부 차원의 요인이 아닌가 합니다. 윤정부가 이러는 데에는 ‘반(反) 문재인’이라는 국내정치적 고려가 크게 작용했다고 보고요.
문장렬 한반도의 현상유지가 장기화된다면 결국 남한만 손해를 보게 될 겁니다. 윤석열정부가 힘에 의한 평화 또는 힘만에 의한 평화를 추구함으로써 남북간 대화와 평화적 관계 그리고 유연한 외교를 통해서 얻을 수 있는 이익을 전부 상실해버렸죠. 그 이익이란 예컨대 평화라는 절대적 가치, 남북교류협력뿐 아니라 중러와의 관계 강화를 통해 얻을 수 있는 경제적 이익, 국방비 절감을 통한 민생지원 확대 등이죠. 또한 전쟁이나 국지적 도발이 일어나지 않는다고 해서 결코 간과할 수 없는 막대한 기회비용도 있습니다. 국민들은 전쟁 불안을 계속 안고 살아야 하는데 이건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큰 비용입니다. 그렇지 않아도 미국과 일본에 크게 의존하던 외교관계가 이제는 거의 종속되다시피 악화되고, 중국과 러시아와는 적대적 관계가 되고 있어요. 전시작전통제권 논의는 오래전에 사라져 지금은 의제조차 되지 못하고 있습니다. 전쟁이나 국지적 도발이 일어나지 않는다고 해도 결코 간과할 수 없는 막대한 기회비용입니다. 윤정부의 실정은 이 모든 것과 연계되어 국가에 이익을 가져다주기는커녕 사실상 큰 손해를 끼치고 있다는 점이 핵심입니다.
북한의 남북관계 방향전환 선언,
어떻게 볼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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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환 윤석열정부가 남북관계의 적대를 심화하는 가운데 북한은 제9차 전원회의에서 ‘남북관계에서의 근본적 방향전환’을 선언했습니다. 그 이유로 “《민주》를 표방하든,《보수》의 탈을 썼든 (…) 《흡수통일》,《체제통일》을 국책으로 정한 대한민국것들과는 그 언제 가도 통일이 성사될 수 없다”는 점을 들며 자신들의 방향전환을 정당화하고 있고요. 이런 북한의 주장에 대해 지적하거나 성찰해야 할 부분이 있을지 검토가 필요하겠습니다.
정욱식 1990년대에 들어서며 국제환경과 남북간 체제경쟁의 결과가 달라지면서 남북관계는 그 이전과 크게 달라졌습니다. 2000년 6·15 남북공동선언은 남북의 통일방안 사이에 공통점이 있다는 점을 명시하고 있고, 특히 민주정부는 대북정책의 중심 원칙으로 흡수통일 배제를 꾸준히 얘기해왔고요. 그런 측면에서 볼 때 조선의 이번 방향전환 선언은 좀 과도한 측면이 있습니다. 다만 다른 한편으론 1990년대 중반 이래 한미동맹 차원에서 유사시 무력통일론이 강화되어왔다는 점도 짚고 넘어가야 합니다. 구체적 점령계획이 작전계획에 포함될 뿐 아니라 훈련에도 반영되었어요. 2019년 6월 판문점에서 트럼프와 김정은이 만났을 때 트럼프는 8월 한미연합훈련을 하지 않겠다고 거듭 약속했습니다만 결국 연합훈련이 강행되었고 심지어 훈련 내용에 ‘북한안정화작전’, 즉 무력점령작전까지 포함되었죠. 조선 입장에서는 불만스러울 법한 상황이 계속되어왔다는 겁니다. 정치적으로는 평화통일 지향적인 남북관계를 가져가자는 총론격 합의가 존재했으나 군사안보 영역에서는 정권의 변화와 관계없이 정반대의 길이 쭉 펼쳐졌던 거죠. 이런 부분이 김정은정권에서 대남관계를 근본적으로 전환하겠다고 선언한 밑바탕이 되지 않았나 합니다.
