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비주간논평
내란은 처벌되고 우리 민주주의는 비약적 진전을 이룰 것이다
12월 3일 밤 대통령의 난데없는 비상계엄 선포로 시작된 일련의 행위는 민주공화국으로서 대한민국의 정체성을 파괴하고자 한 쿠데타이며, 내란죄로 처벌되어야 한다는 점은 시간이 지나며 한층 명백해지고 있다. 이를 입증하는 사실들이 매일매일 새로 확인된다. 사태 초기에는 적지 않은 사람들이 왜 이런 상황까지 출현했는가에 자괴감도 느꼈을 것이다. 그러나 두가지 점에서 이 사태는 자괴감을 느낄 일은 아니다.
우선 민주주의는 항상 취약하다. 미국과 유럽의 상황이 이를 잘 보여준다. 분단체제하의 한국에서는 종북과 반국가단체 운운하며 민주주의를 억압하려는 수구의 반동적 시도가 더 빈번했고, 민주화 이후에도 사정은 다르지 않았다. 가깝게는 박근혜정부에서 이러한 시도가 있었으며, 당시 본지는 이를 ‘점진 쿠데타’로 규정했다(한기욱 「새 50년을 열며」, 『창작과비평』 2016년 봄호). 박근혜정부는 군대를 동원한 갑작스러운 헌정 중단을 시도하지는 않았지만 실질적으로 민주주의를 부정하는 조치를 취했고, 이러한 조치들이 결국은 민주적 헌정의 부정으로 이어질 것이라는 예측도 나왔다. 추후 확인된바, 박근혜정부에는 점진 쿠데타를 넘어서는 구상도 있었다. 헌법재판소의 탄핵심판을 앞둔 시점에 국군기무사령부(현 국군방첩사령부)가 ‘전시 계엄 및 합수 업무 수행 방안’(2017.3)을 작성한 것이 뒤늦게 알려졌다. 헌재에서 탄핵을 기각할 경우를 전제로 한 실행계획이었다. 탄핵이 인용되며 이 계획이 실행에 이르지는 않았지만, 민주화가 진전을 이룰수록 한국의 정치적 ‘보수’가 민주적 거버넌스를 감당할 의지와 능력을 상실해가고 있음을 여실히 보여주는 사례이다.
촛불혁명과 탄핵을 거쳐 새로운 정부가 출범한 이후에는 쿠데타와 같은 시도를 하기는 어려웠지만, 보수가 자신들의 권력자원을 활용해 민의를 억압하는 시도는 계속되었다. 검찰이 그 전면에 나섰다. 편파적인 먼지떨이식 수사로 정치에 노골적으로 개입했다. 선거 절차를 거쳤지만 선거 과정 자체가 검찰의 정치놀이로 심각하게 왜곡되었다. 그 결과가 윤석열정부의 등장이다. 그렇다 하더라도 절차적 정당성은 지녔으니 민의를 존중하며 국가를 통치했다면 오늘의 상황을 자초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윤석열정부는 일관되게 민의와 상반된 길을 걸었다. 올해 총선에서 민의가 명확하게 확인된 이후에도 이를 인정하지 않고(부정선거론에 대한 편집증이 그 필연적 결과이다) 오히려 역행하는 길을 걸었다. 그리고 이들의 정치적 상상 속에서는 쿠데타만이 유일하게 작동 가능한 정치 기획으로 남았던 것이다. 작금의 사태에서 우리가 확인해야 할 일은 민주주의에 대한 위협요소는 내부에 계속 존재하며, 이를 해결하거나 통제하지 못하면 한국의 민주주의는 언제든지 심각한 위협에 직면하리라는 점이다.
동시에, 우리는 한국의 민주주의가 수구반동세력의 시도를 극복하고 민주주의를 진전시킬 저력을 지니고 있다는 사실도 확인했다. 자괴감이 아니라 자부심을 느낄 일이다. 일부 외신도 한국 민주주의의 회복력을 높이 평가하고 있다. 주목할 것은 현 상황은 민주주의의 진전과 그에 대한 저항 사이의 대결이라는 단순한 반복이 아니며, 새롭고도 뚜렷한 특이성이 있다는 점이다. 이를 간과한 채 1979~80년 사이의 군부 쿠데타는 물론 2016~17년의 촛불혁명 및 탄핵 국면과 안이하게 비교하는 것은 현재 사태의 본질을 잘못 인식하게 만들 수 있다.
