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 문학의 정치성을 다시 묻는다
한 진지한 시인의 고뇌에 대하여
진은영 陳恩英
시인. 시집으로 『일곱 개의 단어로 된 사전』 『우리는 매일매일』이 있음. dicht1@hanmail.net
당신이 텅 빈 공기와 다름없다는 사실.
나는 말하지 않을 것입니다.
대신 당신의 손으로 쓰게 할 것입니다.
당신은 자신의 투명한 손이 무한정 떨리는 것을
견뎌야 할 것입니다.
-심보선 「텅 빈 우정」 중에서1
1. 그것은 어떻게 시작되었나?
나는 갑자기 진지해졌다. 번번이 나를 진지하게 만들곤 하는 한 사람이 최근 평문에서 “모든 것이 한 진지한 시인의 고뇌로부터 시작”되었다고 표현한 것을 보았기 때문이다.2 시작을 따지자면 모든 것은 시인의 고뇌 ‘이전’에 시작되었다고 해야 할 것 같다. 한 사람의 말과 사유의 집합이 고뇌라고 불리려면 의당 갖추었어야 할 최소한의 확신도 없이, 사실은 가망이 없다고 느끼기조차 하면서 그해 겨울 나는 이 지면에 글을 썼다.3 말하면서도 스스로 그 가능성을 의심하는 말들을 시작하게 한 건 무엇이었을까?
세대론적 관점이 상투적이라고 생각하면서도 아쉬울 때면 그에 기대어 설명하려는 버릇 때문에 나는 문학과 정치를 함께 사유하려는 시도는 항상 나보다 윗세대거나 적어도 동년배인 작가들과만 공유할 수 있다고 참으로 맘 편히 ‘비관적인’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 한 대담에서 각각 십년 정도의 나이 차이가 나는 세명의 시인이 모여서 문학과 정치에 대해 말하고 있었다.4 미학적으로 발랄하기 이를 데 없는 ‘80년대산(産)’ 시인 오은(吳銀)이 내 고정관념을 뛰어넘어 시와 정치에 대해 다른 시인들과 진지하게 이야기했다. 그것은 나로 하여금 가망 없는 말이라도 해야 할 것 같은 기분이 들게 했고, 그래서 나는 망설임 때문에 하지 못했을 수도 있는 말들을 했다.
이듬해 봄, 신형철(申亨澈)의 평론 「아름답고 정치적인 은유의 코뮌」(『문학동네』 2009년 봄호)을 읽었다. 자기 작품에 대해 다룬 글을 읽는다는 것은 모든 작가에게 두렵고도 기쁜 일이다. 그렇지만 내 기쁨은 작품에 대한 언급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그가 꿀통에 빠진 배고픈 곰처럼 글의 곳곳에 묻히고 흘리며 보여준 어떤 욕망에 대한 목격에서 온 것이었다. 그는 아름다운 동시에 정치적인 것을 예술가에게 소리없이, 그러나 강렬하게 주문했다. 그 글에서 무한정 떨리는 손으로 견뎌야 할, 그 두려운 주문(呪文)에 걸린 운 나쁜 예술가는 우연히도 나였지만 사실은 어느 누구라도 좋았다. 같은해 5월, 평론가 함돈균(咸燉均)이 젊은 작가들의 모임을 제안했을 때 반가웠던 것도 비슷한 기대감 때문이었다. 물론 그 기대 속에서 벌어진 일이 거창한 것은 아니었다. 그렇지만 우리는 그 작은 사건 속에서 문학과 정치에 대해 우리 나름의 방식으로 예민해졌고, 많은 것을 배우고 사유하도록 강제되었다. 아마 그러한 여러 일들이 이어지지 않았다면 그 평론가는 나의 모호한 말과 생각을 아마 시인의 ‘고뇌’라는 단어로 표현할 수 없었을 것이다. 그러므로 문학과 정치에 관한 모든 일들은 그의 욕망이자 다른 작가들의 욕망으로서, 한 시인의 고뇌 이전에 시작되었다.
그러나 ‘모든 것은 한 시인의 고뇌로부터 시작되었다’고도 할 수 있다. 나는 그 가능성을 이장욱(李章旭)의 글을 통해 김수영(金洙暎)에게서 보았다.5 내가 랑씨에르(J. Rancière)를 언급하면서 던진 질문들에 이장욱은 김수영의 ‘온몸’과 그 온몸으로 세계와 사랑을 나눌 때 발생하는 ‘성애학’으로서의 시를 빌려 답했다. 그 응답에 아쉬움을 느끼는 평자도 있었다.6 나로서는 잘 판단할 수가 없었다. 김수영에 대해서 매우 조금 알고 있었으며, 이장욱의 글은 판단을 내리기에는 다소 간결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나는 김수영에 대한 한 평문을 읽으면서 이장욱이 말한 것을 다시 사유하고 싶어졌다.