문장렬 저는 북한의 노동당 전원회의 결정서나 최고인민회의 시정연설을 보면 상당히 조건부적이고 반응적이라는 점을 지적하고 싶습니다. 그들이 남측의 행동에 기초해 대응 정책을 발표한다는 인상을 받아요. 예컨대 북한의 ‘전영토 평정론’에는 유사시라는 조건이 있습니다. 외부의 침략을 받았을 때 조치를 취하겠다는 것이지 그 가정이 성사되지 않으면 행동도 이루어지지 않죠. 이러한 반응적 행동을 명확히 봐야 해요. 민주진영에서는 북한의 여러 전략발표를 비합리적이고 위협적이라고만 생각할 것이 아니라 북한이 처한 상황에서 나올 수밖에 없는 국가정책이라는 인식하에 대처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정욱식 최근 몇년 사이 조선의 선택을 일련의 흐름 속에서 파악해야 해요. 2019년 이후 김정은정권이 이중정체성 시대에 종지부를 찍고 국가정체성을 확립하겠다는 기조를 분명히 세우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예컨대 핵문제에 있어 조선반도 비핵화는 할아버지와 아버지의 유훈이긴 했지만 나날이 강해지는 한미일에 맞서서 강력한 억지력을 확보해야 할 필요도 있었던 것이죠. 좌고우면을 거듭하다 내린 결론이 불가역적인 핵보유국이 되겠다는 거였고요. 반미이면서도 친미가 되고자 했던 시도가 부질없다는 결론을 내리고는 반미로 확실히 방향을 잡은 것도 이와 연결되어 있습니다. 경제적인 측면에서도 제재를 유발하는 행동을 하는 한편 제재가 풀어지길 간절히 원했단 말이죠. 이제는 더이상 제재 해결을 기대할 것이 아니라 오히려 제재를 자력갱생과 자급자족 실현 기회로 삼겠다고 방향을 전환한 것입니다. 통일 문제 역시 통일이 조선의 국시이자 정통성을 강조하는 방향으로 오랫동안 소비되었습니다만, 동시에 흡수통일을 경계해야 할 필요성도 있는 상황에서 통일을 포기하고 국가제일주의를 확실히 내세우는 형태로 방향을 전환했어요.
이승환 내부적 요인과 함께 외부적 정세변화나 국제관계의 변화도 북한의 방향전환에 영향을 끼쳤을 것 같은데요.
정욱식 조선이 핵무력으로 자주국방을 달성하고 자력갱생과 자급자족을 통해 내적으로 경제적인 기반을 갖추면서 중국, 러시아와의 관계 역시 어느정도 대등해졌다는 판단도 하는 것 같아요. 미중 전략경쟁이 격화되면서 중국이 조선의 존재를 원하는 측면이 생겼고, 러시아 - 우끄라이나 전쟁이 장기화되면서 뿌찐 정권 역시 조선과의 협력이 필요해졌습니다. 안보, 경제, 정치사상, 대외관계까지 일련의 방향전환이 가능하다는 판단을 바탕으로 이번 대남관계의 전환도 나왔다고 생각합니다. 이 전환은 근본적이고 전략적이고 장기적이라고 봐요. 변화된 조선의 대응에서 어떤 새로운 기회를 찾을 것인가가 우리에게 중요한 숙제가 됐다고 생각합니다.
문장렬 북한의 전략변화가 장기적이라는 데 동의합니다. 다만 그러한 전환의 주요한 측면 중 하나가 반응적이라는 점이며 앞으로의 변화 가능성이라는 희망을 버리지 말고 노력해야 한다는 근거를 여기서 찾을 수 있을 것 같아요. 한가지 덧붙이자면, 북한이 방향전환을 선언한 데는 남한이 한미동맹체제하에서 평화적인 방법으로 통일하려 하지 않기 때문에, 다시 말해서 남한에 전략적인 자주권이 없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자주권이 없는 국가와 통일을 논할 수 있겠느냐는 것이죠.