과거에는 쿠데타의 책임을 일차적으로 정치군인에 물었고, 그에 협력한 자들은 총칼을 앞세운 위협에 어쩔 수 없었다는 변명으로 그 책임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나아가 일시적으로 성공한 쿠데타는 이들에게 그 책임을 면할 뿐 아니라 기득권을 더 강화할 시간까지 확보해주었다. 민주화에도 불구하고 이들이 획득한 기득권은 근본적으로 흔들리지 않았다. 수구 카르텔은 촛불혁명 때도 책임을 박근혜 개인에게 돌리고 정치적 생명을 유지했으며, 검찰과 수구언론을 앞세워 반격에 나섰다. 지금도 이러한 가능성에 기대를 거는 세력이 적지 않다.
지금의 상황은 다르다. 무엇보다 내란이 성공하지 못했고, 윤석열 등이 내란죄로 처벌받으리라는 점은 누구도 부정할 수 없다. 이것은 우연이 아니라 민주화가 이룬 성과라는 점을 거리에서 확인할 수 있었고 그 자체가 민주주의의 큰 진전을 의미한다. 계엄과 같은 무력을 앞세운 방식이 아닌 또다른 변종, 연성 쿠데타를 통한 내란이 시도되고 있어 상황은 다소 유동적이다. 그러나 현 상황의 특이성은 이러한 유동성도 새로운 각도에서 보게 만든다. 연성 쿠데타를 진행하고 있는 자 스스로도 윤석열의 계엄령 포고와 그 이후 이어진 일련의 행위의 불법성을 부정할 수는 없다. 다만 이러한 불법성에 대한 처리는 뒤로 미룬 채 수습책을 만들고자 하고 있다. 이는 헌법적 절차를 따르지 않는 대통령의 권한 위임이라는, 내란 국면을 지속시키는 시도로 이어졌다. 그것도 이미 총선에서 민의의 심판을 받은 총리와 여당 대표가 이를 합의하는 모양새는 이들의 정신상태를 의심하게 만든다. 본질은 내란 행위의 진상을 철저히 규명하고 그 책임을 묻는 것이고, 이 절차를 따를 경우 대통령 사퇴냐 탄핵이냐라는 길만 남아 있다.
현 상황의 또다른 특이성은 당연히 촛불혁명까지 거친 민의의 성숙이다. 12월 3일 밤 계엄령 발표 직후 민주당을 중심으로 하는 이재명 대표 등의 국회의원들과 우원식 국회의장을 비롯한 국회 직원들은 자신감있고 결연한 태도로 비상계엄 해제요구 결의안을 통과시켰다. 1980년 5월은 물론이고, 변화하는 상황에 주춤하곤 했던 2016년 하반기의 상황과도 달랐다. 그리고 수많은 사람이 느끼는 것처럼 12월 7일 여의도 집회의 열기와 규모는 2016년 촛불항쟁이 한창이던 때의 규모를 이미 넘어섰으며, 세대, 성별, 계층, 정치적 성향 등 모든 면에서 더 큰 확장성을 보이고 있다. 이들이 손에 든 소설 『소년이 온다』의 소년이 살아 나오는 듯했고, 촛불이 아니라 응원봉을 든 모습은 국민들의 꺾이지 않는 마음을 상징했다. 이 민의는 노골적 쿠데타는 물론이고 모든 변종 쿠데타를 심판하고 징벌할 것이다.
이제 수구 카르텔이 내란 국면을 지속시키려 할수록 내란의 협력자, 그리고 그 수혜자라는 이들의 정체가 국민 앞에 더 분명하게 드러나고 있다. 역설적이지만 이들의 민의에 대한 저항이 민주주의의 더 큰 진전을 가능하게 하는 동력이 되었다. 앞으로 상당 기간 이번 내란 행위에 어떤 태도를 보였는가가 정치행위의 정당성을 판단하는 유일한 기준이 될 것이고, 이 기준에 부합하지 않는 자들은 법과 역사의 심판을 피하지 못할 것이다. 이 점에서 우리는 지난 촛불혁명보다 한층 더 근본적인 전환을 만들어낼 순간을 맞이하고 있다.
이럴 때일수록 우리는 정치적 시비의 기준을 명백하게 세우고 사태변화에 대응해야 한다. 내란 행위에 대한 철저한 진상규명과 그에 대한 처벌을 기준으로 삼아 일을 진행하고, 정치과정은 헌법적 절차를 준수해가면 될 일이다. 이는 수구 카르텔을 철저히 청산하는 일이기도 하다. 우리 역사에 완전히 새로운 국면을 열고 진짜 나라다운 나라를 만드는 일에 착수할 수 있을 것이다. 거기에는 한반도의 평화정착과 남북관계 개선이 동시에 추진되어야 할 것이다.
이남주 / 성공회대 교수, 『창작과비평』 편집주간
2024.12.10. ⓒ창비주간논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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