그 평문에서 나를 사로잡은 것은 김수영의 비범함에 대한 언급이었다. 김수영이 어느 시인론집에서 제외되었는데 그 이유가 “그는 시인이 아니기 때문”이었으니 그는 도대체 얼마나 비범한 시인이냐는 희한한 감탄 앞에서 나는 신이 났다. 김수영의 비범함은 “만들어진 관념을 사물에 들씌우는 일은 사물을 모욕하는 일이며, 현실에서 돋아나는 새로운 생각의 싹을 막아버리는 포기행위의 일종”임을 아는 데서 온 것이다.7 그렇다면 이 시인에게 문학에 대해 만들어진 관념을 문학에 들씌우는 일, 시인에 대해 만들어진 관념을 시인에게 들씌우는 일이야말로 최고의 모욕이자 최고의 포기일 것이다. 김수영은 그 모욕 앞에서 시인이며 시인 아닌 자로서 쓰고 살면서 문학과 시인에 대해 만들어진 관념을 흔들었다. 그러니 시와 정치에 대한 모든 것은 이 진지한 시인의 고뇌로부터 시작되었다.
2. 김수영의 ‘시 무용론’과 미학적 정치성8
이장욱은 치기만만한 예술지상주의와 구별되는 문학의 자율성이 김수영에게서 감지된다고 말한다. 만일 그 지적이 옳다면 나는 김수영의 시론에서 순수모더니즘의 미학적 자율성과는 다른 자율성을 찾아낼 수 있을 것이다. 이 또다른 자율성이란 무엇일까? 랑씨에르는 그린버그(C. Greenberg)에 의해 대변되는 순수모더니즘을 “예술의 자율성은 원하지만 그것의 다른 이름인 타율성을 거부하는 예술의 사상”이라고 규정한다.9 그렇다면 우선 새로운 미학적 자율성은 미학적 타율성과 관계해야 할 것이다.
예술은 단순히 형식들의 독특한 자율성을 통해 인간 삶의 다른 영역들로 결코 환원되지 않을 고유한 영역을 점유하고 있기 때문에 자율적인 것이 아니다. 예술은 기존의 에토스(관습적 윤리질서)에 저항하고 지금까지는 불가능하게 보였던 다른 삶을 모색함으로써 자율적이 된다. 김수영의 말대로라면 문학은 “기정사실의 정리”로 화석화된 삶의 “적(敵)”이 되려고 하기에 현실의 삶에 자율적이다. 그렇지만 문학이 어떤 삶의 가능성을 탐색하며 순수예술의 영역에 남기를 고집하지 않고 공동체의 삶으로 들어가는 삶-되기의 운동으로 이어진다면 그것은 타율적이 된다. 김수영은 이런 종류의 타율성을 거부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는 미학적 타율성에 대한 분명한 자각이 드러나는 ‘시 무용론’을 통해 새로운 자율성을 정의하려고 한다.
결론부터 말하자. 시의 ‘뉴 프런티어’란 시가 필요 없는 곳이다. 이렇게 말하면 벌써 예민한 독자들은 유토피아를 설정하고 나온다고 냉소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시 무용론(無用論)은 시인의 최고 혐오인 동시에 최고의 목표이기도 한 것이다. 그리고 진지한 시인은 언제나 이 양극의 마찰 사이에 몸을 놓고 균형을 취하려고 애를 쓴다. 여기에 정치가에게 허용되지 않는 시인만의 모랄과 프라이드가 있다. 그가 사랑하는 것은 ‘불가능’이다. 연애에 있어서나 정치에 있어서나 마찬가지. 말하자면 진정한 시인이란 선천적인 혁명가인 것이다.10
그의 시 무용론은 플라톤이 『국가』에서 말했던 시인추방론을 연상시킨다. 시인추방론은 시인이 공동체의 삶에 무용하고 해로운 존재가 될 수 있음을 지적하면서 시인에 대한 혐오를 보여주는 것이다. 이 점에서 시 무용론은 시인의 “최고 혐오” 대상이 된다. 시 무용론은 기정사실들로 이루어진 낡은 집단적 에토스가, 새로운 에토스를 출현시키는 시인의 노래를 금지함으로써 시인을 추방하는 상황을 뜻하기 때문이다. 시인은 이에 맞서 “무한히 배반하는” 자가 되어야 하지만 또한 배반자로만 머물러서는 안된다(「시인의 정신은 未知」).
이 머무를 수 없는 욕망 때문에 김수영은 시 무용론에서 예술에 대한 실러(F. Schiller)적 관점을 드러낸다. 실러에 따르면 예술과 종교와 정치가 분리되어 있지 않아서 모두가 시인이고 모든 활동이 시가 되는 공동체는 (어떤 이들의 냉소에도 불구하고) 가능하다. 그러니 전문가 집단으로서의 시인 혹은 아방가르드로서의 시인은 무용하고 ‘시인’ 개념은 무화되어야 한다. 시 무용론이 시인의 “최고의 목표”가 된다는 언급에서 김수영이 지향하는 것은 “체험된 경험이 분리된 영역들로 나뉘지 않는 자유로운 공동체이며, 일상생활, 예술, 정치나 종교 사이의 분리를 알지 못하는 공동체”11이다. 이런 점에서 미학적 타율성에 대한 그의 분명한 선호가 드러난다.
이처럼 김수영은 배반자로서의 시인을 강조하지만 그 배반자를 “무(無)로 만드는 운동”(「시의 ‘뉴 프런티어’」)인 타율성이 존재해야 한다는 사실 역시 강조한다. 그 때문에 시인의 ‘모랄’이란 양극의 마찰 사이에 존재하는 것으로 이해된다.12 모랄을 가진 시인은 마찰 사이에 존재하는 ‘불가능’을 사랑함으로써 가능한 ‘불가능성’을 실현시키는 선천적인 혁명가다.