이승환 탈냉전 이후 북한이 겪고 있는 여러 문제들을 총괄 검토한 결과로 ‘근본적 방향전환’이라는 결정을 내렸을 가능성이 크기에, 이를 반응적인 대응으로만 판단하기는 어려운 면도 있는 듯합니다. 이번 결정은 길게는 탈냉전 이후, 짧게는 2000년 이후 남북관계 변화와 그 속에서 북한이 받았던 영향에 대한 북한정권의 일종의 전략적인 판단과 대응으로 보여요. 1990년대 중반 이후 시장화·(제한적)개방화와 함께 북한경제의 시스템 자체가 꽤 변했는데, 하노이회담이 결렬되고부터 북한은 자력갱생 기조에 맞춰 자원에 대한 국가의 장악과 통제를 확대하는 시스템 ‘정비보강’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또한 2000년대 이후 남북관계 진전에 따라 남한을 포함한 외부의 영향을 많이 받게 되면서 반동사상문화배격법이나 청년교양보장법 등이 만들어졌고 작년에는 남한식 ‘괴뢰말투’를 차단하기 위해 평양문화어보호법을 제정할 정도였죠. 즉 남북관계와 대외관계 진전에 따른 경제적·사회적 변화에 대한 총괄적 판단과 대응이 이번 전략적 결정과 관련이 있는 셈입니다. 또 남북간 국력격차가 상당해진 상황에서 계속적으로 통일을 주장하는 것은 북한체제에 부담이 되었을 겁니다. 독일의 사례를 반면교사 삼을 수밖에 없을 것이고, 그래서 탈냉전 이후 지속해온 남북관계와 북미관계 개선을 통한 ‘생존과 발전’ 대신 일정 기간 남북관계 단절과 북중러 관계 강화 등을 통해 ‘제한적이지만 보다 안전한’ 생존과 발전 경로를 택했다고 볼 수 있어요. 북한은 ‘강대강’의 대미·대남 초강경 대응에 대해 핵능력 강화 등 한미에 대응하는 힘을 부단히 키우는 시기라고 주장하고 있는데, 이에 따르면 결국 이번 방향전환의 핵심이 내부 시스템 정비보강과 그를 통한 대미·대남 대응력 강화에 맞춰져 있다고 보입니다.
북한의 ‘두 국가론’ 제기,
중요한 건 수용 여부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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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환 북한은 제9차 전원회의에서 ‘두 국가론’을 제기하기도 했습니다. 이는 사실 완전히 새로운 주장이라기보다는 탈냉전 이후 두 국가의 현실과 현상을 인정하는 태도가 확대되어온 것의 연장이라고 보입니다. 그럼에도 두 국가론은 남북관계 단절과 무력평정이라는 두 측면에서 문제가 되는데, “우리 공화국의 민족력사에서 《통일》,《화해》,《동족》이라는 개념자체를 완전히 제거”하겠다는 발언 등을 보면 남북관계 단절에 일차적 방점이 있어 보여요. 남북관계 단절을 어떻게 평가할 것이냐가 주요한 쟁점인 듯한데요. 저는 이 주장이 남북관계와 관련된 지금까지의 모든 합의를 무효화하고 남북간 적대적 의존과 공생 그리고 분단체제의 가장 나쁜 형태인 남북 양쪽의 분단국가주의를 강화시킨다고 봅니다. 윤석열정부 역시 그에 못지않게 적대관계 강화에 매달리고 있고요. 전반적으로 한반도의 분단체제를 더욱 퇴행시킬 가능성이 팽배한 상황에서 이를 마냥 낙관적으로 보기 어렵네요.
문장렬 물론 그렇습니다. 적대적 두 국가론이 실제로 남북관계와 대외관계에 어떤 의미가 있는지 크게 다섯가지 측면에서 살펴볼 수 있는데요. 첫번째는 군사적인 반응이 철저해지고 강화됐다는 겁니다. 남북이 더이상 민족관계가 아니라 적대적 두 국가이기 때문에 어떠한 군사적인 행동이 발생하면 민족 차원의 배려 없이 서로 다른 국가의 적대행위로써 응보하겠다는 거죠. 두번째는 민족관계에서 얻는 경제적 혜택 또한 더이상 없다는 겁니다. 북한 입장에서는 금강산 관광사업이나 개성공단 등 그동안 남한에 제공했던 혜택을 없애겠다는 뜻이죠. 세번째는 중국과 러시아에 일종의 간접적인 메시지를 보내는 의미가 있습니다. 한중, 한러 관계에서 북한을 고려하거나 눈치 보지 말고 제재할 건 제재하라는 거죠. 네번째로 미국과 접촉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동족이 아닌 전혀 다른 국가이니 남한을 염두에 둘 필요 없이 국가 대 국가로 북미관계를 세우자는 거예요. 마지막 다섯번째는 일본과의 관계에서 갖는 의미입니다. 일본은 한반도 식민지배에 대한 배상을 일단 1965년에 끝냈다고 보는데 북한 입장에서는 별도로 다시 계산해야 한다는 겁니다. 이 각각의 측면에서 우리가 어떻게 대응할 것인지 계속해서 논의해야 합니다.
