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비주간논평
[메가 프로젝트 열풍을 진단한다 ⑤] 지역이 설계하는 퍼머컬처형 전환계획은 불가능할까?
김현우
이재명 정부가 2026년 6월 발표한 ‘3대 메가 프로젝트’에 대해 이미 전력과 용수 공급에 따르는 문제, 기후위기를 가속화하는 문제, 재벌기업에 특혜를 주면서 노동권과 환경권 관련 규제를 약화시키는 문제, 계획 자체의 비민주성과 불투명성 문제 등이 지적되었다. 정부는 이러한 문제 제기에 대해 여전히 이렇다 할 해명이 없다. 세계적인 AI 경제 돌입이라는 한국에게는 두번 다시 오기 어려운 기회 앞에서, ‘초격차’ 대한민국을 건설해야 한다는 논리로 계속 밀고 갈 모양새다. 프로젝트에 따르는 부작용들은 창대한 결실에 비하면 미미하거나 추진 과정에서 해결하면 된다는 것이 이 실용주의 정부의 생각인 듯하다.
여러 비판을 요약하자면 3대 메가 프로젝트는 불확실한 AI와 반도체 경기의 지속을 전제하면서 모든 정부 부처가 나서서 전 국토와 국민을 대상으로 AI 국가를 건설한다는 투기적인 기획을 내놓은 것이다. 모든 투자에는 위험이 따른다지만, 프로젝트 성공의 전제가 갖는 불확실성에 비해 AI 거품에 대한 우려와 가져올 해악이 확실하다면 투기적이라고 말하는 게 맞다.
그나마 이 프로젝트를 변호할 수 있는 측면이 있다면 ‘지역 균형발전’이라는 명분이다. 프로젝트의 문제점을 비판하면서도 지역에 활력을 불어넣고 수도권에 치우진 부를 나눌 수 있는 계기가 될 수 있다는 점에서 전면 반대는 어렵다는 의견도 많이 접할 수 있다. 실제로 수도권 외의 거의 모든 지역은 신공항이든 방사성폐기물 처분장이든 소멸 위기에 처한 지역을 조금이라도 살릴 수 있다면 무엇이든 받아내야 하고, 정부가 천문학적 예산을 편성하고 기업을 내려보내준다는 데 이를 놓쳐서는 안 된다는 절박감이 팽배하다.
3대 메가 프로젝트를 비판하는 진영에서도 지역 간 그리고 지역 내 균형 발전을 가볍게 생각해서는 안 된다. 지금 정부가 내세우고 있는 ‘5극 3특’이라는 국토 발전 구상은 비록 치밀하지는 않다 하더라도 권역을 단위로 하는 발전 대안은 어떻게든 필요한 것이고, 누가 계획을 맡는다 하더라도 5극 3특의 틀과 크게 다르기는 어려운 것도 사실이다. 그렇다면 3대 메가 프로젝트의 비판과 대안 논의에서도 지역 균형발전은 어떻게 가능한 것인지 그리고 이 프로젝트가 그것을 담보할 수 있는지가 더 심도 있게 다루어져야 하는데 이에 대한 이야기는 상대적으로 부족해 보인다.
맥락 없는 지역 발전 정책의 폐해
정부가 적극적으로 국가 균형발전에 나선 것은 노무현 정부의 공공기관 지방이전 정책부터였으니 20년이 넘게 여러 사업들이 진행되었다. 그러나 지역 균형발전 항목에서 공공기관 이전과 기업도시들의 결과가 받을 수 있는 점수는 대체로 저조하다. 수도권 외 지역의 소멸을 그다지 늦추지도 못했고 해당 지역 전체로 사회경제적 활력이 늘어나지도 않았다. 이는 여러 이유가 있지만 무엇보다도 지역의 맥락을 고려하지 않은 하향식이고 천편일률적인 기관과 단지 조성 계획이었던 점이 크다. 농촌지역에 덩그러니 솟아 있는 공기업 건물과 지역 주민과 섞이지 못하는 산업단지는 떠나가는 사람들을 붙잡지 못했고 지역 부의 역외 유출이 오히려 심화되었다. 최근 정부는 3대 메가 프로젝트를 ‘지방주도 성장’의 계기로 삼는다고 하면서 ‘지방주도 성장엔진 협의회’도 출범시켰지만 지방정부의 계획을 중앙이 심사하고 보조금을 나눠주는 방식이 과연 과거 정책의 전철을 피할 수 있을지 의문스럽다.
미국의 도시연구자이자 운동가였던 제인 제이콥스(Jane Jacobs)는 도시의 슈퍼블록을 비판하면서 다양한 규모와 용도의 건물, 구불구불한 골목길이 도시의 활력을 만든다고 주장한 것으로 유명하다. 그리고 그는 1984년에 펴낸 『도시와 국가의 부』(나남출판 2004)에서 국가가 아닌 도시 권역 단위의 경제와 내발적 지역 발전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국가가 일률적으로 시행하는 거시경제 정책이나 낙후지역 지원금 방식은 오히려 도시의 자생력을 해칠 수 있다는 것이다. 제이콥스의 이론에 대해서 해석과 비판의 여지가 있지만, 도시 자체가 스스로 생산하고 자족하는 기능을 가져야 하며 유기성과 다양성이 중요하다는 점을 강조한 것은 여전히 큰 설득력을 갖는다.