시가 필요하지 않은 곳을 냉소하는 이들은 미학의 양극 중 하나의 극만을 강조하면서 다른 극으로의 미학적 운동을 사유하지 못한 것이다. 시인은 그에 맞서 시의 뉴 프론티어를 사유하는 일은 진정한 시인의 모랄로서 결코 방기할 수 없는 일이라는 점을 거듭 강조한다. 그가 끊임없이 결의하는 것은 랑씨에르가 말했듯이 “예술의 삶은 정확히 말하면 왕복운동하는 것, 곧 타율성에 맞서 자율성을 실행하고, 자율성에 맞서 타율성을 실행하고, 예술과 비예술 사이의 한가지 연결에 맞서 다른 연결방식을 수행하는 것”13이다.
시인에게 다시 묻자. 문학의 삶-되기를 의미하는 미학적 타율성은 무엇인가? 그것은 “계급문학을 주장하고 노동조합이나 협동조합의 문화센터 운동을 생경하게 부르짖”는 방식으로(「시의 ‘뉴 프런티어’」) 실현되는 것은 아니다. 김수영은 예술을 통한 집합적 공동체의 구성운동을 희망하지만, 그것이 또다른 이데올로기 체제의 ‘기정사실의 정리’로 귀결되는 것과는 엄격하게 구별되어야 한다고 본다. 그는 빠스쩨르나끄나 씨냡스끼 등 러시아 작가들에 대한 작가론과 작품론을 통해 스딸린 치하에서 슬로건화되어간 관변예술에 대한 첨예한 비판의식을 드러낸다. 그는 자신이 검열과 언론의 부자유라는 억압적 현실에 처한 것과 동일하게 러시아 작가들이 계급문학의 파괴자로 낙인찍혀 작품이 “공식적인 당국의 검열에 통과될 수 없고” “출판될 수도 없”는(「안드레이 시냐프스키와 문학에 대해서」) 상황에 처해 있음을 본다. 그리고 이러한 목격을 통해 계급문학론에서 예술이 치안의 작용에 기여하는 것으로 전락할 수 있다는 사실을 감지한다.
그러나 김수영은 이러한 우려로부터 문학이 어떤 정치적 현실도 다루어서는 안된다는 입장으로 내닫지 않는다. 그는 오히려 “언론자유의 ‘넘쳐흐르는’ 보장과 사회제도의 어떠한 변화”와 “불온서적 운운의 옹졸한 문화정책을 지양”하는 것이 자신이 말하는 “뉴 프런티어의 탐구의 전제와 동시에 본질이 될 수 있는 것”(「시의 ‘뉴 프런티어’」)이라고 말한다. 여기서 흥미로운 것은 그가 계급문학론과는 다른 방식으로 뉴 프론티어의 탐구를 수행해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그 구체적 과제로서 시의 내용이나 형식의 실험이 아니라 언론의 보장과 리버럴리즘의 문화정책, 해방 이후의 남북을 통합한 문학사에 대한 활발한 재구상 등을 제안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것은 단순히 미학적 자율성의 조건으로서 사회적 자유가 필요하다는 부가적 설명이 아니다. 여기에는 명백히 미학적 자율성에 개입해 오는 미학적 타율성의 계기에 대한 인식이 존재한다. 미학적 타율성은 예술이 공동체적 삶을 형성하는 방식으로 삶에 기여한다는 것뿐 아니라, 공동체적 삶의 형성방식들이 예술의 내용과 형식에 영향을 미치고 개입해 오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미학적 타율성을 의식하면서 진행되는 미학적 자율성은 단순히 예술가가 예술의 형식이나 내용 면에서 무한한 자유를 누려야 한다는 순수모더니즘의 관념과 달리, 미학적 자율성을 이루는 조건들에 대한 직접적 개입을 추구한다. 다시 말해 미학적 자율성은 이미 구획된 형식적 틀로서의 예술영역을 벗어나지 않는 한 예술적 내용에는 “너무나 많은 자유가 있다”고 주장하는 형식의 혼잣말에 대항한다. 그것은 형식적 구분들이 예술 안에서의 자유만을 허용함으로써 사실상 내용의 자유를 한계짓는 상황에 계속 개입하면서 “너무나 많은 자유가 없다”고 외치는 것이다(「시여, 침을 뱉어라」).
그러므로 미학적 자율성의 수행은 기존의 영역 구분에 따른 문학적 경계 안에서 여러가지 실험들을 수행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문학에 대한 통념을 그대로 고수하는 이들이 보기에 비문학적이고 순수하지 못한 활동방식으로 수행될 수 있다. 이 때문에 김수영에게 언론의 자유는 창작활동의 중요한 사회적 조건이라기보다 그 자체로 “너무나 초보적인 창작활동의 원칙”이다. 이 원칙이 올바르게 이행되지 않는 현실상황에 대해 그는 “문학을 해본 일이 없고, 우리나라에는 과거 십수년 동안 문학작품이 없었다고 나는 감히 말하고 싶다”고 토로할 정도로 언론자유를 문학의 자율성의 핵심적 계기로 보았다(「창작 자유의 조건」).