정욱식 중요한 부분들을 짚어주셨다고 생각합니다. 덧붙이자면 저는 전에 없던 두 국가론을 포함해 최근 조선이 보인 변화의 양상은 불안감이나 초조함보다는 자신감의 반영이라고 생각해요. 인민생활이나 경제가 개선되고 있는 최근의 상황에 대한 전반적인 자신감이 두 국가론으로 표명된 것으로 보입니다. 또 동족 개념을 폐기하고 통일을 포기하고 평양에 있는 조국통일 삼대헌장 기념탑을 철거하려면 인민들에게 설명할 근거가 필요하잖아요? 일종의 대내적인 정당성을 확보하기 위한 측면도 있죠. 나아가 더이상 조선의 최고 전략적 목표가 대미관계 정상화가 아니기 때문에 한국의 중재나 촉진이 필요치 않아졌습니다. 실용적인 차원에서 볼 때 조선이 국가전략을 추구하는 데 한국이 불필요해진 거죠. 남북관계의 기대이익이 없다는 게 지난 몇년에 대한 평가이고 앞으로도 마찬가지라는 겁니다.
이승환 그렇다면 북한이 남북이 합의한 ‘특수관계론’을 폐기하고 남한 없는 북한의 길을 가겠다는 것에 대해 한국은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지도 궁금합니다.
정욱식 두 국가론을 수용할 것인가 말 것인가를 논하기보다는 이른바 남북한 특수관계론이 남긴 게 무엇인지 따져봐야 합니다. 저는 남북한 특수관계론이 처참하게 실패했다고 판단해요. 특수관계를 통해 우호적·협력적·평화적인 관계를 꾸준히 발전시켜오지 못했던 거죠. 특수관계론의 가장 폭력적인 발현이 유사시 무력통일안입니다. 193개 유엔 회원국 가운데 한국과 조선을 제외하면 그 어떤 나라도 전쟁이 일어나면 상대방을 없애고 자기 체제로 통일하겠다는 국방정책을 세워 공식화한 곳은 없습니다. 특히 한미동맹은 1990년대 중후반부터 군사훈련이나 작전계획, 무기체계, 군대 운영 등을 통해 무력통일 능력을 끊임없이 기르고 있습니다. 문재인정부가 이를 ‘국방개혁 2.0’을 통해 대폭 강화했고요. 특수관계론이든 두 국가론이든 핵심은 적대성을 완화하고 해결해가는 것입니다. 진영논리를 초월해 여전히 성찰해야 할 지점들이 많다는 걸 강조하고 싶습니다.
이승환 우리 사회가 특수관계론에 근거해 통일하자고 주장하면서 흡수통일, 무력통일, 적화통일 같은 불안만 키워왔으니 차라리 서로 다른 국가임을 인정하자는 인식이 꽤 퍼져 있다는 점이 두 국가론과 관련한 가장 큰 쟁점이 아닌가 싶습니다. 특히 젊은 세대는 북한을 별개의 국가로 인식하고 있는 게 현실이어서 두 국가론에 대해 긍정적인 반응들이 많은 것 같습니다. 문제는 북한의 두 국가론이 적대적 교전국 관계론에 기초해 있다는 건데요. 따라서 두 국가론 수용의 핵심은 그게 분단국가주의로 가느냐 평화와 공존의 두 국가로 가느냐일 것입니다. 북한의 두 국가론이 평화와 공존의 관계로 향하는 것인지, 또 남한 내에서 두 국가론을 수용하자는 이들이 적대적 교전국 관계를 극복하기 위해 무엇을 할 것인지가 밝혀지지 않으면 대중에게는 단순히 통일에 대한 부담을 줄이는 두 국가론이 훨씬 낫다는 식으로 설명될 수 있어요. 현재의 정전체제, 최소한 한국전쟁의 종식과 관련해서 명확히 정리하지 않고 두 국가론을 단순 수용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문장렬 두 국가론을 수용한다고 했을 때 그게 무엇을 의미하는지 봐야 하는데요. 북한에 동조하는 게 아니라 현상에 대한 냉철한 이해를 하기 위해서 북한이 그러한 정책을 발표했음을 존중하고 그 의미가 무엇인지 먼저 인식할 필요도 있어요. 이러한 이해를 기초로 앞으로 두 국가론의 문제점들을 하나하나 해결해나가는 방식으로 접근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우리 통일정책은 김대중정부 이후 남북연합-연방제-통일국가라는 3단계 통일론을 견지하고 있고, 사실 남북연합 단계까지는 두개의 국가를 인정하는 차원이기에 두 국가론으로 인해 우리 통일정책이 크게 흔들릴 부분은 없다고 보여요. 달라지는 건 군사적 긴장도와 전쟁의 위험성입니다. 전면전 가능성은 줄어들었다 하더라도 실제로 전쟁이 일어났을 때의 피해까지 생각하면 위험성은 높아진 셈이죠. 이런 지점을 어떻게 타개해나갈 것인가에 집중해야 합니다. 평화에 대한 의지가 있더라도 자주성이 없으면 제대로 된 남북관계를 만들 수 없죠. 과거 잘못들에 대한 성찰을 바탕으로 방향전환을 하지 않으면 경직된 대응이 될 수밖에 없어요. 좀더 유연해지고 포용적으로 바뀌어야 합니다. 매우 원론적인 이야기지만 우리의 목표가 평화라는 점을 굳건하게 설정해야 합니다.