이에 비추어 보면 3대 메가 프로젝트의 구성과 진행방식은 여전히 지역의 맥락을 고려한 자생성 확보 방안이라기보다는 기업의 사업 구상을 등에 업고 지역에 선물을 던져주는 방식이다. 그러나 지역의 ‘발전’은 산업, 교통, 인구, 교육, 그리고 역사와 운동의 복합적 구성으로 가능한 것이다. 어떤 프로젝트가 마중물이 될 수는 있지만, 비유하자면 토양과 숲과 미생물을 포함하는 주변 환경 그리고 농부의 생각과 활동이라는 요소가 맞물리지 않으면 맥락 없이 심어진 값비싼 작물은 주변과 무관하게 혼자 자라고, 법과 예산을 통한 지원이 끝나는 순간 말라 죽어 지역은 더욱 황폐화될 것이다.
퍼머컬처에서 배우는 전환이라면
여기서 떠올리게 되는 것이 퍼머컬처(Permaculture), 즉 영속농업의 원리다. 퍼머컬처는 그저 농약과 비료를 쓰지 않는 게으름 농법이 아니라 자연의 작동원리를 배우고 모방하는 것이 핵심 아이디어다. 그래서 외부 자원 투입을 최소화하고 에너지와 물질 순환과 지속성을 보장하도록 노력하며, 가장자리 경계에서 일어나는 작용을 중요하게 여긴다. 자재와 물질을 계속 투입하여 매끈한 상품을 키워내는 단작형 관행농이 보기엔 비생산적이겠지만, 그래야 불확실한 상황에 대처할 수 있고 스스로 번성하는 부분을 중심으로 더 풍요로운 밭을 조성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퍼머컬처의 창시자 중 한 사람인 데이비드 홈그렌(David Holmgren)이 정리한 제1원칙은 관찰과 상호작용이다. 지역에 대입한다면 지역의 역사와 사람과 자연의 과거와 현재를 관찰하고 이야기를 나누는 일이 될 것이다. 또한 퍼머컬처 농부는 결코 그냥 놀고 있거나 밭을 방치하지 않는다. 땅과 작물의 소리를 듣고 만져주고 잘 자라는 것을 고려하여 연결해주며 그들의 상태에 자기를 맞추고 변화시키기도 한다. 역시 지역에 대입한다면, 지역끼리 철도망을 이어주고 적합한 산업을 중심에 놓되 여러 규모와 성격의 산업과 기업이 서로 연결되어 30년이나 50년 뒤에 외부의 지원이 없어도 이어나갈 수 있도록 배려하고, 스스로 일어서기 어려운 사람과 부문을 찾아내서 지원하되 지역의 맥락의 한 부분이 될 수 있는 방안을 토론하는 일이 될 것이다.
과거의 지역 균형발전 정책은 물론이고 지금의 3대 메가 프로젝트는 비유하자면 퍼머컬처가 아니라 레고블록의 정책이었다. 어느 지역에나 똑같은 사업 기획을 고유명사와 숫자만 바꾸어 심어놓았다가 실패하면 유사한 블록으로 바꾸고 폐기하는 그런 방식이었다. 그렇게 해서는 지역의 자생력, 선택권, 자율성 그 어느 것도 담보될 수 없다.
지역마다 다른 역사와 조건이 있고, ‘토착 지식’이라 할 만한 자원도 있다. 이미 초고령화되고 황폐화된 지역의 현실에서 사치스러운 이야기라 할 수 있어도 결국은 그런 퍼머컬처형 구상과 실행이 이루어지지 않으면, 그래서 중앙의 계획과 지역의 기획이 만드는 자연스러운 시너지가 없으면, 아무리 기발한 혁신 프로젝트라도 지역의 밑 빠진 독에 붓는 물과 비료가 될 것이다.
때문에 쉽지 않더라도 지역의 맥락 속에서 지역의 미래를 설계하고 자생력을 키우는 논의가 만개해야 한다. 물론 호남의 경우라면 풍부한 에너지 자원을 활용하는 것이 지역의 조건에 맞는 발전이라는 반론도 가능하다. 그러나 지역의 풍부한 자원을 특정 산업에 투입하는 것과, 지역의 자원과 산업, 주민과 생태계가 어떻게 연결되고 순환할 수 있는지를 살피는 것은 다른 문제다. 퍼머컬처가 알려주는 지역에 맞는 발전은 후자에 가깝다. AI와 반도체에 호남의 모든 미래를 거는 게 아니라, 호남 그린뉴딜이든 정의로운 지역 녹색 전환 계획이든 이름을 무어라 붙이든 간에 호남만의 퍼머컬처형 지역 청사진을 만들어볼 수 있을 것이다.
패턴부터 디테일까지 함께 보고, 분리하지 않고 통합하고, 작고 느린 솔루션을 사용하고, 새로운 다양한 용도를 발견하고, 가장자리를 사용하고 여백을 중요하게 생각하며, 변화를 창의적으로 활용하고 대응하는 것이 퍼머컬처의 나머지 원칙들이다. 반도체 경기에서 기후재난까지 모든 것이 극도로 불확실하고 불안정해질 세계에서, 국토와 산업 정책도 퍼머컬처에서 중요한 힌트를 얻어야 하지 않을까.
김현우 / 탈성장과 대안연구소 소장
2026.9.9. ⓒ창비주간논평
* 창비주간논평에서는 기획연재 ‘메가 프로젝트 열풍을 진단한다’를 통해 우리 사회를 관통하고 있는 메가 프로젝트 열풍의 배경과 실태를 짚어보고자 합니다. 기획연재는 약 두달간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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