이처럼 문학의 자율성이 삶의 다양한 계기들에 깊이 연루되어 있다는 인식은 작가가 작품의 내용적 측면에서 치안을 고발하는 활동뿐 아니라, 그가 자신의 언어를 통해 치안(물론 여기에는 문학적 치안도 포함된다)에 대한 다양한 저항활동을 수행할 수 있도록 한다. 문학은 이러한 저항활동을 통해 새로운 집합적 구성의 가능한 지평을 드러내면서 기성의 삶이 만들어내는 타율성에서 벗어나 새로운 삶을 일반화하는 미학적 타율성으로 이행해간다. 이런 점에서 자율성은 두가지 타율성의 사이-운동 또는 사이-사건이라고 부를 수 있을 것이다.
김수영은 현실참여의 문학은 전부 고발적이라거나 “무조건 비참한 생활만 그려야 하는 것같이 생각하고, 신문 논설란류의, 상식이 통하지 않는 작품들을 도매금으로 난해시라고 배격하는 성급한 습성”(「생활현실과 시」)을 우려한다. 중요한 것은 “오늘날의 우리들이 처해 있는 인간의 형상을 전달하는 의무를 이행할 수 있는 언어, 인간의 장래의 목적을 위해서 선택이 이루어질 수 있는 자유로운 언어”(「히프레스 문학론」)의 활동 전체이다. 자유로운 언어의 활동은 아방가르드한 난해시냐 사회참여시냐의 양자택일적 기준으로 판가름되는 것이 아니다. 양자택일의 사유는 여전히 문학을 문학작품 내적 문제로 환원하는 경향을 보인다. 자유로운 언어의 활동은 난해시와 참여시이기도 하며 둘 다 아니기도 하다. 그 자유로움의 여부는 공동체의 다른 미학적 계기들, 즉 칸트적 의미에서 시공간의 분배라는 감성론적 계기들과 관계맺는 방식을 통해 결정되는 것이다. 문학적 자율성에 대한 그의 문제의식이 이러한 것이었기에 상식적 사유에서 벗어난 시들을 옹호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시작(詩作)에 머무르지 않는 실천을 강조하는 일견 상반된 의견이 그의 시론에 등장하게 된다.
김수영은 “시의 임무를 다하지 못한 죄”의 동격으로 “자유를 이행하지 못하고 있는 죄”를, 구체적으로는 국회의원 부정선거라는 정치적 사태인 “6·8사태에 성명서 하나 못 내놓고 있는 죄”(「로터리의 꽃의 노이로제」)를 나열한다. 또한 “시를 행할 수 있는 사람이 있으면” “신문은 감히 월남파병을 반대하지 못하고, 노동조합은 질식상태에 있고, 언론자유는 이불 속에서도 활개를 못 치고”(「제정신을 갖고 사는 사람은 없는가」) 있는 상황이 존재할 리 없다고 탄식한다. 이러한 나열과 탄식은 단순히 김수영의 문학론에서 엿볼 수 있는 그의 정치의식의 편린들이 아니다. 그는 시평란을 통한 자신의 산문적 기술(記述)들을 기존의 감성적 분배에 입각한 정치영역과 문학영역의 경계를 가로지르는 시인의 중요한 문학적 활동으로 간주한다. 그 때문에 그가 시인이면서 시인이 아니라는 야릇한 시인의 자리를 차지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한 시인의 자리에서 김수영은 정치적으로 특정 이데올로기를 옹호하거나 선전하는 방식과는 거리를 두지만, ‘정치적인 것’의 다양한 영역들, 국회의 부정선거, 언론의 부자유, 문학에서의 권위적인 관행에 대한 문제제기, 이북 작가들의 작품 출판 및 연구에 대한 정책 제안에 이르기까지 언어를 통해 기성세계의 합의된 질서에 불일치를 제기하는 모든 활동을 문학적 활동이라고 외치며 자신의 미학적 정치성을 입증하고자 했다.
3. ‘온몸으로’ 쓰는 두가지 방식: 지게꾼의 시와 지게꾼-되기의 시
김수영은 미학적 자율성을 지닌 문학을 전위문학으로 여겼다. 그래서 그에게 모든 전위문학은 불온한 것이 된다. 이 불온한 문학이 참여문학으로 환원되는 것이 아니라는 점에서 몇몇 사람들은 미적인 것과 정치적인 것의 간극을 말하기도 한다. 이들은 박노해와 백무산의 시를 의미있게 평가하면서도 이 노동시들이 정치적 파급력이 컸던 문학일 뿐 미학적 성과를 찾아보기는 힘들다고 진단한다. 80년대 노동문학에 대한 미학적 평가는 평자들에 따라 다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적어도 김수영에게서 발견되는 미학적 자율성의 관점에서 본다면, 80년대의 노동문학은 충실하게 미학적인 것이다. 이 점은 “우리나라의 시는 지게꾼이 느끼는 절박한 현실을 대변해야” 한다는 신동엽(申東曄)의 주장에 대한 김수영의 반응에서 분명하게 드러난다. 김수영은 신동엽의 주장을 “시를 쓰는 지게꾼”의 출현을 강조하는 말로 받아들이면서, 시를 쓰는 지게꾼이 나오지 않는 것은 “여러가지 사회적 조건의 결여” 때문이라고 덧붙인다. 그리고 지게꾼이 쓰는 문학은 “장구한 시간이 필요한 자유로운 사회의 실현과 결부되는 문제”이므로, 우선은 “현재의 유파의 한계 내에서라도” “시인의 양심이 엿보이는 작품”을 생산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한다.(「생활현실과 시」)
박노해와 백무산은 김수영이 말한 “시를 쓰는 지게꾼”의 전범이며, 이들의 등장은 새로운 미학적 주체의 탄생이다. 김수영은 이 지게꾼 시인들의 출현은 당대의 사회적 현실을 고려할 때 장구한 시간을 필요로 하는 요원한 문제로 느꼈기 때문에 노동자문학의 가능성을 유보적으로 표현했을 뿐이다. 그에게 지게꾼의 시는 도래할 문학으로서의 중요성을 띤 것이었다. 이들의 출현이 갖는 미학적 중요성은 자명한 것이다. 시작(詩作)은 머리나 심장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온몸으로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는 달리 말하면 시인이 지게꾼의 현실을 머리나 심장으로 이해해서 지게꾼의 대변자로서 시를 대신 쓰는 것이 아니라 지게꾼 자신이 살아내는 현실의 삶을 시로 쓰는 것이다. 지게꾼이 자기 삶을 스스로 쓰는 것, 더욱이 지게꾼이 시를 쓰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통념을 거부하면서 쓰는 것은 그 자체로 미학적 모험이다. 바로 여기에 낡은 삶에 저항하며 새로운 삶을 생산하는 일종의 미학적 자율성 또는 감각적 자율성이라고 부를 만한 것이 존재한다. 이 한국 노동자들의 시는 랑씨에르의 표현대로 인민의 삶을 감성화(esthétiser)하는 결정적 계기가 되었다.