정욱식 그간 두 국가론과 특수관계론이 이상야릇하게 공존해왔던 것 같아요. 이런 공존에서 어색하고 비정상적인 것이 무엇이었는지 논의가 필요합니다. 평화공존형 두 국가가 됐든 평화지향적 두 국가론과 특수관계론이 병존하는 형태가 됐든, 지금까지 조선을 이유로 혹은 조선을 핑계로 비정상적인 상황을 당연시해왔던 부분들을 점검하고 우리 사회 내부에서부터 차분한 토론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가장 우려되는 상황은 조선은 적대적이고 교전적인 두 국가론을 강조하고 한국은 이를 반통일적·반민족적이라고 비난하면서 조선을 더 적대시하는 방향으로 가는 것입니다. 윤정부와 보수진영에서 이미 그런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는데요. 이는 남북관계와 한반도평화를 더욱 불안하게 만들 겁니다.
이승환 북한의 두 국가론과 무력평정론을 연결하는 비판적인 의견들이 여럿 있습니다만 북한이 무력평정론을 주장한다고 해서 평화적 통일을 포기했다고 단언하긴 어려워 보입니다. 평화적 방식과 비평화적 방식의 통일이 있지만, 현재는 적대적 교전국 관계로 고착됐으니 비평화적 방식의 무력평정을 하겠다는 것이 북한의 주장이기 때문입니다. 적대적 관계를 완화하고 전쟁상태가 종식된다면 당연히 평화적 방식의 통일로 가는 것이고, 그런 조건이라면 남과 북 두 국가의 현실을 인정하는 것이 두 주권국가의 연합인 남북연합으로 발전해가는 길을 촉진할 수도 있습니다. 중요한 건 두 국가론을 긍정적인 동력으로 전환할 길을 찾는 것이기에 결국 모든 문제의 핵심은 어떻게 적대적 관계를 완화하고 청산하느냐에 있겠지요.
남북관계, 개선 전략을 모색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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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환 이런 상황에서 북한이 다시 외교와 대화의 장으로 나올 가능성이 있을지, 그렇게 만들기 위해 우리가 무엇을 할 수 있는지에 대한 질문이 남은 듯합니다. 기존의 문법과 다른 새로운 대북정책의 틀을 짜야 한다는 주장도 많은데요. 과거 대북정책에 대한 평가에 근거해서 우리가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지, 그리고 정치권에 제안하고 싶은 사항도 함께 정리해보면 좋겠습니다.
문장렬 윤석열정부에 대북 대화나 평화적 정책을 기대하기는 어렵다고 봅니다. 그렇다면 행정부가 아닌 입법부에서 나설 수밖에 없는데 사실 그 또한 미지수입니다. 지난 21대 국회에서 민주당이 압도적인 다수를 차지했지만 통일외교안보 분야에서 실질적인 역할을 하지 못했어요. 남북정상회담이 수차례 있었는데 그에 대한 비준동의안조차 상정이 안 됐고, 전쟁위기를 고조시키는 한미연합훈련의 위험성에 대한 지적이나 국회 차원의 평화에 대한 결의안도 없었습니다. 심지어 이른바 ‘찬양고무죄’라고 불리는 국가보안법 7조 폐지도 관철되지 않았어요. 그런 민주당이 22대 국회에서 또 다수야당이 되었습니다. 과연 무엇을 기대할 수 있을지 회의적인 마음입니다.
이승환 회의와 실망에 공감합니다. 그렇지만 민주당이 과거와 달리 새로운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지도 말씀해주시면 좋겠습니다.
