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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비주간논평

[메가 프로젝트 열풍을 진단한다 ⑦] 농(農), 생태는 끝내 지켜야 할 공동선이다



문영규


다가온 식량위기 


2026년 올해도 그렇다. 추석 지나 내가 농사짓고 사는 곡성 들녘을 둘러보니, 황금색이어야 할 논이 벌겋게 변했거나 군데군데 폭탄 맞은 듯 벼가 원형으로 쓰러진 논들이 보인다. 또다시 깨씨무늬병이 번지고 벼멸구 피해가 찾아온 것이다. 철원 및 중북부지역에는 고개 숙이지 않는 쭉정이 벼(고온으로 인해 벼꽃 수정이 잘 되지 않고 녹말 축적이 안 되는) 피해가 많다고 한다. 모두 폭염, 폭우 등 이상기후에 처한 벼가 앓게 된 병이다.


벼는 수천년간 동아시아지역의 계절풍(봄·여름철 고온다습, 가을철 건조)과 20~30도 안팎의 생육조건에서 인간의 농사 노동과 함께 번성한 식량작물인데, 40도를 넘나드는 폭염과 가뭄, 폭우 등 기후변화는 벼의 한살이를 힘들게 하고 병해충에 시달리게 하는 것이다. 기후재난이 심해질수록 점점 더 심해질 것이다. 식량위기가 시작된 것이다. 2024년, 마트에 쌀이 떨어지고 쌀값이 배로 올랐던 일본의 쌀 부족 사태는 우리에게도 언제건 벌어질 수 있는 위험이다.


우리 사회에 닥칠 식량위기의 배경은 기후변화에만 있지 않다. 30여년 전 WTO와 FTA 등으로 무장한 신자유주의체제는 각국의 식량체계에도 본격적으로 손을 대기 시작했다. 대규모 단작과 보조금에 힘입어 싼 가격으로 무장한 제국의 산업형 농산물은 세계 먹거리 시장을 포획하고, 식량주권과 식량자급 역량을 무너뜨렸다. 한국의 농민들도 경쟁에서 밀려 작물 선택에 한계가 생겼고, 시설형 농업 등 고투입 농사에 몰리며 농민소득은 제자리인데 부채만 늘어갔다. 그 결과 지금 우리나라에는 농민이 200만명도 채 안 된다. 60%에 달하는 고령 농민은 늘어만 가고 0.47%의 40세 이하 농민은 계속 줄어드는 추세다. 농지는 1인당 89.5평으로 OECD 국가 중 꼴찌 수준이고 해마다 18,000ha의 농지가 공업을 위해 전용되고 있다. 사라지는 농민, 농지의 부족. OECD 국가 중 최고의 ‘식량위험 국가’로 평가되는 이유다. 


농지에 ‘효율’을 들이대면 식량기반은 무너진다


대통령은 “농사보다 태양광 농사 효율이 훨씬 좋지 않나”라고 하는데 이 정책 방향은 심각한 문제를 숨기고 있다.

우선, 영농형 태양광은 필요한 식량작물의 생산을 감소시킨다. 30%에 이르는 태양광 패널의 차광률은 농작물의 생육에 영향을 주고 관리에도 어려움을 준다. 게다가 젯밥에만 관심을 둔 시늉 농민들이 등장하여 손쉽게 영농행위를 할 수 있는 작물로의 편중이 발생한다. 10년 이상 태양광 정책을 추진해온 일본의 경험이 이를 보여준다.

 

둘째로, 태양광 인클로저가 발생하고 있다. 영암군에서는 태양광 패널을 설치하기 위해 농사가 잘 되는 간척지 우량농지(1,700ha 규모)를 ‘염해농지’로 둔갑시켜 하루아침에 부적절 농지로 판정하는 억측이 일어났고, 완도군에서는 148ha의 우량농지에서 농사짓던 수십명의 임차농들이 농지 임대료의 5~6배나 되는 태양광 수익률을 제시한 ‘태양광 기업’의 손을 잡은 지주로부터 쫓겨나는 일이 발생했다. 해남‧진도‧당진‧서천에서도 유사한 분쟁이 늘고 있다. 농사보다 ‘태양광 농사’를 권하면 결국 농지가 감소하고 농민이 줄어드는 일이 계속될 것이다.


농민소득 증대는 농업정책으로 해결해야만 한다. 농민소득을 위한다 해도 농업이 아닌 것으로 눈을 돌리게 하는 정책은 농업을 더 빠르게 무너뜨리게 할 뿐이다. 농사짓는 것만으로도 풍족하고 안정된 삶을 누릴 수 있는 급진적인 농업정책이 필요한 것이다. 농사짓는 일이 존중받을 때 새 농민도 늘어나고 버려진 농지도 회복된다. 그래야 농(農)이 살아난다.