다른 한편으로 “온몸에 의한 온몸의 이행”으로서의 시는 시인 자신에게 새로운 문학을 원한다면 새로운 삶의 형식들을 찾아내고 온몸으로 이 삶의 모색과정에 참여할 것을 요구한다. 김수영의 말대로 모험은 자유의 서술도 자유의 주장도 아닌 자유의 이행일 뿐이다. 이 말은 순수모더니즘의 자율성 개념과 결별하는 순간, 미학적 작업들이 얼마나 즉각적으로, 또한 필연적으로 정치적인 것과 관계하게 되는지를 보여준다. 김수영에게 온몸의 시는 항상 “현대에 있어서의 문학의 전위성과 정치적 자유의 문제가 얼마나 밀착된 유기적 관계를 가진 것인가”를 알려주는 것이다(「실험적인 문학과 정치적 자유」). 물론 이때 정치적인 것은 기정사실화된 감각적 분배에 불과한 치안의 개념과는 다르다는 것을 새삼 강조할 필요는 없겠다. 그렇지만 정치와 치안에 대한 이러한 구분이 자칫 “치안에 대한 고민이 결여된 정치에의 관심”으로 와전되어 “무관심과 무책임에 대한 일종의 알리바이”를 제공하는 것이 결코 아니라는 점을 분명히해야 한다.14 오히려 그것은 철저한 비판이 있는 시적 모색이 단순한 의미의 참여시의 효용성을 넘어서는 새로운 시를 생산할 수 있다는 생각으로 이해되어야 한다.
김수영은 라이트 밀즈의 『들어라 양키들아』와 래스키의 『국가론』을 읽으면서 단순히 민주적 선거제도의 확립만으로 자유가 실현되지 않는다는 관점에 크게 공감한다. 그는 군부독재에 대한 저항이 단지 절차적 민주주의의 확립을 통해 완결된다고 보지 않는다. 그는 절차적 자유민주주의나 그것의 이데올로기적 대립항으로서의 사회주의체제 모두에서 치안의 가능성을 감지하기 때문에, 항상 시인은 시와 시론, 그리고 그의 모든 언어를 통해 매번 “너무나 자유가 없다”고 외치는 자, 달리 말하면 불화의 정치학을 수행하는 자라고 믿는다.15
이토록 ‘진지한 시인의 고뇌’를 통과하여 시와 정치, 또는 미학과 정치의 문제를 되묻는다면 우리가 주목할 것은 어떻게 양자 사이의 간극을 ‘인식’하느냐 대신 어떻게 문학이 미학적인 동시에 정치적인 것이 되도록 하느냐의 문제이다. 시는 어떻게 그럴 수 있는가? 이장욱이 말했듯 김수영은 또다시 “온몸으로”라고 답한다. 지게꾼이 자신이 온몸으로 사는 삶을 통해 지게꾼의 시를 만들어내듯이 시인은 그가 온몸으로 사는 것만큼 그의 시를 쓴다. 지게꾼이 아닌 시인이 지게꾼의 고된 삶을 ‘머리’로 사유하거나 ‘심장’으로 애틋해하면서 지게꾼의 목소리를 그저 재현하려고만 한다면, 그는 곤경에 빠질 것이다. 그가 지게꾼에 대해 쓰려면 지게꾼의 삶을 마치 그가 즐겨쓰는 필기구처럼 만지고 그 자신의 오감으로 쥐어보아야 한다. 지게꾼의 삶이 자신의 삶에 인접한 것이 되도록 온몸을 움직여야 한다. 이렇게 씌어지는 시는 지게꾼을 대변하는 시가 아니라, 지게꾼-되기의 시일 것이다. 들뢰즈와 가따리가 말했듯이 이러한 ‘되기’(devenir)는 유비나 모방 혹은 재현의 문제가 아니다.16 지게꾼이라는 타자를 만나는 새로운 방식 속에서 시인은 기존의 분배방식에서 특수한 영역으로 할당된 자신의 존재를 지우고 지게꾼도 시인도 아닌 동시에 지게꾼이며 시인인 존재가 된다. “시인의 양심”이 아름다운 것은 바로 이러한 이유에서다. 그 양심이 시인이 선한 사람임을 보증해주어서가 아니라 그 양심으로 인해 서로 무관하다고 여겨지던 존재들이 이어지며 이전에는 없었던 실존이 발명되기 때문이다. 이 미학적 양심 속에서 시인은 딴사람이 되고 시인 곁의 지게꾼도 딴사람이 된다.17