문장렬 민주당에서 평화와 자주성을 지향하는 시민세력과 결합해 적극적인 입법을 추진해야 한다고 봅니다. 그래서 저는 그 어느 때보다 시민사회 역할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입법부에 압력을 가해 조직적으로 활용할 방안을 모색해야죠. 예컨대 유사시 무력통일안 배제를 입법화할 방법을 강구해야 합니다. 저는 행정부의 정책이나 정치가 평화에 위협이 된다고 판단될 때 이를 제어할 법적인 근거로 가칭 ‘평화법’을 제정하자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대통령이 국군통수권자로서 어떤 지시를 했는데 그 지시가 전쟁의 위험성을 극도로 높인다면 제어해야죠. 그러기 위한 법적인 근거가 필요하다는 거예요. 평화법을 통해 군사정책의 한계를 만들어두는 식의 대책이 필요한 것 같습니다. 또한 군사작전도 전반적으로 점검해야 합니다. 과연 우리가 유사시 무력통일까지 밀고 나가야 하는 것일까요. 남북간 전면전이 발생해 북한의 체제가 위협받는 상황이 오면 저는 북한이 핵무기를 사용할 거라고 봅니다. 그런 전쟁이 과연 무슨 의미가 있을까요. 이런 점까지 모두 고려해 행정부의 과도한 평화 위협행위 혹은 정책을 제어할 입법이 필요합니다.
이승환 대통령은 ‘평화통일의 성실한 의무를 지닌다’고 규정한 헌법조항에 비추어볼 때, 포괄적 수준의 평화법은 어렵더라도 유사시 무력통일 추진을 배제하는 제한적 의미의 평화법안은 검토할 수 있다고 봅니다. 그러나 현 대통령부터 국방부장관까지 지난 정부의 한국전쟁 종전선언 추진을 ‘가짜 평화’라고 강변하는 상황에서는 평화법의 제정뿐 아니라 지속가능성도 보장하기 어렵겠죠. 그러니 평화법 제정을 위해서는 무력통일 배제에 대한 압도적 사회적 합의를 만들어가는 노력도 병행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정욱식 야권이 압승을 한 만큼 역할도 커졌고 책임의식이 필요한 때죠. 지난 21대 총선에서 민주당의 총선공약 중 실현된 것이 딱 하나 있습니다. 대규모 국방비를 투입해 한국을 세계 5위의 군사대국으로 만들겠다는 공약인데요, 올해 대한민국 군사력이 세계 5위에 올라섰습니다(Global Military Strength Ranking 2024). 민주당은 이번에도 ‘군사력 강화와 대화 병행’을 주장할 텐데, 이런 기조가 남북관계나 한반도평화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 것은 아닌지 성찰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과연 이같은 병행이 얼마나 가능할까요. 앞으로는 대화를 모색하는 방향으로 바뀌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세계 5위의 군사대국이라는 역량을 확보했으니 이제 군비증강은 적절한 수준에서 추구하되 억제력 강화라는 신화에 지나치게 몰두할 것이 아니라 대화를 추구해야 합니다. 냉정하게 보면 지금은 비핵화 자체도 불가능해졌을 뿐 아니라 비핵화를 대화의 목표로 제시하는 순간 조선이 테이블에 나올 리 만무합니다. 이에 대한 대안을 제시하고 공론화하는 것도 민주당이 안고 있는 큰 숙제이겠죠. 저는 비핵화가 아니라 비핵무기 시대, 즉 비핵지대를 추구하는 것도 검토할 만한 안이라고 생각합니다. 비핵화가 사실상 조선의 핵폐기를 의미한다면, 비핵지대는 이뿐 아니라 미국 등 핵보유국이 남북에 핵무기 사용 및 사용 위협을 하지 않고 핵무기를 배치하지 않겠다는 내용도 포함됩니다.
문장렬 정대표께서 군사력, 대화, 비핵화라는 세가지 키워드를 제시해주셨는데 정치적 의미가 굉장히 큰 주제들입니다. 한국이 세계 5위 수준의 군사력을 확보했다는 건 여당이든 야당이든 국민의 눈치를 보고 과도하게 군사력 증강에 투자한 결과라고 생각해요. 특히 야당 진보세력들은 안보에 소홀하다는 공격에 일종의 공포감마저 있는 듯합니다. 우리가 이 정도의 억제력을 보유했다고 공격적으로 나서야만 국민들이 지지해줄 것이라는 착각을 하는 듯한데 이제 그런 생각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또한 남북간 대화는 결국 미국과 연결돼 있는 문제인데요. 미국으로부터의 정책적 자율성, 자주권, 작전통제권 등을 확보하지 않으면 대화는 어려울 겁니다. 문재인정부 때 우리가 이미 경험한 바이고요. 비핵화 역시 용기가 필요한 결단이죠. 국민들은 핵무기에 대한 두려움이 있고, 한반도평화를 위해서는 반드시 비핵화가 이루어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비핵화보다 평화를 우선시하면서 평화가 비핵화를 견인하도록 하는 것이 현실적인데 미국이 이것을 허용하지 않죠. 결국 미국과 국민 눈치 보기에서 용기있게 벗어나지 않으면 실질적인 해결책은 만무해 보입니다.