지역 균형발전이 아니라 지역 수탈일 뿐이다 


이미 전례없는 대규모 송변전 시설 구축 계획이 군사 작전하듯 진행되고 있다. 이 계획의 시작은 2023년 3월, 윤석열정부가 삼성전자 반도체 공장(팹)이 들어설 ‘용인 반도체 국가산단’을 지정하면서부터다. 약 10GW(원전 10개 발전량)의 신규 전력이 필요해졌고, 결론은 또다시 지역에서 수도권과 용인까지 전기를 끌고 가는 것이었다. 이재명정부는 이를 이어받아 99개 구간 초고압 송전선변전소 신축 계획을 ‘국가기간 전력망 설비’로 지정했다. 그리고 2026년 6월 29일에 메가 프로젝트까지 발표하였다. 28.5GW의 추가 전력이 필요하다고 한다. 원전 증설과 LNG 발전소 구축까지 계획하고 있고 농지 위에는 더 많은 태양광을, 산지에는 더 많은 풍력기를 세우려고 이격거리 제한도 풀어주었다. 이제 재생에너지는 ‘탄소 중립’의 목적을 이탈해 산업에너지 수요 총량을 위한 수단이 되었다. 


전기만이 아니다. 용인과 서남권의 반도체팹은 하루 200만톤이 넘는 물을 필요로 한다. 경남과 광주에서 사용하는 생활용수와 공업용수를 합친 양이다. 2015년 가뭄은 수도권에서, 2024년 가뭄은 광주권에서 식수 제한 코앞까지 가는 위기를 만들었다. 그런데 정부는 200만톤 공급에 문제가 없다고 한다. 하늘에서 물이 더 내리게 할 방법은 없다. 오히려 가뭄은 해마다 기록을 갱신하고 있다. 대만정부가 2021년 100년만의 가뭄에 TSMC의 반도체공장을 멈추지 않으려 100만명의 시민에게 제한급수를 하고 약 74,000ha에 달하는 농지에 물을 끊고 보상했던 사례를 정부는 벤치마킹이라도 한 것인가 보다.


첨단산업을 중심으로 한 ‘대한민국 대도약’이라는 정부의 이 계획에 동의할 수 없다. 지역거점을 만들고 반도체와 AI 산업에 필요한 전력과 대지와 물을 뺏는 것은 지역 균형발전이 아니라 지역 수탈일 뿐이다. AI와 반도체 기업의 이익을 위해 국민의 식량기반을 희생시키는 것을 도약이라 할 수는 없다. 반도체를 씹어 먹고 살 순 없는 것 아닌가? 


‘끝내 지켜내야만 할 것’을 위해 메가 프로젝트는 재검토되어야 한다


올여름 가뭄은 내내 농부의 가슴을 타게 했다. 말라버린 저수지, 갈라진 논바닥, 말라비틀어진 콩꼬투리, 암꽃을 떨구고 마는 호박…… 7~8월에 계속된 폭염과 가뭄 앞에서 농부는 하루에도 몇번씩 날씨 어플을 확인하고 하늘만 바라보며 살았다. 올여름 유럽을 강타한 폭염과 가뭄은 라0인강의 배를 정지시켰고 다뉴브강의 원전을 셧다운시켰다고 한다. 이전에 없던 기후재난 상황, 아니 더한 상황이 올 텐데 농사는 어찌 될까? “노지 농사를 짓는 마지막 세대가 될 것 같아요”라는 마을 청년 농부의 말은 공동체의 위기를 분명히 실감하게 한다.


‘굶어 죽어도 씨앗은 베고 죽는다’는 말이 있다. 모두를 위해, 미래를 위해 반드시 지켜야 할 ‘씨앗’을 목숨처럼 여겼던 농부의 현명한 의지가 담긴 전언이다. 기후위기가 시작된 오늘날 우리가 끝내 지켜야 할 ‘씨앗’은 무엇인가? 온 생명의 안녕과 번성을 가능케 하는 대지와 물, 바로 생태적 기반과 그것의 순환관계다. 식량기반인 농지와 물, 그것을 돌보고 관리하는 농민의 활동은 여기에 포함된다. 대지를 돌보는 농민이 사라지고, 농지가 줄어들고, 농사지을 물이 없는 상황은 상상조차 할 수 없다.

‘끝내 지켜야 할’ 공동선의 이름으로 메가 프로젝트를 멈춰 세워야 한다.



문영규 /  곡성 농부, 곡성항꾸네협동조합 대표 


2026.9.30. ⓒ창비주간논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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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창비주간논평에서는 기획연재 ‘메가 프로젝트 열풍을 진단한다’를 통해 우리 사회를 관통하고 있는 메가 프로젝트 열풍의 배경과 실태를 짚어보고자 합니다. 기획연재는 약 두달간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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