실패한 프롤레타리아의 시들이 너무 많이 나온다고 김수영이 한탄했을 때 그것은 그 시들이 ‘언어의 서술’만 강조함으로써 ‘언어의 작용’이라는 기술적 측면에서는 미숙성을 지니고 있음을 비판한 것이기보다 그 시들에서 충분히 온몸으로 살아내지 못한 머리만의 시나 가슴만의 시를 보았기 때문이다. 시는 온몸으로 살아보는 것에 대해 씌어지고, 그렇게 살아본 만큼 씌어진다고 김수영은 확신한다. 그렇다면 이제 중요한 일은 우리의 삶에 ‘살아보는’ 여러 방식을 도입하는 일이다. 그러나 항상 우리를 당혹감에 빠뜨리는 단어가 있다. ‘어떻게’이다. 이 단어 앞에서 우리는 지속적으로 당혹스러워해야 한다. 문학이 미학적인 동시에 정치적일 수 있다는 것을 ‘정당화’해야 하는 사람의 당혹스러움이 아니라, 문학이 그러할 수 있는 그 놀라운 순간을 상상하고 ‘발명’해야 할 사람의 당혹스러움으로.
4. 아름답고 정치적인 것의 야릇한 시작
김수영은 ‘어떻게’의 당혹스러움을 사랑하는 시인이다. 그렇지 않고서는 이렇게 쓸 수 없었을 것이다. “딴사람의 시같이 될 것이다. 딴사람-참 좋은 말이다. 나는 이 말에 입을 맞춘다.”(「생활의 극복」) 딴사람의 시같이 되기 위해 그는 시도 시인도 ‘시작(始作)’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무엇을 시작해야 할까? 딴사람-되기를. 시인의 자리를 지게꾼의 자리와 뒤섞고 문학의 자리와 정치의 자리를 뒤섞음으로써 감각적인 것들의 완강한 경계를 넘어가는 시와 시인이 동시에 ‘시작’된다. 김수영은 문학과는 다른(‘딴’) 자리들을 문학의 자리로 만들고 문학을 다른 자리로 만드는 왕복운동이 문학에 내재한다는 통찰을 시론 속에서 끊임없이 개진한다. 그는 이 ‘시작’의 야릇한 동시성을 통해서 미적 전위가 되려거든 낡은 삶의 경계를 지우고 새로운 삶-그것은 처음으로 존재하는 것이어서 모호하고 혼란스러울 것이 분명하지만-을 과감히 발명하기 위해 노력하라고 권유하는 듯 보인다. 그러한 삶과 그 삶 속에서 온몸으로 씌어지며 사건을 만들어내는 시가 바로 정치적 전위를 형성하는 힘을 제공한다.18
우리는 역사 속에서 미적 전위와 정치적 전위의 중첩, 그 과정에서 실패로 돌아간 미학적 전위운동을 찾아낸다. 그러나 그 실패가 미학과 정치가 만나서 필연적으로 미학의 자율성이 상실되었기 때문일까? 미학적 전위가 치안의 운동으로 전락하거나 그것에 포획된 것은 아닐까? 정치와의 만남 없이도 실패한 미학적 운동들, 또는 정치와의 만남이 없어서 실패한 미학적 운동들이 존재한다. 그런데도 우리가 너무 쉽게 정치는 항상 미학적인 것을 훼손한다고 결론짓는 것은, 치안과 정치를 동일시하고 순수모더니즘의 미적 자율성과 예술적 경험의 자율성을 동일시하는 습관 때문이다. 또한 미학을 미학적 자율성과 미학적 타율성 중 어느 하나와만 동일시하는 습관 때문이다. 이러한 습관은 김수영의 말대로 대부분 냉소로부터 나오는 것이다.
그러나 가끔 그것은 정치와 역사에 대한 지나치게 단정하고 경건한 마음에서 나오기도 한다. 그런 경건함 속에서 서동욱(徐東煜)은 정치적인 것이 그저 노래로 전락할 때의 위험을 염려했다.19 그는 심각하고 진지하게 다루어져야 할 사건들이 그저 미학적으로 흥겨운 흥얼거림으로 변질될까 걱정한다. 나는 그의 걱정에 충분히 공감한다. 그렇지만 나는 그와 함께 역사에 대한 어느 기억할 만한 가르침을 나누고 싶다.