이승환 그런데 문재인정부조차 안보콤플렉스나 미국 눈치 보기에서 자유롭지 못했는데 윤석열정부는 말할 것도 없겠지요. 앞서도 지적하셨지만 윤석열정부에게 남북관계나 대외정책의 방향전환을 기대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입니다. 결국 변화는 앞으로 3년 후 혹은 더 앞당겨질 수도 있는 새 정부의 과제가 될 수밖에 없다고 보입니다.
문장렬 새 정부가 조기에 들어선다면 평화 문제를 어떻게 해결해나갈 것인가 하는 질문이 다시금 제기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근본적인 해법이 달라지지 않을 것이라 생각해요. 다만 지금까지 논의된 해법들이 입법부와 시민사회의 행동에 국한될 것을 전제로 했다면, 진보정부가 조기에 들어설 경우 행정부까지 가세하여 평화의 회복과 정착을 가속할 수 있겠죠. 평화는 말은 쉽지만 실천이 어려운 대표적인 문제입니다.
이승환 그간 외교를 통한 문제해결이 왜 실패했는지 그 원인을 정확히 찾아 대응해야만 실패를 반복하지 않을 텐데, 그런 점에서 지적해주신 내용이 굉장히 중요해 보입니다. 미국의 태도를 변화시킬 만한 한국정부의 적극성이나 주도권이 부족했다는 점, 북한에 대한 불신 때문에 엄격한 검증만을 강조하고 조건부 제재 완화(snap back) 같은 방안을 적극 활용하지 않은 점 등이 외교와 협상의 실패에 결정적으로 작용하고 있습니다. 또 모든 책임을 북한에게만 돌리는 관성에서 벗어날 필요도 있고요. 현재 북한의 변화된 핵능력 등을 고려할 때 경제적 혜택이나 소극적 안전을 대북 보상으로 제시하는 전통적인 접근은 이제 어려워졌죠. 이러한 현실을 인정하고 그에 맞게 새로운 대화전략을 짜야 합니다. 예를 들면 비핵화는 후순위로 두고 우선은 제재 완화를 통해 군사충돌 가능성을 낮추면서 남북 및 북미관계 발전을 촉진하는 보다 과감한 접근이 필요합니다. 저는 두분이 앞서 언급해주신 유사시 무력통일안 배제라든가 한국정부의 주도적 역할 확대, 안보 콤플렉스 같은 부분은 기본적으로 담론투쟁의 분야라고 생각합니다. 이 투쟁은 여전히 진행 중이고 평화진영이 확고한 우위를 점하지 못했기에 문제가 계속 발생하는 것이고요. 이런 점에서 남북관계와 대외정책 분야에서 지난 시기 민주당이 담론투쟁 공론장을 조직화하고 활성화해 새로운 대안을 제시하는 노력을 제대로 하지 못했다고 봅니다. 담론과 지식투쟁에서 앞서야 법제도로 연결된다고 생각하거든요. 22대 국회에서는 민주당이 다양한 공론장을 활성화하고 담론투쟁의 우위를 점하는 데 무엇보다 힘써야 할 겁니다.
평화로 향하는 길에 남은 숙제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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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환 북한이 전략적으로 두 국가론을 제시했다 하더라도 결국 적대적 남북관계를 개선하고 북미관계를 변화시키지 않으면 북한이 추구하는 핵심적인 생존과 발전이라는 궁극적 목표 달성은 어려울 겁니다. 그런 점에서 현재 북한의 전략적 결정이 항구적 효력을 갖는 건 아닐 듯해요. 북한은 다시 남북관계와 한미관계 개선이라는 과제를 떠안을 수밖에 없고 이 문제를 외교로 해결해야만 할 기회가 다시 올 겁니다. 그때를 대비해 지나온 고비 고비마다 우리가 왜 외교에서 실패했는지, 그리고 실패를 다시 반복하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성찰하고 준비해야 할 듯합니다. 오늘 의미있는 이야기를 많이 나누었는데요, 마지막으로 우리에게 남은 과제를 점검하며 마무리할까 합니다.