꼭 50년 전의 그날, 4월 19일 오전의 나는 동숭동 캠퍼스의 벤치에 막막한 기분에 젖어 혼자 멍하고 앉아 있었다. 방금 많은 학우들이 교문 밖으로 구호를 외치며 뛰쳐나가 교정은 거의 텅 빈 것 같았다. 내가 민주주의며 정의와 자유를 생각하면서도 시위에 동참하지 않은 것은 두려움 때문이 아니었다. 다만 한 장면을 되씹고 있었다. 돈암동에서 대학로 가는 버스를 타고 혜화동에 이르렀을 때 한떼의 고등학생들이 한바탕 놀이판에서 놀고 돌아오는 듯한 흥겨운 기분에 젖어 거리에서 낄낄거리며 떠들고 있었다. 나는 그 모습이 자못 마땅치 않았다. 나라와 역사를 생각하고 민주주의를 외치며 부정을 규탄하고 있다면 저렇게 장난치듯 해서는 안된다, 참된 역사는 진지한 태도에서 이루어져야 하는데 저렇게 우스꽝스런 모습이어서는 안된다고, 속으로 안된다를 거푸 생각하고 있었던 것이다. (…) 내가 좀더 성숙해지고 힘든 사회생활을 겪으면서 역사의 진행에 대한 실제를 좀 알고 나서야 나는 그날의 내 생각이 얼마나 순진했는가를 깨달았다. 치열한 역사는 웅장한 팡파레를 울리며 찬연한 모습으로 오는 것이 아니었다. 그것들은 누구의 말마따나, 희극적인 얼굴로 다리를 절뚝거리며 짓궂은 꼴로 일을 벌이고서야 근엄한 현실의 무거운 물길을 엄청난 힘으로 전복시킬 힘으로 충만해질 것이었다.20
아마도 우리가 사랑하는 한 시인의 고뇌는 우스꽝스러운 얼굴을 가졌던 놀라운 혁명으로부터 시작되었을 것이다. 아마도 기존의 무겁고 엄숙한 세계를 깨는 가볍고 장난스러운 혁명의 힘으로부터 그의 풍자가 시작되었을 것이다. 모든 것은 시인의 고뇌 이전에 시작되어 그의 진지한 고뇌를 만들었다. 그리고 그의 고뇌는 또 모든 야릇한 시작을 여는 하나의 시작이 되었다. 그러니 시작이라는 말은 얼마나 좋은 말이냐! 그 떨리는 말에서는 언제나 텅 빈 우정의 진동이 느껴진다. 우리는 함께 그 말에 입을 맞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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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학수첩』 2009년 겨울호.↩
- 신형철 「가능한 불가능: 최근 ‘시와 정치’ 논의에 부쳐」, 『창작과비평』 2010년 봄호 370면.↩
- 졸고 「감각적인 것의 분배: 2000년대 시에 대하여」, 『창작과비평』 2008년 겨울호.↩
- 심보선·이현우·오은·이문재 좌담 「‘촛불’은 질문이다」, 『문학동네』 2008년 가을호.↩
- 이장욱 「시, 정치 그리고 성애학」, 『창작과비평』 2009년 봄호.↩
- 이에 대해서는 소영현 「캄캄한 밤의 시간을 견디는 검은 소떼를 구해야 한다면」, 『작가세계』 2009년 여름호 277~78면 참조.↩
- 황현산 「김수영의 현대성 또는 현재성」, 『창작과비평』 2008년 여름호 183면.↩
- 이 글의 2, 3절은 졸고 「김수영 문학의 미학적 정치성에 대하여: 불화의 미학과 탈경계적 정치학」(『현대문학의 연구』, 2010년 봄호)의 논의를 요약한 것임을 밝혀둔다.↩
- 자크 랑시에르 『미학 안의 불편함』, 주형일 옮김, 인간사랑 2008, 114면. 랑씨에르는 미학적 자율성과 타율성을 진정한 예술의 두 극으로 이해한다. 그는 그 두 극을 ‘삶에 저항하는 예술’과 ‘예술의 삶-되기’라는 두 개념으로 다시 표현하면서, 진정한 예술은 언제나 두 극 사이를 운동하며 그 극들 사이의 불편한 긴장을 해소해버리려 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 김수영 「시의 ‘뉴 프런티어’」, 『김수영 전집』(산문), 민음사 2003, 이하 김수영 작품 인용은 제목만을 밝힌다.↩
- 자크 랑시에르, 앞의 책 69면.↩
- 이 점에서 흥미롭게도 김수영의 ‘시인의 모랄’은 랑씨에르의 모랄과 만난다. 랑씨에르는 예술의 윤리화를 비판하지만, “윤리적 충동 자체는 인간의 모든 언행에 묻어나게 마련”이며 랑씨에르 자신도 이런 윤리적 차원을 “ ‘감각체험의 자율성’에 근거한 예술이 태생적으로 내장하고 있다”고 보았다는 지적(백낙청 「현대시와 근대성, 그리고 대중의 삶」, 『창작과비평』 2009년 겨울호, 32면)은 정확한 것이다. 다만 랑씨에르는 이러한 윤리적 충동과 윤리적 차원을 ‘모랄’이라는 개념으로 표현한다. 따라서 흔히 윤리의 이름하에 벌어지는 치안적 활동에 대한 대항으로서 정치활동이 필수적이며 치안에 대한 정치적 저항이야말로 그에게 진정으로 도덕적인 것이다. 모랄과 윤리에 대한 랑씨에르의 구별에 관해서는 『미학 안의 불편함』 172면 참조.↩
- 자크 랑시에르 「미학 혁명과 그 결과: 자율성과 타율성의 서사 만들기」, 진태원 외 옮김, 『뉴 레프트 리뷰』, 길 2009, 492면.↩
- 백낙청, 앞의 글 36~37면. 이러한 우려와 당부는 랑씨에르의 미학적 정치성을 수용하는 일부 입장들에 대한 신형철의 비판적 언급(「가능한 불가능」, 377면)에서도 이미 거론되었듯이 거듭 강조할 만한 중요성을 지닌다. 또한 그 당부는 김수영의 미학적 정치성에 대한 논의에서도 유의미한 것이다.↩
- 김수영이 “‘너무나 많은 자유가 있다’는 형식을 정복”하기 위해 “‘내용’은 언제나 밖에다 대고 ‘너무나 많은 자유가 없다’는 말을 계속해서 지껄여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예술의 형식과 내용 간의 언급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38선을 뚫는 길”이며 “민족의 역사의 기점”이 되는 활동에 대한 언급이기도 하다. 이런 점에서 김수영은 특별히 랑씨에르가 의사(擬似)정치(para-politics)라고 규정한 정치형태에 대한 비판적 자각을 보여준다. 의사정치란 정치투쟁을 오직 집행권력의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대의적 공간의 형식 내부에서 벌이는 경쟁으로 국한하는 것이다. 모든 사회적 불평등에도 불구하고 대의의 형식만 보장된다면 자유가 완전히 실현된 것이라고 보는 정치형태다.(슬라보예 지젝 『까다로운 주체』, 이성민 옮김, 도서출판b 2005, 310면.) 김수영은 형식적 의회민주주의가 제대로 자리잡지 못한 시대적 상황을 비판하기도 했지만, 그의 시대가 처한 부자유의 문제가 단순히 형식적 완성만으로 해소될 수 있다는 소박한 입장도 아니었다. 그는 ‘이만하면 언론자유가 있다’고 본다는 어느 여류시인의 말에 분개하고(「창작 자유의 조건」), 또 기성질서의 테두리 안에서의 ‘순수한 문학적인 내면의 창조력’을 말하는 입장을 강하게 비판한다(「실험적인 문학과 정치적 자유」). 이러한 언급들은 그가 의사정치적 사유를 자각적으로 거부했음을 보여준다.↩
- 두 철학자에 따르면 생성(되기)은 “무엇인가를 또는 누군가를 모방하거나 그것들과 동일해지는 것이 아니다.” 다른 어떤 것을 모방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어떤 것을 가지고 자신의 유기체를 조성”하는 것이 바로 되기이다. 질 들뢰즈·펠릭스 가타리 『천 개의 고원』, 김재인 옮김, 새물결 2001, 517~19면.↩
- 졸고 「감각적인 것의 분배」에 대해 “2000년대에도 분명히 현재형으로 존재하는” 그 시들의 미학적 중요성이 “혹시 과거형으로만 다루어지는 것은 아닌가 하는 의구심”을 갖는다는 지적이 있었다(유희석 「2010년대의 ‘참여문학 구상’」, 『실천문학』 2009년 겨울호 240면). 스스로도 의식하지 못한 채 여전히 존재하는 ‘오래된, 다른 목소리들’에 대한 무심함을 드러냈다는 점에서 그러한 지적은 새겨둘 만한 것이었다. 나 역시 지게꾼의 시가 지닌 현재적 중요성을 부정하지는 않는다. 다만 그 글에서 나타나는 과거형의 뉘앙스는 지게꾼의 시와 관계하는 나 자신의 태도에서 비롯된 것이다. 나는 지게꾼의 시처럼 쓰려고 했었고 그때마다 늘 큰 어려움을 느꼈다. 그리고 확실히 지금은 그렇게 쓰려고 애쓰지 않는다는 점에서 지게꾼의 시는 나에게 미학적 과거가 되었다. 나는 이제 지게꾼의 시처럼 쓰는 대신 지게꾼과 자주 마주치는 사람, 지게꾼과 모든 것-시와 지게와 땅의 정치와 하늘의 신비 등등-에 대해 말을 나누는 사람(‘처럼’이 아니다)이 ‘되어’쓰고 싶다.↩
- 이를 좀더 분명하게 이해하는 데는 아방가르드에 대한 랑씨에르의 설명이 도움이 될 것이다. 아방가르드에는 두가지 이념이 있다. 한편으로 “운동을 이해하고 그 힘들을 구체화하고 역사적 변화의 방향을 규정하며 주체적인 정치적 방향설정들을 선택하는 힘”, 즉 정치적 아방가르드가 있다. 그리고 다른 한편으로는 실러의 모델에 입각한 “미래에 대한 미학적 예상”으로서의 미학적 아방가르드가 있다. 두번째 아방가르드 개념이 랑씨에르가 미학적 예술체제라고 부르는 것 혹은 모더니티 운동에서 가치를 지닌다면 그것은 “예술적 혁신에 대한 선발대들”이라는 측면에서가 아니라 “도래할 삶의 물질적 틀과 감각적 형태들의 발명”이라는 측면에서다. 미학적 아방가르드는 “도래할 공동체를 예상하는 혁신적인 감각경험 양식들 속에 내재하는 잠재성”을 정치적 아방가르드에 가져왔고, “가져다주길 원했고, 가져왔다고 믿었다.”(자크 랑시에르 『감성의 분할』, 오윤성 옮김, 도서출판b 2008, 39면.)↩
- 김춘식·서동욱·조강석·조연정·진은영 좌담 「우리 문학의 이전과 이후: 2000년대 이전과 이후의 우리 시」, 문장웹진(http://webzine.munjang.or.kr) 2010년 1월.↩
- 김병익 「4·19 50년을 말한다」, 한국일보 2010.2.4.↩