정욱식 과거의 복기는 필요하지만, 각주구검(刻舟求劍)의 오류를 범하지 않는 것도 중요합니다. 조선은 ‘가난하고 고립된 핵개발국’에서 ‘가난과 고립을 탈피하는 핵보유국’이 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죠. 실패의 복기와 더불어 선택적 변화가 필요한 까닭입니다. 조선의 전략적 변화를 역설적인 기회의 공간으로 만들려면 적대성을 해소하는 게 가장 큰 숙제일 듯한데요. 특히 우리 사회와 정치권에서 유사시 무력통일안 배제를 공론화하고 실제로 채택할 수 있을지를 논의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유사시 무력통일안 배제는 남북관계를 질적으로, 근본적으로 바꿀 중요한 변화이지만 그에 앞서 복합위기, 다중위기에 처한 한국에도 굉장히 이로운 선택이 되리라고 봐요. 유사시 무력통일안은 전시에 대비한 계획이지만 평시에도 막대한 물적·인적 자원을 요구합니다. 예컨대 한미연합훈련은 압도적인 세계 1위의 규모이죠. 이렇게 큰 규모의 훈련을 하는 이유는 방어와 격퇴뿐 아니라 무력통일 계획이 포함됐기 때문입니다. 만약 유사시 무력통일안을 우리가 배제할 수 있다면 50만 대군을 더이상 유지할 필요가 없어지겠죠. 그러면 병역제도의 변화뿐 아니라 우리 사회의 심각한 문제로 거론되는 불평등, 젠더갈등, 저출생·고령화 문제에 대해서도 생산적인 논의의 계기를 제공할 수 있습니다. 절감한 국방비를 복지, 보건의료, 교육, 기후위기 대응 등에 사용할 수도 있고요. 우리가 이러한 선택적 변화를 추구한다면 우리를 이롭게 하면서 남북관계도 이롭게 할 수 있습니다. ‘탈북한’의 상상력이 필요한 때입니다.
문장렬 현재의 안보위기, 전쟁위기는 단순히 북한이 핵무기를 보유하고 있기 때문이 아니라 남북미 3자간 상호작용의 결과입니다. 어느 하나도 독자적이지 않고 결국 모두 맞물려 있죠. 이 사슬의 끝이 어디인지 애써 찾으려고 하기보다는 상호작용을 어떻게 상호존중으로 변화시킬 수 있을 것인가를 고민해야 합니다. 서로 책임을 떠넘기는 것이 아니라, 적극적으로 책임을 지면서도 평화적인 해결방법을 찾아야죠. 한반도 문제에는 여러 이해당사국들이 얽혀 있습니다. 미국, 일본, 중국, 러시아 등 저마다 한반도를 경유해 이익을 추구하고 실제로 실현하고 있기도 하고요. 그런데 대한민국만 막대한 기회비용을 지불하며 정치, 외교, 경제 모든 분야에 어마어마한 손해를 보고 있다는 현실을 자각해야 합니다. 현실을 냉철히 인식하고 국민들과 시민사회, 그리고 입법부가 모두 결합해 노력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승환 남북관계 위기를 주제로 한 좌담의 진행을 맡으면서 내내 막막한 느낌이 들었던 이유는 윤석열정부하에서 우리가 이런저런 얘기를 한들 무슨 소용이 있겠느냐는 것 때문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두분과 얘기를 나누면서 큰 위로와 시사점을 얻었습니다. 좌담을 마무리하면서 제가 강조하고 싶은 것은 북한의 두 국가론 방향전환을 무력평정과 분단국가주의의 강화가 아니라 평화와 공존의 관계로 연착륙시키기 위해서는 우리의 노력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점입니다. ‘전쟁상태도 평화상태도 아닌’ 한반도 정전체제의 종식 없이는 남과 북 두 국가관계의 안정과 발전은 계속 위협받을 것이기에 앞으로는 한국전쟁 종전과 평화체제 구축이 비핵화에 앞서는 최우선 과제가 될 수밖에 없어요. 또 가치동맹 중심의 외교도 바꿔야 하고요. 미일조차도 탈동조화(decoupling)가 아닌 관계관리(de-risking)에 나서는 상황에서 한국이 한반도평화와 발전을 위한 탈진영외교로 전환하는 것은 당연합니다. 앞서도 지적된 바 있지만, 윤정부의 정책전환을 기대하기보다 하루라도 빨리 국정운영체제를 바꾸는 것 역시 중요합니다. 새로운 대북정책의 검토 이전에 위기관리 기제 자체가 무너져 있는 현실에 대한 처방이 먼저이기 때문이지요. 남북관계 위기의 진단과 처방에 커다란 지혜를 나눠주신 두분께 감사드리며 여기서 오늘 대화를 마치겠습니다.(2024.4.24. 창비서교빌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